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앞쪽을 잡아 14인치 정도 길이의 칼날을 가진 짧은 정글도를 상정하고 대련을 해봤습니다. 특징은 왼손의 역할이 극도로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권법이나 전통권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왼손을 잘 사용합니다. 아무리 칼만 가지고 싸우려고 해도 이미 접근한 상황에서 간격이 너무 짧아 상대방이 왼손으로 체킹하기 쉬우며, 한번 잡히면 너무 빨라서 순식간에 당하게 됩니다. 결국은 왼손을 잘 사용하는 법을 익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인도네시아의 펜칵 실랏과 같은 무술이 이러한 상황과 도구를 쓸 때의 노하우가 매우 뛰어나다고 봅니다. 17인치 이상의 정글도는 좀 위험하긴 해도 충분히 검만 가지고 싸울 수 있는 반면, 14인치 정도의 짧은 칼들은 왼손의 활용이 빠르고 활발하며 정교하지 못하면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지난주에 노마스크로 실험했을 때는 저도 그럭저럭 왼손으로 체킹할 수 있었는데, 역시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착용하고 고속으로 하면 숙련도에 따라 되고 안되고가 바뀌네요. 한편 17.5인치 칼날로 할 때에도 노마스크 상태에서는 상대방이 생각보다 패리 후 근접하고 왼손으로 체킹하는 것이 쉽게 되었지만, 방어구 다 끼고 고속으로 때릴 곳 다 때리면 생각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날길이 몇인치부터가 왼손 vs 칼 단독 어느쪽의 효용성이 더 좋아지는 기준점이냐 라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어렵지만 최소한 14" vs 17"의 정글도는 싸울 때 최적의 양상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네요. 확실한 건 아주 짧은 도검은 권법의 요소가 훨씬 크다는 겁니다.
덧글
날 길이 2척5촌의 날을 덜 세운 호도豪刀를 날듯이 휘두른 하리가야 세키운이지만 말년에는 1척5촌까지 칼 길이를 줄였다고 합니다. 나카야마 하쿠도가 만년에 총길이 2척8촌까지 죽도길이를 줄였다고 하고, 무도류에서는 정촌이 십악검, 3척2촌이지만 텟슈가 남긴 검도서를 보면 팔악검이라고 해서 정신과 담력을 기르기 위해서 2척 5,6촌까지 검 길이를 줄이는 것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야규 신음류에서는 상대가 취한 상, 중, 하단에서 무토토리를 하는 것을 연습하는 세 카타에 빈손에 검을 들었다고 보는 無刀勢, 손이 검이 되었다고 보는 手刀勢, 손이 없고, 체간의 움직임으로 位를 잡는 無手勢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소태도 길이에서 권법과 무기술의 이치가 나뉘어 지지만 아마 이런 식으로 권법과 무기술의 이치가 원융회통해 나간 것 같네요.
제 선생님도 태극권 연습할 때 손끝을 빳빳하게 세워라면서 태극권은 검에서 유래했고, 빳빳하게 세운 손바닥掌 이 곧 검, 창끝이라면서 추수에서 점점연수로 상대와 접할 때 면이 아니라 점으로 붙어라고 하시던데 그것과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 선생님이 추수랑 찰검이 익숙해지면 이런 것도 가능하다면서 나무단검을 가지고 보여주시던데 순식간에 상대의 손목이나 목을 따면서 빠져나가더군요.
경신명지류의 無刀の物이라는 전서를 보면 단창, 봉, 만력쇄, 표창 같은 이종무기의 사용에 대해서도 나와있습니다. 이런걸 보면 장검의 기법을 소태도까지 줄여서 권법의 신법과 합일하는 한편, 단창, 봉 등의 다른 무기들의 쓰임과 간합을 익혀서 맨몸이건, 검이건, 다른 무기건간에 능숙하게 간파하는 것이 신음류의 진정한 무도無刀인것 같습니다. 소태도에 가깝게 검을 줄이는 것은 무도류도 비슷하네요. 무기술, 신법같은 기법을 더 중요하게 보았나 심법을 더 중요하게 여겼나 정도의 차이지 무검無劍의 가르침 자체는 일도류나 신음류나 통하는게 있는 것 같습니다.
장검의 이치를 소태도까지 줄여서 권법과 합일시키고 검경, 수비록, 무비요략 등을 통해서 이 이치를 창봉술이나 대도술 등으로 연계시키면 백타(권법)을 포함한 무예 십팔반의 수련에는 이미 무검無劍의 가르침이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내가권법 보면 황백가의 스승이었던 왕정남은 권법 연무하면서 이거는 창법, 이거는 도법 이런식으로 권법의 초식에 각 무기술의 이치가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한편 정남사법 征南射法이라는 왕정남의 궁술서도 황백가가 전합니다. 태극권에 일신비오궁(一身備五弓)이라는 가르침이 나오는 것도 이와 유관한 것 같습니다.
쿵푸나 고류무술을 잘 연구하면 무기술과 권법, 격투기의 이치가 하나로 통할 것 같네요. 이론적인 정립을 기격으로 응용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확립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제 경우 짧은 칼로 스파링하면서 느낀 게 원래는 단순히 정말 이 칼은 아베니르마냥 방어가 있을 수 없는건지 확인해보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더 많은 걸 얻은 것 같습니다. 특히 중요한 게 멀리에서 칼부터 휘둘러서 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베이고 찔릴 수 있는 거리까지 자신있게 들어가서 상대의 공세를 제압하고 이겨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것 같네요. 그래서 이전에는 상대가 살짝만 피할 수 있는 거리에서도 일단 베어맺고 봤다면 이제는 그런 애매한 거리가 보입니다. 명인이 점점 칼을 짧게 했다는 것은 방어에 대한 확신도 있겠지만 그런 부분에서의 깨달음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상대방을 다치게 한다는 우려가 생각을 많게 하고, 거리에 대한 고민이 검술을 모호하게 만들었지만 우려는 플랫 타격을 옛날로부터 재도입하면서 나아졌고, 거리에 대한 고민은 짧은 칼을 통해서 생각지도 않게 해결의 단초를 잡은 것 같습니다.
역사적인 사례를 보면 나이프 방어는 공격을 막아내고 즉시 관절기로 들어가 제압하고 그 과정에 디스암이 추가되는 유술형 전투술이던지 아니면 서로 거리를 두고 왼손을 사용하며 찌르고 쳐내고 하는 식의 펜싱형 전투술로 구분할 수 있겠던데 유술형 제압술은 상대가 큰동작으로 찌르는 것을 상정하고 대응하는 일종의 호신술 개념이고, 펜싱형 전투술은 결투상황을 상정하고 나오는 방식인데
펜싱형 전투술을 위한 다양한 솔루션이 제공되었고 사용되었지만 폴딩나이프는 말할 것도 없고 픽스드 나이프라고 해도 작은 것들은 그 빠른 공세를 쳐내고 찔렀어도 과연 의미있는 상해를 입힐 수 있었을까가 의심이 들더군요. 지난주 세션 끝나고 멤버들끼리 나이프 파이팅에 대해 다양한 실험을 해봤는데 빠르긴 해도 왼손을 활용한 공방이 안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방 찔렀을 때 확실하게 저지력이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래서 결국 나이프 파이팅을 해도 EDC나이프나 도구 나이프 같은 작은 물건들은 사실상 공멸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고 최소한 날길이 14cm정도, 권장사양은 군용 대검의 한 17cm정도는 되어야 최소한의 저지력이 확보된다고 봤습니다. 그것도 배나 팔다리는 아무 의미없고 얼굴을 찔러야 상대방이 확실하게 패닉에 빠진다고 봅니다. 나이프 파이팅이나 습격 영상에서 몸이나 가슴 팔다리는 수십방을 찔려도 계속 싸우거나 도망갑니다. 암사역 영상이야 칼날도 아주 작고 몸에 찔렸고 찔린 사람도 지방이 많아서 별일 없는데 칼에 찔렸다는 공포심에 혼자 패닉에 빠져버린 것 같고요. 그에 비해 중국 습격 영상에서 목이 그어지기만 했는데도 피가 수돗물처럼 나오면서 힘이 다 빠져서 어정어정 걸어서 쫓아가기만 하는 걸 보면 말이지요. 그리고 베기보다 찌르기가 나은 것 같습니다.
달려들고->쳐내고/막아내고->찌른다 이정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