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원이 끌고온 포로들은 약 12명 정도 되었다. 특이한 것은 30대의 트로츠키주의 계열 국제사회주의 단체에 소속된 친구였다. 이 친구를 중심으로 심문해본 결과 자칭 인권운동가 진기서, 흑호방주는 통진당을 비롯한 온갖 단체들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지금의 대연합을 이루어냈다는 그림이 그려졌다. 그리고 이 트로츠키주의자의 말에 의하면, 그 연합은 단순히 진보주의를 떠나 <당신이 들어본 적도 없는 단체들>까지 합류했다고 한다.
오후가 되자 시위대의 수뇌부가 포로의 송환을 요청하였으나, 이미 주동자 급인 5명은 경찰에 넘겼으므로 나머지들만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의 TV인터뷰에는 아까 그 트로츠키주의자 놈이 우리에게 고문을 당했다고 인터뷰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더러운 트로츠키주의자새끼를 때려죽였어야 했는데! 역시 스따린 동지의 말씀대로야, 가차가 없어야지!"
짜증에 휩싸여 손바닥으로 연신 무릎을 내려치는 나였으나, 이제 와선 별 수가 없었다.
뒤이어 나오는 내용들로 말하자면, 마침내 지방 유력 자경단과 전투 노조, 그리고 사실은 흑호방주이신 인권 운동가 진기서 님을 따르는 대규모 중국인 시위대가 안산으로 출병한다는 것이었다. 부산을 떨어대는 참모부 책상과 불이 난 왕조명의 전화통에서 종합된 정보에 따르자면 그 중국인 시위대는 민간인이 아니라 모두 인천/부천에 자리한 중국계/한국계 깡패들로, 전습대와 천웅방을 완전히 날려먹을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나선 것이라 한다. 특히 전습대에 대해서는 확장을 거듭하여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의 이권을 모조리 빼앗길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 불안에 떨고 있었다고 하니, 지금이 아니면 없앨 수 없다는 생각이 그들을 연합 행동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전습대 패거리를 완전히 때려잡겠다고 천명하는 지방 자경단의 이름은 꽤나 볼 만했다. 지금까지의 얼치기 시위대들은 물론이고 베테랑 시위꾼들조차도 저들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한때 지역 조폭들을 땅바닥에 굴려서 인간 걸레로 써먹고 강력계 형사들이 분대규모로 따라붙어도 위원장급 인사들을 체포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으며, 중대단위 편제로 지휘통제 시스템이 확고한 바로 그들, 지금은 수십년의 세월 속에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졌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들이 지금 이 세상에 다시 나타나 버린 것이다.
"이 대한민국에 쪽바리 새끼가 대장질을 하는 패거리가 있고, 또 쪽바리들이 이 한국 땅을 또다시 침범한다는 것에 더이상 가슴을 쥐어뜯는 것도 지쳤습니다. 이 빌어먹을 친일파 정부가 왜놈들을 이 신성한 대한민국에 이민이라니요. 더군다나 우리 시민들을 죽이고, 고문하는 미친 놈들을 감싸도는 경찰이란 새끼들을 절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노구를 이끌고 다시 나선 것입니다.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의 깃발아래 다시 돌아왔단 말입니다!!"
분노의 인터뷰를 하는 <녹두대> 위원장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중년의 얼굴이었지만 뿜어져나오는 패기는 지금의 젋은이 여럿도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뒤에 휘날리는 깃발에는 <오월대>의 세 글자도 선명했다. 그리고 대열을 지은 그들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어중이 떠중이와는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좀비사태 이후로 젋은이들을 대거 영입하여 훈련을 거듭해 온 그들이다. 개인 싸움에서는 무술 실력이 승패를 가르지만 집단전에서는 지휘 통제가 승패를 가른다. 그렇기 때문에 전습대가 총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들과 비교해서 열세에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허무도, 여원홍을 비롯한 간부들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과연 몇명이나 이 안산시로 몰려들 것인가? 그리고 다들 전습대만을 노릴 지도 의문이다. 깡패새끼들이 폭도로 돌변하는 즉시 통제를 벗어나 때려부수고 약탈할 것이고, 안산시 전역에 대공황 상태를 유발할 것이다. 그러면 전습대 병력을 분산시켜야 하는가? 기껏해야 1개 소대가 간부 포함 32명이니 분산시켰다가는 태양 아래 눈처럼 녹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총격을 가하는 순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치적 풍파도 휘몰아칠 것이고...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은 전습대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답답하여 사무실을 나와 옥상에 올라가 있자니 이미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올라와 있었다. 팔짱을 끼고 불야성의 원곡동을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이 무거워 보였다. 왠지 마주치고 싶지 않아 돌아서 내려가려고 하였으나, 요시노부가 눈치챘는지 시선은 원곡동에 둔 채로 입을 열었다.
"이제 어찌할 건가?"
부르다시피 한 것이므로 무시하고 내려갈 수는 없다. 천천히 걸어서 그의 왼쪽 두어 걸음 뒤에 섰다. 답답한 심정을 담아 말했다.
"...그건 저도 모릅니다."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쉰 요시노부가 고개를 내렸다가 다시 들어올리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대가 제갈 진욱과 감정이 좋지 않은 것은 아나, 참으로 경솔한 행동이었다. 감정에 몸을 맡기지 않는 그대라고 생각하였으나 역시 인간으로써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군."
전철연 간부들을 태워죽인 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후회는 커녕 분노가 끓어올라 모조리 찢어죽이고 싶어졌기 때문에 애써 뛰는 가슴을 잠재웠다.
"저로써는 그 외에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지난 일을 책망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나, 지금을 보면 전습대는 살아남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른 것이다. 그날 이전만 하더라도 이기면 관군이었지만, 이제는 이기든 지든 역적 이상은 될 수 없다. 나는 이곳에 우리 동북인들의 터전을 마련하려고 하였지만 행동으로 한국인들의 호감을 얻기 전에 이미 증오부터 불러일으키고 말았구나. 이곳에서도 쫓겨나게 된다면 우리 동북인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요시노부는 지난 일을 책망하지 않는다고 말은 했으나 그 말 속에는 나를 원망하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나는 선조처럼 가신을 버리고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 홀로 항복하는 전철은 밟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동북인들을 위해서 전습대와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우리 전습대는 경찰에 항복하며 무장을 버리고 해산하는 것 이외에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어떤가 카마지로... 그대도 150년전의 그처럼 나의 방침을 부정하고 무장하여 끝까지 싸울 것인가?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가?"
마치 심장을 거대한 바위로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어떤 고성과 질책보다도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그 말에 뭐라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균형 감각을 상실한 듯 몸을 가누기 힘들어지기까지 했다. 분노와 증오도 그의 말 앞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중압감과 책임의 깊이가 느껴져 왔다.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방침을 함부로 정할 것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세상 일은 시시각각 변하는 바 조금 더 상황에 따라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최선이었다. 솔직히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앞으로 어찌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함부로 뭘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요시노부는 입을 닫고 더이상 아무 말도 하려 들지 않았으므로, 고개를 숙이고 물러가려 했다. 돌아선 순간 문이 열리면서 경찰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 자는 증오스럽기 그지없는 제갈 진욱이었다.
"여기 있었군.."
오른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국가권력의 수족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목줄기를 찔러 관통시키고 발로 차서 옥상에서 추락시키고만 싶었다. 하지만 요시노부의 말 탓에 가슴이 짓눌려 있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였으므로 곧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고개를 들어 본 제갈 진욱의 얼굴은 심각하게 시달린 듯 초췌하기까지 했다. 나에게 막말을 지껄이던 건방진 표정과는 달랐으므로 내 마음도 조금 더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근질거리는 입을 참을 수 없었으므로 비아냥거리는 투로 한마디 했다.
"원하시는 대로 망하게 될 곳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제갈 진욱은 그 말을 듣고도 표정에 미세한 변화조차 없이 초췌한 모습 그대로 다가오더니 눈을 감고는 한숨 쉬듯이 말했다.
"자네나 나나 다같이 망할 입장인데 이제와서 뭘 어쩌겠는가?"
뭔가 일이 있었지 싶었지만 넘실거리는 짜증은 그대로 비아냥으로 이어졌다.
"그러게 평소에 말을 예쁘게 하셨어야지요."
제갈 진욱의 표정이 살짝 안좋아졌다.
"그때 일 말인가? 그럼 그런 말 들었다고 휘발유를 뿌려서 아무리 철거볼라라도 태워 죽이는 게 제정신 가지고 하는 짓인가?"
"어차피 서장님 입장에서는 우리 자체가 비정상 아니었습니까?"
"됐네. 지금 그런 걸로 왈가왈부할 때가 아니니까...."
뒤를 돌아보니 요시노부는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제갈 진욱이 여기에 온 이유는 결국 이 심각한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 의논하러 온 것이었다. 제갈 진욱의 초췌한 모습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시위대에게 경찰서가 점거되었다가 전습대에 의해 수복한 것의 스트레스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정치인들의 자제 요구와 온갖 협박에 무자비하게 시달린 것과 더불어 경찰 상층부에서 책임을 물어 경질시키겠다는 말까지 나오는 등, 결국 제갈 진욱도 이기든 지든 역적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승진에는 더이상 관심없었지. 이렇게 된 이상 옷을 벗더라도 이것만큼은 해결하고 옷을 벗고 싶을 뿐이야. 일이 이렇게 된 건 결국 자경단들 탓이니, 자네들이 해산하는 걸로 일이 마무리될 것이라 보네. 그렇다면 저 시위대란 자들도 명분이 없어질 테니 당장 유혈사태는 피할 수 있을 거야."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전습대가 사라진다고 자경단이 없어질 거라 보십니까?"
"아니라는 건 나도 알아. 유혈사태는 피해야 될 거 아닌가!"
"우리가 나타나기 전까지 이곳 상태가 어땠는지 기억이 안나시는 모양입니다. 경찰이 꺼꾸로 매달려 불타 죽고 장기간 파출소의 대부분이 폐허가 되었던 것이 어느 나라의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가 없어지고, 총을 내려놓고 해산한다고 친다면, 지금까지 힘의 균형이 사라질 것이며 결국 힘을 가리기 위한 싸움이 잠시 벌어지고, 자경단이자 조폭인 자들이 서민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겠죠."
"그래서 안산시에 대폭동을 조장하겠다 그런 말인가?!"
"저도 방금 전까지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답답하기 짝이 없었죠. 이기든 지든 전습대는 망하는 것 이외에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서장님과의 대화를 통해 이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겨우 감을 잡은 것 같습니다."
제갈 진욱의 정색이 한계에 다다랐다. 머리가 좋은 제갈 진욱인 만큼 아마 눈치챘을 것이다.
"스탈린이 말하길, 사람이 없으면 문제도 없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서장님의 목적은 자경단이자 폭력 단체의 소멸 아닙니까? 좋습니다. 저희가 그들을 모조리 끌고 들어가 함께 죽겠습니다. 전국의 유력 자경단이자 폭력 단체들이 모조리 이곳으로 모입니다. 우리 전습대가 신풍공격의 정신으로 미나토가와에 임하겠습니다. 그들은 모조리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총격전까지 벌어진 대 폭동의 고장을 방치할 정치가는 없을 겁니다. 아마도 헌병대가 주둔하겠죠. 전국의 주요 자경단과 조폭은 모조리 죽을 것이며, 헌병대가 치안을 유지할 테니 결국 모든 것이 잘 될 겁니다. 서장님은 좋아진 세상이나 만끽하십쇼."
제갈 진욱은 얼굴이 시뻘개지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지만 생각은 복잡한 듯 했다. 그가 원했던 것이야말로 정확하게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었다. 비정상적인 상황의 결정체인 자경단이 소멸하고, 다시 국가가 운영하는 오직 합법적인 치안 기구인 경찰이 다시 모든 것을 장악한다는 것이야말로 지금 그의 절대 소원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만으로 대규모의 죽음을 방치할 수 있는가? 경찰은 고치는 게 목적이지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다! 그 두가지 모순이 그의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당장 굷어죽는 한명의 한끼를 위하여 수만명이 먹을 볍씨를 소모해버릴 수는 없다는 것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더이상 드릴 말씀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습대는 경찰 호위에서 빠지겠습니다. 병력이 부족하니까요. 경찰은 자동소총을 보유하고 있는 걸로 아니 전습대 백명보다 경찰 스무명이 훨씬 나을 겁니다. 그럼 전 일이 많으니 들어가 보겠습니다."
제갈 진욱을 뒤로 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중 이미 마음은 청량했다. 올라갈 때만 하더라도 답답하기 그지 없었지만 말이다. 이는 어딘가에서 보았던 싯구인 <대장부 태어나 죽음이 두번이겠느냐, 뜻을 정하니 마음이 푸르구나> 를 연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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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70화 제2차 안산 사변(1)
언젠가 씁니다.

대장부 태어나 죽음이 두번이겠느냐, 뜻을 정하니 마음이 푸르구나 <= 번역이 확실하지는 않으나 출처는 이 포스터입니다. 폴첸에서 2010년에 발매했던 중국군 항일대도에 동봉된 포스터에 쓰여진 싯구입니다.
오후가 되자 시위대의 수뇌부가 포로의 송환을 요청하였으나, 이미 주동자 급인 5명은 경찰에 넘겼으므로 나머지들만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의 TV인터뷰에는 아까 그 트로츠키주의자 놈이 우리에게 고문을 당했다고 인터뷰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더러운 트로츠키주의자새끼를 때려죽였어야 했는데! 역시 스따린 동지의 말씀대로야, 가차가 없어야지!"
짜증에 휩싸여 손바닥으로 연신 무릎을 내려치는 나였으나, 이제 와선 별 수가 없었다.
뒤이어 나오는 내용들로 말하자면, 마침내 지방 유력 자경단과 전투 노조, 그리고 사실은 흑호방주이신 인권 운동가 진기서 님을 따르는 대규모 중국인 시위대가 안산으로 출병한다는 것이었다. 부산을 떨어대는 참모부 책상과 불이 난 왕조명의 전화통에서 종합된 정보에 따르자면 그 중국인 시위대는 민간인이 아니라 모두 인천/부천에 자리한 중국계/한국계 깡패들로, 전습대와 천웅방을 완전히 날려먹을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나선 것이라 한다. 특히 전습대에 대해서는 확장을 거듭하여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의 이권을 모조리 빼앗길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 불안에 떨고 있었다고 하니, 지금이 아니면 없앨 수 없다는 생각이 그들을 연합 행동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전습대 패거리를 완전히 때려잡겠다고 천명하는 지방 자경단의 이름은 꽤나 볼 만했다. 지금까지의 얼치기 시위대들은 물론이고 베테랑 시위꾼들조차도 저들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한때 지역 조폭들을 땅바닥에 굴려서 인간 걸레로 써먹고 강력계 형사들이 분대규모로 따라붙어도 위원장급 인사들을 체포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으며, 중대단위 편제로 지휘통제 시스템이 확고한 바로 그들, 지금은 수십년의 세월 속에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졌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들이 지금 이 세상에 다시 나타나 버린 것이다.
"이 대한민국에 쪽바리 새끼가 대장질을 하는 패거리가 있고, 또 쪽바리들이 이 한국 땅을 또다시 침범한다는 것에 더이상 가슴을 쥐어뜯는 것도 지쳤습니다. 이 빌어먹을 친일파 정부가 왜놈들을 이 신성한 대한민국에 이민이라니요. 더군다나 우리 시민들을 죽이고, 고문하는 미친 놈들을 감싸도는 경찰이란 새끼들을 절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노구를 이끌고 다시 나선 것입니다.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의 깃발아래 다시 돌아왔단 말입니다!!"
분노의 인터뷰를 하는 <녹두대> 위원장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중년의 얼굴이었지만 뿜어져나오는 패기는 지금의 젋은이 여럿도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뒤에 휘날리는 깃발에는 <오월대>의 세 글자도 선명했다. 그리고 대열을 지은 그들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어중이 떠중이와는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좀비사태 이후로 젋은이들을 대거 영입하여 훈련을 거듭해 온 그들이다. 개인 싸움에서는 무술 실력이 승패를 가르지만 집단전에서는 지휘 통제가 승패를 가른다. 그렇기 때문에 전습대가 총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들과 비교해서 열세에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허무도, 여원홍을 비롯한 간부들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과연 몇명이나 이 안산시로 몰려들 것인가? 그리고 다들 전습대만을 노릴 지도 의문이다. 깡패새끼들이 폭도로 돌변하는 즉시 통제를 벗어나 때려부수고 약탈할 것이고, 안산시 전역에 대공황 상태를 유발할 것이다. 그러면 전습대 병력을 분산시켜야 하는가? 기껏해야 1개 소대가 간부 포함 32명이니 분산시켰다가는 태양 아래 눈처럼 녹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총격을 가하는 순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치적 풍파도 휘몰아칠 것이고...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은 전습대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답답하여 사무실을 나와 옥상에 올라가 있자니 이미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올라와 있었다. 팔짱을 끼고 불야성의 원곡동을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이 무거워 보였다. 왠지 마주치고 싶지 않아 돌아서 내려가려고 하였으나, 요시노부가 눈치챘는지 시선은 원곡동에 둔 채로 입을 열었다.
"이제 어찌할 건가?"
부르다시피 한 것이므로 무시하고 내려갈 수는 없다. 천천히 걸어서 그의 왼쪽 두어 걸음 뒤에 섰다. 답답한 심정을 담아 말했다.
"...그건 저도 모릅니다."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쉰 요시노부가 고개를 내렸다가 다시 들어올리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대가 제갈 진욱과 감정이 좋지 않은 것은 아나, 참으로 경솔한 행동이었다. 감정에 몸을 맡기지 않는 그대라고 생각하였으나 역시 인간으로써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군."
전철연 간부들을 태워죽인 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후회는 커녕 분노가 끓어올라 모조리 찢어죽이고 싶어졌기 때문에 애써 뛰는 가슴을 잠재웠다.
"저로써는 그 외에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지난 일을 책망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나, 지금을 보면 전습대는 살아남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른 것이다. 그날 이전만 하더라도 이기면 관군이었지만, 이제는 이기든 지든 역적 이상은 될 수 없다. 나는 이곳에 우리 동북인들의 터전을 마련하려고 하였지만 행동으로 한국인들의 호감을 얻기 전에 이미 증오부터 불러일으키고 말았구나. 이곳에서도 쫓겨나게 된다면 우리 동북인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요시노부는 지난 일을 책망하지 않는다고 말은 했으나 그 말 속에는 나를 원망하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나는 선조처럼 가신을 버리고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 홀로 항복하는 전철은 밟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동북인들을 위해서 전습대와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우리 전습대는 경찰에 항복하며 무장을 버리고 해산하는 것 이외에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어떤가 카마지로... 그대도 150년전의 그처럼 나의 방침을 부정하고 무장하여 끝까지 싸울 것인가?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가?"
마치 심장을 거대한 바위로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어떤 고성과 질책보다도 무겁게 나를 짓누르는 그 말에 뭐라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균형 감각을 상실한 듯 몸을 가누기 힘들어지기까지 했다. 분노와 증오도 그의 말 앞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중압감과 책임의 깊이가 느껴져 왔다.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방침을 함부로 정할 것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세상 일은 시시각각 변하는 바 조금 더 상황에 따라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최선이었다. 솔직히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앞으로 어찌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함부로 뭘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요시노부는 입을 닫고 더이상 아무 말도 하려 들지 않았으므로, 고개를 숙이고 물러가려 했다. 돌아선 순간 문이 열리면서 경찰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 자는 증오스럽기 그지없는 제갈 진욱이었다.
"여기 있었군.."
오른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국가권력의 수족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목줄기를 찔러 관통시키고 발로 차서 옥상에서 추락시키고만 싶었다. 하지만 요시노부의 말 탓에 가슴이 짓눌려 있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였으므로 곧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고개를 들어 본 제갈 진욱의 얼굴은 심각하게 시달린 듯 초췌하기까지 했다. 나에게 막말을 지껄이던 건방진 표정과는 달랐으므로 내 마음도 조금 더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근질거리는 입을 참을 수 없었으므로 비아냥거리는 투로 한마디 했다.
"원하시는 대로 망하게 될 곳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제갈 진욱은 그 말을 듣고도 표정에 미세한 변화조차 없이 초췌한 모습 그대로 다가오더니 눈을 감고는 한숨 쉬듯이 말했다.
"자네나 나나 다같이 망할 입장인데 이제와서 뭘 어쩌겠는가?"
뭔가 일이 있었지 싶었지만 넘실거리는 짜증은 그대로 비아냥으로 이어졌다.
"그러게 평소에 말을 예쁘게 하셨어야지요."
제갈 진욱의 표정이 살짝 안좋아졌다.
"그때 일 말인가? 그럼 그런 말 들었다고 휘발유를 뿌려서 아무리 철거볼라라도 태워 죽이는 게 제정신 가지고 하는 짓인가?"
"어차피 서장님 입장에서는 우리 자체가 비정상 아니었습니까?"
"됐네. 지금 그런 걸로 왈가왈부할 때가 아니니까...."
뒤를 돌아보니 요시노부는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제갈 진욱이 여기에 온 이유는 결국 이 심각한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 의논하러 온 것이었다. 제갈 진욱의 초췌한 모습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시위대에게 경찰서가 점거되었다가 전습대에 의해 수복한 것의 스트레스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정치인들의 자제 요구와 온갖 협박에 무자비하게 시달린 것과 더불어 경찰 상층부에서 책임을 물어 경질시키겠다는 말까지 나오는 등, 결국 제갈 진욱도 이기든 지든 역적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승진에는 더이상 관심없었지. 이렇게 된 이상 옷을 벗더라도 이것만큼은 해결하고 옷을 벗고 싶을 뿐이야. 일이 이렇게 된 건 결국 자경단들 탓이니, 자네들이 해산하는 걸로 일이 마무리될 것이라 보네. 그렇다면 저 시위대란 자들도 명분이 없어질 테니 당장 유혈사태는 피할 수 있을 거야."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전습대가 사라진다고 자경단이 없어질 거라 보십니까?"
"아니라는 건 나도 알아. 유혈사태는 피해야 될 거 아닌가!"
"우리가 나타나기 전까지 이곳 상태가 어땠는지 기억이 안나시는 모양입니다. 경찰이 꺼꾸로 매달려 불타 죽고 장기간 파출소의 대부분이 폐허가 되었던 것이 어느 나라의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가 없어지고, 총을 내려놓고 해산한다고 친다면, 지금까지 힘의 균형이 사라질 것이며 결국 힘을 가리기 위한 싸움이 잠시 벌어지고, 자경단이자 조폭인 자들이 서민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겠죠."
"그래서 안산시에 대폭동을 조장하겠다 그런 말인가?!"
"저도 방금 전까지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답답하기 짝이 없었죠. 이기든 지든 전습대는 망하는 것 이외에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서장님과의 대화를 통해 이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겨우 감을 잡은 것 같습니다."
제갈 진욱의 정색이 한계에 다다랐다. 머리가 좋은 제갈 진욱인 만큼 아마 눈치챘을 것이다.
"스탈린이 말하길, 사람이 없으면 문제도 없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서장님의 목적은 자경단이자 폭력 단체의 소멸 아닙니까? 좋습니다. 저희가 그들을 모조리 끌고 들어가 함께 죽겠습니다. 전국의 유력 자경단이자 폭력 단체들이 모조리 이곳으로 모입니다. 우리 전습대가 신풍공격의 정신으로 미나토가와에 임하겠습니다. 그들은 모조리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총격전까지 벌어진 대 폭동의 고장을 방치할 정치가는 없을 겁니다. 아마도 헌병대가 주둔하겠죠. 전국의 주요 자경단과 조폭은 모조리 죽을 것이며, 헌병대가 치안을 유지할 테니 결국 모든 것이 잘 될 겁니다. 서장님은 좋아진 세상이나 만끽하십쇼."
제갈 진욱은 얼굴이 시뻘개지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지만 생각은 복잡한 듯 했다. 그가 원했던 것이야말로 정확하게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었다. 비정상적인 상황의 결정체인 자경단이 소멸하고, 다시 국가가 운영하는 오직 합법적인 치안 기구인 경찰이 다시 모든 것을 장악한다는 것이야말로 지금 그의 절대 소원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만으로 대규모의 죽음을 방치할 수 있는가? 경찰은 고치는 게 목적이지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다! 그 두가지 모순이 그의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당장 굷어죽는 한명의 한끼를 위하여 수만명이 먹을 볍씨를 소모해버릴 수는 없다는 것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더이상 드릴 말씀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습대는 경찰 호위에서 빠지겠습니다. 병력이 부족하니까요. 경찰은 자동소총을 보유하고 있는 걸로 아니 전습대 백명보다 경찰 스무명이 훨씬 나을 겁니다. 그럼 전 일이 많으니 들어가 보겠습니다."
제갈 진욱을 뒤로 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중 이미 마음은 청량했다. 올라갈 때만 하더라도 답답하기 그지 없었지만 말이다. 이는 어딘가에서 보았던 싯구인 <대장부 태어나 죽음이 두번이겠느냐, 뜻을 정하니 마음이 푸르구나> 를 연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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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70화 제2차 안산 사변(1)
언젠가 씁니다.
대장부 태어나 죽음이 두번이겠느냐, 뜻을 정하니 마음이 푸르구나 <= 번역이 확실하지는 않으나 출처는 이 포스터입니다. 폴첸에서 2010년에 발매했던 중국군 항일대도에 동봉된 포스터에 쓰여진 싯구입니다.




덧글
무마할 방법이 없어뵈는데.
대의는 전습대에게 넘어갈 테니 싸워서 이길 물리력만 제대로 가지고 있으면 될 것 같은데.
Kia~간고등어 잘 파실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