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웅방이 한번 깨진 이후로 전철연은 의기양양했는지 협상을 제의했다. 왕조명 말로는 협상의 내용은 무슨 패전국에게 전쟁 배상금 물리겠다는 양, 완공될 건물 4개동 중 1개동의 권리를 양도하고, 골리앗 철거 비용으로 5천만원을 내놓아야 하며, 농성자들에게 전원 1인당 천만원씩의 배상금을 지급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왕조명과 조직원들은 기가 차서 성질이 나다 못해 협상하러 온 전철연 수뇌부들을 칼로 찔러 죽이기 직전까지 갔지만 전철연측이 화염병에 불을 당기고 협상장에 신너를 뿌리자 마지못해 보내주었다고 한다.
나의 조언대로 협상 내용은 녹음&녹화가 완료되었다. 전철연 수뇌부들이 하도 매의 눈을 가진 탓에 잘 숨겨놓느라 고생했고 덕분에 화면은 제대로 찍혔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음성은 제대로 녹음되었고 또 천웅방이 칼을 뽑고 전철연이 신너를 뿌리는 장면만큼은 그럭저럭 녹화되었다. 물론 여차할 때 이걸 공개할 순간에는 절대로 천웅방이 칼을 뽑는 장면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편집의 주도권은 우리에게 있다.
오늘의 전습대 전원회의에서도 이 내용이 나왔다. 근래 고잔뻘의 일본인 거주 지역에서의 치안 업무 투입으로 인한 문제가 제1상정 안건이었지만, 왕조명의 개발에 관련되어서 생기는 문제도 언급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자금을 투자한 것도 아니고, 그들의 문제는 그들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옳다."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반응은 이러했다. 그리고 다음에 덧붙인 말은..
"흑호방주의 행동도 그렇거니와 아무런 연고와 구실도 없는데 그런 단체가 들어온 것은 매우 불온한 일이다.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이상, 함부로 우리가 개입하고 연계될 일이 아니다."
"하오나..."
나의 우려는 더 큰 데에 있었다.
"저로써도 관여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감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허나 저들이 상대하는 것은 우리 전습대의 위명을 업은 천웅방, 저들이 보상을 받거나 하다못해 개발을 저지하기라도 한다면 저들과 이익을 원하는 자들의 유착이 앞으로 얼마나 더 심해질지 모릅니다. 그리고 외국인 보호 단체를 비롯한 다른 세력들이 저들이 개척한 길을 타고 더더욱 들어온다면, 무문의 명예로 권위를 얻는 우리 전습대의 활동이 얼마나 더 어려움을 받을런지, 봉행인 저로써는 그 점이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수긍하는 낯빛을 보냈다.
"하지만 봉행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좌익세력의 선동 능력은 보통 수준이 아닙니다. 도덕적 헤게모니를 선점하고 반대하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타박하는데,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우리 전습대에 어떤 악영향이 있을지.."
군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김석원은 좌익 진보세력이라면 일단 경끼부터 일으키고 보는 성격이었다. 그런 성격인만큼 지금 발언에도 살짝 감정이 묻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저로써도 전습대가 직접 나서는 것은 신중해야 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이번 분쟁의 주체는 천웅방입니다. 허나 무문의 역량은 매우 낮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무능한 것도 아닙니다. 좋은 장교단만 있으면 실력을 발휘할 자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저는 그들을 교육하면서 확인했습니다. 그러니 군사 고문단 형식으로 그들을 돕는다면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천웅방의 손으로 적을 친다는 것이죠."
"하지만..."
여원홍도 의문을 표하긴 마찬가지였다.
"언론의 취재 능력은 보통이 아닐 것인데, 고문단을 보낸다 한들 꼬리가 잡히는 일이 생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부분은 확실히 문제가 될 겁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보다는 상대 진영이 정당성을 잃게 언론 플레이를 잘 하면 됩니다."
김석원이 의문을 표했다.
"그게 됩니까?"
나는 그 점에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되게 만들 사람이 있습니다. 이 대원은 이미 아시겠지만, 얼마 전에 참모부로 전속한 허무도라는 대원입니다."
내가 손을 내밀어 그를 가리키자 여원홍 뒤에 앉아있던 허무도가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그래, 어떻게 그걸 해 낼 수 있다는 말인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김석원이었다. 이 사람은 성격상 언론플레이 같은 것에는 무관심했고 할 줄도 몰랐기 때문이리라.
"예로부터 선동과 유언비어는 먼저 푸는 자가 우위를 선점하는 법입니다. 이정도면 충분합니다."
요시노부가 흥미를 보였다.
"뭔가 좋은 방법이 있는 모양이지?"
"한겨레신문에 친구가 좀 있죠."
김석원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하지만 이내 의문을 표했다.
"전철연과 한겨레는 같은 좌익일텐데 과연 부정적인 기사를 내 줄건지 의문이군. 친구가 기사를 잘 써봐야 편집부 선에서 컷팅될 거야!"
표정을 보니 다들 비슷한 생각인 듯 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기로는 한겨레신문사는 전철연의 문제점을 낱낱들이 폭로한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과거 월간 <말>지에서도 부정적인 기사를 내자 전철연이 쳐들어가 폭동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지나친 과격 계급투쟁론으로 인하여 진보세력과도 척을 진 곳이 바로 전철연이다.
"그렇게 보시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교도는 용서해도 이단은 용서 못하는 것이 이곳 생리입니다. 저도 한때 운동권이었기 때문에 그 생리에 대해서는 직접 경험한 바 있습니다."
허무도의 말대로, 이교도는 용서해도 이단은 용서할 수 없는게 집단의 생리인 법. 더군다나 좌익 계열의 분파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모택동주의, 스탈린주의, 사민주의, 제2인터네셔널 등 온갖 단체가 서로 때려죽이는 대폭동을 저질렀던 60년대 일본 사회주의간의 반목 까지는 아니더라도, NL/PD세력 모두 소련의 멸망과 천안문 사태라는 일대 사건을 거치면서 말 그대로 멘붕에 빠져버렸다. 이후 이들은 각자 현실 인식을 다시 하면서 제 갈길을 갔는데, 그 갈라진 루트는 다양했다. 온건 사민주의화한 PD, 순수 사회운동 시민단체, 종북주의자, 노조세력, 농민, 언론인, 강남 학원가 교사들, 도 계열 종교단체, 다단계, 심지어는 새누리당에서도 제법 성공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끼리는 일단 비슷한 입장이었으나 세부적으로는 현실 인식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었고 이 부분에서는 여전히 반목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공산주의 혁명은 버렸지만 착취당하는 계급간의 투쟁을 연대하여 계급혁명을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노선을 가진 단체들이 있었다. 노조 쪽에 많지만 가장 격렬하기로는 전철연을 따를 자가 없었다. 민주화되고 온건화된 사회에서 이들의 존재는 사실 골칫덩이였고, 온건한 진보 계열 그룹들은 이들의 폭력적 이미지를 뒤집어쓸까봐 경계하는 입장이기도 했다.
"허무도, 잘 할 자신은 있겠지?"
어설픈 발음이지만 미남의 얼굴과 눈빛으로 커버하는 요시노부의 목소리가 들리자, 허무도는 즉시 요시노부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다짐했다.
"분골 쇄신하여 전력을 다할 마음입니다."
요시노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정면을 보면서 말했다.
"우리는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않으며, 고문단의 파견도 정식으로 하지는 않는다. 이 방침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라."
이것이 오늘 전원회의의 결론이었다.
전원회의가 끝나고 요시노부가 수업 준비를 위해 교무실로 떠난 직후, 김석원이 내 옆으로 와서는 아쉽다는 듯이 양손을 맞잡고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만일 개입이 이루어졌다면 음류도법의 칼 맛을 좀 보여줄까 했는데 참 세상이 복잡하니 뜻대로 되지를 않는군요."
부리부리한 눈매는 이미 노다치로 한칼에 두놈을 절단내버리고 있는 듯한 기세였다. 사실 전습대가 출병하면 어려울 것이 없긴 했다. 스카이크레인을 동원하여 폐건물 옥상 위에 설치해놓은 투쟁용 가건물 <골리앗>보다 위에서 저격을 하면서 놈들을 소모시켜주면 알아서 발악할 것이고, 골리앗이 방탄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좀 쏘다가 내부에 들어있을 화염병이나 신나, 벤젠에 인화라도 하면 손쉽고 간편하게 끝날 일이다. 그런 게 없다 해도 계속해서 피해가 누적되니 알아서 자기들이 빠져나와 공격을 시도하던지, 항복하고 알아서 나가는 것으로 끝나는 시나리오가 전개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한편 먹을 단체들이 많고, 만일 우리가 그들에게 괴멸적인 타격이라도 입힌다면 수많은 단체들의 공공의 적이 될 가능성이 막대하다. 객관적으로 보자, 제복을 입은 자경단이 일본도를 차고 다니며 총까지 쏘아 대는데, 그 수장이 일본인에 단체명은 일본의 군사 조직이었던 전습대라.. 이것은 한국인이라면 전자동으로 경기를 일으키는 친일 반민족세력 파시즘 분자에 딱 어울리는 모습 아닌가?
만일 흑호방 방주 녀석이 뭔가를 획책하려고 하고 있고, 그 현상의 일부가 이번 전철연 사태라면 우리를 진보세력의 타겟으로 만들어 무자비한 집중타격이 쏠리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일 거라 추측한다. 전습대가 전철연에 개입하여 총이라도 신나게 쏴댄다면 그 즉시 <민중의 소리>와 같은 계급투쟁적 언론이 대대적인 선동을 개시할 것이며,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에 휩쓸려 <친일 파시즘의 민중 대학살>에 대한 분노에 이를 갈고 치를 떨 것이니만큼..
하지만 그렇게 될 생각은 없었다. 며칠 후에 받아든 <주간 한겨레>에는 전철연의 이번 건물 점거 사태에 대한 세세한 비판 기사가 실렸고, 그 논조는 전철연이 천하의 기생충이며, 세입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다는 의미조차 상실했다는 데에 이르고 있었다.
<민중의 소리>는 즉각 이에 대한 반박 기사를 내고 갈곳 없는 사람들을 내몬 투기자본의 사악함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으며, 건물이 무연고라는게 꼭 중요한 것이 아니며 이는 돈에 눈이 멀어 사람을 핍박하는 투기자본에 대한 투쟁이라는 논지를 펼쳤다. 물론 그런 논조가 나올 거라는 건 우리의 허무도가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곧 왕조명에게 넘겨받은 전철연 지도부와의 1차 협상의 녹취록이 유튜브를 통해 올랐다.
원래 첫번째 협상에서는 말도 안되는 요구조건을 내거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인들이 <러시아 방식>이라며 이를 가는 이 방식은 처음에 엄청난 배상금 등을 요구했다가 선심 쓰듯이 깎아주는 것이다. 그동안 건물을 점거하면서 나날이 개발 지연에 따른 손해가 싾여가는 출혈을 강요하고, 그럼으로써 사업자가 배상액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몰아붙인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그런 행동이 정상으로 보일 리도 없었고, 설사 안다 치더라도 무연고 건물에 들어앉아서 깽판 치는게 당위성의 1%라도 가질 리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2005년이 아니다. 우익 네티즌들의 비중도 만만치 않았고, 그 화력도 장난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퍼다 나르는 상황이 벌어지자 조선-중앙-동아 3사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조명하는 기사를 싣자, 전철연과 <민중의 소리>는 그야말로 궁지에 몰렸다.
이로써 자칭 <선전의 달인> 허무도는 자신의 능력을 완벽하게 입증한 셈이었다.
한편 그동안 비밀 군사 고문단이 하고 있던 일은 이러했다.
우리야 언론 플레이가 잘 되어서 즐겁던 와중, 왕조명은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 진짜 언론 새끼들 진짜 죽여버려... 아오!!"
왕조명이 서러움을 금치 못하는 이유는 이러했다. 왕조명은 투자자들의 돈, 좋게 말해 투자자지 인천쪽 조폭들의 돈을 받아 이번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때아닌 전철연과 떨거지들의 건물 점거 사태에 공사가 진행되지 못했고, 한번 시도한 총공세는 참담한 실패로 끝나버렸다. 이것만으로도 천웅방은 폭력에서나 일 진행 능력에서나 대단찮은 조직에 불과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당연히 왕조명 입장에서는 이걸 필사적으로 숨겨야만 했다. 그런데 주간 한겨레를 필두로 이 공사 알박기가 여기저기에 퍼지면서 투자자들도 전부 알아버리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왕조명은 때아닌 독촉 전화와 항의 방문에 시달리는 처지가 되었다. 당연히 미치지 않을 수가 없었지.
이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 최단시간 내에 건물들을 점거하고 철거를 완료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천웅방에서 왕조명의 직속으로 움직이는 이른바 "72제자"중 42명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고, 30명 가지고는 저 무시무시한 전철연을 상대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천웅방의 대의원들에게서 애들을 빌려와야 할 처지인데,
왕조명의 승승장구를 아니꼽게 생각하던 이 친구들은 이번 일에 대해서 왕조명을 물고늘어지며 책임론을 내세우기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왕조명은 급하게 공작을 벌여 대의원 중 4명에게서 협조 약속을 받아내었고 그 대가리 수는 약 100여명, 왕조명의 직속 부하들까지 합치면 총 130여명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요 형. 당장 치면 안되겠죠?"
쪽수가 많아지자 자신감을 가진 모양이었지만, 이 친구는 아직 불로 받는 세례가 무엇인지 모른다. 쪽수만 믿고 함부로 건물로 진입했다가 농성측이 궁지에 몰리면 신너라도 뿌려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어차피 들통난거, 시간을 두고 해결해보자."
"형 안돼요... 진짜 우리 망한다구요..."
"걱정마. 이럴 때일수록 여유를 가지고 일해야지. 그러고보니 쟤들 식량은 별로 없다고 했었나?"
원래 이런 알박기 농성에서만큼은 기본적으로 처음부터 식량을 가지고 들어가는 법이다. 그런데 왕조명에게 듣기로는 건물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내부에서는 식량을 싾아둔 걸 못 봤다는 것이다.
"애들 말로는 그렇다던데요.."
"그런게 어딨어? 내가 저런거 가끔 봤는데 그런건 제대로 해놓는 법이야. 아무튼 식량은 당연히 있을 테니 시간을 좀 더 두고 봐야겠지."
그 다음날 커다란 현수막 두개가 공수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형제여! 고려봉자(한국인을 비하하는 중국어)에 속아넘어가지 말라!>
<철거는 4월 3일 시작된다! 거짓말을 믿으면 죽는다! 한국인들은 거짓말쟁이다!>
라는 말이 중국어로 쓰여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는 바로 커다란 크레인이 나타나서 주변을 왔다갔다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철거용의 커다란 철구가 달려있었다. 쌍안경으로 보니 일반 농성자들은 크게 동요하는 듯 했다. 심지어는 자기들끼리 큰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모습까지 관측되었고, 결국 5명이 건물에서 내려와 쇠파이프를 집어 던지며 나가버렸다. 전철연 회원으로 보이는 사람 한명이 소리를 치면서 그들을 막으려고 했지만 허리춤에서 튀어나온 사시미들에 의해 널부러진 시체가 되었을 뿐이다.
다음날 오전에는 용접으로 만들어온 Y자의 거대 새총을 24개 정도 주변 건물 옥상에 설치했다. 강력한 고무줄을 둘이서 땡기는 방식으로 돌멩이를 발사해서 골리앗에 맞추도록 시키자, 전철연 측도 거대 새총에 화염병을 재어서 반격을 가해 왔지만 우리쪽 건물 외벽에 맞는게 고작이었다. 그게 안되자 벽돌을 깨서 조각처럼 만들어서 쏘기 시작했고 이것은 상당히 위협적이었지만 이미 합판으로 보호벽을 만든 천웅방 조직원들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그날 오후에는 살수차를 동원해서 신나게 물을 뿌려댔다. 고압의 물줄기가 노린 것은 다름아닌 일반 농성자들이었다. 그들의 사기를 저하시켜서 저항을 포기하고 빠져나오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날 저녁이 되어 온도가 내려가자 물에 젖은 생쥐꼴이 된 일반 농성자들 중 몇몇이 옥상에 올라가서 전철연 회원과 손가락질을 하며 말싸움을 벌이는 것이 관측되었다. 이야기가 다르지 않냐고, 큰돈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었냐고 말하는 듯 했는데, 언쟁 중 성질이 난 한국인 일반 농성자 한명이 전철연 회원의 싸대기를 갈기자 전철연 회원도 질세라 같이 후려쳤다.
이윽고 주먹질이 전개되었고 한국인 농성자가 전철연 회원을 깔고 앉자 같이 있던 중국인들이 무자비한 발길질로 한국인 농성자를 도왔다. 골리앗에서 전철연 회원들이 내려와 쇠파이프로 일반 농성자들을 후려치자 하나 둘 올라와서 소란을 구경하던 일반 농성자들이 분노하여 전철연 회원들과 패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버티지 못한 회원들이 하나 둘 흩어져서 도망치자 갑자기 골리앗 위에서 화염병이 떨어져내렸고, 이걸 겨우 피한 일반 농성자들이 온갖 쌍욕을 퍼부으며 계단을 내려와 머리에 썼던 두건을 벗어 내팽개치며 건물 문을 나와서 천웅방 조직원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아직 사람들은 꽤 남아있었다. 회원들까지 합하면 거의 50명에 달한다고 볼 수 있었다.
약속한 4월 3일이 되자 거대 크레인이 철거용 철구를 매달고 굉음을 울리며 나타났다. 전철연 회원들이 새총을 무자비하게 쏘아가며 견제를 시도했지만 천웅방측이 24개의 거대 새총을 풀가동해서 마구 쏘아대기 시작하자 크레인을 노리고 새총을 조작하던 전철연 회원들이 미간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공격이 멎기 시작하자 크레인이 연기를 뿜으면서 최고 속도로 건물 쪽으로 돌진했고, 이윽고 철구로 건물을 후려칠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하자 전철연의 화염병과 돌멩이 발사가 한층 더 심해졌다. 그만큼 우리도 전철연 측으로 무자비하게 쏘아대고 있었지만 전철연 측이 훨씬 필사적이었다. 나무 합판을 가져와서는 돌멩이를 막다가, 천웅방이 쏜 화염병이 맞아 합판에 불이 붙어도 초인적인 근성으로 합판을 들고 버티고 있었다. 불이 붙더라도 최대한 한발이라도 더 쏴야겠다는 의지의 표출이었다.
전철연이 필사적인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크레인이 연기를 내뿜으며 지지대를 급히 전개하고, 철구를 옥상 높이에 맞추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사전에 이미 나는 크레인 기사에게 이거 하나만을 주문해 두었다. 바로 골리앗이 세워진 건물 옥상 부분을 후려쳐서 골리앗을 무너트리라는 작전이다.
전철연 회원들이 불붙은 합판 탓에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잠시 대피한 순간, 크레인이 차체를 크게 돌리면서 철구로 건물을 후려쳤다. 옥상에 균열이 가면서 골리앗이 살짝 기우는 것이 보였다. 옆 건물의 전철연 회원들은 이제 눈에 뵈는 게 없었는지 쇠파이프와 일본도를 들고 계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투쾅!!!"
크레인이 2번째 타격을 가하자 건물 최상층 한켠이 무너졌고 당연히 골리앗도 무너졌다. 문제는...
"쿠웅..."
골리앗과 건물의 콘크리트 잔해가 섞인 커다란 먼지와 함께 도로를 철구가 강하게 내리찍었다. 크레인으로 달려가던 전철연 회원 4명의 몸뚱이가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뒤틀렸다. 크레인이 옥상에서 떨어진 골리앗에 맞아 크레인 암(Arm)이 꺾이고 부러진 것이다. 크레인 운전기사가 있던 운전석은 골리앗의 철골에 맞아 형편없이 짓이겨져 있었다.
"이런..."
새총을 쏘던 천웅방 조직원들도, 옆 건물의 농성자들도 다들 싸우는 걸 잊어버리고 크레인만 보고 있었다.
"조명아, 빨리 크레인 한대 더 수배해봐."
생각보다 소강 상태가 길게 이어지는 가운데 왕조명이 자기 휘하의 간부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더니 말하기를, 안산 주변에는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크레인이 없다고 했다. 더군다나 철거용 철구를 갖춘 곳은 단 한곳도 없다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이 인천에 대형 크레인이 있는데, 그조차도 오늘 일이 있어서 조직의 이름으로 협박을 해도 빨라봐야 내일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안에 끝내려고 했는데 일이 맘대로 안되네..."
천웅방 조직원과 왕조명의 표정은 복잡미묘했다. 난공불락 같던 골리앗도 무너트리고 건물 하나는 사실상 점령한 거나 다름없었지만, 가장 중요한 크레인이 박살이 나버렸다. 그리고 아직 건물 하나는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였다. 진전은 있었지만 해결은 안된 상황이다.
"안되겠다. 조명아. 조금 늦어지겠지만 사흘 안으로 끝내자. 알았지?"
손을 머리에 대고 난감해하는 왕조명을 뒤로 하고 건물을 빠져나오려 할 때 갑자기 전화가 왔다. 김형사였다.
"어라 김형사님? 그러고보니 본청에 돌아가시고 제가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김형사는 청웅 사타부언 사건 해결 이후로 원곡파출소 유배생활을 끝내고 안산경찰서로 돌아간 상황이었다.
"아이 이친구 흐흐.. 뭐 따로 찾아올 필요까진 없을거 같애, 우리 제갈 서장이 안그래도 전습대에 뭘 좀 시킬려고 하더라구. 그래서 전화한거야."
두가지 건 협의하려고 40분동안 입에 발린 소리만 하는 아프간 부족장처럼 속이 시커먼 제갈 진욱놈.. 무슨 덤탱이를 씌우려고?
"이번에 그 재개발하려는 무연고 건물들에 전철연 새끼들이 들어앉았다매?"
"예, 뭐 그렇긴 한데 저희랑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니까 그 건축주들이 알아서 해결하겠죠."
"어, 근데 우리 제갈 서장님이 불법 점거랑 시위는 절대 안된다고 해산을 종용한다데. 근데 자네도 알겠지만 걔들이 그런다고 물러날 애들이 아니잖아? 그래서 일단 미끼 하나 날려보고, 거부하면 바로 강제 해산 시켜버릴 거라데."
텅텅 빈 경기도 경찰에 제대로 된 제갈 진욱놈이 우릴, 아니 모든 종류의 자경단을 다 싫어하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리랑 전철연을 맞짱뜨게 해서 소모를 시켜보겠다는 이야기인가?
"저기 근데 저희가 요즘 사람도 별로 없고 해서요... 아시다시피 고잔뻘 일본인 거주구역에도 순찰을 돌리니까 지금 저희도 빡빡한거 아시잖아요. 그... 사이비 관장네한테 좀 시켜 보시죠."
"제갈 서장이 무조건 전습대 시켜야 된다데? 걔네들은 걍 무능하잖아. 아무튼 오늘 바로 왔으면 하더라구. 일단은 제갈 서장이랑 이야기해보는게 나을 거야. 그럼 시간은 언제로 잡을까? 제갈 서장은 한시간 안으로 바로 봐야 된다고 빨리 오라던데."
"바로 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일해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천웅방 조직패야 말 그대로 실체가 없는 애들이지만 전습대는 명백하게 겉으로 드러난 단체이고 게다가 수장이 무려 일본인, 그리고 그 수장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고잔뻘에 일본인을 이주시키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걸 살짝만 비틀어주면 요시노부는 대한민국을 왜놈에게 넘기려는 야망을 가진 자이며, 전습대는 친일 반민족 폭력 우익 백색테러 전문 인외마경 외국인차별 기득권 집단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것 때문에 구태여 직접 개입을 안 하려고 한 것인데..
"제갈 진욱... 이 쓰레기같은 놈! 몰래 습격해서 머리통을 쪼개 버렸어야 했는데!"
협의를 위해 단원경찰서로 가는 동안 주먹으로 내려쳐서 울린 경적만 서른 세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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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62화 바벨의 빛
언젠가 씁니다.
나의 조언대로 협상 내용은 녹음&녹화가 완료되었다. 전철연 수뇌부들이 하도 매의 눈을 가진 탓에 잘 숨겨놓느라 고생했고 덕분에 화면은 제대로 찍혔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음성은 제대로 녹음되었고 또 천웅방이 칼을 뽑고 전철연이 신너를 뿌리는 장면만큼은 그럭저럭 녹화되었다. 물론 여차할 때 이걸 공개할 순간에는 절대로 천웅방이 칼을 뽑는 장면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편집의 주도권은 우리에게 있다.
오늘의 전습대 전원회의에서도 이 내용이 나왔다. 근래 고잔뻘의 일본인 거주 지역에서의 치안 업무 투입으로 인한 문제가 제1상정 안건이었지만, 왕조명의 개발에 관련되어서 생기는 문제도 언급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자금을 투자한 것도 아니고, 그들의 문제는 그들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옳다."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반응은 이러했다. 그리고 다음에 덧붙인 말은..
"흑호방주의 행동도 그렇거니와 아무런 연고와 구실도 없는데 그런 단체가 들어온 것은 매우 불온한 일이다.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이상, 함부로 우리가 개입하고 연계될 일이 아니다."
"하오나..."
나의 우려는 더 큰 데에 있었다.
"저로써도 관여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감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허나 저들이 상대하는 것은 우리 전습대의 위명을 업은 천웅방, 저들이 보상을 받거나 하다못해 개발을 저지하기라도 한다면 저들과 이익을 원하는 자들의 유착이 앞으로 얼마나 더 심해질지 모릅니다. 그리고 외국인 보호 단체를 비롯한 다른 세력들이 저들이 개척한 길을 타고 더더욱 들어온다면, 무문의 명예로 권위를 얻는 우리 전습대의 활동이 얼마나 더 어려움을 받을런지, 봉행인 저로써는 그 점이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수긍하는 낯빛을 보냈다.
"하지만 봉행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좌익세력의 선동 능력은 보통 수준이 아닙니다. 도덕적 헤게모니를 선점하고 반대하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타박하는데,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우리 전습대에 어떤 악영향이 있을지.."
군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김석원은 좌익 진보세력이라면 일단 경끼부터 일으키고 보는 성격이었다. 그런 성격인만큼 지금 발언에도 살짝 감정이 묻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저로써도 전습대가 직접 나서는 것은 신중해야 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이번 분쟁의 주체는 천웅방입니다. 허나 무문의 역량은 매우 낮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무능한 것도 아닙니다. 좋은 장교단만 있으면 실력을 발휘할 자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저는 그들을 교육하면서 확인했습니다. 그러니 군사 고문단 형식으로 그들을 돕는다면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천웅방의 손으로 적을 친다는 것이죠."
"하지만..."
여원홍도 의문을 표하긴 마찬가지였다.
"언론의 취재 능력은 보통이 아닐 것인데, 고문단을 보낸다 한들 꼬리가 잡히는 일이 생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부분은 확실히 문제가 될 겁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보다는 상대 진영이 정당성을 잃게 언론 플레이를 잘 하면 됩니다."
김석원이 의문을 표했다.
"그게 됩니까?"
나는 그 점에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되게 만들 사람이 있습니다. 이 대원은 이미 아시겠지만, 얼마 전에 참모부로 전속한 허무도라는 대원입니다."
내가 손을 내밀어 그를 가리키자 여원홍 뒤에 앉아있던 허무도가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그래, 어떻게 그걸 해 낼 수 있다는 말인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김석원이었다. 이 사람은 성격상 언론플레이 같은 것에는 무관심했고 할 줄도 몰랐기 때문이리라.
"예로부터 선동과 유언비어는 먼저 푸는 자가 우위를 선점하는 법입니다. 이정도면 충분합니다."
요시노부가 흥미를 보였다.
"뭔가 좋은 방법이 있는 모양이지?"
"한겨레신문에 친구가 좀 있죠."
김석원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하지만 이내 의문을 표했다.
"전철연과 한겨레는 같은 좌익일텐데 과연 부정적인 기사를 내 줄건지 의문이군. 친구가 기사를 잘 써봐야 편집부 선에서 컷팅될 거야!"
표정을 보니 다들 비슷한 생각인 듯 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기로는 한겨레신문사는 전철연의 문제점을 낱낱들이 폭로한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과거 월간 <말>지에서도 부정적인 기사를 내자 전철연이 쳐들어가 폭동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지나친 과격 계급투쟁론으로 인하여 진보세력과도 척을 진 곳이 바로 전철연이다.
"그렇게 보시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교도는 용서해도 이단은 용서 못하는 것이 이곳 생리입니다. 저도 한때 운동권이었기 때문에 그 생리에 대해서는 직접 경험한 바 있습니다."
허무도의 말대로, 이교도는 용서해도 이단은 용서할 수 없는게 집단의 생리인 법. 더군다나 좌익 계열의 분파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모택동주의, 스탈린주의, 사민주의, 제2인터네셔널 등 온갖 단체가 서로 때려죽이는 대폭동을 저질렀던 60년대 일본 사회주의간의 반목 까지는 아니더라도, NL/PD세력 모두 소련의 멸망과 천안문 사태라는 일대 사건을 거치면서 말 그대로 멘붕에 빠져버렸다. 이후 이들은 각자 현실 인식을 다시 하면서 제 갈길을 갔는데, 그 갈라진 루트는 다양했다. 온건 사민주의화한 PD, 순수 사회운동 시민단체, 종북주의자, 노조세력, 농민, 언론인, 강남 학원가 교사들, 도 계열 종교단체, 다단계, 심지어는 새누리당에서도 제법 성공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끼리는 일단 비슷한 입장이었으나 세부적으로는 현실 인식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었고 이 부분에서는 여전히 반목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공산주의 혁명은 버렸지만 착취당하는 계급간의 투쟁을 연대하여 계급혁명을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노선을 가진 단체들이 있었다. 노조 쪽에 많지만 가장 격렬하기로는 전철연을 따를 자가 없었다. 민주화되고 온건화된 사회에서 이들의 존재는 사실 골칫덩이였고, 온건한 진보 계열 그룹들은 이들의 폭력적 이미지를 뒤집어쓸까봐 경계하는 입장이기도 했다.
"허무도, 잘 할 자신은 있겠지?"
어설픈 발음이지만 미남의 얼굴과 눈빛으로 커버하는 요시노부의 목소리가 들리자, 허무도는 즉시 요시노부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다짐했다.
"분골 쇄신하여 전력을 다할 마음입니다."
요시노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정면을 보면서 말했다.
"우리는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않으며, 고문단의 파견도 정식으로 하지는 않는다. 이 방침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라."
이것이 오늘 전원회의의 결론이었다.
전원회의가 끝나고 요시노부가 수업 준비를 위해 교무실로 떠난 직후, 김석원이 내 옆으로 와서는 아쉽다는 듯이 양손을 맞잡고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만일 개입이 이루어졌다면 음류도법의 칼 맛을 좀 보여줄까 했는데 참 세상이 복잡하니 뜻대로 되지를 않는군요."
부리부리한 눈매는 이미 노다치로 한칼에 두놈을 절단내버리고 있는 듯한 기세였다. 사실 전습대가 출병하면 어려울 것이 없긴 했다. 스카이크레인을 동원하여 폐건물 옥상 위에 설치해놓은 투쟁용 가건물 <골리앗>보다 위에서 저격을 하면서 놈들을 소모시켜주면 알아서 발악할 것이고, 골리앗이 방탄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좀 쏘다가 내부에 들어있을 화염병이나 신나, 벤젠에 인화라도 하면 손쉽고 간편하게 끝날 일이다. 그런 게 없다 해도 계속해서 피해가 누적되니 알아서 자기들이 빠져나와 공격을 시도하던지, 항복하고 알아서 나가는 것으로 끝나는 시나리오가 전개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한편 먹을 단체들이 많고, 만일 우리가 그들에게 괴멸적인 타격이라도 입힌다면 수많은 단체들의 공공의 적이 될 가능성이 막대하다. 객관적으로 보자, 제복을 입은 자경단이 일본도를 차고 다니며 총까지 쏘아 대는데, 그 수장이 일본인에 단체명은 일본의 군사 조직이었던 전습대라.. 이것은 한국인이라면 전자동으로 경기를 일으키는 친일 반민족세력 파시즘 분자에 딱 어울리는 모습 아닌가?
만일 흑호방 방주 녀석이 뭔가를 획책하려고 하고 있고, 그 현상의 일부가 이번 전철연 사태라면 우리를 진보세력의 타겟으로 만들어 무자비한 집중타격이 쏠리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일 거라 추측한다. 전습대가 전철연에 개입하여 총이라도 신나게 쏴댄다면 그 즉시 <민중의 소리>와 같은 계급투쟁적 언론이 대대적인 선동을 개시할 것이며,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에 휩쓸려 <친일 파시즘의 민중 대학살>에 대한 분노에 이를 갈고 치를 떨 것이니만큼..
하지만 그렇게 될 생각은 없었다. 며칠 후에 받아든 <주간 한겨레>에는 전철연의 이번 건물 점거 사태에 대한 세세한 비판 기사가 실렸고, 그 논조는 전철연이 천하의 기생충이며, 세입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다는 의미조차 상실했다는 데에 이르고 있었다.
<민중의 소리>는 즉각 이에 대한 반박 기사를 내고 갈곳 없는 사람들을 내몬 투기자본의 사악함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으며, 건물이 무연고라는게 꼭 중요한 것이 아니며 이는 돈에 눈이 멀어 사람을 핍박하는 투기자본에 대한 투쟁이라는 논지를 펼쳤다. 물론 그런 논조가 나올 거라는 건 우리의 허무도가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곧 왕조명에게 넘겨받은 전철연 지도부와의 1차 협상의 녹취록이 유튜브를 통해 올랐다.
원래 첫번째 협상에서는 말도 안되는 요구조건을 내거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인들이 <러시아 방식>이라며 이를 가는 이 방식은 처음에 엄청난 배상금 등을 요구했다가 선심 쓰듯이 깎아주는 것이다. 그동안 건물을 점거하면서 나날이 개발 지연에 따른 손해가 싾여가는 출혈을 강요하고, 그럼으로써 사업자가 배상액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몰아붙인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그런 행동이 정상으로 보일 리도 없었고, 설사 안다 치더라도 무연고 건물에 들어앉아서 깽판 치는게 당위성의 1%라도 가질 리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2005년이 아니다. 우익 네티즌들의 비중도 만만치 않았고, 그 화력도 장난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퍼다 나르는 상황이 벌어지자 조선-중앙-동아 3사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조명하는 기사를 싣자, 전철연과 <민중의 소리>는 그야말로 궁지에 몰렸다.
이로써 자칭 <선전의 달인> 허무도는 자신의 능력을 완벽하게 입증한 셈이었다.
한편 그동안 비밀 군사 고문단이 하고 있던 일은 이러했다.
우리야 언론 플레이가 잘 되어서 즐겁던 와중, 왕조명은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 진짜 언론 새끼들 진짜 죽여버려... 아오!!"
왕조명이 서러움을 금치 못하는 이유는 이러했다. 왕조명은 투자자들의 돈, 좋게 말해 투자자지 인천쪽 조폭들의 돈을 받아 이번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때아닌 전철연과 떨거지들의 건물 점거 사태에 공사가 진행되지 못했고, 한번 시도한 총공세는 참담한 실패로 끝나버렸다. 이것만으로도 천웅방은 폭력에서나 일 진행 능력에서나 대단찮은 조직에 불과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당연히 왕조명 입장에서는 이걸 필사적으로 숨겨야만 했다. 그런데 주간 한겨레를 필두로 이 공사 알박기가 여기저기에 퍼지면서 투자자들도 전부 알아버리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왕조명은 때아닌 독촉 전화와 항의 방문에 시달리는 처지가 되었다. 당연히 미치지 않을 수가 없었지.
이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 최단시간 내에 건물들을 점거하고 철거를 완료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천웅방에서 왕조명의 직속으로 움직이는 이른바 "72제자"중 42명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고, 30명 가지고는 저 무시무시한 전철연을 상대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천웅방의 대의원들에게서 애들을 빌려와야 할 처지인데,
왕조명의 승승장구를 아니꼽게 생각하던 이 친구들은 이번 일에 대해서 왕조명을 물고늘어지며 책임론을 내세우기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왕조명은 급하게 공작을 벌여 대의원 중 4명에게서 협조 약속을 받아내었고 그 대가리 수는 약 100여명, 왕조명의 직속 부하들까지 합치면 총 130여명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요 형. 당장 치면 안되겠죠?"
쪽수가 많아지자 자신감을 가진 모양이었지만, 이 친구는 아직 불로 받는 세례가 무엇인지 모른다. 쪽수만 믿고 함부로 건물로 진입했다가 농성측이 궁지에 몰리면 신너라도 뿌려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어차피 들통난거, 시간을 두고 해결해보자."
"형 안돼요... 진짜 우리 망한다구요..."
"걱정마. 이럴 때일수록 여유를 가지고 일해야지. 그러고보니 쟤들 식량은 별로 없다고 했었나?"
원래 이런 알박기 농성에서만큼은 기본적으로 처음부터 식량을 가지고 들어가는 법이다. 그런데 왕조명에게 듣기로는 건물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내부에서는 식량을 싾아둔 걸 못 봤다는 것이다.
"애들 말로는 그렇다던데요.."
"그런게 어딨어? 내가 저런거 가끔 봤는데 그런건 제대로 해놓는 법이야. 아무튼 식량은 당연히 있을 테니 시간을 좀 더 두고 봐야겠지."
그 다음날 커다란 현수막 두개가 공수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형제여! 고려봉자(한국인을 비하하는 중국어)에 속아넘어가지 말라!>
<철거는 4월 3일 시작된다! 거짓말을 믿으면 죽는다! 한국인들은 거짓말쟁이다!>
라는 말이 중국어로 쓰여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는 바로 커다란 크레인이 나타나서 주변을 왔다갔다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철거용의 커다란 철구가 달려있었다. 쌍안경으로 보니 일반 농성자들은 크게 동요하는 듯 했다. 심지어는 자기들끼리 큰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모습까지 관측되었고, 결국 5명이 건물에서 내려와 쇠파이프를 집어 던지며 나가버렸다. 전철연 회원으로 보이는 사람 한명이 소리를 치면서 그들을 막으려고 했지만 허리춤에서 튀어나온 사시미들에 의해 널부러진 시체가 되었을 뿐이다.
다음날 오전에는 용접으로 만들어온 Y자의 거대 새총을 24개 정도 주변 건물 옥상에 설치했다. 강력한 고무줄을 둘이서 땡기는 방식으로 돌멩이를 발사해서 골리앗에 맞추도록 시키자, 전철연 측도 거대 새총에 화염병을 재어서 반격을 가해 왔지만 우리쪽 건물 외벽에 맞는게 고작이었다. 그게 안되자 벽돌을 깨서 조각처럼 만들어서 쏘기 시작했고 이것은 상당히 위협적이었지만 이미 합판으로 보호벽을 만든 천웅방 조직원들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그날 오후에는 살수차를 동원해서 신나게 물을 뿌려댔다. 고압의 물줄기가 노린 것은 다름아닌 일반 농성자들이었다. 그들의 사기를 저하시켜서 저항을 포기하고 빠져나오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날 저녁이 되어 온도가 내려가자 물에 젖은 생쥐꼴이 된 일반 농성자들 중 몇몇이 옥상에 올라가서 전철연 회원과 손가락질을 하며 말싸움을 벌이는 것이 관측되었다. 이야기가 다르지 않냐고, 큰돈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었냐고 말하는 듯 했는데, 언쟁 중 성질이 난 한국인 일반 농성자 한명이 전철연 회원의 싸대기를 갈기자 전철연 회원도 질세라 같이 후려쳤다.
이윽고 주먹질이 전개되었고 한국인 농성자가 전철연 회원을 깔고 앉자 같이 있던 중국인들이 무자비한 발길질로 한국인 농성자를 도왔다. 골리앗에서 전철연 회원들이 내려와 쇠파이프로 일반 농성자들을 후려치자 하나 둘 올라와서 소란을 구경하던 일반 농성자들이 분노하여 전철연 회원들과 패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버티지 못한 회원들이 하나 둘 흩어져서 도망치자 갑자기 골리앗 위에서 화염병이 떨어져내렸고, 이걸 겨우 피한 일반 농성자들이 온갖 쌍욕을 퍼부으며 계단을 내려와 머리에 썼던 두건을 벗어 내팽개치며 건물 문을 나와서 천웅방 조직원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아직 사람들은 꽤 남아있었다. 회원들까지 합하면 거의 50명에 달한다고 볼 수 있었다.
약속한 4월 3일이 되자 거대 크레인이 철거용 철구를 매달고 굉음을 울리며 나타났다. 전철연 회원들이 새총을 무자비하게 쏘아가며 견제를 시도했지만 천웅방측이 24개의 거대 새총을 풀가동해서 마구 쏘아대기 시작하자 크레인을 노리고 새총을 조작하던 전철연 회원들이 미간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공격이 멎기 시작하자 크레인이 연기를 뿜으면서 최고 속도로 건물 쪽으로 돌진했고, 이윽고 철구로 건물을 후려칠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하자 전철연의 화염병과 돌멩이 발사가 한층 더 심해졌다. 그만큼 우리도 전철연 측으로 무자비하게 쏘아대고 있었지만 전철연 측이 훨씬 필사적이었다. 나무 합판을 가져와서는 돌멩이를 막다가, 천웅방이 쏜 화염병이 맞아 합판에 불이 붙어도 초인적인 근성으로 합판을 들고 버티고 있었다. 불이 붙더라도 최대한 한발이라도 더 쏴야겠다는 의지의 표출이었다.
전철연이 필사적인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크레인이 연기를 내뿜으며 지지대를 급히 전개하고, 철구를 옥상 높이에 맞추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사전에 이미 나는 크레인 기사에게 이거 하나만을 주문해 두었다. 바로 골리앗이 세워진 건물 옥상 부분을 후려쳐서 골리앗을 무너트리라는 작전이다.
전철연 회원들이 불붙은 합판 탓에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잠시 대피한 순간, 크레인이 차체를 크게 돌리면서 철구로 건물을 후려쳤다. 옥상에 균열이 가면서 골리앗이 살짝 기우는 것이 보였다. 옆 건물의 전철연 회원들은 이제 눈에 뵈는 게 없었는지 쇠파이프와 일본도를 들고 계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투쾅!!!"
크레인이 2번째 타격을 가하자 건물 최상층 한켠이 무너졌고 당연히 골리앗도 무너졌다. 문제는...
"쿠웅..."
골리앗과 건물의 콘크리트 잔해가 섞인 커다란 먼지와 함께 도로를 철구가 강하게 내리찍었다. 크레인으로 달려가던 전철연 회원 4명의 몸뚱이가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뒤틀렸다. 크레인이 옥상에서 떨어진 골리앗에 맞아 크레인 암(Arm)이 꺾이고 부러진 것이다. 크레인 운전기사가 있던 운전석은 골리앗의 철골에 맞아 형편없이 짓이겨져 있었다.
"이런..."
새총을 쏘던 천웅방 조직원들도, 옆 건물의 농성자들도 다들 싸우는 걸 잊어버리고 크레인만 보고 있었다.
"조명아, 빨리 크레인 한대 더 수배해봐."
생각보다 소강 상태가 길게 이어지는 가운데 왕조명이 자기 휘하의 간부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더니 말하기를, 안산 주변에는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크레인이 없다고 했다. 더군다나 철거용 철구를 갖춘 곳은 단 한곳도 없다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이 인천에 대형 크레인이 있는데, 그조차도 오늘 일이 있어서 조직의 이름으로 협박을 해도 빨라봐야 내일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안에 끝내려고 했는데 일이 맘대로 안되네..."
천웅방 조직원과 왕조명의 표정은 복잡미묘했다. 난공불락 같던 골리앗도 무너트리고 건물 하나는 사실상 점령한 거나 다름없었지만, 가장 중요한 크레인이 박살이 나버렸다. 그리고 아직 건물 하나는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였다. 진전은 있었지만 해결은 안된 상황이다.
"안되겠다. 조명아. 조금 늦어지겠지만 사흘 안으로 끝내자. 알았지?"
손을 머리에 대고 난감해하는 왕조명을 뒤로 하고 건물을 빠져나오려 할 때 갑자기 전화가 왔다. 김형사였다.
"어라 김형사님? 그러고보니 본청에 돌아가시고 제가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김형사는 청웅 사타부언 사건 해결 이후로 원곡파출소 유배생활을 끝내고 안산경찰서로 돌아간 상황이었다.
"아이 이친구 흐흐.. 뭐 따로 찾아올 필요까진 없을거 같애, 우리 제갈 서장이 안그래도 전습대에 뭘 좀 시킬려고 하더라구. 그래서 전화한거야."
두가지 건 협의하려고 40분동안 입에 발린 소리만 하는 아프간 부족장처럼 속이 시커먼 제갈 진욱놈.. 무슨 덤탱이를 씌우려고?
"이번에 그 재개발하려는 무연고 건물들에 전철연 새끼들이 들어앉았다매?"
"예, 뭐 그렇긴 한데 저희랑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니까 그 건축주들이 알아서 해결하겠죠."
"어, 근데 우리 제갈 서장님이 불법 점거랑 시위는 절대 안된다고 해산을 종용한다데. 근데 자네도 알겠지만 걔들이 그런다고 물러날 애들이 아니잖아? 그래서 일단 미끼 하나 날려보고, 거부하면 바로 강제 해산 시켜버릴 거라데."
텅텅 빈 경기도 경찰에 제대로 된 제갈 진욱놈이 우릴, 아니 모든 종류의 자경단을 다 싫어하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리랑 전철연을 맞짱뜨게 해서 소모를 시켜보겠다는 이야기인가?
"저기 근데 저희가 요즘 사람도 별로 없고 해서요... 아시다시피 고잔뻘 일본인 거주구역에도 순찰을 돌리니까 지금 저희도 빡빡한거 아시잖아요. 그... 사이비 관장네한테 좀 시켜 보시죠."
"제갈 서장이 무조건 전습대 시켜야 된다데? 걔네들은 걍 무능하잖아. 아무튼 오늘 바로 왔으면 하더라구. 일단은 제갈 서장이랑 이야기해보는게 나을 거야. 그럼 시간은 언제로 잡을까? 제갈 서장은 한시간 안으로 바로 봐야 된다고 빨리 오라던데."
"바로 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일해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천웅방 조직패야 말 그대로 실체가 없는 애들이지만 전습대는 명백하게 겉으로 드러난 단체이고 게다가 수장이 무려 일본인, 그리고 그 수장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고잔뻘에 일본인을 이주시키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걸 살짝만 비틀어주면 요시노부는 대한민국을 왜놈에게 넘기려는 야망을 가진 자이며, 전습대는 친일 반민족 폭력 우익 백색테러 전문 인외마경 외국인차별 기득권 집단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것 때문에 구태여 직접 개입을 안 하려고 한 것인데..
"제갈 진욱... 이 쓰레기같은 놈! 몰래 습격해서 머리통을 쪼개 버렸어야 했는데!"
협의를 위해 단원경찰서로 가는 동안 주먹으로 내려쳐서 울린 경적만 서른 세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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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62화 바벨의 빛
언젠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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