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쯧..."
혀를 차는 만큼 상황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1층과 위층에서 떼로 몰려든 환도종자와 녹두대원, 기타 잡놈들에게 복도 양쪽으로 완전 포위되었으니 답답하지 않다고 하면 천벌을 받을 개구라렷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들이 달려들지 않고 거리를 두고는 복도 코너쪽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 처음에 좋다고 달려들다가 스나이더-엔필드의 일제 사격 앞에 머리통이 40%정도 소멸하거나 몸에서 피를 줄줄 흘려대며 물좀 주십사 하고 뒹굴거리는 자기 동료들이 복도에 널부러져 있으니 달려들 생각이 날 수가 없지 싶다.
문제는 이대로 대치만 할 수는 없다는 데 있었다. 시계가 가리키는 바에 의하면 현재 오후 6시가 다 되어가고 있는데, 이대로라면 해가 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불리해진다. 또한 계엄군이 진압을 개시하면 그 혼란 와중에 흑호방주는 다시 종적을 감출 테니 모든 게 헛수고에 물거품이 된다. 그렇다고 흑호방주를 찾아 교내를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일단 총알도 각자 2발 아니면 3발 뿐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대원들의 체력도 이미 상당히 소모된 상태였다. 지쳐버리면 기동도 물론이거니와 아무리 훈련받은 전습대원이라 할지언정 백병전 능력이 급격히 추락할 수밖에 없다.
"띠리링~"
순간 문자가 왔다. 패턴 잠금해제를 하고 내용을 보니 김책 동지에게서 온 것이다. 미리보기로 확인해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현재 본관 4층 우측 최후미 교실에서 불이 켜지고 커텐이 처진 것을 UAV로 확인함. 현재 인터넷 TV로 중계되는 내부 광경도 커텐을 친 교실임. 틀림없는 흑호방주의 소재지.'
뒤이어 온 문자의 내용은 이러했다.
'깡패 난동은 대부분 정리됨. 원곡고의 지휘부를 구하기 위해 축차적으로 움직이고 있음. 시간을 끌면 불리. 계엄군은 30분 후 안산 진입.'
이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란 소리다. 나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는 허리에 찬 가죽제 해버쌕에 집어넣고는 숨을 들여마셨다.
"요오시! 도오바쓰다!!"
대원들은 난데없는 큰 소리에 움찔했지만 누구도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전방 주시를 유지하는 모습을 유지하되 뒤에서 내가 뭔가 말하려고 한다는 것은 다들 인식했을 것이다.
"그대로 들으라. 참모부의 UAV관측에 의하면 이 건물 4층 좌측 맨 끝부분 교실! 흑호방주와 패거리들이 숨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제 해는 질 것이고 계엄군은 1시간 후에 진입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시간이 없다. 천만 다행으로 우리에겐 총탄도 별로 없다."
여전히 앞을 보며 경계중인 대원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오오라를 뿜어내는 가운데 말을 이어나간다.
"왜냐하면 우리는 총알로 방어하지 않고 총검으로 공격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마스터들이 한결같이 말하기를 방어를 하면 무조건 죽고 공격을 해야만 산다고 했는데 우리 대원들만큼 그 의미를 잘 아는 자는 아마도 없다. 그러니 지금부터 전 대원은 나를 선두로 4층으로 일제 돌격하며 흑호방주를 때려 죽인다. 용맹정진 불퇴전의 정신으로 사람을 해체하는 마귀를 끊어버릴 법력은 준비되었는가?"
김석원이 어깨에 얹고 있던 3척 2촌의 노다치를 들어올리며 외쳤다.
"죽이자!!"
대원들은 곧 김석원의 말을 따라했고, 죽이자의 만세삼창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돌격 신호와 함께 일제히 좌측으로 돌격하여 계단으로 올라간다."
김석원의 복창과 함께 대원들이 일제히 명령을 기다리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동양놈들에게 전투의 예술을 보여준다. 돌격!""
왼쪽을 막고 있던 대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돌진하기 시작했으나, 그 속도는 무턱대고 전력질주하는게 아니라 구보보다 약간 느린 속도였다. 다들 나이도 좀 있는데다 풋내기처럼 기세와 힘 말고는 기댈 게 없는 자들도 아니다. 항상 적을 먼저 보고 먼저 쏘며 선제공격을 가해야 하며 눈을 질끔 감고 무작정 달려들어 무기나 휘두르는 듯한 천민의 싸움과는 거리가 먼 것이 바로 전투의 예술이다.
그리고 나와 김석원도 콜트 네이비 권총을 뽑아들고 그 뒤를 따랐으며, 우측을 경계하던 대원들은 2개조로 나뉘어 전방이 먼저 뒤로 후퇴했고, 자리를 잡고 경계태세에 들어가자 후방조가 뛰어서 그 전방조 뒤쪽으로 갔다. 서로를 엄호하며 번갈아 후퇴하는 식이다. 우측에서 우리와 대치하던 놈들이 당연히 쫓아왔지만 선임분대장의 사격명령으로 일제 사격이 가해지자 반은 총에 맞아서 즉사하였고 나머지 반은 곧 죽을 부상을 입게 되었다.
"크헉!!"
비명 소리에 다시 돌진하던 좌측을 보자 니미, 우리 대원 중 최선두의 한명이 아래쪽 계단에서 대기하던 녹두대원의 창에 찔려있었다.
배를 정통으로 찔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원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선임분대장의 구령에 따라 일제 사격을 가했으며, 창으로 찔렀다고 좋다고 달려들려던 녹두대원 몇명의 턱이나 골통이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떨어져나갔다.
그런데 그 뒤에서 총알을 피한 놈 하나가 불법유출임에 분명한 K-5권총을 창에 맞은 대원에게 겨누고 있다?
"탕!"
귀를 찢는 무연화약의 짜증나는 폭음이 들림과 동시에 내가 든 콜트 네이비 리볼버의 흑색화약 연기가 놈의 얼굴을 가렸다. 연기가 곧 사라졌을 때에 권총종자는 이마에서 심장박동에 맞춰 피를 꿀렁꿀렁 흘리면서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얼굴에 묻은 피 안빠진 잡고기 같은 걸 툭툭 털었는데, 그게 창에 찔렸던 대원의 머리통에서 터져나온 뇌수 외 기타등등이었다는 것은 3초 후에나 알 수 있었다.
계단에서 소총의 폭음에 어리버리하던 잡놈들이 우리 대원들의 총검에 꼬치구이가 되어가는 동안 나는 선두로 3층을 향해 내달렸다. 중간 코너를 돌아 위로 올라가려고 하자 눈앞에 환도종자의 몸뚱이가 나타났다.
본능적으로 X자로 교차시키며 들어올린 콜트 네이비와 롱소드 사이로 금속성의 쇳소리와 함께 가해지는 충격으로 그놈이 나를 보자마자 머리베기를 시도했음을 알 수 있었다. 놈의 칼이 아직 들어올려지지 않았음을 롱소드와 권총에 가해지는 압력으로 느끼면서 나는 롱소드를 오른쪽으로 치우면서 권총을 놈의 얼굴을 향해 들이댔다.
놈의 당황한 표정을 마지막으로 환도종자는 영원히 표정을 지을 수 없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콜트 네이비의 총탄이 입을 거쳐 척수를 작살냈기 때문이다. 권총자살한 미국이 모 정치가 영상에서 그랬듯이 코에서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처럼 쏟아지는 피가 옷에 묻을까봐 나는 옆으로 슥 피했는데...
옆으로 피한 내 얼굴 옆으로 두놈의 칼이 내려쳐지는 건 정말 소름끼치는 경험이다. 본능적으로 벽에 등을 붙이면서 달라붙었고 그놈들도 나를 본 것 같은데 계속 앞만 보면서 신경쓰는 게 아닌가. 그 이유는 길게 뻗어오는 물체를 보고 나서 알 수 있었는데 대원들이 한손 찌르기로 놈들의 가슴팍에 총검을 꽃아버린 것이었다. 놈들이 내려친 환도는 총열에 칼자국만 조금 냈을 뿐 총검을 내려치우지도 못했다. 오히려 4.5kg의 질량이 가슴에 박히자 충격 탓인지 약간 뒤로 밀리는 모습이 있었다.
놈들이 쓰러지는 타이밍이 너무 빨랐는지 대원들이 총검을 미처 빼지 못하고 그대로 총을 놓치는 순간 이번에는 1.8m의 굵은 장봉을 든 개량한복 종자가 나타났다.
"피하십쇼!"
김석원의 다급한 목소리 이전에 나는 이미 벽에서 몸을 떼고 있었다. 안전을 위한 고무 팁 하나 당연히 안 붙어있는 봉이 콘크리트 벽을 치자 조각이 약간 튀었고, 나는 급하게 피한 나머지 롱소드를 놓치고 계단 난간을 오른손으로 잡고 버텼다. 순간 눈앞에 둥근 뭔가가 시야를 가려왔고 나는 급히 얼굴을 뒤로 빼었으나 곧 인중에 엄청난 충격을 느끼고 몸은 뒤로 휘청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갑자기 뒷머리에 뭔가 부딪치는 느낌이 남과 동시에 오른쪽 귀에 엄청난 폭음이 후려쳐졌고 머리카락이 강한 바람에 밀려나는 것이 느껴졌다.
"끄으으... 씨발!!"
환도종자의 욕설과 더불어 오른쪽 귀에 띠잉 하는 울림이 멈추지 않는 가운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본 환도종자의 상태는 참담했다. 봉은 부러져 있고 왼손의 절반이 사라져 있다시피 했다. 원래 놈의 몸을 노렸으나 내 뒤통수에 총열이 부딪치면서 왼손을 쏘아버린 모양인가 싶었다. 놈은 그래도 굴하지 않고 큰 덩치에 걸맞게 남은 오른손으로 환도를 뽑아 들어올렸으나 그는 내려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3명의 대원들이 놈의 몸뚱이에 총검을 박아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덩치종자는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듯 눈매는 매섭고 당장이라도 대원들의 머리를 향해 환도를 내려칠 듯 하였으나 몸만 부들부들 떨 뿐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1명의 대원이 더 가세하여 입을 향해 총을 팔을 위로 뻗고 높이 들어 찔러넣었다. 이빨이 부러지면서 그 안으로 총검이 들어갔으며 마침내 총구가 입술을 짓이길 만큼 깊게 들어가자 그제서야 거대한 몸이 힘을 잃고 쓰러졌다. 다른 대원들은 이미 3측 복도 양쪽을 향해 총을 들이대고 경계하고 있었으며 덩치종자가 바닥에 쓰러짐과 동시에 총소리가 양쪽에서 일제히 울렸다. 아마 달려드는 놈들을 향해 총을 쏜 모양이다.
맞은 부분을 만져보니 다행히 이빨은 무사한 것 같다. 그러나 아랫입술에서는 피맛이 느껴졌으며 팅팅 불어 있었다. 그리고 귀 옆에서 발사되는 바람에 생긴 이명도 영 사라지질 않는다. 윙 하는 소리가 오른쪽 귀에서 느껴졌으며 정신이 없고 균형 잡기가 힘들었다.
김석원은 내 옆을 지나 올라가면서 또 타이레놀을 입에 집어넣고는 우물거렸다. 발의 통증이 다시 생기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원래 타이레놀을 저렇게 먹어대면 좋지 않지만 다들 오늘만 살기로 각오한 몸. 당장 싸울 수 있다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김석원이 아래층을 향해 2층의 대원들을 부르는 순간, 4층에서 내려오는 계단에서 왠 젋은 놈의 기합이 들린다. 순간 한손으로 휘두른 김석원의 3척 2촌의 노다치 칼날이 내 모자 위를 스쳐지나갔고 위를 올려다본 순간 내 눈에는 점프하여 날라드는 어린 환도종자의 팔꿈치에 적중하기 직전의 노다치가 보였다.
곧 노다치가 팔꿈치를 후려치면서 공중에 떠 있던 젋은 종자가 빙글빙글 돌았고 착지에 당연히 실패하면서 계단을 굴러내려갔다. 굴러오는 몸뚱이를 옆으로 피하면서 보는 김석원을 향해 녹두대원 한놈이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김석원은 무심하게 노다치를 스윽 내밀자 녹두대원은 기세가 아깝게도 알아서 찔려버렸다. 내가 보기엔 그 녹두대원이 찌르기를 피했어도 이길 확률은 낮지 싶었는데, 커다란 보위 나이프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위 나이프는 나이프 세계에선 엄청 클지 몰라도 도검의 세계에선 그냥 단검의 일종에 불과할 뿐이다.
계단을 굴러내려온 환도종자는 젋은 인생이 아깝게도 대원들의 총검에 스물다섯번째 구멍이 나고서야 움직임을 멈추었으며, 보위나이프 녹두대원은 명치에 정통으로 들어간 칼이 뽑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곧 배를 감싸쥐고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김석원은 자비라도 베푸는 양 보위 나이프를 발로 차버리고는 목덜미를 잡고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2층의 대원들이 올라오자 김석원은 2층 대원들은 후미를 경계하고 나머지들은 따라서 4층으로 올 것을 명했다. 한편 입 안에서는 뭔가 뭉글뭉글한 것이 느껴져서 계단을 올라가던 도중 뱉어버렸는데, 일부러는 아니었지만 명치에 노다치를 맞았던 녹두대원의 얼굴에 맞았다. 뭉글뭉글한 건 피가 뭉쳐서 된 선지였다. 졸지에 부상자에게 피가래를 뱉어버린 셈이라 좀 모양새가 안좋았지만 이걸 해명할 상황도 아니고 그냥 곁눈질만 하고는 대원들을 따라 4층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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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명 선배님! 이 못난 허가놈을 기억하고는 계십니까?"
4층에 올라오자마자 교실 문이 열리면서 뛰쳐나온 온갖 잡놈들과 대원들이 난투를 벌이는 동안 4층 흑호방주 소재지 앞쪽을 지키고 선 건 사기꾼 관장 한놈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 앞에 서서 사기꾼 관장의 본명을 거론하면서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자는 바로 허무도이다.
"평생의 원수를 여기서 만나는군요. 당신이 학생회비 영수증 조작해서 차액 챙기는 걸 바로잡고자 했던 저와 학우들을 측근 시켜서 전신의 뼈를 부러트렸죠. 바로 그 허무도올시다. 당신이 팔다리가 휘어진 나에게 뱉은 가래침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허무도의 표정은 환희에 더 가까웠으며, 사기꾼 관장의 표정은 말 그대로 썩창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수준이다.
"96년 연대사태 당시 학우들을 내버리고 짭새와 거래하여 도망치신 정의의 지도부 중 한 분이시죠. 팔다리가 휘어진 날 본 우리 어머니는 앓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평생 당신에 대한 증오로 살아왔죠. 당신 같은 위선자를 반드시 쳐죽여서 어머니와 학우들의 원수를 갚을 겁니다. 혁명의 배신자새끼!!"
사기꾼 관장의 표정이 썩창에서 어이없다는 걸로 바뀌는 걸 보는 건 짤방으로 써도 좋을 만큼의 가관이다. 그리고 사기꾼 관장의 말도 그에 못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떤 내용인가 하냐면..
"어? 난 너 모르는데? 옛날에 팔다리도 비실비실한 왕따 안경새끼가 좀 깝치길래 탁 치니까 억 하고 쓰러지더라고. 푸하하하!!"
허무도의 표정이 반대로 썩창이 되는 데에는 1초도 필요하지 않았다. 경멸의 눈빛과 비웃음의 조소가 1:1로 함유된 표정의 사기꾼 관장의 말은 이러했다.
"또라이새끼가... 뭔 씨발 좇빤다고 정의질이야? 니 대가리만 대가리고 우리들은 뭐 대가리도 없는 줄 아나보지? 야, 독재 정권에 대항하려면 씨발 독재자에 맞춰서 우리도 할 수밖에 없는거야. 뭔 씨발 그렇게 비용 안 만들면 활동이 되긴 했을 거 같애? 너같은 씨발 병신들은 말야, 어 씨발 우리가 피우는 꽃만 보면 되는거야. 우리 <지식인의 의무>에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 놈들이라고. 씨발 꽃 피워준다는데 씨발 좇만한게 진흙탕은 왜 뒤지고 지랄이니? 어?
아요... 너같은 새끼들이 혁명을 말아먹은거야, 알어? 존나 씨발 현실감각이 씨발 존나 없어요! 야 혁명의 수뇌부가 망가지면 다 끝이야, 통빡을 굴려보라고 좇병신아 절차에 매달려서 독재정권 파시즘정부 놔둘래? 씨발 독재정권 파시즘정권은 일단 깨부시고 봐야되는거야. 혁명이 무조건 성공하면 장땡이지 야 그리고 우린 눈으로 현실을 보고 가슴으로 이상을 쫓아 온 사람들이야. 뭔 씨발 쪽바리 밑에서 반민특위 때려잡는 친일 짓거리 하는 새끼가 뭔 씨발 이제와서 독립운동가한테 이래라 저래라 훈수질이야? 야 좇병신 멸치새끼? 니미 전대갈 허문도 이름이랑 좇나게 비슷한 허무도씨?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란 말이야~"
"역시 넌 인간 쓰레기였어. 에스페로를 세대 뽑아서 가족에게 돌리면 혁명 자금인가?"
"야 씨발 나정도 되는 수뇌부한테 씨발 보너스도 못줘?"
허무도의 썩창은 이미 연민에 가까운 표정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혁명의 대의는 나에게 있다!"
외침과 동시에 허무도가 땅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친일 척결!!"
지지 않으려는 듯 함께 달려드는 사기꾼 관장.
사기꾼 관장의 환도가 놀라운 속도로 허무도의 머리를 향해 내려쳐졌다. 그러나 환도는 허무도의 머리를 치지 못했다. 허무도의 머리는 분명히 환도 칼날 바로 밑에 있었지만 관장의 환도가 아무리 내려가도 허무도의 머리에 닿는 일은 없었다. 이윽고 관장의 환도는 정확히 중단에서 멈추었다. 검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정석적인 움직임이다. 그리고 관장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면서 자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허무도의 몸은 나조차도 어디 갔는지 모를 정도였으나, 곧 바닥에 바짝 엎드린, 사람이라기보다는 도마뱀에 가까운 그 모습이 바로 허무도임을 알 수 있었다. 허무도는 이전부터 대원들과의 대련에서 관절염을 유발한다고 하여 케토톱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몸을 낮춰서 다리를 치는 것에 주특기를 가진 자, 지금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그것과도 확연히 달랐다.
가슴은 땅으로부터 10cm도 채 떨어지지 않았으며, 얼굴도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손으로만 쥔 한다치는 콘크리트 벽에 부딪쳐 멈춰있었으며, 그 검의 일직선 궤도상에는 사기꾼 관장의 무릎이 있었다. 그리고 사기꾼 관장의 무릎은 얼른 보기에 문제 없어 보였으나 관장의 다리가 굽혀질수록 시뻘건 속살과 거기서 뭉글뭉글 배어나오는 핏방울들이 보였다.
허무도의 필살 도마뱀 검법이 관장의 무릎을 절반 넘게 절단해놓은 것이다.
"끄아으아으으으!!!"
곧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까지 흘리며 갈라진 무릎을 붙잡고 어떻게든 당겨서 상처를 붙여보려고 하는 사기꾼 관장을 향해 허무도의 한다치가 오른손을 후려쳤다. 검지와 중지가 잘리고 칼을 놓쳐버린 관장이 이번에는 오른손을 보면서 절망과 죽음의 공포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 표정 변화도 짤방으로 쓰기 참 좋은데..
이후 허무도는 낄낄 웃으면서 무차별적으로 관장을 칼로 구타하기 시작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엉엉 울면서 잘못을 비는 관장의 목소리도 아랑곳없이,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팔로 상체를 감싼 관장의 팔뚝에는 곧 수십개의 체계적인 아가미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이정도면 물속에서도 얼마든지 생활할 수 있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아 물갈퀴 역할을 할 손가락이 방금 다 떨어졌는데 그럼 어려우려나?
"이봐, 그만..."
말리려 드는 김석원을 제지한 것은 나였다. 이는 저 사람의 평생의 은원. 지금 풀지 않으면 영원히 그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사기꾼 관장의 팔은 이미 뼈까지 잘려 팔뚝과 손의 방향이 있을 수 없는 형태로 틀어져 있었으며 따라서 얼굴을 보호할 수 없었으므로 이미 얼굴은 걸레가 되어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한쪽 눈에서 맑은 액체가 흘러내려 이를 피해보려고 고개를 돌리지만 오른쪽 귀, 다시 왼쪽 귀가 작살이 났으며 뺨으로 공기가 새고 피가 얼굴에 새롭게 편성된 열세개의 구멍으로 숨소리에 맞춰 우레륵꾸레뤀꾹하는 소리를 내며 튀어나가기 시작했다.
"허무도, 그만!!"
들리지 않는 듯 하였으므로 허무도가 다시 뒤로 한다치를 치켜든 순간 칼자루를 잡아 뺏아버렸다. 나를 본 허무도의 얼굴은 오히려 슬픔이 가득해 보였다. 그는 칼을 돌려달라는 제스추어조차 취하지 않은 채로 망연자실해 있었다.
허무도의 한다치를 뒤로 던지고는 그를 제치고 사기꾼 관장을 내려보며 섰다. 그는 마치 구원의 신을 만난 것처럼 나를 향해 제발 구해달라는 눈빛을 보내면서 전신을 벌벌 떨고 있었다. 이미 왼팔은 뼈까지 잘려 있었고 왼쪽 눈에서는 수정체액이 다 흘러나와 답이 없었다. 그런 그를 향해 나는 콜트 네이비를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고쳐잡은 뒤 잡을 곳조차 마땅하지 않은 사기꾼 관장의 멱살을 잡았다.
"이봐, 당신 지금 병원 가면 살어. 내말 알겠지? 살 수 있다고!"
"웈, 웈!"
고개를 세차게 끄떡이는 사기꾼 관장, 뒤에서는 허무도의 볼멘소리가 들린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울분이 섞인 목소리를 무시하고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살아남으려면 하나 꼭 해야되는게 있어, 내가 이슬람 국가는? 이라고 하면 '영원하다' 라고 해야 돼. 알겠지?"
사기꾼 관장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핏방울이 내 눈에 들어갔으므로 짜증이 한층 더해졌다.
"좋아, 이슬람 국가는?"
"여버나다! 여버나다!"
발음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좋아, 한마디만 더하면 지금 바로 구급차 탄다. 덴노헤이카 반자이 하면 돼! 알았지?"
"데, 뎅노헼까 방자잌, 방자잌!!"
"음... 친일 척살?"
사기꾼 관장의 하나 남은 눈알의 동공이 거대화됨과 동시에 그는 고통이 없는 세상으로 갔다. 이로써 콜드 네이비에 장전된 총탄은 하나뿐이다. 일어선 순간 허무도가 뒤에서 내 옷을 잡고 잡아끌더니 멱살을 잡고는 벽으로 밀어붙였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제 인생 가지고 장난치시는 겁니까? 예?!"
금강야차도 한수 접고 들어갈 분노로 불타는 허무도의 얼굴은 감히 눈을 마주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나, 나는 침착하게 콜트 네이비를 보여주며 말했다.
"혁명의 배신자에게 명예로운 죽음은 없다."
허무도는 멱살을 놓지 않았으나 힘은 반쯤 풀렸고 눈동자는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자에겐 그것을 상기해줘야만 했던 것이다."
허무도의 손이 힘없이 놓아졌고, 허무도는 천천히 자기 한다치가 떨어진 곳으로 가서 칼을 쥐고는 자기 옷으로 피를 닦고는 칼집에 집어넣었다. 분명 내가 한 행동은 하나의 조롱이었으나, 나로써는 그런 자가 자신의 자기합리화의 끝에서 위선의 실체를 드러내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허무도 또한 그런 그의 위선에 인생을 망치고, 그럼으로써 그의 위선을 벌거벗겨 세상에 드러내놓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게 그가 바란 방식은 아니었겠지...
"이제 마지막이다."
망연자실해하는 허무도를 향해 말하곤 뒤로 돌아섰다. 이제 지키는 자도 없고 멀지도 않다.
마침 난투를 벌이던 대원들도 상황이 정리되었는지 이쪽으로 오기 시작했고, 나는 흑호방주가 있는 교실로 향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저 안이 소란스러운 듯 한데, 뭐 우리에게 완전 포위된 거나 다름없으니 이제 공포에 몰린 자들이 패닉을 일으킬 때가 되긴 되었다.
"쾅!"
문이 열리며 필사적으로 뛰쳐나오는 여자의 얼굴은 TV에서도 많이 본 진보 정당의 당수였다. 나는 그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여자의 얼굴은 정치가도 운동가도 아닌 그저 공포에 질린 여자의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검은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로 덮인 마른 손이 교실에서 튀어나와 그 여자의 머리채를 쥐어잡았고, 그녀는 머리가 뒤로 기울어지면서 끌려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제발 살려달라는 듯이 손을 내밀며 남은 아들딸들을 놔두고 갈 수 없다는 슬픔을 체현한 듯한 얼굴은 곧 목 끝으로 쇳조각이 튀어나오면서 죽음의 공포에 미쳐가는 얼굴로 찌그러져갔으며 순식간에 그 얼굴조차 교실 안으로 끌려들어가 사라졌다. 결국 나에게 내밀어지던 손이 교실의 벽을 붙잡았으나 그조차도 힘없이 교실 안으로 끌려들어가 사라졌다.
나와 김석원과 대원들 모두 지금 벌어지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흑호방주와 진보인사들이 모인 저 교실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내 스마트폰이 시끄럽게 울려댔지만 전화를 받을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였다.
"우와아!! 죽여라!!"
뒤를 돌아보니 녹두대를 비롯한 잡동사니 자경단이 떼로 몰려오고 있다. 이것들이 김책 동지가 말한 축차적으로 원곡고로 몰려오고 있다던 놈들인가, 더이상 내부 사정에 대해 사색할 여유는 없다. 대원들은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고 일제 사격이 시작되는 가운데 나는 흑호방주의 교실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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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86화 사랑의 전사
언젠가 씁니다.
극중에서 제가 사용하는 콜트 네이비 1851리볼버는 아주 구식으로, 실린더 자체가 약실 역할을 합니다. 탄피식도 아니고 실린더에 화약과 탄두를 집어넣고 총열 밑에 장착된 꼬질대로 누른 다음, 뒤에 뇌관을 따로 끼워줘야 장전이 완료됩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실전에서는 실린더를 여러 개 가지고 다니면서 총기를 아예 분해하고 실린더를 갈아끼우고 재조립해서 발사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 재장전 속도보다 빨랐을 정도였죠. 탄피식 리볼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느림입니다.
극중에서 이걸 쓰는 이유는 극중의 총기법이 볼트액션, 금속탄피 금지라서 법규를 피하는 총기를 찾다 나온 궁여지책입니다.
혀를 차는 만큼 상황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1층과 위층에서 떼로 몰려든 환도종자와 녹두대원, 기타 잡놈들에게 복도 양쪽으로 완전 포위되었으니 답답하지 않다고 하면 천벌을 받을 개구라렷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들이 달려들지 않고 거리를 두고는 복도 코너쪽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 처음에 좋다고 달려들다가 스나이더-엔필드의 일제 사격 앞에 머리통이 40%정도 소멸하거나 몸에서 피를 줄줄 흘려대며 물좀 주십사 하고 뒹굴거리는 자기 동료들이 복도에 널부러져 있으니 달려들 생각이 날 수가 없지 싶다.
문제는 이대로 대치만 할 수는 없다는 데 있었다. 시계가 가리키는 바에 의하면 현재 오후 6시가 다 되어가고 있는데, 이대로라면 해가 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불리해진다. 또한 계엄군이 진압을 개시하면 그 혼란 와중에 흑호방주는 다시 종적을 감출 테니 모든 게 헛수고에 물거품이 된다. 그렇다고 흑호방주를 찾아 교내를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일단 총알도 각자 2발 아니면 3발 뿐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대원들의 체력도 이미 상당히 소모된 상태였다. 지쳐버리면 기동도 물론이거니와 아무리 훈련받은 전습대원이라 할지언정 백병전 능력이 급격히 추락할 수밖에 없다.
"띠리링~"
순간 문자가 왔다. 패턴 잠금해제를 하고 내용을 보니 김책 동지에게서 온 것이다. 미리보기로 확인해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현재 본관 4층 우측 최후미 교실에서 불이 켜지고 커텐이 처진 것을 UAV로 확인함. 현재 인터넷 TV로 중계되는 내부 광경도 커텐을 친 교실임. 틀림없는 흑호방주의 소재지.'
뒤이어 온 문자의 내용은 이러했다.
'깡패 난동은 대부분 정리됨. 원곡고의 지휘부를 구하기 위해 축차적으로 움직이고 있음. 시간을 끌면 불리. 계엄군은 30분 후 안산 진입.'
이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란 소리다. 나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는 허리에 찬 가죽제 해버쌕에 집어넣고는 숨을 들여마셨다.
"요오시! 도오바쓰다!!"
대원들은 난데없는 큰 소리에 움찔했지만 누구도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전방 주시를 유지하는 모습을 유지하되 뒤에서 내가 뭔가 말하려고 한다는 것은 다들 인식했을 것이다.
"그대로 들으라. 참모부의 UAV관측에 의하면 이 건물 4층 좌측 맨 끝부분 교실! 흑호방주와 패거리들이 숨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제 해는 질 것이고 계엄군은 1시간 후에 진입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시간이 없다. 천만 다행으로 우리에겐 총탄도 별로 없다."
여전히 앞을 보며 경계중인 대원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오오라를 뿜어내는 가운데 말을 이어나간다.
"왜냐하면 우리는 총알로 방어하지 않고 총검으로 공격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마스터들이 한결같이 말하기를 방어를 하면 무조건 죽고 공격을 해야만 산다고 했는데 우리 대원들만큼 그 의미를 잘 아는 자는 아마도 없다. 그러니 지금부터 전 대원은 나를 선두로 4층으로 일제 돌격하며 흑호방주를 때려 죽인다. 용맹정진 불퇴전의 정신으로 사람을 해체하는 마귀를 끊어버릴 법력은 준비되었는가?"
김석원이 어깨에 얹고 있던 3척 2촌의 노다치를 들어올리며 외쳤다.
"죽이자!!"
대원들은 곧 김석원의 말을 따라했고, 죽이자의 만세삼창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돌격 신호와 함께 일제히 좌측으로 돌격하여 계단으로 올라간다."
김석원의 복창과 함께 대원들이 일제히 명령을 기다리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동양놈들에게 전투의 예술을 보여준다. 돌격!""
왼쪽을 막고 있던 대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돌진하기 시작했으나, 그 속도는 무턱대고 전력질주하는게 아니라 구보보다 약간 느린 속도였다. 다들 나이도 좀 있는데다 풋내기처럼 기세와 힘 말고는 기댈 게 없는 자들도 아니다. 항상 적을 먼저 보고 먼저 쏘며 선제공격을 가해야 하며 눈을 질끔 감고 무작정 달려들어 무기나 휘두르는 듯한 천민의 싸움과는 거리가 먼 것이 바로 전투의 예술이다.
그리고 나와 김석원도 콜트 네이비 권총을 뽑아들고 그 뒤를 따랐으며, 우측을 경계하던 대원들은 2개조로 나뉘어 전방이 먼저 뒤로 후퇴했고, 자리를 잡고 경계태세에 들어가자 후방조가 뛰어서 그 전방조 뒤쪽으로 갔다. 서로를 엄호하며 번갈아 후퇴하는 식이다. 우측에서 우리와 대치하던 놈들이 당연히 쫓아왔지만 선임분대장의 사격명령으로 일제 사격이 가해지자 반은 총에 맞아서 즉사하였고 나머지 반은 곧 죽을 부상을 입게 되었다.
"크헉!!"
비명 소리에 다시 돌진하던 좌측을 보자 니미, 우리 대원 중 최선두의 한명이 아래쪽 계단에서 대기하던 녹두대원의 창에 찔려있었다.
배를 정통으로 찔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원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선임분대장의 구령에 따라 일제 사격을 가했으며, 창으로 찔렀다고 좋다고 달려들려던 녹두대원 몇명의 턱이나 골통이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떨어져나갔다.
그런데 그 뒤에서 총알을 피한 놈 하나가 불법유출임에 분명한 K-5권총을 창에 맞은 대원에게 겨누고 있다?
"탕!"
귀를 찢는 무연화약의 짜증나는 폭음이 들림과 동시에 내가 든 콜트 네이비 리볼버의 흑색화약 연기가 놈의 얼굴을 가렸다. 연기가 곧 사라졌을 때에 권총종자는 이마에서 심장박동에 맞춰 피를 꿀렁꿀렁 흘리면서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얼굴에 묻은 피 안빠진 잡고기 같은 걸 툭툭 털었는데, 그게 창에 찔렸던 대원의 머리통에서 터져나온 뇌수 외 기타등등이었다는 것은 3초 후에나 알 수 있었다.
계단에서 소총의 폭음에 어리버리하던 잡놈들이 우리 대원들의 총검에 꼬치구이가 되어가는 동안 나는 선두로 3층을 향해 내달렸다. 중간 코너를 돌아 위로 올라가려고 하자 눈앞에 환도종자의 몸뚱이가 나타났다.
본능적으로 X자로 교차시키며 들어올린 콜트 네이비와 롱소드 사이로 금속성의 쇳소리와 함께 가해지는 충격으로 그놈이 나를 보자마자 머리베기를 시도했음을 알 수 있었다. 놈의 칼이 아직 들어올려지지 않았음을 롱소드와 권총에 가해지는 압력으로 느끼면서 나는 롱소드를 오른쪽으로 치우면서 권총을 놈의 얼굴을 향해 들이댔다.
놈의 당황한 표정을 마지막으로 환도종자는 영원히 표정을 지을 수 없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콜트 네이비의 총탄이 입을 거쳐 척수를 작살냈기 때문이다. 권총자살한 미국이 모 정치가 영상에서 그랬듯이 코에서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처럼 쏟아지는 피가 옷에 묻을까봐 나는 옆으로 슥 피했는데...
옆으로 피한 내 얼굴 옆으로 두놈의 칼이 내려쳐지는 건 정말 소름끼치는 경험이다. 본능적으로 벽에 등을 붙이면서 달라붙었고 그놈들도 나를 본 것 같은데 계속 앞만 보면서 신경쓰는 게 아닌가. 그 이유는 길게 뻗어오는 물체를 보고 나서 알 수 있었는데 대원들이 한손 찌르기로 놈들의 가슴팍에 총검을 꽃아버린 것이었다. 놈들이 내려친 환도는 총열에 칼자국만 조금 냈을 뿐 총검을 내려치우지도 못했다. 오히려 4.5kg의 질량이 가슴에 박히자 충격 탓인지 약간 뒤로 밀리는 모습이 있었다.
놈들이 쓰러지는 타이밍이 너무 빨랐는지 대원들이 총검을 미처 빼지 못하고 그대로 총을 놓치는 순간 이번에는 1.8m의 굵은 장봉을 든 개량한복 종자가 나타났다.
"피하십쇼!"
김석원의 다급한 목소리 이전에 나는 이미 벽에서 몸을 떼고 있었다. 안전을 위한 고무 팁 하나 당연히 안 붙어있는 봉이 콘크리트 벽을 치자 조각이 약간 튀었고, 나는 급하게 피한 나머지 롱소드를 놓치고 계단 난간을 오른손으로 잡고 버텼다. 순간 눈앞에 둥근 뭔가가 시야를 가려왔고 나는 급히 얼굴을 뒤로 빼었으나 곧 인중에 엄청난 충격을 느끼고 몸은 뒤로 휘청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갑자기 뒷머리에 뭔가 부딪치는 느낌이 남과 동시에 오른쪽 귀에 엄청난 폭음이 후려쳐졌고 머리카락이 강한 바람에 밀려나는 것이 느껴졌다.
"끄으으... 씨발!!"
환도종자의 욕설과 더불어 오른쪽 귀에 띠잉 하는 울림이 멈추지 않는 가운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본 환도종자의 상태는 참담했다. 봉은 부러져 있고 왼손의 절반이 사라져 있다시피 했다. 원래 놈의 몸을 노렸으나 내 뒤통수에 총열이 부딪치면서 왼손을 쏘아버린 모양인가 싶었다. 놈은 그래도 굴하지 않고 큰 덩치에 걸맞게 남은 오른손으로 환도를 뽑아 들어올렸으나 그는 내려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3명의 대원들이 놈의 몸뚱이에 총검을 박아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덩치종자는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듯 눈매는 매섭고 당장이라도 대원들의 머리를 향해 환도를 내려칠 듯 하였으나 몸만 부들부들 떨 뿐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1명의 대원이 더 가세하여 입을 향해 총을 팔을 위로 뻗고 높이 들어 찔러넣었다. 이빨이 부러지면서 그 안으로 총검이 들어갔으며 마침내 총구가 입술을 짓이길 만큼 깊게 들어가자 그제서야 거대한 몸이 힘을 잃고 쓰러졌다. 다른 대원들은 이미 3측 복도 양쪽을 향해 총을 들이대고 경계하고 있었으며 덩치종자가 바닥에 쓰러짐과 동시에 총소리가 양쪽에서 일제히 울렸다. 아마 달려드는 놈들을 향해 총을 쏜 모양이다.
맞은 부분을 만져보니 다행히 이빨은 무사한 것 같다. 그러나 아랫입술에서는 피맛이 느껴졌으며 팅팅 불어 있었다. 그리고 귀 옆에서 발사되는 바람에 생긴 이명도 영 사라지질 않는다. 윙 하는 소리가 오른쪽 귀에서 느껴졌으며 정신이 없고 균형 잡기가 힘들었다.
김석원은 내 옆을 지나 올라가면서 또 타이레놀을 입에 집어넣고는 우물거렸다. 발의 통증이 다시 생기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원래 타이레놀을 저렇게 먹어대면 좋지 않지만 다들 오늘만 살기로 각오한 몸. 당장 싸울 수 있다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김석원이 아래층을 향해 2층의 대원들을 부르는 순간, 4층에서 내려오는 계단에서 왠 젋은 놈의 기합이 들린다. 순간 한손으로 휘두른 김석원의 3척 2촌의 노다치 칼날이 내 모자 위를 스쳐지나갔고 위를 올려다본 순간 내 눈에는 점프하여 날라드는 어린 환도종자의 팔꿈치에 적중하기 직전의 노다치가 보였다.
곧 노다치가 팔꿈치를 후려치면서 공중에 떠 있던 젋은 종자가 빙글빙글 돌았고 착지에 당연히 실패하면서 계단을 굴러내려갔다. 굴러오는 몸뚱이를 옆으로 피하면서 보는 김석원을 향해 녹두대원 한놈이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김석원은 무심하게 노다치를 스윽 내밀자 녹두대원은 기세가 아깝게도 알아서 찔려버렸다. 내가 보기엔 그 녹두대원이 찌르기를 피했어도 이길 확률은 낮지 싶었는데, 커다란 보위 나이프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위 나이프는 나이프 세계에선 엄청 클지 몰라도 도검의 세계에선 그냥 단검의 일종에 불과할 뿐이다.
계단을 굴러내려온 환도종자는 젋은 인생이 아깝게도 대원들의 총검에 스물다섯번째 구멍이 나고서야 움직임을 멈추었으며, 보위나이프 녹두대원은 명치에 정통으로 들어간 칼이 뽑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곧 배를 감싸쥐고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김석원은 자비라도 베푸는 양 보위 나이프를 발로 차버리고는 목덜미를 잡고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2층의 대원들이 올라오자 김석원은 2층 대원들은 후미를 경계하고 나머지들은 따라서 4층으로 올 것을 명했다. 한편 입 안에서는 뭔가 뭉글뭉글한 것이 느껴져서 계단을 올라가던 도중 뱉어버렸는데, 일부러는 아니었지만 명치에 노다치를 맞았던 녹두대원의 얼굴에 맞았다. 뭉글뭉글한 건 피가 뭉쳐서 된 선지였다. 졸지에 부상자에게 피가래를 뱉어버린 셈이라 좀 모양새가 안좋았지만 이걸 해명할 상황도 아니고 그냥 곁눈질만 하고는 대원들을 따라 4층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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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명 선배님! 이 못난 허가놈을 기억하고는 계십니까?"
4층에 올라오자마자 교실 문이 열리면서 뛰쳐나온 온갖 잡놈들과 대원들이 난투를 벌이는 동안 4층 흑호방주 소재지 앞쪽을 지키고 선 건 사기꾼 관장 한놈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 앞에 서서 사기꾼 관장의 본명을 거론하면서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자는 바로 허무도이다.
"평생의 원수를 여기서 만나는군요. 당신이 학생회비 영수증 조작해서 차액 챙기는 걸 바로잡고자 했던 저와 학우들을 측근 시켜서 전신의 뼈를 부러트렸죠. 바로 그 허무도올시다. 당신이 팔다리가 휘어진 나에게 뱉은 가래침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허무도의 표정은 환희에 더 가까웠으며, 사기꾼 관장의 표정은 말 그대로 썩창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수준이다.
"96년 연대사태 당시 학우들을 내버리고 짭새와 거래하여 도망치신 정의의 지도부 중 한 분이시죠. 팔다리가 휘어진 날 본 우리 어머니는 앓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평생 당신에 대한 증오로 살아왔죠. 당신 같은 위선자를 반드시 쳐죽여서 어머니와 학우들의 원수를 갚을 겁니다. 혁명의 배신자새끼!!"
사기꾼 관장의 표정이 썩창에서 어이없다는 걸로 바뀌는 걸 보는 건 짤방으로 써도 좋을 만큼의 가관이다. 그리고 사기꾼 관장의 말도 그에 못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떤 내용인가 하냐면..
"어? 난 너 모르는데? 옛날에 팔다리도 비실비실한 왕따 안경새끼가 좀 깝치길래 탁 치니까 억 하고 쓰러지더라고. 푸하하하!!"
허무도의 표정이 반대로 썩창이 되는 데에는 1초도 필요하지 않았다. 경멸의 눈빛과 비웃음의 조소가 1:1로 함유된 표정의 사기꾼 관장의 말은 이러했다.
"또라이새끼가... 뭔 씨발 좇빤다고 정의질이야? 니 대가리만 대가리고 우리들은 뭐 대가리도 없는 줄 아나보지? 야, 독재 정권에 대항하려면 씨발 독재자에 맞춰서 우리도 할 수밖에 없는거야. 뭔 씨발 그렇게 비용 안 만들면 활동이 되긴 했을 거 같애? 너같은 씨발 병신들은 말야, 어 씨발 우리가 피우는 꽃만 보면 되는거야. 우리 <지식인의 의무>에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 놈들이라고. 씨발 꽃 피워준다는데 씨발 좇만한게 진흙탕은 왜 뒤지고 지랄이니? 어?
아요... 너같은 새끼들이 혁명을 말아먹은거야, 알어? 존나 씨발 현실감각이 씨발 존나 없어요! 야 혁명의 수뇌부가 망가지면 다 끝이야, 통빡을 굴려보라고 좇병신아 절차에 매달려서 독재정권 파시즘정부 놔둘래? 씨발 독재정권 파시즘정권은 일단 깨부시고 봐야되는거야. 혁명이 무조건 성공하면 장땡이지 야 그리고 우린 눈으로 현실을 보고 가슴으로 이상을 쫓아 온 사람들이야. 뭔 씨발 쪽바리 밑에서 반민특위 때려잡는 친일 짓거리 하는 새끼가 뭔 씨발 이제와서 독립운동가한테 이래라 저래라 훈수질이야? 야 좇병신 멸치새끼? 니미 전대갈 허문도 이름이랑 좇나게 비슷한 허무도씨?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란 말이야~"
"역시 넌 인간 쓰레기였어. 에스페로를 세대 뽑아서 가족에게 돌리면 혁명 자금인가?"
"야 씨발 나정도 되는 수뇌부한테 씨발 보너스도 못줘?"
허무도의 썩창은 이미 연민에 가까운 표정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혁명의 대의는 나에게 있다!"
외침과 동시에 허무도가 땅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친일 척결!!"
지지 않으려는 듯 함께 달려드는 사기꾼 관장.
사기꾼 관장의 환도가 놀라운 속도로 허무도의 머리를 향해 내려쳐졌다. 그러나 환도는 허무도의 머리를 치지 못했다. 허무도의 머리는 분명히 환도 칼날 바로 밑에 있었지만 관장의 환도가 아무리 내려가도 허무도의 머리에 닿는 일은 없었다. 이윽고 관장의 환도는 정확히 중단에서 멈추었다. 검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정석적인 움직임이다. 그리고 관장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면서 자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허무도의 몸은 나조차도 어디 갔는지 모를 정도였으나, 곧 바닥에 바짝 엎드린, 사람이라기보다는 도마뱀에 가까운 그 모습이 바로 허무도임을 알 수 있었다. 허무도는 이전부터 대원들과의 대련에서 관절염을 유발한다고 하여 케토톱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몸을 낮춰서 다리를 치는 것에 주특기를 가진 자, 지금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그것과도 확연히 달랐다.
가슴은 땅으로부터 10cm도 채 떨어지지 않았으며, 얼굴도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손으로만 쥔 한다치는 콘크리트 벽에 부딪쳐 멈춰있었으며, 그 검의 일직선 궤도상에는 사기꾼 관장의 무릎이 있었다. 그리고 사기꾼 관장의 무릎은 얼른 보기에 문제 없어 보였으나 관장의 다리가 굽혀질수록 시뻘건 속살과 거기서 뭉글뭉글 배어나오는 핏방울들이 보였다.
허무도의 필살 도마뱀 검법이 관장의 무릎을 절반 넘게 절단해놓은 것이다.
"끄아으아으으으!!!"
곧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까지 흘리며 갈라진 무릎을 붙잡고 어떻게든 당겨서 상처를 붙여보려고 하는 사기꾼 관장을 향해 허무도의 한다치가 오른손을 후려쳤다. 검지와 중지가 잘리고 칼을 놓쳐버린 관장이 이번에는 오른손을 보면서 절망과 죽음의 공포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 표정 변화도 짤방으로 쓰기 참 좋은데..
이후 허무도는 낄낄 웃으면서 무차별적으로 관장을 칼로 구타하기 시작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엉엉 울면서 잘못을 비는 관장의 목소리도 아랑곳없이,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팔로 상체를 감싼 관장의 팔뚝에는 곧 수십개의 체계적인 아가미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이정도면 물속에서도 얼마든지 생활할 수 있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아 물갈퀴 역할을 할 손가락이 방금 다 떨어졌는데 그럼 어려우려나?
"이봐, 그만..."
말리려 드는 김석원을 제지한 것은 나였다. 이는 저 사람의 평생의 은원. 지금 풀지 않으면 영원히 그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사기꾼 관장의 팔은 이미 뼈까지 잘려 팔뚝과 손의 방향이 있을 수 없는 형태로 틀어져 있었으며 따라서 얼굴을 보호할 수 없었으므로 이미 얼굴은 걸레가 되어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한쪽 눈에서 맑은 액체가 흘러내려 이를 피해보려고 고개를 돌리지만 오른쪽 귀, 다시 왼쪽 귀가 작살이 났으며 뺨으로 공기가 새고 피가 얼굴에 새롭게 편성된 열세개의 구멍으로 숨소리에 맞춰 우레륵꾸레뤀꾹하는 소리를 내며 튀어나가기 시작했다.
"허무도, 그만!!"
들리지 않는 듯 하였으므로 허무도가 다시 뒤로 한다치를 치켜든 순간 칼자루를 잡아 뺏아버렸다. 나를 본 허무도의 얼굴은 오히려 슬픔이 가득해 보였다. 그는 칼을 돌려달라는 제스추어조차 취하지 않은 채로 망연자실해 있었다.
허무도의 한다치를 뒤로 던지고는 그를 제치고 사기꾼 관장을 내려보며 섰다. 그는 마치 구원의 신을 만난 것처럼 나를 향해 제발 구해달라는 눈빛을 보내면서 전신을 벌벌 떨고 있었다. 이미 왼팔은 뼈까지 잘려 있었고 왼쪽 눈에서는 수정체액이 다 흘러나와 답이 없었다. 그런 그를 향해 나는 콜트 네이비를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고쳐잡은 뒤 잡을 곳조차 마땅하지 않은 사기꾼 관장의 멱살을 잡았다.
"이봐, 당신 지금 병원 가면 살어. 내말 알겠지? 살 수 있다고!"
"웈, 웈!"
고개를 세차게 끄떡이는 사기꾼 관장, 뒤에서는 허무도의 볼멘소리가 들린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울분이 섞인 목소리를 무시하고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살아남으려면 하나 꼭 해야되는게 있어, 내가 이슬람 국가는? 이라고 하면 '영원하다' 라고 해야 돼. 알겠지?"
사기꾼 관장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핏방울이 내 눈에 들어갔으므로 짜증이 한층 더해졌다.
"좋아, 이슬람 국가는?"
"여버나다! 여버나다!"
발음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좋아, 한마디만 더하면 지금 바로 구급차 탄다. 덴노헤이카 반자이 하면 돼! 알았지?"
"데, 뎅노헼까 방자잌, 방자잌!!"
"음... 친일 척살?"
사기꾼 관장의 하나 남은 눈알의 동공이 거대화됨과 동시에 그는 고통이 없는 세상으로 갔다. 이로써 콜드 네이비에 장전된 총탄은 하나뿐이다. 일어선 순간 허무도가 뒤에서 내 옷을 잡고 잡아끌더니 멱살을 잡고는 벽으로 밀어붙였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제 인생 가지고 장난치시는 겁니까? 예?!"
금강야차도 한수 접고 들어갈 분노로 불타는 허무도의 얼굴은 감히 눈을 마주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나, 나는 침착하게 콜트 네이비를 보여주며 말했다.
"혁명의 배신자에게 명예로운 죽음은 없다."
허무도는 멱살을 놓지 않았으나 힘은 반쯤 풀렸고 눈동자는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자에겐 그것을 상기해줘야만 했던 것이다."
허무도의 손이 힘없이 놓아졌고, 허무도는 천천히 자기 한다치가 떨어진 곳으로 가서 칼을 쥐고는 자기 옷으로 피를 닦고는 칼집에 집어넣었다. 분명 내가 한 행동은 하나의 조롱이었으나, 나로써는 그런 자가 자신의 자기합리화의 끝에서 위선의 실체를 드러내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허무도 또한 그런 그의 위선에 인생을 망치고, 그럼으로써 그의 위선을 벌거벗겨 세상에 드러내놓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게 그가 바란 방식은 아니었겠지...
"이제 마지막이다."
망연자실해하는 허무도를 향해 말하곤 뒤로 돌아섰다. 이제 지키는 자도 없고 멀지도 않다.
마침 난투를 벌이던 대원들도 상황이 정리되었는지 이쪽으로 오기 시작했고, 나는 흑호방주가 있는 교실로 향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저 안이 소란스러운 듯 한데, 뭐 우리에게 완전 포위된 거나 다름없으니 이제 공포에 몰린 자들이 패닉을 일으킬 때가 되긴 되었다.
"쾅!"
문이 열리며 필사적으로 뛰쳐나오는 여자의 얼굴은 TV에서도 많이 본 진보 정당의 당수였다. 나는 그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여자의 얼굴은 정치가도 운동가도 아닌 그저 공포에 질린 여자의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검은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로 덮인 마른 손이 교실에서 튀어나와 그 여자의 머리채를 쥐어잡았고, 그녀는 머리가 뒤로 기울어지면서 끌려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제발 살려달라는 듯이 손을 내밀며 남은 아들딸들을 놔두고 갈 수 없다는 슬픔을 체현한 듯한 얼굴은 곧 목 끝으로 쇳조각이 튀어나오면서 죽음의 공포에 미쳐가는 얼굴로 찌그러져갔으며 순식간에 그 얼굴조차 교실 안으로 끌려들어가 사라졌다. 결국 나에게 내밀어지던 손이 교실의 벽을 붙잡았으나 그조차도 힘없이 교실 안으로 끌려들어가 사라졌다.
나와 김석원과 대원들 모두 지금 벌어지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흑호방주와 진보인사들이 모인 저 교실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내 스마트폰이 시끄럽게 울려댔지만 전화를 받을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였다.
"우와아!! 죽여라!!"
뒤를 돌아보니 녹두대를 비롯한 잡동사니 자경단이 떼로 몰려오고 있다. 이것들이 김책 동지가 말한 축차적으로 원곡고로 몰려오고 있다던 놈들인가, 더이상 내부 사정에 대해 사색할 여유는 없다. 대원들은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고 일제 사격이 시작되는 가운데 나는 흑호방주의 교실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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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86화 사랑의 전사
언젠가 씁니다.
극중에서 제가 사용하는 콜트 네이비 1851리볼버는 아주 구식으로, 실린더 자체가 약실 역할을 합니다. 탄피식도 아니고 실린더에 화약과 탄두를 집어넣고 총열 밑에 장착된 꼬질대로 누른 다음, 뒤에 뇌관을 따로 끼워줘야 장전이 완료됩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실전에서는 실린더를 여러 개 가지고 다니면서 총기를 아예 분해하고 실린더를 갈아끼우고 재조립해서 발사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 재장전 속도보다 빨랐을 정도였죠. 탄피식 리볼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느림입니다.
극중에서 이걸 쓰는 이유는 극중의 총기법이 볼트액션, 금속탄피 금지라서 법규를 피하는 총기를 찾다 나온 궁여지책입니다.




덧글
동양놈 대신에 폭도나 깡패새끼들같은 좋은 말도 있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현대인은 백인>이라는 생각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이른바 동양적 가치라는 걸 혐오하고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무술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죠. 이 무술에 대해서 동서양을 구분하는 것도 기준이 희한해서 일도류 같은 직설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곳에 대해서는 <과학적이다> <서양식이다> 하면서 좋게 보지만 직심영류나 기타 유파처럼 기나 추상적인 개념을 해설하는 곳에는 일단 눈부터 백안으로 뜨면서 <동양적이다> <미개하다> <추장으로 존중하겠다> <후.. 우리 백인들이 환상에 빠져 사는 저들을 문명개화시켜야만 하는가... 이또한 인류에 기여해야 하는 우리의 숙명..> 하면서 백인의 의무에 긍지높은 부담을 가지게 되는 데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극중에서 가만히 보면 그런 생각구조에 기반한 행동을 많이 합니다. 원곡고 정문에 라틴어를 박아넣거나 19세기식 국가주의 교육체계, 특히 체육을 극도로 중시하며 학교를 그 식으로 바꿔나가는 등 모든 부분에서 드러나죠. 보면 학생들에게 멘수르 결투까지 시킵니다. 사회진화론이 중심 담론이며 현대의 모든 변화를 <타락과 파멸>로 규정하고 19세기 방식을 <절대회귀의 원점>으로 이상화하며 종국에는 전 세계를 근대화시키겠다는 생각이죠.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문명화> 이며 <백인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극중의 원곡고는 19세기 김나지움에 한없이 가까워지고 있으며 집단적 정체성을 더 중시하고 학교가 점령되니 패거리로 몰려와 오월대에게 몽둥이찜질을 가하는 모습까지 보여지고 있죠.
머리로는 중세-르네상스 검술이 근대 검술보다 낫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폭주하면 사회진화론에 의거한 중세 암흑론, 근대 문명론이 튀어나옵니다. 중세는 베기의 저열한 검술, 근대는 과학의 찌르기 검술이라고 하면서 폭주하다가 대원이 경악하니 애거든 캐슬이라는 노인네의 노망이었다고 둘러대는데 이쯤 되면 거의 유전자 레벨의 근대인이죠.
어리석은 동양놈 운운도 그런 본능에서 튀어나온 망언의 일종으로 보시면 됩니다. 미개한 동양 검술이나 추구하는 자들에게 문명화된 우리 서양의 싸움법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보여주겠다 하는 취지에서 나온 발언이죠. 물론 현실의 저는 극중에서 적대 검술로 등장한 환도세법의 체계에 대해 굉장히 훌륭하고 과학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극중에서는 그런 것과 관계없이 서양우월주의적인 측면이 초 극대화되어 있습니다. 이 또한 다크 판타지이기 때문이죠.
왠지 현대식 자동권총의 탄창끼는것이 연상되는군요.
다만 저시기의 권총이란 전장식 머스킷(뇌관사용)을 작게만든것이고 리볼버는 그 끝부분 화약과 와드와 탄두가 들어가는부분만 회전해서 6연발이라도 쏠수 있게 만든 물건이었으니 firepower(단위시간당 투사력)은 확실히 있었고 실린더를 갈아끼는것도 6개의 약실에 모두 화약과 와드와 탄알을 재는것보다는 빠르기때문에 한 것뿐이지 자동권총처럼 버튼누르고 새탄창끼고 하는식은 아니었습니다.
생각보다 실린더 교환이 빠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