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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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81화 제2차 안산 사변(12) 팬픽

"으으..."

귀도 멍멍하고 벽돌더미에 세번이나 맞아 뻑적지근한 허리 탓에 롱소드를 지팡이 삼아 겨우 일어섰지만, 허리는 쉽사리 펴지지 않았다. 척추기립근이 뻑뻑해서 도무지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아직도 반쯤 멍멍한 머리속을 털어내듯이 고개를 흔들며 앞을 보았으나 엄청난 분진 탓에 시야는 불투명했다. 이미 밝기는 거진 한낮 수준으로 시계는 6시가 채 되지 않았지만 더이상 새벽이나 아침이라고 하기도 뭐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앞에는 머리통에 뇌 대신 벽돌뭉치가 들어간 채로 쓰러진 칼빈 소총수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늘 그렇지만 팔다리가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꺾여 있는 것은 당연하다. 90먹은 노인네처럼 허리에 왼손을 대고 에구구 소리가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며 칼빈 소총의 상태를 보러 갔으나 칼빈 소총은 개머리판이 부러지고 기관부가 분해되어 있었다.

걸음을 옯겨 다른 소총수의 유해로 갔으나 그것도 마찬가지였다. 벽돌더미에 총탁과 총열이 함께 휘어져 있었다. 다른 놈들도 이러할 진데 분진포 바로 옆에서 수비 및 조작하던 놈들의 총기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쯤 포기하고 뒤를 돌아보자 우리 대원들의 상태도 멀쩡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장 내 뒤에 엎드려 있던 대원은 긴 유리조각이 왼팔에 박혀서 다른 대원이 나이프로 제복 상의의 팔 부분을 찢고는 상황을 보는 중이었다. 신경에 닿았는지 왼팔은 전혀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유리조각을 빼고는 압박붕대로 처치를 받기 시작했다.

또다른 대원은 케피 모자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고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린 자국이 얼굴에까지 엉겨붙어 있었다. 그리고 다른 대원이 휴지로 머리를 지혈하고 있었다. 피는 멈춘 듯 했고 다행히 중상까진 아닌 듯 했으나,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는 사람들을 질리게 하기 충분했다. 또다른 대원이 휴지를 물에 적셔서 얼굴의 핏자국을 닦아내자 다행히 얼굴에는 큰 외상은 없는 듯 했다.

"괜찮으십니까?"

나에게로 와서 안부를 묻는 자는 덴슈로쿠로 김석원이다. 약기운이 좀 빠졌는지 말하는 톤도 정상적이고 눈빛도 평소와 다름없다. 다리를 절지 않는 걸 보면 약기운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것 같기는 하지만..

"내가 로쿠로보다 삼십년을 덜살았는데 나이가 어째 역전된 것 같소."

모양새는 과연 그러했다. 똑같은 분진포탄들의 유폭 속에서 나는 허리를 굽히고는 펴지도 못하고 노인네처럼 롱소드를 지팡이 삼아 느리게 움직이는데, 로쿠로는 몸도 곧게 펴고 말투나 눈빛 모두 젋은이와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로쿠로는 내 농담에 눈빛으로 화답하면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다른 소대의 안위가 걱정되는군요. 총참모는 뭐라 합니까?"

그제서야 멍했던 상황 판단이 좀 돌기 시작했다. 여원홍은 분명히 3개소에서 놈들이 재편성을 하고 있다고 했으니, 분진포탄 유폭에 의한 쇼크를 감안하더라도 지금은 전투태세가 갖춰진 지도 오래일 것이다. 이들은 뻔히 우리의 위치를 알고 있으니 우리를 포위격멸하기 위해 이동할 것이다.

"원곡초, 본동사무소, 구 본동사무소 자리에서 놈들이 재편성을 개시한다는 보고가 들어왔었소. 협격의 우려가 있으니 한시바삐 원곡고 방향으로 탈출해야 하오."

김석원이 비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있는 소대원들에게 가서는 팔을 잡아 일으켜 세우거나 호통을 치면서 격려하기 시작했다. 부소대장도 도쿠가와 문장이 그려진 소대기를 주워서는 일어섰고, 다들 주섬주섬 일어났으나 김석원의 호통에 화급히 움직여서 소대기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분진포 진지 돌입을 위해 나뉘어졌던 2소대와 3소대가 대열을 짓고 구보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곧 내 앞에 정렬한 두 소대의 모습을 보아하니 최소한 우리 6소대보다는 훨씬 멀쩡해 보였다. 이들은 우리와는 달리 건물 한개를 더 두고 엄폐하고 있었으니 충격파나 파편상에 의한 부상은 훨씬 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 것을 본 3소대장 사부로 이상평이 황급히 달려와서는 내 어깨를 잡았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나는 왼손을 들어 화답하고는 조금 떨어져서 어거지로 허리를 폈다. 입에서 신음 소리가 절로 나오는 지경이었고, 대나무를 억지로 꺾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고통을 참고 억지로 허리를 펴니 그래도 어느 정도 직립할 정도는 허리를 펼 수 있었다. 소대들을 보니 시선이 모두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 시선들에 화답하듯이 천천히 그들을 둘러보면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적병은 동사무소와 구 사무소 자리, 원곡초에서 재편성을 완료했다. 그들은 포위를 시도할 것이다. 우리는 따라서 본영으로 퇴각한다. 루트는 원곡파출소 삼거리에서 원곡고 방면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통해 간다. 지금 즉시 이동!"

야스스케, 즉 2소대장 김안조는 상당히 의문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 길은 너무 좁습니다. 적이 앞뒤만 틀어막아도 그대로 막혀버립니다. 이대로 직진하여 원곡초에서 이어지는 큰길을 택하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까 좁은 길을 택하는 것이다.

"놈들의 숫자가 훨씬 많다. 넓은 길을 택했다가 포위당하면 끝장이야. 야스스케는 전투전면을 축소하고자 하는 본관의 뜻을 알라."

야스스케는 더이상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2소대부터 이동! 6소대는 중앙, 3소대는 후미!"

6소대를 중앙에 두는 것은 자잘한 부상자가 많기 때문이었다. 소대가 이동을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참모부로 전화를 걸었다. 곧 시끄러운 소음들과 함께 여원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의 상황은?"

여원홍의 말에 의하면 유폭에 의한 막대한 분진 탓인지 재편성된 적병 중 본동사무소와 구 사무소자리의 적병은 이제서야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이미 원곡고 앞 사거리에는 원곡초에서 재편성을 완료한 적 장창대가 방진을 짜고 틀어막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또 4소대와 5소대는 이미 총탄이 다 떨어져 화기 사용은 불가능하며 분진포탄에 의한 사상자가 있어 원곡공원 산등성이 반대편에 집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원곡고 사거리에서 강행 돌파하여 본영으로 귀환할 것이니, 4소대와 5소대는 공원을 내려가 관산중 삼거리를 확보하고 유사시 적 장창대에 대한 후방 급습 할 수 있도록 대기시키세요."

"그 좁은 길을 통해 정면 돌파한다는 말씀입니까? 너무 무모합니다. 원곡공원 산지를 통해 돌파하거나 모텔 밀집지를 분산 돌파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본동사무소에서 모텔 밀집지까지는 400m도 채 안되는데 쉽게 협격당합니다. 오히려 놈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곳으로 빠지려면 답이 달리 없어요. 별개의 소식이 있으면 보고하시오. 그리고 그 장창대의 이름이 뭡니까?"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들을 "오월대" 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녹두대"는 보이질 않고 있습니다."

"그것도 문제로군. 주변부 감시에는 나오지 않습니까?"

"예비기체 부재로 전장감시만이 고작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전장감시가 우리만 가능하지 않습니다. 주간상황이라 방송국에서 UAV를 날려서 보도중이고 TV를 통해 이동경로가 다 나오는 만큼 그들도 쉽게 알 겁니다. 이 점은 유념해주십시오."

"알겠소. 다른 소식이 있으면 전하세요."

전화를 끊고 나니 이미 원곡파출소에 다라라 삼거리에서 원곡고 쪽으로 이동하는 참이다. 그리고 원곡파출소는 과거 <코리안 팔루자 통구이 사건> 때와 같이 이미 불에 타 시커멓게 변해있었다. 경찰관들은 일찌기 철수한 지 오래인지 으례 있어야 할 시체들은 눈에 뜨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재건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부우웅..."

거대한 무인 비행기가 우리 위를 지나쳤다. 날개에는 KBS라는 로고가 선명했다. 이미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은 방송국에 의해 보도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이미 전방에는 대열을 짜고 도로 앞쪽을 단단히 틀어막고 전진해 오는 오월대의 장창 부대가 전진해오고 있었다. 오픈페이스 바이크 헬멧, 바이크 방호복을 착용하고 허리에는 일본도와 나이프, 그리고 살벌하게 빛나는 창날을 갖춘 3m길이의 창끝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전방 3열이 우리를 향해 창날을 겨우고 있다. 1열은 허리 높이로, 2열은 가슴 높이로, 3열은 얼굴 높이로, 4열은 비스듬하게 하늘을 향해서.

"젠카이(前開)! 젠카이!"

2소대장 야스스케 김안조의 구령에는 당황이 섞여있었다. 2소대원들은 기계가 움직이듯 신속 정확하게 전개를 완료하여 3열 횡대로 늘어섰지만 언뜻 본 표정에는 역시 당황이 서려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가진 장병기래봐야 170cm의 총검. 그러나 놈들은 3m의 창. 창의 약점은 측면인데 지금은 정면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붙으면 우리가 참패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지금까지 백병전술을 중점적으로 훈련하고 다양한 장비에 대해 경험해 온 전습대원들이니 만큼 그런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상황의 불리함을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롱소드를 뽑으며 2소대 전방으로 나아가서는 2소대장 야스스케 오른쪽 앞에 섰다. 롱소드를 오른손으로 잡고 어깨에 기대 세우며 뒤를 돌아보니 대원들 모두 반쯤 얼이 나간 면상이다. 이미 마음은 패배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대로 싸우면 무조건 패한다. 무기의 차이를 극복할 뭔가가 필요했다.

순간 머릿속에서는 고대 로마제국이 그리스와 전쟁했던 피드나 전투가 떠올랐다. 그때 로마군의 최전열인 하스타티는 그리스 팔랑크스의 놀라운 장창 전열에 겁을 먹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러자 부대장이 부대기를 빼앗아 적들에게 던져버리자 부대기를 빼앗기는 것이 최대의 치욕이었던 당시 하스타티 대열이 분노하여 그리스 창 대열로 돌진했다. 그리고 하스타티는 거의 학살당하시피 했다.

그러므로 나도 소대기를 부소대장에게서 빼앗았다. 그리고 부소대장이 어깨에 메고 있던 스나이더-엔필드 소총을 낚아채고는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소대원들이나 오월대나 내 행동을 보고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왼손에 소대기와 롱소드를 들고, 오른손에는 소총을 들고 창 대열로 달려든다니, 저렇게 무기를 잡고 어떻게 싸울 것이며 아니 정신 착란이 벌어진 것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행동일 것이다. 이윽고 놈들의 창으로부터 2m정도 떨어진 시점에서 정지했다. 오월대의 창날들이 일제히 나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나는 뒤를 돌아본다.

"이렇게 싸워라!!"

그리고는 소총을 고쳐잡고 오월대 대원의 가슴팍으로 내던졌다. 적과의 거리는 고작 4m정도. 아무리 총기가 투척에 걸맞지 않는다 한들 얼마든지 박힐 거리이다. 그리고 스나이더-엔필드 총검은 오월대원의 오토바이 방호복의 가슴 보호패드의 정확히 사이를 뚫고 들어갔다. 오월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운없는 친구에게 집중된 가운데, 그는 이미 창을 놓치고 눈을 크게 뜨며 소총을 뽑으려고 하였으나 곧 눈알이 뒤집히면서 앞으로 쓰러졌다. 소총 개머리판이 땅에 닿자 그는 마치 땅에서 삐져나온 꼬챙이에 쑤셔진 듯한 모양으로 머리를 늘어뜨리고 팔을 덜렁거렸다.

"부대기나 뺏기는 똘추들이 누구냐!!?"

그리곤 부대기를 놈들 한복판으로 던져버렸다. 오월대는 한창 참혹한 모양새로 죽은 동지에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갑자기 뭐가 날아오니 천하의 정예 자경단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창을 휘두르고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돌리며 피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전방의 오월대원들의 가슴팍에는 날아온 총검들이 하나 둘 꽃히기 시작했다.

내 눈앞에 들어온 것은 총검이 꽃히지는 않았지만 눈 밑 뼈가 골절되었는지 창을 놓고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던 친구였다. 최전열에 있던 그 친구는 곧 내가 창대를 밟아버리자 창을 놓쳐버렸다. 2,3열의 창이 나를 향해 내질러진다. 몸을 돌려 피하면서 롱소드를 리버스 그립으로 잡는다. 오른손이 가드를 타고 넘어 순식간에 손잡이에서 칼날을 잡는 기법이다. 이 기법은 예로부터 창을 상대하는 그립법으로 나와 있었으며 반드시 이 그립법을 해설한 그림에는 배경에 부러진 창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회수된 창이 다시 나를 향해 날아들 즈음에는 이미 나의 롱소드가 그 창을 밀어올리고 있었다. 리버스 그립의 장점은 보다 넓게 잡게 되기 때문에 창같은 무기에 보다 잘 버티게 해주고, 지렛대의 원리로 강하게 밀어제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창이 내 머리 위로 빗나가게 되자, 자기 눈 밑을 감싸쥐고 고통에 어찌할 줄 모르던 최전열의 대원의 오픈페이스 헬멧 밑으로 나의 롱소드 칼끝이 그의 눈으로 진입했다. 최대한 강하게 찔렀으니 아마 눈알을 관통하고 시신경체를 지나 모르긴 몰라도 뇌를 한 반쯤 후비고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빼면서 칼을 돌렸는데 놈의 눈 둘레 뼈에 걸렸는지 좀 걸리는 느낌이 있어 발로 차면서 뽑았다. 그리고 불쌍한 그 친구는 뒤로 넘어지면서 자기 동지들의 가슴에 자기 머리통을 적중시켰다.

그래서 두번째 놈은 앞 녀석 체중에 밀리면서 자세가 무너지고 비틀거렸는데, 그 틈을 타 나의 전신전령을 다한 머리치기가 가해졌다. 강한 충격 속에서도 놈의 입꼬랑지가 고통으로 움직이는 걸 보고는 칼을 크게 돌려 두번째로 후려쳤는데, 과연 현대 합성수지 헬멧의 위력은 과거 강철 투구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지막은 허리를 크게 뒤로 젖히고 칼끝이 꼬리뼈에 닿을 만큼 젖혔다가 허리를 도로 접어버리면서 내려쳤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두번째 전열의 운없는 친구는 목의 각도가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틀어진 채로 쓰러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세번째 녀석은 창을 그냥 앞으로 던져버리고는 급히 일본도를 뽑으려 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친구, 거합술을 제대로 수련한 것 같지 않은 티가 풀풀 날 만큼 당황에 쩔어 칼 손잡이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칼이 칼집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할 무렵 내가 왼손으로 놈의 칼자루 끝을 확 밀어 버리자 그녀석 손잡이에서 칼자루가 미끄러지면서 도로 칼집으로 칼이 들어가 버렸고 이 틈을 타 녀석을 베려고 했지만 자세가 영 부자연스러웠다. 그래서 급한 대로 롱소드의 가드를 녀석의 눈알로 이동시켰는데, 과연 효과는 그럭저럭 좋은 것 같았다.

세번째 녀석이 내 발에 채여 쓰러지고는 가슴팍에 롱소드의 칼날을 받고, 그리고 앞을 보니 이 오월대 장창대는 보통 놈들이 아니다. 4열째부터 이미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 다시 창을 3중으로 들이밀고 있던 것이다. 장창 대열은 일단 적의 돌입을 허용하면 보통 최정예가 아니고서는 측면을 노출하고 참패하고, 혼란에 빠져 전열 전체가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놈들은 한번 돌입당하는 것 같자 뒤쪽부터 후퇴하여 다시 대열을 짜고 준비하는 것이다. 이러면 부대 전체가 무너지지 않고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도 물론 가능하지만, 이정도가 가능할 정도라면 역사적인 정예부대 중에서도 어지간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놈들은 한다!

마침 내 옆을 보니 창을 짧게 잡고는 한다치를 뽑아든 대원을 위협하는 놈이 신경에 거슬렸으므로 롱소드를 휘둘러 뒷모가지를 후려쳤다. 뭔가 신경 다발 같은 게 보인 거 같기도 한데 곧 시뻘건 액체로 물들다 못해 줄줄 새면서 팔다리가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으므로 확인할 길은 없었다. 이 짜증나는 팔다리 폭주의 원인은 전기 신호의 교란인데, 신경계는 전기신호로 근육을 제어한다. 그런데 갑자기 신경계가 끊어지고 쇼크를 받으면 미친 듯이 지랄발광을 하거나 달리거나 하는 반응이 관측되는 것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없는 것도 아니다.

그걸 보는 놈들의 시선은 당연히 평소같은 사람의 눈매는 아니었다. 어느쪽이냐 하면 쇼크 사이트를 현실에서 보는 사람의 반응이라고 해두자.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놈들은 다시 빠른 걸음으로 전진해오기 시작했다.

"창 잡아서 던져!!"

그리고는 뒤로 두어걸음 물러나면서 창을 잡고는 창의 중간을 잡고 놈들을 향해 몇걸음 전진하면서 내던졌다. 중요한 것은 놈들이 달려오는 만큼 위치를 잘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잘못 파악한 대원 한명이 창을 던지려다가 생각보다 빨리 전진해온 놈들의 창에 가슴, 배, 옆구리, 목을 동시에 꿰뚫렸다. 그걸 본 내가 놈들의 창이 시체를 매달고 둔해진 틈을 타 리버스 그립으로 내리눌러 버리고 돌진하려고 했지만 창이 너무 빨리 뽑히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대원들이 창과 총검을 뽑아 뒤로 물러나자 나도 창을 하나 주워서는 같이 물러섰다. 그리고 "정지!" 를 외치자 대원들이 멈추었고, 곧 구령을 내렸다.

"하이 포지션!! 어게인스트 카발리!!"

하이 포지션, 어게인스트 카발리란 총검술에서 기병을 상대하는 자세를 의미하는데, 보병을 상대로 할 때에는 얼굴 높이로 창을 들고 상대의 얼굴을 겨누는 자세를 말한다. 이 자세는 상대를 견제하고 얼굴을 찌르기 위한 자세이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돌진하는 오월대의 발걸음이 계속해서 빨라지자, 다시 구령을 내렸다.

"랜스 포인트!"

그러자 다들 왼손을 아예 놓아버리고 앞으로 전진하면서 오른손으로 창끝만 잡고 일제히 얼굴을 향해 찔렀다. 창이나 총검에서 최대의 사거리를 내는 방식이다. 오월대가 아무리 최정예라고 해도 길이의 차이를 상쇄할 수 없다. 놈들은 창을 양손으로 잡고 길게 뻗었으므로 오른손은 가슴에 붙어 있다. 그만큼 짧아진다. 그러나 우리는 왼손을 아예 놓아버리고 오른발이 앞으로, 오른손은 최대한 몸에서 떨어트려 놓았으므로 거의 1m에 가까운 길이를 더 확보할 수 있다. 그만큼 상대가 창을 쳐낸다면 우린 속수무책이지만, 이렇게 순간적인 기회를 보아 기습적으로 쓴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기법이다.

그러나 놈들은 생각보다 피해를 입지 않고 있었다. 얼굴에 맞은 자도 있었지만 어떤 건 빗나간 것들도 있었고, 또 한손으로 찔러버린 만큼 순간적으로 닿는 건 빨라도 <저항을 뚫고 계속해서 전진하는 힘>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얼굴뼈에 맞은 자들은 골절까지는 되었을지 몰라도 그 이상으로 전진하여 신경계를 후벼대거나 전의를 상실할 만큼의 중상까지는 얻어내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맞은 놈들이 정신 못차리기에는 충분하다.

"창 던져!!"

역시 이번에도 창던지기가 가해졌으나 효과는 처음만 못했다. 내 구령을 들은 오월대 가이들이 창대를 들어올려 좌우로 흔들자 던져진 창들이 맞으면서 찌르지도 못하고 옆으로 날아가거나, 창날이 아닌 창대가 맞거나, 창들 사이에 낑기고 걸려버리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맞아죽은 놈들은 내가 얼른 보기엔 두놈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창이 움직이지 못하거나 적을 겨누지 않을 때는 뭐다?

"개박살이다!!"

하면서 내가 달려들자 나를 본 창들이 나를 겨누려고 했지만 아까 던져진 창이 창들 사이에 끼어있었기 때문에 곧 움직이지 못하고 대혼란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들려진 채로 고정된 창들 밑으로 들어가서는 롱소드를 하프 소드로 잡고 확 들어올렸다. 창들이 올라간 상태로 옴짝달싹을 못했다. 졸지에 장창 대열에 창 5개 이상만큼의 구멍이 뚫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밑으로 노다치를 든 2소대장 김안조를 선두로 한 2소대원 일동들이 한다치를 뽑아들고 쇄도했다.

창대를 잡은 왼손의 손가락이 1개밖에 남지 않게 된다거나 대변을 배에 난 구멍으로 보는 자 들 등 다양한 사태가 속출했으나 이번에도 놈들을 완전 격멸할 수 없었다. 다시 뒷 대열들이 뒤로 빠져서 창 전열을 다시 짜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무려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세상에 이런 놈들이 어딨단 말인가?

그러나 상황은 그들에게 더 안좋았다. 번뜩히는 노다치와 한다치의 일본도 칼날 맛을 보다 못한 오월대 대원들이 물러나 재정비중인 자기 대열로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자기 편을 향해 도망가고 있는 것이다만, 정비된 대열 앞에서는 마구 달려드는 게 아군이든 적군이든 간에 최악이다. 오히려 아군이 더 문제였다. 아군을 찔러죽일 수도 없지 않나?

마지막으로 일본도를 뽑아서 내려치던 오월대 대원 한명이 김안조의 기리오또시(동시에 서로 머리를 베면 나중에 벤 쪽이 상대의 검을 튕겨내고 머리를 쪼개는 기술) 기법에 의해 모가지가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꺾이자 결국 머리 속에서 뭔가가 끊어져버린 오월대 대원들이 일제히 도주하면서 자기 편 전열로 달려가기 시작했고, 결국 오월대 전열은 난장판이 되었다. 지금이 바로 승리할 시간이다!!

주변이 하도 시끄러웠으므로 호루라기 신호를 통해 3소대 돌격을 지시하려던 와중, 뭔가 재수없는 기운이 느껴져서 옆을 돌아보니 뭔가 이상한 것이 있는 듯 하여 왼팔로 얼굴을 가리자 팔에 뭐가 들어오는 느낌이 나더니 곧 고압 전류를 흘리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리고 더 시끄러워져 뒤를 보니 좀 짧은 일본도를 든 놈들이 다가구주택가 담벼락을 넘어 달려들고 있었다. 저놈들은 대체?!

그 답은 곧 나왔다. 내 팔에 박힌 건 표창이었고, 그 일직선상에는 바로 사기꾼 관장놈이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저것들이 저 사이비 관장네 패거리, 자칭 <정무림>이라는 무협지 워너비종자들이란 말이지?

"이런 썅...아옷!!"

롱소드로 쳐죽이려고 했지만 왼손에 다시 강한 전기가 흐르는 듯한 찌릿거림이 느껴지고 축 늘어진 왼손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이거 표창이 신경을 건드리는 게 틀림없다. 그리고 왠 20대 초반 되어 보이는 놈이 관장 옆에 같이 있었는데, 내 왼팔을 보더니 아주 좋다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롱소드는 오른손 한손으로만 쥐고 있고, 왼손은 쓰지도 못한다. 나는 아예 놈을 등지고 선 채로 녀석을 뒤돌아보면서 주시하고 있었다. 내 자세가 요상한지 아닌지는 관심도 없이 젋은 놈은 칼날길이 70cm나 될까 싶은 짧은 카타나를 가지고 내 머리를 노리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녀석의 칼이 내 머리를 쳤어야 할 그 순간 놈의 칼은 내 롱소드에 바인딩되었다. 놈은 전신전령으로 속도를 더해, 달려오면서 양손으로 내리쳤으므로 당연히 내 롱소드가 힘으로 보나 뭘로 보나 약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내 롱소드는 확 밀려버렸다.

그리고 너무나도 쉽게 밀리자 그 젋은 녀석은 자기 돌진력으로 인해 제때 멈추지 못했고, 내가 오른쪽 어깨로 밀자 옆으로 휘청거렸다. 그 불쌍한 친구는 차마 중심을 다시 잡기도 전에 내가 오른손으로 크게 후려친 롱소드에 의해 무릎 뒤, 오금을 크게 절단당했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과 자기가 무적이라는 확신이 가득했던 얼굴은 도장에선 안가르쳐주는 죽음의 고통과 공포와 좌절로 가득하여 눈물과 콧물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무림의 측면 기습은 어렵지 않게 정리당하고 있었다. 일단 김석원의 음류도법, 3척 2촌의 노다치에 의해 짧은 환도는 참담한 최후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김석원이 노다치를 크게 수평으로 휘둘러 배를 후려치자 동시에 세놈의 복장에서 순대가 출시되었고 다시 크게 돌려서 내려치는 것을 검을 들어 막는 데에 성공한 녀석은 곧 저질 아연 합금임에 틀림없는 코등이가 허망하게 쪼개지면서 손가락 상태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빠지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는데 일단 3소대는 쌩쌩한 상황인데다가 다들 170cm의 총검을 가지고 전투에 참여할 기세가 등등한 입장이라, 대열을 짓고 가차없이 영웅심리에 빠져 대열도 안 지은 정무림 가이들에게 달려들었다. 의외로 총검 대비 훈련을 했는지 총대를 잡은 왼손을 노리려고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자도 있었으나 당연히 왼손을 놓고 찔러대는 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가르친 기술이었는데 19세기에는 장검 사용자에 대해 총검은 랜스포인트로 찌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랜스 포인트는 한번 막히면 회수하기 힘들고 크게 놓칠 수도 있어 문제가 있지만 일단 총을 든 왼손은 앞으로 나가면서도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검을 든 자들이 아주 노리기 좋다. 그러므로 상대를 잘 보아 공격적이라고 판단되면 간격 안으로 들어왔을 때 왼손을 놓고 기습적으로 찌르고, 실패하면 뒤로 물러나면서 다시 총을 고쳐잡고 공격을 쳐내고 찌르라는 것이 내가 제시한 방침이었다.

마침 정무림 가이 한명이 검을 높이 쳐들고 대원에게 달려들었다. 정무림 가이는 총을 쳐내려고 했던 듯 칼을 휘두른 것이 머리가 아니라 총을 향했지만 대원이 총검을 슬쩍 들어올리자 오히려 칼이 총검에 충돌하면서 놓쳐버렸다. 이것도 검술의 법칙 중 하나로 검은 칼끝으로 갈수록 잘 튕겨지고 손잡이로 갈수록 버티는 힘이 강하다. 그래서 상대의 검을 쳐낼 수 있는데 총검은 4.5kg에 달하며 탄성이란 아예 없고, 크게 잡아서 버티는 힘이 아주 강하므로 모션만 잘 취하면 상대의 검 정도 날려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무튼 그 정무림 가이는 가슴팍에 정석적인 찌르기를 맞았다.

오월대 장창대는 이제서야 겨우 대열을 정비했고, 이자들이 이번에는 창을 내밀고 돌진하는 게 아니라 창을 던지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2소대를 비롯한 우리 대원들은 정무림 종자들의 습격 탓에 오월대를 상대할 처지가 아니다. 상황은 심각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냥 보고만 있었다. 왜냐하면 오월대들이 차마 신경도 못쓰고 있는 등짝 뒤로, 나나부로 존 테일러를 선두로 한 원곡고 학생들이 쇠파이프와 나이프, 칼 같은 걸 들고 쇄도하고 있었고, 오월대 대원들을 향해 보도블럭을 깨부순 돌멩이들이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젋은 혈기의 위력을 구경하면서 나는 의아하게 생각한 것이 있었다. 왜 본동사무소와 구 사무소 지역에서 재편성했다던 놈들은 움직이지 않았는가? 구보하면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는데 말이다. 그놈들이 다같이 우리를 협공했으면 이런 식으로 어이없는 패배를 경험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나중에 듣기론, 그쪽 부대도 오월대이긴 하지만 둘은 자경단 내부에서 수익 분배라던가 기타 여러가지 문제로 권력 싸움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능력으로 보나 뭘로 보나 우리가 상대한 장창대가 최고고, 이친구들이 오월대 안에서 권세가 대단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2개 부대 지휘관들이 몰래 짜고 장창대가 개박살나도록 방관한 것이라고 한다.

이 내부 사정이 알려진 건 그때 당시 죽은 척 하고 숨어있던 장창대 대장이 고향에 돌아가서 개인적인 복수극을 펼치다가 경찰에 덜미가 잡혔고, 덕분에 훗날 오월대는 완전히 풍비박산, 해체된다. 물론 수구 정권의 탄압 운운하며 경찰에 대항해 수성전을 펼친 괘씸죄가 더해진 것도 한몫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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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82화 제2차 안산 사변 (13)
언젠가 씁니다.

덧글

  • 장쾌 2014/06/05 02:50 # 삭제 답글

    정예부대를 깼으니 앞으로는 그나마 좀 수월해지겠네요
  • 까치대부 2014/06/05 09:06 # 답글

    정무림이라는 단체가 쓰는 환도술은 무엇인가요? 예전에 두람이라던것 같고 다른거라고 하시던것 같고...
  • 지나가던과객 2014/06/05 10:13 # 삭제 답글

    안산사태 종결 후 전습대는 해체되고, 주인공은 구속되겠군요.
  • 존다리안 2014/06/05 10:57 # 답글

    이건 원소군의 군량을 끊기 위해 싸우는 조조군이라고 해야 하나요? 적극적인 건 좋긴 합니다만
    위태위태하네요.
  • Fedaykin 2014/06/05 11:01 # 답글

    에잇! 전습대는 지치지도 않는가!
  • 과객 2014/06/05 11:19 # 삭제 답글

    전습대도 사상자가 나오기는 하지만 교환비가 장난이 아니군요. 흠좀무
  • 옆뱀 2014/06/05 11:40 # 답글

    시궁창 와중에도 해운의 여신의 가끔식 미소를 지어주는 군요.
  • 시그렛 2014/06/07 01:07 # 답글

    결말예측해봅니다. 전습대 해체하고 주인공은 료마처럼 수하들과 숨어잇다가 오월대 습격으로 장렬하게 죽을 것 같네요. 요시노부는 눈물을 뿌리며 김아무개와 일본으로..
  • 암호 2014/06/07 23:25 # 답글

    안산 내 외국인 그룹들과 전습대가 심각한 갈등이 없는 한, 전습대가 해체되기는 힘들듯 합니다. 아무래도 그러한 갈등이 나와야 위 결말들이 가능하겠는데요?
  • 시그렛 2014/06/09 02:00 #

    솔직히, 저 정도로 친일단체로 찍히고 수십을 죽인 단체를 국가가 놔두진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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