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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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77화 제2차 안산 사변(8) 팬픽

계속된 포격에 관산중학교의 유리창이라고 무사할 리가 없었다. 곧 포탄이 착탄했고 떨어지는 회칠조각과 유리창을 피해 여원홍과 요시노부, 나는 주차용 천막지붕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바닥에 엎드린 내 얼굴 옆에 뭐가 떨어지면서 벽돌을 파낸 모래조각을 튀겼는데, 옆을 보니 50cm정도 되어보이는 유리창 조각인 것을 보면 역시 천막 지붕따윈 파편 방어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이게 뭐야!? 관산중학교에 있다던 대원들은 어디 있는거요?"

여원홍이 달마 그림과 비견될 만한 몸매로 엎드려 있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말하기를,

"5,6소대는 Y포인트에서 포복 대기중일 거고, 암스트롱 12파운드는 선일중에 도착했을 겁니다. 아마도요!"

자체 통신망이 나갔으니 이제 원거리에서 상황을 실시간으로 연락받기는 쉽지 않다. 전화로 해야 하는데 언제 울릴 지도 누가 아나.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이라면 통화를 계속 연결해놓고 이어폰을 끼고 있는게 좋지만 이미 난장통에 이어폰은 어딘가에 걸려 떨어져나간지 오래였다.

"포격이 소강 상태인가?"

그렇게 되뇌었을 즈음 옥상 쪽에서 익숙한 스나이더-엔필드의 총성이 서너발 울려퍼졌다.

"총참모, 혹시 저격조 동원한거요?"
"그런 명령은 내린 적 없습니다만, 지휘관 재량은 최대로 명시하였으므로 각자 판단일 겁니다."

여원홍의 말은 저격조를 편성하라는 말은 안했지만 현지 지휘관의 재량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우리 특성상 급히 태스크포스를 차출 투입하였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옥상의 총소리가 만일 대포에 대한 저격이었다면 근대적인 대포병 전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19세기에 소총이 대중화되고 저격이 태동한 이후 아직 간접사격이 확립되지 못했던 대포는 수백미터에서도 명중시키는 저격병에 매우 취약한 존재였던 시절이 있었다.

또다시 스나이더-엔필드의 총성이 서너발 동시에 울려퍼졌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맹렬하게 가해지던 포격이 벌써 이렇게나 중지된 것을 보면 역시 옥상의 총성은 대포병 저격이다. 허나 저격도 두번 이상은 반드시 위치가 노출되기 마련이니만큼 저격조는 이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별로 없다.

"지금 이동, 빨리!"

나와 요시노부, 여원홍은 급히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총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고 우리가 운동장 끝까지 달려 교문을 통과할 즈음 저격조가 있었을 옥상으로 다시 포격이 개시되어 여섯 발의 포탄이 동시에 착탄했다. 곧 관산중학교 옥상 모서리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저격조가 원칙을 숙지하고 있다면 아마 이미 이동한 지 오래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건 놈들의 대포는 최소 6문이라는 것이며, 저격에 당할 만큼 사거리가 길지도 않고 간접사격이 가능한 물건도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곳에서 스나이더-엔필드 특유의 총소리가 울렸고 다시 대포 소리가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한 저격조의 재사격일 것이다. 관산중학교 교문을 나서자마자 Y자 교차로, 즉 T포인트가 드러났고 놀랍게도 거기 있는 건 덴슈고부로 오진우의 5소대 뿐이다. 그것도 정수를 다 채우지 못한 20몇명 뿐이었다.

"고부로! 저 팀은 고부로의 팀인가?"
"그렇습니다. 제 소대 중에서도 정예만 지원했습니다."

덴슈고부로 오진우는 한마디로 저격지상주의자이며 일발필중에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대원들이 전습대 커리큘럼을 이수한 후 다른 검술에도 관심을 가지는 등 백병전 기술에 관심이 많은 것에 비해 오진우만큼은 총기 사격술에 훨씬 관심을 많이 쏟고 있었다. 그래서 간석동 간지대장파의 공세 때에도 저격조를 맡았고, 지금은 스나이더-엔필드에 정체불명의 스코프 같은 것까지 장착해놓은 상태였다.

"로쿠로는 어디로 갔나?"
"동계관산에 매복중입니다."
"음!"

동계관산이란 관산중 건너편의 야산을 말한다. 다른 이름이 있겠지만 우리는 보안 유지 차원에서 동계관산이라고 따로 부르고 있었다. 여원홍이 수립한 작계에 의하면 Y포인트에서 지연전을 펼치고 별도의 소대가 동계관산에 산개하여 개인 판단하에 저격으로 십자포화를 가하는 식으로 Y포인트로 진격하는 적들에게 피해를 강요하는 방식이다. 비록 지금의 현실이 작계와 같을 수는 없기에 내용은 제법 다른 양상이지만 기본적인 포인트는 확실하게 그대로 지키고 있다.

"총참모 여원홍은 총재 요시노부 공을 모시고 야전 사령부로 가겠습니다."
"좋아!"

요시노부를 돌아본 나는 곧 몸을 돌리고 가볍게 목례를 했다. 요시노부는 여전히 불만이 있는 눈빛이었지만 여원홍의 재촉에 링컨 MKS 뒷좌석에 타고 선일초 방면으로 떠났다. 어찌 되었든 전습대의 사령관은 나다.

대포 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지만 다시 연속적으로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뒤이어 원곡동 쪽에서 상당히 시끌벅적하고 희한한, 사제총포 소리로 들리는 것이 수십발 이상 한꺼번에 터졌다. 아마 전대협 측이 대응사격을 개시한 모양이었지만, 우리 저격조가 저격의 원칙을 따라 1발 발사 후 반드시 엄폐-이동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면 아무리 대응사격을 개시해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도 다들 군필자에 특히 녹두대, 오월대는 중대편제로 지휘계통을 갖추고 있다. 저격이 반복될수록 제대로 대응하기 시작할 거야. 저들은 어떻게 퇴각시킬 건가?"

고부로는 자신만만했다.

"로쿠로의 포지션은 원곡고 앞 거리까지 사격이 가능합니다. 명중은 못시키겠지만 몰려든 자들 한두명은 맞겠죠."

그리고는 5소대 부소대장의 어깨를 두번 치자 부소대장이 폭죽을 꺼내서 불을 붙였다. 이윽고 요란한 삐리릭 소리를 내며 세번 올라가 터졌다. 그러나 이 행동은 신호이기는 해도 우리의 위치를 노출시키는 행동. 원칙적으로 본다면 좋지 않은 것이겠지만 놈들이 이 Y포인트를 향해 질주해 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

곧 저격조 7명이 어둠 속에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오는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산중학교 창문 사이로 점점 랜턴 불빛이 조금씩 비추어지고 있었다. 아마 저격조 7명을 색출하려는 것인 듯 했다. 한참 왔다갔다하던 불빛이 창문 사이로 운동장을 비추기 시작했다. 저격조들을 찾아낸 듯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총은 없었는지 총을 쏜다거나 하지는 못했고 조금 후에 학교 현관으로 몇명이 랜턴을 비추며 튀어나왔지만 곧 몸을 돌려 무릎쏴로 대항사격을 가한 전습대 저격조들에게 여지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 다음에는 겁먹었는지 관산중학교 건물에서 나올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그대신 원곡고 교문을 돌파할 때 썼던 철판을 용접한 트럭들이 도로 앞에 나서서 길을 메웠다. 한 4대 정도 되어보이는 이 트럭들은 이미 시위대라기보다는 적군인 전대협 전투원들을 보호하듯이 뒤에 따라오게 하면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령! 전령!"

급히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온 사령부 요원이 다가왔다.

"UAV 관측 결과 놈들의 버스 10대가 우회하여 이쪽으로 이동중입니다."
"타 소대에도 모두 연락했겠지?"
"전령들이 모두 갔습니다. 공격의 신호는 봉행님께 있습니다."

역시 놈들은 다르다. 우리의 위치를 파악한 이상 Y포인트에 있는 우리들을 3방향의 도로에서 협공하여 짜부시키려는 계획이다. 하지만 우리는 멍청하게 Y교차로 한복판에서 대열을 짓고 19세기식 라인배틀의 로망이 멍청하게 현세에 강림할 거라는 희망은, 그들에게는 유감스럽지만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이미 1소대는 사령부 방어를 위해, 2,3,4소대는 Y포인트 뒤의 서계관산에서, 6소대는 동계관산에 산개 매복하여 놈들에게 스나이더-엔필드의 맛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를 다하고 있는 것이다.

철판 용접 트럭이 진출하여 우리와 100m정도의 간격을 두자, 트럭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아보았는지 속도를 내려고 할 즈음 나는 신호탄을 쏘았고, 그와 함께 암스트롱 12파운드의 포성이 선일중학교 쪽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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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78화 제2차 안산 사변(9)
언젠가 씁니다.

덧글

  • 과객 2014/05/27 01:20 # 삭제 답글

    영길리님이 주신 암스트롱포탄 잊지 않겠습니다!!
  • 존다리안 2014/05/27 09:07 # 답글

    R! P! G!
  • 지나가던과객 2014/05/27 09:25 # 삭제 답글

    나라꼴 잘 돌아가네요.

    시내에서 총을 사용하질 않나, 학교에 포격을 하질 않나.

    정부에서 이 사실을 알면 빡쳐서 군대를 투입하겠는데요.
  • 앤드류 체이스 커닝햄 2014/05/27 17:44 #

    요시노부도 한시바삐 군대가 오기를 바라는 입장이죠.
  • 옆뱀 2014/05/27 13:53 # 답글

    읽으면서 처음으로 지도랑 대조해가며 보았습니다.
    헌데 선일초 쪽으로도 우회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거기다가 사령부를 설정하고 1소대를 놔둔겁니까?
  • 앤드류 체이스 커닝햄 2014/05/27 16:20 #

    그친구들은 아직 현 시점에선 선일중에 사령부가 설치된 걸 모릅니다. 그러니 Y포인트로 몰려드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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