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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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바위 대장 오오이시 스스무(大石進) 잡설저장소

본명 오오이시 다네츠구(大石 種次) 통칭 스스무(進) (1797~1863)

야나가와번 출생으로 신카게류 검술과 오오시마류 창술을 배웠고

집안이 가난해서 부업으로 농사일을 했는데 덕분에 시합에서 어느날 개털리고

빡돌아서 필살 허리치기, 양손찌르기, 왼손 한손찌르기를 3단 필살기로 연마함.

그리고 에도(도쿄)에 올라가서 5척 3촌(161cm)짜리 죽도로 다 털어버림

일본도보다 61cm가 더 길고 롱소드보다 34cm가 더 김

뭐 이딴놈이 다 있지 ㅋㅋㅋㅋ

이놈 덕분에 에도의 도장들은 4척(120cm)넘는 크기의 죽도가 횡행하고

시합에서 이기기위한 대 야바위의 시대가 열림

오오이시 스스무 전에는 죽도도 일본도 진검과 길이 차이가 별로 없었다고 함.

이놈이 죽일놈

검술을 해라 검술을

덧글

  • 작은 주먹 2017/03/18 01:05 # 삭제 답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161cm 죽도ㅋㅋㅋㅋㅋ
  • 자유로운 2017/03/18 01:05 # 답글

    다른 의미로 진정 대단한 승부사로군요.
  • ㅁㅁ 2017/03/18 01:09 # 삭제 답글

    알파고 느낌일듯...
  • 모아김 2017/03/18 01:28 # 삭제 답글

    이인간 키가 2미터 넘었다하네요.. 자기유파 정촌이 3척8촌이었다 하니까 나름 비율에 맞게 든것일지도... 물론 유파 블로그에서 본 글이기는 합니다. 그 블로그에서는 유일하게 오이시 스스무에게 이겼다는 시라이 토오루의 이야기를 출전이 의심되기 때문에 구라라는 이야기를 굉장히 장황하게 설명하더군요.

    오이시 스스무 이전의 神影流의 정촌이 3척8촌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규슈 출신이고, 유파가 카미이즈미 이세노카미 초창기에 분파되어 나온 오카야마 규카사이 키미시게 계열이니 초기 카게류의 장척도 쓰는 습속이 이어진거라고 하면 말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 모아김 2017/03/18 01:29 # 삭제

    카츠 카이슈가 야마오카 텟슈랑 이야기하면서 어떤의미에서는 유신보다 더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 abu Saif al-Assad 2017/03/18 01:54 #

    그래도 저건 아니죠 . 2m키에 161cm죽도에 왼손 편수찌르기를 오의로 삼았으면 완전 장창이네요. 검술은 아무리 변해도 진검 본연의 스펙은 지켜야 한다고 보는데 투핸드소드 길이에 무게는 암봐도 1/3이하인 물건으로 막 이기고 다니는건 검술이 할짓이 아님에 확실하네요. 게다가 에도 가기 전에는 나가누마 무소우에몬 눈알도 터트렸다면서요. 완전 HEMA토너먼터네요. HEMA도 칼은 그렇게 마개조 안하는데 HEMA보다 막나가네요.
  • abu Saif al-Assad 2017/03/18 02:06 #

    개인적으론 저런 기형도구를 들고 나타났는데 제지를 안한 것도 희한하고 진검의 스펙과 지나치게 떨어진 그냥 대련에서 이기려고 만든 이상한 물건일뿐인데 저거에 당했다고 멘붕하고 다들 죽도 길이 늘리는데 급급했다는 점에서도 이해가 안가네요. 단검술 도장에 장검 들고와서 쓸고다닌다고 다들 단검 길이늘려서 장검만드는 거랑 다를 바 없는건데 말이죠. 진검술의 철학이 확실하면 저런거에 진다고 그렇게 반응할 이유도 없는데 말이죠. 아무래도 카타와 내부 대련을 통해 검술로 다 제압할 수 있다고 믿어의심치 않아왔는데 변칙공격과 변칙도구에 털리니까 신앙이 무너지고 아노미 상태에 빠진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검술의 끝을 본 자기 유파 체면이 있는데 니 죽도는 가짜고 진검에 맞춰서 다시 오라고 하면 가오가 떨어진다고 생각한건지.... 그래서 저런 웃긴 거는 제압해야된다고 생각했다가 털리고, 소문 들은 다른 도장은 그걸 못이기냐고 XX류도 허접이구만 하고 얕보다가 털리고 자존심 싸움이 된게 아닌가 싶네요.

    저런 일화들을 보면 일본이라고 해서 무조건 진검술의 진중한 중심을 확고히 고수해왔다기보다는 나름 이런 유행 저런 유행에 휩쓸리면서 중심을 잃는 것도 보이고 진검술이 아니기 때문에 거부하기보다는 승부에 지니까 이를 갈고 기계로 불리함을 이겨보려는 모습도 보이고 그러네요. 진검이야 어떻게 변화하던 목숨을 건 실전에서 변하는 거니 상관없는데, 진검술을 연습하기 위한 도구가 변질되면, 그것도 안전이나 검리 구현이 아닌 그냥 대련에서 이겨보려고 변질되는 거라면 아주 문제라고 보거든요. 그걸 따라가려고 한다는 것도 ㅎㅎ 상당히 넌센스 그 자체네요. 이런거 보면 일본사람들도 구름 위의 신선은 아니란 게 느껴집니다.
  • ㅁㅁ 2017/03/18 04:01 # 삭제

    당시에는 죽도시합이 꽤 확고하게 실력을 판가름 하는 역활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본인들도 죽도 시합으로 명성을 쌓았으니까..'님은 그냥 죽도술만 잘하는거임 실전 ㄴㄴ' 하는순간 자기부정이 되어버리는거죠. 여하튼 진검대련도 할 수 없고..시대가 죽도 격검으로 넘어간 상태에서 실력을 겨룰 방법이 죽도대련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렇다고 밖에서 실전이 벌어졌던것도 아니고..그래도 제지를 안한건 좀 이상한데..아마 규정도 없고..무사도 기질? 이 작용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말로 무도정신이랄까..설령 상대가 비겁해도 못이기면 자기 잘못이다..그런게 좀 있죠..구태여 도구 어쩌고 하는게 무사답지 못한다고 느낀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죽도를 늘리는...
  • ㅁㅁ 2017/03/18 04:34 # 삭제

    예를들어 치바 에이지로한테 사이토 칸노스케가 졌을때 에이지로가 허리치기가 특기인데..사이토는 평소처럼 허리 호구를 안차고 시합을 했는데..허리맞고 졌는데..멀쩡하길래 알고봤더니 도복밑에 여성용허리띠? 를 감았더라는..일화가 있죠..머 실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룰보다는 가오(무사도) 가 먼저다..란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 모아김 2017/03/18 09:01 # 삭제

    ㅁㅁ// 그 이야기는 다카노 사사부로 구술집에도 있지요. 실화라고 알고 있습니다. 원래 허리는 실전에서 베는 부위가 아니라고 합니다. 치명타를 먹인 상태에서 빠져나가면서 뒷마무리 허리를 베는게 조선세법에 있기는 하지만요. 따라서 허리를 맞는다는 것은 미숙하다는 걸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일도정전무도류에서도 허리를 타격부위가 아니고요.

    abu saif// 나카니시파 도장에서 오오이시 스스무가 저 5척3촌짜리 죽도를 가지고 다카야나기 마타시로와 대련을 하자 다카야나기 마타시로는 1척인가 3척짜리 쯔바를 들고오고는 실전에서 쓰지도 못할 도구들고 올것 같으면 나도 이런걸로 상대해주는게 너님에 대한 예의 아니겠음?이렇게 빈정거렸다고 하네요. 그러자 오오이시 스스무는 정촌인 3척3촌으로 다카야나기 마타시로와 붙어서 무승부를 냈다고 합니다. 장죽도가 없어도 상당한 검호였던 것이지요.

    어쨌든 당시에는 검술은 찌르기라는 게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다 베기였다고 하네요. 보통 죽도는 100cm내외이고요. 근데 오오이시 스스무의 장척도가 나타나자 다들 3척8촌정도로 긴 죽도를 잡게되었고, 찌르기와 동치기가 그때 비로소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직심영류는 유파의 가르침이 상단에서 내려치는 건데 장죽도가 횡행하면서 상단이 중단의 찌르기를 베어떨구는게 힘들어지면서 점점 중단을 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상단에서 배와 가슴을 노출한 상황에서 중단의 찌름의 키구라이를 압도하는 것을 직심영류에서는 파상의 위라고 하는데 장죽도가 유행하면서 이게 점점 힘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치바 슈사쿠는 이렇게 류조가 힘들게 고안한 극의가 훼멸되는 상황에 대해서 검법비결에서 한탄을 했었지요.
  • abu Saif al-Assad 2017/03/18 17:38 #

    허리를 베는 게 의미없다고 여긴 건 어째 똑같군요. 리히테나워류도 공격을 보면 손부터 팔 외부를 거쳐 어깨에서 목 머리 등 전체적으로 상체 바깥쪽 라인이죠. 딱히 허리는 베지 말란 말은 안보이지만 기술에서 노리는 부분들을 비롯해도 그렇고 실제로 죽은 돼지 등을 베어보면 허리를 쳐도 칼끝으로 찍고들어가지 않는 이상 옷을 입은 상황에선 거의 의미가 없다는 실험이 나오고, 뼈가 도마 역할을 해주는 부분이 잘 베인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일본은 칼이 잘 베이니까 좀 다르게 봐서 허리치기를 많이 하나보다 했는데 그것도 아예 아니었네요.

    오오이시 스스무 일웹에서 검색하다 보니 원래 그사람이 호구 개량하기 전에는 몸통방어구는 아예 없었고 호면은 대나무 면금에다가 호완도 갑주에서 쓰는 긴 팔보호대를 썼다고 하던데 날갯죽지 호면과 결합되면 리히테나워류에서 노려지는 부분을 정확히 가려주더군요. 그사람이 찌르기를 잘 하기 위해서 면금은 철로 바꾸고 대나무 동을 도입했으며 짧은 호완으로 바꿨다던데 이래저래 현대 검도에 엄/청/난/영/향을 끼친 거인임에는 틀림없네요. 그러니까 원래대로라면 남들이 신경 안쓰고 방어도 잘 안하는 부분이랑 기술만 집중적으로 연마한거네요? 찌르기 신경 안쓰니까 냅다 찔러버리고? 허리 원래 검리상 잘 안치니까 허리만 냅다 치고?

    캬 전략은 잘잡았는데 진짜 야바위 최고사령관이자 아미르 알 야바위, 프레지던트 오브 야바위네요. 사람이 아니네요 사람이 아니야
  • ㅁㅁ 2017/03/18 18:18 # 삭제

    확실히 지금 죽도로 해도 거리가 안맞는 경우가 많거든요. 20cm 이상 더 짧았다면 확실히 치기 힘들었을것 같습니다. 찌름도 마찬가지로..머리 맞을 확률이 상당히 높은데..이것도 길이로 해결..현대 검도의 아버지는 치바 슈사쿠가 아니라 오오이시 스스무였던 것인가요..
  • r 2017/03/21 14:29 # 삭제

    일본도 허리치기가 원래는 없었나요? 저도 일본도는 잘 베이니까 허리 치기 같은 기술이 있는 거구나 했는데 그럼 지금 검도의 허리치기 역시 시합칼이라는 거군요. 그런데 당시 죽도 검술에 찌르기가 별로 없었다는 것은 또 왜인가요?
  • 모아김 2017/03/21 15:04 # 삭제

    대개 당시의 죽도나 목검의 정촌은 총길이 1미터, 손잡이 25cm, 날길이 75cm입니다. 하리가야 세키운은 날길이 2척5촌보다 검이 길 필요가 없다고 말했고, 시현류도 정촌이 2척5촌입니다.

    이 길이로는 일단 베어맺어서 적의 검을 죽인 다음에 찌르던지 그기세로 베든지 하는게 검리적으로 맞지 찌름 한방으로 냅다 꿰뚫거나 하는게 안된다는 겁니다.

    오다니 노부토모가 했다는 "검술은 치는 것외에는 수가 없고, 창은 찌름외에는 수가 없다"는 것은 당시에 일본쪽에서 널리 퍼진 무언이었던 것 같습니다.
  • ㅁㅁ 2017/03/21 15:51 # 삭제

    못베는건 아닙니다. 고류 카타봐도..우케나가시 허리라던지 빼어서 허리치는 기술들이 있는데..보다시피 다 받아치기 입니다. 검도 허리는 시합기술이라기보다는..우케나가시(흘려내기)가 성립이 잘 안되서..받아치는 기술인데. 이때 머리나 어깨치기가(이건 룰적으로도 금지지만) 안되기 때문에 허리 말고는 칠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죽도가 짧아버리면..받아 허리는 거리 맞추기가 힘들어요.. 오오이시 스스무는 긴 죽도를 이용해서 선제공격으로 허리를 후려친게 아닌가 싶습니다..https://youtu.be/UW8t9Ua5vsM?t=3m1s https://youtu.be/GEv_qLnPSp0?t=47s 보면은 쳐달라고 멈쳐있죠..저기서 치는쪽이 쑥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거리가..
  • abu Saif al-Assad 2017/03/21 18:07 #

    짧으면 찌르기가 위험해집니다. 사이드소드에서 특히 드러나는데 사이드소드 검리는 검술서들을 보면 상대의 견제자세를 6가지 자세(위에서 찌르기 좌우, 수평찌르기 좌우, 올려찌르기 좌우)로 밀어내면서 들어가게 되는데 칼날이 90cm이하면 밀면서 들어가도 상대가 칼을 쉽게 빼거나 치울 수 있고 그렇지 않아도 쉽게 칼이 빠집니다. 짧은만큼 칼끝도 빨라서 찌르기보다 쳐내고 베기가 더 안전하고요. 하지만 90cm를 넘어버리면 칼끝이 둔해져서 돌려서 베느니 찌르는 게 낫고 찌르기를 해도 칼이 길어서 칼이 잘 안빠지기 때문에 검리대로 확실하게 찌르기 공방으로 움직여집니다. 일본도도 비슷한 상황이 나왔을 거라 보여집니다.
  • 미친 2017/03/18 01:29 # 삭제 답글

    고류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대련의 부재이지여. 가토리신토류 같은 경우 세미 스파링은 하는 것 같던데....
    고류도 HEMA 처럼 대련을 했으면 좋겠네요.
  • ㅁㅁ 2017/03/19 05:17 # 삭제

    고류가 유행하기 힘든게..대련의 부재도 있지만..사람들이 검술에 흥미를 안가지는게 가장 크죠. 정작 서구권에서도 자기네 검술인 서양검술도 그닥 안하는데요. 검도같은 경우도 나날이 인구가 줄고 있죠..역시 대세는 맨몸 무술이죠..여기다 택틱걸 실전좀 스까서 팔면 최신 마켓팅이죠.
  • 미친 2017/03/19 10:54 # 삭제

    그렇죠. 요즘 사람들은 MMA 체육관에 가지, 검술을 배우려 하는 사람은 적지요.
  • 모아김 2017/03/18 18:59 # 삭제 답글

    야마오카 텟슈도 오오이시 스스무 저 새뀌 때문에 검도가 본래 면목을 상실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었지요.

    뭐, 근데 텟슈건 오오이시 스스무건 야규건, 무사시건 간에 까놓고 말해서 돈있고 시간이 남아 돈다고 하더라도 일본가서 "아리가또, 센세이" 라고 말하고 굽신거리면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솔직하게 들지 않는군요.

    오가와 츄타로의 '검과 선'에서 하리가야 세키운의 '아이누케'를 히로히토 천황이 항복선언한것과 연계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정말 역겹더군요. 태평양 전쟁에서 히로히토나 고노에 후미마로가 밑밥 다 깔아줬던 것을 생각하다면 정말 실소만 나오는 부분입니다.

    쪽바리들의 무술 전서나 체계를 통해 옛날 사람들이 도달한 경지나 인식들을 보면서 감탄스럽기는 했지만 또한 거기에 경도될 필요도 없다는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아이누케'니 '활인검'이니 하는것도 결국 어떤 사회적 조건에서 나온 시대적인 산물이고, 폭력을 미화하고 정당하기 위한 발악이고, 기술의 발현에 수반되는 자기최면인 것입니다. 잘 분석하면 결국 이성으로 이해할수 있는 것이지 신앙화해서 도취되는 것은 바보스럽고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하리가야 세키운이 고다기리 이치운이랑 아이누케한다음에 자기 제자인 이치운에게 향을 사르면서 절을 했다지요? 쪽바리 새퀴들의 모노아와레物憐는 다자이 오사무, 가와바타 야스나리,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미시마 유키오 등 문인들의 전유물은 아닌것 같습니다. 문인들이 자살하면 무인들은 자살돌격하는것 같네요.(피식)

    사사모리 슌조 이 새뀌는 아부 사이프님이 예전에 소개하셨듯이
    http://zairai.egloos.com/5672022

    이런거나 만들고 말입니다. GHQ에서 무도를 금지한것도 납득이 가는 부분입니다.

    쿠사카 류노스케(무도류 4대종가)는 태평양 전쟁에서 참 대~단한 역할을 했었지요?

    참 역겨운게 무도의 종가들 중에서 막상 대포밥이나 총알받이가 된 사람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도'라는 개념을 흥양하고 발족한 사람들을 보면 결국, 정치가, 경찰이나 상급장교들이 많더군요. 야마오카 텟슈는 자작이었고, 이시다 카즈토는 대법원장이었지요. 전후 산실된 유파가 많다고 하더라도 결국 메이저한 유파는 국가에 빌붙어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아이우치相擊를 아이누케相拔로 미화하면서 기술적으로 보면 당연한 마음가짐을 공동체로의 희생으로 미화하면서 허울좋은 개소리를 잘 씨부리고 있는 것 같더군요. 본질은 그냥 체제 유지를 위한 인신공양인데 말입니다. 이게 결국은 카미카제와 같은 뻘짓과 동전의 양면같습니다. 그냥 기술만 가르치고 스포츠로서 충실하면 될것을 전통의 가치 어쩌구저쩌구 거리면서 속에는 아직도 제국주의적 본질을 숨기고 있다는 느낌입니다.(물론 국뽕이나 쇼비니즘적으로는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지요. 결코 국뽕 무술단체를 긍정한다는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무의식적으로라도 저것들에게 영향받지 않기 위해서 21세기의 김체건스럽게 기술만 훔치는 바람직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리고 영상물이든지 책이든지 이미 자료는 차고 넘치는 것 같고요. 굳이 김체건처럼 직접 일본유학까지 갈 필요조차도 요즘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필요한것은 두둑한 전낭정도고, 나머지는 국내에서 연구하는것으로 다 가능하지 않나 싶네요.

    일본 무술바닥도 계보를 꾸며내기도 하고 정전의 종가가 꼴통스럽기도 해서 인프라가 좀 낫기는 하지만 우리만큼이나 꼰대스러운것 같더군요. 따라서 직접가서 배우는게 arma처럼 자료가지고 마음맞는 사람들끼리 연구하면서 리버스 엔지니어링 하는것보다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지금와서 번오기나 조 무령왕스러울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오니코테랑 후쿠로지나이 정도만 싸게 살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저는 중국이나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 도장에 나가지 않습니다.(응?)

    기술이 사상, 문화와 결부되면서 쪽바리의 무술에는 아이우치에서 파생되는 제국주의적 근성이 남아있다고 느끼고, 요즘같이 자료많은 때에 굳이 일본가서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부 사이프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ㅁㅁ 2017/03/18 19:13 # 삭제

    저도 동감합니다. 선불교와 검술의 융합이란것 자체가..좋게 보기가 힘들더군요. 그래도 당대에는 그냥 자기들끼리 치고받았으니 그렇다 치고..나중가면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974451
  • 모아김 2017/03/18 19:27 # 삭제

    목차에 나와있는 오모리 소겐 저 새뀌는 직심영류 15대 종가 야마다 지로키치 수제자이잖습니까? "검과 선", "야마오카 텟슈"같은 책을 지었었죠. 본인이 맞네요. 내가 그 글읽으면서 뭔가 뒤가 찜찜하던데 당연한 것이었군요. 그냥 정치와 무관한 검선일여의 승려인줄 알았는데 빼도박도 못하는 극우네요. 제가 직심영류 검술의 이치를 훔칠지언정 입문을 하지는 않아야겠다는 확신이 드네요.

    뭐, 사실 우에시바 모리헤이도 만주에서 오모토 교 호법같은거 했지요? 그러니 기술만 배워야 하는겁니다. 검술은 검술이고, 불교는 불교이어야지 서로 건강한 법이지요.
  • 무술 2017/03/18 23:10 # 삭제

    우에시바 모리헤이가 아이키도 만든 사람이지요?
    이양반은 그래도 평화주의자였지요.
  • 모아김 2017/03/18 23:39 # 삭제

    검도 고단자들이나 고류 검술 수련자들이 다 철두철미한 제국주의자인것은 아니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아이우치의 강조가 그냥 키리오토시를 수월하게 하기위한 방편으로서 끝날것을 사상적으로 이를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식으로 왜곡한다는 것이지요. 우에시바 모리헤이 자신은 그냥 오모토 교주와 동반해서 만주 여행간것이지만 크게보면 일본의 만주침략과 관계가 있는것이구요. 검과 선 보면 딱히 진성 제국주의자도 아닌 오가와 츄타로가 아이누케의 경지가 히로히토 천황이 항복선언한것과 같다고 개소리 씨부렸더군요.

    스포츠면 스포츠로 충분해야할 무술에 구태여 불교적 가르침이 섞이고, 이게 아이우치相打와 결부되면서 '아이우치->아이누케로의 승화=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부처의 깨달음의 경지' 식으로 웃기지도 않는 전도가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사상과는 별도로 대개 일본쪽에서는 무의 경지를 깨달음과 연관지었는데 이게 굉장히 위험하다는 겁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기술적으로는 아이우치의 극단적인 강조가 있고, 또한 방법론적으로는 몸을 돌보지 않는 고행의 강조같은것도 있지요. 춘풍관의 타치키리나 장작패기 검법 같은 것이지요. 물론 의미가 있고, 때로 필요는 하지만, 일본 특유의 물질과 생명을 도외시한 정신주의에는 무도의 가르침이 그 연원에 깊게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일제의 물자 부족이 그냥 제일 원인이겠지만 이를 어떻게든지 얼버무리는데는 무도가 어느정도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한 무술에서 얻는 돈오와 같은 개인의 체험을 불가의 꺠달음과 연관시키면서 깨달은자가 저지르는 일이 곧 선이다는 식으로 살인의 정당화로 이어가면서 전쟁에 대한 비판의식을 희석시키는데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대개 이런 가르침의 적통을 이은자들(쿠사카 류노스케, 사사모리 슌조)이 전쟁때 자기는 앞장서지 않고 카미카제나 미귀필살검 같은거나 저지른 것은 정말 역겨운 일 아닌가 싶습니다.

    무도의 이념에는 분명히 어느정도 가치가 있으나 한계가 있고,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마땅히 걸러서 봐야 한다는 겁니다. 폭력에 대한 비판의식의 마비로 인한 국가가 독점하는 무력의 폭주에 일제의 무도교육이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 무술 2017/03/18 23:53 # 삭제

    근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한국 아이키도 협회 쪽에서도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아이키도의 창시자이다" 라고만 해 놓았더군요.
  • abu Saif al-Assad 2017/03/19 00:45 #

    뭐 제대로 배우려면 입문해서 수련할 필요는 있겠지요. 사상적 측면의 뭔가를 강요하든간에 결국 종가의 성향이고 그런 부분을 스스로 걸러낼 수 있다면 굳이 사상적 오염을 경계해서 도장에 안나가고 그럴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사실 리버스 엔지니어링도 웬만큼 수련해서 보편 검술의 이데아에 접속이 되는 사람들이나 가능하지 초보자들 모아봐야 서로 낮은 수준에서 다치고 깨지고 하면서 나 실전왕이요 너 세계제일이요 하는 우물안 개그콘서트 수준 이상은 되기 어려우니까요.

    전 그런 점보다는 모든걸 깨치기까지 지나치게 시간을 많이 들이는 것이 당연시되고 또 노력한다고 다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스승의 의중에 따라 배우지 못하고 그럴 수도 있다면 그런 반쯤 운에 그렇게 시간 열정을 바치는게 투자 대비 효과가 있는지가 의문이 들더군요.
  • 모아김 2017/03/19 01:05 # 삭제

    abu saif//
    동감입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결국 배우는 내용이 카타인데 카타의 술리나 행하는 방법이 영상이나 책으로 다 나와있으니 그거 따라할수 있으면 되지 않겠나 싶으더군요. 따라하기 위해서 어느정도 수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그 내용과 목적을 안다면 어느정도 수준이 되는 사람들끼리서 연습하면 되지 않겠나 싶으더군요. 결국 카타도 일종의 방편이고 단련의 방법이니 말입니다. 검도의 본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니까 고류를 찾는데 고류 배우러 왔다갔다 하는게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드니 그냥 어느정도 수준이 된다면 전서랑 영상 파는걸로 때울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대충 어느정도 기본이 된다면 카타 따라하고 술리를 연구하는 것으로서 충분히 고류를 익힐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Q&A에서 검술독학 관련해서 했던 것 같은데 술리와 영상이 있는 고류의 카타를 따라해서 배울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아부 사이프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abu Saif al-Assad 2017/03/19 02:22 #

    카타도 그 겉모양도 제대로 따라하면 되는데 실제 이치를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검술이 딱 그짝인데 대충 기술들이 어떤 형태로 이뤄지는지는 이미 2000년대 초반에 다 나왔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움직이면서 상대만 당하고 나는 사는 묘리를 포착하지 못해서 실패를 거듭했고 결국 기술의 디테일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서 스포츠화 대결로만 넘어간 결과 지금 HEMA토너먼트처럼 타이밍과 힘과 속도 말고는 쓸 수 있는게 없는 상황이 되버렸죠. 당장 본격 연구의 역사가 17년을 맞이하여 20년을 바라보는 지금도 크럼프하우를 제대로 하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카타를 잘 빼내서 따라한다고 초보들이 모여서 희망적인 결과물을 도출한다는 것은 가능성이 좀 낮은 이야깁니다.

    물론 나름의 검리로 대련에서도 성과를 보이며 보편 검리의 이데아에 접속하는 정도라면 기술과 텍스트만 보고도 얼마든지 숨겨진 방어의 원리를 도출해낼 수 있겠지만 그쯤되면 이미 초보자라고 하기엔 어렵죠. 저희 그룹도 그런 악순환에서 윤회를 반복할 뻔 했는데 우연한 사건이 겹쳐 지금의 정도까지 이른 거고요.

    하여간 제가 보기에는 지금 일본에 나온 자료들의 질과 내용으로 보면 제시된 기본기를 충실히 따르며 몸을 만들고 기본을 다지고 다양한 방식을 경험해본 사람들의 상호 연구를 스파링을 통해 하고 또 스파링에서도 무조건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주어진 검리와 기본기, 기술을 써서 이기려고 어렵더라도 계속 시도하고 그렇게 해나가며 일단 배운 사람들끼리는 검리대로 스파링이 되는 정도로 가고, 그 다음 완전 타류나 배우지 못한 자들과의 스파링에서도 검리로 어렵잖게 제압이 가능하도록 많은 경험을 싾는 과정을 거친다면 오히려 경직된 자들보다 훨씬 강하게 검리를 구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물론 본가의 경직되고 정형화된 이미지에 매몰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겁니다. 또한 카타에서 활용되는 검의 구조를 활용한 비밀들 즉 지오메트리도 확실하게 포착 가능해야 합니다. 제가 진짜 검술을 판단하는 요소는 저지력, 타이밍, 방어, 지오메트리, 리듬 등의 키워드인데 타이밍은 배우지 않아도 대련 좀 하면 누구나 알지만 나머지들은 배우지 않거나 증거를 포착하지 않으면 스파링을 천년간 해도 영원히 모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엣지와 플랫의 상관관계라거나 칼날의 강한 부분 약한 부분, 가드의 활용 등이 지오메트리에 해당하지요. 일본도 이런 지오메트리는 여지 없이 작동하더군요.
  • ㅁㅁ 2017/03/19 05:14 # 삭제

    확실히 그런게 있죠..모든게 오픈된 격기나 스포츠와는 다르게..일본..중국 무술이..비전 중심으로 흐르는데다가..지도자 마음대로 가르쳐줄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이래버리니..
  • few 2017/03/19 08:40 # 삭제 답글

    그런데 신비주의와 검술의 융합이란게 일본 뿐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요. 중국도 무슨 도가나 단전호흡이나 그런것과 검술이 연계되어 왔고 한국도 그런면이 있지 않습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동아시아 삼국의 무술은 그런 류의 신비주의와 융합되었고 지금도 그런 잔재가 많이 남아있지요. 저는 예전부터 그런 부분이 상당히 궁금했는데 도가나 불가의 신비주의적 수행법이라든가 그런것이 검술과 무슨 이유가 있어서 결합을 한 것일까요? 도가나 불가의 마음 수행법이 생사를 가르는 전투에서 큰 도움을 주었기에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일까요? 아니면 무술하는 사람들이 그냥 자기들의 무술- 어떻게 말하든 결국 사람 죽이는 기술을 배우고 익힌다는 것을 변명하기 위해 불가나 도가의 가르침을 겹합시킨걸까요? '우리는 그냥 저질스럽게 사람죽이는 기술을 배우는게 아니라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이러는 거임' 뭐 이런 식으로?

  • few 2017/03/19 08:44 # 삭제 답글

    제 생각으로는 이런 신비주의와 결합이 과거 무술인들의 변명과 같이 느껴지는데요. 지금도 무술같은거 하는 사람들을 위험하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비난하는 시선이 있는데 과거는 그런게 더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과 달리 냉병기가 실전에서 쓰이던 시절이니 더욱더 그렇겠지요? 요즘으로 따지면 실재 기관총이나 수류탄 가지고 군사기술을 연마하는 것과 똑같으니까요. 그런 사람들에게 변명하고 또 자신들이 무술을 배우는 이유를 자기들 스스로에게도 납득시키기 위해서 그런 신비주의와 결합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 모아김 2017/03/19 10:11 # 삭제 답글

    지금 문제 삼는 것은 신비주의나 오컬트 무술이 아니라 무도의 이념을 군국주의와 연계시키는 시도에 관한 것입니다.무술에 있는 주술적, 오컬트적 요소는 넨류, 중조류 시절부터 있어온 것이니 그게 문제가 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시현류도 밀교의 오륜성신관에 관한 내용이 전서에도 있구요. 싸움이라는 위험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밀교의 기복적 행위를 통해서 마음의 안정을 얻으려했다고 봐야겠지요.

    도가의 가르침은 폭력의 정당화라는 측면보다는 무술을 익힐때 몸에서 일어나는 기능적인 현상을 '기'라는 용어를 통해서 파악하면서 도가적 수련의 용어를 빌려왔다로 봐야겠지요. 내가권의 유래가 사실 20세기 초이고, 당시 천하제일수였던 손록당이 자기의 체험으로 내단술의 용어와 권법의 수련을 연관지었던 것이지요. 도가적인 단전호흡을 수련한 시라이 토오루도 비슷하구요.

    그리고 무술로 도를 얻는다는 무도의 관념은 두가지 층차로 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 병법가전서로 대표되는 천하치국의 검으로서의 사회적인 무도->병법가전서의 저자였던 야규 무네노리는 초

    기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근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병법가전서의 그 사상적인 기반은 이에야스가 아니었냐고 생각하더군요. 저는 의외로 그게 옳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간에 일본에서 유학의 전통은 우리나라나 중국에 비해서 짧기 때문에 전국의 살벌한 풍조를 유학으로 완화하려는 것은 하기는 해야겠지만 성공하기 힘들기 때문에 '무'자체를 이상화하는 식으로 '무'를 순화시키려고 했던 것으로 봐야겠지요. 그리고 한사람을 죽여서 만인을 살리는 '활인검'은 이러한 바탕에서 공의(막부)에 개기면서 공동체의 와和를 흐리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부동지신묘록에서 무사가 무상의 경지에서 휘두르는 검을 부처의 깨달음과 같다고 하면서 불교쪽에서도 이를 긍정하였지요.

    2. '아이누케' , '상타합체', '진공혁기'등 개인의 깨달음에 비롯된 경지로서의 개인적인 무도->대개 키리오토시나 아이우치와 같은 기술적 요소에서 수반이 되는 이심전심의 필링, 센스의 확장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파의 내용을 보면 '몸을 죽이고, 기술을 살릴' 것을 요구하면서 굉장한 수행을 강조하지요. '몸을 죽이고, 기술을 살린다.'는 것은 보통 검도에서 타격대 치기를 할때 타격대자체가 아니라 저 멀리를 친다는 느낌으로 몸을 뻗어라고 가르치는 것처럼 상대와 검을 마주하는 상황에서 자기의 몸을 아끼지 않아야지 오히려 기술이 살아나고, 적을 죽이는 작용을 표현한것입니다. 직심영류나 무주심검과 같은 이런 깨달음을 중요시하는 유파를 보면 의외로 그렇게 선의 가르침이 유파에 깊게 배여있지는 않습니다. 병법가전서에서 어설프게 선이 어쩌구 거리는 거에 비하면 꽤 담백한 편이지요. 이쪽 계열들은 개인의 체험에 국한해서 이를 사회적 의미로 확장하는 것은 하지 않고, 그냥 검만 팠고, 강해지기 위한 방편으로써 참선을 했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딱히 살인이나 '무'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유파들은 내용적인 면에서 보면 '함께 죽는 법', 아이우치相打를 극한까지 익혔습니다. 함께죽는 법을 극한까지 익히면 아이누케 함께 사는 경지가 나타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따라서 이쪽은 극단적인 수행을 중요시하는 쪽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근데 무도의 개인적 깨달음의 층차와 사회적인 층차는 그렇게 칼로 나뉘듯이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동전의 양면이라고 봐야겠지요. 이러한 무도의 측면들이 '몸을 죽이고 기술을 살린다'는게 '내 몸을 희생해서 국가를 살린다'로, '내가 휘두르는 총칼은 부처의 자비이고 저 새뀌들은 진짜 나쁜 놈들임'으로 일본 군국주의에 기여를 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무도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주의주장이건 왜곡되면 멀쩡한 사람으로 하여금 비판기능없이 사람죽이는 것을 정당화하는데 쓰일수 있으니까요. 또한 사상적인 측면에서 '무도'는 전국시대의 살벌한 풍조를 완하하는데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나름 있다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이미 시대와 더불어서 멸절되어버린 것을 arma처럼 되살려서 역사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롭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무도는 일본인의 문화에 깊숙하게 뿌리를 박고 있고, 자기 선조가 무사 계급이었던 것에 긍지를 갖는 후손들이 살아있으며, 얼마전까지 살아있었던 센세들이 일반대중들에게 미귀필살검, 카미카제 같은거나 가르쳤던 것과 겉보기에 평화로운 일본의 밑에 깔린 호전성을 생각한다면 제가 어제 오늘사이에 썼던 문제점들이 그렇게 가볍게 넘어갈 문제는 아닌것 같습니다.
  • ㅁㅁ 2017/03/19 17:11 # 삭제

    활인검도 상당히 살벌한 내용이죠. 한명 죽여서 여럿 살린다. 이게 요새는 앞에 죽이다는 빼고 뒤에 살린다만 남아서 그럴듯한 관용어가 되어버렸죠. 그래서 바람의검심에서는 역날검으로 죽이지는 않았다는 억지를 써대는건데..이게 또 그대로 한국에 들어왔죠.
  • 까치대부 2017/03/20 14:29 #

    모아김님 안녕하세요 갑자기 댓글로 느닷없이 질문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최근에 독일유학 준비 및 검술수련 중에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 독일에 있는 고류검술도장을 찾아보니 텐신쇼지겐류를 일본을 오가며 4단까지 배우신 한스 브루너라는 분이 매년 오픈세미나를 연다고 들었습니다 내년에 시간이 되면 방문을 해볼까하는데 지겐류도 시현류, 자현류가 따로 있다고 들어서 뭘 하는 곳인지 궁금증이 생기는데 혹시 알고 계신게 있으신지요?
  • 모아김 2017/03/20 15:13 # 삭제

    天眞正自源流네요. 일본무도대계에서도 그 존재를 알수없는 좀 마이너한 유파네요.

    https://ja.wikipedia.org/wiki/%E5%A4%A9%E7%9C%9E%E6%AD%A3%E8%87%AA%E6%BA%90%E6%B5%81

    자기들 주장에 따르면 도고 시게카타의 스승 젠키치 화상이 배웠다는 천진정자현류의 말예입니다.

    위키에서는 와타타니 키요시綿谷雪에 따르면 야쿠마루 지겐류에서 분파된 유파이지 류파자체에서 말하는 것처럼 시현류의 개조 도고 시게카타가 교토에서 금세공을 공부하다가 젠키치 스님에게서 배운 그 천진정자현류의 흐름을 잇는 것 같지는 않다고 써놓았습니다.

    와타타니 키요시綿谷雪는 무술사료연구가로써 그 저작은 신빙성이 높습니다. 본조무예소전같은거 정리하기도 했고 사료관련해서는 정리를 잘해놓은 사람이지요.

    게다가 좀 수상쩍은게 도고 시게카타의 스승인 젠키치 화상의 천진정자현류의 기술은 시현류 단의 카타 12본입니다. 시현류 목록같은거 보면 젠키치 화상에게서 배운거는 이 12개 기술이라고 명기를 해놓았습니다. 오모테 카타 엔삐는 이를 연속해서 연습할수 있게 해놓은 거고 삼태도三太刀나 재기再起는 이의 연장선상이고요.

    어지간하면 홈페이지에 전승되는 카타의 이름이나 영상같은것도 있을 것 같은데 그것도 별로없고 유쿠에 있는 거 보니까 段의 카타랑 그다지 관계도 없어 보이네요. 게다가 전습내용이 거합이나 시참같은게 더 많은 것 같고요.

    示現流건 寺見流건 야쿠마루지겐류藥丸自顯流건 공통점이 그럭저럭 있는데 이거는 좀 많이 생뚱맞습니다. 정전을 이은 전승자 젠키치의 기술이 示現流에 보존되고 있는데 막상 그 흐름을 이었다는 유파와는 차이가 난다는게 좀 납득하기가 힘드네요. 홈페이지에 계보도나 말만 번지르르하게 늘어놓으면서 제대로된 영상을 올리지 않는게 좀 그렇습니다.
  • 까치대부 2017/03/20 15:41 #

    장문의 답변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몇가지 더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말씀드렸던대로 독일 내의 고류검술 오픈세미나나 도장을 검색해보니, 야규신카게류도장이 있다고 해서 사이트를 검색해보았는데 대놓고 '닌쥬츠'를 가르치는 등, 그런 곳이 좀 있는듯 합니다 혹시 제대로 일본에서 배워왔다고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어떤게 있는지 궁금합니다(ex:유파명, 사조?)
  • 모아김 2017/03/20 16:01 # 삭제

    결국 직접 가보고 분위기 봐야지 않겠나 싶습니다. 요즘 블로그 맛집 리뷰 참고로 하는게 썩 도움이 안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일본내에서조차 이런 자칭 종가들 때문에 무술사기꾼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직심영류 야마다 지로키치도 정전의 정통성과 관련해서 문제가 있습니다. (디시를 능가하는 2ch의 직심영류 스레를 다 읽어봤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직심영류극의전개라고 오직 야마다 지로키치를 까기 위해서 나온 오다니파쪽의 책도 있습니다.) 쟤네 유파의 내용이 뭐고 계보가 어떻다라는 것을 미리 알고 가야지 안낚일것 같습니다.

    자기네 단체에서 올린 영상이 능숙한지, 전하는 카타가 정전의 카타가 맞는지, 그리고 스승의 계보도를 통해서 의심할수 없는 실력을 지닌 사부까지 그 기원을 추정할수 있는지, 도장의 커리큘럼은 어떤지, 가르침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때 권위적이지 않게 잘 대답해주거나 모르는 부분을 솔직하게 인정하는지 등을 통해서 유추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정전인 사사모리 타케미만 하더라도 나이가 있어선지 요즘 연무하는 거 보면 일본의 고무도 찍을적에 날아다니던 그 풍모가 없더군요. 오와리 야규 후손도 그렇구요. 그 나이토 다카하루루, 몬나쇼를 배출한 동무관의 북진일도류 카타보면 카타의 意解를 살리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더군요.(제가 잘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믿을 놈 없다."라는 겁니다.

    아무리 가르침이 훌륭했더라도 간판만 멀쩡하지 자기가 제대로 온오를 깨우치지 못한 경우도 있고, 정전은 아니었더라도 연구와 수련을 통해서 온오를 깨치는 경우도 있고, 정전이면서 온오를 깨우친 이상적인 경우도 있고, 정전도 아니고 온오를 깨우치지 못한 가장 널려있는 경우도 있으니 말입니다.

    정말 의심할수 없는 정전이 전해진다는 것을 빼고는 사이비가 널려있는 것은 어디나 매한가지 아니겠나 싶습니다. 박정희 mk2도 되지 못한 박읍읍도 있고요.
  • ㅁㅁ 2017/03/20 17:36 # 삭제

    제일 확실한건 본가에 문의하는것입니다. 머 찾아가서 너 멘쿄있냐 따져봐도 되겠지만..이것도 좀 불확실하고...
  • 오키다 2017/03/19 22:34 # 삭제 답글

    제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 umberto 2017/03/20 00:21 # 답글

    오호라.. 모아김님 댓글을 보고 대학시절 검도를 배우면서 느꼈던 의문이 이제야 풀립니다.

    대학시절 동아리에서 검도를 배웠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진검술과 죽도술의 괴리를 느끼곤 했습니다. 사실 검도 입문하는 사람치고 진검술에 대한 환상이 없울 수가 없는데, 배울수록 뭔가 이상하거든요. 과연 진검으로 짧은 머리를 할 수 있을지, 몸받기 이후 코등이 싸움에서 진검이라면 베일만한 상황이 너무나 많은데 그냥 넘어간다든지 말이죠.

    특히나 이상한 점은 일본 영화를 보면 진검대결에선 거진 팔상으로 시작하고 상단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데 왜 대련에서는 중단만 고집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한도사님의 책 '독행도'에 보면 상단이 중단에서 찌르기 공격에 약해 상단이 퇴조했다고 짧게 언급은 되는데, 그렇더라도 왜 대련에서 주구장창 중단만 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오오이시 스스무 이 자가 만악의 근원이었군요. 어쩐지 아무리 일본도의 특성이나 죽도 시합의 특성을 고려한다고 해도 그렇게 팔상이 중단에 비해 취약한 자세로 취급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았는데, 이제야 의문이 풀립니다. 감사합니다. 모아김님.

    거참 직심영류 같은 나름 큰 유파까지도 팔상을 버려야만 했다니.....
  • 모아김 2017/03/20 09:26 # 삭제

    법정 1본목의 기술이 팔상에서 상단의 검을 베어떨구는 것이기는 하지만 직심영류는 상단이 특기였다고 하네요. 兵이라는게 무인이 검을 상단으로 든 자세라고 해석(사실은 도끼이지요.)하고요.

    검도에서 상단은 숙달된 사람들이 쓰는 자세라고 하지요. 경신명지류 모모노이가 류강류를 격파할때보면 상단에서 뒤로 빼면서 머리로 번번히 류강류 고수를 이겼다고 합니다. 치바 에이이지로는 검을 수직으로 세워서 다리베기를 막고는 이겼다고 합니다. 치바 슈사쿠가 직심영류의 대해 지극의 검술이라고 찬탄했던 것도 상단이 특기였던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라이 토오루는 류의가 상단이나 팔상인 놈들도 진검으로 붙으면 쫄아서 중단 잡으니까 중단이나 하단으로 잡는게 진검으로 붙을때는 이익이 많다고 하더군요. 시현류나 직심영류를 돌려서 깐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는 기공으로 眞空赫氣, 쩌는 키구라이를 가지고 있으니 자기의 중단이나 하단으로 죄다 위압할수 있다는 것 같네요.

    사실 검도 룰 적으로 보면 왼머리, 오른머리를 칠수 있으면 어깨나 목도 칠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타격부위로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팔상에서 케사기리를 득의로 하는 시현류도 보면 손목을 노리거나 검을 감아떨구니 말입니다.

    ...라는 것은 카타로 올바른 검리를 겸수하는 경우의 이야기이고 오늘날 처럼 사시멘이나 어깨로 죽도받아내면서 머리치는 것과 같은 시합칼이 난무한다면 검선도 룰에다가 전전검도 처럼 다리걸기랑 쿠미우치組打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게 무술로서의 검도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검은 그냥 총길이 100cm로 퉁치고(야규, 중서파일도류의 죽도정촌) 지금보다 약간 두껍게 해서 무게 맞추고요.

    검선도의 격자부위도 좋지만 조선세법에 보면 찌르기가 쌍명자(미간), 역린자(목), 탄복자, 좌협자, 우협자(좌우 옆구리, 배)가 있으니 찌르기에 면금이랑, 아랫배도 추가해야지 검리적으로 맞지 않겠나 싶습니다. 아랫배는 그러려니 하는데 면금은 조금 위험하군요. 만약에 면금을 포함해야한다면 지도용 죽도와 같이 선혁이 좀더 길면서 선혁의 타격부위는 후쿠로 지나이처럼 8쪽, 16쪽으로 나뉘어져야지 않겠나 싶습니다.
  • abu Saif al-Assad 2017/03/20 21:02 #

    유강류 처리가 생각보다 쉬웠군요. 하기야 다리치기에 대한 대응이 별게 있나 싶네요. 모모노이 슌조의 방법론은 서양에서도 역사와 전통의 슬립핑이고 치바 에이이지로의 방식은 로우 프라임 패리네요. 오오이시 스스무의 이야기도 그렇고 유강류 사태나 그걸 처리하는 것도 보면 생각보다 일본인들이 합리적이면서도 인간다운 한계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결국 검술은 환상 걷어내고 보면 여기나 저기나 별 차이없다는걸 확신하게 됩니다.
  • 임호관 2017/03/20 23:02 # 삭제 답글

    아르마로 따지면 왠 미친놈이 츠바이헨더만한 피더들고 온거네요ㅋㅋㅋㅋ
  • abu Saif al-Assad 2017/03/20 23:10 #

    거기에 날폭은 레이피어에 사이드링은 철판으로 막아놓은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근데 쫀심때문에 그건 아니라고 말도 못하고..
  • 9999 2017/03/21 01:08 # 삭제

    근데 어떤 영국 HEMA 팀의 영상을 보니 롱소드 들고도 길이가 2배 가까이 되는 츠바이핸더를 계속 이기는 소드마스터도 있더라고요.
    츠바이핸더의 느린 공격속도를 활용해 파고들던데
    죽도는 가벼워서 안되려나....
  • abu Saif al-Assad 2017/03/21 01:24 #

    영국에 이종대련 많이 하는 그룹이면 AHF? 저도 본 기억이 나는데 맞다면 아마 플라스틱 도검일겁니다. 저희 그룹에도 강철제 쯔바이핸더 블런트 소지자가 있는데 수직 베기를 크론으로 잡는 거 제외하곤 아예 막기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느리긴 느린데 질량이 너무 차이가 나서 훅 밀려버립니다. 그러니 들어가기도 힘들죠. 찌르기는 대응할만 합니다. 오오이시 스스무는 그보다는 당시 일본에서 타격부위로 인식되지 않던 허리를 치고, 길이를 이용해서 푹푹 찔러댄거죠. 그것도 가벼운 죽도로...
  • 킴브레이의 화덕덕 2017/03/21 01:32 #

    츠바이헨더 존하우 들어오면.... 으앙 주금
  • zxc 2017/03/21 02:03 # 삭제

    실력차이가 나면 죽도도 어느 정도 길이 차이나는걸 상대하는건 불가능한건 아니라고 봅니다. 질량이 적용이 안되니까요. 문제는 오오이시가 그냥 검술 실력도 마스터급에다가 창술까지 배워서 죽도를 창쓰듯이 써버린거죠..죽도길이 차이도 크고 키가 크니까 팔길이도 꽤 차이가 나는건데..이걸 편수로 찔러되면 그냥 창이죠..
  • abu Saif al-Assad 2017/03/21 03:08 #

    제 경험으론 날길이 5cm차이는 심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10cm차이가 나면 클라스와 최적의 전투법이 달라지는 지경인데 63cm 더 길면 클라스가 6배는 차이나는 상황이죠. 거기에 오오이시 스스무가 도구에만 의지하는 찐따도 아니고 신카게류에 창술까지 배운데다 쌍수 편수 찌름을 달인까지 연마한 수준이니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어보입니다.
  • 킴브레이의 화덕덕 2017/03/21 05:14 #

    본격 검으로 창술하기로군요!! 가지창없으면 뚜드려 맞는 수밖에요.
    폴암앞에 장사 벗ㅇ습니다.
  • 모아김 2017/03/21 13:21 # 삭제

    abu saif// 나카야마 하쿠도가 3척8,9촌의 죽도를 마련에 2척8촌까지 줄이고도 어떻게든지 대련할수 있었던것이나 오다니 노부토모가 강무소에서 죽도길이를 3척8촌으로 제한해놓고 자기는 3척2촌짜리로 연습한거나, 야규 렌야사이가 패도의 칼길이를 75cm(하바키 포함)에서 60cm까지 줄인것은 정말 클래스가 다른 것이군요.

    근데 나카야마 하쿠도가 죽도길이를 줄이게 된것도 진검길이와 죽도길이가 같아야 한다는 일도정전무도류의 가르침에 감탄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찌보면 '검술'을 연마한다면 당연한 소리이기는 한데 고류의 종가라 하더라도 시합해서 이기기 위해 정촌보다 긴 죽도를 쓰는 습속이 견고했다는 방증인것 같습니다. 다카노 사사부로는 막상 텟슈의 춘풍관 출신인데도 시합은 3척8촌 쓴것 같더군요.

    오다니 노부토모는 오이시 스스무에게 한번은 이기고 한번은 졌다고 하지요. 처음에는 찌르기가 머리를 노렸는데 이를 좌우로 목을 흔들어 피하자 다음에는 오이시 스스무가 찌르는 부위를 목으로 바꿔서 이겼다고 합니다. 그때 5척3촌을 썼는지 정촌을 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나카니시파 일도류의 다카야나기 마타시로는 오이시 스스무와 정촌으로 붙어서 비겼는데 자기는 졌다고 했다더군요. 자기의 별명이 상대랑 죽도와 부딪히는 소리가 안나는 '소리 없는 검'인데 너님의 劍氣를 간파한다고 죽도가 스쳤으니 이것은 자신의 패배와 같다고 말했다더군요. 그러니까 얍삽이 쓰는 너같은놈 한방에 격파해야하는데 못했으니 쪽팔리다는 것 같습니다. 굉장한 자부심이네요. 오다니 노부토모가 이때 심판이었는데 강무소에서 무사의 마음가짐을 논하면서 항상 다카야나기 마타시로의 이때 심경을 꼽았다고 합니다.

    강무소에서 다들 3척8촌 썼는데 오다니 노부토모 혼자서 3척2촌쓰면서 3척8촌을 모조리 제압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연습에서는 꽤 많이 찔리고 얻어맞은것 같더군요. 시합에서는 쩔었다고 합니다. 검성이라도 사람이었네요. 격검총담이나 본조무예소전 같은데 보면 에도에서 제일 격검 잘하는 유파로 손꼽히는게 직심영류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직심영류의 거대한 목검은 원래 나가누마파(종가)나 후지카와파(카타위주)에는 없늕 것 같습니다. 오다니파(죽도 대련위주) 고유의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야마다 지로키치의 직심영류저서를 보면 스승이었던 사카키바라 겐키치가 단련봉을 휘두르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야마다 지로키치가 카타를 배웠다고 추정되는 사이토 아케노부의 책에는 목검과 하비키, 후쿠로지나이 등 단련도구의 그림이 있으나 직심영류 단련봉의 그림이 없습니다.

    오다니 노부토모는 초기에 히라야마 시류의 충휴진관류를 배웠다고 합니다. 히라야마 시류의 3남이 카츠카이슈의 아버지이고, 카츠 카이슈의 검술스승이 오다니 노부토모이지요. 그리고 오다니 노부토모와 카츠카이슈는 6촌지간입니다.

    히라야마 코조平山行蔵(자가 子龍시류)는 다양한 방면에 저작을 남긴 인물인데 그 무술의 기풍이 실질강건했다고 합니다. 시류의 유파인 충효진관류의 연습은 소태도를 들고 창에게 돌진하는 훈련을 주로 하였다고 합니다. 시류는 중후장대한 검이나 목검으로 단련을 했다고 하는데, 그의 제자인 소마 다이사쿠는 제2의 쥬신구라라고 불린 '소마 다이사쿠 사건'을 일으킨 주모자입니다. 소마 다이사쿠가 시류로부터 받았다는 목검이 아직도 박물관에 남아 있습니다.

    http://blogs.yahoo.co.jp/syory159sp/28043454.html
    http://rekisi-kaido.owl-aomori.com/?eid=73

    따라서 오다니파 쪽에서 일관되게 등장하는 저 단련용목검은 히라야마 시류로부터 전래된 것이었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 abu Saif al-Assad 2017/03/21 18:18 #

    모아김// 네 길이 차이를 그정도로 극복했다면 자기만의 필승의 전략이 있던가 그정도는 씹어먹을 만큼 클라스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기술에 숙달한 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죠. 기술만으로야 장검도 단검으로 잡을 수 있지만 실제로 스파링해보면 간격, 선제권, 기세, 타이밍, 무형의 압도감 이것들에 의해 붙기도 전에 불리함에 빠지거든요. 연습에서는 사실 아무리 잘해도 많이 맞을 수밖에 없고 맞아도 되는 게 다양한 방법과 시도를 스파링 속에서 실험해보는 장이니까 잘 못하는 걸 시도하는 만큼 맞을 만도 하고요. 초보들 상대해줄때는 기세 속도 빼고 해주면서 맞아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시합에서는 자기가 제일 잘하는 것만 골라서 하고 이기기 위해 전략을 다양하게 바꾸기도 하니까 달라지죠. 개인적으로는 연습에서 좀 맞는다고 짜증내고 무조건 이기려고만 하면 실력 향상은 물건너간다고 봅니다. 근대검술에선 지면서 배운다는 말도 있고요.
  • 모아김 2017/03/21 21:50 # 삭제

    야규류의 소태도의 정촌은 1척 5촌이고이고 1척5촌의 소태도가 3척의 검을 이기는 이치는 몸의 움직임을 통해 양 어깨 1척5촌의 거리만큼 늘릴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따라서 소태도의 한계 규격만큼 카타나의 길이를 줄이는데 성공했다면 도법은 거의 완성된 것 아닌가 싶네요. 수도의 손끝에서 팔꿈치까지 거리가 대충 1척5촌이니 무토토리도 이 이치에 따라 운용되는 것 같습니다. 병법가 서에 나와있는 無刀勢, 手刀勢, 無手勢도 대충 이런 소리인것 같네요.

    일단 검이란 카테고리안에서의 체급도 이렇게 극복하기 힘든데 검대 폴암은 어떨까요? 검 대 창의 경우에는 어쨌거나 하시카카리나 몸의 한쪽을 먹이로 줬다가 몸을 반대로 뻗으면서 벤다는 식인것 같더군요. 물론 검이 창에 이기도록 꽤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지만 어쨌든 창에 대해서 검이 이길수 있는 경우를 그렇게 표현했더군요.

    수비록에 보면 폴암류(대봉, 철편, 長斧)는 일단 폴암의 동체에 곧바로 부딪히려고 하지말고 비스듬한 보법과 편신으로 그 중기를 피하고 팔과몸을 떄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더군요.

    가토리신토류나 입신류에서는 폴암의 음양수로 회전하는 궤적에서 어떻게 각도잘맞춰서 검으로 받아내거나 때려눕히고는 하시카카리로 달려들어서 한칼 먹인다는게 전법인것 같습니다. 야쿠마루 지겐류의 우치마와리도 장도상대로 사방에서 날아드는 나기나타를 베어떨구는 거라고 하는데 아마 이런 상황을 좀더 적극적으로 후려치는 것을 묘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니와 넨류의 장도 카타를 보면 알수 있듯이 어설프게 한손으로 흘리거나 받아내려고 하면 폴암의 질량에 밀리기 때문에 두손으로 받아내야하는 것 같습니다.

    뭐 직심영류 나기나타술을 보면 검 상대로 폴암이 이기는 경우는 참으로 많지요.;;

    창은 창으로, 폴암은 폴암으로 잡는게 정석이겠지만 일본인들은 어떻게든지 검으로 해결하려고 발악을 하는 것 같네요.

    1.피하고 하시카카리
    2.받아내고 하시카카리
    3.때려눕히고 하시카카리

    대충 이정도가 어떻게든지 찾아본 동양무술에서 검으로 폴암을 상대해서 이기는 경우의 수인것 같습니다. 본질은 동일한것 같네요. 서양검술쪽에서는 폴암을 검으로 잡는법을 어떻게 제시하나요?
  • abu Saif al-Assad 2017/03/22 01:19 # 답글

    서양에선 받거나 쳐내고 붙잡기가 대세입니다. 중세부터 근대까지 거진 그런식이네요. 요아힘 마이어는 사이드소드로 파르티잔을 이기는 법을 검을 왼쪽 발앞에 수평으로 두었다가 내려치면 상대 무기 안으로 과감하게 들어가며 행엔으로 받아내고 자루를 잡고, 찔러들어오면 똑같이 두었다가 위쪽으로 행엔으로 쳐올려서 들어가고, 상대가 회수하고 다시 찌르면 아래쪽으로 쳐내버리고 들어가서 잡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 방법으로 파이크도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이건 분노에 차서 무작정 돌진해오는 상대에게 맞는 방법이지 무기를 잘 회수하고 싸우는 사람에겐 맞지 않는다고 하네요. 세이버vs총검도 마찬가지로 거의 찌르기를 옆으로 밀어내면서 전진하며 왼손으로 총열을 잡습니다.

    사실 일본인들은 희한하게 상대 폴암을 잘 안잡는 것 같더군요. 폴암이 뒤로 빠지거나 들어서 내려치면 큰일인데 말입니다.
  • ㅁㅁ 2017/03/22 08:00 # 삭제

    그러고 보니까 일본쪽에서는 풀암을 잡는 테크닉을 잘 못본것 같네요..먼가 이유가 있을까요?
  • 모아김 2017/03/22 16:39 # 삭제

    ㅁㅁ//일단 하시카카리도 이리미 入身한 상태에서는 창대나 폴암의 대를 잡는게 당연한 일이니까 카타의 가오도 안살기도 하니 구태여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게 아닐까 싶네요. 받거나 쳐낼때 제대로 받아내지 어설프게 흘려내리려고 하면 폴암의 무게에 압도당하니(마니와 넨류) 아예 기세로 압도해서 달려들던가(야쿠마루지겐류), 굳건하게 받아내는 것을 강조한것 같습니다. 결국 본질적으로는 서양이나 동양이나 방법론이 그렇게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네요.

    창의 경우에 무작정 돌진해오는 상대에게 쓸 수 있지, 무기를 잘 회수하고 싸우는 사람에게 맞지는 않는다는 것도 오수의 수비록에 보면 刀는 원래 창을 이기는 이치가 없다면서 달라붙는粘 것도 크게 찌르는 것에나 통한다고 이야기를 했었지요. 다들 비슷비슷한 것 같습니다.

    //abu saif
    연병기를 파훼하는 이치는 어떨까요? 프레일, 편곤, 만력쇄, 유성추, 사슬낫 같은 것들을 검으로 파훼하는 이치가 궁금합니다. 막으려고 하면 타고 넘어오거나 감기니 참 곤란할 것 같습니다. 킬빌에서 고고 유바리의 그 유성추를 보면서 실제로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하더군요. 일단 유성추가 회전할때의 압박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할미새꼬리나 야규신음류처럼 검끝을 설렁설렁 흔들면서 언제라도 유동적으로 카마에를 바꿀수 있게하는게 좋을 것같네요.

    1. 쳐내거나 빗겨내면서 입신하거나, 2. 감길때 궤도 맞춰서 나도 휘감으면서 풀면서 입신하거나, 3. 피하면서 입신한한다 정도일것 같은데 다들 힘들 것 같습니다. 일단 안익숙한 궤도라는 점이 지극히 난해할것 같습니다.
  • abu Saif al-Assad 2017/03/22 19:26 #

    역시 오수형님이 뭔가 아시네요. 창좀 쓸줄 아는 사람들 상대로 검이 이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무작정 크게 찌르는 거야 누구든지 다 막는거고, 배운 사람들은 그 전에 다양한 페인팅을 걸면서 혼란시키고 들어가고 안된다 싶으면 빠지고 찌르는 것도 다 하니까 사실상 창잡이의 실수에 기대는 수밖에 없더군요. 보편 검술의 이데아에 접속하고 다양한 이종병기나 이종검술과의 대련을 해보면 결국 길이가 너무 차이나면 도리가 없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되더군요. 서양검술이 사람 많으면 걍 도망가라고 하고 묘하게 현실적입니다. 너무 현실적이라서 실망감도 느끼게 되더군요. 하지만 그만큼 검술이란 거에 환상이 짙게 껴있어 무의식을 형성했다는 증거겠죠.

    연병기는 이종무기대련을 실어놓은 PHM에도 검vs연병기는 안보이네요. 경험으로 따지자면 보병용의 긴 플레일은 안싸워봐서 모르겠지만 봉술에 능하다면 상대하기 쉽지 않을 것 같고, 기병용의 짧은 플레일은 막지 말고 거리 둬서 피하고 치면 어렵지 않습니다. 또 그런 무기가 늘 그렇지만 손이 훤히 드러나니 여유를 가지고 싸울 수 있고요.
  • ㅁㅁ 2017/03/22 20:04 # 삭제

    모아킴// 답변 감사합니다. 일본 검술쪽에서 모아킴님처럼 방대하게 아시는분도 못본것 같습니다. 좀 유치한 질문일수도 있는데, 본인이 생각하시기에 일본에서 가장 실전적이었던 유파는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 모아김 2017/03/22 20:54 # 삭제

    실전이라는게 스펙트럼이 여러가지가 있으니 뭐라 말하기가 그렇네요. 야전을 말하는 것일수도 있고, 일대일 대결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야전이라도 산악전이었을 수도 있고, 평야에서 했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히키타 분고로는 야전에서 사람죽이는 거랑, 일대일 결투로 사람쓰러트리는 거랑 쓰는 기술이 다르다고 이야기한 기록을 봤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개인이 강한것이지 어느 유파가 강하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유파라는게 안을 들여다 보면 강조하는게 다르기는 한데 결국은 기술은 거의 다 비슷하니까요.

    그럼 결투와 야전을 실제로 겪은 자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센 검호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체계가 훌륭한 류파가 가장 실전적 아니겠냐고 할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입문했으니 검호가 많이 배출되는 걸로도 볼수 있지 않겠나 싶네요.

    일단 실전적이라는 유파를 저같은 나이롱+몸치라도 머리비우고 체계를 따라가기만 하면 보통 이상은 만들어주고, 다양한 자세의 쓰임이나 싸움의 요령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체계가 좋은 유파로 정의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보기에는 1. 다리 위주로 크게 뻗는 오모테 카타가 있어서 몸단련하기에 좋으며, 2. 대련을 체계적으로 배울수 있는 유파가 좋은 유파인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거저거 할것없이 신음류(야규, 히키타, 직심영류)랑 일도류(스가루전, 북진, 나카니시파. 무도류는 실전기술이랑은 카타가 좀 따로 노는 느낌)입니다.

    시현류는 단의 카타 12본으로는 구성이 좀 부족하다 싶습니다. 물론 그걸로 다 할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검술이라는게 어느정도 이치를 골고루 갖춰야하지 않겠나 싶네요. 일도즉만도를 배워야지 만도즉일도가 나오는 법 아니겠나 싶습니다. 이거는 그냥 팔상 공부할때 참조하면 될것 같네요. 그외에 타치키우치나 단련법같은거는 참고할만 한것 같습니다.

    쪽바리검술을 보면서 느끼는게 얘네들은 개전에서 긴주로 간다는 개념이 명확하게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좌식생활로 고관절이랑 어깨가 굳었고, 허리가 굽었기 때문에 태극권 대가식처럼 하반부터 크게크게 움직이면서 팔다리의 움직임을 교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단 검도를 하면 작은 동작으로 머리나 손목을 쳐야 하기 때문에 팔과 다리의 관절을 푸는게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체의 연성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거지로 팔뚝이나 손가락에 힘을 주거나 하는 식으로 빠른머리를 몇백번씩하면 결국 목과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기가 상기가 됩니다. 돈주고 시간주면서 몸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요. 반복해서 하면 힘빠진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굉장한 삽질 같습니다.

    현대검도 뿐만 아니라 대개의 유파들의 경우 실전에서 쓰는 기술을 몇가지를 모아서 유파를 만들지 명확하게 체를 만들기 위한 카타를 정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도류는 미에三重, 신카게류는 엔삐燕飛와 같이 보폭이 넓으며 자세가 낮아 몸단련에 좋은 오모테 카타를 가지고 있습니다. 직심영류는 내가 보기에는 유파자체가 단련용이구요. 일본에서 검도랑 일도류를 같이 전승하는 도장을 보니까 미에三重를 제끼는 경향이 있는데 미에가 기술적으로는 별볼일 없을 수도 있지만 목적이 이거다는 거는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싶네요.(물론 이거는 제 생각)

    일도류 기술은 실전에 못쓴다는 말이 있지만 오노 타다아키는 전진에서 잘썼고, 지금 현대검도의 검리는 일도류가 주축이니 그냥 쓰기 나름 아닌가 싶습니다. 신음류도 효고노스케나 무네노리, 쥬베이 실전기록이 꽤 있지요. 류조인 이세노카미는 말할필요도 없고요.

    대련이라는 점에서는 신음류는 후쿠로지나이를 만들었고, 일도류는 뭐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싶습니다. 일도정전무도류는 보면 小稻의 형이라고 후쿠로지나이로 하는 카타가 추가되었습니다. 즉, 목검, 하비키, 후쿠로지나이, 호구차고 죽도 대련이라는 게 모두 필요한것 아닌가 싶네요.
  • ㅁㅁ 2017/03/22 23:30 # 삭제

    답변 감사합니다. 역시 쇼군가 검술이.잘나간 이유가 있겠죠..저도 개인적으로는 일도류가 제일 합리적으로 보이더군요. 야규류도..명성이 있으니...강하긴 하겠지만..이쪽은 좀 머리 잘쓰는 이미지가 있어서..
  • 모아김 2017/05/03 14:55 # 삭제 답글

    이번에는 메이지 시대를 거치면서 무덕회가 성립되고, 검술이 검도로 체계화, 스포츠화되는 과정에 관해서 뒤져보았습니다.

    http://handosa.egloos.com/3853655

    쇼와 시대에 무도가 정규교과로 편입되기 위한 청원운동에 관한 논문과 메이지 시대의 목검 체조 논문(...) 등을 보니 저 링크의 사진을 마냥 비웃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메이지 시대부터 무사 출신의 관료들이나 무사 룸펜들이 정말 ‘한자리’ 얻기 위해서 ‘필사적’이었음을 알겠더군요. 무사출신들의 고관대작들중에서는 본인들이 격검의 대가이기도해서 격검흥행이나 무사출신들을 경찰로 채용하는 예가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수요는 적은데 공급이 많은 상황을 어떻게든지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근대화되는 메이지 시대에 서양물먹은 놈들이 서양체조니 뭐니 이런거 들여오니까 얘네들과도 경쟁을 해야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기나타 체조, 목검 체조 같은 것들을 만들어서 보급하거나, 사카키바라 켄키치가 격검흥행을 한거나 검도를 어떻게든지 흥양시키기 위한 발악이었던 것이지요. 참고로 저 목검 체조는 그냥 일도류 형을 혼자서 연무하는 거 비슷한 놈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메이지 정부는 초기에는 검도가 유년체육에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어린나이에 죽도로 머리나 몸을 치고받으니 뇌진탕이나 심계항진이나 멍 등의 상처가 일어나기 때문에 유도와 비교해서 검도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것을 망설였던 것 같습니다. 검도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된 것은 쇼와시대 이후의 일이지요.

    종래에 격검, 검술 등으로 불리던 것이 ‘검도’라는 용어로 제창되게 된것은 경시총감과 참의원을 역임했던 초대 무덕회 부회장이자 무도전문학교 교장 니시쿠보 히로미치西久保弘道에 의한 것입니다. 이 니시쿠보 히로미치는 야마오카 텟슈의 직계 제자는 아니나 텟슈를 흠모해서 사숙하고, 무도류를 배운 인물로 단순한 사람베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형성으로서의 ‘도’로써의 검술을 검도로 변화(발전인지는 모르겠습니다.)시킬 것을 주장한 인물입니다. 검도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라고 주장하는 해동검도나 대한검도회의 이야기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검도라는게 근대의 개념인 것입니다.

    이 니시쿠보 히로미치 뿐만 아니라 텟슈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당시 ‘검술’을 ‘검도’로 변화시켜야 하는 시대적 요청에 대해서 공감한 검사들은 그 외에도 굉장히 많았던 것 같습니다. 텟슈 본인부터 서양에 뒤지지 않는 야마토 정신의 정화로써 ‘무사도’를 내세우며 이에 관한 책도 냈고요.

    따라서 현대 검도에 있어서 텟슈의 사상적 영향은 유도에 있어서 가노 지고로의 그것과도 비슷하다고 볼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속 사정은 어찌되었건 간에) 사민평등 사상이 퍼지면서 대중들 사이에 ‘나 또한 무사이다.’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시민정신에 해당하는 놈으로 ‘무사도’에 주목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우리식으로 따지자면 “너만 양반이냐, 이제는 우리 모두 양반이다.”라는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허나 유술을 유도로 바꾸면서 인간형성의 도이자 스포츠로 근대화시킨 가노 지고로가 초심자에 대해서 세심한 지도법을 남기고, 각 유파의 기술을 체계화, 표준화시키면서 카타와 교수법을 합리적으로 제정한것에 비해서 텟슈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텟슈는 전통을 묵수하는 것을 지향하고, 가르침 또한 상급자 위주였던 것 같습니다. 텟슈의 제자들중에서 상달한 사람들이 대개 타류경험자가 많았습니다. 무도류를 통해 검술에 처음 입문한 제자들 중에서는 텟슈의 하늘거리는 검풍을 따라만 하거나 뻣뻣한 카타 흉내 내거나 혈기에 맡긴 장작패기로 빠져서 상달하는 사람이 드물었다고 합니다. 초짜가 3척3촌으로 타류의 3척9촌과 붙어서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경우도 드물었고요. 텟슈는 3척8,9촌을 오이시 스스무의 유풍으로 보고 문인들에게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정전을 잇는 자부심 때문에 융통성이 없었던 것이지요.

    연구자들은 텟슈 본인이 10년만 오래 살았더라도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고, 메이지 시대에 텟슈 정도의 권위를 가진 검사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의 일본검도형이 아니라 좀더 체계적인 통합유파로써 검도가 나오지 않았을까하고 한탄하더군요. 텟슈는 북진일도류를 치바 슈사쿠에게 중서파일도류를 아사리 마타시치로에게 배우고 오노파 일도류의 정전을 이어서 검명도 높고 에도성 무혈개성 건으로 유신지사계열의 관료들이나 구 막신 모두에게 영향력이 높고, 검선일여에 도달했고, 시종장으로써 메이지 천황의 신뢰도 두터웠기 때문에 통합유파를 만드는데 이 사람 말고는 없었을 것입니다.

    유도의 경우에는 에도시대에는 무기 싸우는데 맨몸무술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 때문에 비교적 하는 사람이 적었던 것이 오히려 표준화, 근대화, 스포츠화 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검도의 경우에는 수요에 비해서 ‘명인’의 수가 너무 많았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 자에 의해서 통합이 이루어지기에는 텟슈 사후에 머리 굵은 놈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경시류나 일본검도형의 카타 제정은 유도에 비해서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누구나가 자기 유파의 카타를 넣으려고 발악했기 때문에 체계를 갖춘 유파라기보다는 카타를 이거저거 모아놓은 누더기 같은것이 되어버렸지요. 오죽하면 다카노 사사부로는 품에 단검을 넣고 현행의 천지인 3본이 통과되지 않으면 위원들을 찌를 각오였다는 이야기가 전래되더군요. 카타에 비해 죽도검술은 검술68수에서 일부기술을 없애고 일부기술은 넣는 식으로 표준화가 진행되고, 초심자에 대한 교수방법이 이후에 진행되었으나 검도의 무술적인 특성인 검리에 대한 교수법인 카타는 당시 센세들의 자존심 때문에 흐지부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들은 각 유파의 카타가 이미 완비되어있는데 구태여 다시 카타 위의 카타를 제정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기도 하였구요.

    뻗으면서 치는 지금의 타법도 막부말기부터 이미 있었던 것이고, 죽도검도 대련의 격자부위나 대련 룰 같은 경우에는 이리저리 세세한 차이가 있기는 하나 크게 본다면 막부말기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반면에 검리, 카타는 지지부진해진 것이지요. 현대 검도를 둘러싼 실전논쟁-하단 공격, 죽도길이, 어깨와 목 치기- 등은 검도의 역사적 발전 양상을 본다면 지금의 룰이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검리 자체를 카타로 충분히 익힐수 있다면 오히려 검선도 룰이 번거롭고 검도 룰이 간단하면서도 충분하다는 것이지요.

    각 유파들은 국가산하단체로 일본무덕회가 조직되고, 무도전문학교와 무도의 정규과목화가 지정됨에 따라서 각 유파가 끊어지지 않고 잘 보존되어서 전래될 것을 기대했으나, 나랏돈 받아먹으면서 국가의 영향권 아래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카타의 표준화와 관 주도 시합의 번창으로 지방 유파들이 사멸화된 것은 전에도 이야기했었지요.

    나라가 군국화되면서 무도를 건강한 시민의식 함양을 위한 수단이라기 보다는 총알받이로 만들기 위한 것으로 교육의 성격이 기울었습니다. 애초에 무사도 자체가 그런 측면이 있지만 봉건주의적 무사도나 기사도가 특유의 엘리트 의식에 기반한 ‘반란의 권리’(메이지 유신이나 프롱드의 난)또한 강하게 옹호하는 측면도 있는데 ‘일반 국민의 무사화’는 국가에 대한 시민의 건전한 비판의식 함양보다는 국가주의에 의한 민의의 일원화, 압살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덕회나 무도전문학교에서 통합 카타를 강제하더라도 따로 책을 내서 주된 유파의 형이나 검리를 해석하고 보급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국비기획으로 일도류극의나 병법일도류, 병법시현류처럼 유파내에서 종가가 정리하지 말고, 각 지방의 대표하는 유파의 검리나 카타, 전서에 대한 ‘표준해석’을 내는 식으로요. 하기사 그러기에는 각 유파의 반발도 있었을 것이고 시간과 예산의 문제도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종국에 이 관치주의는 미귀필살검으로 연결되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전쟁을 거치면서 고류도 많이 끊기고 하다보니까 일본내에서도 이제 카타 통합은 이미 물건너간 이야기인것 같네요. 보니까 오가와 츄타로처럼 고단자들 위주로 알아서 일도류나 직심영류 등의 고류를 배우는 식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유파들은 마이너하게나마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고요.
  • abu Saif al-Assad 2017/05/03 15:16 #

    예전에 일본군 검술 관련해서 알아볼 때 좀 놀랐던 것이 프렌치 덤벨이나 인디언 클럽을 비롯한 서양 군사 체육이 일본에 이미 1870년대에 상당히 퍼져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절찬리에 번역해서 그 전통책스러운 제본으로 열심히 출판되어 있더군요. 체조도 마찬가지고요. 일본인들이 얼마나 서양 문물 도입에 적극적이었는지 알만했습니다. 일본군에서도 프랑스 고문단에 의해 플뢰레 펜싱으로 검리를 깨우쳐서 총검술과 세이버 검술을 한번에 얻는 체계가 마련되었지만 일본군내의 전통무도론자들에 의해 알력이 심했다고 하고 그 결과 플뢰레 폐지, 트레이닝 바요넷과 세이버를 목총과 한손죽도로, 펜싱마스크와 자켓은 검도식 호구로 대체되었다가 결국 양손군도술 도입으로 그냥 검도를 하기 시작했지요.

    좀 애매한 입장일 때에는 각 유파의 공통점과 통합해야 할 점이 눈에 보이지만 일단 그 유파의 방식이 몸에 배이고 매몰되면 그 유파의 방식과 용어와 체계가 아니고서는 절대로 검술을 배울 수 없다 라고 여겨지는 건 도리가 없어 보입니다. 리히테나워류를 하면서 점점 그렇게 되더군요. 그나마 훈련법이 안 남아 있어서 그렇지 훈련법까지 남아 있었더라면 도리가 없습니다. 사실 말 그대로 유파라는 게 시대를 거치고 타류경험자등의 유입으로 새로운 방식이나 기법이 더해지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움직임과 관점 등등 전체적인 인간 하나를 형성하는 풍격이란게 있게 되기 때문에 다른 걸 억지로 통합하면 그냥 새로운 유파가 되거나 김연아와 박지성을 합체시키는 부자연스러움만 남게 되는 걸 느끼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야마오카 텟슈도 그런 점에서 도리가 없었던 경우라고 보여지네요. 결국 검도는 별개의 유파가 되었고 일도류나 여러 유파의 요소를 합쳐서 만들어졌지만 결국 검도는 검도이지 일도류나 직심영류는 아니게 되었지요.

    근대적인 국가주의는 유럽의 수많은 지역 분권과 문화적 분절, 민족적 차이를 통합시키고 하나의 국가로써의 정체성을 강요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언어, 문화, 교육의 통제를 시도했고 일본도 그것을 그대로 답습했기에 검도가 특정한 룰과 스타일만을 요구하고 그 과정에서 전국적인 다양한 룰과 방식이 소멸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 싶네요. 그 과정에서 검도는 검도일 뿐 유파간의 교류의 장이 될 수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이제는 통합과 획일화가 중요하던 근대를 지나 창의성과 개성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으니 지도부를 중심으로 검도를 다시 각 유파의 경합의 장으로 만들수 있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그렇게 하려면 격자 부위만 바뀌어도 뭔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게 되면 죽도격검이 진검술을 경합하는 타류시합의 장으로써 기능했던 과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 모아김 2017/05/03 17:18 # 삭제

    유파 경합의 장이 되어버리기에는 이제 일단 고류가 쇠퇴하고, 고류의 카타와 죽도가 너무 따로 놀게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시합룰은 여러 유파가 경합하던 막부말에 이미 거의 현행과 비슷했으니 바꾸기에는 전통이 저항하지 않겠나 싶네요. 귀에 고막보호대를 달아놓으면 검선도룰로 쉽게 바꿀수 있겠습니다만 검선도룰에 몇가지 추가를 해서 실전지향으로 바꾸더라도 양상은 의외로 지금과 그렇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팔상에서 바로 어깨, 목을 감아치거나 직심영류 타태도처럼 내려친검을 허리칼로 바꾸어 허벅지를 베거니 올려치는 것과 같은 몇 가지 전략이 더 추가되겠지만 본질은 현행 룰에도 유지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룰이 나름 검리를 잘 나타낼 수 있는 것 같고요.

    지금 그나마 고류 카타와 검도가 같이 겸수되는 유파는 일본고무도협회 기준으로 미조구치파 일도류, 중서파일도류, 직심영류, 갑원일도류, 북진일도류, 쿠라마류, 신도무념류,이천일류, 보쿠덴류인데 막상 전통보호 차원에서 도장 내에서 깨작거리거나 종가나 고단자들이 배우지 죽도를 확실하게 보완하는 용도로 쓰이는 유파는 중서파일도류, 직심영류 정도이던 것 같더군요.

    일본 블로그 보니까 갑원일도류는 자료가 정리가 안되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위기라는 이야기도 있고, 쿠라마류는 있던 카타가 죽도격검에 맞게 간략화되었다고 하더군요.

    검도 입문은 다카노 사사부로로부터 시작하고, 모치다 세이지와 사이무라 고로에게 배우는 등 스승복이 많았던 오가와 츄타로가 막상 고류 카타는 이들에게 배우지 않았던 것은 쇼와의 검성들이 고류를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들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은 고류보다는 보편 죽도 격검이었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보편 죽도 격검으로 부족한 검리 습득을 위해서 오가와 츄타로가 40세 이후에 입문한 고류가 사사모리 tbs조의 오노파 일도류, 이시다 카즈토의 무도류, 가토 칸지의 직심영류 였다는 것은 죽도격검과 연계되는 검리의 본질을 이 유파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나카야마 하쿠도가 제자들 중에서 카타를 하려는 놈들이 없다는 것을 한탄했다고 하는데 역으로 이는 당시에 이미 제자들이 신도무념류의 카타와 죽도검술이 따로 논다고 인식한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제가 보기에 죽도격검은 건강에 아주 좋은 운동은 아닙니다. 직선적이며, 반사신경에 의존하면서, 호흡이 거칠어지고, 호면의 무게로 목에 힘이 들어가면서 빠른동작 작은머리 등을 반복하기 때문에 상기가 일어나기 쉬우며 발딛음으로 무릎에 부담이 가지요. 하가 준이치는 남에게 도끼칼 쓰고, 남의 도끼칼을 다 맞아줬다고 하지만 나이 들어서 뇌혈관 계통의 질병을 앓았다고 하지요.

    시라이 토오루가 28세에 죽도격검에 대해서 40세 이후에 나이가 들어 혈기가 쇠하면 별볼일 없어지지 않는가하는 문제의식을 가진게 충분히 타당합니다. 오가와 츄타로도 시라이 토오루와 비슷하지 않았나 싶구요. 메이지 초기에 검도의 정규과목 채용을 정부가 주저했던 것이 근거가 없는 것 같지 않습니다. 야마오카 텟슈가 장작패기검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혈기에 맡겨 승부를 내려는 죽도검법에 비판적이었던 것도 이의 연장선상이겠지요. 검도를 하다 보면 결국 이게 작대기 싸움인지 검술인지 헷갈릴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카타를 통한 검리를 탐구하게 되지요.

    그렇다면 결국 검술68수와의 관련성도 그렇고 사리일치, 검리의 실제에 있어서의 적용의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저 유파들을 근간으로 삼아야 할것 같습니다. 더 추가하면 시현류 정도고요. 일단 이러면 검술 3대유파의 말예들이 다 포함되네요. 오늘날의 타격대 훈련과 연격에는 타치키우치의 개념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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