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zairai.egloos.com

포토로그



Hands on Review - Lungquian Miao Dao(묘도) Hands-on-Review

Introduction
기효신서 장도의 재현을 위해 주문한 묘도가 도착했네요.

묘도는 현재 중국권법 문파인 통비벽괘문에서 사용하는 무기로 원래 척계광 군대에서 명나라 군대가 왜구의 거대한 도검인 노다치(野太刀)에 곤란을 겪자 이를 복제 생산한 장도(長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척계광 군대에서는 이 장도를 화승총병에게 지급했는데, 별다른 호신무기가 없는 조총병이 왜구들의 노다치에 도륙당할 걸 염려해서 이 커다란 장도를 주었고, 그 사용법을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고 그림 15가지만 기효신서에 수록했습니다.

(1621년 무비지의 삽화)


얼마 안 가서 1621년의 무비지에서는 장도의 사용법이 실전되었다고 기록했는데, 조선에 출병한 명나라 장수들인 낙상지, 양호, 오유충 등이 조선 군관 한교에게 절강병법을 지도하였고 그 결실을 정리한 책 무예제보(武藝諸譜)에 중국에서는 찾을 수 없는 장도의 투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투로와 더불어 장도의 개별 기술을 항왜들에게 배워 수록한 왜검보가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에 수록되어 조선에서 장도술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으며, 장도 투로는 무예신보를 거쳐 무예도보통지까지 쌍수도라는 이름으로 이어집니다.


(단도법선 우정슬도세右定膝刀勢)

한편 중국에서는 민간무술계로 퍼져서 정충두의 단도법선으로 확립되고, 오수의 수비록에서도 단도(單刀) 즉 장도를 쓰는 검술에 대해 언급하고 있어서 당대 무술계에서 폭넓게 수련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명나라에서 이순신에게 수여한 팔사품 중 참도. 길이 180cm)

현재는 명나라 황제가 아닌 진린 제독이 이순신의 유족에게 제공한 것으로도 알려진 팔사품 중 참도를 보면 양식이 약간 다를 뿐 전형적인 일본 노다치의 형상을 보여주고 있어 초기 장도는 일본도의 복제품임을 알 수 있지만 단도법선의 그림을 보면 이미 칼날이 일본도와는 달리 부드럽게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뾰족해지는 타입임을 알 수 있어 단도법선 저작 당시에는 이미 현재 묘도의 디자인 원형이 나타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묘도와 장도는 동일한 계통임을 알 수 있고 또한 기효신서에 나오는 장도의 규격이 길이 6척 5촌이고 무게 2근 8냥(1.5kg)인데 장도를 영조척으로 보면 길이가 195cm에 달하는 반면 무게가 비현실적으로 가벼워지고, 주척으로 보면 136.7cm정도가 되는데 현재의 묘도의 규격과도 유사하고 1.5kg라는 무게도 현실적으로 맞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기효신서 장도 재현에 묘도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Overview


(날길이 75cm의 일본도와의 비교)


Measurements and Specifications:
전체길이(Overall length) : 139.2cm
칼날길이(Blade length) : 98.4cm (본래 100cm이나 칼끝 가공을 위해 잘라냄)
칼날폭(Blade width) : 37mm~22mm
칼날두께(Blade thickness) : 9mm ~ 3mm (칼등 한정. 아래쪽은 2mm정도로 매우 얇음)
무게중심(P.O.B) : 가드에서 9cm(3.54")
무게(Weight) : 1276g
손잡이 길이(Grip length) : 39.2cm

Handling Characteristics
잡자마자 상당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묵직한 칼을 예상한 것과 반대로 칼이 너무 가볍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칼날도 열처리가 잘 되었으나 피더슈비어트처럼 탄성이 좋고, T자형 단면의 칼날의 등부분은 군용도검처럼 두꺼우나 그 아랫부분은 생각보다 얇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손잡이도 길고 뒤로 갈 수록 두꺼워져 퍼멀의 역할을 어느정도 대신하며, 칼날도 9mm에서 3mm로 안정적으로 줄어들어 도검의 조작은 피더슈비어트보다 오히려 나을 정도로 밸런스, 컨트롤이 뛰어났으나 칼날의 대부분이 2mm정도로 너무 얇게 만들어져 있고 결정적으로 무게는 1276g정도라서 기효신서 스펙인 1500g보다 224g이나 가벼웠습니다. 상태가 이렇다보니 꼭 팔랑거리는 표연용 검으로 검리 연구를 하는 듯한 찜찜함이 들더군요. 이런 연구일수록 역사적 스펙과 최대한 같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용천에서 생산되는 묘도를 보면 절대다수가 T자형 단면을 가진 칼날이지만, 소수는 평범한 단면을 가진 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칼들은 무게가 1.6kg정도에 수렴하는데 이 스펙이 실전용 장도에 맞는 것 같더군요. 내구성이나 진검 시뮬레이터로써의 특성도 살릴 수 있고 말입니다. T자형 단면은 샴쉬르나 세이버 등에서도 자주 나타나지만 이건 그냥 최대한 가볍게 만들려고 날을 갈아버리다 보니 T자형 단면이 된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중국쪽 쇼핑몰 사이트들에 1kg짜리 표연용부터 3.3kg짜리 단련용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는 셀러가 있었는데 어느 틈에 사라져 버렸더군요. 그래서 나름 칼집제외 1.5kg라고 표기된 제품을 찾아냈는데 중국쪽 셀러의 표기가 그다지 정확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묘도를 구입하실 분들께서는 이 점을 감안하셔서 T자형 단면은 최대한 피하고 그냥 평면 단면 제품을 구하시는게 좋습니다. 2.2kg나 3.6kg라고 표기된건 각각 칼집 포함이거나 상자까지 포함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T자 단면을 피하시는게 가장 쉬운 길인 것 같네요.

Fit and Finish




도장구는 황동으로 되어 있고 전체적인 피팅은 견고합니다. 하지만 마감은 얼른 보기에는 나쁘지 않으나 실제로는 미묘한 감이 있습니다. 칼집 끝부분의 황동 부품은 고정못이 한번 빠져서 밀려버린 흔적이 있고, 손잡이 뒷부분 황동 뚜껑은 나무손잡이와 살짝 어긋나 있습니다. 대량으로 적당히 만들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실사용 유저 위주의 제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Conclusion
전체적으로 무난한 칼이지만 표연을 위해 실제 역사적 스펙보다 많이 경량화된 감이 있는 칼이네요. 그리고 애초에 격검을 상정하지 않은 칼날 디자인인가 칼날 면이 1mm이하로 실제 강하게 칠 경우 살이 베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 철저하게 옷을 입고 살을 가리고 스파링을 해야 되겠네요. 열처리되지 않은 일본도와 부딪쳐 봤을 때에는 흠 하나 생기지 않은 것은 좋지만 날이 너무 얇아서 도검끼리 부딪칠 때 날이 찢어질 수도 있을까 걱정됩니다.

영상 촬영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매너리즘 타파를 위한 이종격검을 위한 도구로도 생각하고 구매했는데 이런 점에서 미묘하네요. 이걸 그대로 유지해서 바로 촬영할지 아니면 이건 따로 처분하고 더 무거운 묘도를 구할지 생각을 좀 해봐야 할 물건인 것 같습니다.

덧글

  • 모아김 2019/03/08 14:47 # 답글

    1. 이번에 무비지의 궁술 관련 부분이랑, 당호의 왕오공태극연환십삼도법과 조선세법을 비롯한 형초장검 관련 자료가 모인 책에 명, 청대의 궁술서적이 있는 걸 훑어 봤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황백가가 자신의 내가권법 스승이었던 왕정남이 쓴 정남사법征南射法만 대충 봤는데 오궁五弓이나 축경과 발경을 활시위를 당기고 쏘는 것에 비유한 것 말고도 의외로 신수보안심身手步眼心 전반에 걸쳐서 궁술의 요결이 권법의 요결과도 통하면서 다른 병기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제일 볼만한 것은 활을 당길 때 가슴의 기가 단전에 떨어지면서 어깨膀와 고관절胯이 열리는 법과 좌우 팔이 연결되어서 목표를 노리고 활을 발사할 때 왼손과 오른손의 미묘한 조정에 관한 부분입니다. 내공사경 內功四經에 나오는 내경內勁의 운용과 비슷합니다. 애초에 궁술 서적에서도 팔뚝의 졸력이랑 몸전체의 협응성에 나오는 경勁을 구분하는 경우가 많고요.

    활몸을 쥔 손가락과 화살촉이 서로 마주하고, 오니를 걸어 활시위를 당기는 손가락의 4,5지에 힘이 빠지면 1~3지에 너무 힘이 들어가서 활이 멀리 못나간다거나 양팔과, 무릎이 평행하게 놓여야 하고, 활을 당길 때 좌우로 어깨와 팔이 균등하게 열리면서 비트는 듯한 느낌(전사경)있어야 한다는 것은 엄수굉권 등의 초식을 연무할 때 느끼는 중요한 포인트와 비슷합니다.

    근데 궁력弓力이 부족하면 돌에 줄을 매달아서 이를 끌면 힘이 생긴다고卽以繩懸大石拽之。亦能生力 웨이트 해라는 말도 나옵니다. 옛날에 내가권사나 무사들이 웨이트 안 했다는 건 쌩 구라입니다.

    3,4되 무게부터 시작해서 一石(한나라 기준 120근, 명대 기준 92.5근) 무게까지 올려서 그치는데, 거리는 100보, 120미터에서 그치더군요. 국궁이 현재 120보, 144미터인 건 그야말로 12성의 성취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확실한 살상을 위해서라면 20여보로 충분히 가까이 왔을때 놓치지 말고 쏴라고 하는 것은 현재양궁 거리가 30미터인거랑 비슷하고요.

    一石이라면 명대 기준으로 54.575kg인데 활 장력으로서 54.575kg이라면 상당한 강궁입니다. 하지만 무비지에서는 사람이 어지간하면 들 수 있는 무게로 나오는 걸 보면 몸 전체로 당기는 요령(내경 內勁?)이 있어서 연습하면 이 정도까지 다 당길 수 있다는 거나 아니면, 활 자체의 장력으로서 54.575kg이 아니라 연무석, 데드리프트나 스쿼트로 54.575kg을 들 수 있는 장정이 당길 수 있는 활이라는 이야기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명대에는 3石 정도의 강궁도 있었다고 합니다. 3석이면 163.725kg인데 심관장이 3대 운동 500kg쳐라 대충 이런 느낌이네요.

    전업 무술가들은 아무래도 1石 보다는 강한 궁력을 요구받았을 것 같습니다. 왕정남이 정남사법이라는 궁술책을 지은 것도 그렇고, 실전에 써먹기 위해서 내가 계열이라도 웨이트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런 3石같은 기준을 보면 명말청초에 무예18반을 고루 익힌 극한의 공력을 지닌 무인들은 현대의 내츄럴 보디빌더에 뒤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회탈춤 내용 중에는 황소의 고환을 정력제로 쓰는 것도 있고, 해구신 같은 한약재(대용품으로 양이나 소의 신장도 쓴다고 합니다.)는 일종의 천연 스테로이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십전대보탕이나 쌍화탕 같은 약이랑 함께 동물의 신장이나 고환을 말린것을 빻아서 먹거나 술에 담그거나 하는 식의 섭취가 각 문파의 비전으로 내려오지 않았겠나 싶네요.

    이런 걸 보면서 느끼는 건데 명말청초에 무학은 이미 무예18반이 서로 연계되면서 고도의 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손존주나 손록당은 명말에는 외가, 내가 구분이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남경 중앙국술원에서는 명말청초에 무술이 왕성하게 교류 연구되어서 전쟁과 시합 모두 유효하게 쓰였던 분위기를 이상적으로 보고 있던 것 같습니다 청조 대의 문파무술의 성립은 어떤 면에서는 무술의 후퇴였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근데 내경, 몸의 협응력이라는 의미로 강기라는 용어는 원말명초 혼원검경에서도 나왔고, 심검, 무검은 일본전서에서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텟슈는 점점 검 끝이 굵어진다면서 몸에서 힘빠지면서 칼 끝에 벡터가 집중되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그럼 이거는 검환劍丸이네요.

    ...현실은 무협지와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2. 평상무적류는 도다류6본, 중조류 11본의 카타를 배운 소태도 유파인데 '무도의 신수'를 보니까 처음부터 소태도 길이로 가르치니까 우케와자 위주로 소극적으로 쫄아서 반응을 못하니 이제부터는 정촌의 후쿠로지나이로 가르치자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운홍류나 이천일류 카타를 보면 왼손은 어깨에 붙이고 한손으로 정촌 길이의 목검을 다루는 카타가 은근히 있는 편인데 이런 식으로 소태도에서 한손검의 기법을 추려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3. 카게류가 원숭이, 거미, 제비의 움직임에서 검술을 깨우쳤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봤는데 대충 이런 것 같습니다.

    원숭이->검을 휘두를 때 팔을 쭉쭉 뻗거나 영활하게 뛰면서 도는 통비활후 通臂活猴의 움직임, 중국에도 통비권 등의 권법이나, 형초장검에 비슷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거미蜘蛛 ->신당류 전서를 보면 만자의 두루마기卍字之卷에 거미손蜘蛛手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상대가 팔방으로 검 놀리는 것을 십자十字로 받아쳐서 교차되는 만자卍字, 십자수리검十字手裏劍의 검리를 거미 다리 여덟 개가 있는 형상으로 비유한 것 같습니다.

    ‘만자의 두루마기卍字之卷 거미손蜘蛛手의 조목條目

    「十方は空なり。有無の聞に蜘蛛手在り。是則ち阿字の一刀・金剛の正体、形物々に入りて、其の至らざる無しの謂也。天竺・大唐・我朝三国相伝之巻物是なり。過去・現在・未来、只此の蜘妹の内に有り。然らば則ち此れ番神・諸仏・諸神、総て此の中に在るの図也。能々鍛錬心持ち護持すべし。千金も伝うる莫かれ。秘すべし秘すべし。」

    시방은 공이다. 이 유무의 사이에 거미의 손이 있다. 이는 곧 근원되는 ‘아’ 글자阿字의 한 칼一刀, 금강의 올바른 몸, 형물에 들어와서 이르지 못함이 없음을 일컬음이다. 인도, 중국, 일본 삼국이 상전한 두루마기의 내용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 그저 이 거미 안에 있도다. 그렇다면 곧 번신, 제신, 제불 모두 이 안에 있는 그림이로다. 능히 단련해서 마음에 지녀야할 것이다. 천금을 주더라도 전하지 말아야 하니, 숨기거라, 숨기거라.

    . 阿字の一刀니 卍字니 하는 게 일도류 키리오토시를 의미하는 거라서 아마 맞지 싶습니다. 결국 시방에 걸친 공간, 간합과 과거, 현재, 미래라는 타이밍을 인식하면서 적의 공세를 키리오토시해라, 그런데 이 가르침은 3국에 걸쳐서 전래된 유서깊은 것이니 함부로 가르치지 마라는 소리인데 빙빙돌리지 말고 그냥 바로 써놓을 것이지...

    제비燕 ->만자卍字, 십자수리검十字手裏劍의 검리 자체는 비슷하나, 일도류는 나를 중심으로 삼아서 상대를 약간 비끼는데 비해서 신카게류는 상대를 중심으로 나는 약간 비껴서 들어갑니다. 이를 제비가 날아오다가 방해물을 아슬아슬하게 비끼는 움직임에 비유한 게 아닌가 싶네요.
  • abu Saif al-Assad 2019/03/08 12:45 #

    활은 쏴본 적이 없으니 잘 이해는 안되는데 예나 지금이나 전사 계급에서 요구하는 힘이나 체력은 상당한 수준이네요. 롱보우 궁사들도 뼈 변형까지 생길 정도였고요. 늙으면 여기저기 안좋아졌을 텐데 별 이야기 없는 건 역시 평균 수명이 낮아서 그런가 봅니다. 송무제 유유는 젋었을 때 손에 칼을 맞은 곳이 항상 통증이 있어서 몸을 차게 하는 약(아마도 맨소래담 비슷한) 것이 있었어야 했다더군요. 인대 손상으로 인한 만성 통증 아니었나 싶네요.

    확실히 짧은 무기로 큰 무기를 이기는 건 실력이 확 차이나야 가능하지 동등한 수준에서는 너무 쉽게 당하기 마련이라 자연스럽게 쫄 수밖에 없습니다. 메서나 다른 짧은 무기로 하게 되면 가짜공격을 날리거나 진입해서 공격을 유도해야 하는데 원체 상대방 공격을 받아치려는게 뻔히 보이다보니 상대방도 숙련만 되면 농락하면서 가지고 놀더군요.

    거미손 전서의 내용은 상당히 불교 비스무리한 분위기로 쓰여져 있는데 말씀하신 걸 듣고 보니 그럴법 하네요. 어떻게 보면 상당히 간단한 내용인데 꽤나 어렵게 쓰는 느낌이군요. 거미라고 하니까 괜히 스파이다마 생각나네요...
  • ㅇㅇ 2019/03/08 15:10 # 삭제

    검도 같은 경우 유독 발폭을 좁게하고 몸을 세우는 걸 강조하는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일도류의 영향일까요?
  • 모아김 2019/03/08 15:28 #

    직심영류는 아예 양발을 모아서는 것을 直立이라고 해서 이 자세에서 상단으로 내려치는 것을 장기로 했습니다. 일도류, 직심영류 자체의 영향도 있고 그냥 죽도+호구격검에 적응하는 와중에 결국 다들 수렴진화했다고 봅니다.
  • 온두루루 2019/03/08 15:50 # 삭제

    죽도+호구 격검에서는 확실히 일도류처럼 중단 잡고 중심 굳혀서 버티는게 유리한 것 같습니다
  • Felix 2019/03/08 22:02 # 삭제 답글

    당시 조총 자체도 꽤나 무게가 나갔을텐데, 칼도 저리 길면 행군할 때나 사격할 때 애로사항이 꽃 피었을 것 같군요. 뭔가 왜구가 노다치 들고 괴성을 지르며 닥돌해오는 등의 급한 상황에서는 뽑기 불편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쭤봅니다만, 당시 저 장도 휴대방법은 어떤 식이었는지요? 허리에 차고 다녔을까요, 아니면 등에 메고 다녔을까요?
  • abu Saif al-Assad 2019/03/08 23:03 #

    요즘에는 이것만 쓰면 방어가 안 된다. 단, 조총수는 적(賊)이 멀 때는 총을 쏘지만, 적들이 자신에게 가까이 왔을 때 다시, 찔러 공격할 만한 다른 무기가 없는데, (다른) 무기를 겸해 지니자니 총은 무겁고 약과 탄환 또한 많아서 형편상 불가능하다. 오직 이 도만은 가볍고 길어 겸용할 수 있으니, 몸에 지니고 있다가 총을 못 쓰게 되면 이것을 쓴다. 아무래도 죽이는데 손이 칼을 당하겠는가. 그래서 장도(長刀)를 준비하는
    것이다.- 기효신서 장도해

    오히려 총이 무겁고 개인장비가 많으니까 길고 가벼운(!) 칼을 쓴다고 하고 있네요. 장도를 착용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데 이순신 명조팔사품의 참도가 쿠리카타를 가진 카타나 칼집이고, 하필 단도법선에서도 뒤에 노궁을 차고 카타나 식으로 허리에 차고 있으니까 명나라 당시에는 장도를 카타나처럼 찼다고 보면 될거같네요.
  • Felix 2019/03/09 17:16 # 삭제

    "아무래도 죽이는데 손이 칼을 당하겠는가"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군요. 죽이는 쪽이나 죽임을 당하는 쪽이나 양 쪽 다 해당되는 말이네요. 허리에는 저 긴 칼을 차고, 등에는 조총 메고......당시 조총병은 참으로 피곤했겠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 fㅇㅇ 2019/03/08 22:28 # 삭제 답글

    투핸디드가 짧은 칼에 비해서 테크닉적으로 특별한 건 없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럼 서양검술이나 일본검술 중국 검술을 배운 사람들은, 투핸디드나 노다치 이런 묘도등을 서로 바꿔가면서 별다른 훈련없이 사용 가능할까요?
  • abu Saif al-Assad 2019/03/08 23:11 #

    네 그렇죠. 다만 체급이 다르고 하니 세세한 부분에서는 어느정도 적응기간이 필요합니다.
  • 모아김 2019/03/11 13:23 # 답글

    1. 하스지刃筋와 스트롱-위크 잘맞춰서 내려치면 실전에서 상대의 검을 부러뜨리는게 가능할까요?
  • abu Saif al-Assad 2019/03/10 23:53 #

    의도한 적은 없지만 2012년 겨울 알비온 리히테나워 그렇게 부러뜨린 적 있네요. 면을 맞는 것과 날로 치는 것 둘중 뭐가 부러질지는 복불복이지만 면을 맞는 쪽이 더 위험한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 2019/03/11 18: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3/11 14:5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9/03/11 16:2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9/03/11 18:4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