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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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체계 vs 현대 체계 전술적 관점


옛날 무술은 체계화가 안 된 것은 아니나 현대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중구난방이다. 옛 무술은 기억술을 활용해 체계를 암기하게 만드는 "검결" 같은 싯구를 두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여러 기술을 연습하면서 거기에 내제된 전투의 원리를 기술 연습을 통한 모의 전투를 통해 깨닫게 하는 방식이다. 검결을 통해 기억의 뿌리에서부터 자라나 기술이 기둥에서 가지로 뻗어 나가듯이 하나의 큰 나무를 형성하는 시스템이다.

그에 비해 현대는 개개의 기술보다는 각 원리를 따로 빼내서 죽 늘어놓은 다음 이 원리를 스파링을 통해 스스로 적용해보도록 하는 방식이다. 물론 가장 기본이 되는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나, 옛날 체계에 비하면 그 숫자가 아주 적고 단순하다.

옛날 체계는 특이하게도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비슷한데, 15세기 리히테나워류도 그렇지만 중국도 비슷한 체계를 가지고 있고 일본도 일도류나 기타 유파들을 보면 검결은 없어도 여러 기술들을 통해 검리를 획득하게 하는 방식은 동일하다. 그래서 이 방식으로 무술을 배우게 되면 어떻게 이 기술연습 없이 성취가 되느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다.

변화

그렇다면 언제부터 옛날 체계에서 현대 체계로 넘어갔는가? 서양은 대략 16세기부터 그 싹이 트기 시작한다. 이미 리히테나워 같은 경우 15세기부터 링겍,단직 등이 검리를 17개로 나눠 정리하면서부터 시작했고, 16세기 중반쯤에는 기존의 검결이 무시되는 경향을 보인다. 요아힘 마이어 시대쯤 되면 더 분화된 개념과 자세를 쭉 늘어놓고 간략한 설명과 어디에 쓰이는가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런 나름의 체계화가 제법 진행된 티가 난다.

이탈리아도 비슷해서 16세기를 거치며 자세나 기술이 중구난방으로 있던 과거 검술(다르디 학파)의 세태를 비판하고 숫자로 이루어진 직관적이고 기억하기 쉬운 자세명을 만들며 공방 기술도 간략화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안젤로 비지아니를 통해 나타난다. (다만 다르디 학파 정도도 15세기 리히테나워와 비교하면 상당히 정제된 타입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여전히 기술을 통해 검리를 학습한다는 내용면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못한 교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스파링을 통해 기술을 겨루는 체계가 확실히 드러났던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리히테나워류는 요아힘 마이어를 보면 맞고도 인정 안하고 한대 더치거나 반항적인 상대를 치고 묶어버리는 예시가 자주 나오고 이는 상당히 경쟁적인 스파링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탈리아는 숫제 기술을 겨루는 세미스파링 격의 아샬티, 승부를 가리기 위해 진짜로 싸우는 압바띠멘띠 두가지로 스파링을 구분한다.

교습에서의 스파링의 도입이 이런 체계화를 만들기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한편 18세기에 들어서면 이런 체계화가 급격하게 완성되는데, 스캇츠 올드 스타일에 대한 토마스 페이지의 Use the Broadsword문서는 이런 모습을 잘 보여주며, 좀 더 시간이 지나 헨리 안젤로스의 브로드소드 검술 체계를 보면 사실상 현대와 다를 바 없이 완성된 모습을 보인다. 기본기를 익히고 체계적으로 늘어놓은 요소로써의 검리를 스파링에서 직접 적용해보는 시스템이며, 이는 현대의 서양 스포츠 즉 펜싱이나 복싱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시스템이다.

중국의 경우는 20세기 초까지 옛날 체계로 움직이다가 신해혁명 이후 중앙국술원의 등장으로 중국무술이 한데 모이면서 점차 체계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현대 우슈에 이르러 전통권의 복잡하고 추상적인 설명에 대응해 현대적이고 확실한 개념과 체계의 재정립을 이룩했다고 알려져 있다.

비교

아주 옛날 체계는 기본적으로 기억술에 의지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검결로 하거나 또는 책, 두루마리 같은 것으로 시동을 걸로 특유의 고유 용어를 쓰며 검리를 따로 빼서 나열하기보다는 기술 연습을 통해 다양한 검리를 깨우치게 하는 방식이고,

과도기적 체계는 옛날 체계의 특징을 상당부분 보유하고 있으며 여전히 기술 연습을 통해 검리를 깨우치게 하고는 있으나 검리 자체를 빼서 나열하고 목록화시키는 과정이 드러나고 추상적인 부분이 점점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이며,

현대적 체계는 추상적이고 이해가 힘든 고유 용어도 치워버리고 현대인들이 쓰는 이해하기 쉬운 단어로 설명하고(ex: 분노의 베기 -> 대각선내려베기) 개념을 늘어놓고 이를 각자 자유롭게 적용해볼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과거처럼 많은 기술에 의지하여 검리를 역추적하도록 하는 방식은 쓰지 않는다.

현대적 체계는 접근이 쉽고 배우기 쉬우며 이해하기 쉽고 바로 스파링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효율적이지만 반면 기술적인 면에서는 사실상 기본기에 검리 좀 얹어 쓰는 식이기 때문에 빠르게 한계에 봉착할 수도 있다.

옛날 체계는 정확히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옛날 체계라고 무조건 접근이 어렵고 배우기 어려운 건 아니지만 처음에 특유의 용어를 기억하고 적응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스파링에 쓰이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린다. 그대신 다양한 기술을 심도있게 연습하기 때문에 각 개념을 좀 더 능숙하게 쓸 수 있게 되는데 현대적 체계 하에서는 자기가 잘하는 기술 몇개로 고정되고 스파링만 많이 하기 때문에 잘하는 건 더 숙달이 되지만 못하는건 계속 안쓰고 연습도 안되는 편중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건 나도 똑같이 겪는 상황이다.

뭐가 더 나은가?

어느 방식이 더 우월한가에 대해서는 나도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한때는 현대적 체계가 가장 낫고 옛날 체계는 글러먹었다고 생각했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결국 단순한 기술 몇가지로만 스파링하는 한계를 절감하고 옛 예시를 찾음으로써 그 한계를 돌파하는 단초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생각을 고정할 수는 없다.

한편 그렇다면 현대적 체계를 기반으로 옛날 체계나 기술은 데이터베이스로 삼아서 막힐때 꺼내 쓰는 방식으로 하면 되지 않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식이라면 역시 그 기술이나 개념은 맛만 보고 마는 수준으로 끝나고 어찌어찌 쓰는 기술만 잘 쓰게 되는 상황이 된다. 스파링하다가 생각이 나서 아 이런 게 있었지 하고 쓰게 되어도 숙달이 부족해서 실패하게 되는 등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옛날 방식으로만 할 수도 없는데 실제로 쓰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리고 숙련도에 비해 스파링 적응도가 많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취미로 검술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여러가지로 맞지 않는다. 그러나 15세기 리히테나워류를 할 경우 체계 자체가 옛날 것이기 때문에 그걸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어디서 비틀리기 쉽상이다.

이런 문제는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에 함부로 결론을 낼 수 없지만 16세기의 체계가 도움이 된다고 본다. 그중에서도 아샬티 체계가 좋다고 보는데 아주 격렬하게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느정도 심리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고 그 여유 속에서 자기가 써보지 않은 검리나 기술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스파링과 기술연습 사이에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것도 기본기가 확실히 숙련되고 기본기 안에서 움직이며 승부보다는 틀 안에서 이기는 것을 가장 우선시해야 하기 때문에 여전히 연습을 등한시하고 이기는 것만 생각하면 안된다. 사실 팀내에서도 아샬티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풀 컴페티션보다는 검리의 숙달 그리고 비효율보다는 효율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이것이 가장 나은 대안이다. 현재까지로는..

덧글

  • ㄴ늗 2018/08/15 21:32 # 삭제 답글

    맞는 말씀이십니다. 격투기도 경쟁적 스파링만 하는 체육관에서 배우면 빨리 실력이 늘긴 하는데 쓰던 것만 쓰게 되고 결국에는 한계에 봉착하지요. 아샬티-메소드 스파링-롤링과 같은 기술 중심적인 대련의 존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 abu Saif al-Assad 2018/08/15 23:42 #

    그런 체계로 훈련해야 나중에 수련생이 매번 똑같은 기술로 뻔한 스파링하는 것에 질려서 관두게 되는 경우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손에서 손으로 배우는 것이 알파이자 오메가인 것은 맞지만 기술의 데이터베이스가 있어야 옛 사람들의 해결책 중에서 좋은 걸 따와 적용해볼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강한 스파링에서는 자기가 새 기술을 써볼 수가 없죠. 숙련도도 떨어지고 몸에 배인 움직임도 아니고... 그래서 아샬티와 같은 방식으로 정석을 재확인하고 안해보던 것도 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 모아김 2018/08/15 22:49 # 답글

    원래 신승 영우와 넨아미 지온의 검술은 기술 수가 수백가지로 엄청나게 많았다고 합니다. 그걸 쥬조 효고노스케가 33개의 핵심기술로 콤팩트하게 줄였다고 하지요. 이후에 신카게류 같은 경우에는 정리를 나름한편이지만 종래의 카게류 유래의 카타와 이세노카미가 직접 만든 카타가 섞여 있습니다. 일도류는 오노 타다아키를 비롯한 오노 가문 3대가 17세기 초에 내려오던 카타들을 갈아엎고 대태도 56본으로 깔끔하게 정리, 정제해서 카타를 만들었지요.

    검도로 따지자면 치바 슈사쿠의 검법 68수, 연격을 현대적 체계라고 보고, 일도류 본전 카타 三重, 대태도 56본, 소태도, 상소태도, 불사도를 옛날체계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근데 이렇게 보면 그냥 동전의 양면, 수레의 양바퀴, 새의 양 날개지 따로 뭐가 더 낫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68수도 보면 개별의 기법내에서 특히 중요한 게 있고 이를 위주로 이해하다 보면 뿌리->줄기->잎의 체계화가 이루어지던 것 같더군요.

    호구+죽도시합을 하지 않고 카타 훈련을 주로 했다하더라도 데라다 무네아리나 마니와넨류 방계 아쯔미넨류渥美念流처럼 죽도파를 시합에서 털어버리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히고 히키타신카게류 처럼 죽도파였던 신도무념류 와타나베 노보루 한 사람한테 죄다 털려버리는 경우도 있으니 말입니다.

    히키타 신카게류는 직접 키리무스비를 피하고 카타연습도 되게 부드럽게 했던 반면에 마니와 넨류는 직심영류 비슷한 법정 오모테 카타로 키리무스비, 키리오토시 연습을 굉장히 빡세게 해서 기초를 단련한 게 이런 차이를 부른게 아닌가 싶습니다.

    메이지 시대의 전설적인 검호이자 변호사, 정치가였던 혼마 사부로本間三郎는 마니와 넨류 방계 혼마 넨류의 문주이자, 젊은시절에 사카키바라 켄키치와 야마오카 텟슈에게 사사한 인물로 몬나 타다시, 나이토 다카하루, 사사키 마사요시 등 경시청의 쟁쟁한 검사들을 죄다 털어버렸다고 합니다.

    사카키바라 켄키치는 죽도파였지만 법정을 연습했고, 야마오카 텟슈는 카타+죽도파였는데 죽도시합의 성적보다 타치키리를 통해서 자기 본면목을 깨닫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하지요.

    치바 슈사쿠의 후계자로 치바 쇼사쿠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친 아들은 아니고 양자 같은데 이 사람도 사카키바라 켄키치와 야마오카 텟슈에게서 검을 사사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검도 교범을 보면 법정 1,2본과 직심영류 후쿠로지나이 카타를 변형시킨 연격과 비슷한 죽도형을 기초연습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치만 쥬지로八幡十二郎는 신도무념류 출신의 검사인데 그의 검도교범을 보면 오모테 카타 고카고쿄五加五行 5본과 죽도로도 연무할수 있는 히우치非打 10본을 연습법으로 넣고 있습니다.

    혼마 사부로의 검력과 치바 쇼사쿠와 하치만 쥬지로의 검도교범을 통해서 우리는 직심영류 법정, 신도무념류 고카고쿄, 넨류 오모테 카타같이 키리무스비의 감각을 회득하는 오모테 카타와 이를 응용해서 간단한 기술 및 치고들어가기를 연습할 수 있는 연격 같은 것들이 대련 이전에 필요함을 알수가 있습니다.

    오가와 츄타로도 보면 법정 같은 오모테 카타나 원간대기, 연격연습 빡시게 해서 어느정도 기초 쌓이거든 대련하면서 일도류 56본 배우면서 세부적인 기술을 가다듬고 검술의 개념을 익혀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체계와 현대체계는 수준과 상황에 따라서 연습법을 달리 해야 하는 것이지 우열의 문제가 아닌것 같습니다. 구미타치와 투로를 위시한 옛날체계는 무의식에 기반이 되는 기초 역량과 기본 개념을 머금고 기르는 養氣에 해당하고 스파링을 위시한 현대체계는 함양된 개념을 상대와의 연습에서 의식화시켜 기술로 표출하는 練氣로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 abu Saif al-Assad 2018/08/15 23:57 #

    중요한 개념을 기술에 포함시키고 거기서 파생되는거 두세가지만 더 확장해도 정신차리고보니 기술 가짓수가 백개에 육박하고 다시 후학은 이거 중복되는것도 많은데 핵심이 되는 기술만 남기면 나머진 알아서 다할테니 확 줄이자 라는 식의 늘었다 줄었다하는 기술의 양은 검술 교습 역사의 반복되는 나선인 것 같네요. 요아힘 마이어를 볼 때도 같은 느낌이죠. 15세기 방식대로 연습하면 이건 알아서 나오는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하기야 옛날 방식대로만 하면 이런 요령이나 기술, 안전 대련의 비결 등을 재발견하기까지 뻘짓을 반복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죠. 결국은 머릿속에 넣어두기만 하는게 아니라 책이건 두루마리건 만들어서 이런 것들을 상세히 기록하여 후학의 참고가 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싶습니다. 그 이전에 들었던건데 일본 유파에서 점점 왜곡되다가 불상에서 꺼내지 말라 한 전서를 꺼냈더니 옛날 방식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어서 재정화에 성공했던 일화가 기억나네요.

    한편 초보자의 처지를 생각해서 약하게 시작해서 강하게 가느냐? 아니면 처음부터 강공을 요구하고 고속 전투와 귀신의 기세에 부딪치게 해야 하느냐? 이 문제도 이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점에선 확실하게 강공과 고속 기세를 경험시키고 그 차원에서 연습하도록 하는게 말씀하신 예시를 봐도 정답인 것 같네요. 우리 그룹에서 처음에 기세를 보이고 방어구 없이 부딪쳐 보도록 하는 건 옛날에 그렇게 했기 때문이지만 반면 그럼으로써 빠르게 검으로 잘 방어하는 법을 익히고 기세 속에서도 안전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빠르게 익히기 때문에 빨리 좋아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정도로만 가지고는 실력이 도무지 늘지 않고 기본기뿐만 아니라 기술과 감각도 같이 연습해야만 강해진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네요. 과거에는 기본기만 하면 기술은 알아서 나온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기본기끼리의 싸움과 거기서 파생되는 것은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잘할 때에는 쭉쭉 나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거나 자연히 다른 기술로 주특기가 옯겨가면서 영원히 잃어버리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래서 데이터베이스화된 기술들이 필요하고 역사적 유럽검술 하는 입장에서는 옛 검술서들이 그 데이터베이스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런 점에서 보면 결국 양자는 양립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대련에 치중하고 옛 데이터베이스를 너무 무시하게 되면 결국 그냥 칼싸움이지 어느 유파를 한다고는 말할 수 없게 되어버리더군요. HEMA가 가진 문제점들 중 하나이기도 하고 과거 ARMA 프라이즈 플레이에서도 꾸준히 보여온 문제라고 봅니다. 프라이징에서 존 파딩 빼고 쉴러 쓰는 사람을 못봤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아도 내가 이거 한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면 기본기뿐만 아니라 기술도 열심히 연습해서 누가 봐도 그 유파다 라고 볼 수밖에 없는 풍격을 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대련과 기술연습 사이의 가교를 놓아주는 게 아샬티 같은 시스템이라고 봅니다.

    고속 스파링에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고 늘 쓰던 기술밖에 못쓰니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보다 실력없는 사람과 붙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곤 하지만 아샬티와 같이 기세와 속도를 유동적으로 조절함으로써 안쓰던 기술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랜덤 상황 하에서 여러 기술을 쓸 수 있는 타이밍과 순간을 잡을 수 있게 하는 점에서 좋네요. 그런데 이것도 기본기나 움직임이 좀 되어있어야 서로 아샬티가 되지 안그럼 그냥 대련 되버리더군요.

  • 제트 리 2018/08/16 08:30 # 답글

    개인적으론 현대의 체계를 익히고 나서 옜 기술로 돌아 가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 ㅇㅇ 2018/08/16 13:11 # 삭제 답글

    저는 복잡하고 번거로운 옛 방식의 존재 이유는 기술독점을 위해서라고 생각됩니다
    무술 뿐만이 아니라 옛 사람들은 기술전수에 대해 굉장히 폐쇄적인 면이 강했습니다
    중세유럽의 도시길드 중 갈고리 길드의 일화를 보면
    사실 현대인의 입장에서 갈고리는 정말 별거 없는 기술이지만
    실생활에서 이래저래 쓸 일이 많은 스테디셀러 제조기술이라 가치가 있어서인지
    당시 사람들은 황당할 정도로 폐쇄적이고 외부인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하였습니다

    일단
    모든 길드원들은 외부인에게 절대 기술유출을 하면 안되고
    외부인들은 길드가 있는 도시에서 생산 혹은 기술개발을 해서도 안되고(사적 제제를 암시)
    기술을 배우기 원한다면 길드에 가입한 후 수년간의 도제생활을 통해
    길드에 대한 충성심을 검증 받은 이후에야 간신히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었고
    한번 길드에 발을 들이면 다른지역으로 이사도 못하고
    일거수 일투족을 길드의 감시하에 살아야 했는데다가
    (같은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기 수월했음)
    생산 물량이나 제작 품질 등 손 댈수 있는 전부를 길드의 마이스터들이 통제하면서
    도시 안에서의 발언권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없으면 도시가 안돌아간다! 정도로 떠들었겠죠)
    이처럼 별거 아닌 기술도 독점을 하게되면 한 도시를 쥐락펴락할 만큼 대단한 권력을 쥐는데
    실제로 사람대 사람사이에 우위를 가져다주는 무술이 독점을 안할리는 없고
    그렇다고 독점을 하자니 비 생산적인 무술로 먹고살기는 힘들테니까 만든 방식이
    이런 옛 방식의 교습이라 생각됩니다
    스승이 없으면 배우기가 극히 힘들고 배우더라도 제대로 배웠는지도 확실히 모를테니까요
    애초에 현재 읽을 수 있는 서양검술서 같은 경우 스승의 자기홍보용 팜플렛 비스무레한 용도가 아닙니까
    밑천 털리기 싫은 옛 스승들의 꼼수....

    또한 중국 무술에서도 전설처럼 전해내려오는 일화들도 있는데
    중국무술에는 음과 양이 있어서 돈벌이용 허벌제자들은 양의 권(그럴듯 하지만 핵심이 빠짐)을 전수해 주고
    문파를 이어갈 직전제자들은 음의 권(양과 비슷하지만 핵심 묘리가 담김)을 전수해 줬다고 합니다
    또한 해가 쨍쨍한 한낮에는 양의 권과 기초무술을 수련하고, 해가 진 밤이나 해 뜨기전의 새벽에는
    비밀스럽게 음의 권을 수련하는식으로 비밀을 유지했다고 하고요
  • vvvv 2018/08/16 15:08 # 삭제

    기술은 일단 공개되면 파훼되는거라고 봐야죠. 물론 비디오로 수백번씩 돌려보는 현대하고는 차이가 있겠지만. 대략적인 주요 전술만 알아도 거기에 대해서 대처법을 세울 수 있으니. 알고 모르는건 정말 천지차이죠.
  • abu Saif al-Assad 2018/08/16 20:32 #

    의외로 15세기에는 확인되는 길드 같은 건 없었고 리히테나워류를 배운 사범들이 떠돌아다니며 조건부 기한부로 계약을 맺고 도시에서 교실을 잠시 열거나 개인을 지도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별개의 직업을 가졌거나요. 반면 비밀 엄수를 지켜야 하는데 여기저기 다 불고 다니는 자들에 대한 불만도 묘사되는 걸 보면 15세기에는 이미 리히테나워 마스터들이 꽤나 많아져서 통제불능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15세기 말 막스브루더의 등장으로 검술 길드가 등장하지요. 인증 체계의 확립, 인가장 수여 등 이때부터 체계화된 시스템을 갖고 검사를 길러내는데, 이들은 외국인이나 유대인도 차별없이 받아들였던 모양입니다. PHM의 검술서에서 흑인 검객이 묘사되고 리히테나워 마스터 중에서 레슬링 전문가 오토 "쥬드"도 있었던 걸 보면 15세기부터의 자유분방한 전통이 있었던 것 같네요. 반면 16세기 말에 결성된 페더피히터 길드는 일반적인 혐오 정서를 반영해서 외국인 금지, 유대인 금지 등 차별 요소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기도 했지요.
  • 람룡藍龍 2018/08/16 15:09 # 답글

    의외로 무술의 실용적 목적이 현대보다 강했던 옛 시대 무술이 스파링 가능한 수준으로 올라가는게 오래 걸리죠. 폭력성을 컨트롤하면서(풀컨택이라도 룰이라는 컨트롤요소가 있음) 공수 합을 주고받는다는게 옛날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언뜻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지만 옛 무술의 목적은 생존의 문제였고 그래서 각각의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상황"들에 대한 대응 시츄에이션을 세세하게 만드는 식으로 체계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실제로 정교하게 합이 진행되는 스파링 상황이 많겠냐, 갑자기 일어나는 적대적인 상황이 많겠냐의 포커싱이라고 보고요.
  • vvvv 2018/08/16 15:19 # 삭제

    그것도 있고 시간의 문제도 있죠. 당장 내일 나가서 싸워야되는데 스텝 밟고 원투 치는 연습을 몇년씩 시키는건 비효율적이죠. 차라리 잘 나오는 상황 몇가지 상정해놓고 그것만 가지고 반복 연습 시키는게 낫죠. 특히 검술의 경우 일반병들은 태반이 농민컷이나 할텐니까요. 검술의 원리를 가리치는 것보다 일단 농민컷 대응 패턴 열개 훈련시키는게 더 낫겠죠.
  • 람룡藍龍 2018/08/16 15:36 #

    WW//네 동의합니다. 현대격투기 대단한 거 맞는데 일반적인 인식보다 오래 걸립니다. 실전에서 스파링처럼 써먹으려면 복싱조차도 최소 2년은 잡아야되는데 오히려 안 배워보신 분들이 쉽게 생각하시더군요
  • ㄴ늗 2018/08/16 19:37 # 삭제

    결국 기세와 근자감이 뒷받침되어야 소위 실전이라 부르는 상황에서도 기술이 나오는지라 폭력성이 충분하다 못해 넘쳐나는 중세인에게 공격성 죽이고 서로 배려하는 스파링 시키다가는 성질이 죽어버리거나 파트너가 작살나거나 하겠지요. 복싱을 실전에서 쓰려면 2년이라는 말도 이런 특성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현대인이 복싱 배워서 실전에 써먹을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 공격성을 얻으려면 넉넉잡아 2년은 필요하단 거니까요. 물론 심줄이 선천적으로 굵거나 시합 뺑뺑이 돌면 2년도 필요없긴 하지만요;
  • 모아김 2018/08/17 10:41 # 삭제

    다카노 사사부로가 키구라이 氣位에 대해서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배짱이려나? 이런식으로 이야기했다는 걸 보면 역시 부동명왕의 가루라염(...)과 검강(..)의 정체는 근자감인것 같습니다(...).
  • 모아김 2018/08/16 16:08 # 답글

    1. 미토 동무관의 나이토 다카하루는 "검도는 연격으로 시작해서 연격으로 끝난다."라고 말했습니다. 현재의 연격은 중서파 일도류의 죽도 우치코미 계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고 중서파 4대 나카니시 타네마사의 일도류병법도포기원고를 보면 따로 연습법이 존재하지 않았고 무작정 대련하는 식이었습니다. 오노 가문의 경우에는 종래의 56본을 그대로 교수하는 것에 대해서 제자들이 반발하자 25본까지만 전수하고, 따로 죽도형을 코시나이小韜라고 해서 가르쳤습니다. 다카노 사사부로가 연격이 일도류식이 있고, 직심영류식(직심영류 죽도형)이 있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봐서 먼저 나온 직심영류 죽도형을 참고로 해서 일도류의 연격이 뒤에 형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심영류의 죽도형은 법정에서 비롯된 것이구요. 따라서 치바 쇼사쿠千葉長作가 직심영류 법정과 죽도형을 검도교범에 실은 것은 우치코미와 격검의 교수법을 궁구한 끝에 근원을 밝힌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도정전무도류 춘풍관의 커리큘럼을 지금에 와서 알 수는 없으나 야마오카 텟슈의 수제자였던 야나다 겐지로가 중학교에서 가르친 무도류 커리큘럼을 보면 처음에는 일도정전무도류의 카타의 비중이 높으나 뒤로 갈수록 죽도격검의 비중이 높습니다. 일단 구미타치 진도를 빼놓은 다음에는 스파링을 통해서 다시 구미타치의 진의를 깨닿는 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도류는 직심영류 법정 같은 단순하고 간단한 오모테 카타 대신에 치케이코地稽古라고 카카리掛 연습을 엄청 빡시게 해서 원간대기의 기합을 길렀다고 합니다.


    2. 치바 슈사쿠의 검법비결을 보면 일도류 구미타치의 유래에 대해서 어느 카타는 누가 발명했다는 식으로 설명이 자세합니다. 야규신음류의 본전을 보면 삼학원의 태도는 待를 배우고, 구개의 태도는 懸을 배우고, 엔삐燕飛는 身眼手足의 習이고, 텐구쇼 天狗勝은 자세를 통해 미묘한 기미에 응하는 법이고, 27개조 절상목록은 삼학원, 구개의 태도 등의 카타 쿠즈시라고 해서 이유 없이 카타들이 있는게 아니라 체계 내에서 굉장히 엄격히 엄선되어 있고, 잘 나오는 상황에 대해서 그때그때 써먹기 위해서 기술을 모아놓은 게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옛 체계는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서 검사를 육성하기 위한 시스템이지 당장에 어떤 시츄에이션에 써먹을 기술을 가르친다고는 보기 힘듭니다.

    후대로 이어지면서 렌야사이가 부연설명을 위해서 별도로 카타를 만들면서 번잡한 감이 있었지만 이를 경전의 본문(류조가 정한 체계)과 주석, 소(후대에서 덧붙인 카타)의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그렇게 산만한 게 아닙니다. 다만 주석과 소에 집중하다 보니까 본문을 안 읽는 사람들이 생겨서 원의와 달라지거나 너무 주속과 소가 많아져서 번잡한 경우 다시 중흥조가 나타나서 카타와 관계를 밝히면서 쓸모없는 카타를 정리하더군요.

    일본 검술의 카타를 보면 대개 단순하면서 강맹한 오모테 카타를 기초단계에서 익히고, 이를 응용한 세밀하고 정교한 카타가 뒤에 있고, 나중에는 이를 종합한 실전기법을 다시 배우는 식이 많습니다. 처음의 오모테 카타는 목검, 이를 응용한 카타는 죽도나 후쿠로지나이, 실전기법은 하비키로 익히는데 실전기법과 처음의 기법을 보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공통된 기법이 변주되어서 나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카타만 하는 문파라고 하더라도 내부에서는 후쿠로지나이 등으로 어느 정도 대련을 했기 때문에 체계적인 카타의 습득에 따른 기술의 습득과, 스파링을 통해서 기술을 습득하는 두가지 체계는 굳이 옛날체계, 현대 체계로 나눌 필요 없이 비중의 차이가 있지만 병존했다고 봅니다.
  • vvvv 2018/08/16 19:31 # 삭제

    그러고 보면 검도 탄생은 직심영류가 영향을 많이 미쳤는데 한국에서는 일도류만 지명도가 높은편이죠..일도류도 중서파나 북진쪽이 영향을 많이 끼쳤는데 말이죠..
  • 모아김 2018/08/16 20:20 #

    메이지 시절만 하더라도 검도 보다는 격검이나 검술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였고, 이게 검도가 되는데는 야마오카 텟슈의 무도ㅠ류가 큰 영향을 끼친 것도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요. 따지고 보면 스가루전은 방계고 무도류가 오노파 일도류의 본가인데 말입니다.

  • vvvv 2018/08/16 23:06 # 삭제

    무도류는 이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을걸요..
  • 모아김 2018/08/17 10:12 # 삭제

    근데 우리나라는 북진일도류도 오행형 중심의 현무관 계통이 내려오고 본전 43본 중심의 동무관은 소개가 안되어있지요.

    치바 슈사쿠는 격검총담에서 중서파에 카타는 나카니시 타네마사파, 데라다 무네아리파, 시라이 토오루파 이렇게 3가지 계파가 있었는데 자기는 데라다 무네아리 한테서 카타를 배웠고 이를 지금도 문인들에게 지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카타 계파가 3계열이나 되는 것에 대해서 치바 슈사쿠는 비판했는데 일도류병법도포기원고를 보면 타네마사는 데라다 무네아리에게서 배웠고, 처음에 자기식으로 카타해석을 하던 시라이 토오루도 데라다 무네아리를 따라서 카타를 다시 배웠습니다. 따지고 보면 전부 데라다 무네아리의 계파이고, 현재 내려오는 중서파 일도류도 이 흐름을 잇고 있습니다.

    근데 찾아보면 북진일도류 카타 자료 많이 구할수 있는데 사람들이 대한검도회 까면서 고류 노래를 부르는 것에 비해서 별로 관심 안갖더군요.

    카타해설서가 있는 치바슈사쿠 유고집은 인터넷에서 살수 있고, 일본국립국회도서관에서 북진일도류라고 치면 북진일도류검법전서나 북진일도류검법이라고 카타해설서를 구할수 있습니다. 그외에도 데라다무네아리의 천진일도류 자료는 토야마시립도서관 디지털갤러리 들어가면 있지요.

    다카노 사사부로 아들 다카노 히로마사는 중서파의 구미타치를 다시 정립할때 치바 슈사쿠가 문인 사쿠라다 에이마로에게 내려준 조태도해설서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다카노 히로마사가 낸 병법일도류나 일본무도대계 2권에 실려있습니다.

    국제무도대학에서 낸 논문에는 자그마치 오노파 3대 오노 타다오小野忠於가 스가루 노부마사에게 전수한 카타해설서가 있더군요. 이제막 오노파 일도류의 카타가 성립했을 당시를 보여주는 굉장히 귀한 자료입니다. 이 자료를 필사했던 사람의 아들이 사사모리 타케미에게 전서의 행방을 묻자 이제는 행방불명되었다고 하더군요. 사사모리 타케미도 죽었으니 자료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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