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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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도법 정리 (2) - 신유도법의 등장과 군사 도법 전술적 관점

신유도법의 발생

척계광 장군은 영류지목록을 얻은 1561년 이후, 먼저 거대한 일본도인 노다치(野太刀)를 모방한 긴 칼을 제작했다. 왜구들이 노다치를 들고 3미터를 뛰어와 단숨에 베어버리자 명나라 병사들이 혼비백산하여 벌벌 떨다가 죽어나간 실전 사례를 반영했다. 날길이 104cm에 동호인 20.8cm가 포함되고 손잡이 길이 31.2cm로 전체길이 135cm정도에 무게 1.5kg의 길지만 길이에 비해서는 가벼운 칼이었다. 이 칼은 긴 칼이라는 뜻의 장도(長刀)라고 지칭되었다. 척계광이 북방으로 전출되어 대 기마민족 전법을 확립하여 쓴 책 연병실기에서는 쌍수장도(雙手長刀)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주척 기준으로 재현된 장도. 경인미술관 제작)



기효신서, 무예제보 등 장도 도법을 묘사하는 모든 그림은 오른손이 칼날을 잡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왜구는 노다치를 쓸 때 너무 커서 쓰기가 힘들 경우 칼날에 새끼줄이나 천을 감아서 그 부분을 잡고 사용했다. 현재도 히키다 혹은 히고 신카게류에서는 그렇게 만든 노다치를 이용하여 연무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을 모방해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히고 신카게류의 노다치 연무)


장도의 제식에서 칼날을 21cm정도의 황동으로 싼 것은 일본도의 부품인 하바키를 길게 연장해서 손잡이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왜구들이 보조적인 방편으로 쓰던 것을 아예 정규 기법으로 쓰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기효신서 체계에서 모든 전투병력은 각자 지정된 원거리 무기(장기,長技) 와 근거리 무기(단예,短藝)를 가진다. 오직 낭선만이 여기서 면제되고, 장창은 활, 등패는 표창(1.49m의 가벼운 투창), 당파는 화전(로켓화살)이며, 장도는 화승총병에게 지급되었다.

척계광 장군은 화승총병들이 부싯돌, 화약통, 탄입대 등 개인장비가 번잡하고 무거우므로 근접전 무기로써 가볍고 길어서 좋다는 이유로 장도를 보급했다. 그리고 장도를 사용하는 도법도 함께 만들어졌다. 세법은 총 15세로 정리됐는데, 세법의 이름은 알기 쉽게 움직임을 묘사했고, 외우기 쉽게 4글자로 만들었다.


1. 견적출검(見賊出劒) - 적을 보고 검을 뽑는다
2. 지검대적(持劒對賊) - 검을 잡고 적을 대한다
3. 향좌방적(向左防賊) - 왼쪽을 향해 적을 막는다
4. 향우방적(向右防賊) - 오른쪽을 향해 적을 막는다
5. 향상방적(向上防賊) - 위를 향해 적을 막는다
6. 향전격적(向前擊賊) - 앞을 향해 적을 친다
7. 초퇴방적(初退防賊) - 처음 물러나 적을 막는다
8. 진전살적(進前殺賊) - 앞으로 나가며 적을 죽인다
9. 지검진좌(持劒進坐) - 검을 잡고 나아가 앉는다
10. 식검사적(拭劒伺賊) - 검을 닦으며 적을 엿본다
11. 섬검퇴좌(閃劒退坐) - 검을 피하며 물러나 앉는다
12. 휘검향적(揮劒向賊) - 검을 휘두르며 적을 향한다
13. 재퇴방적(再退防賊) - 다시 물러나 적을 막는다
14. 삼퇴방적(三退防賊) - 세번째 물러나며 적을 막는다
15. 장검고용(藏劒賈勇) - 검을 숨기며 용맹함을 불러들인다

무예 세법의 이름이라기보다 군대 훈련 구령에 가까운 간단하며 알기 쉬운 이름이며, 이 15가지 동작을 순서대로 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훈련이 된다. 그러나 기효신서에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고, 기효신서의 6가지 백병전 무술을 배워 정리한 조선의 무예제보에 유일하게 투로가 남아있다.

군사 도법의 재구성

신유도법 제1로 장도

(무예제보의 장도 투로 재현, 최신 연구결과가 반영되지 않아 오류가 있음)


조선의 무예제보에 수록된 이 투로는 조선의 군관 한교가 명나라 군대의 훈련을 직접 보고 정리한 것이며, 이를 통해 훈련 투로가 어땠는지 알 수 있다. 여기에 민간으로 유출된 장도술을 정리한 정종유의 단도법선을 함께 참고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동작을 가리키는지 애매했던 몇몇 세법이 어떤 동작으로 구성되었는지 알 수 있다.

견적출검(見賊出劒) - 적을 보고 검을 뽑는다 : 글만 보면 적을 보고 칼집에서 칼을 빼는 발도 동작이지만, 실제 투로 훈련할 때에는 장도를 미리 빼내서 어깨에 지고 있다가, 발도 동작을 흉내내며 견적출검세를 취했다. 무예제보의 그림을 보면 오른손 역수로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도법선 출도세에서는 칼집을 쥐고 칼자루를 오른손 역수로 쥐고 발도한다.

지검대적(持劒對賊) - 검을 잡고 적을 대한다 : 발도하여 견적출검세를 취했다가, 머리 옆으로 한번 돌리면서 손을 바꿔잡아 오른손이 칼날을 잡는다. 왜구가 노다치를 쓸 때 간혹 칼날에 끈이나 천을 감고 잡은 것을 모방한 파지법으로 보인다. 단도법선에서는 견적출검-출도세로 오른손 역수로 발도했다가, 창이 찔러오면 그대로 창을 누르며 왼손으로 손잡이를 잡아 지검대적-압도세로 바꾼다. 상대를 평범하게 겨눌 때에는 오른발이 앞에 있으면 우정슬도세, 왼발이 앞에 있으면 좌정슬도세이다.

견적출검-지검대적으로 이어지는 동작은 투로를 시작하기 전에 몸을 크게 펴며 부드럽게 움직임으로써 앞으로 이어질 격한 동작에 대비해 몸을 준비하는 역할도 한다.

향좌방적(向左防賊) - 왼쪽을 향해 적을 막는다 : 단도법선을 통해 지검대적에서 향좌방적으로 넘어가는 동작을 알 수 있는데, 칼을 땅에 거꾸로 꽂듯이 뒤집으며 왼쪽으로 밀어내면 향좌방적세가 된다.

향우방적(向右防賊) - 오른쪽을 향해 적을 막는다 : 투로에서는 팔이 교차되어 있기 때문에 향좌방적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밀어내는 것으로 보이나, 지검대적에서 향우방적을 할 경우 단도법선에서와 같이 칼을 땅에 거꾸로 꽂듯이 뒤집으며 오른쪽으로 밀어내면 향좌방적세가 된다. 단 이때는 팔이 교차되지 않는다.

향상방적(向上防賊) - 위를 향해 적을 막는다 : 투로에서 향상방적으로 막은 다음 향전격적세나 진전살적세로 베어버린다. 단도법선에서는 손바닥으로 칼등을 받치는 매두도세, 손목으로 칼등을 받치는 입동도세로 분화되어 있으며 매두도세는 옆으로 밀어내어 막고 두손으로 내려치며, 입동도세는 위로 들어올려 빗겨내고 한손으로 올려친다.

향전격적(向前擊賊) - 앞을 향해 적을 친다 : 단순히 정면베기뿐만 아니라, 좌우 대각선베기도 향전격적에 포함된다. 투로에서는 보통 앞으로 나아가면서 향전격적 정면베기를 두번 연속으로 치거나, 정면-왼쪽-오른쪽 순으로 세번 연타를 날리는 패턴으로 나타난다. 기효신서 교장도 편에서 베기를 빠르게 하여 상대가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대련에서 상등급으로 판정된다는 것을 보아 내려베기를 연속으로 하며 나아가 상대방을 압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진전살적(進前殺賊) - 앞으로 나가며 적을 죽인다 : 세법명만 보면 향전격적은 제자리에서 적을 향해 베는 것이고, 진전살적은 앞으로 나아가며 적을 베는 것인데, 막상 투로에서는 향전격적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는 등 둘의 차이가 없다. 다만 향전격적은 연타가 많이 나오지만 진전살적은 대부분 단타로 끝나는 것이 특징.

휘검향적(揮劒向賊) - 검을 휘두르며 적을 향한다 : 앞으로 전진하며 세번 올려베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기효신서 교장도 편에서 베기를 빠르게 하여 상대가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대련에서 상등급으로 판정된다는 것을 보아 올려베기를 연속으로 하며 나아가 상대방을 압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단도법선에서는 좌/우제요도세를 각각 연속으로 이어서 수행하며 한번의 올려베기로 적의 공격을 걷어내고, 연이어 다시 반대쪽으로 올려베면서 적을 베어버리는 기술로 나타난다.

왼손으로 검을 잡고 앞을 향하여 다시 오른손으로 잡아 (以左手持劒向前, 以右手更把) : 한손베기를 암시하는 대목. 한자로는 단순히 검을 잡고 앞으로 들이미는 동작으로 보이지만 무예제보 언해본에서는 "몸을 돌려 한발을 나와치며 왼손으로 칼을 둘러 앞을 향하여 오른손으로 다시 잡아서" 라고 하여 식검사적세에서 왼손 역수로 잡은 칼을 휘둘러 치고 그대로 돌려서 오른손으로 다시 칼날을 잡은 다음 향좌방적으로 넘어가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훗날 조선에서는 이것이 맞다고 생각했는지 무예도보통지에서 以左手持劒向前을 以左手揮劒向前(왼손으로 검을 휘둘러 앞을 향하여)로 바꾸게 된다. 단도법선에서는 한손베기와 찌르기가 모두 다양하게 나타난다.

초퇴방적(初退防賊) - 처음 물러나 적을 막는다 : 투로에서는 칼끝은 적, 칼자루는 왼쪽에 두고 도주하여 물러나는 것으로 나타나며, 갑자기 뒤로 돌아 쫓아오던 적을 베어버리는 향전격적으로 이어진다. 이화창, 검경 등에서 볼 수 있는 후퇴하며 거리를 벌리다가 갑자기 앞으로 몸을 돌리며 쳐내고 찌르는 기술과 완전히 동일한 풍격을 가지고 있다. 단도법선에서는 상대가 찌르면 왼쪽으로 밀어내며 막는 상궁도세라는 자세로 나타난다.

재퇴방적(再退防賊) - 다시 물러나 적을 막는다 : 뒤로 물러나며 세번 올려베고 이 자세로 후퇴한다. 휘검향적의 물러나는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삼퇴방적(三退防賊) - 세번째 물러나며 적을 막는다 : 투로에서는 칼끝은 적, 칼자루는 오른쪽에 두고 도주하여 물러나는 것으로 나타나며, 갑자기 뒤로 돌아 쫓아오던 적을 베어버리는 향전격적으로 이어진다. 이화창, 검경 등에서 볼 수 있는 후퇴하며 거리를 벌리다가 갑자기 앞으로 몸을 돌리며 쳐내고 찌르는 기술과 완전히 동일한 풍격을 가지고 있다. 자세가 조금 특이하며 신카게류에서 쿠네리우찌를 즉 옆으로 돌아 손을 내려친 자세와 똑같아 카게류에 이미 쿠네리우찌의 원형이 엔삐(猿飛)에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단도법선에서는 상대가 찌르면 오른쪽으로 밀어내며 막는 저간도세라는 자세로 나타난다.

지검진좌(持劒進坐) - 검을 잡고 나아가 앉는다 : 투로를 전체적으로 보면, 향상방적으로 한번 공격을 막은 다음에 향전격적이나 진전살적으로 무자비하게 연타를 친 다음 쓰러진 적을 검을 쥐고 나아가 앉아 찔러죽이는 확인사살 동작으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왜구들이 보여주었을 카게류의 무자비한 기세의 연속공격 후 확인사살하는 모습을 나름대로 구현했음을 알 수 있으며, 카게류 기법 중에서는 2번 엔카이(猿回)와 유사하다.

식검사적(拭劒伺賊) - 검을 닦으며 적을 엿본다 : 지검진좌 이후에 반드시 따라오는 동작으로, 소매에 칼을 닦으며 적을 주시하는 동작으로 나타난다. 일본인들이 보여주는 잔심(殘心) 즉 이기고 나서도 방심하지 말고 주변을 주시하는 것을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동작으로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섬검퇴좌(閃劒退坐) - 검을 피하며 물러나 앉는다 : 투로에서 단 한번밖에 나오지 않는 동작이며, 중국무술에서 장병기를 뒤로 물리며 손을 앞으로 뻗는 동작과 완전히 같다. 투로에서 지검진좌-식검사적-섬검퇴좌 순으로 나타나며, 이 투로를 보면 상대를 확인사살한 후 주변을 경계하다가 갑자기 공격해오는 적을 물러나 피하며 특유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장검고용(藏劒賈勇) - 검을 숨기며 용맹함을 불러들인다 : 투로가 끝나고 숨을 고르며 몸을 진정시키는 동작. 현재 여러 중국무술에서도 투로를 시작하기 전에 부드럽지만 큰 동작으로 시작하고, 투로가 끝나면 다시 부드럽고 큰 동작으로 숨을 고르고 몸을 진정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투로에서 기본기를 분해하면 정면 수직 내려베기, 왼쪽/오른쪽 대각선 내려베기, 왼쪽/오른쪽 올려베기, 찌르기, 하단 좌/우 방어, 칼등에 손을 얹는 상단 방어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간략한 기법을 가지고 상대방의 기세 넘치는 연속 공격을 방어한 다음 무자비한 연속 베기로 연타를 날려 싸움의 흐름을 이쪽으로 가져와 몰아쳐서 제압하고 확인사살 하고 잔심을 남기는 것이 바로 장도 투로에서 추구하는 이념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신유도법이 왜구의 도법이라고 하는 것은 일본의 어느 유파의 기법을 그대로 이식했다는 것이 아니라, 카게류와 왜구들이 보여주었던 강한 기세로 몰아치며 연속으로 베고 찔러 상대를 몰아붙이는 특성을 이식했다는 것임을 투로와 교장도 편을 통해 알 수 있다.

신유도법 제2로 제독검

역시 조선에 남아있는 투로로써 1628년(인조6년) 어영청사례에서 처음 등장하는 검술로, 직접적인 투로는 후대의 정조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되었다.(사도세자가 제작한 무예신보에 처음 수록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나 무예신보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전승으로는 명나라 장군 이여송의 검술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실제 지도는 이여송의 부장으로 조선에 파견되었던 참장 낙상지가 수행했다고 한다. 이여송은 요동의 실력자 이성량의 아들이며 북방 이민족 기병대를 휘하에 둔 북병이었으나, 낙상지는 척계광 체계로 움직이는 남병을 통제했고 군경력도 남병에서 대부분 싾았다. 그리고 사용되는 견적출검, 초퇴방적 등의 단어가 장도 체계의 단어인 점 등으로 보아 장도 계열의 투로라고 볼 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향우/향좌격적이라는 단어는 장도 투로에는 없던 것이며 또 초퇴/재퇴/삼퇴방적을 칼을 머리높이로 들고 하고, 향좌/향우방적 또한 장도 투로와는 다르게 팔을 뻗어 수평으로 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 회전을 나타내는 동그라미 모양의 선이 많이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이 기법 역시 단도법선에서 찾을 수 있다. 단도법선은 기본 22세와 속도세 12세로 나뉘어지는데 기본 22세가 장도 투로에서 나타나는 자세나 기법들과 동일하다면, 제독검은 속도세 12세와 좀 더 유사하다. 속도세 12세는 기법이 22세와 스타일이 좀 다른데, 22세에서는 보통 향좌-향우방적에 유사하게 칼을 거꾸로 세워서 하단을 막아 밀어내는 식으로 방어하고, 투보를 써도 외간도세를 제외하면 과도하게 쓰지 않는다. 그러나 12세에서는 하단으로 베어서 밀어내는 기법이 나타나며, 투보를 크게 쓴다. 이것이 정종유가 안휘성 호주의 곽오도에게 배운 도법으로 추정된다. 안휘성은 절강성 바로 옆에 있으므로 신유도법의 2로가 전해지기에 무리가 없다.

투보를 이용한 체간의 회전으로 수평베기를 높게 치는 것은 12세 중 배감도세, 사삭도세에서 나타나는 좌우 투보를 통한 베기이며, 이렇게 할 경우 제독검 그림에서 나타나는 바로 그 자세로 공격이 끝나게 된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알기 힘든 세법의 동작을 알 수 있다.

향좌격적(向左擊賊) - 왼쪽을 향해 적을 친다 : 단도법선의 사삭도세에서 나타나는 왼쪽으로 투보를 하여 몸을 돌려서 수평으로 베는 것과 동일하다.

향우격적(向右擊賊) - 오른쪽을 향해 적을 친다 : 단도법선의 배감도세에서 나타나는 오른쪽으로 투보를 하며 몸을 돌려서 수평으로 베는 것과 동일하다.

향좌방적(向左防賊)/향우방적(向右防賊) : 장도 투로의 향좌방적은 검을 거꾸로 세워 막아내는 것이지만, 제독검에서는 수평으로 베어서 막아내는 것이며 명나라 민간무술의 발초심사와 같은 동작이다. 단도법선의 속도세 12세도 대체적으로 명나라 민간무술의 보법이 많이 나타나며 제독검 투로가 제정되었을 당시에는 이미 명나라 민간무술의 동작이 많이 침투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초퇴방적(初退防賊) 재퇴방적(再退防賊) 삼퇴방적(三退防賊) : 장도 투로에서는 칼로 상대를 겨누며 뒤로 후퇴하는 것이지만 제독검에서는 역시 투보를 이용하여 몸을 돌리면서 크게 베는 것으로 바뀌었다.

식검사적(拭劒伺賊) - 검을 닦으며 적을 엿본다 : 장도 투로에서는 팔에 닦고 한방향만 바라보지만 제독검 투로에서는 소매에 닦고 다시 반대쪽 면을 허리춤에 닦는다.

제독검 투로를 통해 기존 장도 투로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수평베기와 수평베기를 이용한 방어가 보완되었다. 이것으로 내려베기/수평베기/올려베기가 모두 갖추어졌으며 단도법선에서도 비중은 높지 않지만 수평베기가 나타난다.

반면 지나칠 정도로 투보를 이용한 몸의 회전을 많이 시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몸을 크게 트는 동작을 통해 체조의 효과를 의도한 것으로 추측된다.

장도를 비롯한 기효신서의 무기술이 무기나 몸을 빙빙 돌리며 비실전적인 화법을 철저히 금지한 것에 비해 명나라 민간무술의 기법이 들어가고 기효신서에서는 흔적조차 없으며 낙상지 개인이 전수하고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 군대의 공식 훈련에서는 장도 투로만 연무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척계광이 직접 만든 것은 아니며 나중에 따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장도 투로와 개별 기술은 절강성의 유운봉을 통해 정종유에게 전승되어 단도법선 22세가 되고, 훗날 제독검으로 알려지게 되는 투로와 개별 기술은 안휘성 호주의 곽오도를 통해 정종유에게 전승되어 단도법선 속도세 12세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유도법의 훈련법

장도의 실력을 비교함(較長刀)

기효신서 체계에서는 무대(舞對)를 통해 병사의 실력을 시험보았다. 무(舞)란 춤추는 것 즉 투로를 말하고, 대(對)란 2인 1조로 붙는 것 즉 대련을 말한다. 기효신서 교장도/당파편을 보면, 먼저 중군(中軍)에서 호포를 한번 쏘고 백방기를 세우면 도수와 당파수를 집합시키는 깃발이므로, 모든 장도수와 당파수들은 모두 중군에 모여서 명령 대기를 한다.

이때 왜도수 두명이 한조(二人一排)가 되며, 먼저 투로를 시연하는데 시연하는 투로의 종류가 많고 빠르고 능숙하면 상등이다.

그 다음 목검을 쥐어주고 서로 마주보게 해서 서로 베는데(對砍) 들었다 내리는 것이 빨라서 상대가 틈을 타서 베지 못하게 하면 상등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투로는 언뜻 보기에 로(路)로 표기됨으로써 여러 개별기술을 모아 순서대로 행하는 투로가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효신서와 기타 다른 주변 사료의 여러 무기의 세법에 대한 서술을 보면 한가지 구령에 한두가지 동작이 들어간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어떤 순서대로 동작을 행하기보다는 자유롭게 15가지 세법을 능숙하게 행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또 대련에서는 진검이나 날을 죽인 철검이 아닌 목검으로 싸웠음을 알 수 있는데, 다른 무기들의 대(對)를 보면 정말로 상대를 때려눕혀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실전적인 공방으로 기본기가 확실하고 동작이 정확하며 공격과 방어가 자동적으로 잘 나오고 다양한 기술을 보여주는지가 목적이다. 상대를 때리기보다는 능숙한 공방으로 싸움을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어쩌다 때리게 되더라도 타격을 실제로 하지는 않고 직전에 멈추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파는 창의 공격에 동요하지 않고 그때그때 정확하게 막고 누르고 찔러들어가는 것을 중요시하고, 대봉은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며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봉이 부딪칠 때 소리가 크고 정확하게 공세가 들어가는 것을 중요시하는 등 각 무기마다 대련에서 원하는 특별 사항들이 있는데, 장도는 빠르고 능숙하며 밀도 있는 공격으로 상대방이 나에게 감히 공세를 시도할 수 없게 몰아붙이는 것을 중요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투로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다.

또 대련을 보면 신유도법의 가상적이 왜구의 거대 일본도 노다치(野太刀)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창을 상대하는 체계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기효신서 주사호령(舟師號令)편에서 등장한다.

수군 편제에서 호포를 한번 쏘고 백기를 세우면 도수, 구수, 창수들이 모여 시험을 보는데, 여기서 뜬금없이 참마도라는 무기가 등장하며, 역시 당파 시험과 같이 장창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치고 들어가 이기는 것을 상등으로 친다. 이 참마도가 만일 장도와 같은 무기일 경우, 민간의 단도법에서 창을 상대로 싸워이기도록 하는 체계는 이미 척계광 군대의 함대에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약간 후대의 무술가 정종유는 참마도를 월도 계통의 무기로 인지했으며, 대만 정씨왕조에서도 월도 계열 무기를 참마도라 불렀다. 그러나 척계광 군대가 월도 종류의 무기를 채용한 적이 없고, 각 병기의 표준 비축량 목록에서도 참마도나 월도의 이름은 없다. 더군다나 화승총병은 장도를 차야 했으며, 훗날 청나라에서도 장도에서 분화한 168cm의 길이의 물건을 참마도라고 불렀기 때문에 장도=참마도로 볼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민간으로 유출된 신유도법인 단도법에서 기본적으로 장도로 창을 상대하는 체계가 짜여져 있는 것은 척계광의 수군 훈련에서 유래한 것이지 단도법선의 저자 정종유의 주장대로 자기가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대 기병전술 훈련

척계광이 북방으로 전출되어 오이라트 기병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체계를 담은 연병실기를 보면 대 기병용 무기로써 따로 훈련을 받았다. 갑옷을 입고 말 머리와 다리를 상정한 막대기를 후려쳐서 날리는 훈련을 했는데 적 기병의 말머리와 말다리를 절단하는 딱 두가지 기술만 훈련했다. 이 기법으로 청나라 기병대를 격퇴한 실전 사례가 조선왕조실록에 실려있기도 하다.

  • 효종실록 14권, 6년(1655 을미 / 청 순치(順治) 12년) 6월 17일(경오) 3번째기사 "고교보(高橋堡)에 이르러 우리 나라에서 잡혀간 사람을 만났는데, 교하(交河)의 사노(私奴) 응상(應祥)이었습니다. 저들의 사정을 자세히 물었더니, 그가 갑군(甲軍)으로서 지난해에 남방의 싸움터에 따라갔는데 남군이 패한 체하고 북군을 유인하여 협격해서 북군이 전멸하고 왕자(王子) 한 사람이 죽었으며, 남군은 태반이 보졸(步卒)인데 철갑으로 머리와 몸을 싸고 손에는 큰 칼을 들고 몸을 굽히고 곧바로 달려가 말의 다리만을 찍으며 선봉에는 코끼리를 탄 자가 많이 있었다 합니다."


개인 훈련(分私習)

공식적인 평가 외에도 진영 설치가 끝나거나 혹 진영 설치가 끝나지 않아도 지휘관 재량하에 각자 훈련을 할 수 있었는데, 이것을 개인연습이란 뜻의 사습(私習)이라 했다. 공식 평가처럼 북을 울리고 이름을 부르고 하는 절차 없이 각자 나뉘어서 했는데, 고참이 먼저 시작하고 신참이 나중에 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활쏘기, 연무, 대련이 언급되어 있으며 더불어 투로를 분해한 개별 기술을 연습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화법 금지(禁花法)

군사 훈련에서는 화법(花法)즉 중국무술 하면 연상하는 무기를 돌리고 뛰고 하면서 비실전적인 화려한 동작을 연습하는 것을 금지했다.

훈련 일정

명나라 공식 군사제도에서는 3일 훈련하고 5일 쉬도록 규정되었으며 한달에 10일 훈련할 수 있었다. 이것은 토군(土軍) 즉 지역 방어의무를 세습하며 국가로부터 받은 토지를 경작해 살아가는 군대나 민병대에 규정된 것이라서 훈련량이 적다. 그러나 척계광 군대에서는 모병된 직업군인으로써 생업에 종사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15일 훈련하고 15일 쉬도록 규정되었다. 훈련 싸이클은 3일 무예수련, 1일 진법훈련, 1일 종합평가를 함으로써 5일을 1싸이클로 돌려 5일 훈련 5일 휴식 체계로 30일을 채웠다.

무예제보에 실린 한교의 명나라 군대의 훈련 모습이나, 기효신서 체계를 도입한 이후 조선군의 훈련을 기록한 군영등록을 보면 집단훈련은 각 무기마다 설정된 투로를 하는 것이 주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종합평가(比)를 할 때에는 각자 지정된 원거리 무기(장기,長技) 와 근거리 무기(단예,短藝)를 나뉘어서 시험을 보았으며, 장도수는 화승총병이었으므로 화승총 사격을 함께 시험보았다.

신유도법의 평가방법

단예 즉 백병전 기술은 무대(舞對) 즉 연무와 대련, 이 두가지를 초등/상상-상중-상하/중상-중중-중하/하상-하중-하하/부지 총 11등급의 성적으로 판단했다.

초등(超等) : 연무와 대련 모든 면에서 상상 등급보다 뛰어나고 검리를 터득했으며 마음가는 대로 수가 나오는 정도.
상상(上上) : 연무와 대련이 힘차고 강맹하며 표준기술에서 벗어나지 않고 빠르고 능숙하지만 손이 마음에 응하는데에 약간 부족함.
상중(上中) : 연무와 대련이 힘차고 강맹하며 표준기술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빠르게 하면 힘이 좀 부족하거나 그냥 빠르기만 함.
상하(上下) : 연무와 대련이 힘차고 강맹하며 표준기술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느리거나 힘이 약함.

초등과 상급은 모두 상을 받는다. 특히 초등(超等)이란 연무와 대련이 뛰어난 경지에 이르고 마음대로 기술이 나오며 검리를 터득한 수준이며, 이정도가 되면 즉시 교사(敎師)즉 교관으로 채용하고 이들이 가르친 부대의 실력이 월등히 향상되면 공식 문서(관대차,冠
帶箚)를 발행하여 정규 채용하도록 되어 있다.

또 사(司, 총원 600명 현 대대와 유사) 편제 단위로 평가되며, 대대병력의 100%가 상급에 달하면 초등, 90~70%까지는 상급으로 지휘관이 상을 받는다.

중상(中上) : 연무와 대련이 표준기술 대로이고 능숙하지만 조금 느리거나 조금 약함.
중중(中中) : 연무와 대련이 힘차고 강맹하며 표준기술과 맞지만 좀 서투른 경우.
중하(中下) : 연무와 대련이 힘차고 강맹하며 표준기술과 맞지만 상대방과 합이 안맞는 경우.

중상과 중중까지는 혼나지 않고 그냥 넘어가지만, 중하부터는 지휘관이 연좌처벌 받는다. 대대병력의 40%만이 상급에 달했을 경우 부대평가는 중하에 해당되며 이러면 장관(將官,사단장)은 문책하고, 중군 파총(中軍 把摠,직할대대장)은 10대 두들겨패고, 파총(把摠,대대장)은 20대 두들겨패고, 초관(哨官,중대장)은 30대 두들겨팬다.

하상(下上) : 기술은 좀 익숙하지만 표준과 안 맞는 자, 표준기술과 맞게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자, 익숙하지만 느리고 둔한 자.
하중(下中) : 연무는 하는데 대련을 못하거나 대련은 하는데 연무를 못하는 경우 어느 하나를 아무리 잘해도 하중.
하하(下下) : 연무와 대련 둘중 하나는 어떻게 하긴 하는데 잘 못하는 자. 둘다 어떻게 하긴 하는데 표준기술과 안맞는 자.

부지(不知) : 아예 아무것도 몰라서 아무것도 못하는 수준

부대평가에서 병력의 30%만이 상급에 달하면 하상등(下上等)에 해당되며 장관은 중벌, 중군파총은 20대 맞고, 파총은 30대 맞고, 초관은 40대 맞는다.

부대평가에서 병력의 20%만이 상급에 달하면 하중등(下中等)에 해당되며 장관은 계급 강등 대상이 되고 중군 천총(中軍 千總, 직할연대장)은 20대 때리고 파총으로 강등, 파총은 30대 때리고 초관으로 강등, 초관은 40대 때리고 기총(旗總, 소대장)으로 강등한다.

부대평가에서 병력의 10%만이 상급에 달하면 하하등(下下等)에 해당되며 장관은 훈련의무를 거부한 것으로 판정되어 두들겨패고 직위해제, 중군 파총과 초관은 모두 80대 때리고 직위해제하며 봉급을 50%삭감한다. 초관은 초(중대)에서 방출한다.

이렇게 지휘관에게 책임을 물음으로써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고, 특별히 열심히 하는 개인은 교관으로 특채하고 신분을 보장함으로써 동기를 부여했다.

조선의 신유도법

임진왜란에서 일본군의 백병전 기술에 참담한 패배를 겪은 이후, 조선 구원을 위해 내려온 명나라 군대의 장군이었던 낙상지는 명나라의 무술을 배울 것을 제안했고 이때 만들어진 훈련기관이 바로 훈련도감이었다. 조선의 군관 한교는 명나라 군대의 훈련을 참관하면서 대봉/등패/낭선/장창/당파/장도의 6가지 무기술을 지도받아 이를 무예제보(1598)로 정리했다. 장도 도법은 이때 들어왔다.

조선은 기존의 병법을 버리고 기효신서에 맞춰 군사 제도를 개편했지만 기효신서가 쓰여진 명나라와는 지형, 환경이 많이 달라서 기효신서의 체계를 조선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령 북방 기마민족을 격퇴하기 위해 정립된 연병실기의 전법은 화기를 탑재한 전투수레를 사방으로 늘어세워 방진을 짜고 기병 돌격을 수레에 탑재된 화기를 발포하여 피해를 입히고 그래도 기어이 수레까지 붙어서 들어오는 기병을 대봉, 장도, 등패, 당파, 협도곤 등의 무기로 격퇴하며, 퇴각하는 적을 방진 내부의 대봉, 협도곤, 당파, 선창 등의 병기를 갖춘 기병대가 출격하여 추격 격멸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중국은 북방이 평야지대고 남방이 험하지만 반대로 조선은 북방은 물론 수도 주변까지 산들이 많고 길이 험했으며, 오히려 왜구들이 출몰하기 좋은 전라 충청 경상도가 산지가 적고 평야가 많았다. 그래서 북방 기병대에 맞서 수레 방진을 짤 수가 없고, 남방 왜구에 맞서기 위해 병력이 분산된 원앙진을 쓰는 것이 위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선 초기에 명나라에 대규모로 말을 공출한 덕택에 말의 숫자가 적어지고 덩치가 작고 힘이 대단치 않은 말들이 많아 역시 적 기병대를 추격할 대규모의 기병대를 꾸릴 여유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기병대의 장비도 대봉, 협도곤, 당파 등을 사용하는 연병실기 규정이 아니라 이여송 등이 보여주었던 북병의 장비인 마상편곤, 환도 등을 사용했다.

또 기효신서의 수군체계보다 조선의 판옥선이 훨씬 크고 대포도 대량으로 탑재했으며 수군전술이 월등했기 때문에 기효신서의 수군체계를 도입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기효신서를 표준 교범으로 삼되 조선의 현실에 맞춰서 달리 운용했다. 중국이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한족 군대인 녹영은 기효신서 체계에서 유래된 원앙진을 사용하고 장도가 5가지 변형으로 분화되어 중화민국 시대까지 실전에서 사용된 데 비해, 조선에서는 장도가 대량으로 보급되었거나 실전에서 사용된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조선에서는 화승총병들이 평범한 환도를 차고 다녔으며, 이에 맞춰서 환도에 더욱 맞는 무예제보번역속집의 왜검보, 인조반정 이후에는 제독검, 본국검 같은 다른 검술들이 나타나고 보급된다. 그리고 기존의 장도 도법은 말 그대로 1.35m의 장도에 맞는 것이었고 오른손으로 칼날을 잡는 것이 평범한 환도에선 필요가 없었으므로 이 것을 수정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기존의 기효신서, 무비지, 무예제보 등에서는 모두 오른손이 칼날을 잡고 있었으나, 현종5년(1664) 당시 병조판서 김좌명(金佐明)이 기효신서를 병서에 능한 사람들로 하여금 오류를 수정하여 재간행을 시도한다. 이 조선본부터 양손 모두 칼자루를 잡아 쓰고 있다. 그리고 향우방적이 칼을 세워 막는 것으로 바뀌었으며, 식검사적세가 기존에는 왼손에 칼을 쥐는 것인 반면 그림을 좌우반전시켜서 오른손으로 칼을 쥐는 것으로 바꾸었다. 환도를 쓰기에 부자연스럽거나 의미없다고 판단되는 자세를 대대적으로 수정하였으며, 이 때문에 평범한 길이의 도검을 쓸 때에는 오히려 조선에서 수정된 것이 낫다.

(수정작업이 가장 처음 반영된 기효신서 조선본)


(무예도보통지를 기준으로 한 조선 쌍수도보의 재현)

0:35 쌍수도보의 재현(Reproduce of the Two-handed Saber in Muye-dobo-tongji(1790)
2:08 검보를 기반으로 한 전투 기술의 재구성(Reorganizing Sword flow-based combat skills)

조선에서는 무기는 쌍수도라는 명칭으로 부른 것으로 보이는데, 연병실기의 쌍수장도(雙手長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검술을 부를 때에는 용검(用劒) 혹은 평검(平劒)이라는 호칭으로 불렀음을 군영등록 등의 군사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청나라에서의 장도의 변화


명나라가 멸망하고 북방 만주족의 청나라가 들어섰으나 기효신서 체계의 군사 제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한족으로 구성된 녹영은 전통적인 명나라의 군사 제도로 운영되었으며, 이로 인해 기효신서 체계의 일부인 장도가 그대로 유지됨은 물론 오히려 개선-분화되기까지 했다.

(청나라 녹영의 쌍수대도, 스펙)


첫번째 변화는 손잡이가 길어지고 칼날이 짧아졌다. 과거에는 손잡이는 31cm정도에, 칼날 1척 정도를 황동으로 감싸서 그 부분을 잡았으나 손이 따로 보호되지 않아 위험했다. 그래서 손잡이 자체를 늘려서 안전하게 쓸 수 있도록 개선했다. 일본에서도 노다치를 쓰기 힘들어 새끼줄이나 천을 감고 쓰다가 아예 그만큼 손잡이를 늘려버린 나가마키(長捲)라는 무기로 변화했는데, 장도도 똑같은 변화를 겪었다.

(1766년 청나라 황조예기도식에 수록된 녹영의 5가지 도. 출처)


두번째 변화는 길이가 총 5가지로 분화되었다는 점이다. 가장 큰 장인대도는 163cm, 가장 작은 배도는 103cm로 폴암에서 일반 도검 수준까지 다양해졌으며, 녹영 전체를 일본도에서 유래한 도검이 장악하게 되었다. 다섯가지 도검은 다음과 같다. 환산에는 청나라 척(32cm)를 사용하였다.


  • 참마도(斬馬刀) - 전체길이 4척 8촌(153.6cm) 칼날길이 3척 4촌(108.8cm) 칼날너비 1촌 5분(48mm) 가드 두께 2분(6.4mm) 손잡이 길이 1척 3촌 8분(44.16cm)이며 나무로 만들고 붉은색 혹은 노란색 가죽으로 감싼다. 철제 도장구에 파란색 끈을 단다. 칼집은 3척5촌(112cm)에 나무로 만들고 가죽으로 싸며 주홍색으로 칠하고 철제 도장구를 쓴다.




  • 장인대도(長刃大刀) - 전체길이 5척1촌(163.2cm), 칼날길이 3척3촌(105.6cm), 칼날너비 1촌5분(48mm), 손잡이 길이 1척8촌(57.6cm), 칼집은 3척4촌(108.8cm)에 옻칠을 한다. 다른 사항은 참마도와 같다.




  • 쌍수대도(雙手帶刀) - 전체길이 4척2촌2분(135.04cm), 칼날길이 2척7촌(86.4cm), 칼날너비 1촌5분(48mm), 가드두께 2분(6.4mm), 손잡이 길이 1척5촌(48cm)에 나무로 만들고 빨간색과 파란색 끈으로 꼬아 감는다. 철제 도장구를 쓴다. 칼집은 2척8촌(89.6cm) 길이에 나무로 만들고 녹색 가죽으로 감싸며 철제 도장구를 쓴다.




  • 배도(背刀) - 전체길이 3척2촌2분(103.04cm), 칼날길이 2척3촌(73.6cm), 칼날너비 1촌3분(41.6cm), 가드 두께는 2분(6.4mm), 손잡이 길이는 8촌(25.6cm)에 나무로 만들고 녹색 끈으로 꼬아서 감는다. 철제 도장구를 쓰고 파란색 끈을 단다. 칼집은 2척4촌(76.8cm) 길이에 나무로 만들고 주황색으로 칠한다. 철제 도장구를 쓴다.




  • 와도(窩刀) - 전체길이 3척4촌2분(109.44cm), 칼날길이 2척6촌(83.2cm), 칼날너비 1촌(32mm), 가드두께 2분(6.4mm), 손잡이 길이는 8촌(25.6cm)이고 나무로 만들며 등나무로 감거나 가죽끈으로 꼬아서 감고 녹색으로 칠한다. 철제 도장구를 쓰고 파란색 끈을 단다. 칼집은 2척7촌(86.4cm) 길이에 나무로 만들고 녹색 가죽으로 덮고 철제 도장구를 쓴다.


그중에서 손잡이가 늘어난 기존 장도의 후계로 길이가 맞는 것은 녹영쌍수대도이다. 날길이 86.4cm에 손잡이 48cm로, 거의 정확하게 기존 장도 스펙에서 날길이를 대략 20cm정도 빼고 손잡이를 그만큼 늘린(31->48cm) 정도다.

배도와 와도는 길이가 비슷하지만 와도는 좀더 긴 대신 칼날이 좁아 일본도와 유사하고, 배도는 칼날이 조금 짧은 대신 칼날이 넓은 베기에 더 특화된 도검이다. 와도는 왜도와 중국어 발음이 같은 것으로 일종의 말장난이다.

이 녹영의 대도들은 장파도(長把刀, 긴 손잡이 칼)이라는 이름으로도 지칭되며 청나라 말기까지 사용되었고, 원앙진의 개량형에서도 진의 후위를 지키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1853년 방수집성에 수록된 원앙진 3개를 합체시킨 오오합대방진. 후방에 장파도가 보인다.)


군대에서의 장도는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며, 훗날 민국시대의 묘도(苗刀)의 제정에 어느정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군사 도법의 평가

기효신서와 무예제보, 단도법선, 수비록 단도편 등을 통해 재구성한 장도의 투로는 어떤 일본 유파의 기법을 계승하거나 한 것이 아니라, 왜구들의 빠르고 강한 기세와 연속공격이라는 전술의 특징을 카게류 기법, 노다치의 파지법을 더하여 나름대로 표현한 것이었다. 특히 막고 치고 하는 검술적인 기예보다는 연속공격으로 상대방이 감히 공격도 못하게 몰아붙여야 평가에서 상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신유도법의 이념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어나 기예가 없이 무작정 공격만 죽어라 하는 도법은 아니다. 하단을 좌우로 막는 향좌/향우방적, 칼등에 손을 대어 강한 힘으로 상단을 막는 향상방적, 찌르기를 막아내는 초퇴/삼퇴방적, 올려베기를 이용한 방어법인 재퇴방적까지 총 다섯가지의 방어법이 있다.

공격은 좌/우 올려베기와 정면-좌/우 내려베기, 찌르기로 총 다섯가지지만, 공격이라고 해서 무작정 방어 없이 치는 것이 아니다. 장도 투로 삽화에서 보여지는 대로 정면 중간까지만 내려베면 적과 동시에 베었을 때 무작정 끝까지 베는 자의 칼날은 모조리 튕겨나간다. 상대가 멀리 있어도 칼끝이 노리고 있으니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 상대가 베어도 머리 옆으로 돌리면서 내려치면 내려베기를 칼등으로 걸어 치우며 내려치거나, 받아흘리고 내려치게 된다. 공격으로 이어지는 모든 동작이 방어가 된다.

올려베기도 마찬가지로 올려베면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고 다시 올려베면서 상대를 베고 지나가는 것은 전 세계에 다 있는 검술로써 너무 평범해서 더이상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 기술이다.

당연히 올려베기와 내려베기 모두 멀리서부터 연속으로 날리면서 상대방이 시퍼렇게 번뜩이는 칼날 앞에 겁을 먹고 주저앉게 만드는 것도 할 수 있다. 한가지 동작으로 여러가지가 되는 것이 바로 무술의 특징이다.

단 이런 세세한 분류는 군사 도법에서는 따로 강조되지 않았는데, 병사들 대다수가 문맹이고 너무 복잡해지면 제대로 배우지도 못할 것이 뻔했으므로 최대한 단순화 간략화시켜서 교육시킴으로써 훈련받은 동작대로만 싸우면 알아서 공격도 방어도 자연스레 하게 될 것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실력이 늘고 대련을 하다 보면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깨우치게 되고, 깨우치지 못한 사람에게 아무리 비전과 기술을 가르쳐줘도 알아듣지도 못하고 머리만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척계광 군대의 신유도법은 점차 전역자들을 통해 민간으로 유출되기 시작하며, 신유도법의 세세한 분류와 기법의 체계화는 민간에서 정립된 단도법(單刀法, 칼 하나만 쓰는 도법이라는 뜻)을 통해 이뤄지기 시작한다.


덧글

  • 모아김 2020/06/08 15:28 # 답글

    1. 오오 훌륭한 글입네다~

    그러면 검경-무예도보통지 체계, 단도법선-무비요략 체계, 수비록의 아미창(사가, 마가, 양가)-쌍수검 체계(조선세법과 비슷)의 차이점들을 세밀하게 다루실 예정인 것입니까?

    이게 무예도보통지는 검경과 양가창(아미창)이 병렬되어있지만 저는 검경 형초장검술을 베이스로 해서 사가, 마가, 양가창이 통합된게 무예도통지 명군 제식으로 봅니다.

    또 오수의 수비록에서 좌문, 우문, 중문을 용, 호랑이, 뱀에 비유하는 게 조선세법의 봉두세, 호혈세, 등교세랑 같은거 보면 그냥 감砍법만 있던 단도18세에 아미창이랑 조선세법으로 바인딩-와인딩을 더한게 어양노인의 검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종유랑 정자이가 소림계열의 기법으로 전체를 통괄하려고 하는 체계를 만들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유대유-척계광의 체계를 기반으로 성립했고, 그래서 기풍의 차이는 좀 있지만 그런 뉘앙스의 차이는 무기의 차이나 무술가 개인의 선호에서 유래하는 것이고, 전체가 하나의 체계였다로 보는게 맞지 않나 싶으기도 합니다.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ongsword&no=11070

    전에 롱갤에 올렸던 황백가에게 무당남파 내가권을 전한 왕정남의 활쏘기도 이거저거 비교해보면 고영의 '무경사학정종'의 베이스가 되는 무비요략에 실린 궁술이랑 다를바 없더군요.

    명군 제식 무예체계로 살수, 사수, 포수가 다 있고 현대에도 써먹을 수 있을 듯한 그런 느낌적인 느낌.



    2.
    http://www.youtube.com/watch?v=YehggRhIWhk
    http://www.youtube.com/watch?v=MjMgl4D49ug

    우승혜가 주인공으로 나온 '황하대협'인데 여기 어딘가에 아마 그 '무려 편곤과 합체된 종류의 당파'로 편곤+당파 비슷한 거랑 우승혜의 쌍수검이랑 붙는 거 있었는데 어디였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아, 두번째 링크 16분 20초부터 입니다. 의외로 무예도보통지 편곤이나 유가곤 투로의 기법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http://pds18.egloos.com/pds/202005/16/02/c0063102_5ebeddaa30e10.png

    우승혜가 소오강호 드라마에서 풍청양으로 나왔는데 진짜 배역 잘 뽑혔다 싶네요. 하지만 우승혜 검술은 소오강호건 소림사건 간에 황하대협이 제일 죽입니다.



    3. ... 유튜브에서 말씀하신 체첸, 다게스탄의 동네 싸움 보고 지려 버렸슴다(...).

    http://www.youtube.com/watch?v=PnQhK5VcZMo

    http://www.youtube.com/watch?v=djnxHMjhWZk

    대통령부터가 평소에 깽값 좀 내본 솜씨...

    체체냐! 체체냐!

    ‘왕이 미치면 캅카스로 전쟁하러 간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http://sonnet.egloos.com/4588352

    이런 용맹은 무덕(...)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풍이 발달해 있기 때문이군요! 스고이요! 체체냐!

    이런 거 보면 ‘교련 부활’이나 ‘무도 정규과목화’ 잘하면 국민 건강이나 전투력 향상에 되게 좋겠다 싶네요.


    4.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rmor&no=2142

    프로아사르 연대기 삽화보면 랜스에 의외로 손보호하는 가드가 없네요. 비리공무원네 책에 나온 마상창술 보니까 딱히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기법들과 아주 따로놀지도 않던데 그래도 가드가 있어서 구분이 되는 편인데 아예 이렇게 가드까지 없어지면이러면 석경암전에 나온 마상창, 마삭馬槊이나 다를바 없는 것 같습니다.
  • 아부사이프 2020/06/08 15:30 #

    그정도는 아니고 이제 민간 신유도법의 체계를 나열 설명하고 다시 신유도법의 장점으로 배우기 쉽고 무비요략의 여러 기법들을 보여주면서 1.5m전후의 길고 무거운 병기들이 모두 신유도법으로 쓸 수 있어 확장성이 높다는 점을 장점으로 들고,

    다시 신유도법의 문제점과 신유도법을 보완하기 위한 시도였던 본국검 왕오공태극십삼도? 그리고 오수의 쌍수검에 대한 언급 등을 통해서 결국 신유도법+조선세법으로 문제점을 보완하려 했던 각각의 시도를 짚는 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유도법이 단순하고 공격적이며 배우기 쉽고 합리적인 건 좋은데, 찬이 없고 동작이 커서 1대1에서 왠만큼 배운 사람만 만나도 쉽게 털려버리는 문제가 있더군요. 오수가 이걸 열심히 배우면 왜검과는 다를지언정 중국의 화법은 모두 세번이나 물러날 것이다 라고 한 것이라던가, 왜검의 정법에 미치지 못한다 등의 언급을 보면 실전적이긴 한데 진짜 일본도법만큼 뛰어나진 않다 라는 평가이고, 작년 PP토너먼트에 참여한 세키로좌의 평가도 초보 상대하기엔 좋은 검술인것 같다 라는 평이었습니다. 게다가 거대 장도 전용이라 평범한 사이즈의 도검에는 빈틈이 너무 심하게 나오고요.

    비슷한 포지션인 세이버는 17세기부터 이미 찬격=7번베기와 타돌=런지가 있어서 그점을 어느정도 보완한 상태였고, 중국&조선의 무인들은 여기에 찬, 발초심사, 백사롱풍 등의 조선세법 내지는 명나라 다른 무술들의 요소를 도입해서 더 작고 세밀한 동작들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보완하려 한 것 같습니다. 그게 각자 따로따로 진행된 것 같고 조선측의 결과물은 본국검이었던 것 같고요.

    그다음에는 왜검 정리를 생각하는데 이건 뭐 금방 될 것 같네요. 대체적으로 신카게류 베이스가 강하고 거기에 운홍류, 일도류, 그리고 격검에서 나타난 타돌이 있다는 점만 하면 될거같고요.

    전 통합체계였다고 보진 않는편입니다. 용어나 이치는 대부분 통하고 기술도 비슷비슷하긴한데, 그렇다고 통합이라고 보기에는 서로간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거든요. 유대유는 형초장검 사이즈의 1.5m정도 되는 봉을 베이스로 사용하며 그 무술이 당파로 확장되어 있고, 정자이의 무비요략에서 음수차를 설명하는 걸 보면 딱 검경 방식의 당파 운용입니다. 1.8m정도로 짧고 오른손 앞으로 운영하는걸 언급하죠.

    반대로 이화창은 왼손이 앞이고 창이 길며 긴 찌르기와 빠른 신법을 주특기로 하고요. 곤법천종도 검경과는 대조되고 또 헌화세 같이 통하는 용어가 있는가 하면 대전 소전 란 같이 용어는 같이쓰는데 실제 뉘앙스는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중국무술가들이 명나라 무술 복원에 뛰어들었다가 뭔가 막히는 이유가 이거 때문인것 같더군요.

    그것과는 별개로 확실히 기효신서의 이념, 전술, 체계만 잘 따라해도 어지간한 소요사태에서 쉽게 죽을일은 없다고 봅니다. 무술하는 사람들이 자기 무기술로 뭐든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기효신서는 투사무기와 백병전 무기 양립하는 체제를 보여줘서 생각을 넓게 하게 해주지요. 단도법선에서도 창이 현란하면 단검 던지고 달려드는 것도 등패의 투창으로 창을 겁먹게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고요. 또 보면 한중일 삼국 모두 어지간하면 표창이나 수리검이 보급되어서 검객이 무조건 검만 쓰는 것도 아닌걸 보면 역시 실전에서 진리는 다 같습니다.

  • 모아김 2020/06/08 18:06 #

    1.
    조선-본국검, 예도총도

    중국-왕오공태극연환십삼도, 장내주무기육서 찬법鑽法(사행단편斜行單鞭)

    일본-직심영류

    시기도 다들 17세기로 비슷하네요.



    2. 역시 아다르고 어다르군요.

    ‘완전하게 하나로 버무려낸 통합체계’였다기 보다는 검경에서 이화창 보법 언급하는 것도 그렇고 7척5촌 짜리 단봉술로서만 운용된 게 아니라 9척7촌짜리 유창이건 뭐건 간에 장창의 술기로도 형초장검 봉술로도 운용되었다는 의미로 봅니다.

    무예도보통지 기창(마가창) 보면 오른손이 앞에 나와있는데 좌우환집으로 바꿔 잡으면서 도는게 잘 나오는 것은 이게 창술과 봉술을 매개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림곤법천종에서 오른손이 앞에 있기도 하고, 왼손이 앞에 있기도 한 것은 유대유-척계광-무예도보통지 제식 체계에서는 불완전했던 아미창법(마가, 사가, 양가창)과 소림곤법의 통합이 점차 완전해지는 것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거기다가 장창법선을 더해서 창법의 본류인 아미창과는 별도로 소림 또한 창법의 정종임을 내세운 것이고요. 근데 뭐 홍전, 홍기가 석경암이었나 정진여에게서 창술배웠으니 그냥 소림도 아미지류라고 봅니다.



    3. 표창이나 수리검 하니까 시라이 토오루는 젓가락에 내공(...), 진공혁기眞空赫機를 담아서 던질 수 있었다고 하지요. 시라이 토오루가 유조라는 수리검 유파도 있구요.

    자기 무기술로 뭐든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 자체야 수비록에 실린 정진여의 아미창법에서 여러 무기를 깨뜨리는 편破諸器篇이나 단도18세에서 창봉술 상대하는 거 나오는 거 보면 그냥 다들 그랬던 것 같습니다.

    왕정남의 ‘내가권법’ 보면 권법 안에 여러 무기술이랑 그거 상대하는 법이 들어있다고 하고요.
  • 모아김 2020/06/08 18:20 #

    4.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ongsword&no=8865&
    왕오공 태극연환십삼도 총론에 나오는 ‘뼈로서 칼을 제어하고, 무거운 칼로써 힘이 따라오게 하는 도법’이라는 게 내공內功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장내주무기서에서 짤막하게 나오는 거 보면 여기도 내공內功이 있습니다.

    劈提崩打任火藥手足膀胯如霎烟,
    쪼개고, 들어올리고, 내지르고, 치는 것이 화약과 같고, 손발, 어깨, 가랑이는 연기구름과 같다.

    過此便是蓬瀛客三而一亏一而三
    이 경지를 넘으면 봉래도의 신선과 같으니 셋이 하나이며, 하나는 셋이다.


    →劈,提,崩,打는 창법, 검법 다 있습니다. 삼첨상조로 자세를 바르게 하고 육합의 일치에 따른 심기력합일의 위력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치바 슈사쿠도 기검체 일치를 화약에 비유했습니다.

    ‘무인과 거문고’보면 발력할 때 등, 독맥을 타고 힘이 나오는 것을 몸에 불이 붙어서 상대에게 옮겨붙는다 어쩌고 저쩌고 표현한 것이랑 맥이 같은 겁니다.

    근데 이게 또 유대유 검경劍經의 개서并序에서 인체 관절 굽혔다 폈다 하는거 언급하는 거 보면 이것도 은은하게 내공內功이야기한 것이거든요.

    총결 보더라도 이거랑 관련지어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總訣歌 : 陰陽 要轉, 兩手 要直. 前脚要曲, 後脚要直. 一打一揭, 遍身着力. 步步進前, 天下無敵.

    음양수 바꾸면서 똑바로 뻗어내면서 앞, 뒷발 허실분명하면서 경의 축발과 관절의 개합이 탁탁 맞아떨어지면서 투로를 반복하면서 몸에 응어리 없이 쭉쭉 뻗는 것을 "온몸에 힘이 두루 미치며 걸음걸음마다 앞으로 나아가매 천하무적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주역으로 팔괘, 오행을 이야기한 것은 내공사경內功四經의 내공경內功經, 납괘경納卦經이랑 통하는 부분입니다.

    ‘용의 두루마기龍之卷’를 비롯해서 직심영류 전서 보면 내공內功이 있고요.

    분사습分私習보면 아마 유가곤이나 양가창의 대타투로와 신유도법 독련투로를 분카이해서 춘하추동의 리듬으로 재조합해서 직심영류 법정法定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의외로 심법으로 봐도 일관되게 소림파 계열로 한, 중, 일 삼국의 검술이 통합니다.

    소병법-대병법의 연계도 그렇고 참 검경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5. 소림곤법천종에서 곤법이 무술의 근본이 된다고 하는 부분 보니까 권법이랑 무기술 연계하는데 제법 힌트가 되네요.



    6. 저 효종실록에 나오는 코끼리병있잖습니까... 왜 예전에는 저 코끼리를 주목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출경입필도出警入跸图'에서 코끼리 나오는 거 보고 의장용인줄 알았는데 명나라에서도 실전에서 많이 굴렸네요.

    옛날에 인도여행 갔을때 코끼리 갑옷보여주면서 가이드가 공성이건 야전이건 미사일 플랫폼 겸 학살병기로서 무굴제국에서 제법 유용하게 쓰였다고 하던데 태국, 인도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근세에 이르기까지 썼군요.

    운용만 잘하면 의외로 코끼리는 전쟁에서 쓸모있었던 것 같습니다.
  • 눈팅인 2020/06/08 19:39 # 삭제

    여기 이글루스 길공구님이 번역하신 청병의 개인 기록을 보면 코끼리는 별 활약을 못한듯 합니다 화살을 엄청 얻어맞고도 죽지를 못 해서 산으로 도망쳤다고 나오지오
  • 아부사이프 2020/06/09 11:13 #

    보면 중국도 은근히 중앙아시아, 이란 영향을 많이 받은게 보입니다.
    당나라대 손잡이 꺾인 당대도 유물의 손잡이 양식은 지금 아르메니아 도검에서 그대로 보이고, 명나라 특유의 그 마니카 팔보호대는 중국 친구들이 페르시아 영향으로 추정한다고 하더군요. 투구나 두정갑주는 몽골 양식이고.... 왜구 침탈 이후에는 일본도 양식을 많이 받아들였고요. 은근히 국제 개방적인 면이 있습니다.
  • 정종유 2020/06/08 15:24 # 삭제 답글

    연병실기의 참마도는 폴암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유였나 아님 다른 장수가 폴암을 참마도라고 호칭한 기록이 있고 https://i2.kknews.cc/SIG=3klidrj/ctp-vzntr/prsqqpq58q5143s69q228175rn607457.jpg 여기 四鎮三關誌 에서도 참마도가 묘사됩니다


    실록에서 나오는 대도도 폴암이라고 보구요 명나라 기록에 의거하면 청병이 갑옷을 입고 대도를 휘두른다는 표현이 유사하게 있는데 입관 이전의 청나라가 장도를 운용했는지는 기록이 없지요
  • 아부사이프 2020/06/09 10:55 #

    참마도가 특정병기를 가리키기보다는 그냥 말을 절단할 법한 강력한 무기를 관용적으로 호칭하는 것 같더군요. 정종유는 확실하게 월도같은 무기의 일종으로 참마도를 들고 있는 반면 척계광 군대에서는 월도 계열병기를 도입한 적이 없으니까요. 실록에 나오는 건 갑옷을 입었다는 묘사나 말다리를 베는 묘사로 보아 연병실기에서 보여주는 장도 대 기병 전법과 매우 맞습니다. 그래서 장도로 잘라낸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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