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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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야 지역 위원회 2012 ~ 2016 시리아 내전

(다라야 지역 위원회 로고)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서남쪽에 위치한 위성도시 다라야(Darayya)는 민주화 사태 초기부터 시위의 주요 현장으로 열기가 높았던 곳입니다. 이곳은 정부의 진압과 시위대의 항의를 반복하던 곳이었는데 2012년 6월경 대량 체포를 계기로 현지인들이 무장하고 정부군을 압박하여 정부기관들이 철수했습니다. 이후 레바논에서 이어지는 루트를 통해 총 3000여명의 반정부군들이 다라야 시에 집결했고 공습의 진원지로 사용되던 메짜흐 군사공항의 외곽을 점령하고 검문소의 정부군 30명을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정부군은 일단 납치된 군인과 반군 포로간의 교환을 시도했고 결렬되자 정부군은 2012년 8월 20일부터 포격을 시작하였고 대대적인 공세를 감행했습니다. 반군은 크게 저항하지 않고 철수했는데 8월 25일 250구의 시체가 발견되고 다시 시리아 인권관측소 발표 320구의 시체가 나타납니다. 반정부측은 아사드 정권이 "샤비하 깡패들"과 함께 반군 가담자나 의심자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는데 독립 언론인 "인디펜던스 데이"의 기자로 탐사보도의 권위자로 알려진 로버트 피스크(Robert Fisk)가 직접 다라야 시로 들어가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반군 전사들이나 친정부 시민들, 예비군 등의 시체가 섞여있었다고 하며 반군이 자신의 집을 접수하거나 파괴했다는 증언도 듣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때를 기점으로 다라야 지역 위원회가 결성됩니다. 정부기관이 힘을 잃고 치안이 부재하자 나타난 주민 자치 위원회였고 시리아에서 드물게 이슬람주의에 경도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이후 반군은 2012년 11월에 다라야 시를 재장악하고 정부군이 공세를 가했지만 정부군은 12월 20일까지 방어선 돌파에 실패하다가 겨우 돌파에 성공하게 됩니다. 반군이 2012년 12월 31일에는 수제 로켓으로 알라위파 거주지역과 대통령궁(!)을 직접 포격했기 때문에 정부군은 죽어라 공세를 가하여 1월 5일 알카에다 다라야 시 책임자의 형제인 모하메드 자와히리를 체포하고 퇴각한 반군들을 사살하며 1월 13일에는 시 대부분을 장악하지만 다시 1월 19일에는 반군이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2월 14일 정부군이 재공세를 가하지만 실패하게 됩니다. 그후 2016년 8월 26일 다라야 항복 때까지 지리한 교전을 벌이게 됩니다.

(2013년 초 전황도, 수도 남서쪽에 다라야(Darayya) 시가 있다)



(2013년 1월 31일 다라야 지역 위원회의 첫 기자 회견, 당시 공세와 도시의 상황에 대한 브리핑)


친정부 스탠스를 취하고 있지만 다라야 시에 대해서는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시리아 내전에서 마지막까지 이슬람주의에 경도되지 않은 반독재 시민투쟁으로써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다른 곳이 지역주의, 이슬람주의에 큰 동기를 가지고 봉기했고 외세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받았거나, 처음에는 괜찮았다가도 순식간에 원리주의자들에게 주도권을 뺏긴 것과는 매우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제가 아사드를 지지하는 것이 종교원리주의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외세에 의한 하야 프로그램과 유언비어를 통한 선동에 대한 반감, 아사드의 원래 행보까지 포함해서 봤을 때의 판단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다라야 시민들에게는 감히 나쁜 소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그들은 반군 비중에서 매우 극소수이고, 아사드가 패망한다 한들 그들이 원리주의를 막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기에 정부군을 지지하지만 그것을 떠나 그들에게 안타까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3년 정부군 전차의 돌입, 다라야 지역 위원회 촬영)


(장기간 포위로 인한 약의 부족을 호소하는 샤미 병원의 의사, 다라야 지역 위원회 촬영)


다라야 지역 위원회는 2012년부터 2016년 다라야 항복에 이르기까지 4년간 지역 행정을 맡으며 시민 자치 위원회로써 훌륭한 일들을 해왔습니다. 그들의 기록은 다음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라야 지역 위원회 유튜브 채널 : https://www.youtube.com/channel/UCdFrfZl--qygdc2DJFgS__w
다라야 지역 위원회 페이스북 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Daraya.LocalCouncil


결국 2016년 정부군의 작전으로 다라야 옆의 모아다미야 시가지와 단절되고, 그동안 식량을 책임져왔던 남쪽의 논밭 지대를 점령당하면서 결정적인 패배가 다가왔습니다. 처음에는 정부군의 항복 요구를 거부했으나, 곡물 창고가 공습으로 터지면서 결국 저항할 수 없게 되었고 정부군에게 2016년 8월 25일 항복 의사를 타전하면서 4년에 걸친 활동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들리브로 떠나기 전 다라야에 남기로 한 사람들과의 마지막 인사)


700명의 반군과 300명의 반군 가족은 이들리브로 떠나기로 했고, 나머지들은 정부에 귀순했습니다. 그리고 다라야 지역 위원회는 이들리브에서 다라야 사람들이 정착한 2016년 11월 23일, 해산식을 가지고 위원회를 해체하게 됩니다.

(다라야 지역 위원회 간부들의 해산식 겸 4년간의 마지막 업무 결산)




가장 강하시고 모든 것을 아는 분께서 부디 그들의 영혼을 축복하고
순교자들을 어루만져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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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참피사냥꾼 2019/01/23 15:57 # 답글

    어익후 순간 다라시랑 헷갈림;;
  • 2019/01/23 21: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1/23 22:1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9/01/23 22:4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abu Saif al-Assad 2019/01/24 00:52 #

    시민 자치 기구는 그럭저럭이었는데, 여기도 반군은 "아즈나드 알 샴 이슬람 연합" 소속이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알 카에다 다라야 지구 사령관의 형제가 사살당한 것을 언급하고 있는 만큼 완전히 문제없을 순 없었던거죠. 그래도 중심을 잘 지킨 편입니다.

    시민들 삶은 그냥 그렇습니다. 반군 활동이나 자치기구 활동가들은 남아봐야 처음 얼마간은 그냥 놔두는 것 같다가도 수틀리면 대량 체포가 벌어질 수 있으니 이들리브로 떠났고 피난갔던 사람들이 속속 돌아오고는 있는데, 아직까지는 일이 없고 정부 주도 복구 사업이나 인도적 지원으로 먹고 사는 거지요.

    이들리브로 떠난 반군들은 그쪽 반군의 호의로 집이나 살곳은 대충 얻어서 살고는 있는데, 타흐리르 알 샴이나 아흐라르 알 샴 등 기존 반군 브랜드의 지역 지부로 활동한 세력들은 거기서 본부에 편입된 후 재편성을 받지만 기반이 없는 파일라크 알 라흐만이나 자이쉬 알 이슬람 같은 동부 구타 반군들은 세력이 적은 것도 아닌데도 그냥 조용히 죽어지내고 있습니다. 향후 상황 돌아가는 거 봐서 기존 반군연합체에 합류하거나, 터키 지원 반군으로 재편되던지 선택을 하리라 봅니다. 주도적인 역할은 못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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