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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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도법 정리 (3) - 신유도법의 민간전승과 체계화 전술적 관점

신유도법의 민간전승과 체계화

본래 화승총병의 호신도법이었던 신유도법은 척계광의 주무대였던 절강성에서 점차 민간에 유출되기 시작했다. 정확한 경로는 알 수 없으나 왜구 침략의 기억이 생생한 절강성에서 가장 실전적인 일본의 도법이라고 알려진 신유도법을 배우고자 하는 수요가 신유도법을 배운 척가군의 전역자들과 맞아떨어졌을 것이라는 정황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종유의 단도법선

이렇게 민간에 유출된 신유도법을 책으로 남긴 사람이 바로 정충두(程冲斗), 자는 종유(字 宗猷)라 하여 흔히 정종유라고 부르는 무술가였다. 그는 서생이었지만 전국을 유랑하며 무술을 찾아 배웠고 결국 소림사의 곤법을 배워 정리한 <소림곤법천종,少林棍法闡宗>을 남겨 당시에 이미 대 인기를 얻었으며, 이화창법을 정리한 <장창법선,長鎗法選> 그리고 민간에서 단도술(單刀術)이라고 불리던 신유도법을 정리한 <단도법선,單刀法選> 등을 남겼다.

정종유가 만난 신유도법의 스승들은 모두 세명이었는데, 첫번째는 절강성의 유운봉(劉雲峯)이었다. 그는 왜인들의 진전을 얻었다고 자처했으며 정종유에게 사실상 신유도법의 거의 대부분을 전수한다. 두번째는 호주(亳州)의 곽오도(郭五刀)라는 사람이었는데 강남과 강북에서 도법으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하지만 직접 가서 배워보니 그보다 유운봉이 묘하고 탁월한 점이 더 많았다고 한다. 세번째는 간원(艮元)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유운봉의 도법을 전수했다고 하며 이때 세법과 기술은 있지만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신유도법의 기술체계는 이렇게 정종유가 유운봉에게서 배울 때까지 명확하게 체계화되어있지 않았다. 근본이 되는 여러 동작들과 기술들만 배운 상태에서 이렇게 오면 이렇게 막고 이렇게 잡으면 된다 식으로 전해졌던 것으로 보이며, 신유도법의 동작과 기술을 명나라 무술계의 단어로 구분해놓은 것은 정종유가 한 것이었다. 그는 배운 기술들을 22세와 12세로 나누고 다시 이것을 연습하게 만든 투로인 총서단도1로를 만들어 비로소 체계화시켰다.

정종유 덕분에 비로소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신유도법의 모든 것들이 드러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종유 체계로 구분된 신유도법의 각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공격 관련 용어
벽(劈) - 쪼개기 라는 뜻. 수직머리베기를 의미한다.
감(砍) - 베기 라는 뜻. 대각선 내려베기를 의미한다.
횡감(橫砍) - 수평베기. 베기라는 뜻의 감에 옆을 의미하는 횡을 덧붙였다.
료(撩) - 돋우다 라는 뜻. 올려베기를 의미한다.
삭(削) - 깎는다 라는 뜻. 상대의 몸에 대고 썰어버리거나, 상대의 무기를 아래로 쓸어내리는 것 모두 깎는다고 표현한다.
자(刺) - 찌르기 라는 뜻.
찰(劄) - 찌르기. 창이 찌르는 것을 찰이라고 따로 부른다.

방어, 운용 관련 용어
단(單) - 한손으로 칼을 쓰는 것. 한손으로 찌르면 단자(單刺), 한손으로 올려베면 단요(單撩) 등 각 단어에 단(單)이라는 말이 붙는다.
격(格) - 다양한 뜻이 있으나 단도법선에서는 막는다 라는 뜻으로 쓰인다. 칼을 들이대 공격을 막아내는 것.
란(攔) - 왼쪽으로 휘감아 내리는 것
나(挐) - 오른쪽으로 휘감아 내리는 것
애(挨) - 밀치기 라는 뜻. 상대 무기나 사람을 전방으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
추(推) - 밀어내다 라는 뜻. 상대 무기를 내 칼끝이 위로 손잡이가 아래로 간 상태에서 밀어내는 것.
교(攪) - 흔들기, 휘젓기 라는 뜻. 칼끝이 땅으로 가게 뒤집어 상대 공격을 밀어내며 흘리는 기법이다.
제(提) - 끌어당기다 라는 뜻. 상대가 공격해올 때 상대 공격을 밀어내면서 칼을 약간 뒤로 보내는 것을 끌어당긴다 라고 표현한다.
구(勾) - 갈고리 정도의 의미. 칼등으로 걸어서 치우거나 쳐내는 것을 말한다.
고(靠) - 기대다 라는 뜻. 상대 무기나 사람에 들이대 붙인 것을 의미한다. 경고(硬靠)는 강하고 단단하게 밀어낸 상태를 말하는 것.
개(開) - 열다 라는 뜻. 상대의 무기를 치워내서 공격할 수 있는 틈을 열어버린 것.

보법 관련 용어
전보(顛步) - 다리를 앞으로 살짝 굽히고 몸을 기울이는 것.
전보(剪步) - 발이 교차되게 나아가는 것.
진보(進步) - 앞으로 가는 것.
퇴보(退步) - 뒤로 물러나는 것.
투보(偷步) - 발을 다른 발 뒤로 보내는 것. 약투보는 다리가 서로 꼬이게 서는 정도, 투보는 아예 몸을 돌리며 크게 발을 보낸다.
요보(拗步) - 팔과 반대방향의 발이 나가는 것.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벨 때 왼발이 나가거나 하면서 허리가 꼬인다.
사입(斜入) - 대각선으로 나가는 것.

단도법선 22세
1. 니아발도세你我拔刀勢
2. 발도출초세拔刀出鞘勢
3. 매두도세埋頭刀勢
4. 입동도세入洞刀勢
5. 단요도세單撩刀勢
6. 요감도세腰砍刀勢
7. 우독립도세右獨立刀勢
8. 좌독립도세左獨立刀勢
9. 좌제요도세左提撩刀勢
10.요보도세抝步刀勢
11.저간도세低看刀勢
12.우제요도세右提撩刀勢
13.외간도세外看刀勢
14.상궁도세上弓刀勢
15.좌정슬도세左定膝刀勢
16.우정슬도세右定膝刀勢
17.조천도세朝天刀勢
18.영추도세迎推刀勢
19.도배격철기세刀背格鐵器勢
20.장도세藏刀勢
21.비도세飛刀勢
22.수도입초세收刀入鞘勢

속도세 12세
1. 대도세帶刀勢
2. 출도세出刀勢
3. 압도세壓刀勢
4. 주도접도세丟刀接刀勢
5. 안호도세按虎刀勢
6. 배감도세背砍刀勢
7. 저삽도세低插刀勢
8. 제단도세提單刀勢
9. 단자도세單刺刀勢
10.담견도세擔肩刀勢
11.사삭도세斜削刀勢
12.수도세收刀勢

투로 총서단도1로

굉장히 복잡해 보이지만 근본적인 움직임은 매우 단순하다.

칼끝으로 상대를 겨누며 찌르기를 좌우로 휘감거나, 좌우로 밀어낸다. 그리고 찔러버린다.

검을 돌리며 상대의 베기나 찌르기를 밀어내거나 흘리거나 칼등으로 걸어 치운다(구) 그러면서 그대로 회전을 멈추지 않고 내려 베거나 눌러 깎아버린다.

올려베기로 상대 공격을 밀쳐내며 다음 올려베기로 바로 베어버린다.

필요하면 한손으로 붕붕 휘둘러 길게 후려치고 찔러버린다.

상대가 현란한 기술을 펼쳐 도저히 들어갈 수 없다면 단검을 꺼내어 던지고, 당황할때 단숨에 치고 들어간다.

상대가 철봉 같은 무기를 들고 오면 칼날이 심하게 망가지기 때문에 뒤집어 잡고 칼등으로 맞서 싸운다.

이 기술들은 모두 기효신서 장도 투로에서 보여주는 움직임 그대로이며, 특히 단도법선 22세는 근본적으로 기효신서 장도 투로에서 보여주는 기법과 대부분 통한다. 칼끝으로 상대를 겨누며 이뤄지는 휘감기나 누르기는 지검대적에서 파생되는 것이고, 칼을 돌리며 칼끝이 아래로 가게 세워 흘리는 것은 지검대적에서 향좌/향우방적으로 넘어갈 때 자연스레 이뤄진다. 왼손이나 왼손목으로 칼등을 받치며 막는 것은 향상방적과 같고, 그렇게 막은 후 다시 칼을 잡으며 내려베는 것은 향상방적에서 향전격적으로 넘어가는 것과 같다. 올려베기를 연속으로 하면서 나아가는 것은 휘검향적과 같다. 상궁도세는 초퇴방적과 같고, 저간도세는 삼퇴방적과 같다.

특히 창이 현란하게 움직여 도저히 공격할 틈이 보이지 않는다면 단검을 던져 빈틈을 만들어 달려드는 것은, 기효신서에서 등패수가 창수가 현란하게 움직여 빈틈이 보이지 않을 때 표창(1.49m의 투창)을 던져 막게 만든 다음 그 틈을 타 질주하여 근접전을 강요하는 전술과 완전히 똑같다.

세세하게 구분하고 이름붙인 것이 정종유 자신이었고 배울 때에는 따로 이름이 없었다는 점이나, 기효신서에서 나타나는 표준 장도 체계가 매우 단순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처음부터 체계화가 된 것이 아니라 장도술을 배우고 훈련하던 병사들이 책에서 묘사되지 않았지만 각 세법에서 수행하던 동작 + 그 동작들을 기반으로 연습과 대련, 실전을 반복하다가 얻은 노하우를 통해 확장된 기술이 바로 22세의 기반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단 상대방의 무기나 몸을 썰어내리는 세(洗), 삭(削)의 기법은 원래 군사 도법이던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검술이나 다른 민간무술에서 도입된 것으로 추측된다. 후대의 창술가 오수가 정종유의 작삭(斫削, 잘라깎기-베어서 눌러 쓸어내리기)이라 하여 그의 기술로 언급하며, 도법처럼 쪼개고 자르기만 쓴다면 어양노검선(오수에게 검술을 지도한 노사부)을 웃겨 죽일 것(若唯砍斫如刀法,笑殺漁陽老劍仙.)이라고 언급한 바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속도세12세는 22세와 풍격이 상당히 다른 것으로 보아 이것이 정종유가 호주의 곽오도에게 배운 체계가 아닌가 추측된다. 또한 조선에 넘어간 투로 중에 남병의 장군이었던 참장 낙상지가 가르쳐준 제독검이 기효신서 장도 체계의 단어를 공유하고, 배감도세, 사삭도세에서 나오는 투보를 이용한 몸의 회전과 수평베기와 제독검의 향우/향좌격적의 기술이 유사하여 신유도법 제2로 → 제독검 투로 → 민간으로 넘어가 안휘성 호주의 곽오도에게서 정종유로 전수 → 속도세 12세로 정립된 것으로 보여진다. 또 민간무술의 움직임과 어느정도 융합된 모습이 투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보법 등에서 보여진다.

이후 정자이(程子頤)가 쓴 무비요략에서는 정종유의 유산인 단도법선을 이용하여 월도, 낭아곤, 박도, 부월, 쌍수편까지 운영하는 것을 실어놓았고 각각 개별 투로까지 준비했다.




이것을 통해 정종유의 단도법선은 약 1.4~1.8m정도의 무겁고 긴 무기라면 무엇이든 쓸 수 있는 체계임을 역설하고 보편 무기술로써의 확장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단 쌍수편간은 흔한 무기가 아니고, 낭아곤은 기존의 낭아봉과 달리 정자이가 새로 만든 것이며, 부월은 자칫 자루가 상대 무기에 부딪치면 허망하게 부러질 수 있기 때문에 신유도법의 방식대로 쓰기에는 부적합하다. 여러 무기를 쓸 수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조금 억지를 부린 면이 있으나, 쌍수편간이나 낭아곤 같은 병기들은 신유도법에 적합하기는 하다.

오수의 수비록 - 간략화 체계

정종유는 장도술의 모든 기술을 수집하고 이것을 이름을 붙여 체계화시켰고, 정종유의 장창법선, 소림곤법천종, 단도법선이 굉장한 베스트셀러가 되었기 때문에 널리 퍼질 수 있었다. 그러나 세법이 너무 많이 나뉘어져 복잡하다고 느꼈는지 명말 청초의 창술가 오수는 자신의 저서 수비록의 단도편에서 다시 간략화시켰다. 기본기를 좌우 내려베기, 좌우 올려베기, 좌우 깎기, 좌우 윤법의 8종류로 정리하고 세법도 기존의 34세에서 18세로 줄였다.

기본 6법
상감(上砍) - 모든 내려베기 좌,우
하감(下砍) - 모든 올려베기 좌,우
삭(削) - 모든 썰기 좌,우. 밀치기와 누르기 등도 썰기에 통합시켰다.
윤법(閏法) - 요보(拗步) 로 행하는 모든 것 좌,우. 윤법은 숫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르게는 위/아래/왼쪽/오른쪽/베고/썰고/나아가고/물러난다. 두가지의 윤법이 있으며 실제 쓰이는 것은 이 8가지 세법 뿐이고 나머지 10여세는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기도 했다.

18세
사제세斜提勢 - 왼쪽 내려베기가 여기서 나온다.
조천세朝天勢 - 오른쪽 내려베기가 여기서 나온다.
좌요도세左撩刀勢 - 왼쪽 올려베기가 여기서 나온다.
우요도세右撩刀勢 - 오른쪽 올려베기가 여기서 나온다.
좌정슬세左定膝勢 - 왼쪽 깎기가 여기서 나온다.
우정슬세右定膝勢 - 오른쪽 깎기가 여기서 나온다.
요보삭세拗步削勢 - 윤법이 여기에 있다.
요보료세拗步撩勢
좌독립식左獨立式 - 조천세의 파생
저간세低看勢 - 좌정슬세의 파생
상궁세上弓勢, 외간세外看勢 - 우정슬세의 파생
안호세按虎勢, 요보단요도세拗步單撩刀勢 - 좌요도세의 파생
입동세入洞勢, 담견세擔肩勢, 단제도세單提刀勢, 단요도세單撩刀勢, - 우요도세의 파생

기본기가 6가지+윤법 2가지로 정리되어 깔끔해졌을 뿐만 아니라 나머지 18세도 요보료세까지의 8가지 세법은 단 한가지 기술만 나오고, 나머지 10가지 세법도 기본8세의 파생형일 뿐이라고 단언함으로써 매우 간략화되었다.

(오수의 체계를 기반으로 한 장도술 영상)


정종유는 장도 투로에서 파생된 기법과 다른 투로의 기법을 모두 모아 정리하여 기법은 풍부해졌으나 어느정도 복잡해졌다면, 오수는 이것들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가장 핵심이 되는 기법만을 내세움으로써 다시 기효신서의 본질로 되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신유도법의 장단점과 보완 시도


신유도법은 왜인들의 실전 도법이라는 평에 힘입어 조선과 중국에서 크게 성공했지만 실제로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며 조선, 중국에서는 이 도법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장점
신유도법의 장점은 배우기가 쉽다는 것이다. 기효신서 시점에서는 향좌/향우/향상/초퇴/재퇴/삼퇴방적이라는 5가지의 방어자세와 더불어 기교보다는 빠르게 이어지는 연속공격을 올려베기, 내려베기, 그리고 내려베고 찌르기로 이어나가 상대가 반격도 못하게 만들어 이긴다는 심플한 기법을 제시했고,

단도법선에서 장도를 배운 병사들의 노하우와 민간무술이 어느정도 융합된 제독검의 원형쯤 되는 투로의 기법을 모두 수집하여 어느정도 번잡해졌으나 근본적인 움직임은 기효신서에서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오수의 수비록에서는 다시 번잡한 기법을 모두 삭제하고 신유도법의 정수만 남김으로써 배울 것이 심플해졌다.

신유도법의 검리는 22세를 통해 확실해졌는데, 높고 낮은 좌우의 검의 회전을 이용해 방어와 공격이 부드럽게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향좌방적으로 막은 후 그대로 돌려서 내려치거나, 향좌방적으로 변하면서 칼등으로 상대 칼을 쳐내고 돌려서 내려치는 것을 각각 높고 낮은 회전으로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올려베기 회전으로 상대를 압박하거나, 공격을 막아내고 바로 다시 올려베며 치고 나갈 수도 있다.

상대의 칼을 베면서 눌러버릴 수도 있고 칼날 앞쪽으로 휘감아버릴 수도 있고 칼날 손잡이에 가까운 쪽으로 옆으로 밀어낼 수도 있으며 바로 찔러버리거나 돌려서 베어버릴 수도 있다. 간단한 동작으로 최고의 효율을 내며 금방 배워 누구든 싸울 수 있는 병사가 된다. 이런 점 때문에 중국과 조선에서 군사 도법으로 채용됨은 물론, 중국에서는 민간 무술계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단점
문제는 동작이 간단하고 큰 동작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큰 동작은 강한 파괴력과 기세를 뿜어내어 어설픈 자들은 막다가 눌려서 맞아죽거나 공포에 질려 지리고 맞아죽고 공격하는 자에게는 기세를 탈 수 있게 해주고 웅장한 마음으로 두려움 없이 나아가게 해줄 수 있다.

문제는 제대로 방어하고 공포에 삼켜지지 않으며 간결하면서 강하게 무력화시킬 줄 아는 진보된 검술, 진보된 검객 앞에서는 틈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신유도법은 검을 회전시키며 쳐내고 들어가는 것이 기본인데, 숙련자는 쳐내지면 그 반동으로 자기 칼을 더 빨리 돌려서 쳐버리거나, 아래로 내렸다가 올리면서 알아서 칼을 치워준 거나 다름없는 상대의 몸을 찔러버린다.

상대가 베기를 위해 장도를 회전시킬 때 찌르듯이 칼을 살짝 들어올려 머리를 쳐서 상대가 스턴에 걸리면 장도가 아니라 뭘 들었든간에 당하는 수밖에 없다.

거대한 장도를 들었다면 어느정도 빈틈이 있어도 장도의 중량과 길이가 단점을 상쇄해준다. 그러나 신유도법이 평범한 사이즈의 도검에 적용되면, 이 단점이 엄청난 결함이 되어버린다. 처음부터 결함이 있는 잘못된 검술을 도입하게 되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며, 장도 투로에 한정하면 공격이 올려베기와 내려베기, 찌르기 뿐이라 보다 풍부한 전투술을 원하는 군인, 검객의 수요도 제대로 충족시켜주기 힘들다.

이 때문에 결함을 보완하려 하는 시도가 이어졌다.

신유도법의 보완 시도

중국의 경우
중국에서는 신유도법의 체계 아래 부족한 점들을 검술에서 들여와 보완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오수의 수비록에서는 도법에서는 원래 자르고 쪼개고 칼등으로 걸어내리거나 올려베어 들어올리거나 좌우로 막는 기법이 있지만 창을 상대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으므로 정종유의 작삭(斫削, 잘라깎기-베어서 눌러 쓸어내리기), 검술의 점창(粘槍, 창에 칼을 붙여대기)을 사용한다고 했다. (單刀手法向有提下、鉤上、革左革右之類。余以其不能制槍,故皆不取。唯倚劍術斷取衝鬥、砍削粘杆二法用之。수비록 단도수법설)

이에 따르면 칼로 상대 무기나 사람을 썰어내리는 기법은 원래 군사 도법에서는 없었다가, 정종유가 창을 상대하기 위해 추가한 것이고, 여기에 오수는 어양노검선에게 배운 검술의 기법인 상대 무기에 붙여서 타고 들어가는 점(粘, 끈끈함)의 기법을 추가한 것이다.

장내주(萇乃周)의 장씨무기서(萇氏武技書)에서는 도와 검은 원래 쌍검으로 쓰지 않으며, 한자루로 성공하고 싶다면 찬(攒=鑽)이 좋다고 했다.(刀舆劍無雙, 單欲成功卽善攒,) 다음에는 "그중에서도 현묘한 이치가 있냐고 묻는다면, 바로 대각선으로斜行걸으며 홀 채찍을 내지르는 것, 단편單鞭이니 만가지 기술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기술이다."(問其中玄妙理仍是斜行與單鞭萬殊一本,) 라고 했다. 단편은 찬과 같은 것이며 검도의 작은머리, 세이버의 7번 베기처럼 칼끝이 일직선으로 찌르듯이 쭉 뻗어나가며 치는 기술이다.

즉 항상 칼을 회전시켜야 베기를 할 수 있었던 장도의 약점을 찌르듯이 살짝 들어서 뻗어 치는 찬(鑽), 단편(單鞭)을 추가함으로써 극복한 것이다.

왕오공의 태극연환도법에서는 도법을 13법(벽劈、타打、개磕、찰扎、감砍、선扇、료撩、제提、탁托、로老、눈嫩、지遲、급急、등等)으로 정리하면서 상대 무기에 타고 들어가는 기법인 세(洗)를 더욱 분화시켜서 6가지 법(전缠、활滑、발拔、찰擦、추抽、절截)으로 늘려 세분화시켰다. 여기에 태극연환도법 6가지 기술에서는 흔기, 간수, 체보와 같은 조선세법의 단어가 나타나 당시 참고할 수 있던 유일한 쌍수검술이었던 조선세법의 기술을 일부 참고했을 가능성도 있다. 일부 번역

이를 통해, 본래 군사 도법에는 베기와 찌르기밖에 없었지만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무술가들이 검술의 기법을 도입하여 썰기(削), 붙이기(粘), 찌르듯이 뻗어치기(鑽)를 도입하고 일부는 더 세분화시켜 약점을 없앤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경우
조선에서는 신유도법의 체계를 유지한 상태에서 다른 검술을 합체시키는 시도를 했다.

무예제보번역속집에는 귀순한 일본군인 항왜들의 도법을 수록한 왜검보가 실려있는데, 기본적인 자세를 기효신서 장도에 최대한 맞추되, 장도 단어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자세는 대봉 투로의 자세 이름을 따와 붙이고, 그래도 기존 투로에 비슷한 자세이름이 없으면 만들어서 붙였다.(용나호확, 무검사적 등)



일본 도법을 장도와 대봉 자세에 억지로 우겨넣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실전적이고 도법의 정수를 잘 표현한 좋은 검술이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나중에는 완전히 잊혀지게 된다.

그외에 신유도법을 기본 틀로 조선세법과의 융합을 시도하기도 했다.

조선의 경우 인조 6년(1628년) 처음 등장하는 본국검이 신유도법과 조선세법을 융합한 첫 시도로써 신유도법보다는 조선세법의 비중이 높다. 안자, 백원출동, 발초심사, 직부송서 등의 조선세법 단어들이 확인되며, 한편 금계독립이라는 현대에도 쓰이는 단어도 나타나고 시우상전, 맹호은림 등의 출처불명의 단어들도 나타난다. 신유도법의 간결함 사이사이에 조선세법의 기술을 배치하여 완성도를 높이려는 시도가 보인다.

특이하게도 이 본국검도 무예도보통지 편찬 시점까지 살아남아있기는 했으나, 크게 인기는 없었고 군영에서 인기가 있는 것은 제독검이었다. 또 조선세법과 신유도법의 장점을 융합하기보다는 각자 기법을 섞어서 배치하다 보니 좀 복잡한 감도 없지 않았다.

이후 숙종 대의 무관 김체건이 일본에서 다시 왜검을 도입하거나 조선세법의 변형인 예도가 영조대에 등장하는 등 보다 진보된 검술을 도입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은 원래의 장도 투로와 제독검이었다.

총평

신유도법은 원래 내려베기와 올려베기, 찌르기밖에 없는 단순한 검술이었고 큰동작으로 돌려 치는 것이 강하고 공방의 딜레이를 줄여주기는 했으나 작고 정밀한 기법이 없어 근본적인 약점이 존재했다. 이 문제는 장도가 아닌 평범한 도검을 쓸 때 더욱 심각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이후 민간무술가들이 썰기(삭,削), 붙이기(점,粘), 찌르듯이 뻗어치기(찬,鑽) 등 검술의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되었다. 비록 신유도법은 영활하고 세밀하게 운용하는 검술이라기보다는 단순한 대신 위력적인 도법의 요소를 강하게 가지고 있지만, 두 손으로 쓰기에 가능한 검술 요소의 도입을 통해 배우기 쉽고 실전적인 도법으로써 여전히 큰 가치와 위력을 지닌다. 비록 검술 중의 최강은 아닐지언정 도적은 두렵지 않은(賊不足盡耳) 도법인 것이다.

참고 서적
기효신서 14권본 이승훈 판본(1588)
기효신서 조선본 (1664)
무예제보 (1598)
무예제보번역속집 (1610)
무예도보통지 (1790)
경여잉기(1621)
수비록(1662)
황조예기도식(1766)
왕오공 태극연환도법
방수집성 (1853)
아이슈카게노류 목록(1582)

번역 및 자료제공 : 모아김, 국립민속박물관, 군사편찬연구소, 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 동경국립박물관 영상검색 등

此十八勢,習之精熟,雖未能真合于倭法,而中國花法,皆退三舍矣
"이 18세를 열심히 배우면, 비록 왜인의 법과 같지는 않을지언정
중국의 화법은 모두 세번이나 물러날 것이다."



덧글

  • ㄷㅅㅈㅇㅅ 2020/06/10 12:24 # 삭제 답글

    태극연환도법 하고 장씨무기서의 도검이 쌍수병기인가요?
  • 모아김 2020/06/10 14:34 #

    구체적으로 그림이 없어서 완전히 확증하기가 어렵지만 아마 쌍수라고 생각합니다.

    왕오공태극연환십삼도에서는

    立步執刀式
    발을 세우고, 검을 집는 법식

    ~左右皆顺膝垂执
    왼손, 오른손 모두 무릎을 따라 늘어뜨려서 (도를) 잡는다.
    ~
    라고 나옵니다.

    장씨무기서에서 검술이 간략하게 나마 나오는 조목은 창술이 나오는 조목입니다.

    刀舆劍無雙,
    도와 검은 실전에서는 두 개를 쌍으로 잡지 않는다.

    單欲成功卽善攒,
    외검의 공을 이루고자한다면 찬법攒을 잘 해야한다.

    그래서 단도單刀와 비슷하게 외수로도 쓰지만 주로 창처럼 쌍수로 쓰는 것을 말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하더라도 검결지 비슷하게 폼멜에 붙였다가 뗐다가 하는식으로 얼마든지 외수로도 찬鑽이나 뭐나 다 쓸수 있기 때문에 왕오공태극연환십삼도는 확실한데 장내주무기서는 쌍수검이건 외수검이건 다 가능합니다.

    수비록은 도법이랑 창법안에 점粘결이랑 단도법을 같이 쓰면 검술이라는 느낌으로 어양노인의 검술을 숨긴티를 팍팍 내고 있고, 조선세법이랑 좌,우, 중문의 용어랑 세洗의 용어가 같기 때문에 쌍수검법이었다고 추정할수 있고요.

    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longsword&no=8865&

    비교적 확증할수 있는게 문맥을 봐야 합니다.

    창의 조목을 논하면서 창, 검 모두 사용하는 수직내려베기 벽劈, 올려베기 제提, 찌르기崩, 치기打가 나오면서 청룡헌조세 같은 외수기법보다 양손기법의 비율이 압도적인 와중에 창과 권의 이치로서 검의 이치를 설명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것은 외수보다 쌍수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형초장검=형초장협=형초지방의 손잡이가 긴 쌍수검처럼 딱히 예측에 불과하다고 트집잡을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 ㄷㅅㅈㅇㅅ 2020/06/10 13:55 # 삭제

    예측에 불과하군요 유물로만 따지면 쌍수검과 도의 수가 희귀하니 도법은 몰라도 검법은 애매하군요
  • 아부사이프 2020/06/10 17:47 #

    태극연환도법은 100%확실한데 장씨무기서는 단수검인지 쌍수검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신유도법에 찬(鑽)이 들어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는데 본국검에서 조선세법에서 도입한 찬이 나오니 전혀 문제없지요. 본국검이 기본동작은 신유도법 응용동작은 조선세법으로 이뤄져 있는데 좀 세법이 번잡해서 그렇지 검술면에서는 중국의 개량보다 조금 더 낫습니다. 본국검은 허리도 치니까요.(백원출동 패키지)
  • 모아김 2020/06/10 15:05 # 답글

    1. 일본에서 오가사와라 겐신사이가 신유도법 같은 중국검법이랑 중국창술을 신카게류에 접목시켜서 진신음류眞新陰流를 배운 것은 기록을 보건대 거의 확실한 것 같은데 그 부분은 '신유도법의 민간전승과 체계화'로서 안 다루시는 겁니까?


    2. 중국 무언에서 "사람보기를 지푸라기 처럼 보니 저쩌니~" 하는게 이번에 기사, 기창에서 더미로 추인 芻人을 썼던 것이랑 연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참이나 대타對打 더미로 추인 芻人을 많이 쓰다보니까 생사람을 치고, 베고, 찌르는 것이나 지푸라기 상대로 그러는 것이랑 비슷하게 무감각해졌다는 걸 말하는 것이지 않나 싶네요.
  • 아부사이프 2020/06/10 17:33 #

    검술은 몰라도 신유도법은 불확실하기 때문에 넣는 것이 불가능하지요. 신유도법에는 상산사세 같은 4방향 연타 개념은 없고요. 그냥 올려베기면 올려베기 내려베기면 내려베기 연속만 확인되죠. 그리고 오수가 왜인의 정수에는 미치지 못한다 왜인의 법보단 못하지만 중국의 화법은 블라블라 하는거 보면 오수 활동 시점에는 이미 오가사와라 겐신사이를 비롯해 일본인들이 건너와서 오리지날 도법을 전수하고 있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진짜를 모르는데 신유도법이 일본것보단 못하다 라는 평을 내릴 순 없으니까요. 반면 정종유 때만 해도 신유도법이 진짜 일본도법이라는 것에 의심 자체가 없었죠.그리고 사실 검술이라고 해도 상산사세 말곤 정황증거도 없어서, 그냥 신카게류에 검의 상하좌우 연타 개념을 넣었다 정도 이상은 하기 힘들겁니다. 본전을 이은 것과 기술 한두개 모티브 가져온건 확실히 다르니까요.

    2.충분히 납득갑니다. 살인의 심리학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고요.
  • 모아김 2020/06/10 22:02 #

    3.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 연관성이 명확한 것 같습니다.

    -상산사세常山蛇勢는 검경에 나오는 임염林炎의 그림 ‘좌우래구유박위左右來俱有拍位’입니다. 대당X4로 봉의 끝을 좌우로 바꾸어 잡으면서 도합 4회 키리카에시하는 유가곤 첫 기법의 좌우 연타입니다. 직심영류 용미龍尾의 상산사세常山蛇勢에서 좌우 키리카에시와 기본적으로 동일하지요. 4방향 연타보다는 반동으로 좌우연타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향전격적-향좌일격-향우일격’, ‘향좌방적-향우방적-향상방적’의 란나찰 발력의 흐름은 영검좌우에서 정면베고 좌우 베고 다시 마무리로 정면베기의 흐름을 잇고 있으며, 엔삐, 엔카이의 좌우 키리카에시로 기법을 단순화 하는 것이 단도 18세의 6모법과 유사합니다.

    -신음류나 음류 전서에는 없는 기술이 묘해져서 공묘검功妙劍, 마음이 묘해져서 심묘검心妙劍이라는 것은 단도법선에서 “마음과 수법이 모두 화化해서 담膽과 인식識이 어지러워지지 않으면 바야흐로 가히 묘하다고 말할수 있다.心手俱化,膽識不亂,方可言妙。”라는 구절과 통합니다. 일도류에도 이와 비슷한 의미에서 묘妙가 전해지지만 심묘검, 공묘검은 오가사와라 겐신사이가 발급한 전서에 나오기 때문에 이후에 진신음류 계열이 일도류와 접해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보다 단도법선 계열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오가사와라 겐신사이가 중국에서 배웠다는 ‘다른 사람에게 서로 응하는 가르침人 ニ 相応 ズル 之旨’과 유사한 가르침이 ‘상대의 세를 따르고 상대의 힘을 빌린다順人之勢, 借人之力’, 후발선지後發先至, 구력략과久力略過 신력미발新力未發로 나오며, 직심영류 연속의 형, 공행空行, 功行과 유사한 수련법이 검경에서 나옵니다.

    師父初假意殺來,或打來;我或接著、或挑著,決不宜貪心就進去傷他。待他動,我再或接、或挑,進去傷他。
    사부가 처음에 거짓으로 찔러오거나 혹은 쳐오면, 나는 혹은 붙으면서接 감아막거나著, 혹은 튕기면서挑 감아 막는다. 결코 탐욕貪心으로 나아가 사부를 치려고 해서는 안된다. 사부가 움직이는 것을 기다려서, 나는 다시 혹은 붙거나, 혹은 튕기면서 나아가서 그를 (거짓으로) 해치려고 한다.

    또한 분사습分私習에서 투로 분카이로 개별기술 매도우 연습을 한것도 이와 통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란나찰 발력이랑 참장으로 호흡의 리듬을 익히고, 내공 키우면서 좌우영검으로 엔삐, 엔카이등의 기법을 단순화하고, 분사습分私習에서 분카이하고, 삼학원의 태도를 마개조해서 법정과 죽도형에 이르는 것은 현재 중국과 일본에 남아있는 사료를 보더라도 어떻게 도달했는지 추정이 가는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티브만 따왔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명징하고, 신유도법 간단하니까 단도법선이랑 함께 배우지 않았나 싶습니다.


    4. 병기지장도설兵技指掌图说에서 변정상발辯頂上拔이라고 정수리가 위로 뽑히도록 해라고 두정현, 허령정경 같은 내가권 요결 비스므리하게 활, 조총을 운용하는 게 재미있네요.

    무예도보통지에서도 마보에서 기본기 연습하는 게 그대로 마상 무술의 근본이 되는 것을 보여줬는데 마보에서 좌우개궁하는 것도 마상궁술의 근본이 되는 것을 보여주네요.

    경의 축발을 활에 비유한 거야 손록당도 그렇고 진발과도 이야기했고, 왕정남이 정남사법 등에서 이야기한 것인데 총포의 운용도 비슷하고, 그것도 보병이건 기병이건 비슷하다니...

    목마로 마상재나 체조, 마상무술 기본기 익히는 거나 마보 단련이 상당히 중요한 단련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됩니다.
  • 아부사이프 2020/06/10 23:17 #

    신유도법의 검경의 영향을 받았다 라는건 이전에 무예제보번역속집 왜검보에서 검경 단어를 쓰는 걸 보고 그리 생각했던 것인데 현재는 검경은 신유도법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결론입니다. 그냥 엔삐, 엔카이에 그림 조금 왜구 연무 조금 참고하고 버무리면서 왜구들이 보여주는 기세넘치는 공격적 성향을 자기식으로 이해한 것 같아요. 무예제보번역속집 왜검보는 쓴대로 일본검술을 장도의 자세에 억지로 우겨넣고 그래도 표현 안되는 부분은 대봉 투로에서 따온 것 같고요.

    신유도법 만들고 작업한 당사자들이 생각처럼 어떤 무술적 경지를 생각하고 만들었다 라고 보는게 오히려 함정 같습니다. 최대한 배우기 쉽게, 실전에선 그냥 힘있게 길게 뛰어서 치고 연타 날리는게 더 좋은거니까 방어 잘하는 것보다 공격 날려서 겁먹게 하면 상등급인거보면 알 수 있지요.

    그리고 심묘검 같은 경지야 전세계에서 어느 일이든 익숙해진 다 다다르는 경지고, 기효신서에서 초등이라고 표현하는것이 그 경지니 그런게 있다고 해서 특별히 영향 받았다고 할 건 없습니다.

    겉보기에 기술의 형식이나 그런점이 비슷해야 확실히 영향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 내면적인 부분에서 통한다고 이어졌을 것이다 라고 보기엔 어렵고, 솔직히 신카게류가 신유도법보다 훨씬 뛰어난 도법입니다. 완전 카운터 그 자체고요. 신카게류를 배운 겐신사이가 뭣하러 허접한 도법을 배울까요? 배워도 쌍수검 같은걸 배웠을 겁니다.

    신유도법에서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건 군사도법으로써 배우기 쉽고 빨리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비유하자면 쌍수도를 쓰는 세이버검술입니다. 딱 그정도지 신유도법에서 뭔가를 더 추구할 수도 없고 그 이상이 있다고 봐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 ㅅㄷㅎㄷㅅ 2020/06/10 23:23 # 삭제

    재미있네요 이론이 돌고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에 계획중이신 영상에는 왜 기존 생각을 바꾸셨는지 설명을 해 주시는지요?
  • 모아김 2020/06/11 00:00 #

    신유도법은 아무리 봐도 검경+양가창의 창봉술을 격법擊法, 감법砍法 위주로 도법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봉술이 좀더 길어져서 창술로 쓰면 세洗랑 점粘과 같은 연법軟法을 보다 중요하게 여겼겠지만 봉술이 기반이 되다 보니까 검경에서 비롯한 몽록당집, 소림곤법천종, 장창법선 등 소림파 창봉술은 오수가 비판하는 것처럼 좀 기풍이 거칠고 강剛을 위주로 한 것 같습니다.

    오가사와라 겐신사이가 일본에 돌아온 것은 무비지가 나오기 전이니 조선에서 완비된 세법이 들어오기 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비록에서 검결가, 후검결가, 쌍도가에 희미하게 흔적을 남겨놓고, 창술과 도법을 조합해서 조선세법과 느낌이 비슷한 어양노인의 검법을 남겨놓거나 창봉술에 형초장검을 숨기는 식으로 신유도법 계열+유가곤+이화창이라는 형식으로 명국전래의 검법이 전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유가곤, 신유도법의 투로는 화병 등의 초심자도 쉽게 익힐수 있게 단순하지만 검경의 이치를 조합해서 창봉술의 강유剛柔, 허실개합의 진수를 깨우치는 것으로서 진정한 형초장검이 나오는 것을 오수의 수비록에서 볼수 있습니다. 이 진정한 형초장검은 조선세법과 통하고요.

    유대유나 오수 모두 눈 밝은 놈은 찾아봐라는 식으로 검법을 좀 그렇게 은유적으로 숨겼다고 봅니다. 유대유는 눈밝은 놈 찾아봐라는 식으로 대놓고 서문에 써놨고, 오수는 이 이치가 귀하기 때문에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결가로 표현했고요.

    태극연환십삼도가 흔기, 간수 등의 조선세법 용어와 세洗를 발달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오가사와라 겐신사이가 진신음류를 만들면서 신음류와 차이를 보인 것은 표리表裏를 버리고 진정하게 공력 대 공력, 마음 대 마음으로 바로直 맞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술의 개수를 줄이고 간략화라는 형태로 나아갔는데 이는 단도18세 등 신유도법 계열이 추구하는 것과 썩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창술과 참장을 통해서 ‘팔촌의 연금’, ‘몸의 개합’과 내공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구미타치를 분카이하고 마개조해서 직심영류가 나오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 아부사이프 2020/06/11 03:59 #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후리고, 왼쪽에서 오른쪽을 후리는 것을 우검, 좌검이라고 해서 검의 기법을 낳는 부모로 엔삐猿飛, 엔카이猿回와 같은 기법들은 여기서부터 천변만화해서 미루어 나가는 것이다.それを右より左へふり、左より右へふる、の右けん左けんとふりわけるのは、太万生れの父母、(燕)(猿回)ちちははそれより致して、猿飛・えんくわいなどと云、千変万化の業に推移り行く。”

    이런 대목 때문에 그리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오히려 저 대목은 카게류에서 신유도법의 연속공격이 나온 대목이고, 겐신사이는 이미 배웠으나 검경을 통해 그 유용함을 한번 더 깨우친 것 같습니다.

    즉 겐신사이가 중국 전래의 검을 연구했다는 것은 검경과 그 원조인 형초장검을 배워 연구했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임염의 좌우래구를 통해 상산사세를 깨우쳤다는 것은 의견이 같습니다.

    신유도법이 검경이 아닌 이유는 검경의 체계를 보면 더 명백한데 아시다시피 검경은 막상 돌려치는 기법은 거의 안보여주고, 큰 동작을 경멸하는 대목이 나오며, 허리와 뒷손과 앞손을 이용해 힘을 전달하여 매우 짧은 궤적으로 쳐내고 때리는 것을 중시합니다.

    어차피 장도가 그렇게 지나치게 무겁고 긴 칼도 아니고 오른손으로 칼날을 잡는데 검경식으로 못쓸것도 없습니다. 검경의 체계를 통해 만들었다면 오히려 검도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주 큰 동작으로 단순하게 움직였고 세(洗)도 삭(削)도 찬(鑽)도 없어서 나중에야 민간무술가를 통해 겨우 추가되었습니다.

    즉 신유도법은 엔삐, 엔카이와 왜구들의 싸움법을 토대로 카피하고 부족한 부분은 중국무술의 요소로 채워넣은 극히 단순한 도법이라는게 결론입니다. 제가 보기에 형초장검을 그대로 쌍수도법으로 전환시켰다면 나중에 중국이나 조선에서 신유도법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나올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건 다른 주제인데 무예도보통지 편곤이 봉뿌러져서 지연되는 와중에 확신이 드는 것은 조선은 검경을 제대로 전수받은 것이 아니라 대봉투로 선에서 기법의 확장을 한 정도라는 겁니다. 보면 내대당, 외대당으로 구분해서 안으로 쳐내고 밖으로 쳐내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게 외대당은 검경에 이미 게(揭)혹은 개(磕)로 있거든요. 검경 자체는 기효신서의 수입과 함께 인지하고 있었겠지만 그게 군영 훈련체계로 피드백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기효신서에 실린 검경의 내용은 정기당집의 원본과 비교해서 빠진 부분이 생각보다 많은것 같네요.
  • 아부사이프 2020/06/11 03:57 #

    ㅅㄷㅎㄷㅅ// 영상이 길어질 수 있기때문에 논지의 변화의 과정에 대한 설명은 안할것같고 1차사료의 내용들을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할것 같습니다. 하더라도 유튜브 영상 설명에 간략하게 언급하고 지나갈 것 같네요.
  • 모아김 2020/06/11 13:09 #

    검경을 통해 그 유용함을 한번 더 깨우치고, 소림창계열의 창봉술의 란나찰로 척추의 연동을 통한 ‘팔촌의 연금八寸之延金’을 깨달았다는 것과 함께 ‘유가곤-검경-신유도법의 관계’와 ‘수비록에서 어양노인의 검법이 기술된 방식’에 주목하는 겁니다.

    ‘조선은 검경을 제대로 전수받은 것이 아니라 대봉투로 선에서 기법의 확장을 한 정도’
    ->저도 지적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아부 사이프님도 아시겠지만 검경劍經안의 창봉술은 세洗, 점粘 등 연법軟法도 많고, 비교적 양가창과의 공통점도 은근히 많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재구성되는 형초장검은 강남에 전래되는 다섯검법이나 조선세법과 제법 공통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곤방, 유가곤 투로는 경법硬法 위주로 구성되어있고, 주로 화병火兵을 비롯한 무예초보자들이 익혔습니다. 유가곤에서 더 숙련되어서 이화창의 란나찰을 비롯한 연법軟法을 깨우쳐야지 비로소 검경의 바인딩, 약約, 맺힌 것을 흝는 산어긴散於緊의 온오蘊奧를 깨우칠 수 있는 구성입니다.

    몽록당집, 장창법선 등 소림파의 창술에 대해서 오수가 강이 많고 유가 적다고 비판하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초심자 위주로 기세를 넣고 경법, 강이 많게 투로가 구성된 유가곤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신유도법은 경법硬法을 위주로 하는 형초장검, 유가곤 투로에서 란나찰 무화舞花를 엔삐猿飛, 엔카이猿廻 같은 영류지목록의 기법에서 기세를 넣으며 좌우 가사베기를 하는 감법砍法, 격법擊法 위주로 구성되어 연법軟法이 없는 도법刀法입니다.

    3미터를 격하며 베어오는 왜구에게 모랄빵나는 초보자에게는 사평세에서 견제하면서 찬鑽, 세洗, 점粘을 가르치는 것보다 기세넣으면서 힘껏 베는 감법砍法, 격법擊法 위주로 구성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단도법선 계열을 오수가 비판하는 것도 감법砍法 위주지 점粘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수가 수비록의 검결가, 후검결가, 쌍도가 등에서 창의 점粘과 신유도법 계열의 단도 18세를 합치면 어양노인의 장검(아마도 조선세법과 유사한 형초장검)이 나오는 것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듯이 신유도법에서 창의 연법을 추가해서 이를 검술에 응용하면 이것이 형초장검이 된다고 봅니다.

    사람들의 머리라는 게 의외로 완고하고 배운대로만 전하기 때문에 유가곤에 이화창을 더해서 강유를 겸비하고 이를 도검에 적용하는 게 이량흠, 유대유, 어양노인, 오수 등 소수의 깨인 사람들 말고는 좀 힘들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세법을 익혔을 가능성은 낮지만 오가사와라 겐신사이는 창술을 통해서 연법軟法과 ‘팔촌의 연금八寸之延金’, 호흡(내공)을 깨우치고, 단도單刀 계열이 보여주는 기술의 간략화에서 영향을 받고, 단도와 창술을 합치고 검경劍經을 연구하는 식으로 형초장검을 배웠고, 이를 통해서 삼학원의 태도를 마개조해서 법정法定과 죽도형을 고안했다고 봅니다.
  • 아부사이프 2020/06/10 17:52 # 답글

    하여간 연구로 인해 예전에 찍었던 장도 영상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기효신서 교장도에서 대련에서 썼다는 장도 목도가 중국에서 날아오는 중이니 도착하는 대로 기효신서 장도는 재촬영, 무예도보통지 쌍수도도 재촬영 하거나 편집 다시해서 올려야 할 겁니다.

    무예제보번역속집 왜검보도 한동작 빼먹은 게 있으니 필요하면 다시 찍어야 겠고요. 희한하게도 조선세법 영상은 지금도 오류랄만한건 없으니 기술 해설이나 한번 찍어볼 수 있을겁니다.
  • ㅅㄷㅅㄷㄴ 2020/06/11 12:37 # 삭제 답글

    그렇다면 검경이 신유도법보다 고등한 체계인가요?

    유대유가 인물은 인물이군요
  • 모아김 2020/06/11 13:07 #

    형초장검 유가곤 투로랑 신유도법에는 경법硬法 위주로 좀 단순하게 나와있는데 검경 보면 이화창이랑 연계가 되면서 세洗랑 체剃, 점粘, 찬鑽, 개磕 등의 작은 동작이나 부드럽게 쓰는 좀 고등한 기법이 많습니다. 유가곤, 신유도법만 봐서는 온오를 깨우치기가 힘들고 검경에서 이래저래 좀 뒤져서 이화창이랑 연계해서 연법을 더해야 합니다.

    거기다가 검경劍經개서開序나 총결 등을 보면 ‘상대의 세를 따르고 상대의 힘을 빌린다順人之勢, 借人之力’, 후발선지後發先至, 구력략과久力略過 신력미발新力未發 등 내가권이나 내공사경이랑 통하는 심법도 간략하지만 나와있고, 허주 조본학에게서 병법과 역의 이치를 배워서 속 무경총요로 대병법과 소병법을 연결하는 체계를 세웠고, 척계광이 기효신서, 연병실기에서 이를 이었습니다.
  • 아부사이프 2020/06/11 15:05 #

    민간무술들이 군사무술보다 대부분 낫습니다. 기효신서 무술들이 대부분 민간무술을 채용한 것이긴 한데, 대봉투로처럼 핵심적인 공방기만 연결하고 나머지 기술은 과감하게 내다버리거나, 등패에서 후퇴하면서 싸우는 법은 군대에 안맞으니까 삭제해서 못하게 하고, 이화창도 복잡한 세법은 안가르쳐도 된다고 하고, 그런식이죠. 배우는데 오래걸리거나, 당장 싸우는데 필요없는 고등한 체계는 삭제해버립니다.

    신유도법도 한방에 죽이지 못하는 찬 같은 기법들은 필요없다 라고 생각하고 그냥 연속공격으로 방어도 필요없이 애초에 상대방이 공격할 생각도 못하는게 좋다 라는 식이죠. 실제로 대련에서 시키는 대로 해보면 잘 통합니다. 다만 진보된 검객에게는 안통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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