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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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62화 바벨의 빛 팬픽

"오셨습니까? 이거 여러가지로 고생이 많으신데 불러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여전히 빛나는 개기름 피부에 위선자의 미소를 띤 제갈 진욱의 얼굴을 여전했다. 그리고 마치 인조 털을 연상케 하는 부자연스러운 부드러움이 묻어나는 저 말도 마찬가지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듣기로 이번에 건설 분쟁에 관여하실 예정이라고..."

제갈 진욱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더니 양손을 맞잡고 사타구니를 가리면서 고개를 들고는 말을 시작했다.

"안산시에 피곤한 일이 한두가지도 아니고.. 치안 수요는 늘어만 가는데 좌익 세력이 들어와서 구걸이나 하니 경찰서장으로써 힘든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안산시 치안 유지를 위해 전습대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물론 해 주시겠죠?"

나는 공식적으로 이 건에 전습대가 개입하게 되는 건 피하고 싶었다. 전습대는 만들 때야 생각도 안 했지만 지금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이미지를 너무 많이 달고 있는 입장이다. 진보 언론의 집중난타를 받으며, 젋은이들의 증오, 친일파라는 낙인, 학원가에서 수업시간마다 디스를 받는다면 사우론 못지 않은 악의 수뇌부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물론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지 메이킹이란건 그런 것이다.

한때 내가 덴슈 사부로 이상평과 했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조직이 성장하려면 뭐가 있어야지?"
"돈? 인맥? 권력인가요?"
"뭐긴 뭐야, 적이지! 적이 있어야 조직이 강해지지!!"

좀비사태 이후로 진보계열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수도권 인구가 대대적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인적자원도 크게 줄어들었다. 삶 자체가 팍팍해지면서 정치적인 싸움에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 구조와 노선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적이었지만 이미 여론도 과거처럼 진보가 대세를 차지하던 시절도 아니었으며, 진보세력을 극렬히 적대하는 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한마디로 그들은 지쳐가고 있었다. 자기들끼리도 노선 차이는 여전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묶어줄 <적>이 있다면 어떨까? 그 적이 바로 우리들이라면 그야말로 친일파, 잔인무도, 파시스트의 이미지가 이미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경찰과 연계하는 입장인 만큼 기득권과 정권의 개라는 이미지에도 딱 맞는다. 너무나도 강고한 국가체제에 더이상 아무리 시위를 해봐야 무너트릴 방도가 없고, 그래서 지쳐갔다. 하지만 일개 자경단이라면 최고의 먹잇감으로 손색이 없겠지.

그러므로 이번 일에는 전습대가 개입하는 건 피하는 편이 좋다.

"그런데... 이건 아무래도 건설 자본과 그네들 간의 일이기 때문에 제 생각에는 그들끼리 해결하게 하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경찰이 개입했다가 그들에게 빌미라도 준다면.."

제갈 진욱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나는 그런 친구들 다루는 법을 잘 압니다. 그러니 그건 걱정마시고 우리 하라는 대로만 하십쇼."

평소의 제갈진욱답지 않은, 강요하는 말투였다. 이자는 아무래도 작정하고 이번 일을 이용할 모양이다.

"그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습니다만 그친구들이 알아서 해결할 모양이고, 진전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일은 아무래도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는 게..."

순간 내 앞머리가 끌어당겨졌다. 제갈 진욱이 내 머리를 붙잡고 들어올린 다음 내 눈을 노려보고 있다. 그 눈 속에는 짜증이 이글거리고 있다.

"경찰공권력에 빌붙어 사는 기생충 주제에 자기 몸은 죽어라 챙기는군. 내일자로 의심가는 건수들 좀 뒤져볼까?"

마치 경멸스러운 똥무더기를 앞에 둔 듯한 표정을 지은 제갈 진욱은, 정말 말 그대로 애새끼를 납치해다가 눈 앞에서 72가지 방법으로 죽이는 라이브 쇼를 보여주지 않고는 분이 풀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 거만한 얼굴이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내 다리를 붙잡고 구두에 입을 맞추며 사정하는 꼬락서니를 상상하면서 겨우 분노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나 정도가 아니었더라면 벌써 칼에 맞아 두부 포장을 개봉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게 아닙니다... 다만 진보 언론의 공세는 저희로써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라, 그런 우려를 한 것일 뿐이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건 분노의 표정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제갈 진욱이 몸을 낮추면서 고개를 숙인 내 얼굴을 관찰하면서 낮은 톤으로 비아냥거렸다.

"기생충이면 기생충답게 주인 시키는 대로 기어다녀. 표정 관리 못하지?"

제갈 진욱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인 채로 얼굴을 돌렸다. 분노로 인해 부들부들 떠는 꼴을 보더니 제갈 진욱은 허리를 펴고 허리춤에 양손을 올리고는 의기 양양한 말투로 평소의 존댓말로 돌아왔다.

"음.. 그래서 말인데 내일이나 모레 중으로 작전을 개시할 예정이니까, 전습대의 전폭적인 협조를 바라는 바입니다. 알았냐?"

나는 알겠다고 답한 뒤 뒷걸음질로 서장실에서 걸어나왔다. 문을 닫자마자 다리가 휘청거렸다. 고혈압으로 뇌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경찰의 작전지도에 따르라... 전습대원들을 어떻게 써먹을 지는 뻔했다. 작전도 없이 마구잡이로 돌입시켜서 대 충돌과 희생을 강요하고, 기왕이면 건물 내에서 신너가 터져서 전습대와 전철연 둘다 불에 타서 죽으면 그보다 좋은 것이 더 없다, 이런 생각이겠지?

하지만 그 생각대로 되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경찰서를 나오자마자 전습대 관용차로 취급되는 링컨 MKS에 타면서 즉시 왕조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명아, 지금 당장 기름 있는대로 다 수배해! 휘발유고 경유고 있는대로 다!"

"예?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불이라도 지르시게요?"

"그래! 다 태워죽일 거다! 더이상 한순간도 용납 못해!"

"형 무슨일이에요? 자세히 이야기좀 해 봐요?"

"가서 말하마. 휘발유고 경유고 간에 죄다 살수차에 셋팅해놔! 차 망가진다고 지랄하면 칼로 찌르던지 차값 준다고 하던지 무슨 수를 써서든 다!"

도착하자 살수차가 겨우 한대 있었다.

"형... 대체 뭔일이에요?"

"저거 뭐 담은거야?"

"휘발유에요. 근데..."

"건물에 뿌려! 지금 당장!"

왕조명의 얼굴이 거의 사색이 되었다.

"형 진심이에요? 저긴 중국인들도 있다구요!"

"제갈 진욱은 너희와 우리, 그리고 전철연까지 한큐에 끝장내버릴 생각이다. 전습대는 경찰의 지휘를 받아 내일이나 모레 중으로 무조건 돌입하란다. 경찰 나으리들은 뒤에서 뒷짐지고 구경하신다는구나. 준비도 없이 건물을 점령한 놈들이 매복하는 현장으로 돌격을 해라? 아주 볼만한 꼬락서니가 나오겠군. 그러니 오늘 중으로 다 끝내서 그 위선자새끼를 엿먹여야겠어."

얼굴이 떨리는 것도 제어를 못하는 나를 본 왕조명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잠시 조용해졌지만 다시 항의하기 시작했다.

"안됩니다.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게 할 순 없어요."

왕조명을 돌아보았다. 반항적인 얼굴이다. 이놈은 피도 눈물도 없는 조직 보스로써는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정치가를 하는 게 더 나았을 놈이다.

"다음 기름은 언제쯤 오지?"

"그만 합시다. 예?"

"기름이 준비될 때까지 퇴거 방송을 한다. 휘발유를 뿌려놓으면 진심 미친놈이 아니고서는 못버티겠지."

눈을 크게 뜨며 뒷걸음질을 치던 왕조명은 급하게 달려가 부하들에게 소리를 쳤다. 10분도 안되어 확성기를 두어개 구해온 왕조명의 부하들이 확성기에 대고 필사적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중국어라서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아마 제발 빠져나오라고 하는 소리겠지.

한참 방송을 하는 와중에 살수차가 움직이지 않자 내가 직접 내려갔다. 나를 향해 거대 새총으로 쏘는 돌멩이가 날아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저씨, 지금 뿌려요! 지금!"

어리둥절해하던 이 양반은 자꾸 차체에 돌멩이가 날아와 텅텅 소리를 내면서 부딪치자 겁을 먹고 내려오질 못하고 있었다. 바닥에 튄 돌멩이가 내 프록코트 자락을 치고 날아갔다. 운전기사가 도저히 나오질 못하자 내가 주변에 있던 합판을 들고 방패막이가 되자 그제서야 나와서는 살수기를 조작해서 휘발유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7층짜리의 높은, 하지만 지금은 불타버려 폐허만 남은지 오래인 상가건물에 휘발유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휘발유 특유의 냄새도 매캐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천웅방 조직원들의 호소도 더욱 커져만 갔다.

"바로 다음 휘발유 실어오세요. 알았죠?"

고개를 끄덕이는 운전기사를 뒤로 하고 합판으로 돌멩이를 막아내면서 다시 반대편 건물로 왔다. 옥상에 올라오자 왕조명이 반쯤 절망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형,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요, 그냥 협박만 하고 말거죠?"

"모든 범죄의 원흉은 제갈 진욱이야."

왕조명을 밀치고 옥상 난간 쪽으로 가서 건물 쪽을 살폈다. 여전히 돌멩이들은 거대 새총으로 발사되고 있었지만 나를 노린 것은 천웅방 조직원들이 이미 설치해둔 합판들에 의해 튕겨나가고 있었다. 건물의 상황은 확실히 일반 농성자들뿐만 아니라 전철연 회원들도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합법에 의해 통제되는 경찰과, 삘받으면 다 죽이고 빵 갈 놈 하나 희생양으로 던져놓으면 그만인 조폭을 똑같이 생각해 왔나 본데, 이제 진짜 차이를 온몸으로 알 때가 되었다고 본다.

"기름은 언제 오는 거야? 주유소에서 있는대로 다 뽑아 오란 말야!"

순간 살수차가 두대 더 도착했다. 그걸 본 일반 농성자들이 하나 둘 건물 아래층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당황했는지 전철연 회원들이 입구를 막고 그들이 못 나가게 하려고 했지만 일반 농성자들이 막무가내로 빠져나오려고 하자 쇠파이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열받은 일반 농성자들이 허리춤에서 작은 칼을 꺼내자마자 전철연 회원이 칼을 꺼냈고, 일반 농성자 중 한명이 전철연 회원에게 달려들자 다른 전철연 회원이 칼로 그 농성자의 머리를 후려쳤다. 목이 2/3쯤 절단된 채로 푹 쓰러진 것을 본 일반 농성자들이 움찔했지만 그 전철연 회원에게 곧 천웅방 조직원들의 무자비한 거대 새총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돌멩이를 머리에 집중적으로 맞고 쓰러진 전철연 회원의 몸뚱이를 밟으며 농성자들이 도주하기 시작했고, 그 앞으로 건물 옥상에서 날아온 화염병이 두어개 깨지면서 불웅덩이를 만들었다. 농성자들은 눈앞에 불구덩이가 생기자 움찔하고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그걸 보고 효과가 있다고 확신했는지 농성자들에게 "자본과 타협하는 배신자새끼들, 얼렁 안 돌아와!!" 하면서 쌍욕을 날리는 전철연 회원들이 화염병을 몇개 더 준비했고, 일반 농성자들 앞으로 화염병을 몇개 더 던졌다. 다만 투척자들 중에서 아마추어가 있었던 모양이다.

화염병 자체는 바닥에 잘 떨어졌는데, 아까 살포한 휘발유가 벽에 묻어 있었다. 거기에 화염병 꼬다리의 불이 스치면서 불이 붙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전철연도 과거 실수 이후로 준비를 잘 해놨는지 곧 소화기를 쏘아 불을 껐다. 사실 아까 살포한 휘발유는 증발하면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불이 크게 번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일반 농성자들은 곧 도주하기 시작했는데, 살수차가 휘발유를 살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살수차의 휘발유가 뿌려지다가 하필 일반 농성자들의 머리 위로도 뿌려졌다. 그리고 그들 앞의 불웅덩이가 곧 농성자들을 덮쳤다.

"끼야아아아!!!!"

남자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하이톤의 비명을 지르면서 불길에 휩싸인 채로 여기저기 흩어지는 일반 농성자들, 그중 한명이 건물로 내달리다가 기둥을 부여잡고 몸을 비벼대었다. 불을 끄려고 한 생각이었겠지만 하필 휘발유에 젖은 기둥을 잡았으니 문제다. 그의 몸과 함께 기둥이 불길로 타오르기 시작했고 이윽고 불길이 외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푸화학-"

외벽을 타고 올라가던 불길은 3층 바닥에 고여있던 휘발유에 인화되어 곧 폭발에 가까운 불안개가 마치 영화처럼 창문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러면서 다시 외벽에 붙은 휘발유를 타고 옥상으로 빠르게 번지자 전철연 회원들이 소화기를 들고 번지는 불길을 필사적으로 잡고 있었다.

"투쾅!!"

폭음 소리와 함께 아침에 무너져 크레인을 깔아뭉갰던 골리앗이 폭발했다. 불에 휩싸여 달려가던 사람 한명이 그 골리앗으로 들어가버렸던 모양이다. 역시 골리앗에는 화염병 제조를 위한 인화물질이 가득했던 모양이었다.

전철연 회원들이 반격을 개시했다. 휘발유를 살포하는 살수차를 향해 무려 화염병을 쏘기 시작한 것이다. 돌멩이로는 끄떡도 안하니 선택한 행동 같은데, 휘발유를 뿌리는 살수차를 향해 화염병을 던진다?

"잘 찍어!"

카메라를 들고 이걸 촬영하는 파견 전습대원의 어깨를 치면서 독려하자, 곧 살수차를 향해 화염병이 날아가는 모습이 찍혔다. 그리고 살수차 한대가 곧 화염에 휩싸였고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근처에 있던 또다른 살수차도 곧 폭발했고 바닥에 불의 물줄기를 쏟으며 소멸해갔다. 좋아, 이로써 악당 성립이다!

"골리앗에 인화물질이 틀림없이 있다. 화염병 발사!"

"옥상까진 안날아갑니다!"

천웅방 조직원이 다급하게 외치자 나는 천웅방 조직원을 거들어 넷이서 고무줄을 땡겼고, 고무줄이 찢어지기 직전까지 팽팽하게 당겼다가 놓치자 화염병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멀리 날아갔다. 그런데 화염병이 깨지는 것 같지도 않고 지붕 위로 넘어갔는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던 참이라 정확하게 어찌 됐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푸화학----"

그 순간 골리앗의 틈새로 불이 붙은 기름이 물처럼 흘러나오더니 골리앗이 잠시 수축했다. 그러다가 불을 내뿜으면서 판넬 하나가 떨어져 나갔고, 그 판넬이 떨어져나간 구멍으로 만들어둔 화염병들이 어떤 것은 깨지면서 기름을 쏟고, 그 기름이 인화되고, 인화된 불이 전철연 회원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신너 통이 인화되었는지 허연 통 같은 것이 불이 붙어서 굴러나오더니 푸확 소리를 내면서 무너지듯이 사라져버렸고, 곧 불이 마치 용암 흐르듯이 골리앗 계단을 타고 쏟아졌다. 골리앗 판넬 떨어진 구멍으로 사람 같은 것이 떨어지기도 했다.

옥상 위의 전철연 회원들은 완전히 패닉 상태였다. 뜨거운 열기를 이기지 못한 몇명은 바닥으로 몸을 날렸다. 퍽퍽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들 모두 바닥의 화염 바다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시체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이미 중간 층의 창문에서 온몸에 붙은 불을 손으로 때려가면서 끄려고 시도하다가 창밖으로 떨어지는 사람도 있었고, 아마 농성을 위해 사놓았을 음료수로 불을 꺼보겠다고 몸에 뿌리다가 뜨거움을 못참고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다가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야말로 아부 라합의 불지옥이고, 지옥의 도성 판데모니움이다. 천웅방 조직원들은 죄다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최대한 멀리 물러났다. 그리고 골리앗은 고열에 노출되어 쇠가 시뻘개지자 강도를 잃어버린 철골이 허망하게 접히면서 옥상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불길이 옥상 전체로 쏟아지면서 콘크리트 건물조차도 다시 붉게 변해버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물로 주는 세례는 들어보았지만 불로 주는 세례는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바로 불로 세례를 주는 바로 그 사람이다!"

제갈 진욱이 가한 모욕을 싹 날려버리고도 그 열다섯 배에 달하는 쾌감에 나 또한 반쯤 정신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 순간 내 프록코트의 어깻자락을 강하게 쥐고 끌어당기는 자가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분노와 당황과 공포가 뒤섞인 얼굴의 왕조명이었다. 나는 씨익 웃으면서 눈동자만 돌려서 왕조명을 보았는데, 그 표정을 본 왕조명은 잠시 공포에 찬 얼굴을 하더니, 곧 눈빛을 바로 하고 분노하는 표정을 지으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꼭 휘발유를 뿌리고 그랬어야만 했습니까? 그들은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다구요!!"

나는 불길을 뒤로 하고 천천히 그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양팔을 벌리며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사담 후세인을 뽑은 이라크 국민들도 전범으로써의 책임이 있다. by 노먼 슈워츠코프."

왕조명의 표정이 점점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들도 전철연과 똑같다 이거에요? 그들은 그냥 속은 거라고요!"
"속으면 범죄 저질러도 되나!! 니 동생들을 개패듯이 팬 놈이 누구인지 말해봐, 니 사업을 엿먹인 새끼들의 이름을 말해봐! 왜 이제와서 좇같은 동포애가 발기하시기라도 했나? 안돼... 그러면 안됀다고... CNC프로그램 지우고 직장에서 도망친 우리 왕조명이..."

눈을 크게 뜨고 왕조명의 얼굴을 어루만지자 왕조명의 표정은 공포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소방차의 싸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들이 와서 주차하는 것이 보였다. 왕조명은 내버려두고 내려가자 경찰차에서 내린 제갈 진욱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얼굴도 당혹과 분노가 뒤섞인 상태였다.

"너.... 너...."

나는 다시 양팔을 들어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시늉을 하며 조용히 말했다.

"이거 제가 왔을땐 벌써 이렇게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정말 큰일입니다... 이걸 어·찌·해·야·좋·지·요?"

그리고는 씨익 웃어보였다.

"카마지로!!"

그 순간 불이 번쩍이는 듯 하더니 귀가 멍멍했다. 안경은 저 멀리 날아갔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왼쪽 뺨이 얼얼한 걸로 보아 싸대기를 맞은 것임에 분명했다. 왼쪽 뺨에 왼손을 대고 왼쪽을 보니 분노에 찬 얼굴로 서 있는 것은 총재, 도쿠가와 요시노부였다.

"경솔한 행동은 하지 말라고 했다. 전습대의 옷을 입고 이 무슨 경거망동인가!"

요시노부는 한국말로 말했지만, 나는 그에게 허리를 숙이며 일본말로 대답했다.

"모시와케 고자이마세누, 시카시 지분또시떼와 도오시요오모 데키누 죠타이데시타 유에!"

휘발유의 소모와 더불어 소방대의 필사적인 진화로 인해 불길은 사그라들고 있었다.

나는 가끔 이날의 행동을 후회한다. 이날의 행동은 전습대에게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순간이 다시 닥쳐 오더라도 달리 방법이 있었을까 생각한다면, 별다른 수는 없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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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 3부 전습대 63화
언젠가 씁니다.

덧글

  • 옆밤 2014/04/03 23:05 # 삭제 답글

    술탄님이 실제로 저렇게 하실리라고는..... 상상이 안가는군요;;;;;
    이건 지금 까지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보는 내가 다 주인공의 심리변화를 알수 있네요.
  • 11th ACR 2014/04/03 23:10 # 답글

    일이 꼬이고 꼬이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긴 하지만 역시 큰일이군요;
    너무 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왕조명/제갈진욱/요시노부 세 사람의 원망을 모두 떠안게 되었으니 과연 어찌 수습이 될지...
  • 위장효과 2014/04/03 23:11 # 답글

    제갈 진욱도 머리에 찬물 뒤집어쓰고 경계하겠군요.
  • 암호 2014/04/03 23:24 # 답글

    일이 확대되는군요. 후덜덜하네요.
  • Yasuo 2014/04/03 23:25 # 답글

    전에 돌림빵 하라고 할때부터...
    이미 주인공은 맛이 가 있어요...
  • 앤드류 체이스 커닝햄 2014/04/03 23:37 #

    누가 들으면 집단강간인줄 알겠습니다. 집단폭행의 학계(?)용어일 뿐이지요.
  • 장쾌 2014/04/04 00:15 # 삭제 답글

    오 이제는 제대로 다크하게 가기 시작하는군요
    사람을 썰 때부터 언뜻언뜻 비췄지만 이제는 그 정도가 더 깊어지는듯 싶네요
    전습대 보면서 이게 현실이라면 어떨까를 계속 생각해보게 되는데
    이번 경우는 현실이라면 빠져나가기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수준 같습니다
    주인공이 일을 이렇게까지 벌려놓았으니 과연 어떻게 헤쳐나갈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흐흐..
  • Zimen 2014/04/04 03:29 # 삭제 답글

    크어 막장뽕에 취하네여; 과연 뒷감당이 어찌될 것인가ㅠㅠ
  • 지나가던과객 2014/04/04 10:10 # 삭제 답글

    본격적인 사파 조직으로 거듭나게 될려나?
  • 煙雨 2014/04/04 12:32 # 삭제 답글

    크~~~주모 거 막장 한사발 더 주소! 오늘은 마셔야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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