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내 지팡이를 가져갑니까? 청문회와 지팡이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자, 동료와 나를 손가락질하며 뭔가 이야기하는 자, 턱을 괴고 반쯤 지쳐버린 자 등 다양한 행태를 보이는 의원들을 둘러보며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팔을 들어올리고는 내렸다. 흔들거리는 팔이 허리 즈음에서 왔다갔다하는 것이 서너번쯤 반복되었을 즈음 이젠 다 포기했다는 포스를 온몸으로 내뿜으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팡이를 돌려줄 때까지 청문회 증언은 없는 줄만 아십쇼."
이 말만 벌써 15회 정도 반복되었으며, 회장 내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들고 있던 콜드스틸 시티 스틱을 보안요원이 뺏어간 이후 청문회의 의사 진행은 완전히 말아먹히고 있었다. 왜냐하면 뭔가 일이 진행되려고 할 때마다 지팡이를 내세우며 때로는 마이크를 툭툭 쳐서 소음을 발생시키거나 큰 소리를 치면서 지팡이 몰수에 항의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시작되고 65분이 지나는 지금까지 청문회는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못했으며 의원들은 대놓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마침 들려오는 소리를 말해주자면 "노인네도 아니고 청문회에 지팡이를 들고오는 놈이 어딨어. 옷차림도 그렇고 XXX끼..." 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다. 왜냐하면 난 트집 잡을 소도구 삼아서 지팡이를 들고온 거거든. 보안요원은 길고 거시기해보이는 물건은 당연히 압수하기 마련인데 그걸 가지고 죽어라 트집을 잡는 것은 말하자면 상식에 반하는 행동이지만, 나는 어차피 청문회가 제대로 진행되게 놔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결국 시끌시끌하다가 지팡이를 돌려주는 쪽으로 결론이 난 모양이다. 국회의장이 말하기를
"그 지팡이를 폭력의 도구로 쓰진 않을거죠? 이틀 전의 그 의원(진보당 대의원) 때문은 아니죠?"
그러니까 그양반처럼 달려드는거에 호신용으로 들고온거 아니냐, 그런 용도가 아니라면 돌려주겠다는 소리다.
"라이터를 주먹질하려고 들고다니는 사람이 있습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돌려주십쇼."
돌려준다고 하는데도 고집 피우면 진짜 없는 사람처럼 보일 게 뻔하므로 줄땐 그냥 순순히 받아야 한다. 아무리 절망적인 시청률의 KTV라고 해도 일단은 실시간 중계이고, 또 오늘의 일은 다이제스트되어 공중파와 종편으로 방영될 것이니까 너무 뻘짓만 하면 여론도 좋지 않다.
지팡이를 돌려받고 책상에 기대놓았다. 조명을 반사하는 광빨의 스뎅 헤드가 몇몇 의원들의 눈길을 끈다. 한결 누그러진 태도를 취하면서 생각해보면, 근 며칠간의 여론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나에게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흑호방주가 갑자기 돌변해서 진보계열 지도자들을 떼로 죽이는 것이라거나 흑호방주가 인체예술과 판매 부문을 종합으로 취급하는 그 문제의 수뇌부였다는 것이 드러났고, 특히 노트북의 내용은 증거로 경찰에 제출하기 전에 전부 복사했으며 동영상은 절대 무삭제가 주특기인 우리의 친구 Liveleak에 상당수 업로드되었다. 이게 머지 않아 국내에도 퍼지면서 아주 난리가 났다.
동영상 속 피해자의 혈육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협회를 결성하는가 하면 진보세력을 조롱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그에 비해 전습대에 대한 동정여론이 확산되었다. 물론 음모론도 그에 못지 않게 확산되었으나, 흑호방주가 벌리고 간 일들이 워낙 무지막지했으므로 사람들의 판단은 갈팡질팡, 혼돈의 카오스에 더 가까웠다.
"자경단을 자처하면서 선량한 시민을 일본도로 잔인하게 학살한 죄, 인정하시죠?"
역시 상황이 진정되자마자 공세를 취하는 건 진보당이다. 그날 결정적인 뭔가가 끊어진 대의원 양반은 급히 뇌혈관 결찰을 받고 입원하셨다고 하고, 지금 의원이랍시고 나온 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주요 수뇌부는 흑호방주에게 다 맞아죽었거든...
"미국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폭압적이라구요?"
자칫하면 뇌졸증 환자 하나 더생기지 싶은 반응을 보여주는 대의원 2호 양반은 빡침을 겨우 제어한 듯 감은 눈을 뜨고 뒤로 넘긴 머리통을 앞으로 내리면서 아까보다 0.5단계 올라간 목소리 톤으로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미국 경찰같은 소리는 그만 하시고, 예? 시민을 참살한 일본군 짓거리를 인정하냐구요!"
쉽게 넘어가진 않는 듯 하다. 다시 미국경찰 카드를 꺼내본다.
"그럼 미국 경찰이 총으로 시민을 쏴죽이는 거나 우리나 같다는 말씀이시군요?"
"당연하지! 그래서 인정하냐고!"
"의장님, 발언권 좀 주십쇼."
발언권 수여따윈 기다리지도 않고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일어서서는 마이크를 내 입에 가깝게 수직으로 세웠다. 마이크를 짐짓 시험하는 체 하며 손가락으로 두번 치자 퉁퉁 하는 큰소리가 스피커를 울렸다.
"의원님, 코리안 팔루자 통구이 사건이 나도 된다는 뜻으로 말씀하시는데 그러면 안되죠.."
아예 할 말을 잃고 어이없어하는 대의원 2호 양반이 결국 "야, 너 또라이지? 그지?" 라고 막말을 하는 것을 보며 나는 한시름 놓았다. 이성을 잃은 자는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 계신 의원님들은 이전에 안산에서 국회의원 한분이 돌아가신 사건들 기억 하시죠? 안산이 그런 곳입니다. 경찰들도 불타죽었고 이번에도 파출소가 불탔다구요. 이런 곳입니다."
당에 관계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정색하고 나를 보고 있는 것은 언뜻 반대 의지의 단체 압박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나, 나는 진보당이나 민주당 일부 의원의 술렁거림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나에게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이런 곳에서의 치안을 유지하려면 특별한 솔루션이 필요합니다. 미국 경찰이 총을 쏘는 건 범죄자들이 총이 많아서이죠. 여기도 같습니다. 혹시 그 돌아가신 의원님을 기억하시는 분들께서는 그날의 황당함을 한번만 상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찰 관계자분들도 계신데 그날의 순직 경찰들이 죄가 있었습니까? 무고한 사람이 황당하게 죽어가는 곳이란 말이지요."
참고인으로 출석한 경찰 고위간부들이나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특별한 솔루션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청과 경찰에서도 적극적인 협조를 해준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활동하고 나서 해결한 사건들, 이 놀라운 범죄율의 감소를 보십시오!!"
서류를 오른손에 들고 사람들에게 들어보이면서 왼손으로 툭툭 쳐보였다. A4용지에 인쇄된 복잡한 수치들이 설사 바로 건너편 책상의 의원에게조차 보일 리 만무했지만, 그보다는 연극적인 효과를 더 생각한 것이다.
"이 통계의 비결이 다름이 아닙니다. 가장 위험한 곳에서 가장 알맞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전문성에 비결이 있었던 것이죠. 실제 우리의 활동을 무너트리려던 범죄 조직들의 다양한 습격과 음모 속에서 우리는 조직을 분쇄하고 비극의 원곡동에 파출소를 다시 열었지 않습니까?"
말을 끊은 것은 새누리당 의원 한명이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불편해 보였다.
"그래서 당신들이 경찰이라도 된다는 거요?"
여기서 물론 아니죠 같은 소리를 하면 글러먹는다. 긍정 부정도 하지 않은 채로 나아가는 게 정석이다.
"한국 경찰의 참담한 현실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지난 좀비사태 이후로 경찰 사상률이 너무 높아 지금 가장 험악한 지역에서조차 경찰력을 제대로 충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경단들이 지역마다 다양하게 구성되고 경찰의 통제를 받아 치안 유지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을 행정 편의니 하고 비난하시는... 저기 저 분들도 계시는 모양입니다만..."
엄지손가락으로 진보당 쪽을 가리키면서 일부러 시선은 외면했다. 사실 이번 사태로 자경단 문제를 제기하는 건 3당이 공통적이었지만 일부러 저쪽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경찰은 치안을 위해 부족함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찰은 단 한순간도 치안의 의무를 방기한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팔과 손을 쭉 펴서 경찰 간부들을 향해 내밀며 회장 내부를 크게 둘러보았다. 경찰 간부의 얼굴은 일부러 보지 않는다. 아첨하면서 눈치보는 듯한 태도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한테 존나 고맙겠지..
"그래도 무슨 오지랖이 그렇게 넓습니까? 역사재현단체니 해서 총기까지 보유하고, 그걸로 무슨 내전까지 벌이는 것도 자경단의 당위성으로 덮어야 된다 뭐 그런겁니까?"
이번에는 민주당 의원 1이다. 이 또한 부드럽게 넘기는 것이 좋다.
"사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체 같은 걸 만들고 감투를 쓰거나 하는 건 생각조차 못해본 일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관리하고 책임지고 이런 건 제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사실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의 작은 낙에 감사하던 소시민이 지금 이곳에서 자경단의 수장으로써 그간의 수난을 감수하여 왔음은 제가 원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치안이 무너지고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이 등을 떠민 것이었습니다.
많은 판단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만신창이가 된 조국이기에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는 저에겐 오직 한 단어만이 있었다고 말입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이미 손은 심장을 가리듯 가슴에서 교차하고 있었으며, 말이 끝나고 약 5초간에 걸쳐 침묵했다. 눈을 감고 1초간 힘을 주어 감는 듯 얼굴에 약간 힘을 준 후, 뜨면서 고개를 들고 천천히 손을 가슴에서 내렸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차분한 분위기는 내 바라는 바가 아니었으므로, 혼돈의 카오스 겸 갈굼의 재미를 느끼기 위한 한문장을 한번 던져본다.
"더군다나 저기 저분들이 흉악범의 선동에 홀라당 넘어가가지고서는 그 전국의 패거리를 동원해다가 폭동을 일으키고 앉았는데 제가 피한다고 피해 지겠습니까?"
다시 국회가 소란스러워지면서 난리가 났다. 주제가 여러개가 되면 시선이 분산되는 만큼 구태여 여러가지 부분에서 내 입장을 일일이 다 표명할 필요 자체가 없는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할 말은 다 했으며, 앞으로 뭐가 됐든 의사 진행 방해만 주구장창 할 생각이다. 다음 이야기는 다음날에 하자.
그나저나 오늘 저녁에는 계란이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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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90화 인실좇(3)
언젠가 씁니다.
*계란드립에 관해 - 전두환과 노태우가 12.12.내란음모 건으로 김영삼 시절 재판을 받던 도중의 일화로, 전두환은 노태우의 5공청문회를 비롯한 토사구팽에 분노하여 말도 안하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그러던 와중 내란음모죄로 재판을 받으면서 함께 출석했는데, 어색했던 둘 사이를 깼던 작은 대화가 있었죠.
전두환 - 자네 구치소에서는 계란 후라이 주나?
노태우 - 안 준다.
전두환 - 우리도 안 줘.
여기서 비롯된 드립입니다.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자, 동료와 나를 손가락질하며 뭔가 이야기하는 자, 턱을 괴고 반쯤 지쳐버린 자 등 다양한 행태를 보이는 의원들을 둘러보며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팔을 들어올리고는 내렸다. 흔들거리는 팔이 허리 즈음에서 왔다갔다하는 것이 서너번쯤 반복되었을 즈음 이젠 다 포기했다는 포스를 온몸으로 내뿜으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팡이를 돌려줄 때까지 청문회 증언은 없는 줄만 아십쇼."
이 말만 벌써 15회 정도 반복되었으며, 회장 내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들고 있던 콜드스틸 시티 스틱을 보안요원이 뺏어간 이후 청문회의 의사 진행은 완전히 말아먹히고 있었다. 왜냐하면 뭔가 일이 진행되려고 할 때마다 지팡이를 내세우며 때로는 마이크를 툭툭 쳐서 소음을 발생시키거나 큰 소리를 치면서 지팡이 몰수에 항의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시작되고 65분이 지나는 지금까지 청문회는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못했으며 의원들은 대놓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마침 들려오는 소리를 말해주자면 "노인네도 아니고 청문회에 지팡이를 들고오는 놈이 어딨어. 옷차림도 그렇고 XXX끼..." 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다. 왜냐하면 난 트집 잡을 소도구 삼아서 지팡이를 들고온 거거든. 보안요원은 길고 거시기해보이는 물건은 당연히 압수하기 마련인데 그걸 가지고 죽어라 트집을 잡는 것은 말하자면 상식에 반하는 행동이지만, 나는 어차피 청문회가 제대로 진행되게 놔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결국 시끌시끌하다가 지팡이를 돌려주는 쪽으로 결론이 난 모양이다. 국회의장이 말하기를
"그 지팡이를 폭력의 도구로 쓰진 않을거죠? 이틀 전의 그 의원(진보당 대의원) 때문은 아니죠?"
그러니까 그양반처럼 달려드는거에 호신용으로 들고온거 아니냐, 그런 용도가 아니라면 돌려주겠다는 소리다.
"라이터를 주먹질하려고 들고다니는 사람이 있습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돌려주십쇼."
돌려준다고 하는데도 고집 피우면 진짜 없는 사람처럼 보일 게 뻔하므로 줄땐 그냥 순순히 받아야 한다. 아무리 절망적인 시청률의 KTV라고 해도 일단은 실시간 중계이고, 또 오늘의 일은 다이제스트되어 공중파와 종편으로 방영될 것이니까 너무 뻘짓만 하면 여론도 좋지 않다.
지팡이를 돌려받고 책상에 기대놓았다. 조명을 반사하는 광빨의 스뎅 헤드가 몇몇 의원들의 눈길을 끈다. 한결 누그러진 태도를 취하면서 생각해보면, 근 며칠간의 여론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나에게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흑호방주가 갑자기 돌변해서 진보계열 지도자들을 떼로 죽이는 것이라거나 흑호방주가 인체예술과 판매 부문을 종합으로 취급하는 그 문제의 수뇌부였다는 것이 드러났고, 특히 노트북의 내용은 증거로 경찰에 제출하기 전에 전부 복사했으며 동영상은 절대 무삭제가 주특기인 우리의 친구 Liveleak에 상당수 업로드되었다. 이게 머지 않아 국내에도 퍼지면서 아주 난리가 났다.
동영상 속 피해자의 혈육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협회를 결성하는가 하면 진보세력을 조롱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그에 비해 전습대에 대한 동정여론이 확산되었다. 물론 음모론도 그에 못지 않게 확산되었으나, 흑호방주가 벌리고 간 일들이 워낙 무지막지했으므로 사람들의 판단은 갈팡질팡, 혼돈의 카오스에 더 가까웠다.
"자경단을 자처하면서 선량한 시민을 일본도로 잔인하게 학살한 죄, 인정하시죠?"
역시 상황이 진정되자마자 공세를 취하는 건 진보당이다. 그날 결정적인 뭔가가 끊어진 대의원 양반은 급히 뇌혈관 결찰을 받고 입원하셨다고 하고, 지금 의원이랍시고 나온 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주요 수뇌부는 흑호방주에게 다 맞아죽었거든...
"미국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폭압적이라구요?"
자칫하면 뇌졸증 환자 하나 더생기지 싶은 반응을 보여주는 대의원 2호 양반은 빡침을 겨우 제어한 듯 감은 눈을 뜨고 뒤로 넘긴 머리통을 앞으로 내리면서 아까보다 0.5단계 올라간 목소리 톤으로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미국 경찰같은 소리는 그만 하시고, 예? 시민을 참살한 일본군 짓거리를 인정하냐구요!"
쉽게 넘어가진 않는 듯 하다. 다시 미국경찰 카드를 꺼내본다.
"그럼 미국 경찰이 총으로 시민을 쏴죽이는 거나 우리나 같다는 말씀이시군요?"
"당연하지! 그래서 인정하냐고!"
"의장님, 발언권 좀 주십쇼."
발언권 수여따윈 기다리지도 않고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일어서서는 마이크를 내 입에 가깝게 수직으로 세웠다. 마이크를 짐짓 시험하는 체 하며 손가락으로 두번 치자 퉁퉁 하는 큰소리가 스피커를 울렸다.
"의원님, 코리안 팔루자 통구이 사건이 나도 된다는 뜻으로 말씀하시는데 그러면 안되죠.."
아예 할 말을 잃고 어이없어하는 대의원 2호 양반이 결국 "야, 너 또라이지? 그지?" 라고 막말을 하는 것을 보며 나는 한시름 놓았다. 이성을 잃은 자는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 계신 의원님들은 이전에 안산에서 국회의원 한분이 돌아가신 사건들 기억 하시죠? 안산이 그런 곳입니다. 경찰들도 불타죽었고 이번에도 파출소가 불탔다구요. 이런 곳입니다."
당에 관계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정색하고 나를 보고 있는 것은 언뜻 반대 의지의 단체 압박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나, 나는 진보당이나 민주당 일부 의원의 술렁거림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나에게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이런 곳에서의 치안을 유지하려면 특별한 솔루션이 필요합니다. 미국 경찰이 총을 쏘는 건 범죄자들이 총이 많아서이죠. 여기도 같습니다. 혹시 그 돌아가신 의원님을 기억하시는 분들께서는 그날의 황당함을 한번만 상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찰 관계자분들도 계신데 그날의 순직 경찰들이 죄가 있었습니까? 무고한 사람이 황당하게 죽어가는 곳이란 말이지요."
참고인으로 출석한 경찰 고위간부들이나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특별한 솔루션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청과 경찰에서도 적극적인 협조를 해준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활동하고 나서 해결한 사건들, 이 놀라운 범죄율의 감소를 보십시오!!"
서류를 오른손에 들고 사람들에게 들어보이면서 왼손으로 툭툭 쳐보였다. A4용지에 인쇄된 복잡한 수치들이 설사 바로 건너편 책상의 의원에게조차 보일 리 만무했지만, 그보다는 연극적인 효과를 더 생각한 것이다.
"이 통계의 비결이 다름이 아닙니다. 가장 위험한 곳에서 가장 알맞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전문성에 비결이 있었던 것이죠. 실제 우리의 활동을 무너트리려던 범죄 조직들의 다양한 습격과 음모 속에서 우리는 조직을 분쇄하고 비극의 원곡동에 파출소를 다시 열었지 않습니까?"
말을 끊은 것은 새누리당 의원 한명이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불편해 보였다.
"그래서 당신들이 경찰이라도 된다는 거요?"
여기서 물론 아니죠 같은 소리를 하면 글러먹는다. 긍정 부정도 하지 않은 채로 나아가는 게 정석이다.
"한국 경찰의 참담한 현실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지난 좀비사태 이후로 경찰 사상률이 너무 높아 지금 가장 험악한 지역에서조차 경찰력을 제대로 충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경단들이 지역마다 다양하게 구성되고 경찰의 통제를 받아 치안 유지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을 행정 편의니 하고 비난하시는... 저기 저 분들도 계시는 모양입니다만..."
엄지손가락으로 진보당 쪽을 가리키면서 일부러 시선은 외면했다. 사실 이번 사태로 자경단 문제를 제기하는 건 3당이 공통적이었지만 일부러 저쪽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경찰은 치안을 위해 부족함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찰은 단 한순간도 치안의 의무를 방기한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팔과 손을 쭉 펴서 경찰 간부들을 향해 내밀며 회장 내부를 크게 둘러보았다. 경찰 간부의 얼굴은 일부러 보지 않는다. 아첨하면서 눈치보는 듯한 태도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한테 존나 고맙겠지..
"그래도 무슨 오지랖이 그렇게 넓습니까? 역사재현단체니 해서 총기까지 보유하고, 그걸로 무슨 내전까지 벌이는 것도 자경단의 당위성으로 덮어야 된다 뭐 그런겁니까?"
이번에는 민주당 의원 1이다. 이 또한 부드럽게 넘기는 것이 좋다.
"사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체 같은 걸 만들고 감투를 쓰거나 하는 건 생각조차 못해본 일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관리하고 책임지고 이런 건 제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사실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의 작은 낙에 감사하던 소시민이 지금 이곳에서 자경단의 수장으로써 그간의 수난을 감수하여 왔음은 제가 원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치안이 무너지고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이 등을 떠민 것이었습니다.
많은 판단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만신창이가 된 조국이기에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는 저에겐 오직 한 단어만이 있었다고 말입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이미 손은 심장을 가리듯 가슴에서 교차하고 있었으며, 말이 끝나고 약 5초간에 걸쳐 침묵했다. 눈을 감고 1초간 힘을 주어 감는 듯 얼굴에 약간 힘을 준 후, 뜨면서 고개를 들고 천천히 손을 가슴에서 내렸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차분한 분위기는 내 바라는 바가 아니었으므로, 혼돈의 카오스 겸 갈굼의 재미를 느끼기 위한 한문장을 한번 던져본다.
"더군다나 저기 저분들이 흉악범의 선동에 홀라당 넘어가가지고서는 그 전국의 패거리를 동원해다가 폭동을 일으키고 앉았는데 제가 피한다고 피해 지겠습니까?"
다시 국회가 소란스러워지면서 난리가 났다. 주제가 여러개가 되면 시선이 분산되는 만큼 구태여 여러가지 부분에서 내 입장을 일일이 다 표명할 필요 자체가 없는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할 말은 다 했으며, 앞으로 뭐가 됐든 의사 진행 방해만 주구장창 할 생각이다. 다음 이야기는 다음날에 하자.
그나저나 오늘 저녁에는 계란이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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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90화 인실좇(3)
언젠가 씁니다.
*계란드립에 관해 - 전두환과 노태우가 12.12.내란음모 건으로 김영삼 시절 재판을 받던 도중의 일화로, 전두환은 노태우의 5공청문회를 비롯한 토사구팽에 분노하여 말도 안하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그러던 와중 내란음모죄로 재판을 받으면서 함께 출석했는데, 어색했던 둘 사이를 깼던 작은 대화가 있었죠.
전두환 - 자네 구치소에서는 계란 후라이 주나?
노태우 - 안 준다.
전두환 - 우리도 안 줘.
여기서 비롯된 드립입니다.




덧글
화이팅!
(넣어줄리가...)
PS. 근데 그 장면에서 사망 플레그가 생길뻔 했지만, 주인공이라서 그런지 그냥 넘어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