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습대 봉행 카마지로, 지금 막 돌아왔다!!"
문을 열고 복도를 성큼성큼 걷는 가운데 나를 본 1소대원 몇명이 경례를 했다. 답례를 하면서 앞을 보니 먼 발치의 교실에 외부인들이 와글거리고 있다.
"저자들은 뭔가?"
"기자들입니다. 총재께서 기자 회견을 열고 계십니다."
그 내용은 볼 것도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전투를 중단하고 정부의 개입을 요청하는 성명의 발표일 것이다. 다시 한번 씁쓸함을 느꼈다. 1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싸움을 중지하고 항복을 천명하는 운명이라도 지워진 것인가. 하지만 원곡고에서 그랬던 것처럼 분노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탄약도 떨어졌고 싸울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싸웠다. 그리고 이제 대규모 동란이 벌어진 지 하룻밤이 지났다. 좋든 싫든 정부에서 군대를 이용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다. 시계는 오전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봉행님!"
"김책 동지!"
문을 열고 커다란 박스들을 대차에 싣고 들어온 김책 동지는 나를 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나이 탓인지 김책 동지의 눈 밑에는 다크써클이 생겨 있었다. 그의 노고에 대한 죄책감 탓에 나도 모르게 김책 동지의 손을 꽉 잡지 않을 수 없었다.
"김책 동지가 너무 수고가 많소. 참모본부에서 고생만 시키는 것이 아닌지..."
"아닙니다. 전투전위에서 직접 싸우는 사람만 하겠습니까."
"저건 여분의 UAV요?"
"그렇습니다. 어제 밤부터 아는 친구들을 통해 급히 부품을 수배해서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그렇게 재촉했건만 역시 밤중에는 부품집이 문을 안 열어서..."
멋적게 웃는 김책 동지를 보니 미안함이 더욱 커졌다. UAV는 어쩌면 이제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 싸워왔지만 결국 전쟁이란 싸움 실력을 떠나 국내외 정세와 환경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싸움을 거듭하여 칠만의 시체로 장성을 싾는다 한들 그것이 곧 승리가 되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싸운다 한들 지방 자경단끼리의 유혈 분쟁일 뿐, 이 사회를 통제하는 것은 대한민국 행정부와 그가 보유한 60만 대군이다. 그것을 무시하면 결국 완전한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 뿐. 요시노부의 말 그대로이다. 결국 늦던 빠르던 우리의 종착점은 정부의 개입을 요청하고 전투를 중지하는 것 외에는 없는 것이다.
회견장을 보니 도쿠가와 요시노부와 여원홍이 나오고 있었다. 기자들의 사진기 셔터 세례를 뒤로 하고 피곤한 듯이 나오던 전습대 제복 차림의 요시노부와 거기에 참모식서(참모들이 어깨와 가슴에 다는 끈장식)을 달고 있던 여원홍의 눈이 동시에 나와 마주쳤다. 여원홍은 곧 운동장을 향해 시선을 돌렸지만 요시노부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본 채로 걸어왔다.
"봉행 카마지로, 교전을 마치고 지금 막 돌아왔습니다."
"수고가 많았다. 그대는 지금의 상황을 알리라 본다."
허리를 숙인 채로 나는 잠시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동안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갔고, 마치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몸의 균형이 무너지려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가벼운 어지러움이 함께했다. 내가 고개를 들지 않는 것을 본 요시노부가 다시 한마디 했다.
"설마하니 아직까지 미나토가와에 가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만감이 스쳐지나간 이후 나의 마음은 포기의 평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카마지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습니다.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그래.."
만감이 교차하는 것은 요시노부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요시노부는 시선을 돌려 창 밖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고 조용히, 천천히 말을 꺼냈다.
"전습대는 해체한다. 늦던 빠르던..."
당연히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기에 달리 놀라지는 않았다. 정부는 이 시점에서 누구의 편도 들어서는 안되며 일괄적으로 체포하여 내란에 대해 엄중히 죄를 물어야 한다. 그것이 정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목숨까지 내놓고 우리와 함께 해준 대원들에게는 가능한 한 그런 멍에는 지우고 싶지 않다. 자료들을 파기해버린 것은 그런 이유가 있다.
교무실에서 대원 두명이 문서파쇄기의 종이조각들이 담긴 푸대자루를 끌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이미 원곡고 출장본영을 포기할 때 파기할 만큼은 다 파기했겠지만, 정말 앞으로의 운영이나 자금 관련, 명단 등 정말 중요한 문서들은 따로 챙겨 왔을 것이다. 전자 자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다 파기하는 것이다. 저 파쇄된 종이조각들은 이제 곧 소각될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헌병대가 들이닥쳤을 때 대원들은 단 한명도 잡혀서는 안된다. 책임을 지는 것은 오직 간부, 그중에서도 실질적인 총대장이자 운영의 전권을 소유한 바로 이 나다. 그전에 이미 정부에 대한 귀순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먼저 전투 중지 의사를 표명하고 다음에는 해체 및 무장 해제를 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런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생각한 것보다는 반응이 없군."
요시노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잠시 떨구었다가 체념하는 투로 말했다.
"천시와 지리가 맞지 않으니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대원들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당연히 밟아나가야 할 수순입니다. 그러나 단 하나 한이 남는 것이 있다면... 아니 이제는 그것도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요시노부는 그런 나의 반응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전습대의 전 자산 중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건 모조리 인출하는 중이다. 가네야마군(김추자)이 대원들의 주소지를 돌며 가족들에게 퇴직금을 전달하고 있어. 많지는 않으나 나도 좀 보탰으니, 1년 정도는 아무 일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을 것이다."
"제 몫이 있다면 대원들에게나 나누어 주십시오."
요시노부는 못 들은 척 하고 있었다. 여원홍이 뭔가 놀라하며 창문 쪽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밖을 보니 거기엔 현금수송업체의 밴 한대가 와 있었다.
"벌써 퇴직금 지급이 끝났나?"
의아해하며 나가 보니 따라오려는 무장경찰을 제지하고 혼자서 나를 향해 오는 것은 제갈 진욱 서장이었다. 그는 사복을 입고 있었다. 내 앞에 서더니 USB를 건네주고는 서류철 한뭉치를 바닥에 떨구고는 발끝으로 나에게 밀었다.
"받아. 자네들에 대해서 조사했던 내사 자료들이야."
이게 뭐람. 전습대 멸망을 위해서라면 이슬람 성지 메카에서 개신교 통성기도도 마다않을 제갈 진욱께서 이런 걸?
"의외로군요. 이런 거 주셔도 되는겁니까?"
"난 전습대만 망하면 그만이지 니들 개개인이 어찌 되건 알 바 아니야. 아무튼 내 딸이 대원들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은 안나. 알겠지?"
그리고는 부리나케 현금수송 밴에 타고는 사라져버렸다. 하늘을 날으는 방송국 UAV들 탓에 엉뚱한 차에 가짜 옷으로 나타난 모양이다. 나는 천천히 서류 뭉치를 오른손에 들고 USB를 왼손에 들고 대원들이 피운 불 앞으로 가서는 USB를 던져버렸다. USB가 녹아서 기판을 드러내고 그 기판조차 불에 타 하얗게 변해가며 마침내 산산히 부서지는 걸 보고서야 서류를 들자, 대원들이 안절부절못해하며 나에게서 서류를 뺏어가고서는 묶인 끈을 풀어서 몇장 단위로 불에 넣기 시작했다. 새로운 종이가 투입되자 오전의 밝음에도 불구하고 불길은 눈에 띌 만큼 커져갔다. 이것으로 대원들의 신상을 추적할 자료들은, 최소한 내가 아는 한도에서는 이제 없다.
불 앞에서 만감이 교차할 즈음 뒤에서 로쿠로 김석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부터 뭔가를 찾아다니는 듯 하더니 2소대장 야스스케(김안조)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승조는 어디에 있느냐? 본분을 망각하고 잠이나 자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야스스케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어물어물 말하기 시작했다. 김석원은 야스스케의 반응을 보고 반쯤 상황을 눈치챈 듯 했다. 야스스케의 대답을 들은 로쿠로는 그러나, 눈물을 흘리지도, 침통해하지도 않았으며 얼굴은 오히려 평정심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집안의 장남이 죽은 것이다. 나로써도 더 이상 로쿠로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봉행으로써의 죄책감이 나의 가슴을 치고 있었다.
"제 자리에서 의무를 다하다 죽음은 본분에 맞는 것이다. 오히려 영광으로 볼 일이지."
덴슈로쿠로 김석원은 3척 2촌의 노다치를 고쳐잡고 상의의 칼라를 정돈하더니 위엄 있는 얼굴 그대로 뒤돌아서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적들의 기습이 염려되니 경계를 철저히 하라. 나는 발등의 통증이 있으니 약을 좀 먹어야겠다."
누구도 그를 잡을 수 없었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옯기며 야스스케에게 다가갔다.
"미안하다. 나의 책임이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언제든지 큰 일이 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말씀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야스스케는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도로 학교로 들어가 참모본부로 쓰이는 교실로 향하니 마침 선전역 허무도가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방송 좀 보십쇼."
허무도가 보여주는 화면 속에서는 총리의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아니 원칙대로 이번 안산 무정부사태는 예외없는 강경 처벌과 더불어 안산시 치안의 회복을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진주시키며, 이후 단계적으로 강화된 경찰력에 치안을 이양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었다. 또한 무분별한 무기 소지가 이러한 불법 자경단의 형성과 폭력 사태를 불러왔다며 앞으로는 정부 차원에서 무기 소지를 철저하게 통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언제나 정부는 국민을 통제하기를 바란다. 스스로 무장한 국민은 사상과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내전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도 벌어지는 수많은 내전이 그러하고 오랜 역사속에서 수없이 파멸한 국가들은 이것을 막지 못하여 사라졌다. 비록 좀비사태라는 비정상적인 사건 속에서 냉병기만큼은 무기 소지가 자유화되고 또한 자기방어에 대한 폭넓은 인정이 국민 여론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오랫동안 철저 통제해온 대한민국에게 있어 이것은 참을 수 없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오늘의 사건은 바로 그 비정상적인 세상을 되돌려 놓는 날이다. 최소한 대한민국 행정부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결국 때가 왔군."
요시노부가 중얼거리는 의미는 명확하다. 곧 학교 전역에 전습대원들의 연병장 집결 명령이 방송되었다. 대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간부 중 한명만이 눈에 띄지 않았다.
"로쿠로는 어디 갔나?"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요시노부의 질문을 뒤로 하고 지휘소로 쓰이는 교실을 나섰다. 계단을 올라 교실들을 하나하나 검열하였으나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4층까지 올라갔지만 교실들은 하나같이 조용했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소리와 내 구두 소리가 소음의 전부였다. 신발장이 교실 벽에 매립되었고 나무로 만든 샷시, 이제는 구할 길도 마땅치 않은 옛날 방식의 인테리어들 사이를 지나 교실을 하나 하나 보던 중, 창문이 기이하게 어두워 보이는 교실이 하나 눈에 띄었다.
그곳으로 간 나는 그 어두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모든 창문에 커텐이 쳐진 그곳 구석의 의자에 앉아서 근엄하게 양손을 칼자루에 올리고 있는 자는 비록 커텐 뒤로 비치는 햇빛에 의해 실루엣만 보였지만 김석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실루엣은 검이 가볍게 떨리고 있다는 것도 함께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차마 말을 걸거나 할 수 없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그러나 그저 칼자루를 악다쥐고 참는 것 이외에 그는 우는 방법을 모른다. 눈물과 목소리로 통곡하고 슬퍼하는 방법을 그는 이미 잊어버렸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근엄한 자로써 살아왔으므로 평범하게 슬퍼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가엾은 군 출신의 노인네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에조차 눈물을 흘릴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이다. 그저 검의 떨림만이 그의 슬픔을 말하고 있다.
누군가 내 심장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 듯한 괴로움이 전신에 퍼져나갔다. 처음 전습대를 만든 건 원래는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무술단체라도 만들어서 돈이나 벌어보겠다는 속물 근성에서 시작된 것이었고 대원과 간부들의 사연과 괴로움이란 건 그저 그러려니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별 신경도 쓰지 않았건만 왜 이제 다 끝날 때가 와서 나와 같은 길을 함께하다 스러진 자들과 남겨진 슬픔과 그들에 대한 미안함이 내 가슴을 치고 심장을 조인단 말인가.
가슴이 떨려 들이마신 숨이 나올 때에는 감정의 복받침과 함께 울음을 참듯이 텁텁한 느낌과 함께였다. 그런 날숨이 열두번 반복되고서야 겨우 평정심으로 진정될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왼손으로 꽉 잡고 있던 롱소드 자루를 내동댕이치듯이 밀어버리는 것 뿐이었다. 결국 나는 김석원을 부르지 못하고 어금니를 악물면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로쿠로는..."
요시노부는 내 표정을 보곤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단상에 선 요시노부 앞에 서자 운동장에 도열한 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소대별로 도열한 그 대원들은 1소대를 제외하고는 정수를 채운 소대는 이미 없었다. 특히 분진포탄을 맞은 4소대와 5소대의 손해가 컸던지, 텅 빈 모양새가 유독 두드러진다. 그리고 모두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단추가 떨어지고 옷깃이 흐트러진 사람들도 많았다.
"들었으리라 안다. 지금 한국 정부는 오늘 이 소요사태에 대해 무차별 처벌을 천명하였다. 이 모든 비극은 저들에 의해 생긴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경찰과 협력하여 치안 유지의 대의를 위해 싸운 우리를 정부는 정권 강화의 산제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나를 비롯한 간부들과 대원 장병들 모두 경찰에 체포되고 무장은 압수되고 제복은 벗겨져, 기여와 희생의 공로는 묻히고 소요사태의 범죄자로써의 불명예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자들이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우리를 친일 제국주의 반민족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우리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강대한 이득은 진실을 편하게 사살하려 하고 있다. 그 희생양을 우리로 만들고자 한다.
나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절대 그러한 것을 좌시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목숨을 내놓은 싸움과 경찰 활동, 그리고 오늘의 결전에 이르기까지 목숨을 다해 싸워준 대원들이 그런 결말을 맞도록 놔둘 수 있는 내가 아니다. 그리하여 나는 심장의 고통에 가슴을 치며 대원들을 구하기 위하여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습대는 모든 임무의 수행을 완료하였다. 그리고 전습대는 오늘 부로 해체한다."
대원들은 이미 소대장들을 통해 다 들었기 때문인지 참담한 표정 속에서도 격한 반응을 보이는 자는 없었다. 괴로움과 자포자기가 대원들의 얼굴에 나타나 있다.
"비록 저들은 총재인 내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친일 반민족을 운운하나, 그대들이 일본인인 나를 좋게 보지 않음에도 총재로 인정해 준 것은 일본 제국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200년간 조선과의 대등한 우호를 유지하고 삼국화평을 지상과제로 삼아 온 도쿠가와의 이상을 알아 주었기 때문임을 잘 안다. 또한 여기 여원홍 총참모는 중화민국의 대령 직급이었음에도 나를 인정해 준 것 또한 그와 같음을 잘 알고 있다.
이것 이외에 달리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는 무능한 총재를 용서하라. 또한 지금까지 믿고 따르며 조력을 다해 온 대원 여러분,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그 말과 함께 90도로 허리를 숙인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시선을 집중한 대원들은 곧 괴로움과 슬픔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요시노부와 더불어 나와 여원홍도 허리를 45도 정도 숙이고 모자를 벗어 대원들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요시노부가 여전히 허리를 숙인 가운데 나는 허리를 펴고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전습대는 완전 승리했다! 그러므로 전 대원은 한다치(半太刀)를 왼쪽 허리에 차고 사물(私物)을 소지하고 최종 임무에 임하라!"
대원들이 일제히 차렷 자세를 취했다. 다들 표정은 이제 평정심에 더 가까워져 있었다.
"전 대원은 가족을 지키고 정의의 친구로써 살라. 이상!"
4소대의 어느 대원이 케피 모자를 벗어 손에 들었다. 그리고 하나 둘 모자를 벗는 자가 늘어났다. 모자를 다들 벗었을 즈음, 처음 모자를 벗었던 4소대의 어느 대원의 절규가 이어졌다.
"으아아아!!!!"
그와 동시에 일제히 하늘로 모자가 던져졌다. 분노와 회한, 슬픔과 괴로움을 토해내는 듯한 절규가 운동장을 넘어 하늘의 천장 끝까지 도달하는 듯 했다. 그들의 삶, 유대감, 인생과 탄식을 뒤로 하고 나는 등을 돌려 조회대의 계단을 내려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만을 올려다 보고 있자니 푸른 하늘에 점점이 흩어진 구름 속에 빠지는 것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고개를 내리자 학교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젠 앞으로 어떻게 되나? 다양한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나는 결국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는 남자라는 자조와 함께 쓴웃음을 지었으므로, 나는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간 고생이 많았습니다."
"뭘, 이제부터 고생인거지..."
요시노부를 비롯해 돌아온 간부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 아무개는 그동안 안보이나 했더니 m1902를 발끝에 두고는 무릎을 끌어안고 구석에 쪼그려앉아 있었다. 김추자씨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떨구고 있다. 여원홍은 홀가분해하는 듯 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급하게 들려온 것은 선전역 허무도의 목소리였다.
"봉행님, 그리고 다들 이것 좀 보십시오!"
다급한 목소리로 노트북을 돌려 보이는 허무도에게 핀잔을 날렸다.
"허무도, 이제 전습대 임무는 종결되었으니 그런 거 안 봐도 돼."
그러면서 노트북 화면에 눈길을 주었을 즈음 나는 노트북 화면을 붙들고 얼굴을 최대한 가깝게 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안에는 파괴된 전습대 응접실을 배경으로 앉아서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하는 흑호방주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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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83화 인생 최후의 불길
언젠가 씁니다.
문을 열고 복도를 성큼성큼 걷는 가운데 나를 본 1소대원 몇명이 경례를 했다. 답례를 하면서 앞을 보니 먼 발치의 교실에 외부인들이 와글거리고 있다.
"저자들은 뭔가?"
"기자들입니다. 총재께서 기자 회견을 열고 계십니다."
그 내용은 볼 것도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전투를 중단하고 정부의 개입을 요청하는 성명의 발표일 것이다. 다시 한번 씁쓸함을 느꼈다. 1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싸움을 중지하고 항복을 천명하는 운명이라도 지워진 것인가. 하지만 원곡고에서 그랬던 것처럼 분노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탄약도 떨어졌고 싸울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싸웠다. 그리고 이제 대규모 동란이 벌어진 지 하룻밤이 지났다. 좋든 싫든 정부에서 군대를 이용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다. 시계는 오전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봉행님!"
"김책 동지!"
문을 열고 커다란 박스들을 대차에 싣고 들어온 김책 동지는 나를 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나이 탓인지 김책 동지의 눈 밑에는 다크써클이 생겨 있었다. 그의 노고에 대한 죄책감 탓에 나도 모르게 김책 동지의 손을 꽉 잡지 않을 수 없었다.
"김책 동지가 너무 수고가 많소. 참모본부에서 고생만 시키는 것이 아닌지..."
"아닙니다. 전투전위에서 직접 싸우는 사람만 하겠습니까."
"저건 여분의 UAV요?"
"그렇습니다. 어제 밤부터 아는 친구들을 통해 급히 부품을 수배해서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그렇게 재촉했건만 역시 밤중에는 부품집이 문을 안 열어서..."
멋적게 웃는 김책 동지를 보니 미안함이 더욱 커졌다. UAV는 어쩌면 이제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 싸워왔지만 결국 전쟁이란 싸움 실력을 떠나 국내외 정세와 환경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싸움을 거듭하여 칠만의 시체로 장성을 싾는다 한들 그것이 곧 승리가 되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싸운다 한들 지방 자경단끼리의 유혈 분쟁일 뿐, 이 사회를 통제하는 것은 대한민국 행정부와 그가 보유한 60만 대군이다. 그것을 무시하면 결국 완전한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 뿐. 요시노부의 말 그대로이다. 결국 늦던 빠르던 우리의 종착점은 정부의 개입을 요청하고 전투를 중지하는 것 외에는 없는 것이다.
회견장을 보니 도쿠가와 요시노부와 여원홍이 나오고 있었다. 기자들의 사진기 셔터 세례를 뒤로 하고 피곤한 듯이 나오던 전습대 제복 차림의 요시노부와 거기에 참모식서(참모들이 어깨와 가슴에 다는 끈장식)을 달고 있던 여원홍의 눈이 동시에 나와 마주쳤다. 여원홍은 곧 운동장을 향해 시선을 돌렸지만 요시노부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본 채로 걸어왔다.
"봉행 카마지로, 교전을 마치고 지금 막 돌아왔습니다."
"수고가 많았다. 그대는 지금의 상황을 알리라 본다."
허리를 숙인 채로 나는 잠시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동안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갔고, 마치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몸의 균형이 무너지려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가벼운 어지러움이 함께했다. 내가 고개를 들지 않는 것을 본 요시노부가 다시 한마디 했다.
"설마하니 아직까지 미나토가와에 가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만감이 스쳐지나간 이후 나의 마음은 포기의 평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카마지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습니다.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그래.."
만감이 교차하는 것은 요시노부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요시노부는 시선을 돌려 창 밖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고 조용히, 천천히 말을 꺼냈다.
"전습대는 해체한다. 늦던 빠르던..."
당연히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기에 달리 놀라지는 않았다. 정부는 이 시점에서 누구의 편도 들어서는 안되며 일괄적으로 체포하여 내란에 대해 엄중히 죄를 물어야 한다. 그것이 정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목숨까지 내놓고 우리와 함께 해준 대원들에게는 가능한 한 그런 멍에는 지우고 싶지 않다. 자료들을 파기해버린 것은 그런 이유가 있다.
교무실에서 대원 두명이 문서파쇄기의 종이조각들이 담긴 푸대자루를 끌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이미 원곡고 출장본영을 포기할 때 파기할 만큼은 다 파기했겠지만, 정말 앞으로의 운영이나 자금 관련, 명단 등 정말 중요한 문서들은 따로 챙겨 왔을 것이다. 전자 자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다 파기하는 것이다. 저 파쇄된 종이조각들은 이제 곧 소각될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헌병대가 들이닥쳤을 때 대원들은 단 한명도 잡혀서는 안된다. 책임을 지는 것은 오직 간부, 그중에서도 실질적인 총대장이자 운영의 전권을 소유한 바로 이 나다. 그전에 이미 정부에 대한 귀순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먼저 전투 중지 의사를 표명하고 다음에는 해체 및 무장 해제를 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런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생각한 것보다는 반응이 없군."
요시노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잠시 떨구었다가 체념하는 투로 말했다.
"천시와 지리가 맞지 않으니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대원들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당연히 밟아나가야 할 수순입니다. 그러나 단 하나 한이 남는 것이 있다면... 아니 이제는 그것도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요시노부는 그런 나의 반응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전습대의 전 자산 중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건 모조리 인출하는 중이다. 가네야마군(김추자)이 대원들의 주소지를 돌며 가족들에게 퇴직금을 전달하고 있어. 많지는 않으나 나도 좀 보탰으니, 1년 정도는 아무 일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을 것이다."
"제 몫이 있다면 대원들에게나 나누어 주십시오."
요시노부는 못 들은 척 하고 있었다. 여원홍이 뭔가 놀라하며 창문 쪽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밖을 보니 거기엔 현금수송업체의 밴 한대가 와 있었다.
"벌써 퇴직금 지급이 끝났나?"
의아해하며 나가 보니 따라오려는 무장경찰을 제지하고 혼자서 나를 향해 오는 것은 제갈 진욱 서장이었다. 그는 사복을 입고 있었다. 내 앞에 서더니 USB를 건네주고는 서류철 한뭉치를 바닥에 떨구고는 발끝으로 나에게 밀었다.
"받아. 자네들에 대해서 조사했던 내사 자료들이야."
이게 뭐람. 전습대 멸망을 위해서라면 이슬람 성지 메카에서 개신교 통성기도도 마다않을 제갈 진욱께서 이런 걸?
"의외로군요. 이런 거 주셔도 되는겁니까?"
"난 전습대만 망하면 그만이지 니들 개개인이 어찌 되건 알 바 아니야. 아무튼 내 딸이 대원들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은 안나. 알겠지?"
그리고는 부리나케 현금수송 밴에 타고는 사라져버렸다. 하늘을 날으는 방송국 UAV들 탓에 엉뚱한 차에 가짜 옷으로 나타난 모양이다. 나는 천천히 서류 뭉치를 오른손에 들고 USB를 왼손에 들고 대원들이 피운 불 앞으로 가서는 USB를 던져버렸다. USB가 녹아서 기판을 드러내고 그 기판조차 불에 타 하얗게 변해가며 마침내 산산히 부서지는 걸 보고서야 서류를 들자, 대원들이 안절부절못해하며 나에게서 서류를 뺏어가고서는 묶인 끈을 풀어서 몇장 단위로 불에 넣기 시작했다. 새로운 종이가 투입되자 오전의 밝음에도 불구하고 불길은 눈에 띌 만큼 커져갔다. 이것으로 대원들의 신상을 추적할 자료들은, 최소한 내가 아는 한도에서는 이제 없다.
불 앞에서 만감이 교차할 즈음 뒤에서 로쿠로 김석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부터 뭔가를 찾아다니는 듯 하더니 2소대장 야스스케(김안조)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승조는 어디에 있느냐? 본분을 망각하고 잠이나 자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야스스케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어물어물 말하기 시작했다. 김석원은 야스스케의 반응을 보고 반쯤 상황을 눈치챈 듯 했다. 야스스케의 대답을 들은 로쿠로는 그러나, 눈물을 흘리지도, 침통해하지도 않았으며 얼굴은 오히려 평정심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집안의 장남이 죽은 것이다. 나로써도 더 이상 로쿠로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봉행으로써의 죄책감이 나의 가슴을 치고 있었다.
"제 자리에서 의무를 다하다 죽음은 본분에 맞는 것이다. 오히려 영광으로 볼 일이지."
덴슈로쿠로 김석원은 3척 2촌의 노다치를 고쳐잡고 상의의 칼라를 정돈하더니 위엄 있는 얼굴 그대로 뒤돌아서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적들의 기습이 염려되니 경계를 철저히 하라. 나는 발등의 통증이 있으니 약을 좀 먹어야겠다."
누구도 그를 잡을 수 없었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옯기며 야스스케에게 다가갔다.
"미안하다. 나의 책임이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언제든지 큰 일이 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말씀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야스스케는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도로 학교로 들어가 참모본부로 쓰이는 교실로 향하니 마침 선전역 허무도가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방송 좀 보십쇼."
허무도가 보여주는 화면 속에서는 총리의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아니 원칙대로 이번 안산 무정부사태는 예외없는 강경 처벌과 더불어 안산시 치안의 회복을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진주시키며, 이후 단계적으로 강화된 경찰력에 치안을 이양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었다. 또한 무분별한 무기 소지가 이러한 불법 자경단의 형성과 폭력 사태를 불러왔다며 앞으로는 정부 차원에서 무기 소지를 철저하게 통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언제나 정부는 국민을 통제하기를 바란다. 스스로 무장한 국민은 사상과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내전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도 벌어지는 수많은 내전이 그러하고 오랜 역사속에서 수없이 파멸한 국가들은 이것을 막지 못하여 사라졌다. 비록 좀비사태라는 비정상적인 사건 속에서 냉병기만큼은 무기 소지가 자유화되고 또한 자기방어에 대한 폭넓은 인정이 국민 여론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오랫동안 철저 통제해온 대한민국에게 있어 이것은 참을 수 없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오늘의 사건은 바로 그 비정상적인 세상을 되돌려 놓는 날이다. 최소한 대한민국 행정부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결국 때가 왔군."
요시노부가 중얼거리는 의미는 명확하다. 곧 학교 전역에 전습대원들의 연병장 집결 명령이 방송되었다. 대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간부 중 한명만이 눈에 띄지 않았다.
"로쿠로는 어디 갔나?"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요시노부의 질문을 뒤로 하고 지휘소로 쓰이는 교실을 나섰다. 계단을 올라 교실들을 하나하나 검열하였으나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4층까지 올라갔지만 교실들은 하나같이 조용했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소리와 내 구두 소리가 소음의 전부였다. 신발장이 교실 벽에 매립되었고 나무로 만든 샷시, 이제는 구할 길도 마땅치 않은 옛날 방식의 인테리어들 사이를 지나 교실을 하나 하나 보던 중, 창문이 기이하게 어두워 보이는 교실이 하나 눈에 띄었다.
그곳으로 간 나는 그 어두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모든 창문에 커텐이 쳐진 그곳 구석의 의자에 앉아서 근엄하게 양손을 칼자루에 올리고 있는 자는 비록 커텐 뒤로 비치는 햇빛에 의해 실루엣만 보였지만 김석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실루엣은 검이 가볍게 떨리고 있다는 것도 함께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차마 말을 걸거나 할 수 없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그러나 그저 칼자루를 악다쥐고 참는 것 이외에 그는 우는 방법을 모른다. 눈물과 목소리로 통곡하고 슬퍼하는 방법을 그는 이미 잊어버렸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근엄한 자로써 살아왔으므로 평범하게 슬퍼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가엾은 군 출신의 노인네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에조차 눈물을 흘릴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이다. 그저 검의 떨림만이 그의 슬픔을 말하고 있다.
누군가 내 심장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 듯한 괴로움이 전신에 퍼져나갔다. 처음 전습대를 만든 건 원래는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무술단체라도 만들어서 돈이나 벌어보겠다는 속물 근성에서 시작된 것이었고 대원과 간부들의 사연과 괴로움이란 건 그저 그러려니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별 신경도 쓰지 않았건만 왜 이제 다 끝날 때가 와서 나와 같은 길을 함께하다 스러진 자들과 남겨진 슬픔과 그들에 대한 미안함이 내 가슴을 치고 심장을 조인단 말인가.
가슴이 떨려 들이마신 숨이 나올 때에는 감정의 복받침과 함께 울음을 참듯이 텁텁한 느낌과 함께였다. 그런 날숨이 열두번 반복되고서야 겨우 평정심으로 진정될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왼손으로 꽉 잡고 있던 롱소드 자루를 내동댕이치듯이 밀어버리는 것 뿐이었다. 결국 나는 김석원을 부르지 못하고 어금니를 악물면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로쿠로는..."
요시노부는 내 표정을 보곤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단상에 선 요시노부 앞에 서자 운동장에 도열한 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소대별로 도열한 그 대원들은 1소대를 제외하고는 정수를 채운 소대는 이미 없었다. 특히 분진포탄을 맞은 4소대와 5소대의 손해가 컸던지, 텅 빈 모양새가 유독 두드러진다. 그리고 모두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단추가 떨어지고 옷깃이 흐트러진 사람들도 많았다.
"들었으리라 안다. 지금 한국 정부는 오늘 이 소요사태에 대해 무차별 처벌을 천명하였다. 이 모든 비극은 저들에 의해 생긴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경찰과 협력하여 치안 유지의 대의를 위해 싸운 우리를 정부는 정권 강화의 산제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나를 비롯한 간부들과 대원 장병들 모두 경찰에 체포되고 무장은 압수되고 제복은 벗겨져, 기여와 희생의 공로는 묻히고 소요사태의 범죄자로써의 불명예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자들이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우리를 친일 제국주의 반민족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우리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강대한 이득은 진실을 편하게 사살하려 하고 있다. 그 희생양을 우리로 만들고자 한다.
나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절대 그러한 것을 좌시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목숨을 내놓은 싸움과 경찰 활동, 그리고 오늘의 결전에 이르기까지 목숨을 다해 싸워준 대원들이 그런 결말을 맞도록 놔둘 수 있는 내가 아니다. 그리하여 나는 심장의 고통에 가슴을 치며 대원들을 구하기 위하여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습대는 모든 임무의 수행을 완료하였다. 그리고 전습대는 오늘 부로 해체한다."
대원들은 이미 소대장들을 통해 다 들었기 때문인지 참담한 표정 속에서도 격한 반응을 보이는 자는 없었다. 괴로움과 자포자기가 대원들의 얼굴에 나타나 있다.
"비록 저들은 총재인 내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친일 반민족을 운운하나, 그대들이 일본인인 나를 좋게 보지 않음에도 총재로 인정해 준 것은 일본 제국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200년간 조선과의 대등한 우호를 유지하고 삼국화평을 지상과제로 삼아 온 도쿠가와의 이상을 알아 주었기 때문임을 잘 안다. 또한 여기 여원홍 총참모는 중화민국의 대령 직급이었음에도 나를 인정해 준 것 또한 그와 같음을 잘 알고 있다.
이것 이외에 달리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는 무능한 총재를 용서하라. 또한 지금까지 믿고 따르며 조력을 다해 온 대원 여러분,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그 말과 함께 90도로 허리를 숙인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시선을 집중한 대원들은 곧 괴로움과 슬픔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요시노부와 더불어 나와 여원홍도 허리를 45도 정도 숙이고 모자를 벗어 대원들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요시노부가 여전히 허리를 숙인 가운데 나는 허리를 펴고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전습대는 완전 승리했다! 그러므로 전 대원은 한다치(半太刀)를 왼쪽 허리에 차고 사물(私物)을 소지하고 최종 임무에 임하라!"
대원들이 일제히 차렷 자세를 취했다. 다들 표정은 이제 평정심에 더 가까워져 있었다.
"전 대원은 가족을 지키고 정의의 친구로써 살라. 이상!"
4소대의 어느 대원이 케피 모자를 벗어 손에 들었다. 그리고 하나 둘 모자를 벗는 자가 늘어났다. 모자를 다들 벗었을 즈음, 처음 모자를 벗었던 4소대의 어느 대원의 절규가 이어졌다.
"으아아아!!!!"
그와 동시에 일제히 하늘로 모자가 던져졌다. 분노와 회한, 슬픔과 괴로움을 토해내는 듯한 절규가 운동장을 넘어 하늘의 천장 끝까지 도달하는 듯 했다. 그들의 삶, 유대감, 인생과 탄식을 뒤로 하고 나는 등을 돌려 조회대의 계단을 내려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만을 올려다 보고 있자니 푸른 하늘에 점점이 흩어진 구름 속에 빠지는 것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고개를 내리자 학교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젠 앞으로 어떻게 되나? 다양한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나는 결국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는 남자라는 자조와 함께 쓴웃음을 지었으므로, 나는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간 고생이 많았습니다."
"뭘, 이제부터 고생인거지..."
요시노부를 비롯해 돌아온 간부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 아무개는 그동안 안보이나 했더니 m1902를 발끝에 두고는 무릎을 끌어안고 구석에 쪼그려앉아 있었다. 김추자씨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떨구고 있다. 여원홍은 홀가분해하는 듯 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급하게 들려온 것은 선전역 허무도의 목소리였다.
"봉행님, 그리고 다들 이것 좀 보십시오!"
다급한 목소리로 노트북을 돌려 보이는 허무도에게 핀잔을 날렸다.
"허무도, 이제 전습대 임무는 종결되었으니 그런 거 안 봐도 돼."
그러면서 노트북 화면에 눈길을 주었을 즈음 나는 노트북 화면을 붙들고 얼굴을 최대한 가깝게 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안에는 파괴된 전습대 응접실을 배경으로 앉아서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하는 흑호방주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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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83화 인생 최후의 불길
언젠가 씁니다.




덧글
슬슬 전습대가 끝나가는것 같네요
재미있게 봤는데 아쉽군요
뒷날의 이야기가 좀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건 1차 좀비사태와 2차 좀비사태의 막간 이야기)
P.S:흑호방주는 고자투어로 시작되는 108 고문 일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