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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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효신서 대봉의 처참한 현실 전술적 관점



대봉/곤방 주문할까 하여 기효신서를 한번 쭉 읽어봤는데 주척으로 1.5m정도되는 물건이라 일단 전쟁에 쓰기 애매한 물건이란 건 둘째치고 척계광 군대에서 대접이 대단치 못했네요.

일단 척계광 자신이 기효신서 4권 수족편 단기장용해 에서부터 대차게 까기 시작합니다. 여러 무기와 함께 파, 곤, 대도를 언급하면서 "손으로 자루 한가운데를 잡으면 그 손과 끝의 거리는 2자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도리어 다시 두개를 거꾸로 잡고 써서 몸을 멀리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라는 말은 유랑하는 무술사범이 꾸며대는 거짓말이다 라고 까고 시작하네요. 유대유:아니 이새끼가?

"만일 곤을 사용하는 방법에 능통해지면 다른 이기(利器)를 사용하는 방법도 이에 따라 체득될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군사로 편성된 대규모의 진영에서는 적합하지 않음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곤법을 유교의 사서(四書)에 비유하면서 여러 무기를 익히는 기본이 되지만 그래도 전쟁에선 노쓸모(...)라고 단언합니다. 물론 단기장용해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일단 긴게 좋고 짧은 무기는 긴 무기를 못이기니 거리를 보완하는 장거리 무기와 함께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만, 민간무술에서 가장 유행하는게 곤법이라 그런지 어쩌다 대표적으로 까이는 신세가 됐네요. 졸지에 곤법의 달인이자 직속 상관인 총병 유대유 장군을 디스한 셈이 됐는데.... 유대유:척계광 정신 나갔구만!

그리고 그동안 왠지 모르게 대봉/곤방은 원앙진의 한 구성요소인 것처럼 여겨져 왔는데 막상 기효신서에서 원앙진에 대봉 같은 건 하나도 없습니다.

교대봉 즉 대봉의 실력을 비교하는 것에서 화병(취사병)도 곤수(棍手)즉 대봉 쓰는 사람이라고 한 걸 보면... 아무리 봐도 1선 편제로 쓰이는 무기는 아닙니다. 취사병은 원앙진에서 따로 전투 안하고 다만 부엌칼 가지고 위험에 대비하라고 되어 있을 정도고, 실력이 없으면 취사병 시켜버리고 무술을 갈고닦아 상관에게 인정받으면 취사병 면제하고 정규병으로 올려준다는 내용이 있는 걸 보면 그런 취사병이 쓰는 무기가 중요한 병종의 무기일 리는 없겠죠.

기효신서는 각 병종마다 장거리-단거리의 상호 보완을 할 것을 정해놓았는데 유차역(有差役)즉 민병대 훈련을 보면 15일 휴식 15일 훈련, 15일은 다시 3일은 무술훈련, 1일은 진법훈련, 1일은 무술 비교(대련) 총 5일 한주기로 삼아서 로테이션을 돌리는 타임테이블을 짜놨는데 여기에서 조총병은 쌍수도, 등패병은 표창(투창), 장창병은 궁시, 당파는 화전(로켓화살) 이런 식으로 장거리-단거리 무기를 정해놨네요. 근데 여기서 관아에서는 궁시를 기본으로 하고 당파, 창, 등패, 곤봉을 선택하라고 나옵니다.

창이야 그렇다치지만 당파와 곤봉(대봉)은 길이가 비슷하고 등패는 대표적인 단병기로 도검인 요도와 같이 쓰니 간단히 말해서 부무장의 일종으로 취급받는 셈이죠. 길이도 애매하고요.

결론을 내리자면 대봉/곤방은 1.5m의 짧은 단병기이고 정규 도검이나 이런 걸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무장으로 차고 다니는 그런 물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칼보단 긴데 창보단 짧은 그런 물건이에요. 잘 봐줘야 교육용 병기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근데 따지자면 이런 경우가 드문 건 아니네요. 일본에서도 아시가루 중 처지가 안되면 몽둥이를 찼다고 하고 노르만족이 영국을 침공한 헤이스팅스 전투에서도 굵은 몽둥이가 기록물인 바이외 테이피스트리에 묘사되고 있으니까요.

신나게 대봉/곤방을 디스한 척계광이 검경의 내용을 자세하게 실어놓은 건 그나마 상관 유대유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정말 검경의 내용을 제대로 가르쳤냐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조선의 군관 한교에게 명나라 장수들이 가르쳐준 대봉/곤방 투로를 보면 정작 병사 훈련용의 간략화된 버전은 따로 있었던 것 같아요.

하기야 당직파타체대두좌대전(...), 게도소획좌체후전(.....) 부터 시작해서 32개의 기술, 14가지 자세, 해설 51개 그거 말고도 더 있는데 병사들이 무슨 수로 기억할까요. 당연히 간략화된 훈련을 안 만들 수가 없었을 겁니다. 정작 기효신서에서 곤봉습법은 장도랑 똑같이 그림만 달랑 던져놓고 말았죠. 이런거 보면 무예제보의 명나라 군용무술 복원의 사료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봐야합니다. 중국 사료에서 없는 병사 훈련용 투로가 보존되어 있으니까요.

더불어 어쩌다 보니 국내에선 무예도보통지 곤방교전이 소림곤법천종의 내용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원문의 설명에서 정종유를 언급하며 6로를 실었다 운운해서 그렇게 오해가 된 것 같은데 막상 소림곤법천종과 무예도보통지 곤방의 투로를 봤더니 똑같은 게 단 하나도 없습니다.

곤방교전의 실체는 군관 한교가 명나라 장수들에게 병사용 교육 투로를 배워 <무예제보>에 수록한 것입니다. 무예제보의 출판년도는 1598년이고 소림곤법천종의 출판년도는 1616년(만력44년)이니 소림곤법천종보다 앞선 셈이죠. 무예제보에 수록된 명나라 병사 훈련용 투로가 계속 보존되어 무예도보통지에까지 수록된 것입니다.

흥미가 동해서 대봉/곤방에 대해 찾아봤더니 결과는 기존의 퍼진 통설을 싹다 뒤엎어버리는 참담한 결과뿐이네요.
원앙진의 주력도 아니고 대단한 취급도 못받은 1.5m짜리 부무장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소림곤법천종이나 정종유와는 아무 관계도 없고요.


그나마 중국 봉술의 양대 원류로 남았고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영상은 유가곤(兪家棍)이라 불리는 봉술인데 유가는 유대유를 말하는 것이지요.

가만히 찾아보니 중국 봉술/곤법은 두께가 일정하고 1.5~1.8m정도의 봉을 사용하며 중간을 잡고 좌우로 치는 것과,

2m넘기는 봉을 사용하며 끝부분을 잡고 창술과 유사하게 쓰는 두가지가 보이더군요.

전자는 딱 유대유의 검경이고 후자는 정종유의 소림곤법천종입니다.

덧글

  • 모아김 2019/06/12 13:46 # 답글

    저는 기효신서의 신유도법이 무예제보, 무예도보통지의 장도,쌍수도투로에서 그림만있고 설명이 없는 버전이었던것처럼 유대유 검경 기본투로자체가 무예제보랑 무예도보통지에 있는 그 곤방교전보라고 봅니다. 설명생략하고 기본투로그림을 검경본문 뒤에 붙여놓은거 아닌가 십네요.

    무에도보통지와 무예제보의 그림와 검경의 그림을 비교해보면 순서랑 모습, 명칭이 같습니다.

    이룡쟁주살이니 뭐니하고 나오는 그외의 조목들은 투로가 익숙해지면 변형해서 가르치는 식이지 않았나 싶네요.
  • abu Saif al-Assad 2019/06/13 00:22 #

    그럴수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무예제보가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네요. 만약에 검경 영상 찍으려면 이것도 분량 만만찮을 것 같습니다. 투로만 찍는게 아니라 검리도 재구성해야 하니...
  • 정준우 2019/06/13 02:47 # 삭제

    그나저나 왜 그림만 달랑 던져놨는지 참 궁금하네요...
    군대에서 이미 하고 있기에 그냥 대충 적어둔건가..
    https://youtu.be/3T6QIY4Ko6M
    임구곤 이라는 곤법인데 소림에서 유래했다는군요. 대충 곤방교전하고 비슷한 부분도 있는것 같네요 대련투로는 1분50초부터 나옵니다
  • 정준우 2019/06/13 02:48 # 삭제

    1분5초부터는 소림곤법천종하고 비교하는 것도 나오네요
  • abu Saif al-Assad 2019/06/13 15:16 #

    임구곤이라는 건 확실히 곤법천종에서 유래된 티가 나네요. 봉끝을 잡고 창술의 비중이 높은 기법이라던가..
  • 일화 2019/06/12 13:48 # 답글

    저는 병학지남과 기효신서로 원앙진을 접해서, 대봉이 원앙진의 구성요소라고 여겨지고 있었는지는 전혀 몰랐네요.
  • abu Saif al-Assad 2019/06/13 00:03 #

    무예도보통지 원앙진 도면을 보면 맨 뒤에 화병(취사병)이 봉을 들고 있는데 그거 보고 오해한 것 같습니다. 화병은 그냥 자기 몸이나 지키는게 일이지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병종이 아닌데 말이지요.
  • ㅈㅈㅇ 2019/06/12 14:03 # 삭제 답글

    칼 때려잡는 봉이 2선급이라니... 봉이 깡패인줄 알았는데 창보다는 아닌가 보네요
  • 345345 2019/06/12 15:38 # 삭제

    사거리는 깡패니까요
  • abu Saif al-Assad 2019/06/13 00:01 #

    전쟁터에선 솔직히 위력이 별로죠. 길이와 레버리지로 도검류는 쉽게 이기지만 철갑옷이나 천 갑옷을 입은 사람들 상대론 위력이 격감하니... 차라리 큰 날 하나 달아서 폴암으로 쓰는게 낫죠. 척계광이 오리부리 칼날을 달아놓은 것도 너무 후달려서 그랬다고 봅니다. 검경의 원리대로라면 찌르기가 중요한데 막상 피해를 제대로 입히기에는 목봉끝은 별로였나 봐요.
  • 435435 2019/06/12 15:41 # 삭제 답글

    1.명 말기 徐光啟 가 구상한 병법에서도 순전히 장창과 낭선보다 길이가 짧다는 이유에서 당파와 봉 그리고 여러 장병기가 단기로 구분이 되지요 도검류는 전 병력이 차야할 보조 병기로써만 언급이 되구요

    2. 척계광의 비판과는 별개로 임란 명군의 대한 조선의 일부 묘사나 북방 여진군 의 대한 묘사를 보면 봉 자체를 무장으로 삼거나 그걸 넘어서 왠만한 냉병기보다 나은 병기라고 자부하는 병사들이 좀 있는 것으로 보아 일선 병사들은 생각이 달랐을수도 있겠습니다
  • abu Saif al-Assad 2019/06/13 00:21 #

    어떤건지 모르겠네요. 혹시 편곤에 대한 묘사인가요?
  • 435435 2019/06/13 10:35 # 삭제

    그냥 대놓고 봉입니다
  • Cloudy 2019/06/12 19:45 # 삭제 답글

    전 그래도 봉을 사랑합니다(???????)
  • abu Saif al-Assad 2019/06/12 21:44 #

    저도 좋아합니다. 다만 생각보다 척계광 군대에서 대접이 시원찮아서...
  • 오렌지 공작 2019/06/13 01:03 # 답글

    사실 봉이 좀 빈약한건 사실 아닌가요? 다른걸 다 제쳐두고서라도 간지가 영... 철테를 달면 강력해지긴 합디다. 전국시대 금쇄봉도 그렇게 무지막지한 사이즈는 아니라 조금 굵은 봉인게 있구요. 다만 척계광은 당장 작은 동작으로도 썩둑썩둑 잘라내는 병장기들이 많은데 비해 봉은 별 메리트가 없다고 본듯 싶습니다. 봉이 밀집해서는 찌르기밖에 못할텐데 그럼 차라리 당파나 창이 나은 상황이라고 본게 아닐까 하고...
  • abu Saif al-Assad 2019/06/13 15:20 #

    대봉/곤방은 뭐 그냥 모든 병기의 근원/호신용 무기 취급입니다. 정규 진법에서도 편제가 안되고 화병(취사병)이나 드는 그런 거 내지는 민병대들 부무장 중 선택지 취급이네요. 북방 이민족 대응으로 쓴 연병실기에서도 대봉/곤방으로 말다리후리기&말머리후리기 연습밖에 안나와있습니다. 또 가뜩이나 짧은 무기는 안된다고 기효신서 내내 노래를 부르고, 검경 자체가 좌우로 휘두르고 찌르는 민간무술인데 밀집하면 자살이죠.

    이래저래 민간무술&민간무기의 한계를 적잖이 드러낸다고 봐야겠습니다. 차라리 무예도보통지 편곤에 세트로 나오는 주척 기준 2.15m봉이 훨씬 더 현실적이네요.
  • ㄷㅈㄹ 2019/06/13 11:42 # 삭제 답글

    미디어에서 보면 철창이라든가 철봉이라든가 하는 물건도 나오는데 이런 물건은 실전성이 어떨까요? 쇠로 만들면 타격력이야 강해질텐데 무게가 다루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실제로 철봉이나 철창 같은 무기가 현실에서 쓰였나요?
  • abu Saif al-Assad 2019/06/13 15:20 #

    쓰였다는 말도 있고 위력과 내구성도 확실히 강하지만 아무나 쓸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던 것도 확실합니다.
  • 435435 2019/06/13 16:30 # 삭제

    명나라 시기 승병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엽전을 박아서 타격부를 강화했다고 합니다. 길이도 짧아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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