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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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노비첸코의 싸움 분석 전술적 관점


HEMA계에서 러시아인들이 특출난 재능을 보여주는 가운데 2017년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한손후리기에 특화된 이반 노비첸코였습니다. 영상에서 상대인 데니스 룽크비스트는 단순히 상대 A가 아니라 HEMA순위를 보여주는 HEMA Ratings에서 2018년 5월 현재에도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특급 선수입니다. 그정도의 선수조차 뛰어난 속임수를 기반으로 한 노비첸코의 다리후리기, 손후리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다리후리기가 좀 야매 기술로 폄하당하는 감이 있긴 한데 일본은 몰라도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정규 기술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리를 치면 상체가 비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기술로 취급받았는데 영상에서도 다리를 치고 머리를 정통으로 얻어맞는 등의 모습이 간혹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승률에 비하면 매우 적은 편입니다.

한손후리기가 잘 쓰이는 건 HEMA계의 전체적인 교전 양상 탓도 큽니다. 리히테나워류라기보다는 리히테나워 기술 약간 가미된 양손 철검 펜싱 같은 경향이 큰데 이 경우 보통 한 걸음으로 들어가 칠 수 있는 거리보다 약간 먼 지점에서 상대방의 움직임을 관찰하게 됩니다. 그 간격에서는 상대가 쳐들어와도 쉽게 물러나거나 여유를 가지고 상대할 수 있고, 무엇보다 안 맞거든요. 그래서 보통 그정도 거리에서 관찰을 하는데 하필 양손으로 치면 안 맞지만 한손으로 후리면 딱 맞는 간격입니다.

그 거리에선 보통 심리적으로 안심을 하기 때문에 속임수를 주면 화들짝 놀라서 쉽게 걸리기도 하고 또 반응이 늦어서 맞기도 하는데 이반 노비첸코가 보여주는 모습도 그런 걸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비첸코가 펜싱 기반이라 스텝이 아주 길기도 하고, 몸이 가벼워서 몸 전체를 주저앉히면서 길게 미끄러져 들어가는 사기적인 몸 운용을 하는 터라 그 장점이 배가 되네요. 물론 고전검술적인 측면에선 한번의 공격에 다음 동작의 여지를 버리고 모든 걸 버리는 것 자체가 안좋게 보기는 하지만 결국 승부는 승부이고 경기는 경기이기 때문에 모든 환경을 잘 활용해서 이기는 노비첸코의 선택은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간격을 두고 간을 보는 방식은 자칫 주도권을 뺏기기 쉽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이에 대한 원칙은 기회가 보이는 대로 즉시 달려들어 치라는 것이지만, 실제론 다리후리기 잘하는 사람들은 몸도 가볍고 기회도 잘 보기 때문에 무작정 달려들면 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다르디 학파의 만치올리노는 다리후리기에 대비하여 낮은 자세 즉 검을 아래쪽에 둘 것을 추천했는데 이러면 다리베기를 사전에 차단하고 들어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물론 그러면 머리가 비지만, 시야에 보이지도 않고 가끔 까먹기도 하는 하단 견제보다는 눈이나 귀 같은 센서가 위치하고 손 움직임으로 방어하기 쉬운 상체 공격에 대응하는 게 더 편하죠.

실제로 후반부에 가면 데니스 룽크비스트가 검을 아래쪽에 두는 자세(피오레 칭기하라 덴테 등)을 취하는데 노비첸코의 심리적 주도권이 눈에 띄게 약해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데니스가 좀 너무 기다리는 경향이 있어서 노비첸코가 속임수로 주도권을 도로 뺏어올 때가 있긴 한데, 다리를 치는게 전처럼 쉽게 이뤄지지 않는 건 확실합니다.

무규칙 검술 MMA가 시작되면 개인적으로 초창기에 승률을 싹쓸어갈 사람들이 가볍고, 빠르고, 다리 잘 후리는 사람들이 될 거라고 보는데 이반 노비첸코는 그런 사람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인간 참고자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덧글

  • 별나비 2018/05/18 22:05 # 삭제 답글

    예전에 쓰신 글 중에 존 클레멘츠가 르네상스 검술에선 세인트 조지가 필요 없다고 쓰신 걸 본 적이 있는데 스포츠 펜싱 하던 사람이라 그런지 한번 비스무리하게 나오기도 하네요. 근데 hema는 스포츠 펜서들이 좀 더 유리한 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배우는 사람은 생활체육이라 하더라도 가르쳐주는 사람은 다 엘리트 체육 했던 사람들이고 루틴도 짜여있고 투자하는 시간도 좀 더 많을 거 같고... 동구권 같은 경우에는 어린시절부터 펜싱이나 삼보 복싱 많이 하기도 하고... 근데 재작년 소드피쉬도 그렇지만 스포츠펜싱으로 시작한 사람은 방호보다는 경량에 신경 쓴 옷을 많이 입는거 같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인데 나중에는 아마추어 복싱이랑 나름 비슷해질거 같기도... fie처럼 통합된 기구는 나오기 힘들거 같고 형평성 위해서 칼은 후원받고 그럴거 같은데 그러다보니까 먼저 치는데 유리하게 빠르고 긴걸 줄 것 같습니다.
  • abu Saif al-Assad 2018/05/19 00:58 #

    세인트 조지는 거리 두고 싸우는 검술에서 자주 나옵니다. 그게 그렇게 쓸모가 없었다면 다르디 학파에서 가르디아 디 떼스따가 있을 이유가 없죠. 현재 HEMA의 주류 싸움은 거리두고 치고받는 방식이니 자연스럽게 수평머리막기가 나오지 않을 순 없습니다. 꼭 스포츠펜서니까 나오는거다 라고 할 순 없지요.

    아무래도 경기에선 옷이 가벼운 편이 나으니까 어느정도 타박상은 감수하고 나오는 편입니다. 게다가 1세대에 해당하는 AP자켓이나 펭크슐 그단스크 자켓은 방어력은 나쁘지 않은데, 너무 뻑뻑하고 무겁고 열배출도 잘 안됩니다. 요즘 대세는 패드 탈착 가능한 자켓에 열배출 땀배출 가능한 합성 섬유를 사용하고 내피는 가방 등쪽의 그것을 써서 열전도와 통풍이 편하게 하고 흉부는 펜싱 플라스트론 차는 게 대세입니다. 1세대 자켓은 세탁기에 돌리지도 못하고 염색 물도 빠지지만 요즘 합성섬유 자켓은 세탁기에 돌릴 수도 있고 물도 잘 안빠지니까요. 애초에 평복검술을 한다면 방호복은 최대한 가볍고 걸리적거리지 않아야 합니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지요.
  • aaa 2018/05/19 04:09 # 삭제 답글

    옛날 대회보다 인테리어나 구성이 상당히 세련되어졌네요. 복장도 멋있고 대중 스포츠가 될 만도 해보이는데..정식 스포츠 종목에 편입되려는 시도같은것이 있나요?
  • abu Saif al-Assad 2018/05/19 18:01 #

    그건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미국 펜싱협회에서 롱소드에 룰과 교사 자격증을 발부하고 펜싱 내부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주류를 무시하는 행동이라 별로 호응은 못 얻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모아김 2019/03/19 12:37 # 답글

    막부말 격검에서 유강류가 초기에 선전한거랑 비슷하네요. 비슷하게 상단에서 한손이나 양손으로 머리치기, 엉덩이를 걷어차듯이 다리후리기 피하기, 땅에 꽂는 느낌으로 다리치기 방어라는 삼신기로 파훼당하는 것도 비슷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 abu Saif al-Assad 2019/03/19 16:08 #

    유강류는 그나마 근대식으로 런지하면서 다리치는 형태라 대응이 좀 되는데, 노비첸코는 가끔 무릎 꿇으며 다리 치고 지나갈 때가 있고 중국검사들 같은 경우는 아예 구르면서 베고 지나가는 것도 있어서 이렇게 상체가 사라져버리는 형태는 상대하기 매우 까다롭지 싶네요. 누군가는 파해법을 내놓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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