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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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리히테나워류의 시조는 따로 있다고? 전술적 관점


하인리히 베링거에 관하여

HEMA의 유명한 연구가인 케이스 파렐이 편집하고 제임스 에컷이 연구, 저술한 Science, Swords, and Society: German Martial Arts in the Middle Ages 라는 책이 2019년 3월에 나왔고 그룹 멤버가 사보았는데, 저자는 여러 사료를 추적해서 놀랄 만한 결론을 내고 있네요. 쓴 글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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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자체는 요하네스 리히테나워의 일생과 그 주변인들의 교집합을 찾는 내용이었고, 특히 리히테나워 조직 멤버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음.

저자는 온갓 사료를 뒤지다가 새로운 검술서를 발견했는데,

바로 하인리히 베링거의 'Modus Dimicandi' 임

저자는 이 하인리히 베링거의 검술서를 이제까지 있었던 모든 '운율' 의 시초라고 생각하였는데, 그 이유는:
- 운율에 리히테나워가 언급되지 않음
- 자기 자신을 위해 작성된 기록
- 기록은 1416년 작성으로 초기 기록이라 볼 수 있음

저자는 이 베링거가 1419 년에 로스톡 대학에 입학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재미있게도 로스톡 대학에 입학하고 다음 학기에 같은 과정으로 요하네스 리히테나워의 기록이 있음을 발견하였음.

이후에도 베링거가 나중에 라체부르크-슈베린 교구의 목사였을 때, 해당 교구의 높은 직급의 인원으로 리히테나워라는 이름이 발견되었음.

저자는 이 베링거가 리히테나워에게 영향을 주고 리히테나워는 이 운율을 차용하여 자신의 시스템을 구축한 것으로 보임.

꽤 의미있는 발견이라 윜테나워에서도 등록이 되어 있고 대략적으로 번역본도 볼수는 있는데, 사적인 기록이라 매우 짧은 운율임.

이후에도 저자가 이 사실을 기반으로 리히테나워 회 사람들의 행적을 뒤지는데 읽어볼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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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데 요하네스 리히테나워는 정체 불명이라고 여겨졌지만 하인리히 베링거를 따라 1419년에 로스톡 대학에 입학한 기록이 나타났고, 나중에도 같은 교구에서 함께 일했다는 것이 확인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검결도 리히테나워의 것과 비교해 극히 일부의 내용이긴 하지만 아주 유사한데 보다 초기 기록이라 할 수 있고요. 실제로 실린 내용을 보면 젋은 기사여 배우라로 시작하는 것을 비롯해 존하우, 크럼프, 즈버크, 샤이텔, 쉴러 다섯가지 베기도 확인되네요. 리히테나워는 여러 검술을 배워 정리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라 쳐도 하인리히 베링거의 검술을 기반으로 일부를 갖다붙였을 가능성이 더 높아집니다.

물론 MS3227a의 문제도 있지만, 추적을 보면 리히테나워는 확실히 14세기에 태어나 15세기에 일생을 보낸 15세기 마스터가 맞다는 결론에 다다르고, ms3227a에서 1389년의 종교 축일 달력은 그 문서가 검술서가 아니라 자기에게 유용한 여러 문서들의 일부를 떼어와 엮은 하우스북이라는 종류임을 생각하면 그냥 옛날 달력을 갖다 엮은 것일 뿐 실제 편집 연대는 15세기로 내려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리히테나워류는 14세기 검술이 아니라 15세기에 창시 혹은 정립된 검술이라는 사실이 나와버립니다.

그렇다면 왜 베링거는 묻히고 리히테나워가 검술의 시조가 되었나, 그건 확실히 알 순 없습니다. 리히테나워가 베링거에게 검술을 전수하고 베링거가 검결을 만들어서 리히테나워가 자기 검술을 정립하는 데 영향을 줬다 라는 시나리오도 성립할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리히테나워 직전 체계에서 검결의 원형은 하인리히 베링거가 먼저 만들었고, 리히테나워는 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워진다는 겁니다.

덧글

  • ㅅㄴㅅㅌㅅ 2019/05/24 21:56 # 삭제 답글

    왜 동양이나 서구나 검술과 노래 혹은 시가 연관되는 경우가 있을가요?
  • abu Saif al-Assad 2019/05/25 02:01 #

    기억술의 방편이죠. 문맹도 많고 출판물을 아무나 소유하기 힘든 시대였으니 노래를 통해 부르면 연관된 구절을 통해 검술의 세부 기술이나 검리를 생각해낼 수 있는 구조입니다. 기효신서의 총결가도 총기사용절차를 노래로 만들어 기억하게 한 것이죠. 또 16세기에는 옛 전통이었지만 그래도 전통을 잇는다는 측면에서 검결을 새로 만든 경우도 있습니다. 요아힘 마이어가 롱소드 파트 3부에서 만든게 그런거죠.
  • ㅇㅇ 2019/05/24 22:03 # 삭제 답글

    롱소드 폼멜을 피닝한것과 끝부분에서 너트 고정한걸 선택하라면 무조건 피닝한게 좋을까요? 롱소드의 강재는 보통 10xx 5160 6150 같은 탄소강인데 납땜으로 막아버리거나 에폭시로 완전히 막아버리지 않는 이상 가드 틈으로 탱에 습기가 침투하기마련이라 분해해서 유지 보수가 가능한 너트 고정식을 생각중인데 잘못된 생각일까요?
  • abu Saif al-Assad 2019/05/25 02:04 #

    지금까지 그런 일이 벌어진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땅에 묻혔다가 발굴된 도검도 탱이 특별하게 썩은 경우는 없었어요. 오히려 노출된 칼날이 썩으면 썩었죠. 너트식은 진동 때문에 풀리기 때문에 결국 에폭시 떡칠해서 분해 못하게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윈들래스 스틸크래프트 같은 못믿을 곳이 아닌 하이엔드 업체라면 제안하는 방식대로 주문하시길...

    레제니 피더나 블런트가 피닝에 본드 손잡이 고정인데 야외에서 훈련함은 물론 간혹 빗물에 노출된 적도 있는데 탱에 녹난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 ㅇㅇ 2019/05/25 06:51 # 삭제

    일반적인 히든탱 나이프들 생각하며 롱소드는 너트 고정식으로 해야하나 고민했었는데 여기에서 쓰신 글들 찾아보니 롱소드는 사이즈가 커서 그런가 가드를 박아넣듯이 틈 없이 끼워버리고 에폭시로 전부 막아버리네요 히든탱 나이프들은 왠만하면 가드를 박아서 끼우질 않으니깐 미세한 틈이 있어서 에폭시 발명전에는 가드 틈을 납땜하거나했고 에폭시 발명 이후에도 공장제 나이프들은 탱부분은 에폭시로 막혀서 괜찮지만 가드 부분에 미세한 틈이 그대로 있어서 가드 속이 녹스는 경우가 많아서요
  • abu Saif al-Assad 2019/05/26 03:01 #

    폴첸 제품들이 틈이 많은편인데 막상 분해하면 크게 녹이 심하게 스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비오는데 장기간 노출시키거나 물에 담궈버리지 않는 이상 녹스는 일은 없을거에요. 또 틈이 워낙 좁아서 녹이 슬어도 일정이상은 안슬겁니다. 이점을 이용해서 고정시 일부러 소금물을 발라 약간 녹이 슬게 하여 팽창시켜 단단히 맞물리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1차대전당시 스코프가 사격 진동으로 이탈하니까 소금물을 바른 쇳조각을 끼워서 팽창시켜 맞물리게 한 적도 있었죠.
  • vjffgu 2019/05/26 01:45 # 삭제

    그 탈와르의 힐트고정법이 실제로 있는건가요?

    저번에는 원 사료를 못찾으셨다고 하셨지않나요?
  • abu Saif al-Assad 2019/05/26 03:01 #

    vjffgu// 기억에 혼란이 있었네요. 맞습니다. 보통 수지로 연결되지요.
  • ㅇㅇ 2019/05/26 06:36 # 삭제 답글

    과학에서도 최초 발견자 보다 완성도를 높이거나 상업화를 잘 시킨 사람이 더 유명한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가 아닐지.
  • 나그네 2019/06/06 03:06 # 삭제 답글

    항상 배으며 감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검리의 흐름은 진실이며, 이것이 사실로 드러났을때의 진실성의 첩경은 인류가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사실일 겁니다. 적어도 난 검리나 검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검술은 기술적으로는 간격, 심리적으로는 간격(실제 파이팅의 여운), 그리고 실제로써의 진실성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것이 진짜 요체일겁니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 침체된다면 그건 단지 쇼나 레크레이션의 일부가 될 뿐이겠죠.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조만간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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