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zairai.egloos.com

포토로그



전습대 63화 통수 팬픽

"옷이라도 다른 걸 입고 하지 그랬나."

출장본영 사무실에 돌아와서 요시노부에게 들은 말이란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 여파는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역시 내가 전습대 제복을 입고 나타난 사진이 찍혀서 지역 자경단과 경찰이 연루된 민중탄압이라는 논지로 <민중의 소리>를 비롯한 언론에서 떠들어댔다. 하지만 의외의 부분이 브레이크가 되어 주었는데, 마침 전철연 디스하는 기사를 썼다고 전철연이 한겨레신문에 쳐들어와서 집기를 부수고 난장판을 부렸기 때문에 한겨레신문은 끝까지 논조를 <전부 다 개새끼> 라는 식으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뭇매는 경찰이 두들겨맞고 있었다. 내가 휘발유 뿌리고 난리부린 것은 생각지도 않게 묻혀버렸는데, 제복을 입고 돌아다니며 난동을 부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가 나오지 않은 것은 의아했다. 하지만 곧 이유는 알 만 했는데 <민중의 소리> 비밀 특파원이 크레인이 때려부순 골리앗 안에 있다가 골리앗이 추락하면서 짜부되버렸다는 기사가 나온 것이다. 물론 그것은 지역 깡패 투기자본을 옹호하고 <나중에야 나타난> 경찰을 욕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안산경찰서는 오랫만에 등장한 시위꾼들의 난동에 의해 어지러워졌다고 한다. 그리고 제갈 진욱은 졸지에 민주당, 진보당 의원들의 항의 방문을 받는 등 굉장한 고생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제갈 진욱이 뭔가 헛소리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허무도의 조언에 따라 스마트폰의 녹음 어플을 켜둔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날 제갈 진욱의 언동은 예의범절을 떠나 마치 전습대를 자기의 사병 취급하는 수준이었고, 더군다나 나는 개입 거부 의사를 여러차례 밝혔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날 이후로 전습대 출장본영이 주둔한 원곡고 앞에는 1인 시위대가 교대로 주둔하고, 가끔 수십명 정도의 시위대가 침묵 시위를 벌이는 모습 정도가 추가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방침상 천웅방 조직원들이 건들거리면서 괜히 시비를 털어줘야겠지만 왕조명은 1주일째 전습대에는 놀러오지도 않고, 전화 한통 없고, 천웅방 조직원들도 태업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전습대를 이길 수 없는 왕조명이 할 수 있는 반항의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왕조명이 투자를 받아 진행하고 있는 건설현장은 어제쯤 폭파 철거를 완료했다. 시민 단체 사람들이 스크럼을 짜고 폭력 자본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버텼지만 왠지 모르게 악이 받친 사내놈들이 복면을 쓰고 <어딘가에서> 나타났다가 개패듯이 패버리고서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아마 천웅방 애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한편 나는 <전습대 괴벨스> 허무도와 이야기 중이다.

"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만일 말입니다. 전습대가 목적이라면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비장의 한건을 터트리긴 할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력구제를 죄인 취급하지 않는 이 나라인데, 그들이 쇠파이프를 들면 장검이 나설 것이고... 사제총이나 거대 새총이라도 쏘면 우리의 총격을 받을 거야. 그들도 그걸 알텐데 함부로 그럴까?"

"봉행께서는 운동권 해본 적이 없으셔서 그들의 생리를 모르십니다. 혁명에는 피가 필요한 법이고 솔직히 이 추잡한 독재 국가를 바꾸기 위해서 자기 몸쯤은 불사를 열정을 가진 젋은이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들은 의미없이 죽는 게 아닙니다. 구국대오의 불길이 민중대열에서 불타오르기 위한 당김불이라는 말입니다. 김지하 같은 배신자는 그런 걸 폄하하지만.."

허무도는 어느 틈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말만 들어보면 지금도 운동권 같군?"

"흐흐흐... 옛날 기억이 돌아왔나 봅니다. 이거 나이를 먹어도 옛날 버릇이 사라지질 않습니다. 지금은 덴슈타이 이노찌의 입장이니 오해는 말아주십쇼."

"원래 알지도 못하는 애들이 좋다고 추종하고, 속속들이 다 아는 사람이야말로 더러움에 등을 돌리는 법 아닌가. 특히나 도덕적 헤게모니를 잡는 치들이라면 말이야. 그러니 나는 자네를 더욱 믿네."

"감사합니다."

"달인의 능력이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짐만 지우는 듯 하여 염치없으나 분골 쇄신을 바라네."

"기대해 주십시오."

허무도가 나가고 응접실 창문으로 바깥을 바라보자, 일사불란하게 근대 지팡이술을 배우는 학생들의 체육 시간 풍경이 펼쳐졌다. 이쯤되면 <파시스트 자경단, 학생들에게 군사 교련.. 나치즘의 망령> 제목으로 하나 올라올 때도 된 것 같은데...

순간 드르륵 하고 문이 열렸다. 내밀어진 얼굴은 여원홍이다. 여원홍은 나를 보더니 모자를 벗고 고개를 약간 숙인 다음 다시 모자를 쓰고 나에게 와서는 울상이 포함된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외람되지만 아주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듯 합니다.."

"총참모께서 이리 동요하시다니요. 일단 앉으십쇼."

여원홍은 나온 배 탓에 무게중심을 열심히 잡으며 소파에 앉았다. 앉자마자 모자를 책상에 내려놓고는 허리를 숙이고 양손을 맞잡고는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다.

"저희 천진기업에서 불온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춘계 임금협상은 별일없이 마무리된거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인정을 못하겠다고 합니다. 제 아들놈이 믿고 맡긴 노조위원장인데, 작년까지 아주 협조적이고 그러더니 올해 임금 협상까지 잘 마무리했다가 갑자기 말을 바꾸는 겁니다. 듣기론 모택동 구호를 외치며 우리 중국인 노동자를 선동하기 시작한다고 하는데.."

여원홍은 말하면서 살짝 열받기 시작하는 듯 했다. 모택동이라는 단어에서는 억양이 확실히 올라갔다. 한국군에서 평생을 살다시피 한 김석원이 좌익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싫어하는 것처럼 이 여원홍은 손문-장개석의 법통을 이은 대만에서 중화민국군으로 반평생을 산 사람이다. 당연히 공산당, 모택동을 싫어하지 않을 수가 없다.

"폭력 사태까지 생긴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중간 간부들과의 가벼운 충돌 정도는 있는 모양입니다. 월급 20%인상을 요구하며 선동하니 많은 노동자들이 속아넘어가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제 아들이 심은 프락치가 그러는데, 공장 점거와 파업도 불사할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여원홍의 아들이 오너를 물려받은 천진기업은 지난 청웅 사타부언 사태 이후로 전습대 시큐리티 서비스와의 계약을 체결한 입장이다. 그중에서 당연히 점거와 파업은 시설물의 불법 점유에 해당하므로 전습대의 출병을 요청할 수 있다. 만일 천진기업 건으로 일이 확대된다면 전습대는 반드시 출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바꿔 말하자면 전습대가 그 정체를 대대적으로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아직 전습대와 천진기업이 어떤 관계인지 모르는 모양이군요. 만일 문제가 생기면 위명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이 여원홍은 불안감을 감추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큰 무언가가 우리를 둘러싸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느낌 말입니다."

"검술에서도 말하듯이 상대의 공격을 기다리는 자는 성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일반 쟁의일 수도 있으니 전문 네고시에이터를 동원해 잘 협상할 수 있도록 하게 하십쇼. 만일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시큐리티 서비스 계약에 의한 정당한 파견이니 걱정은 없을 겁니다."

여원홍과의 대담은 이 정도로 끝냈지만, 과연 걱정이 없었을까?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지...

-----------------------------
다크 판타지 3부 신세기 괴신사집단 전습대 64화 봄은 투쟁의 계절
언젠가 씁니다.

덧글

  • 11th ACR 2014/04/04 18:16 # 답글

    그래도 현재까진 의좋게 지내던 왕조명인데, 이번에 단단히 삐져서 독자노선 타는거 아닌가 걱정입니다
  • 옆뱀 2014/04/04 20:10 # 답글

    위기;;;; 본격위기군요
  • 지나가던과객 2014/04/05 01:00 # 삭제 답글

    어째 혹호방주의 개입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 煙雨 2014/04/05 10:04 # 삭제 답글

    춘투가 다가오는군요 ㅎㅎ
  • 2014/04/06 10: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4/06 19:1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