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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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이들리브 대패 다이제스트 3. 북서부 대공세와 정부군 참패 시리아 내전


2015년 4월 22일 정복의 군대는 알 마스토마 동쪽의 콰미드 벽돌 공장에 강공을 가했지만 이것은 사실 조공이었습니다. 후방의 지슈르 앗슈구르, 알 가브 평야지대, 아리하 세 거점을 향해 동시에 강공이 가해진 것입니다.

상황은 그림에서 보여지는 대로입니다. 하마 주에서 북쪽으로 올라오는 56번 국도를 통해 보급이 북상한 다음, 지슈르 앗슈구르에 있는 M4고속도로 나들목을 통해 진입 후 아리하에서 물자가 모이고 그것이 정부군이 공방을 거듭하는 알 마스토마, 콰미드 벽돌 공장으로 넘어가는 구조입니다.

당시 병력 배치는 최전선인 알 마스토마, 콰미드 그리고 그 배후지인 아리하 시에 병력 5000명, 후방의 지슈르 앗슈구르 및 주변 지대에 약 1000명 정도였기 때문에 후방 보급선 방어가 제법 취약했는데 이전까지만 해도 반군의 작전지속능력이 짧고 여러 전선을 한번에 열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이정도로도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정복의 군대라는 거대 연합체가 나타나면서 생각도 못한 다방면 공세에 빠진 겁니다.

가장 먼저 넘어간 건 지슈르 앗슈구르였습니다. 이곳에는 정부군 11기갑사단 87여단이 방어를 맡고 있었는데 22일 북쪽 검문소에서 BMP장갑차를 개조한 자살폭탄차량이 터지면서 공세가 시작되었고 북쪽과 동쪽의 4개 검문소가 뚫렸습니다. 87여단은 23일까지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었으나 정복의 군대가 지슈르 앗슈구르 동남쪽의 설탕 공장에도 공세를 가하면서 포위섬멸 될 상황에 빠졌습니다. 지슈르 앗슈구르 동남쪽에는 오론테스 강이 흐르는데 여기에 유일한 다리가 있고 그 국도가 설탕 공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곳을 탈환당하면 퇴로가 사라지는 겁니다.

87여단은 설탕 공장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흐라르 알 샴의 강공에 결국 25일 설탕 공장을 뺏겨버렸고 각개격파의 위기에 몰리자 지슈르 알슈구르 남서쪽의 국립 병원으로 도주하고 거기에 고립되게 됩니다.

지슈르 앗슈구르에 입성한 정복의 군대


요새화되고 높은 병원 빌딩에 힘입어 반군의 공세는 일단 막아냈지만, 중요 도시가 넘어갔고 또 병원에 고립된 87여단 병력은 약 150명 정도로 독자적으로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타이거 부대가 파견됩니다. 물론 이는 단순히 병원에 고립된 병력을 구출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정부군이 공세를 지속할 수 있도록 후방의 보급로를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슈르 앗슈구르 남쪽에 도착한 타이거 대령


타이거 부대는 26일부터 설탕 공장에 대한 공세를 가해 이를 재점령하고 21명의 87여단 장병 구출에 성공합니다. 여세를 몰아 국립 병원 건물의 나머지 87여단 장병 구출을 위해 돌입하여 일시적으로 통로를 열기도 했으나, 대격전 끝에 다시 뺏기고 국립 병원은 4월 28일 재포위당합니다. 정복의 군대는 정부군이 지슈르 앗슈구르에 재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오론테스 강의 다리를 폭파해 버리기까지 합니다.

타이거 부대가 일시적으로 활로를 열고도 실패한 이유는 탄약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그 유명한 다마스쿠스 정부에 직통 전화를 걸어 탄약 좀 달라고 사정하는 타이거 대령의 영상이 나오게 됩니다.
국방부에 직접 탄약을 요청하는 타이거 대령


당시 반군은 미국제 TOW미사일을 펑펑 쏴대며 전차, 장갑차, 방어진지를 신나게 깨부수고 있던 상황이었고, 아무리 타이거 대령이 날고 긴다 한들 탄약이 부족한 상황에서 성공할 순 없었습니다.

TOW대전차미사일을 펑펑 쏴대는 정복의 군대



타이거 부대가 후방 안전을 위해 빠지고 M4고속도로가 대전차미사일 사거리에 감제되자 전방의 정부군의 사정도 점차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27일 알 마스토마 동쪽 콰미드 마을의 벽돌 공장에 2대의 자살폭탄 차량이 돌진, 점화되면서 방어선이 뚫렸고 함락되었습니다. 그리고 4월 29일에는 무스빈 채석장이 함락되면서 마스토마와 아리하를 연결하는 도로가 정복의 군대의 공격에 노출되었습니다. 자칫하면 마스토마와 아리하의 정부군이 절단되고 포위섬멸될 수 있는 위기에 처한 겁니다.

5월 2일자 상황입니다. 아리하 방면의 5000명의 정부군은 강력한 공세에 점점 밀려나고 있었고, 지슈르 앗슈구르 안정화를 위해 급파된 타이거 부대는 탄약 부족으로 구출작전과 후방 안정 모두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M4고속도로는 대전차미사일 사거리 안에 드는 바람에 정부군 차량이 족족 저격당하는 상황에 빠졌습니다.

5월부터 정부군은 나름의 증원을 받아 반격을 개시합니다. 그러나 더이상 정부군의 이들리브 수복이 아니라 후방 보급로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작전이었습니다. 일단 위 지도와 같이 알 가브 평야를 통해 올라가는 56번 국도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헤즈볼라의 도움을 받아 공격해 완충지를 확보합니다.

한편 타이거 부대와 정부군이 다시 재공세를 감행하여 5월 3일부터 지슈르 앗슈구르 방면 안정화를 위해 재진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슈르 앗슈구르 근방에서 전투중인 정부군


지슈르 앗슈구르 국립 병원에 고립된 정부군

국립 병원에 고립된 정부군은 계속해서 들어오는 자살폭탄차량과 대공세를 5월 4일까지 총 7번에 걸쳐 방어해냅니다.

자폭차량과 돌입조를 보내는 알 누스라 전선


국립 병원은 전략적 가치는 사실상 없었음에도 포위된 정부군을 박살내겠다는 정치적 상징성 때문에 정복의 군대는 자폭차량을 보내면서 무자비한 강공을 국립 병원에 펼치고 있었습니다.

5월 7일 타이거 부대가 설탕 공장을 다시 점령했다고 발표한 가운데 정부군은 M4고속도로를 감제하는 두 고지에 대한 탈환 작전을 펼쳐 5월 7일자로 후리카(Frikka)시 북서쪽 알 카르나자(al-Karnaza)까지 진격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두 감제고지에 대한 완전한 탈환에는 실패했습니다. 5월 9일 타이거 부대와 정부군은 국립 병원에 고립된 250명의 장교와 병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2km 남은 지점까지 진격하지만, 5월 10일 국립 병원에 다시 두대의 자폭 차량이 폭발한 다음 병원 우측의 방어 진지가 무너집니다. 반군은 이때 병원 내부로 돌입에 성공하나 격전 끝에 다시 격퇴되었습니다. 타이거 부대는 다시 국립 병원으로 돌입을 시도하지만 결국 돈좌되고 실패합니다. 5월 12일에는 지슈르 앗슈구르 남쪽의 쿠파이르(Kufair) 마을이 반군에게 탈환되면서 결국 국립 병원 구원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끝장났습니다. 정부군은 지슈르 앗슈구르 쿠파이르 마을과 설탕 공장에서 발악에 가까운 격전을 벌이며 뺏고 빼앗겼지만 결국 국립 병원으로 진격할 여력 자체가 사라졌고, 12일 알 마스토마 지역에서 땅굴을 파고 화약을 채워넣어 방어선 전체를 붕괴시키는 터널 폭탄의 점화와 함께 전투가 벌어지고 5월 17일 2500명의 정복의 군대가 자살폭탄차량과 함게 대공세를 개시하면서 알 마스토마의 정부군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19일에는 알 마스토마 시내를 정복의 군대가 완전히 장악합니다. 이로써 아리하의 안전 자체가 담보가 불가능해집니다.

결국 정부군은 19일부터 무기와 탄약을 파괴하고 아리하 시가지로부터 탈출을 개시합니다. 21일 아리하 시내로 정복의 군대가 입성하는 가운데 구원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지슈르 앗슈구르 국립 병원의 87여단 장병들은 결국 5월 21일 오전 8시, 타이거 부대가 기다리는 남쪽으로 모두 흩어져 필사의 탈출을 감행합니다.

지슈르 앗슈구르 국립 병원에서 탈출하는 87여단 장병들


이 과정에서 반군 주장 208명 사살, 65명 체포 그리고 정부측 주장으로는 170명의 잔존병력 중 127명의 병사가 탈출에 성공했으며, 이중 상당수가 정부군에 합류한 직후 부상으로 사망했다고 전해집니다.


그후 정부군은 모든 방어를 포기하고 후방 M4고속도로의 보안에 전력을 다하면서 탈출 후 방어를 굳힙니다. 이 과정에서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분투를 거듭하였고 타이거 대령은 경호원 한명이 반군의 저격에 맞아 죽는 위기를 6월 13일 겪기도 합니다.

전투의 결과는 시리아 인권관측소 추산으로 정부군 사망자 325명 이상, 포로 300여명이며 반군 사망자 221명 이상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전투의 결과 무적의 해결사로 칭송받던 타이거 대령과 그의 부대는 의외로 신통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신화가 깨졌습니다. 물론 탄약의 부족과, 여단급 소수에 불과한 타이거 부대 대원들로는 아무리 잘해도 전세를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타이거 부대원들도 이때 상당히 소모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타이거 대령도 죽을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6월 13일 저격수에게 경호원이 당한 것이 그 예입니다.

또 이전에는 정부군을 이기기 힘들었는데 이제 공군이 없는 반군이라도 알 누스라의 작전 지휘만 받으면 정부군을 사방에서 몰아쳐서 없애버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신시켰습니다. 이 전투로 "정복의 군대"는 브랜드 가치가 크게 높아져서 이후 콸라문 산악지대, 남부 다라-쿠네이트라 주에서도 정복의 군대 지부가 설립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 전투의 패배로 정부군의 가용 병력이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7월달 이뤄진 반군의 알 가브 평야 공세로 정부군이 지슈르 앗슈구르 근방에서 퇴각함은 물론, ISIS에게 팔미라를 뺏기거나 동부 고타의 자이쉬 알 이슬람에게 최중요시설이 즐비한 콰시운 산을 빼앗기는 사건을 막지 못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이때의 패배로 정부군 내부 장교단은 심하게 분열되었으며, 사기는 땅바닥을 쳤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패배로 인한 시리아 정부의 위기는 2015년 9월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것으로 타이거 부대의 참패로 알려진 2015년 이들리브 대패를 대략적으로 알아 보았습니다. 이제 3년이 지나고 2018년인 지금 정부군은 최대한의 병력을 동원하여 이들리브 대공세를 준비중입니다. 이제는 소장으로 진급한 타이거 수헤일 알 하산에게는 그때의 패배를 설욕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터키도 지하드반군을 없애기 위해 러시아와 협력하겠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고, 민사 작전을 위해 방문한 지역 주민들이 정부의 공세에서 지켜달라고 하자 타흐리르 알 샴의 휴전협정 위반을 비난하기도 했다고 하니 결국 이들리브는 정부의 것이 되고 끝날 것이 확실합니다. 치욕을 어떻게 갚아나가는지 두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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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 타이거 부대, 이들리브 작전? 2019-01-18 23:05:34 #

    ... 필수적이지요. 2015년 이들리브 대패 다이제스트 1. 2차 이들리브 전투 2015년 이들리브 대패 다이제스트 2. 이들리브 재수복 전투 2015년 이들리브 대패 다이제스트 3. 북서부 대공세와 정부군 참패 과거 정부군 대패였던 2015년 이들리브 패전에서도 정부군이 털린 이유 중 하나가 알 가브 평야와 56번 국도의 확보에 실패하여 ... more

덧글

  • 피그말리온 2018/08/17 23:12 # 답글

    시리아식 I shall return이네요...
  • abu Saif al-Assad 2018/08/18 01:20 #

    어떻게 진행될지가 궁금하네요.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8/18 00:31 # 답글

    1. 유능한 명장과 최고의 군부대라도 탄약, 식량, 무기 같은 '보급' 이 부족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전쟁의 철칙이 증명된 전투이네요. 이에 반군은 유럽 연합, 미국, 아랍 국가들의 빵빵한 지원과 언론들의 선전선동의 힘을 받아 맹활약을 펼치는 걸 보고 시리아 내전이 반군의 승리인가 싶었죠. 이런 빵빵한 지원을 받고도 반군은 IS와 함께 3년만에 와장창! 신세로 전락했을까?

    트럼프의 지원 중단, 러시아의 등장, 참전 및 지원국의 이해관계, 점령지들에서 반군의 온갖 삽질들과 내분, 타이거 부대와 시리아 정부의 활약에도 3년만에 이토록 쪼그라들었고. 최후 직전 신세로 됐을까? 싶네요. 역시 본색을 막 드러내어 인심과 적을 너무 만들어서 그런가... 이제 저는 얼른 반군이 무너지길 바랍니다.

    2. 터키는 겁나게 얻어 맞습니다. 반미주의 + 시리아 내전에서 미국 반대편 행보(?), 미국인 목사 석방 문제에 경제적으로 뒤지게 얻어 맞음에도 에르도안은 중-러와 파트너쉽을 맺으려는 것 같은데... 터키가 왜?? 싶네요.

    3. 이 블로그에서 연재한 시리아 전투를 보고 시리아 내전의 실체를 알게 된 것처럼. 유럽 난민 사태-시리아 내전에서 전 세계 언론과 미디어가 너도나도 감성팔이, 시리아 반군을 세속주의-민주주의 쟁취 반군으로 포장, 아랍 난민들의 고통을 보도해댔고. 또 화이트 헬멧 신파극, 반군 신파극, 난민 신파극. 몇 개월~1년? 아랍의 봄부터 신파극이 엄청났죠. 나도 1년 넘게 이걸 믿었죠. ...

    지금 이 놈의 언론과 미디어들은 온갖 오보와 왜곡질에 사과 및 정정보도, 객관적인 보도는 하지 않는 것 같네요. 하긴... 미국 주류 언론 전체가 반 트럼프, 안티 트럼프에 매도됐고(월스트리트, 폭스, 대체 언론들 제외), 100개~350개 주류 언론사들이 반 트럼프 사설 연대, 제임스 코미-오마로사처럼 트럼프 배신자들을 스타로 만들어주는 걸 보면 반성은 커녕. 있는 그대로 보도 조차 기대 못할 것 같습니다.
  • abu Saif al-Assad 2018/08/18 01:20 #

    에르도안이 군부 쿠데타를 막을 수 있게 해준 러시아에 크게 감사하고 있긴 한 모양입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반 이스라엘->반미가 되는데 비슷한 정서 아닐까 싶네요. 이슬람주의적 행보가 그동안 소외되어온 동부 시골의 전통적인 정서를 자극하여 표로 이끌어내려는 것이었다라는 것이 그동안 세간의 분석이었는데... 이쯤되면 진심인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네요.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8/18 01:55 #

    러시아? 터키 군부 쿠데타를 막는데 러시아가 큰 역활을 했다고요? '음모론' 이지만 에르도안이 쿠데타 유도했다는 것, 터키 국민들이 쿠데타를 막는데 크게 기여했다로 봤는데 러시아가 도움을 줬어요? 러시아가 도움을 줬다면 미국의 경제 재재와 압박에도 에르도안이 친중-친러-반미적인 행보를 보일만 하네요.

    터키의 세속주의화가 많이 진행된줄 알았는데 동부 시골의 전통적인 정서와 이슬람주의라... 이슬람주의야 미국을 적대하는건 당연하지만 동부 시골의 전통적인 정서를 잘 모르지만, 세속주의와 동떨어진 시골이니 이슬람주의에 깊이 영향을 받는 것인가 싶네요.
  • abu Saif al-Assad 2018/08/18 02:18 #

    러시아가 쿠데타 징후를 미리 파악해서 정보를 줬었습니다 . http://www.google.co.kr/amp/m.yna.co.kr/amp/kr/contents/%3fcid=AKR20160724043900080 su-27격추 사건으로 험악해져 있던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호전되었죠.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8/18 02:50 #

    결국 군부가 에르도안을 축출할려 해봤자 결말은 뻔했네요. 이미 러시아와 터키의 관계는 시리아 내전과 관해 충돌이 있을 것 같아도, 결정적인 이해관계가 크네요. 그리고 현 미국이 재재-압박을 한 중국-러시아-터키-이란-북한. 이미 북한과 이란의 우호적인 관계가 드러나고. 중-러-북 관계도 굳건하고(중-러는 미묘), 터키는 친중-친러화가 진행중.

    중, 러, 이란, 북, 터키, 시리아는 서로 관계가 밀접하고. 여기에 시아파 벨트와 헤즈볼라까지 합친다면... 이 국가들이 반미-반 이스라엘- 반 서방 전선을 구축할 것 같습니다. 아니죠, 이미 반미-반 이스라엘-반 서방 전선을 구축했죠. 어떤 주장에 의하면 바티칸은 친중에 포함됐다고 하네요, 쩝. 한국은 주제도 모르고 이 전선에 끼어들려고 하는 걸 넘어 '그레이트 패권 게임 플레이어' 가 될려는 삽질을 하네요.

    '시리아' 처럼 10년 가까이 이슬람 극단주의와 잘 싸우고 있어서 아사드 정권을 지지해도, 이 오묘한 현실적인 위치에 있는 '시리아' 다보니 친미-친 서방-친 이스라엘 쪽에 있어야 할 한국으로서는 껄끄러울듯 하네요. 시리아로서는 한국과 관계를 맺는건 좋다고 보지만요.
  • 알카시르 2018/08/18 06:45 # 답글

    안녕하세요? 그동안 시리아 내전에 대해 써주신 글 잘 보았습니다. 시리아 내전에 관해서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전문가이신 아부 사이프님께 몇 가지 묻고 싶습니다.

    1. 나무위키의 시리아 내전 문서에서는 시리아 정부군이 국가간의 전면전에 맞추어 육성되었기 때문에 전선도 후방도 없고 국민의 협조도 받지 못하는 내전에는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군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하페즈와 바샤르가 장차 내전이 벌어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해서 전면전보다 게릴라전에 대비하여 시리아군을 훈련시켰다면, 시리아 내전은 조기에 정부군의 승리로 끝났을까요?

    2. 전쟁은 몇몇 명장에게 좌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자니, 그 반례가 너무 많습니다. 이순신이나 나폴레옹이 전형적인 예지요. 시리아 내전도 그러한 것 같던데요. 수헤일 알 하산이나 이삼 자흐레딘 같은 자들이 없었다면 시리아 내전은 조기에 반군의 승리로 끝났을까요?

    3. 이스라엘은 본래 내전 초기에 순니파 정권이 들어설 것을 우려해서 아사드 정권을 도우려 했지만 정부군이 생각보다 잘 싸워서 개입을 단념했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이슬람주의에 맞선 동맹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리아는 내전 발발이 시온주의자의 음모라 확신하고, 이스라엘의 침공에 정부가 붕괴될 것을 우려해서 이스라엘과의 국경지대에 병력과 물자를 배치하느라 반군 소탕에 전력을 다하지 못한다더군요. 상식적으로 세속주의 정권의 유지를 바라는 이스라엘이 아사드의 뒤를 칠 이유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시리아 정부가 시온주의 음모론에 사로잡혀 엄청나게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인가요? 음모론이 정부 중추에까지 파고들어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니 놀랍네요.

    4. 바샤르 알 아사드는 승리에 그다지 기여한 것이 없고 수헤일 알 하산이 사실상 시리아군을 혼자서 견인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치 임진왜란의 승리에 선조는 아무런 공도 없고 오직 이순신 덕분에 이긴 것처럼 말이죠. 선조가 이순신을 질투하고 경계한 것처럼, 바샤르도 수헤일을 경계하고 정적으로 여길까요? 쿠데타까지 일으키지는 않더라도 다음 대선에서 수헤일이 출마한다면 바샤르가 패할 것 같군요.

    5. 수헤일이 바샤르와 같은 알라위파이기에 그다지 문제는 없던 것 같은데요. 만약 수헤일이 알라위파가 아니라 드루즈파나 기독교도였다면 이처럼 출세하거나 공을 인정받지는 못했을까요? 소련군에서 출세하려면 공산당원이 되는 것이 필수였던 것처럼, 시리아군에서 출세하려면 알라위파인 것이 필수라 하더군요.

    6. 바샤르가 알라위파였기에 기독교와 드루즈파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 입장에서는 어차피 다 이슬람이 아니냐 하겠지만, 순니파보다는 알라위파가 낫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만약 아사드 가문이 기독교도였다면, 내전 발발시 알라위파와 드루즈파 등 이슬람계 소수종파는 어느 쪽 편을 들었을까요? 세속적이고 소수종파를 보호하는 정부 편을 들자는 생각보다, 이교도의 지배에서 해방되자거나 기독교에 맞서 이슬람이 단결하자는 생각이 앞서서 순니파 편을 들었을까요?

    7. 나무위키의 화이트 헬멧 문서를 보니, 이스라엘군이 화이트 헬멧을 구출하여 탈출시키고 있다면서 화이트 헬멧이 테러리스트라는 주장은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더군요. 화이트 헬멧이 구호조직을 가장하여 반군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조직인 줄 알았는데 실은 정말로 선량한 구호조직이었던 것인가요?
  • abu Saif al-Assad 2018/08/18 11:51 #

    1. 그랬다면 내전이 한 3년은 빨리 끝났지 싶네요. 시리아 군부도 이걸 예측했는지 공화국수비대를 2011년 여단 편제로 분할해서 재편성했었습니다. 이들은 지금 내전에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지요. 또 다른 사단들도 편제만 안 바꿨다 뿐이지 소단위로 쪼개져서 지휘관 재량을 많이 주고 유연성있는 운용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문제도 문제지만 병사를 장교의 하인처럼 부리는 군문화, 지역주의가 큰 정서, 소련식의 하위지휘관에 결정권을 제한하는 경직되고 느려터진 의사결정체제 등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2.기간은 비슷하게 걸렸지 싶네요. 죽어도 아사드를 지지하는 사회주의자, 소수종파의 지지도 있고 이란 이라크 러시아의 지원도 있으니까요. 다만 수헤일 같은 명장이 없었다면 2018년 지금 우리가 보는 뉴스는 이들리브가 아니라 타르투스 최종결전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3.이스라엘이 시리아 정부를 지키려 했다는 이야기가 돌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건 없습니다. 또한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4차 중동전 이후로도 레바논을 통해 서로 대리전을 벌여 온 적대국가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동맹인 미국이나 요르단 등이 내전에서 반군을 적극 지지하기도 했고 특히 남부전선 쿠네이트라 주의 반군은 이스라엘 병원에서 치료받고 이스라엘 식량을 보급받기도 했습니다.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그랬던거죠. 게다가 이스라엘은 이란 헤즈볼라 공격을 핑계로 자주 시리아 방공망을 교란하고 공습을 해왔습니다. 단순 음모론 차원이 아니라 냉전때 미국이 소련을 의심하고 남한이 북한을 의심하는 것처럼 그럴법하고 합리적인 의심입니다.

    4.아사드는 승리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물론 그가 전선에서 싸운 건 아니지만 초반 다들 방관하며 눈치보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외교전을 펼쳐 이란 러시아의 개입을 유도해냈고 서방언론과의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귀큰 살인 독재자라는 이미지를 영어가 유창한 교양있는 백인 신사로 바꿔놓았죠 또한 자리를 지키고 구심점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이유로 싸우는 친정부 군대,민병대들이 연합할 수 있게 했습니다. 라타키아 타르투스인들은 아사드에게서 같은 알라위라는 정체성을 찾고, 팔레스타인이나 SSNP,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수호자로써 아사드를 보고, 기독교도나 드루즈인들은 수니파 극단주의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는 것을 보고, 세속주의자들은 시대착오적인 종교극단주의로부터 우리의 생활을 지키는 자로써 아사드를 봅니다. 반군이 이 모든 이미지를 통합하는 권위있는 지도자가 없어 서로 분열되고 싸우는 걸 생각하면 바샤르의 역할이 막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시리아 파운드의 가치가 막장이 되어감에도 여러 정책을 통해 화폐가치 유지에 진력하고 아이러니하지만 관광산업 홍보에도 진력하는 등 막장이 된 시리아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반군에 대한 항복시 사면령을 내리는 정책을 시행한 것도 바샤르였는데 이 정책의 효과는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요.수많은 반군과 전선이 이 정책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반군이 항복한 정부군이나 친정부 시민을 무자비하게 처형하면서 정부군이 아예 항복을 거부하고 몇년씩이나 고립된 지역에서 죽기살기로 버티면서 거기에 병력도 두고 탄약도 낭비해야 하는 역효과를 보면 이 정책의 현명함을 알 수 있지요.

    5.수헤일은 어느 출신이었든 상관없었을 겁니다.애초에 그의 이전 전적 자체가 화려합니다. 알카에다 가입 후 정보를 빼내서 내부에서 붕괴시킨 것도 그렇고 그 경력과 능력으로 지금도 공군정보국 사령관 자밀 하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요. 충성심은 검증이 끝났습니다. 또 알라위만 승진한다도 하페즈 시절 이야기고 바샤르 시절에는 인사를 다방면으로 썼습니다. 오죽하면 시리아 사태 초기 때 바샤르가 마누라 따라 수니파로 개종했다는 유언비어가 알라위파 사이에 돌았을까요.

    6.바샤르가 수니파였어도 상관없었을겁니다. 현재 지지의 기반은 세속주의,평등주의입니다. 수니파를 차별하고 소수종파에 쿼터를 몰아주는게 아니란거죠. 물론 수니파 극단주의자에게는 기독교 따위의 권리를 존중해주는것 자체가 자신들에 대한 차별입니다. 그런 인식과는 별개로 바샤르는 현대문명의 가치를 수호하려는 것이고, 이 때문에 세속주의 수니파들은 대부분 아사드를 지지합니다. 서방언론이 아무리 보도를 안해도 이들리브에서 여자들이 차도르 쓰고 다니는게 시리아 사람들 눈에 안보이는게 아니거든요. 지금의 가치관과 생활을 지키기 위해 아사드를 지지하는 것이고 출신 종파는 상관없습니다.

    7.화이트 헬멧이 실제로 구출 소방 업무를 해왔습니다.좋은 일을 많이 해왔죠. 이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군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반군 조직과 연계가 없을 수도 없는것이고 실제 알카에다 깃발을 휘두르는 사진도 있거니와 그 화이트헬멧 광수사진에서 칼든 지하디는 당사자를 찾아서 해명했다지만 좀 뚱뚱한 대원은 자기 반군활동 사진을 올렸다가 나중에 지운 적도 있습니다. 이런데 화이트 헬멧은 반군과 연계도 없고 반군 출신자도 없는 클린한 단체라고 주장할 순 없겠죠. 게다가 서방의 자금 지원까지 받는데요. 결과적으로 화이트 헬멧이 시리아 정부의 공습으로 죽거나 다친 시민들을 보여주고 이것이 서방언론에 의해 확대재생산되어 반군의 정당성을 변호한 사실은 부정될 수 없습니다. IS지역에도 똑같이 공습이 떨어져 시민이 다치고 죽어가며 구조하지만 그쪽은 아예 안보여 안들려 어쩌라고 취급이죠. 그리고 시리아 정부군도 시민은 물론 반군 간부에도 스파이를 침투시키는데 서방이 화이트 헬멧이라는 좋은 조직을 내버려둘 리 없고요. 돈도 받고 서방의 시리아 정책에 협조하며 서방 미디어가 이들에게 포커스를 맞추어 시리아 정부 비난의 첨병으로 쓰는데 다 순수할 뿐이라고 본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겠죠. 말단 대원들은 당연히 순수할 겁니다. 그러나 극단주의 반군도 지도부만 성향이 다른거지 말단 조직원들은 먹고 살기 막막해서 입대한 생계형 반군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면죄부를 받을 순 없겠죠.
  • 알카시르 2018/08/18 18:35 #

    1. 이스라엘은 한 달 전에도 시리아 폭격기를 격추하기도 했지요. 이를 보면 세속주의 세력으로서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의외로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군요. 그런데 비록 무슬림이었지만 파흘라비 황제가 다스리던 이란은 이스라엘과 친했습니다. 엘 시시 치하의 이집트 역시, 엘 시시가 독실한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친합니다. 하페즈도 비록 무슬림이지만 시온주의자들에게 성지를 되찾자는 둥의 주장에는 공감 안 할 것 같은데요. 어차피 되찾아봤자 순니파의 땅이 될 텐데 알라위파가 이스라엘을 적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고, 세속주의자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하페즈 시대에도 이스라엘과 계속해서 싸웠군요. 하페즈도 사실 이슬람 신앙에 투철해서 성지를 이교도의 지배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확신한 것인가요?

    2. 바샤르의 아내인 아스마에 대해서도 나쁜 말이 많더군요. 사치벽이 심해서 바샤르가 내전에서 궁지에 몰렸을 때조차 정신을 못 차리고 사치에만 몰두했다는 둥, 애초에 시리아인도 아니고 영국인이라는 둥 말이죠. 아스마가 상당히 어리석고 품위가 떨어지는 자인가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아내 엘레나 차우셰스쿠는 남편보다 더욱 악했고 남편의 악의 원천이었다는 평을 받았는데, 설마 아스마도 그 정도인 것은 아니겠죠.

    3. 바샤르가 오히려 온건파이고, 무소불위의 독재자가 아니라 단지 바트당 정권의 대표에 불과하다 하더군요. 즉 바샤르 본인은 시위대와 타협을 하려 했지만 동생 마헤르를 대표로 하는 군부가 대통령의 지령을 무시하고 마구 쏘아 죽이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는 듯한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하페즈가 더 오래 살아서 내전 발발 무렵까지 집권했거나, 아니면 하페즈가 실제 역사대로 2000년에 죽었더라도 바샤르가 마헤르의 말을 들어서 초기에 강경하게 진압했다면 일이 이렇게 커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까요? 바샤르가 너무 유약하고 어리석었기에 시위대가 세를 불린 것이 아닌가 한 것이죠.

    4. 본래 하페즈의 맏아들 바셀이 죽은 뒤 후계자로 가장 유력했던 것은 마헤르였지만 오랫동안 시리아를 떠나있던 바샤르한테 후계자 자리를 빼앗겼다더군요. 마헤르가 얌전하기는커녕 성격이 불 같은 자라 하던데, 바샤르의 자리를 노리거나 바샤르에게 불만이 많거나 하지는 않나요?

    5. 2014년 시리아 대선에서 바샤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샤르가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다는 증거가 될까요? 일단 2000년과 2007년 대선에서는 후보가 바샤르 한 명뿐이었으니 당연히 부정선거이지만, 2014년 대선도 일고의 민주적 가치도 없는 부정선거에 불과하며, 만약 제대로 선거를 했다면 바샤르는 결코 당선되지 못했을까요?

    6. 위에서 이들리브의 패배로 인해 정부군 장교단이 심하게 분열되었다고 하셨는데, 잘 이해가 안 되네요. 계속 싸우자는 파와 항복하자는 파로 분열되었다거나 뭐 비슷한 것인가요?

    7. 제가 이슬람주의를 싫어해서 바샤르를 응원했는데, 생각해보니 시리아는 이란과 한패이고, 이란이야말로 사우디와 동급이거나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는 막장 이슬람주의 국가 아닌가요? 비교적 온후하다는 인상이 있는 순니파에 비해 시아파는 과격하고 광신적이라는 인상이 강한데 말이죠. 게다가 독재국가인 러시아, 중국, 심지어 악의 축 북한하고도 한패라고 하던데, 바샤르의 승리가 과연 유익할지 모르겠습니다. 인권, 민주주의, 도덕이 후퇴하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까요?

    8. 아부 사이프님은 터키에도 밝으신 듯한데, 터키에 대해서도 조금 묻겠습니다. 2016년에 터키군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저는 처음에는 아타튀르크나 에브렌 등의 유지를 잇는 세속주의 세력이 이슬람주의 정권을 쓰러뜨리려 한 시도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반군이 귈렌의 수하라는 보도가 나오더군요. 제가 알기로 귈렌은 세속주의자가 아니라 에르도안보다 더욱 과격한 이슬람주의자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당시 반란은 이슬람주의자의 내분이고, 만약 성공했다면 세속주의는 지금보다 더욱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며, 반란 진압 이후 에르도안이 자행하는 숙청도 귈렌파만을 대상으로 할 뿐 세속주의 세력은 여전히 건재한가요? 사실 이슬람주의를 싫어하는 러시아가 왜 에르도안이랑 친하게 지내고 반란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에르도안에게 넘겨서 쉽게 진압하도록 했는지가 의문이었는데, 반군이 귈렌주의자였다면 말이 되는군요. 에르도안보다 더한 이슬람주의자의 집권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 abu Saif al-Assad 2018/08/18 21:33 #

    1.세속주의라고 해서 한편이 되진 않습니다. 공산주의 국가들끼리도 서로 싸우는데요.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장기간 전쟁해온 원수 사이입니다. 게다가 하페즈나 바샤르는 종교적인 동기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밑의 국민들이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만 하페즈는 알라위의 이질적인 종교 의식이 수니파의 불쾌감을 부를 것을 의식하여 알라위 의식을 수니파 방식과 짬뽕시킨 바 있습니다. 시리아뿐만 아니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이집트의 나세르, 사다트 같은 지도자들은 모두 종파, 부족, 지역주의를 희석시키고 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자기 종파에 몰아주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동향 사람이고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박정희대통령의 고향 인맥 속칭 TK가 정부와 재계 요직을 장악했고 경남이나 충청도는 그 아래, 호남은 거의 천출 취급을 받다시피 했습니다. 사담 후세인이 수니파를 밀어준 것은 수니파의 교리나 종교 대립 때문이 아니라 수니파가 고향인 티그리트에 모여살기 때문이고, 하페즈가 알라위파를 밀어준 것은 역시 자기 고향인 라타키아에 알라위파가 모여살기 때문입니다. 호남이나 충청도 사람들이 TK가 다 해먹는 관직과 기득권에 불만과 울분이 가득한 것처럼 시리아, 이라크 등도 똑같았습니다. 먼 나라고 문화가 다르니까 우리가 느끼기에 좀 별나라 세계처럼 느끼는데 우리나라도 엄연히 제3세계 수준의 나라였고 우리나라를 대입해서 보면 금방 이해가 됩니다.

    군부 장교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대통령에 올랐으나 대외적인 안보 이슈를 추진제로 삼아 여당 의원들을 정보부에 끌고가 개패듯이 패고 개헌을 통해 종신대통령에 올랐으나 충성을 놓고 경쟁하던 부하에게 총맞아 죽고 군부의 유력자 2세력이 상호 견제를 벌이다 한쪽이 기습 체포로 감옥에 보내버리고 대통령을 겁박하여 하야시킨 다음 정권을 잡는다 아프리카 제3세계 같은 느낌이죠? 사실 한국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과거의 한국은 미개한 제3세계 국가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3세계의 정치상황을 이해하는데 한국 근현대사가 훌륭한 거울이 됩니다.

    2.아스마에 대한 비난은 걸러 들으셔도 됩니다. 대부분은 루머입니다. 이건 있네요. 친정에 보낸 이메일이 해킹되었던 적 있었는데 여기서 "우리 남편이 독재자라니 말도 안된다. 우리집에선 내가 독재자다" 등의 흔한 호랑이 마누라 같은 소리를 한 적은 있습니다. 아스마는 이미지 정치의 최고봉을 달리며 아랍 여성이라기보다는 유럽 백인 커리어 우먼으로써의 경력을 싾아 온 사람이고 내전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신여성으로써 인기가 높았습니다. 반군측 루머는 막 던지고 보는 게 많은데 가령 바샤르는 권력을 잃었고~ 혁명수비대 사령관 카셈 술레이마니가 진짜 시리아 대통령이고~ 쿠데타 루머만 해도 제가 들은게 세가지는 되네요.

    3.아사드가 바트당 정권의 대표인 것은 맞으며 협의를 통해 정권을 이끌어나가는 것도 맞습니다. 바트당 보수파에 비하면 상당히 온건한 성향인 것도 맞지요. 다만 2011년 6월을 기점으로 좀 더 강경책에 경도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외세의 개입과 무슬림형제단의 발흥을 감지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르드, 무슬림형제단 등의 정치 세력에 계속해서 제도권으로 들어오라는 제스추어를 취했고, 헌법 개정을 이뤄냄으로써 바트당 독재의 헌법적 근거를 삭제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2012년에는 이미 아사드가 뭘 한다고 해서 통제가 되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초반에 무력 진압을 강경하게 했다고 해서 뭐가 바뀌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초반에 대부분 무장 단체들은 한번씩 진압에 성공했었거든요. 외세가 리비아식 무력 하야 옵션을 선택하고 외국에서 알카에다 전사들이 진입하고 서방이 군사 고문단을 파견하고 무기와 장비를 지원한 시점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선은 진작에 넘었습니다.

    4.마헤르는 형을 사랑하고 그 충성은 어디 비할 데가 아닙니다. http://zairai.egloos.com/5871046 를 보시면 됩니다.

    5.시리아의 선거는 그냥 요식행위에 불과합니다. 2014년에 단독후보가 아닌 여러 후보를 내세우고 당선되었는데 당연히 선거는 정부군 지역에서 이루어졌고 정부군 지역에서 아사드를 지지하지 않을 리가 없던 것이죠. 하다못해 07년에 그의 희망대로 자유경쟁선거가 이뤄졌다고 해도 다른 정치인들이 인지도도 없고 기반도 없는 상황에서 역시 아사드가 당선되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인기도 좋았거든요. 비슷하게 대안이 없어서 계속 당선되는 러시아의 푸틴 같은 사례가 있는데 딱 그정도의 정치 지형이라고 보시면 될겁니다.

    6."또한 2015년의 상황을 고려하자면, 당시 시리아군은 완전히 돈좌된 상태였다.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졌고, 장교단도 사분오열된 상태였으며, 수뇌부는 처참한 수준으로 군사력 통제에 낮은 효율을 보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우리측은 전투능력이 있는 친정부 민병대 조직에 집중 할수 밖에 없었다. 수헤일 장군이 이끄는 여단병력, 사막의 매, 혁병수비대 파병병력, 헤즈볼라, 파티미드(아프간 민병대), 투르키/이브라힘 민병대, 세이흐 술레이만 민병대, 자원자로 구성된 5여단 등의 전투가능 병력이 그 예이다." -시리아 파견군 1진 드보르니코프 상장 http://transural.egloos.com/321679

    구체적으로 어떻게 분열되었는지는 알 순 없습니다.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시리아 파병 러시아군 사령관이 그렇다고 하니까요.

    7.과거 이란-이라크전 때 이란은 그렇게 원수라던 미국에게는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CIA자금 지원을 받았고, 이스라엘도 이란에 무기 부품을 제공했습니다. 한국도 F-4전투기 부품을 제공했습니다. 국제정치에서 생존이 걸리면 사상 다 때려치우고 실리를 찾게 됩니다.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시리아는 이라크와 바트당 분열 책임을 떠넘기며 험악한 사이가 되었고, 그래서 이라크만 털리면 된다는 심산으로 이란을 지원했습니다. 외교적인 측면의 이야깁니다. 이때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건데 현재 국가의 생존이 걸린 입장에서 뭐가 됐든 도움은 받아야하는거죠. 우리나라도 미국의 대 이란 재제를 요리조리 회피해가며 이란산 원유 수입하고 이란 공사 따내고 물건 팔고 우회해서 대금 결제 하고 그랬는데 그렇다고 극단주의에 동조하는 건 아니죠. 외교적 군사적 문제와 한 나라의 정책적 방향은 다른겁니다.

    러시아 중국 북한이 우리와 대비되는 제2세계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 전에 이슬람 극단주의는 민주주의와 도덕의 후퇴를 논할 수 있는 정도를 떠납니다. 현대 문명과 사상과의 영원한 결별 아니 오히려 현대 문명과 사상을 증오하는 세상이 오는겁니다. 이슬람 극단주의는 21세기 그 어떤 최악의 정치체제보다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며, 똑같이 타락한 서구문명 이교도인 우리도 개종하고 칼리프의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안전할 수 없는겁니다.

    8. 에르도안의 귈렌드립은 그냥 드립입니다. 과거 걸핏하면 빨갱이드립 미제 간첩드립 치는 것과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 2018/08/18 13: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8/18 21:4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8/18 21:5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드사아 2018/08/18 20:44 # 삭제 답글

    시리아 내전 눈팅을 늦게 시작한 편이라 이 전투가 항상 궁금했는데 꿀잼 글 잘 읽었습니다 ㅇㅅㅇbbb
  • 시민 2018/08/18 21:38 # 삭제 답글

    시리아 내전 이후 중동은 어떻게 될까요?
  • abu Saif al-Assad 2018/08/18 21:46 #

    이란이 시리아 이라크 예멘 후티에 더욱 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고, 사우디와 대립각을 세워 일종의 중동 냉전 상황을 만들게 될 겁니다. 뭐 사실 이미 만들어진 상태죠. 이 상태로 이어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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