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원을 선두로 2열 종대로 꾸불꾸불하게 돌입하는 6소대의 모습은 마치 고대 석탄기에 존재했다는 2.6m짜리 거대 지네, 아르트로플레우라를 방불케 했다. 우리 원곡고 남학생들과의 주먹다짐, 몽둥이 싸움으로 체력을 완전히 소진하고 어리버리 서 있기만 하던 젋은 얼치기 시위대들은 그대로 뚫리고는, 2열 종대가 좌우로 퍼지면서 몽둥이찜질을 가하기 시작하자 멘탈붕괴하여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음류도법은 진검이 아니면 못 싸우냐는 소리를 들은 김석원의 폭주는 6소대원들의 양민학살 페스티벌 중에서도 특히나 볼 만했다. 183cm의 히코리 나무로 만들어진 장봉을 들고 달려간 김석원은 먼저 어리버리하고 있는 2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시위대의 다리를 쳐서 넘어뜨리는 것을 시작으로, 불운한 두명의 시위대가 각각 명치와 턱을 찔리고 쓰러졌다. 지팡이만 든 다른 대원들도 무쌍난무를 펼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럼 시위대 후방으로 빠져서 본격적인 싸움 준비를 하고 있던 베테랑 시위꾼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일단 쌍용 이스타나에서 빠져나온 쇠파이프와 죽창은 그들에게 분배되기는 했지만, 전방에서 어리버리하고 있던 젋은 얼치기 시위대들이 가뜩이나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방해가 되고 있어서 제때에 전방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2열로 줄지어서 마치 아르트로플레우라(고대의 2.6m짜리 지네) 처럼 꾸불꾸불하게 종대로 돌입한 6소대의 핵공격을 방불케 하는 폭발적인 양민학살 탓에 죄다 도망가면서 얼치기 시위대들 중 일부가 일제히 베테랑 시위꾼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돌격하는 적보다 도망쳐오는 아군이 더 무섭다는 게 이런 말이지 싶다.
덕분에 앞으로 나서지도 못할 뿐더러 자랑의 죽창, 쇠파이프는 전혀 쓰지도 못하고 있었다. 김석원이 호루라기를 길게 한번, 짧게 한번 불자 6소대원들이 몽둥이찜질의 기세를 줄이며 멈춰섰고, 간격을 넓게 잡고 2열 횡대를 유지하며 제자리를 지키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미 다들 도망치고 있으므로 함부로 기세에 몸을 맡겨 힘을 다 빼지 말고 상황을 파악하며 체력을 온존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집단전은 지휘 통제가 완벽해야 비로소 이길 수 있다. 아무리 전습대원들이 군사 예술을 배워 검술에 통달한다고 해도 단지 싸움만 잘하는 것일 뿐이었더라면 도망가는 시위대들을 쫓아가며 때려잡다가 흩어지고, 대열을 정비한 전문 시위꾼들의 쇠파이프와 죽창 앞에 각개격파당했을 것이다. 물론 시위대 때려잡다가 체력이 다 떨어져 이도저도 못하는 것은 덤이다. 원래 인간이 전심전력으로 최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은 연속해서 10분 이상 가기가 매우 어렵다. 이러한 체력의 한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춰서 싸우는 것이야말로 싸움꾼과 군병의 차이이다.
"전령! 전령!"
곧 학생 통제를 하던 대원 한명이 달려왔다. 전령을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남학생들이 이제 좀 스테미너가 회복된건지 6소대의 활약상을 보고는 사기가 충천하여 시위대에게 달려들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얼치기 시위대라면 모르겠으나 대부분이 맨손인 상황에서 쇠파이프나 죽창을 든 베테랑 시위꾼에게 덤빈다면 중상을 입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녀석들은 한번 폭주하면 눈에 뵈는 게 없는 혈기넘치는 젋은이들이다. 즉 꼭지가 돌면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무술이나 근대적 체력단련은 가르쳤지만 집단전에 필요한 전술적 지휘통제 요량은 교육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학생들을 교육시키려고 한 것이지, 전습대 예비군으로 만들어 써먹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부활동 형태로 학생들 중 희망자를 전습대 4,5,6소대 예비역으로 동원하는 편제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런 방침은 가지고 있지 않다.
통제 불가능한 병력이 전개되면 일단 전술적인 기동도 어려워지고 이 폭주 병력이 전술행동을 어떻게 방해할 지 모른다. 얼치기 시위대가 도망가면서 베테랑 시위꾼들을 밀어 넘어뜨리면서 도주하는 저 광경처럼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이제 학생들은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해주었으니, 더이상 위험을 부담시킬 필요가 없다.
"학생들을 통솔하여 교내로 복귀!"
"학생 통솔 교내 복귀!"
대원이 복창하고는 교문을 지나 바람처럼 뛰어가 대원들에게 알리자,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학생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6소대는 아니고 수업중에 감독하던 대원들이다. 전습대원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에 익숙한 만큼 학생들은 불만이나 반항이 전혀 없이 내가 봐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오와 열을 갖추었다. 그리고는 선두부터 구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제가 있다면 얼치기 시위꾼들이 거의 다 도망갔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제 베테랑 시위꾼들이 자유롭게 전방으로 진출하여 싸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김석원을 선두로 한 6소대 전방 50미터 즈음에서 약 50~60명으로 추정되는 전문 시위꾼들이 쇠파이프를 땅에 갈고 죽창을 땅에 후려치면서 끝이 갈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쇠파이프를 땅에 가는 것은 위협을 가하기 위한 것일 뿐이지만, 죽창을 땅에 후려치면서 끝을 갈라놓는 건 진짜로 살상이 목적이었다.
시위대에서 죽창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끝을 날카롭게 잘라서 기름을 먹인 민란용 무기가 아니라 평범한 그냥 죽봉이다. 하지만 내려쳐 끝이 갈라진 죽봉은 경찰의 방석모를 향해 찌르면 갈라진 대나무 끝이 헬멧의 철망 속으로 파고들어 전의경의 눈알을 직접 뚫어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전의경의 방어구를 직접 타격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온 새로운 방식의 무장이었다. 길이는 거의 4m정도에 달하는 이 물건은 과연 대단한 위압감이 있었다.
"우리가 이겼군."
"예?"
경찰 임무 대행기를 들고 있던 대원이 반문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6소대는 김석원을 포함하여 32명에 불과하지만 베테랑 시위꾼들은 50~60여명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180cm급의 쇠파이프와 4m짜리 죽창을 들고 있는 자들을 길어야 90cm짜리 화이바글라스 지팡이와 180cm정도의 목봉을 든 대원들이 이긴다? 대충 봐도 이건 게임이 안된다. 물론 초보자가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지.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 저자들이 아무리 베테랑 시위꾼이래봐야 전의경과의 싸움 경험이 전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90년대 이후의 전의경들은 기본적으로 시설물 점거나 금지구역 진출을 노리는 시위대에 맞서 방패로 스크럼을 짜고 <인간 벽>을 만들어 저지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진압은 마지막에나 가서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위대의 전술도 이렇게 만들어진 <인간 벽>을 허무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긴 쇠파이프와 죽창이 등장한 것은 바로 이 방패를 깨부수고 전의경들이 버티지 못하게 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저들이 상대할 우리 전습대는 개개인이 무술을 배우고 군사 예술을 학습한 정예요원이며, <인간 벽>을 만드는 것 따위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위꾼의 장비는 오히려 독이 된다. 180cm의 쇠파이프는 길고 무거우며 위력을 가지려면 크게 들어서 후려쳐야 하는데, 무게가 있어 느리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겁먹고 먼 거리에서 얼쩡댄다면 모를까, 검술을 아는 사람에게는 말 그대로 차려진 밥상 이상의 뭔가는 될 수 없다. 4m급의 죽창도 마찬가지다. 긴 창은 전열끼리 싸울 때나 쓸모있는 것이지 개인 대결로 넘어가면 그만큼 쓸모없는 물건도 없다.
한편 6소대와 시위꾼들과의 거리는 15m까지 좁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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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68화 제1차 안산 사변(4)
언젠가 씁니다.
그 중에서도 음류도법은 진검이 아니면 못 싸우냐는 소리를 들은 김석원의 폭주는 6소대원들의 양민학살 페스티벌 중에서도 특히나 볼 만했다. 183cm의 히코리 나무로 만들어진 장봉을 들고 달려간 김석원은 먼저 어리버리하고 있는 2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시위대의 다리를 쳐서 넘어뜨리는 것을 시작으로, 불운한 두명의 시위대가 각각 명치와 턱을 찔리고 쓰러졌다. 지팡이만 든 다른 대원들도 무쌍난무를 펼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럼 시위대 후방으로 빠져서 본격적인 싸움 준비를 하고 있던 베테랑 시위꾼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일단 쌍용 이스타나에서 빠져나온 쇠파이프와 죽창은 그들에게 분배되기는 했지만, 전방에서 어리버리하고 있던 젋은 얼치기 시위대들이 가뜩이나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방해가 되고 있어서 제때에 전방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2열로 줄지어서 마치 아르트로플레우라(고대의 2.6m짜리 지네) 처럼 꾸불꾸불하게 종대로 돌입한 6소대의 핵공격을 방불케 하는 폭발적인 양민학살 탓에 죄다 도망가면서 얼치기 시위대들 중 일부가 일제히 베테랑 시위꾼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돌격하는 적보다 도망쳐오는 아군이 더 무섭다는 게 이런 말이지 싶다.
덕분에 앞으로 나서지도 못할 뿐더러 자랑의 죽창, 쇠파이프는 전혀 쓰지도 못하고 있었다. 김석원이 호루라기를 길게 한번, 짧게 한번 불자 6소대원들이 몽둥이찜질의 기세를 줄이며 멈춰섰고, 간격을 넓게 잡고 2열 횡대를 유지하며 제자리를 지키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미 다들 도망치고 있으므로 함부로 기세에 몸을 맡겨 힘을 다 빼지 말고 상황을 파악하며 체력을 온존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집단전은 지휘 통제가 완벽해야 비로소 이길 수 있다. 아무리 전습대원들이 군사 예술을 배워 검술에 통달한다고 해도 단지 싸움만 잘하는 것일 뿐이었더라면 도망가는 시위대들을 쫓아가며 때려잡다가 흩어지고, 대열을 정비한 전문 시위꾼들의 쇠파이프와 죽창 앞에 각개격파당했을 것이다. 물론 시위대 때려잡다가 체력이 다 떨어져 이도저도 못하는 것은 덤이다. 원래 인간이 전심전력으로 최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은 연속해서 10분 이상 가기가 매우 어렵다. 이러한 체력의 한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춰서 싸우는 것이야말로 싸움꾼과 군병의 차이이다.
"전령! 전령!"
곧 학생 통제를 하던 대원 한명이 달려왔다. 전령을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남학생들이 이제 좀 스테미너가 회복된건지 6소대의 활약상을 보고는 사기가 충천하여 시위대에게 달려들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얼치기 시위대라면 모르겠으나 대부분이 맨손인 상황에서 쇠파이프나 죽창을 든 베테랑 시위꾼에게 덤빈다면 중상을 입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녀석들은 한번 폭주하면 눈에 뵈는 게 없는 혈기넘치는 젋은이들이다. 즉 꼭지가 돌면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무술이나 근대적 체력단련은 가르쳤지만 집단전에 필요한 전술적 지휘통제 요량은 교육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학생들을 교육시키려고 한 것이지, 전습대 예비군으로 만들어 써먹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부활동 형태로 학생들 중 희망자를 전습대 4,5,6소대 예비역으로 동원하는 편제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런 방침은 가지고 있지 않다.
통제 불가능한 병력이 전개되면 일단 전술적인 기동도 어려워지고 이 폭주 병력이 전술행동을 어떻게 방해할 지 모른다. 얼치기 시위대가 도망가면서 베테랑 시위꾼들을 밀어 넘어뜨리면서 도주하는 저 광경처럼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이제 학생들은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해주었으니, 더이상 위험을 부담시킬 필요가 없다.
"학생들을 통솔하여 교내로 복귀!"
"학생 통솔 교내 복귀!"
대원이 복창하고는 교문을 지나 바람처럼 뛰어가 대원들에게 알리자,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학생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6소대는 아니고 수업중에 감독하던 대원들이다. 전습대원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에 익숙한 만큼 학생들은 불만이나 반항이 전혀 없이 내가 봐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오와 열을 갖추었다. 그리고는 선두부터 구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제가 있다면 얼치기 시위꾼들이 거의 다 도망갔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제 베테랑 시위꾼들이 자유롭게 전방으로 진출하여 싸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김석원을 선두로 한 6소대 전방 50미터 즈음에서 약 50~60명으로 추정되는 전문 시위꾼들이 쇠파이프를 땅에 갈고 죽창을 땅에 후려치면서 끝이 갈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쇠파이프를 땅에 가는 것은 위협을 가하기 위한 것일 뿐이지만, 죽창을 땅에 후려치면서 끝을 갈라놓는 건 진짜로 살상이 목적이었다.
시위대에서 죽창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끝을 날카롭게 잘라서 기름을 먹인 민란용 무기가 아니라 평범한 그냥 죽봉이다. 하지만 내려쳐 끝이 갈라진 죽봉은 경찰의 방석모를 향해 찌르면 갈라진 대나무 끝이 헬멧의 철망 속으로 파고들어 전의경의 눈알을 직접 뚫어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전의경의 방어구를 직접 타격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온 새로운 방식의 무장이었다. 길이는 거의 4m정도에 달하는 이 물건은 과연 대단한 위압감이 있었다.
"우리가 이겼군."
"예?"
경찰 임무 대행기를 들고 있던 대원이 반문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6소대는 김석원을 포함하여 32명에 불과하지만 베테랑 시위꾼들은 50~60여명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180cm급의 쇠파이프와 4m짜리 죽창을 들고 있는 자들을 길어야 90cm짜리 화이바글라스 지팡이와 180cm정도의 목봉을 든 대원들이 이긴다? 대충 봐도 이건 게임이 안된다. 물론 초보자가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지.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 저자들이 아무리 베테랑 시위꾼이래봐야 전의경과의 싸움 경험이 전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90년대 이후의 전의경들은 기본적으로 시설물 점거나 금지구역 진출을 노리는 시위대에 맞서 방패로 스크럼을 짜고 <인간 벽>을 만들어 저지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진압은 마지막에나 가서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위대의 전술도 이렇게 만들어진 <인간 벽>을 허무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긴 쇠파이프와 죽창이 등장한 것은 바로 이 방패를 깨부수고 전의경들이 버티지 못하게 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저들이 상대할 우리 전습대는 개개인이 무술을 배우고 군사 예술을 학습한 정예요원이며, <인간 벽>을 만드는 것 따위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위꾼의 장비는 오히려 독이 된다. 180cm의 쇠파이프는 길고 무거우며 위력을 가지려면 크게 들어서 후려쳐야 하는데, 무게가 있어 느리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겁먹고 먼 거리에서 얼쩡댄다면 모를까, 검술을 아는 사람에게는 말 그대로 차려진 밥상 이상의 뭔가는 될 수 없다. 4m급의 죽창도 마찬가지다. 긴 창은 전열끼리 싸울 때나 쓸모있는 것이지 개인 대결로 넘어가면 그만큼 쓸모없는 물건도 없다.
한편 6소대와 시위꾼들과의 거리는 15m까지 좁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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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68화 제1차 안산 사변(4)
언젠가 씁니다.




덧글
군대 어디로 다녀오셨습니까?
혹시 의경으로 다녀오셨나요? 아니면 의경출신에게 얘기들을 좀 들으신 거에요?
인간벽을 허물려고 작정하려면 (옆의 모나라처럼) 오히려 대나무끝을 단단하게 만들어서 충격력을 낼수 있게 하거나 쇠파이프를 길게 만들어 간격을 두기보단 오히려 적당히 짧게 만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인간벽을 허물려면 원형방패에 곤봉착용한 기동대의 형태가 가장 좋습니다.
허튼소리같겠지만 우리나라의 시위문화는 타국들에 비하면 매우 온건한 편에 속합니다.
길다란 쇠파이프도 하단세로 뒤에 숨겨 간격을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어 다가오지 못하게 하거나 위협용으로 크게 휘둘러 간격을 벌이거나 하며 사용했다죠.
뭐 아실수도 있는 얘기겠지만 그냥 써봅니다. 지피지기는 백전불태라며 어서 들었네요.
위에 분 댓글 보고 추가합니다만, 시위가 90년대 들어, 더욱 과격해진다고 들었습니다. 10월의 폭풍이란 대체역사소설은 이런 과정없이 80년대에 머문다는 설정을 두었다고, 작가분이 소개부분에서 첨부하더군요.
6월 민주화 이후 오히려 경찰의 대응이 바뀌면서 시위대가 공격하는 위치로 바뀌었죠.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방패벽을 허물기 위한 죽창이나 7m쇠파이프 같은 신무기들이죠. 해외처럼 가게 털고 자동차에 불지르는 것과 비교하면 온건하다고 볼 수 있기는 한데, 경찰과의 배틀이라는 시스템상으로는 우리나라가 경찰이나 시위대나 둘다 상타치는 편이죠. 물론 2014년 현재로써는 그조차도 고대의 옛이야기지만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