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문을 닫고 나오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참 난감했다. 녹두대 대원만 이삼백은 될테고, 여기에 노조와 자경단 패거리들과 전습대 격멸을 위해 흑호방주가 지원받은 각 조직의 깡패세력까지 다 합하면 천오백은 조금 넘지 싶다. 그런데 지금 전습대원은 간부와 결사대 죄다 합쳐봐야 서른다섯이 채 안되는 수준이니, 돌격하면 녹아버리고 돌진해도 개박살나는 것은 이미 예약된 거나 다름없다.
공개 자살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흑호방주 피부에 기스라도 내고 죽어야 죽는 보람이 있겠는데 이거야 원, 난감하기 짝이 없네 싶다 생각하던 와중 문이 열리고 허무도가 튀어나왔다.
"허무도 자네는 왜 나왔어? 가봐야 살기는.."
"이걸 좀 보십쇼!"
허무도는 곧 스마트폰을 나에게 들이댔다. 거기에는 DMB방송으로 나오는 뉴스 영상이 있었는데 방송국 UAV가 송출중인 영상에는 신시가지에서 벌어지는 난동이 보이고 있었고 심지어 방화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난장판이 나오고 있었다. 밑의 자막에는 <시위대 폭도로 비화... 시민 및 경찰과 교전중> 이라고 써 있다.
"아니, 녹두대나 자경단은 이럴 놈들이 아니지 않아? 그래도 자존심은 있는 놈들인데.."
"어제의 그 깡패새끼들입니다. 지금 신시가지 쪽으로 진출해서 은행이고 가게고 있는대로 다 털어먹고 있어요."
대원들도 웅성거렸다. 깡패들은 어제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도주할 법 했는데 아직까지 있는 것도 이상했지만, 곧 계엄군이 출병하면 죄다 사살 내지는 체포인데 이 위급한 순간에도 약탈질이나 하고 있다니 말이다. 영상에서는 계산대를 빠루로 뜯어제껴서 가방에 통째로 쓸어담는 모습까지 나오고 있었다.
"뻔하지 않습니까. 안산이 그나마 돌아가는 곳이고 치안이 지금 무너졌으니까 막판에 큰돈 털어가겠다는 거겠죠."
그런가 싶더라. 하기야 그나마 경제가 돌아가기는 하는 곳이 이곳이고 그만큼 다른 피폐한 지역에 비해 돈이 좀 몰려있는 곳이다. 거기에 지금 폭동으로 치안이 무너지다시피 했으니 지금 돈을 털어가기라도 해야 수지가 맞다고 판단한 것이겠지.
"그리고 지금 녹두대나 자경단 그룹이 주변 깡패놈들과 싸움이 붙었어요. 시민 치안대라 이거죠. 그래서 지금 다들 구시가지 전역에 흩어져 있습니다. 지금밖에 기회가 없어요."
허무도의 말을 듣자마자 번개같이 스치는 생각과 함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요컨데 놈들의 병력은 분산되어 있으며 당장 집결하기도 힘든 시점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최고사령부는 비어 있다. 그러므로 지금 돌격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가 없다는 말이렷다?!
"요오시!! 도오바쓰다!!"(좋아! 토벌이다!)
주먹을 불끈 쥐면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나는 복도에 선 대원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깡패들이 약탈을 확대하고 있다. 그래서 흑호방주를 호위하던 녹두대와 종파분자들이 그들과의 교전을 한다. 그래서 원곡고의 방어는 허술하다! 지금 우리가 조적을 토벌하고 사람 장사꾼을 처형하지 않으면 영원히 두번 다시 기회가 없다. 작금이야말로 멸사 봉공의 때이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못한다! 나 또한 총특공의 의지로 충만하였다. 그런데 우리 대원들은 불퇴전의 의지로 마귀를 쳐부수고 육탄행의 의지로 신풍을 부를 준비는 되었는지 모르겠군?!"
왼쪽 눈썹을 들어올리며 비아냥거리는 듯한 표정을 짓자 대원들의 피꺼솟이 휘몰아친다.
"무시하지 마십쇼!!"
"미친 똘추새끼들을 많이 죽이겠습니다!!"
"머가리를 부셔불것잉게!!"
기세는 최고조이다.
"좋아!! 출병이다!!"
뒤돌아서 뛰어나가려는 순간 누가 뒤에서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나의 자랑인 소매의 북군 황금단추 3개 중 하나가 튀어나가버렸다. 어떤 썅...
"이런 니미..."
뒤이어 나올 쌍시옷이 멈춰버린 이유는 거기 있던 게 김추자였기 때문이다. 반쯤 울상인 여자의 얼굴에 욕이 나오기는 영 쉽지 않은 일이다.
"고레, 모랏떼 구다사이!!"
김추자가 내민 건 꽤 눈에 익은 물건이었다. 손목은 철판을 연결했고 손등과 손가락은 작은 쇠고리를 무수히 연결해서 만든 이것은 한때 내가 가지고 있었다가 벌써 7년도 전에 쓸모없다고 팔아버렸던 바로 그 윈들래스 스틸크래프트社제 체인 건틀렛이 아닌가? 물론 기름도 채 다 닦이지 않은 신품이다.
"고이와, 나이데고와쓰까?"
"난데 이키나리 이이가타 카에루노요, 도니카꾸 모랏떼요. 유비데모 키라레따라 도오슨노데스까?!"
"리쿠단코오 카쿠고시따 미, 아에떼 이마사라 요로이오 츠케루마데모..."
적당히 거절하고 얼른 나갈 셈이었으나 김추자의 눈이 점점 충혈되는 걸 보곤 그냥 말없이 낚아채고는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대원들도 함께 움직이는 가운데 뒤에서 김추자의 울먹이는 목소리만이 들려온다.
"모라이마시따네! 모오 토리카에시 나시데스까라네, 가나라즈 하랏떼 모라이마스요!!"
그녀의 목소리를 피하듯이 빠르게 걷던 나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발걸음을 조금 늦추었다. 그리고 체인 건틀렛을 꼈다. 생각외로 손에 아주 꼭 맞았으나 손목 철판이 옷 소매에 걸리적거렸으므로 소매의 단추들을 죄다 풀어버리니 그제서야 쓸만해졌다. 비록 칼에 강타당하면 손가락 부러지는 건 못막는 유연한 체인 건틀렛이지만 그래도 낀 것만으로도 마음이 매우 든든했다. 그걸 본 전직 포크레인 기사, 조씨 성을 가진 대원은 이렇게 말했다.
"안 그럴 것 같으신 분이 죄는 많이 지으시는군요."
"조대원은 일본말을 알아 듣나?"
"남녀간의 마음이란 말을 몰라도 알게 마련입니다."
"그냥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받은 것일 뿐, 본관은 한손으로 이 커다란 놈(롱소드)를 쓸 자신이 없소."
조씨 성을 가진 대원은 더 말하지 않고 미소만 짓고 있었다.
옆에 허무도가 보였다. 오른손의 체인 건틀렛이 약간 불편한 듯 하여 손가락을 움직여 맞추면서 나즈막히 말했다.
"허무도, 자네는 왜 따라오나? 요시노부 공을 수행하면 될걸..."
"살면서 반드시 풀어야 될 은원이 있습니다. 제가 오늘 평생의 원수를 봤습니다. 그놈을 죽이지 않고는 앞으로 살아도 살 수가 없습니다."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이미 현관 앞의 넓은 공간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다. 손을 들어 정지를 외쳤다. 그리고는 걸어서 문 앞에 서고는 대원들을 향해 돌아서자 대원들이 알아서 대열을 지었다. 그 중에는 함께 참전한 간부 김석원도 있었다.
"진입 루트는 관산공원을 거쳐 원곡고로 직접 진입한다. 이후 본관 출장본영 사무실 방면으로 진입하여 일격에 흑호방주를 친다! 임무 완료 후 탈출 루트는 원곡고 후문으로 돌파하여 관산공원으로 빠져 그 이후는 상황에 따라 결정한다. 알겠지!"
"예!"
"질문은?"
로쿠로 김석원이 나섰다.
"포로는 잡기 싫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지금부터 항복하는 자는 없고 다들 반항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가 없도록 한다!"
김석원의 얼굴이 해맑아짐과 동시에 3척 2촌의 노다치를 뽑아들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곧 대원들도 거기에 동참하여 죽이자 삼창이 현관을 쩌렁쩌렁 울렸다.
"좋아! 출진이다!"
"납품하러 왔다!"
중저음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의 대원들의 눈빛이 경계태세로 변했다. 뒤를 돌아보니 면도도 며칠 안한 듯한 지저분한 얼굴의 40대 러시아 아저씨가 캔버스 천으로 만든 자루 하나를 왼손에 쥐고 서 있었다. 그러더니 캔버스 자루를 앞으로 슥 던졌다.
"니꼴라이! 정말 빨리도 납품하는군!"
"나 혼자 이 짓거리 하느라 뒤지는 줄 알았어! 약속한 대로 500만원의 납품가를 당장 내놓으라고!!"
"알았어! 몇발이나 해온거야?!"
"200발!
"새 총알이다! 대원들은 각자 6발씩 챙기도록!"
니꼴라이는 러시아 출신의 중간 상인으로, 영 좋지 않은 물건들의 구매 대행을 해 주는 일을 하며 구로공단에 사무실을 차리고 있었다. 한때 나에게 트럭 일을 주던 레즈노프 영감의 소개로 나름 관계가 있었으나 전습대 활동 이후로 한번 만난 적도 없을 정도였다. 총탄 재고가 부족하자 500만원이라도 줄테니 스나이더-엔필드 총탄을 구해달라고 독촉하자 오랜만에 전화해서는 하는 소리가 그런거냐고 서운해 하더니, 기계설비도 없이 그런 듣도보도못한 총탄을 무슨 수로 하룻밤만에 구해다 주냐고 일갈하는 니꼴라이에게 내가 제시한 비책이 하나 있었다.
"보병지도역님.. 이건 엽총 그거 아닙니까?"
자루를 풀어헤친 대원들은 다들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루 안에서 튀어나온 건 바닥만 황동이고 나머진 빨간 색의 플라스틱으로 된 산탄총알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스나이더에 들어가는 총알이야. 앞을 보면 미니에 탄두가 붙어있지?"
탄을 앞으로 기울이며 보여주자 과연 그 앞에는 잘린 탄피 끝 안에 수납되어 있는 0.577 구경의 스나이더-엔필드 탄두가 보였다. 이건 내가 유튜브에서 어느 스나이더-엔필드 유저가 써먹던 걸 그대로 따라한 것이었다. 이런 19세기의 탄피식 소총은 총알 생산량이 많지 않아 현대사회에서 구하려면 가격이 매우 비싸고 설비를 따로 만들어서 돌려야 했다. 그래서 그 미국의 스나이더-엔필드 유저는 꽁수로 산탄 탄피를 이용하여 화약과 탄두를 제거하고 새 화약과 미니에 탄두를 끼워서 저렴하게 총알을 조달하고 있는 걸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었다.
이 한국에서 스나이더-엔필드 총알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지만 산탄총알은 구하기 힘들지 않다. 니꼴라이는 총탄도 취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비책을 제시한 것에 따라 되는대로 만들어 온 것이 이것이었다. 총에 어떤 부담을 줄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가능하면 규격탄환을 쓰고 싶었지만 이런 상황에선 어쩔 도리가 없다.
"빨리 오백만원이나 내놓으라고!"
"지금 당장 현찰은 없지만..."
내가 니꼴라이에게 건내준 건 내 통장과 연결된 현금카드였다.
"비밀번호는 ****야. 알아서 빼가라구."
잠깐 현금카드를 보던 니꼴라이는 연민에 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다 빼갈지도 모른다. 응?"
"알아서 하라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날씨는 쓸데없이 맑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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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로 관산공원을 오르니 역시나 요충지라는 점을 자기들도 아는지 녹두대원들 4명이 경계중이었다. 역시 오토바이 자켓을 차고 있는 건 오월대와 마찬가지다. 근대적인 복장을 하고 무장을 갖춘 우리와는 영 비교된다. 나와 눈이 마주친 대원 한놈이 나를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자 4명 모두 칼을 빼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들의 칼은 우리가 아는 그런 모조일본도가 아니라, 철판을 따서 열처리하고 날을 세운 다음 철판 양쪽에 고무판만 붙인 이른바 <택티컬 소드>다. 그리고 칼집은 플라스틱의 일종인 카이덱스 제질이다.
"도쓰게끼!!"
내가 돌격을 외치며 달려들자 착검한 대원들이 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산지에 만들어진 공원 특성상 밑에 있는 사람들은 풀에 가려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그래서 선두로 달려온 나를 보곤 나 혼자 뿐이라고 생각해서 칼을 뽑아 응전하려고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다른 대원들도 달려올라오면서 모습이 드러나자 생각보다 숫자가 많은 걸 알고는 당황한 모양이었다.
전습대원들이 넓게 포위하듯이 산개 돌격하자 이자들은 당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버버하고 있다. 가장 오른쪽의 한명이 얼굴을 향해 질러진 총검에 눈알이 관통당하는 것을 시작으로 나머지들의 등짝과 옆구리에 총검이 3~4개씩 다양한 부위에 박히기 시작했다.
중간에 있는 놈이 멀쩡했는데 우리 대원의 팔을 내려베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내가 베기에는 거리가 좀 멀다. 그래서 오른손으로 퍼멀을 쥐고 마치 채찍으로 후려치듯이 아래에서 위로, 길게 스텝을 밟아 런지하면서 이미 칼을 내려치기 시작한 놈의 왼손을 노렸다.
"아악!!"
왼손 새끼손가락이 잘리면서 택티컬 카타나의 손잡이 고무까지 일부 잘려나가는 것이 보였다.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면서 그 녹두대원이 칼을 놓치려는 순간 사방에서 4개의 총검이 각각 척추, 가슴, 옆구리와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덕분에 그는 대원들이 총검을 뽑고서야 쓰러질 수 있었다.
나는 가서 놈이 떨어트린 택티컬 카타나를 보았다. 기억에 익숙한 도검이었다. 이건 중국의 도검 메이커인 한웨이(Hanwei)에서 출시되었던 택티컬 카타나 제품이었다. 칼집은 화이바글라스 통, 손잡이는 크레이튼 고무로 만들어진 이것은 내구성도 좋고 잘 망가지지 않으면서도 가격은 매우 싼 것으로 유명한 물건이었다. 칼날 길이도 71cm정도로 길지도 짧지도 않은 수준이다.
나는 그 카타나를 칼집까지 빼서 내 요대에 찔러넣고 허리 뒤춤으로 돌렸다. 원곡고 내부로 돌입하면 날길이만 95cm에 달하는 이 롱소드보다는 좁은 실내공간에선 더 쓸만할지도 모른다. 아까 조금 잘려나가 덜렁거리는 손잡이 일부는 귀찮아 그냥 뜯어버렸다. 그래도 쓰는 데에는 문제 없다.
이미 원곡고는 우리 아래에 있다. 본관 건물 뒤쪽 주차장 쪽으로 진입하자 녹두대원이 우리를 보고는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아무리 낮이라지만 너무 빨리 들키는 거 아닌가?"
어느 대원의 혼잣말에 조용히 긍정하면서 내려다본 옷의 단추는 광을 낸 황동 단추. 순찰을 비롯한 치안 유지 업무에는 이런 눈에 띄는 복장이 참 좋았는데 지금처럼 은밀 행동이 필요한 때에는 정말 제대로 통수를 친다. 하기야 한낮에 시커먼 100% 울 원단도 문제는 문제이긴 하다만...
어제 포격을 받은 탓인지 원곡고는 군데군데 벽돌과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져 있고 유리창은 잔뜩 깨져 마치 폐허와도 같았건만, 그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놈들이 있던 모양이다. 벌써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고 시끄럽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른쪽에 찬 홀스터를 열고 콜트 네이비 권총을 꺼내어 소리지르는 놈의 머리를 노리고 쏘았으나 역시 권총, 그것도 흑색화약을 쓰는 19세기 리볼버의 명중률은 대단치 않았다. 어깨에 맞은 것이다. 이번에는 몸통을 노리고 쏘았는데 무릎에 맞았는지 녹두대 대원은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납탄에 박살난 무릎을 감싸쥐고서도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건 도대체 변함이 없다.
"내가 먼저 내려간다, 2개조로 나뉘어 엄호! 로쿠로가 지휘하라!"
이미 현관에서는 녹두대 대원들이 떼로 몰려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를 본 김석원이 1개조의 돌파를 명령했을 때, 나는 이미 담 밑으로 뛰어내렸다.
"크헉..."
그러나 생각보다 높은 담이라서 발에 가해지는 충격이 커서 고통으로 제대로 착지하지 못하고 옆으로 굴러버렸다. 하늘이 땅이고 땅이 하늘이 되는 시야의 혼돈 속에 귀에 들려오는 총소리만 확실했다. 어지러움을 무시하고 억지로 일어섰으나 도로 넘어지고 말았다. 앞을 보니 머리통 앞에 구멍이 난 녹두대 대원이다. 이 놈을 치우고 일어설 생각으로 머리 뒤끄덩이를 잡으려 했는데, 잡혀야 할 머리카락은 없고 왠 허공인가 싶었으나, 곧 뭐가 어찌 된건지 알 수 있었다. 탄환이 관통하면서 뒤쪽은 완전히 터져나간 것이다.
녹두대원들이 달려들었으나 연속 사격에 의해 나에게 달려들지도 못하고 다들 쓰러졌다. 그러자 녹두대원들은 돌격을 관두고 근처 건물 뒤로 몸을 숨기기 시작했다. 그들이 숨은 건물 외벽에 견제 사격의 총탄이 벽돌을 깨면서 위협을 가하는 와중 대원들이 하나 둘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착지할 때 다리를 최대한 굽혀서 충격을 흡수하고 옆으로 굴러라! 너무 높다!"
착지한 대원들은 최대한 빠르게 앞으로 나서서 무릎쏴 자세로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은 로쿠로 김석원이었는데, 다리가 아픈 탓인지 대원 한명이 남아 김석원의 착지를 도왔다. 먼저 김석원이 3척 2촌의 노다치를 땅으로 던지자 대원이 그것을 받았고, 위에 남아있던 대원이 총구를 양손으로 단단히 잡고 김석원이 개머리판을 잡고 최대한 밑으로 내리려고 했다. 그 덕분에 김석원은 훨씬 낮은 높이에서 점프해도 되었으나 그 높이도 거진 1.5m정도는 되었다. 곧 김석원이 총의 개머리판을 잡은 손을 놓고 뛰어내렸으나, 훨씬 낮은 높이임에도 불구하고 김석원은 상당히 아파하는 표정으로 옆으로 굴렀다.
곧 대원의 보조를 받으며 일어나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은색 판 속에 수납된 길쭉하고 하얀 저 약은 볼 것도 없는 타이레놀이다. 그걸 무려 4알이나 꺼내더니만 물도 없이 그자리에서 아그작아그작 씹어서 넘기고는 그 다음에야 수통을 들어 물을 마셨다. 참고로 전습대의 수통은 현대적인 것과는 다른 것으로, 핸드백처럼 어깨에 매어서 휴대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용량도 크고 코르크 마개로 입구를 막게 되어있는 구조다. 아무튼 김석원 이 양반은 터프하기 짝이 없다.
"쨍그랑!"
왠 병 깨지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대원들이 물러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불이 나 있었다. 으따 이건 화염병 아닌가? 곧이어 여러개가 연속으로 날아와 깨지면서 우리들 앞에 불의 벽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염병 불길이 그렇듯이 화력은 고만고만하다. 그 불길 너머로 현관으로 나와 화염병에 불을 붙이는 놈들이 보였다.
"3열 종대! 3열 종대! 1열부터 3열까지 사격 후 돌격!"
대원들은 빠르게 3열 종대 10열 횡대로 대열을 짓고는 사격 명령을 기다린다.
"1열 우떼!"
1열이 일제 사격을 가하고 즉시 한쪽 무릎을 꿇고 앉는다. 뒤이어 2열, 3열까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자 돌격 명령을 내리면서 내가 최선두로 화염병의 불길을 뛰어넘었다. 이걸 본 대원들도 다들 화염병 불길을 뛰어넘어 돌파했다. 화염병 불길은 밟지 않는 편이 좋은데 스티로폼과 설탕을 섞어 끈적한 연료를 만들기 때문에 오래 타고 또 그 기름을 밟으면 신발에 불이 붙고 잘 꺼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까 일제 사격으로 화염병 던지던 놈들이 쓰러졌는지 다른 화염병은 날아오지 않고 있었다.
"정지! 로쿠로, 2개조로 나뉘어 각기 2,3현관에서 돌입하여 출장본영 사무실을 포위하는 식으로 행동한다."
"알겠습니다."
3현관은 바로 우리 옆에 있었다. 김석원은 타이레놀의 효과가 있는지 아픈 기색은 없어 보였다. 다만 다리가 좀 불편하기는 한 듯 해 보이긴 하였으나, 통증은 타이레놀의 힘으로 완화되고 있는 듯 하다. 곧 대원을 지정하고 김석원은 3척 2촌의 노다치를 뽑고 칼집은 허리 뒤춤에 꽃고 3 현관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2현관은 약 30m전방에 있다. 대원들은 즉시 나를 중심으로 넓게 반원형으로 포진하고는 학교 운동장과 앞뒤를 경계하면서 사격 자세를 취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동장에는 왠일인지 아무도 없고, 교문 너머의 원곡동 시가지 쪽에서는 간간히 고함과 욕설이 들려왔다. 깡패나 분위기를 틈탄 약탈자들과 녹두대 주력&자경단 연합의 싸움일 것이다. 다들 총소리를 들었겠지만 당장 깡패 약탈자들과 싸움박질하는 입장에서 바로 이곳으로 오기는 힘들 것이다. 바로 이 시간의 여유를 이용하여 흑호방주를 아작내야 한다.
깨진 유리창들과 콘크리트, 벽돌 조각을 밟으면서 전진하던 도중, 무심코 교실 창문 쪽을 보았다. 순간 인간같은 실루엣이 보이더니 반쯤 깨진 유리창 틈새로 뭔가가 빛났다.
"니미롤~!"
본능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반짝이는 건 창이었고 내질러진 창끝은 내 코에서 2cm도 채 안 떨어진 곳까지 와 있었다. 내가 허리를 뒤로 빼면서 피하지 않았다면 얼굴에 정통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창을 붙들고 확 끌어당기자 창문 밖으로 놈이 창을 안 뺏기려고 했는지 양손으로 창을 잡은 채로 확 끌려나왔다. 중심을 잃었는지 깨진 유리창 조각 위로 엎어진 그놈은 목이 유리조각에 찔렸는지는 몰라도 꿈틀대기만 할 뿐 의미있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전원 교실을 향해 노려!"
대원들이 즉시 나를 보호하듯 내 앞을 막아서면서 총구를 교실로 겨누었다.
"우떼!"
그와 동시에 15개의 총구에서 일제히 불꽃과 흑색 화약 특유의 연기가 뿜어졌고, 그나마 덜 깨져있던 이 교실의 유리창은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렸다. 대원들은 나의 전진 명령을 듣자 총구를 약간 내리고 전방을 주시하면서도 능숙하게 햄머를 하프 코킹하고, 트랩도어를 열어 약실을 개방하고, 트랩도어를 당기고 총을 뒤집어 남은 탄피를 땅으로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허리 옆에 위치한 카트리지 박스에 넣어 산탄 쉘을 개조한 스나이더-엔필드 탄환을 약실에 밀어넣고 트랩도어를 닫았다. 그리고 햄머를 풀 콕킹한 다음 다시 오른손으로 총을 잡되, 검지손가락은 방아쇠울 바깥에 둔다. 이 모든 모션을 전방을 주시하면서 이동하는 도중에 행했다. 과연 정예다운 모습이다.
곧 2현관에 도달했다. 성큼 들어가려다가 아까 창 습격도 그렇고 영 거시기해서 슬쩍 멈췄는데, 아니나 다를까 눈앞에서 홱 지나가는 뭔가가 있었고, 그건 내 허리쯤에서 멈췄다. 옆을 보니 현관문 한쪽을 막아놓은 신발장 옆에 숨은 놈과, 손잡이에 붉은 칠을 하고 황동제 도장구를 탑재한 국내 도검사 스탠다드 디자인의 조선 환도가 보였다. 아니 이놈들은?!
왼발은 아직 문 안쪽을 디딘 채였는데 이놈이 내 왼발을 보더니 허벅지를 잘라버리려는 듯 중단에서 멈춘 칼날을 밑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급히 왼발을 뒤로 빼면서 약간 뒤로 물러서자, 이놈 칼이 생각보다 좀 짧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눈앞에 머리통이 드러났다. 이걸 체인 건틀렛을 낀 손으로 쳐버리려고 주먹을 종권으로 세워서 날렸으나...
눈 깜짝할 새에 놈의 환도의 칼날이 내질러진 내 주먹, 아니 손목 안쪽 동맥 부분에 닿아 있었다. 이놈 내가 주먹을 내지르는 걸 보고 칼날을 뒤집어 올리면서 내 손목에 갖다댄건가 생각하는 순간, 놈의 칼날이 강하게 내 손목을 누르면서 확 그어내려지기 시작했다. 체인 건틀렛이 없었더라면 분명히 나는 지금쯤 동맥에서 뿜어지는 피를 어찌할 지도 모르다가 45초 안에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등에 소름이 쫙 끼쳤다.
놈은 그어버리기가 통하지 않자 표정을 찡그리면서 복도 쪽으로 두어 걸음 빠지더니 환도를 칼날이 하늘로 가게 뒤집으면서 칼끝을 내 얼굴 높이로 들이댔다. 이는 일본에서는 카스미라고 부르는 자세로, 상대의 얼굴에 칼을 들이댐으로써 견제하는 자세이다. 공격이 실패해도 굴하지 않고 2수 3수를 연달아 전개하는 능력, 그리고 나의 돌진을 경계하여 바로 카스미로 전환하는 능력까지... 이놈들은 지금까지의 어중이떠중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더군다나 붉은 칠을 한 목제 손잡이의 환도를 사용한다니, 이자들은 경상도의 세법을 배우고 돌아온 사기꾼 관장의 <정무림>패거리 중에서도 세법의 비전을 전수받은 최정예 중의 최정예임에 틀림없다.
원곡고의 본관 자체는 옛날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런 건물 특성상 결코 복도나 현관이 넓지는 않다. 95cm에 달하는 내 롱소드보다는 69cm밖에 안되는 환도가 훨씬 우월하다. 싸움을 길게 끌수록 불리해진다. 그래서 한가지 미끼를 던졌다.
크게 한걸음 전진하면서 롱소드를 높이 들었다가 내려쳤다. 칼이 아래로 내려가자 놈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환도를 높이 쳐들면서 달려들었다. 좋아 걸렸다! 검을 올려치면서 상대의 내려치는 칼을 튕겨내어 버리는 아우프슈트라이첸, 일본에선 스리아게라고 부르는 기술에 꼼짝없이 죽게 되는 것이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롱소드가 망치에라도 맞은 듯이 더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당황하여 놈을 보니 내가 아우프슈트라이첸을 쓰는 것을 보고는 목표를 내 머리에서 칼로 바꾼 모양이었다. 강하게 환도로 내 롱소드의 칼등 쪽을 짓누르고 있다. 더 짧고 두꺼운 환도를 순수하게 질량 힘싸움에서 롱소드가 이기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이 흔히 롱소드를 보면 무거울 거라고 지레짐작하는데 날길이가 20cm나 차이나는 일본도와 무게 자체는 큰 차이가 없다. 이는 롱소드는 칼날이 더 얇고 가볍다는 뜻이고, 반대로 일본도들은 더 두껍고 무겁다는 의미이다.
내가 롱소드를 하단(Alber)에서 살짝 칼끝을 옆으로 치우면서 놈의 환도를 피해 돌려서 머리를 치려고 생각하였으나, 검이 움직이는 걸 느꼈는지 놈이 갑자기 더 크게 힘을 주면서 환도로 짓눌렀다. 찌르기가 들어올까 싶어 다시 하단을 유지하면서 강하게 버텼으나 니미.. 이놈이 속임수를 쓴 것이다. 내가 누르는 힘에 속아 하단을 유지하려고 든 그 찰나의 딜레이를 틈타 오른쪽으로 빠지면서 칼을 돌려 강하게 내 머리를 후려쳤다.
내가 칼을 들어올리면서 제자리에 있는 틈을 타 머리를 치려고 한 듯 하지만, 나는 한걸음 뒤로 빠졌다. 그러나 놈의 전진이 생각보다 길어서 맞을 것 같아 다시 옆으로 빠졌다. L자로 빠져나간 것이다. 놈이 허공을 가르는 것이 보였다. 좋다! 강력한 수직 내려베기(샤이텔하우)로 끝장을 내주마!
그러나 칼을 크게 휘두른 순간 칼끝에 충격이 느껴졌고 칼이 움직이질 않았다. 급히 위를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너무 긴 롱소드의 칼끝이 콘크리트 천장에 쓸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았다. 검을 허리 옆에 두고 칼끝은 나를 향한 환도가 정확히 나의 명치, 정중앙을 노리고 있었다. 찰나의 타이밍에서도 확실히 알 수 있다. 나는 이제 완전히 패배했구나 라는 것을 말이다.
머리통을 지나 전신에 차가운 드라이아이스가 질주하는 듯한 감각에 전율하며 놈의 환도를 주시하는 순간 놈의 환도의 칼끝은 아래로 쳐졌다. 손가락이 풀리는 것이 보였다. 그놈의 얼굴을 보니 눈알은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까뒤집혀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대원의 총검. 34cm길이의 칼날, 아니 삼각형 단면의 강철송곳에 더 가까운 그 총검이 놈의 머리통을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관자놀이를 완전 관통해버린 것이었다.
입을 벌리고 입술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놈은 다리가 풀리면서 쓰러졌고 바지는 오줌으로 젖기 시작했다. 체중 탓에 놈의 몸뚱이가 옆으로 쓰러지면서 총검에 꽃혀있던 머리통도 자연스럽게 쑤욱 뽑혀나갔다. 총검을 내지른 주인공은 한때 기타 좀 치셨다는 48살의 대원이었다. 머리통을 관통한 것은 그의 총검이 도검형 총검인 스나이더-엔필드 전용이 아니라 송곳형 총검인 P53 엔필드 총검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우리 소총이 P53엔필드를 개조하여 스나이더-엔필드로 진화시킨 것이라서 총검 자체는 기존 재고를 쓰고 있었던 것이 이유였다.
그 대원을 선두로 다들 내부로 진입하여 복도 양옆으로 전개하더니 사격을 개시했다. 아무래도 적들이 복도에서 어물쩡거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출장본영 사무실은 2층. 흑호방주 쳐죽이는 것도 이제 멀지 않았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흘러내려 눈에 들어가자 대충 닦아내고 고개를 크게 좌우로 흔들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정말 죽음이 아까 그 환도종자와 싸울 때만큼 가깝게 느껴진 적이 없었고 그런 정신적 충격을 받기도 그동안 난생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몸에 전율이 다 사라지지 않았다.
대원들이 복도 양옆을 경계하면서 엄호하자 다시 선두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 올라가서 출장본영 사무실 쪽으로 향하려 하자 갑자기 복도 한켠에서 또다시 정무림 환도종자 한놈이 튀어나왔다. 칼자루와 칼집의 나무 도색은 아까 그놈과는 다르게 곤색이다.
놈이 칼을 어깨에 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튀어나와서 나는 놈이 내 손을 치기 딱 좋은 간격에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놈의 칼이 움직였다고 생각했을 때 이미 놈의 검은 내 손을 후려치고 있었다.
강하고 묵직한 한방이나 다행히도 체인 건틀렛에 의해 칼날은 살을 베지 못했고 더불어 쇠사슬 특유의 미끄러움 탓에 칼날도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고통을 참으면서 한걸음 길게 전진하면서 칼로 명치를 찌르자 놈은 그대로 힘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놈은 정말 억울할 것이다. 분명히 먼저 쳤고 자기가 이긴 건데 건틀렛 따위에 승패가 역전당하다니 말이다. 반대로 나는 김추자씨의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체인 건틀렛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미 아까 환도종자의 손목 동맥 긋기에 피를 뿜으며 영화 <아저씨>의 사엾은 엑스트라처럼 죽어갔을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뒤따라온 대원들이 총검으로 놈의 눈알을 찍고는 휘휘 저어보기 시작했다. 확인사살이다. 얼굴에서 눈이 오직 유일하게 뇌와 직접 연결된 곳이고, 눈알을 찌르면 뇌까지 들어가기 때문이다.
복도 건너편에서도 소란스러운 소리가 아까부터 들리고 있었다. 김석원이 이끄는 팀도 교전중이었던 모양이다.
"좋아, 이대로 사무실까지 직진..."
교실의 나무문이 대원들을 뒤덮으며 날아들고 있다. 정말 오늘의 원곡고는 서프라이즈하기 짝이 없군! 대원들 셋이 나무문에 깔리면서 넘어졌고, 그렇게 대원들을 깔아뭉갠 교실 나무문 위에는 세놈의 환도종자가 올라가 있었다. 세놈 중 가운데에 있던 놈이 환도를 쳐들면서 기세 좋게 점프했는데, 하필 대원이 엉겁결에 내민 총검에 알아서 찔려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그 대원이 환도종자 체중 탓에 총을 놓쳐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걸 본 다른 놈이 환도를 크게 들어 머리통을 내려치려고 하자, 그 대원이 급히 한다치를 발도하여 검을 들어올려 녀석의 내려베기를 흘려내면서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일본에서 우케나가시라고 부르는 기술이다.
그리고 그대로 검을 돌리면서 환도종자의 머리통을 노렸으나, 중단에서 바로 검을 멈춘 환도종자가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우리 대원의 등뒤로 관통하고 삐져나온 환도에는 피가 묻어 있었으며, 우리 대원이 혼신의 힘을 다해 내려친 검은 허망하게도 놈이 깊게 파고든 탓에 칼날이 아닌 팔뚝이 환도종자의 머리통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 환도종자의 움직임과 상황판단은 놀라울 정도로 기민했다. 너무 깊게 찔러서 뽑기 힘든 자신의 환도를 과감히 포기하고 쓰러지는 대원의 시체가 아직 쥐고 있던 한다치를 빼앗아 다른 대원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전투는 페어플레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환도종자는 곧 옆에 있던 또다른 대원의 개머리판에 턱을 정통으로 맞아버렸고, 곧 눈이 풀리면서 주저앉았다.
나머지 한놈은 곧바로 나를 공격해왔으며, 정확히 내 머리통을 노리고 동귀어진의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내가 크게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완벽하게 같은 타이밍에 머리를 치자, 내 롱소드는 95cm의 날길이를 가졌고 그의 환도는 69cm의 날길이를 가졌으므로 환도는 빗나가고 롱소드는 이마에서부터 코를 거쳐 입술까지 절단해버렸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달려드는 그놈은 그러나 목 부근에서 칼을 멈추고 내밀고 있던 나의 롱소드 끝에 알아서 찔렸다. 그러나 깊게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쉽게 죽지 않았는데, 내가 칼을 거꾸로 잡아서 퍼멀로 대갈통을 후려치자 그제서야 똥오줌으로 추정되는 갈색 액체를 하얀색 개량한복 바지에 물들이면서 주저앉았다.
자기를 깔아뭉갠 나무문을 올려제치고 빠져나온 대원이 급하게 조준도 안하고 지향사격을 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대원 앞에는 창이 땅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찔려죽기 직전에 지향사격으로 창수를 쏘아죽인 것이다.
"출장본영은 코앞이다! 가는 길의 교실을 철저 수색할 것. 수색 대원들은 한다치로 무장한다."
선봉에 선 대원들은 스나이더-엔필드 소총을 뒤로 둘러메고 한다치를 뽑고는 교실을 철저 수색하기 시작했다. 건너편에서는 녹두대 종자가 김석원의 몸통박치기에 날아가더니, 김석원이 창문을 열어버리고 녹두대 종자의 다리를 끌어안고서는 확 들어올려서 창 밖으로 추락시키는 광경이 보였다.
"로쿠로! 흑호방주나 다른 놈들을 봤습니까?"
"아닙니다. 사무실에도 없다니.. 놈들 벌써 도망간 모양이군요."
흑호방주와 진보단체 수장들이 인터뷰를 하던 전습대 출장본영 사무실에는 급히 도망친 듯 방송용 조명기구의 불빛조차 꺼지지 않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구둣발 아래에는 깨진 유리창 조각들이 여전히 밟히고 있었다. 포격을 받은 흔적이다.
"죽을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아무것도 없다니!"
구둣발을 땅에 구르며 유리창 파편을 밟아 부쉈다. 이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대원들도 허탈하고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아시따오 노봇떼 소라오 미아게따라~"
"뭐여..."
이 노래는 내 전화벨 소리이다. 핸드폰의 화면을 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김책 동지의 핸드폰이었기 때문이다.
"김책 동지! 무사한거요?"
"그렇습니다. 지금 요시노부 공과 함께 안전 가옥에 있습니다. 흑호방주는 잡았습니까?"
"아니! 놈은 현장에 없소. 이미 도망간 것 같으니... 이게 도대체 왠 헛고생인지!"
애꿏은 교실 나무문만 발길질의 희생양이 되었다.
"아닙니다! 제가 현장을 감시하고 있습니다만 진입하시기 훨씬 전부터 아무도 빠져나온 사람은 없습니다."
"현장 감시라니, UAV를 조종하고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간부들 전원 주변 감시중입니다. 흑호방주는 분명히 안에 있습니다! 진입하셨을 때 놈들이 방송 현장에서 급히 빠져나갔지만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고맙소, 김책 동지!"
대원들과 김석원을 보면서 상황을 설명하자, 다들 어느 정도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 건물 안에 있다는 소리 아닌가. 아직 희망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호루라기 소리는...!"
덴슈로쿠로 김석원의 의문의 이유는 뻔했다. 교실들을 완전 수색하지도 않고 후방 안정 없이 흑호방주만 잡겠다고 무작정 돌진해온 댓가가 지금 치뤄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곧 1층과 위층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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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 3부 신세기 괴신사집단 전습대 85화
언젠가 씁니다.
* 샷건 쉘을 이용한 스나이더 엔필드 탄약?
공개 자살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흑호방주 피부에 기스라도 내고 죽어야 죽는 보람이 있겠는데 이거야 원, 난감하기 짝이 없네 싶다 생각하던 와중 문이 열리고 허무도가 튀어나왔다.
"허무도 자네는 왜 나왔어? 가봐야 살기는.."
"이걸 좀 보십쇼!"
허무도는 곧 스마트폰을 나에게 들이댔다. 거기에는 DMB방송으로 나오는 뉴스 영상이 있었는데 방송국 UAV가 송출중인 영상에는 신시가지에서 벌어지는 난동이 보이고 있었고 심지어 방화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난장판이 나오고 있었다. 밑의 자막에는 <시위대 폭도로 비화... 시민 및 경찰과 교전중> 이라고 써 있다.
"아니, 녹두대나 자경단은 이럴 놈들이 아니지 않아? 그래도 자존심은 있는 놈들인데.."
"어제의 그 깡패새끼들입니다. 지금 신시가지 쪽으로 진출해서 은행이고 가게고 있는대로 다 털어먹고 있어요."
대원들도 웅성거렸다. 깡패들은 어제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도주할 법 했는데 아직까지 있는 것도 이상했지만, 곧 계엄군이 출병하면 죄다 사살 내지는 체포인데 이 위급한 순간에도 약탈질이나 하고 있다니 말이다. 영상에서는 계산대를 빠루로 뜯어제껴서 가방에 통째로 쓸어담는 모습까지 나오고 있었다.
"뻔하지 않습니까. 안산이 그나마 돌아가는 곳이고 치안이 지금 무너졌으니까 막판에 큰돈 털어가겠다는 거겠죠."
그런가 싶더라. 하기야 그나마 경제가 돌아가기는 하는 곳이 이곳이고 그만큼 다른 피폐한 지역에 비해 돈이 좀 몰려있는 곳이다. 거기에 지금 폭동으로 치안이 무너지다시피 했으니 지금 돈을 털어가기라도 해야 수지가 맞다고 판단한 것이겠지.
"그리고 지금 녹두대나 자경단 그룹이 주변 깡패놈들과 싸움이 붙었어요. 시민 치안대라 이거죠. 그래서 지금 다들 구시가지 전역에 흩어져 있습니다. 지금밖에 기회가 없어요."
허무도의 말을 듣자마자 번개같이 스치는 생각과 함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요컨데 놈들의 병력은 분산되어 있으며 당장 집결하기도 힘든 시점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최고사령부는 비어 있다. 그러므로 지금 돌격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가 없다는 말이렷다?!
"요오시!! 도오바쓰다!!"(좋아! 토벌이다!)
주먹을 불끈 쥐면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나는 복도에 선 대원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깡패들이 약탈을 확대하고 있다. 그래서 흑호방주를 호위하던 녹두대와 종파분자들이 그들과의 교전을 한다. 그래서 원곡고의 방어는 허술하다! 지금 우리가 조적을 토벌하고 사람 장사꾼을 처형하지 않으면 영원히 두번 다시 기회가 없다. 작금이야말로 멸사 봉공의 때이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못한다! 나 또한 총특공의 의지로 충만하였다. 그런데 우리 대원들은 불퇴전의 의지로 마귀를 쳐부수고 육탄행의 의지로 신풍을 부를 준비는 되었는지 모르겠군?!"
왼쪽 눈썹을 들어올리며 비아냥거리는 듯한 표정을 짓자 대원들의 피꺼솟이 휘몰아친다.
"무시하지 마십쇼!!"
"미친 똘추새끼들을 많이 죽이겠습니다!!"
"머가리를 부셔불것잉게!!"
기세는 최고조이다.
"좋아!! 출병이다!!"
뒤돌아서 뛰어나가려는 순간 누가 뒤에서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나의 자랑인 소매의 북군 황금단추 3개 중 하나가 튀어나가버렸다. 어떤 썅...
"이런 니미..."
뒤이어 나올 쌍시옷이 멈춰버린 이유는 거기 있던 게 김추자였기 때문이다. 반쯤 울상인 여자의 얼굴에 욕이 나오기는 영 쉽지 않은 일이다.
"고레, 모랏떼 구다사이!!"
김추자가 내민 건 꽤 눈에 익은 물건이었다. 손목은 철판을 연결했고 손등과 손가락은 작은 쇠고리를 무수히 연결해서 만든 이것은 한때 내가 가지고 있었다가 벌써 7년도 전에 쓸모없다고 팔아버렸던 바로 그 윈들래스 스틸크래프트社제 체인 건틀렛이 아닌가? 물론 기름도 채 다 닦이지 않은 신품이다.
"고이와, 나이데고와쓰까?"
"난데 이키나리 이이가타 카에루노요, 도니카꾸 모랏떼요. 유비데모 키라레따라 도오슨노데스까?!"
"리쿠단코오 카쿠고시따 미, 아에떼 이마사라 요로이오 츠케루마데모..."
적당히 거절하고 얼른 나갈 셈이었으나 김추자의 눈이 점점 충혈되는 걸 보곤 그냥 말없이 낚아채고는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대원들도 함께 움직이는 가운데 뒤에서 김추자의 울먹이는 목소리만이 들려온다.
"모라이마시따네! 모오 토리카에시 나시데스까라네, 가나라즈 하랏떼 모라이마스요!!"
그녀의 목소리를 피하듯이 빠르게 걷던 나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발걸음을 조금 늦추었다. 그리고 체인 건틀렛을 꼈다. 생각외로 손에 아주 꼭 맞았으나 손목 철판이 옷 소매에 걸리적거렸으므로 소매의 단추들을 죄다 풀어버리니 그제서야 쓸만해졌다. 비록 칼에 강타당하면 손가락 부러지는 건 못막는 유연한 체인 건틀렛이지만 그래도 낀 것만으로도 마음이 매우 든든했다. 그걸 본 전직 포크레인 기사, 조씨 성을 가진 대원은 이렇게 말했다.
"안 그럴 것 같으신 분이 죄는 많이 지으시는군요."
"조대원은 일본말을 알아 듣나?"
"남녀간의 마음이란 말을 몰라도 알게 마련입니다."
"그냥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받은 것일 뿐, 본관은 한손으로 이 커다란 놈(롱소드)를 쓸 자신이 없소."
조씨 성을 가진 대원은 더 말하지 않고 미소만 짓고 있었다.
옆에 허무도가 보였다. 오른손의 체인 건틀렛이 약간 불편한 듯 하여 손가락을 움직여 맞추면서 나즈막히 말했다.
"허무도, 자네는 왜 따라오나? 요시노부 공을 수행하면 될걸..."
"살면서 반드시 풀어야 될 은원이 있습니다. 제가 오늘 평생의 원수를 봤습니다. 그놈을 죽이지 않고는 앞으로 살아도 살 수가 없습니다."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이미 현관 앞의 넓은 공간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다. 손을 들어 정지를 외쳤다. 그리고는 걸어서 문 앞에 서고는 대원들을 향해 돌아서자 대원들이 알아서 대열을 지었다. 그 중에는 함께 참전한 간부 김석원도 있었다.
"진입 루트는 관산공원을 거쳐 원곡고로 직접 진입한다. 이후 본관 출장본영 사무실 방면으로 진입하여 일격에 흑호방주를 친다! 임무 완료 후 탈출 루트는 원곡고 후문으로 돌파하여 관산공원으로 빠져 그 이후는 상황에 따라 결정한다. 알겠지!"
"예!"
"질문은?"
로쿠로 김석원이 나섰다.
"포로는 잡기 싫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지금부터 항복하는 자는 없고 다들 반항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가 없도록 한다!"
김석원의 얼굴이 해맑아짐과 동시에 3척 2촌의 노다치를 뽑아들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곧 대원들도 거기에 동참하여 죽이자 삼창이 현관을 쩌렁쩌렁 울렸다.
"좋아! 출진이다!"
"납품하러 왔다!"
중저음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의 대원들의 눈빛이 경계태세로 변했다. 뒤를 돌아보니 면도도 며칠 안한 듯한 지저분한 얼굴의 40대 러시아 아저씨가 캔버스 천으로 만든 자루 하나를 왼손에 쥐고 서 있었다. 그러더니 캔버스 자루를 앞으로 슥 던졌다.
"니꼴라이! 정말 빨리도 납품하는군!"
"나 혼자 이 짓거리 하느라 뒤지는 줄 알았어! 약속한 대로 500만원의 납품가를 당장 내놓으라고!!"
"알았어! 몇발이나 해온거야?!"
"200발!
"새 총알이다! 대원들은 각자 6발씩 챙기도록!"
니꼴라이는 러시아 출신의 중간 상인으로, 영 좋지 않은 물건들의 구매 대행을 해 주는 일을 하며 구로공단에 사무실을 차리고 있었다. 한때 나에게 트럭 일을 주던 레즈노프 영감의 소개로 나름 관계가 있었으나 전습대 활동 이후로 한번 만난 적도 없을 정도였다. 총탄 재고가 부족하자 500만원이라도 줄테니 스나이더-엔필드 총탄을 구해달라고 독촉하자 오랜만에 전화해서는 하는 소리가 그런거냐고 서운해 하더니, 기계설비도 없이 그런 듣도보도못한 총탄을 무슨 수로 하룻밤만에 구해다 주냐고 일갈하는 니꼴라이에게 내가 제시한 비책이 하나 있었다.
"보병지도역님.. 이건 엽총 그거 아닙니까?"
자루를 풀어헤친 대원들은 다들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루 안에서 튀어나온 건 바닥만 황동이고 나머진 빨간 색의 플라스틱으로 된 산탄총알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스나이더에 들어가는 총알이야. 앞을 보면 미니에 탄두가 붙어있지?"
탄을 앞으로 기울이며 보여주자 과연 그 앞에는 잘린 탄피 끝 안에 수납되어 있는 0.577 구경의 스나이더-엔필드 탄두가 보였다. 이건 내가 유튜브에서 어느 스나이더-엔필드 유저가 써먹던 걸 그대로 따라한 것이었다. 이런 19세기의 탄피식 소총은 총알 생산량이 많지 않아 현대사회에서 구하려면 가격이 매우 비싸고 설비를 따로 만들어서 돌려야 했다. 그래서 그 미국의 스나이더-엔필드 유저는 꽁수로 산탄 탄피를 이용하여 화약과 탄두를 제거하고 새 화약과 미니에 탄두를 끼워서 저렴하게 총알을 조달하고 있는 걸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었다.
이 한국에서 스나이더-엔필드 총알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지만 산탄총알은 구하기 힘들지 않다. 니꼴라이는 총탄도 취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비책을 제시한 것에 따라 되는대로 만들어 온 것이 이것이었다. 총에 어떤 부담을 줄지 몰랐기 때문에 나는 가능하면 규격탄환을 쓰고 싶었지만 이런 상황에선 어쩔 도리가 없다.
"빨리 오백만원이나 내놓으라고!"
"지금 당장 현찰은 없지만..."
내가 니꼴라이에게 건내준 건 내 통장과 연결된 현금카드였다.
"비밀번호는 ****야. 알아서 빼가라구."
잠깐 현금카드를 보던 니꼴라이는 연민에 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다 빼갈지도 모른다. 응?"
"알아서 하라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날씨는 쓸데없이 맑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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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로 관산공원을 오르니 역시나 요충지라는 점을 자기들도 아는지 녹두대원들 4명이 경계중이었다. 역시 오토바이 자켓을 차고 있는 건 오월대와 마찬가지다. 근대적인 복장을 하고 무장을 갖춘 우리와는 영 비교된다. 나와 눈이 마주친 대원 한놈이 나를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자 4명 모두 칼을 빼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들의 칼은 우리가 아는 그런 모조일본도가 아니라, 철판을 따서 열처리하고 날을 세운 다음 철판 양쪽에 고무판만 붙인 이른바 <택티컬 소드>다. 그리고 칼집은 플라스틱의 일종인 카이덱스 제질이다.
"도쓰게끼!!"
내가 돌격을 외치며 달려들자 착검한 대원들이 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산지에 만들어진 공원 특성상 밑에 있는 사람들은 풀에 가려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그래서 선두로 달려온 나를 보곤 나 혼자 뿐이라고 생각해서 칼을 뽑아 응전하려고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다른 대원들도 달려올라오면서 모습이 드러나자 생각보다 숫자가 많은 걸 알고는 당황한 모양이었다.
전습대원들이 넓게 포위하듯이 산개 돌격하자 이자들은 당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버버하고 있다. 가장 오른쪽의 한명이 얼굴을 향해 질러진 총검에 눈알이 관통당하는 것을 시작으로 나머지들의 등짝과 옆구리에 총검이 3~4개씩 다양한 부위에 박히기 시작했다.
중간에 있는 놈이 멀쩡했는데 우리 대원의 팔을 내려베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내가 베기에는 거리가 좀 멀다. 그래서 오른손으로 퍼멀을 쥐고 마치 채찍으로 후려치듯이 아래에서 위로, 길게 스텝을 밟아 런지하면서 이미 칼을 내려치기 시작한 놈의 왼손을 노렸다.
"아악!!"
왼손 새끼손가락이 잘리면서 택티컬 카타나의 손잡이 고무까지 일부 잘려나가는 것이 보였다.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면서 그 녹두대원이 칼을 놓치려는 순간 사방에서 4개의 총검이 각각 척추, 가슴, 옆구리와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덕분에 그는 대원들이 총검을 뽑고서야 쓰러질 수 있었다.
나는 가서 놈이 떨어트린 택티컬 카타나를 보았다. 기억에 익숙한 도검이었다. 이건 중국의 도검 메이커인 한웨이(Hanwei)에서 출시되었던 택티컬 카타나 제품이었다. 칼집은 화이바글라스 통, 손잡이는 크레이튼 고무로 만들어진 이것은 내구성도 좋고 잘 망가지지 않으면서도 가격은 매우 싼 것으로 유명한 물건이었다. 칼날 길이도 71cm정도로 길지도 짧지도 않은 수준이다.
나는 그 카타나를 칼집까지 빼서 내 요대에 찔러넣고 허리 뒤춤으로 돌렸다. 원곡고 내부로 돌입하면 날길이만 95cm에 달하는 이 롱소드보다는 좁은 실내공간에선 더 쓸만할지도 모른다. 아까 조금 잘려나가 덜렁거리는 손잡이 일부는 귀찮아 그냥 뜯어버렸다. 그래도 쓰는 데에는 문제 없다.
이미 원곡고는 우리 아래에 있다. 본관 건물 뒤쪽 주차장 쪽으로 진입하자 녹두대원이 우리를 보고는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아무리 낮이라지만 너무 빨리 들키는 거 아닌가?"
어느 대원의 혼잣말에 조용히 긍정하면서 내려다본 옷의 단추는 광을 낸 황동 단추. 순찰을 비롯한 치안 유지 업무에는 이런 눈에 띄는 복장이 참 좋았는데 지금처럼 은밀 행동이 필요한 때에는 정말 제대로 통수를 친다. 하기야 한낮에 시커먼 100% 울 원단도 문제는 문제이긴 하다만...
어제 포격을 받은 탓인지 원곡고는 군데군데 벽돌과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져 있고 유리창은 잔뜩 깨져 마치 폐허와도 같았건만, 그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놈들이 있던 모양이다. 벌써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고 시끄럽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른쪽에 찬 홀스터를 열고 콜트 네이비 권총을 꺼내어 소리지르는 놈의 머리를 노리고 쏘았으나 역시 권총, 그것도 흑색화약을 쓰는 19세기 리볼버의 명중률은 대단치 않았다. 어깨에 맞은 것이다. 이번에는 몸통을 노리고 쏘았는데 무릎에 맞았는지 녹두대 대원은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납탄에 박살난 무릎을 감싸쥐고서도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건 도대체 변함이 없다.
"내가 먼저 내려간다, 2개조로 나뉘어 엄호! 로쿠로가 지휘하라!"
이미 현관에서는 녹두대 대원들이 떼로 몰려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를 본 김석원이 1개조의 돌파를 명령했을 때, 나는 이미 담 밑으로 뛰어내렸다.
"크헉..."
그러나 생각보다 높은 담이라서 발에 가해지는 충격이 커서 고통으로 제대로 착지하지 못하고 옆으로 굴러버렸다. 하늘이 땅이고 땅이 하늘이 되는 시야의 혼돈 속에 귀에 들려오는 총소리만 확실했다. 어지러움을 무시하고 억지로 일어섰으나 도로 넘어지고 말았다. 앞을 보니 머리통 앞에 구멍이 난 녹두대 대원이다. 이 놈을 치우고 일어설 생각으로 머리 뒤끄덩이를 잡으려 했는데, 잡혀야 할 머리카락은 없고 왠 허공인가 싶었으나, 곧 뭐가 어찌 된건지 알 수 있었다. 탄환이 관통하면서 뒤쪽은 완전히 터져나간 것이다.
녹두대원들이 달려들었으나 연속 사격에 의해 나에게 달려들지도 못하고 다들 쓰러졌다. 그러자 녹두대원들은 돌격을 관두고 근처 건물 뒤로 몸을 숨기기 시작했다. 그들이 숨은 건물 외벽에 견제 사격의 총탄이 벽돌을 깨면서 위협을 가하는 와중 대원들이 하나 둘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착지할 때 다리를 최대한 굽혀서 충격을 흡수하고 옆으로 굴러라! 너무 높다!"
착지한 대원들은 최대한 빠르게 앞으로 나서서 무릎쏴 자세로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은 로쿠로 김석원이었는데, 다리가 아픈 탓인지 대원 한명이 남아 김석원의 착지를 도왔다. 먼저 김석원이 3척 2촌의 노다치를 땅으로 던지자 대원이 그것을 받았고, 위에 남아있던 대원이 총구를 양손으로 단단히 잡고 김석원이 개머리판을 잡고 최대한 밑으로 내리려고 했다. 그 덕분에 김석원은 훨씬 낮은 높이에서 점프해도 되었으나 그 높이도 거진 1.5m정도는 되었다. 곧 김석원이 총의 개머리판을 잡은 손을 놓고 뛰어내렸으나, 훨씬 낮은 높이임에도 불구하고 김석원은 상당히 아파하는 표정으로 옆으로 굴렀다.
곧 대원의 보조를 받으며 일어나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은색 판 속에 수납된 길쭉하고 하얀 저 약은 볼 것도 없는 타이레놀이다. 그걸 무려 4알이나 꺼내더니만 물도 없이 그자리에서 아그작아그작 씹어서 넘기고는 그 다음에야 수통을 들어 물을 마셨다. 참고로 전습대의 수통은 현대적인 것과는 다른 것으로, 핸드백처럼 어깨에 매어서 휴대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용량도 크고 코르크 마개로 입구를 막게 되어있는 구조다. 아무튼 김석원 이 양반은 터프하기 짝이 없다.
"쨍그랑!"
왠 병 깨지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대원들이 물러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불이 나 있었다. 으따 이건 화염병 아닌가? 곧이어 여러개가 연속으로 날아와 깨지면서 우리들 앞에 불의 벽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염병 불길이 그렇듯이 화력은 고만고만하다. 그 불길 너머로 현관으로 나와 화염병에 불을 붙이는 놈들이 보였다.
"3열 종대! 3열 종대! 1열부터 3열까지 사격 후 돌격!"
대원들은 빠르게 3열 종대 10열 횡대로 대열을 짓고는 사격 명령을 기다린다.
"1열 우떼!"
1열이 일제 사격을 가하고 즉시 한쪽 무릎을 꿇고 앉는다. 뒤이어 2열, 3열까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자 돌격 명령을 내리면서 내가 최선두로 화염병의 불길을 뛰어넘었다. 이걸 본 대원들도 다들 화염병 불길을 뛰어넘어 돌파했다. 화염병 불길은 밟지 않는 편이 좋은데 스티로폼과 설탕을 섞어 끈적한 연료를 만들기 때문에 오래 타고 또 그 기름을 밟으면 신발에 불이 붙고 잘 꺼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까 일제 사격으로 화염병 던지던 놈들이 쓰러졌는지 다른 화염병은 날아오지 않고 있었다.
"정지! 로쿠로, 2개조로 나뉘어 각기 2,3현관에서 돌입하여 출장본영 사무실을 포위하는 식으로 행동한다."
"알겠습니다."
3현관은 바로 우리 옆에 있었다. 김석원은 타이레놀의 효과가 있는지 아픈 기색은 없어 보였다. 다만 다리가 좀 불편하기는 한 듯 해 보이긴 하였으나, 통증은 타이레놀의 힘으로 완화되고 있는 듯 하다. 곧 대원을 지정하고 김석원은 3척 2촌의 노다치를 뽑고 칼집은 허리 뒤춤에 꽃고 3 현관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2현관은 약 30m전방에 있다. 대원들은 즉시 나를 중심으로 넓게 반원형으로 포진하고는 학교 운동장과 앞뒤를 경계하면서 사격 자세를 취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동장에는 왠일인지 아무도 없고, 교문 너머의 원곡동 시가지 쪽에서는 간간히 고함과 욕설이 들려왔다. 깡패나 분위기를 틈탄 약탈자들과 녹두대 주력&자경단 연합의 싸움일 것이다. 다들 총소리를 들었겠지만 당장 깡패 약탈자들과 싸움박질하는 입장에서 바로 이곳으로 오기는 힘들 것이다. 바로 이 시간의 여유를 이용하여 흑호방주를 아작내야 한다.
깨진 유리창들과 콘크리트, 벽돌 조각을 밟으면서 전진하던 도중, 무심코 교실 창문 쪽을 보았다. 순간 인간같은 실루엣이 보이더니 반쯤 깨진 유리창 틈새로 뭔가가 빛났다.
"니미롤~!"
본능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반짝이는 건 창이었고 내질러진 창끝은 내 코에서 2cm도 채 안 떨어진 곳까지 와 있었다. 내가 허리를 뒤로 빼면서 피하지 않았다면 얼굴에 정통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창을 붙들고 확 끌어당기자 창문 밖으로 놈이 창을 안 뺏기려고 했는지 양손으로 창을 잡은 채로 확 끌려나왔다. 중심을 잃었는지 깨진 유리창 조각 위로 엎어진 그놈은 목이 유리조각에 찔렸는지는 몰라도 꿈틀대기만 할 뿐 의미있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전원 교실을 향해 노려!"
대원들이 즉시 나를 보호하듯 내 앞을 막아서면서 총구를 교실로 겨누었다.
"우떼!"
그와 동시에 15개의 총구에서 일제히 불꽃과 흑색 화약 특유의 연기가 뿜어졌고, 그나마 덜 깨져있던 이 교실의 유리창은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렸다. 대원들은 나의 전진 명령을 듣자 총구를 약간 내리고 전방을 주시하면서도 능숙하게 햄머를 하프 코킹하고, 트랩도어를 열어 약실을 개방하고, 트랩도어를 당기고 총을 뒤집어 남은 탄피를 땅으로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허리 옆에 위치한 카트리지 박스에 넣어 산탄 쉘을 개조한 스나이더-엔필드 탄환을 약실에 밀어넣고 트랩도어를 닫았다. 그리고 햄머를 풀 콕킹한 다음 다시 오른손으로 총을 잡되, 검지손가락은 방아쇠울 바깥에 둔다. 이 모든 모션을 전방을 주시하면서 이동하는 도중에 행했다. 과연 정예다운 모습이다.
곧 2현관에 도달했다. 성큼 들어가려다가 아까 창 습격도 그렇고 영 거시기해서 슬쩍 멈췄는데, 아니나 다를까 눈앞에서 홱 지나가는 뭔가가 있었고, 그건 내 허리쯤에서 멈췄다. 옆을 보니 현관문 한쪽을 막아놓은 신발장 옆에 숨은 놈과, 손잡이에 붉은 칠을 하고 황동제 도장구를 탑재한 국내 도검사 스탠다드 디자인의 조선 환도가 보였다. 아니 이놈들은?!
왼발은 아직 문 안쪽을 디딘 채였는데 이놈이 내 왼발을 보더니 허벅지를 잘라버리려는 듯 중단에서 멈춘 칼날을 밑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급히 왼발을 뒤로 빼면서 약간 뒤로 물러서자, 이놈 칼이 생각보다 좀 짧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눈앞에 머리통이 드러났다. 이걸 체인 건틀렛을 낀 손으로 쳐버리려고 주먹을 종권으로 세워서 날렸으나...
눈 깜짝할 새에 놈의 환도의 칼날이 내질러진 내 주먹, 아니 손목 안쪽 동맥 부분에 닿아 있었다. 이놈 내가 주먹을 내지르는 걸 보고 칼날을 뒤집어 올리면서 내 손목에 갖다댄건가 생각하는 순간, 놈의 칼날이 강하게 내 손목을 누르면서 확 그어내려지기 시작했다. 체인 건틀렛이 없었더라면 분명히 나는 지금쯤 동맥에서 뿜어지는 피를 어찌할 지도 모르다가 45초 안에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등에 소름이 쫙 끼쳤다.
놈은 그어버리기가 통하지 않자 표정을 찡그리면서 복도 쪽으로 두어 걸음 빠지더니 환도를 칼날이 하늘로 가게 뒤집으면서 칼끝을 내 얼굴 높이로 들이댔다. 이는 일본에서는 카스미라고 부르는 자세로, 상대의 얼굴에 칼을 들이댐으로써 견제하는 자세이다. 공격이 실패해도 굴하지 않고 2수 3수를 연달아 전개하는 능력, 그리고 나의 돌진을 경계하여 바로 카스미로 전환하는 능력까지... 이놈들은 지금까지의 어중이떠중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더군다나 붉은 칠을 한 목제 손잡이의 환도를 사용한다니, 이자들은 경상도의 세법을 배우고 돌아온 사기꾼 관장의 <정무림>패거리 중에서도 세법의 비전을 전수받은 최정예 중의 최정예임에 틀림없다.
원곡고의 본관 자체는 옛날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런 건물 특성상 결코 복도나 현관이 넓지는 않다. 95cm에 달하는 내 롱소드보다는 69cm밖에 안되는 환도가 훨씬 우월하다. 싸움을 길게 끌수록 불리해진다. 그래서 한가지 미끼를 던졌다.
크게 한걸음 전진하면서 롱소드를 높이 들었다가 내려쳤다. 칼이 아래로 내려가자 놈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환도를 높이 쳐들면서 달려들었다. 좋아 걸렸다! 검을 올려치면서 상대의 내려치는 칼을 튕겨내어 버리는 아우프슈트라이첸, 일본에선 스리아게라고 부르는 기술에 꼼짝없이 죽게 되는 것이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롱소드가 망치에라도 맞은 듯이 더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당황하여 놈을 보니 내가 아우프슈트라이첸을 쓰는 것을 보고는 목표를 내 머리에서 칼로 바꾼 모양이었다. 강하게 환도로 내 롱소드의 칼등 쪽을 짓누르고 있다. 더 짧고 두꺼운 환도를 순수하게 질량 힘싸움에서 롱소드가 이기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이 흔히 롱소드를 보면 무거울 거라고 지레짐작하는데 날길이가 20cm나 차이나는 일본도와 무게 자체는 큰 차이가 없다. 이는 롱소드는 칼날이 더 얇고 가볍다는 뜻이고, 반대로 일본도들은 더 두껍고 무겁다는 의미이다.
내가 롱소드를 하단(Alber)에서 살짝 칼끝을 옆으로 치우면서 놈의 환도를 피해 돌려서 머리를 치려고 생각하였으나, 검이 움직이는 걸 느꼈는지 놈이 갑자기 더 크게 힘을 주면서 환도로 짓눌렀다. 찌르기가 들어올까 싶어 다시 하단을 유지하면서 강하게 버텼으나 니미.. 이놈이 속임수를 쓴 것이다. 내가 누르는 힘에 속아 하단을 유지하려고 든 그 찰나의 딜레이를 틈타 오른쪽으로 빠지면서 칼을 돌려 강하게 내 머리를 후려쳤다.
내가 칼을 들어올리면서 제자리에 있는 틈을 타 머리를 치려고 한 듯 하지만, 나는 한걸음 뒤로 빠졌다. 그러나 놈의 전진이 생각보다 길어서 맞을 것 같아 다시 옆으로 빠졌다. L자로 빠져나간 것이다. 놈이 허공을 가르는 것이 보였다. 좋다! 강력한 수직 내려베기(샤이텔하우)로 끝장을 내주마!
그러나 칼을 크게 휘두른 순간 칼끝에 충격이 느껴졌고 칼이 움직이질 않았다. 급히 위를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너무 긴 롱소드의 칼끝이 콘크리트 천장에 쓸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았다. 검을 허리 옆에 두고 칼끝은 나를 향한 환도가 정확히 나의 명치, 정중앙을 노리고 있었다. 찰나의 타이밍에서도 확실히 알 수 있다. 나는 이제 완전히 패배했구나 라는 것을 말이다.
머리통을 지나 전신에 차가운 드라이아이스가 질주하는 듯한 감각에 전율하며 놈의 환도를 주시하는 순간 놈의 환도의 칼끝은 아래로 쳐졌다. 손가락이 풀리는 것이 보였다. 그놈의 얼굴을 보니 눈알은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까뒤집혀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대원의 총검. 34cm길이의 칼날, 아니 삼각형 단면의 강철송곳에 더 가까운 그 총검이 놈의 머리통을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관자놀이를 완전 관통해버린 것이었다.
입을 벌리고 입술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놈은 다리가 풀리면서 쓰러졌고 바지는 오줌으로 젖기 시작했다. 체중 탓에 놈의 몸뚱이가 옆으로 쓰러지면서 총검에 꽃혀있던 머리통도 자연스럽게 쑤욱 뽑혀나갔다. 총검을 내지른 주인공은 한때 기타 좀 치셨다는 48살의 대원이었다. 머리통을 관통한 것은 그의 총검이 도검형 총검인 스나이더-엔필드 전용이 아니라 송곳형 총검인 P53 엔필드 총검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우리 소총이 P53엔필드를 개조하여 스나이더-엔필드로 진화시킨 것이라서 총검 자체는 기존 재고를 쓰고 있었던 것이 이유였다.
그 대원을 선두로 다들 내부로 진입하여 복도 양옆으로 전개하더니 사격을 개시했다. 아무래도 적들이 복도에서 어물쩡거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출장본영 사무실은 2층. 흑호방주 쳐죽이는 것도 이제 멀지 않았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흘러내려 눈에 들어가자 대충 닦아내고 고개를 크게 좌우로 흔들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정말 죽음이 아까 그 환도종자와 싸울 때만큼 가깝게 느껴진 적이 없었고 그런 정신적 충격을 받기도 그동안 난생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몸에 전율이 다 사라지지 않았다.
대원들이 복도 양옆을 경계하면서 엄호하자 다시 선두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 올라가서 출장본영 사무실 쪽으로 향하려 하자 갑자기 복도 한켠에서 또다시 정무림 환도종자 한놈이 튀어나왔다. 칼자루와 칼집의 나무 도색은 아까 그놈과는 다르게 곤색이다.
놈이 칼을 어깨에 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튀어나와서 나는 놈이 내 손을 치기 딱 좋은 간격에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놈의 칼이 움직였다고 생각했을 때 이미 놈의 검은 내 손을 후려치고 있었다.
강하고 묵직한 한방이나 다행히도 체인 건틀렛에 의해 칼날은 살을 베지 못했고 더불어 쇠사슬 특유의 미끄러움 탓에 칼날도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고통을 참으면서 한걸음 길게 전진하면서 칼로 명치를 찌르자 놈은 그대로 힘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놈은 정말 억울할 것이다. 분명히 먼저 쳤고 자기가 이긴 건데 건틀렛 따위에 승패가 역전당하다니 말이다. 반대로 나는 김추자씨의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체인 건틀렛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미 아까 환도종자의 손목 동맥 긋기에 피를 뿜으며 영화 <아저씨>의 사엾은 엑스트라처럼 죽어갔을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뒤따라온 대원들이 총검으로 놈의 눈알을 찍고는 휘휘 저어보기 시작했다. 확인사살이다. 얼굴에서 눈이 오직 유일하게 뇌와 직접 연결된 곳이고, 눈알을 찌르면 뇌까지 들어가기 때문이다.
복도 건너편에서도 소란스러운 소리가 아까부터 들리고 있었다. 김석원이 이끄는 팀도 교전중이었던 모양이다.
"좋아, 이대로 사무실까지 직진..."
교실의 나무문이 대원들을 뒤덮으며 날아들고 있다. 정말 오늘의 원곡고는 서프라이즈하기 짝이 없군! 대원들 셋이 나무문에 깔리면서 넘어졌고, 그렇게 대원들을 깔아뭉갠 교실 나무문 위에는 세놈의 환도종자가 올라가 있었다. 세놈 중 가운데에 있던 놈이 환도를 쳐들면서 기세 좋게 점프했는데, 하필 대원이 엉겁결에 내민 총검에 알아서 찔려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그 대원이 환도종자 체중 탓에 총을 놓쳐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걸 본 다른 놈이 환도를 크게 들어 머리통을 내려치려고 하자, 그 대원이 급히 한다치를 발도하여 검을 들어올려 녀석의 내려베기를 흘려내면서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일본에서 우케나가시라고 부르는 기술이다.
그리고 그대로 검을 돌리면서 환도종자의 머리통을 노렸으나, 중단에서 바로 검을 멈춘 환도종자가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우리 대원의 등뒤로 관통하고 삐져나온 환도에는 피가 묻어 있었으며, 우리 대원이 혼신의 힘을 다해 내려친 검은 허망하게도 놈이 깊게 파고든 탓에 칼날이 아닌 팔뚝이 환도종자의 머리통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 환도종자의 움직임과 상황판단은 놀라울 정도로 기민했다. 너무 깊게 찔러서 뽑기 힘든 자신의 환도를 과감히 포기하고 쓰러지는 대원의 시체가 아직 쥐고 있던 한다치를 빼앗아 다른 대원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전투는 페어플레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환도종자는 곧 옆에 있던 또다른 대원의 개머리판에 턱을 정통으로 맞아버렸고, 곧 눈이 풀리면서 주저앉았다.
나머지 한놈은 곧바로 나를 공격해왔으며, 정확히 내 머리통을 노리고 동귀어진의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내가 크게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완벽하게 같은 타이밍에 머리를 치자, 내 롱소드는 95cm의 날길이를 가졌고 그의 환도는 69cm의 날길이를 가졌으므로 환도는 빗나가고 롱소드는 이마에서부터 코를 거쳐 입술까지 절단해버렸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달려드는 그놈은 그러나 목 부근에서 칼을 멈추고 내밀고 있던 나의 롱소드 끝에 알아서 찔렸다. 그러나 깊게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쉽게 죽지 않았는데, 내가 칼을 거꾸로 잡아서 퍼멀로 대갈통을 후려치자 그제서야 똥오줌으로 추정되는 갈색 액체를 하얀색 개량한복 바지에 물들이면서 주저앉았다.
자기를 깔아뭉갠 나무문을 올려제치고 빠져나온 대원이 급하게 조준도 안하고 지향사격을 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대원 앞에는 창이 땅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찔려죽기 직전에 지향사격으로 창수를 쏘아죽인 것이다.
"출장본영은 코앞이다! 가는 길의 교실을 철저 수색할 것. 수색 대원들은 한다치로 무장한다."
선봉에 선 대원들은 스나이더-엔필드 소총을 뒤로 둘러메고 한다치를 뽑고는 교실을 철저 수색하기 시작했다. 건너편에서는 녹두대 종자가 김석원의 몸통박치기에 날아가더니, 김석원이 창문을 열어버리고 녹두대 종자의 다리를 끌어안고서는 확 들어올려서 창 밖으로 추락시키는 광경이 보였다.
"로쿠로! 흑호방주나 다른 놈들을 봤습니까?"
"아닙니다. 사무실에도 없다니.. 놈들 벌써 도망간 모양이군요."
흑호방주와 진보단체 수장들이 인터뷰를 하던 전습대 출장본영 사무실에는 급히 도망친 듯 방송용 조명기구의 불빛조차 꺼지지 않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구둣발 아래에는 깨진 유리창 조각들이 여전히 밟히고 있었다. 포격을 받은 흔적이다.
"죽을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아무것도 없다니!"
구둣발을 땅에 구르며 유리창 파편을 밟아 부쉈다. 이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대원들도 허탈하고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아시따오 노봇떼 소라오 미아게따라~"
"뭐여..."
이 노래는 내 전화벨 소리이다. 핸드폰의 화면을 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김책 동지의 핸드폰이었기 때문이다.
"김책 동지! 무사한거요?"
"그렇습니다. 지금 요시노부 공과 함께 안전 가옥에 있습니다. 흑호방주는 잡았습니까?"
"아니! 놈은 현장에 없소. 이미 도망간 것 같으니... 이게 도대체 왠 헛고생인지!"
애꿏은 교실 나무문만 발길질의 희생양이 되었다.
"아닙니다! 제가 현장을 감시하고 있습니다만 진입하시기 훨씬 전부터 아무도 빠져나온 사람은 없습니다."
"현장 감시라니, UAV를 조종하고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간부들 전원 주변 감시중입니다. 흑호방주는 분명히 안에 있습니다! 진입하셨을 때 놈들이 방송 현장에서 급히 빠져나갔지만 밖으로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고맙소, 김책 동지!"
대원들과 김석원을 보면서 상황을 설명하자, 다들 어느 정도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 건물 안에 있다는 소리 아닌가. 아직 희망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호루라기 소리는...!"
덴슈로쿠로 김석원의 의문의 이유는 뻔했다. 교실들을 완전 수색하지도 않고 후방 안정 없이 흑호방주만 잡겠다고 무작정 돌진해온 댓가가 지금 치뤄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곧 1층과 위층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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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 3부 신세기 괴신사집단 전습대 85화
언젠가 씁니다.
* 샷건 쉘을 이용한 스나이더 엔필드 탄약?
이 영상에서 3분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샷건 쉘을 개조해서 .577탄두를 끼워 발사하죠.




덧글
그래도 김추자가 준 선물이 주인공을 몇번 살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