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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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시리아 경찰의 최후 시리아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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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2011년 6월 6일, 시리아 이들리브 주 지슈르 앗 슈구르 시에서 정체불명의 무장 세력에게 전멸당한 시리아 경찰의 마지막 영상입니다.

시리아 민주화 사태 최초의 무장 세력 등장으로 일컬어지는 이 사건은,

2011년 6월 4일 지슈르 앗 슈구르에서 반정부 시위대는 경찰서를 장악하고 무기고를 털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8명의 보안군이 불에 타 살해됩니다. 경찰서와 관공서를 방어하기 위한 경찰들은 시위대와 산발적인 충돌을 벌이고 있었으나, 6월 6일부터 정체불명의 무장 세력들이 등장했고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20명이 매복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다른 무장 세력과 교전하다 탄약이 다 떨어진 보안대 82명은 경찰 지휘 본부로 퇴각하여 농성하다 모두 살해당했습니다. 다시 우체국을 지키고 있던 8명의 경찰도 살해당했고 우체국은 전소되었습니다.

이 영상은 6월 6일 탄약을 소진하고 경찰 지휘본부에서 농성하던 보안대&경찰의 최후 영상입니다. 이후 정체불명의 무장 세력에 의해 이들은 모두 살해당했습니다.

6월 6일 하루에만 120명의 경찰이 살해당했으며, 이후 지슈르 앗 슈구르 시는 무장 세력에 장악당한 치안 공백 상태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2011년 6월 12일 보안대는 헬기와 포대의 지원을 받아 200여대의 장갑차량을 동원해 무장 세력 격퇴 작전을 펼치게 됩니다.

덧글

  • 드사아 2018/09/07 20:36 # 삭제 답글

    명복을 빕니다. 시리아 사태 보고 평화시위니 뭐니하는 인간들은 정말...
  • abu Saif al-Assad 2018/09/07 21:20 #

    지역마다 상황이 꽤나 달랐는데, 시리아는 지금 난민 사태에서 보면 아실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다정하고 순수하지만 민도가 높은 곳은 아닙니다. 정부 옹호하는 시민을 샤비하(친정부 깡패)라고 외치며 다굴쳐서 때려죽이기도 하고 시위의 과격화가 항상 수반되었고, 총으로 쏘아 진압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가끔 나왔습니다. 물론 다라아(다마스쿠스 근교 소도시, 남부 다라 아님) 처럼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는데, 이것도 진상조사 들어가면 좀 다른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민도는 낮은데 순수하고 독재국가여서 민주주의 정쟁을 경험을 못해봤으니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주 나오는 각 정파의 선동이나 시체팔이에 익숙하지 못해서 쉽게 속고 쉽게 분노했으며 쉽게 슬퍼했습니다. 이미 양쪽의 모습을 볼만큼 봐서 어느 한쪽도 절대적인 정의를 논할 수 없다는 걸 아는 선진 민주국가의 사람들과는 다른 면모이지요. 그런 곳도 목숨 걸로 댓글과 고성으로 자기 지지 정파의 정의를 광변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시리아 같은 곳은 더 말할 것도 없었죠.

    시리아 사태를 자세히 보면 보도에서는 무슨 사람들이 시위를 시작하자마자 군대가 탱크로 깔아뭉개며 총으로 쏴죽였다(실제로 한말)라고 하는데, 2011년 3월 다라 시위에서 과잉진압한 책임자를 사형시키고 정부요인이자 다라 주의 유지를 보내어 장례식에 참석시키는 등 충분한 유화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아사드 대통령이 직접 시위대에게 위해를 가하지 말라고 했고, 그래서 영상들을 보면 시민들이 떼로 모여서 깃발을 휘두르며 시위를 평화적으로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보도대로라면 이미 탱크가 수십대는 돌아다녔겠죠. 시위가 있되 선동꾼이 있고 충돌이 벌어지면 선동꾼은 뒤로 쓱 빠지는 거 우리가 가장 잘 경험해봤습니다. 그러면 방법이 있나요. 방패와 곤봉으로 해산을 유도하고 폭력이 에스컬레이트되며 감당이 안되면 총이 나오는겁니다. 우리나라는 시위 많이 해봐서 적당한 선에서 끊을 줄 아는데, 시리아인들은 경험이 없어서 그냥 눈뒤집히면 쳐들어가서 관공서에 불지르고 다 하는거죠.

    그리고 저 사건은 그런 시리아 국내 혼란에 편승하여 본격적으로 무장 세력이 마각을 드러낸 시발점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6월 4일저때도 반정부 측은 평화시위대를 경찰과 보안대가 쏴죽였고~ 보안대 일부가 시위대로 합류하려고 했는데 장교들이 쏴죽였다고 구라치고 있었고요.
  • 발키리레나스 2018/09/07 21:22 # 삭제 답글

    요즘에는 그나마 언론에서 이들리브반군을 알카에다연계라고 적어놓기는 하던군요.여전히 시리아정부와 무슨 원수가 졌는지 악담하는것은 매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알카에다 연계라는것을 알려주는게 어디니까.아무튼 앗슈그르에서 끝까지 알카에다과 맞서다 전사한 장병들과 경찰들에 대해 명복을 빕니다.
  • abu Saif al-Assad 2018/09/07 21:58 #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내전 관찰자들이 알게모르게 많아졌을 것이고 서구언론도 마냥 손바닥으로 알카에다를 가릴 수는 없을 테니까요.
  • KittyHawk 2018/09/07 22:23 # 답글

    허세꾼이었지만 이슬람형제단의 위험성만큼은 단박에 파악하고 막아섰던 나세르, 하마 진압으로 악명을 얻었지만 국가 초토화를 사전에 막은 하페즈... 이 둘 만한 세속주의 추구자가 중동의 다른데서도 과연 나타날 수 있을지 싶어지게 만드는 순간이네요...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9/08 02:27 # 답글

    1. 6월 6일 이들리브 주 지슈르 앗 슈구르 시에 등장한 정체불명의 무장 세력들이 알카에다 연관 세력이죠?

    2. 무장 세력에 의해 살해당한 경찰들한테 사후 보상과 대우는 해줬나요?

    3. 현 지슈르 앗 슈구르 시 무장 세력 격퇴와 치안과 재건은 진행중이죠?
  • abu Saif al-Assad 2018/09/08 18:58 #

    1.아직은 확실하지 않지만 알카에다 아니면 무슬림형제단 계열 무장세력일겁니다. 이후 이들리브 충돌에서 정체를 드러낸 게 아흐라르 알 샴 대대등 지하디 단체들이었지요. 아니면 터키나 터키의 지원을 받은 특수부대 대원들이었을 수도 있고요.

    2.2012년까지 국가가 그럭저럭 정상적으로 돌아간 것을 보면 장례식과 유공자 지정 등은 이뤄졌으리라 봅니다.

    3. 안타깝게도 2015년 이들리브 대패와 함께 빼앗긴 후 지금까지 지하디 주요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 아사드 2018/09/08 13:38 # 삭제 답글

    이때에 지슈르 앗 슈구르 시에서 시민 대부분이 라타키아로 피난합니다. 이게 시리아 난민 사태의 시작이기도 했지요. 대부분이 라타키아 지방으로 피신하고, 상당수는 라타키아에서 배를 타거나 터키를 통해 유럽행 난민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반군들은 살해당한 경찰들이 정부군에 반란을 일으켜서 죽은 거라고 오히려 뒤집어씌웠습니다.
  • abu Saif al-Assad 2018/09/08 18:59 #

    참담합니다. 알면 알수록 추한 진실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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