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병지도역 카마지로, 지금 막 돌아왔다!"
문을 몸으로 밀어붙이며 뿌리치고 성큼성큼 복도로 들어서자 김 아무개가 계단에서 튀어나왔다.
"몸 괜찮아? 다친 덴..."
"몰라!"
김 아무개를 상대할 기분이 아니다. 당장 요시노부를 보고 담판을 지어야 한다. 김 아무개는 무시당하고 나에게 그대로 지나쳐졌다.
"...씨이이... 왜 나한테 지랄이야?!"
제딴에는 걱정해준다고 말했다가 돌아오는 대답에 빡친 김 아무개가 성질을 내기 시작했지만 갑자기 당황하면서 조용해졌다.
"요시노부 어딨어!"
피가 눌러붙은 롱소드를 든 채로 뒤를 돌아보며 눈을 부릅뜬 것에 잠시 겁을 먹은 모양이지만, 나에겐 당장 요시노부의 소재가 더 중요하다.
"으...응접실에... 씨 내가 죄졌어? 왜 나한테..."
"시끄러워!!"
실망감과 체념이 섞인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다문 김 아무개의 표정을 마지막으로 나는 응접실 쪽으로 향했다. 응접실 쪽 복도에는 벌써 기자 몇명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당신들 뭐야? 왜 기자들이 이런 데 있지?"
기자들이 일제히 나를 보았으나 시선은 곧 놀라움이 섞인 것으로 변했다. 피가 들러붙은 롱소드에 화가 잔뜩 난 덩치 큰 사람이 서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중 기자 한명이 나서서 말하기를,
"우리는 중대 발표가 있다는 총재님의 요청을 받고 모인 겁니다. 당신은 대체..."
"중대 발표는 없어! 다들 돌아가! 나가라고!"
물론 기자들은 그렇다고 흩어지지는 않았지만, 내가 가는 길을 막지는 않았다. 교실을 개조한 전습대 응접실 앞을 막고 있던 대원이 길을 비켜주자 문이 벽에 부딪치도록 열어제꼈다. 드러난 응접실 안에는 특유의 그 턱을 괴고 삐딱하게 앉은 요시노부와 여원홍이 있었다.
"무슨 일로 왔는지 안다. 봉행은 이에 반대하지 말라. 이는 이미 충분한 논의를 거친 일로 총참모 여원홍도 동의한 사안이다."
여원홍은 그 말을 듣자마자 당황하면서 요시노부를 보았다. 요시노부는 여원홍을 끌어들여 여론을 굳히고 내가 반대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내가 여원홍을 노려보자 여원홍은 약간 곤란해 하기는 했으나 눈에서는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어차피 지금 사안의 주도권은 요시노부에 있다. 다시 요시노부를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내가 지금 경응 3년에 있는 건지 2014년에 있는 건지 모르겠군요. 요시노부의 이름을 가진 분이 다시 부하들을 버리고 전투 중지라니! 이제 도망은 어디로 갈 겁니까? 배를 타고 에도로 갈 순 없으니 어디로 갑니까?!"
롱소드를 왼손에 거꾸로 잡고 오른손으로 책상을 내려치며 노발대발하자 요시노부는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잠시 응시하더니 턱을 괴던 손을 치우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자네는 여기서 죽을 건가?"
"논리로 장난하지 마십시오! 항복하지 않으면 방사능이라도 터진답니까? 예?"
일본 동북지방의 원전 사고를 빗대어 하는 조롱이었다. 요시노부는 그 말을 듣자마자 미간을 일그러뜨리더니 자기 일본도의 칼집 끝을 바닥에 쾅 치면서 일어섰다.
"입으로 죄짓지 말라! 자네는 오늘만 살고 내일은 살지 않겠냐는 말이야! 총알도 부족한 전습대가 3000명에 달하는 전문 폭도들과 싸워 이길 수 있겠는가도 문제이나 이긴다고 한들 전습대의 위명은 우리에게 대량 살인마의 오명만을 덧씌울 것이다. 이 나라에 우리밖에 없나! 60만의 대군을 통솔하는 멀쩡한 행정부가 있는 나라야! 제3세계의 쓰레기같은 후진국처럼 생각하지 말라!"
나도 할말 많다.
"그게 그 말입니다! 대국을 생각하십쇼! 저들은 이미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행동하는 시위대가 아닙니다. 진심으로 증오에 뭉친 자들이며 지금 민국법률은 폭력사태에 대한 자력구제를 극도로 확대했습니다. 이미 저들이나 우리나 선을 넘은 몸, 우리를 모조리 죽일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살기 위해서라도 철저하게 항전하여 이겨야만 합니다. 저들이 신사적으로 나올 거라 보십니까? 이미 우리는 친일 매국노로 매도되었습니다. 범죄자는 용서해도 매국노는 용서해서는 안되는 것이 인지상정,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싸우고 살아남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충분히 싸웠고 할 만큼 했다. 그대, 마치 옥쇄라도 각오하라는 말처럼 들리는군. 좋다. 그 말대로 다들 증오에 넘친 자들이야.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이고 강대한 힘의 제3자가 개입하여 사태를 정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 존재는 오직 민국 행정부 외에 다른 자가 없다. 당사자인 우리가 직접 개입을 요청하고 폭력사태에서 물러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메시지야. 우리는 섬에 갖힌 황군이 아니다. 얼마든지 유연성을 가지고 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논리는 좋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그걸 막을 정부 같았다면 처음부터 이 안산이 이리 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겁니다. 지방 선거가 코앞입니다! 이 사회의 또다른 축인 진보 세력에게, 외국인 세력에게 전 국민이 친일 반민족세력이라 매도하는 우리를 위해 무력을 가할 배짱 좋은 행정부가 어디 있는지 한번 보고 싶군요. 가뜩이나 다카키 마사오의 무스메가 행정부의 수장이거늘 지금도 짜증나는 주홍 글씨의 색을 더욱 진하게 하고 싶겠습니까? 정부는 분명히 개입하되 우리와 저들이 모조리 피곤죽이 되어 시체의 산을 이루어 두번 다시 입을 열지 못하게 된 최후의 최후의 순간에 겨우 발을 들일 것입니다. 어찌되었던 우리에게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죽은 정승보다 산 거북이가 낫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폭풍을 정면에서 다 받을 이유가 없다! 얼마든지 물러나면서 지연전을 펼칠 수도 있는 것이며 무고한 한국인과 일본 이주민들이 피해를 받거나 타 지역까지 여파가 미치면 좋든 싫든 행정부는 개입할 수밖에 없다. 왜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가! 방법이 이렇게 많은데 그대는 그럼 이곳에서 옥쇄라도 하겠다 그런 말인가? 마치 옥쇄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이.."
"못할 것이 어디있습니까! 옥쇄든 신풍공격이든 바라마지 않는 바입니다. 좋습니다. 어차피 살아봐야 민국 정부의 권력 강화의 산제물이 될 뿐, 이럴 바에야 저도 가쓰스케의 뒤를 쫓도록 하겠습니다. 신풍 공격의 선봉이 되어 일억총특공의 정신으로 귀신이 되어 싸우다 이 몸에 열세자루의 검을 꽃고 죽겠습니다. 뜻있는 자는 저와 함께 미나토가와로 나설 것입니다."
요시노부가 눈을 크게 뜨더니 점점 미간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가 지금 누구랑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 신풍공격에 총특공이라니, 거기에 미나토가와라니, 내 눈앞에 있는 자가 한국인인가 일본인인가? 너같은 헛소리는 일본인 중에서도 입에 올리는 자가 없는데, 도쿠가와 가문의 후손인 내가 황도파의 망령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말인가? 도쿠가와의 이상을 좇는다 말하더니 다 헛소리였구나, 네놈은 그저 파쇼 군국의 귀신이 씌인 자야. 내가 언질을 주었어도 그 해군 군도를 목숨처럼 옆에 둔 것부터 보고 알았어야 했는데!"
"흐... 제가 아는게 그거밖에 없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군국의 언어를 쓸 지언정 마음은 그런 자가 아닙니다. 그저 남자답지 못하게 도망다니는게 싫은 것 뿐이지요!!"
도망자, 포기자, 도망자, 1868년의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에도성을 개성한 이래로 그에게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지금의 요시노부에게 있어서도 조상에게 가해지는 그런 꼬리표는 싫은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그런 말을 듣지 않도록 노력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다시금 1868년과 비슷한 운명을 그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가장 듣기 싫었던 <도망자>라는 말을 이제 다시 나에게 듣고, 확인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폭발했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큰 소리를 치면서 그가 일본도의 칼자루에 손을 가져다 대자 그걸 본 나도 롱소드를 고쳐잡았다. 그 사이로 달려들어 왼손으로 일본도 칼자루를 붙들고 오른손으로 롱소드의 칼자루를 눌러 상황 악화를 저지하는 것은 여원홍이었다. 여원홍이 심각한 얼굴로 낑낑댄지 1초도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면서 대원 두명이 각기 문 앞뒤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곧 얼어버렸다. 위급 상황에 최고 간부들이 험악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이 군국에 미친 자를 당장...."
순간 건물이 크게 흔들리며 유리창 터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여원홍이 앞으로 넘어졌다. 나와 요시노부도 함께 넘어졌다. 엎드린 채로 고개만 들면서 옷과 얼굴을 만져보니 이쪽 유리창이 터진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아직 멀쩡하다. 뒤이어 2탄, 3탄이 옆 교실로 착탄했고 다시 폭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 응접실 벽면에 있던 도쿠가와 문장 깃발은 이미 떨어진 지 오래였다.
"놈들의 포격이다! 대포까지 있단 말인가?!"
나와 여원홍, 요시노부는 급히 일어나 복도로 나왔다. 이미 사무실은 완전 소개되어 서류 한장도 남지를 않아 있다. 기자들은 벌써 저만치 도망가고 있었으나, 한명은 유리조각에 눈이 꿰뚤린 채로 주저앉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총참모! 간부들과 다른 대원들은?"
"이미 옆의 관산중학교로 대피했습니다. 어서 그곳으로!"
출장본영이 위치한 원곡고가 직접공격을 받아 함락될 경우, 옆의 관산중학교를 거쳐 Y포인트, 거기서 선일중학교 근방 야산을 야전 지휘소로 삼는 작전 계획이 있다. 여원홍이 만들어놓은 작계 중 하나로 원곡고는 방어하기에 지나치게 미흡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과연 쓰일 날이 있을까 싶었으나 결국 오늘 쓰게 되는구나. 놈들이 대포를 가진 이상 우리로써도 사용할 수 있는 반격 수단을 확보해둘 필요가 있었다.
"암스트롱 12파운드는 어쩌고?"
"분해하여 옯기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관산중학교에 있을 겁니다."
계속된 포격이 착탄을 거듭하여 사무실의 유리창이 폭풍과 함께 파괴되어 복도 벽에 부딪쳤다. 급히 계단을 내려가 문을 나오니, 다음 착탄이 응접실 쪽으로 착탄했다. 뒤이어 다른 교실에도 포격이 착탄하기 시작했다.
"전대협이래봐야 고작 쇠파이프와 화염병이 고작이라 생각했지만 80년대와 지금은 달라. 저들도 좀비사태를 교훈삼아 불법장비로 중무장을 한 것이다. 이래가지고서야 칼빈 소총도 튀어나오지 말란 법도 없겠군..."
철판을 잔뜩 용접한 트럭이 교문을 들이받으며 돌입하는 것을 보면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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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77화 제2차 안산 사변(8)
언젠가 씁니다.
*미나토가와 - 일본 남북조시대의 남조 충신, 구스노키 마사시게가 전사한 지역의 이름입니다. 군국주의 시대에 구스노키 마사시게는 영웅시되고 그가 전사한 미나토가와는 천황가에 대한 충성의 현장처럼 여겨져 당시 전쟁에 죽으러 가는 것을 미나토가와에 임한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요시노부가 피꺼솟할 만 하죠.




덧글
느낌도 들고요. 어찌 보면 말을 잘못했군요.
2차대전말 소련군에 맞서던 독일 국민돌격대 언급했으면 어땠을까요? (...............)
이번 사변이 좋게 끝난다 하더라도 요시노부와의 관계를 회복시키지 못하면
재정적으로나 명분으로나 전습대에 타격이 크겠군요.
물론 지금도 절체절명의 위기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