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잔뻘 신도시의 입주는 아주 순조로웠다. 이제 곧 일본 동북지방 이재민으로 구성된 이민단의 제2진이 3주 안으로 한국에 도착하여 입주를 할 예정이었고, 이 부동산 장사를 주도하는 요시노부 코퍼레이션(가칭)에 투자한 사람들도 적절한 이득을 분배받을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가령 여원홍, 왕조명, 레즈노프 등등을 비롯하여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요시노부나 여원홍 등이 제각기 모집해온 투자자들도 포함이다.
지난번에 흑호방 미역머리 보스 녀석이 영 좋지 않은 해프닝을 핸드폰으로 찍어서는 도망치긴 했지만, 그때 이후로 2주일이 지나기까지 아무런 징후 같은 것도 없었다. 전습대 괴벨스를 자처한 허무도 이 친구는 자칭 선전의 달인답게 큰 우려를 표명하고, 앞으로 불법 점유자들에 대한 룸클리어링을 진행할 때에는 반드시 헬멧 캠을 사용하여 상황을 전부 촬영해 놓는 편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보여주는 것만 볼 수밖에 없으니, 우리가 정의롭고 상대가 악당이라는 틀을 씌우는 건 둘째치고라도 편집의 힘에 의해 우리가 악당 취급을 받는 것만큼은 막아야 하며, 선동이 시작되면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반박자료를 내서 진압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영상 증빙자료가 가장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때 이후로 반드시 대원들 두어명은 헬멧 캠을 활용하여 전 과정을 촬영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대측을 적절히 도발하여 욕과 반항을 유도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연출없는 방송이 어딨어?
오늘은 왕조명이 전습대 응접실로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왕조명은 이전부터 안산시에서 특정 지역을 지정하여 재개발을 시도할 생각을 피력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동북 일본인 이주가 순조롭고 이에 따른 산업 투자도 점차 늘어가는 탓에 안산시의 경기는 활성화되어가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는 생각보다 빨리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겠다던 것이었다.
나나 여원홍은 안산시가 멀쩡할 적에 세워진 빌딩들도 아직 제 역할을 100% 다 못하고 있는 마당에 재개발이란 시기상조일 거라면서 말리는 입장이었지만, 왕조명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의기 양양하게 투자자를 받겠다면서 인천 쪽의 중국인 조직들에게 투자설명회를 개최했던 모양이었는데, 뭔가 잘 되었는지 투자설명회 다음 날부터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난리를 피우며 당분간 전습대에 놀러오지도 않았었다.
그러던 와중 오늘 나타나서 하는 말이란...
"진짜 큰일난거죠. 투자는 받아놨는데 빨리 건물 철거부터 해놔야 되는데.. 이거 안되면 형 어떻게 될까요?"
"나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자금을 빼가야지."
"어어휴!!"
절망하며 무릎에 얼굴을 파묻는 왕조명의 고통이란 이런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재개발의 바퀴벌레 알.박.기. 바로 그것이 시작된 것이었다.
"아니 근데 아직 거지신세인 안산시에 뭔 놈의 알박기여? 거긴 화재로 건물도 끝장난 곳인데 주인도 세입자도 없지 않나?"
"근데 한다니깐요?"
"혹시 뭐 다른 조직이 겐세이 놓는거 아냐? 그런데 안산에 항적방은 망했고, 흑호방도 망했고, 따로 없을텐데..."
혹시 투자에 끼지 못한 조직이나 투기자본이 알바를 고용해서 알박기로 겐세이를 놓는 것은 아닌가. 이 점에 대해 물어보자 왕조명은 그것도 아니니까 더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다방면으로 알아봤는데 알박기 뛰는 애들 대부분이 안산 애들인거 같아요. 조직이나 자본세력이었으면 차라리 막후에서 협상이라도 하죠. 실체가 없으니까 뭐 협상도 못하겠고 진짜 답답해요. 원하는게 뭐냐고 물어봐도 앵무새마냥 생존권 확보라는 소리만 하고.."
"천웅방이 명색이 조직인데 안쓸어버리고 뭐했어?"
"그게 말이죠..."
왕조명의 말에 의하면 이미 1차 총공세를 진행했으나, 비오는 날 먼지날 만큼 두들겨맞고 끝났다고 한다. 건물 계단을 올라 내부 공간으로 진입하는 순간 매복한 쇠파이프에 신나게 두들겨 맞았고, 두명은 칼에 맞아서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 뒤에서는 올라가려고 하고 위에서는 내려오려고 하니 병목 현상이 발생하여 이도저도 못하는 동안 양쪽에서 습격한 철거민들에 의해 완전히 박살 나버렸고, 흩어져 도망치는 천웅방 조직원들의 머리 위로 벽돌들이 떨어지면서 참담한 패배로 끝났다는 것이다.
"그게 정말 알박기하는 철거민의 실력이야? 아무리 봐도 지휘를 받는 조직 수준인데?"
"아무튼 덕분에 지금 40여명이 병원 신세에요. 못살겠다구요."
"어찌되었던 이번 일은 너희가 해결하긴 해야 해. 너희도 명색이 무력으로 권위를 얻는 흑사회(黑社會:암흑가를 뜻함)의 일원인데 이번에야말로 뭔가 보여줘야지 않겠어?"
"그래서 말인데요. 형이 아무래도 그쪽은 빠삭하시니까, 지도 좀 해주세요. 군사 고문 좀 해주시라는 말이죠."
"일단은 가서 현장을 좀 보는 게 낫겠다. 한번 같이 가보고 생각해보자."
해군 타치를 짚고 일어나자 왕조명은 정색했다.
"분위기가 장난 아니에요. 전습대 복장은 빼는 편이 낫지 싶은디요.."
사실 나도 그런 험악한 현장에서 혼자 전습대 복장 입고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지 싶었기 때문에, 그 의견에는 찬동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락커룸에서 간단하게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복도에서 마주친 사람이 있었다. 전습대 경리 김추자이다.
"오늘은 어디 가는데요? 옷은 또 왜 그래요?"
김추자가 마치 너의 패션은 괴멸적이지 라고 말하는 듯한 말투를 쓰는 것은 내가 작업화에 작업복을 입어서 그런 것이라 본다.
"잠시 왕조명이랑 외근 나갔다 옵니다."
"이번에는 주소 틀리지 마세요~"
703호 704호 혼동 사건을 염두에 둔 듯한 말투다. 나는 그냥 무시하고 나갔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이미 상황은 상당한 수준으로 진전되어 있었다. 웃통을 벗고 문신을 과시하는 천웅방 조직원들이 30여명 정도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다들 칼을 차고는 몽둥이를 질질 끌면서 가오를 잡고 있었다. 시커멓게 변색된, 구멍뚫린 드럼통이 여러 군데 찌그러진 채로 있었다. 이것은 불을 피우기 위한 도구로, 천웅방 조직원들이 교대로 밤을 새서 감시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문제는 천웅방 조직원들의 숫자는 건물에 서성거리는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 되지도 않는다는 것. 옥상에서 난간 너머로 이쪽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은 공사장 플라스틱 헬멧에 보안경, 스카프를 둘러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 밑 건물 창문으로 가끔 얼굴을 내미는 사람들은 건들거리기는 했어도 얼굴을 가리거나 뭘 뒤집어쓰지는 않았다. 공사장 헬멧을 쓴 사람은 있었지만 하나같이 얼굴을 가린 사람은 없었다.
옛날부터 가끔씩 봤던 재개발 사업에서의 알박기의 모습 그대로였다. 단, 이들의 무장 수준은 좀비사태 이전의 철거민 분쟁보다는 54%정도 상승되어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과거에는 쇠파이프와 끝이 갈라진 죽봉, 진짜 막나가야 장대에 매단 낫이나 부엌칼 정도였다면 이것들은 멀리서 봐도 조잡한 도장구로 만들어진 중국제 일본도, 정글도, 가지치기용 조선낫 등을 장비하고 있더라는 말이다. 오파운드 곡괭이 자루는 기본 셋팅이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나도 이곳을 몇번 지나다녔지만, 그때마다 노숙자 하나 찾아보기 힘든 황량한 곳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틈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살고 심지어는 집단 항쟁까지 할 정도가 되었단 말이야?
"....!!"
그 답은 대충 알 법 했다. 방금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스윽 둘러보고 사라진 놈은 금발 염색한 검은머리가 그렇듯 위는 금발, 두피쪽은 흑발이었다. 그 패턴은 분명 내 기억에 있는 헤어 스타일이었는데, 전습대원들에 의해 쫓겨난 불법 점유자 중 한놈이었다. 그럼 그렇지 싶었지.. 이곳에 사람들이 몰린 건 지금까지 총 60여 세대에 걸친 우리의 룸클리어링에 쫓겨난 자들이 갈곳이 없다가 이곳으로 몰린 것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곳이 반쯤 폐허가 되었더라도 엄연히 자기들 건물도 아니고, 이런 데서 못나가겠다고 생떼를 써봐야 아무런 권리 보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부대끼면 서로 스트레스도 받고 싸움도 나기 마련이다. 오히려 살 곳을 찾는다면 이런 건물에 몰릴 이유가 없다. 당장 반월공단에 주인 잃은 폐공장도 수두룩하지 않던가? 아직 사람들이 입주하지 않은 주택도 찾아보면 많고 말이다.
"근데 니가 말한 것보다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건물 하나라더니 두개를 다 점거하고 있단 말이야?"
건물을 가리키면서 왕조명에게 묻자, 그가 말하기로는 원래 하나가 맞았는데, 금새 사람들이 몰려와서 들어찼다고 한다. 자기가 파악하기로는 엄연히 월세집에 사는 사람들까지 집을 놔두고 여기에 들어온 사례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도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설마 여기서 무슨 보상금이라도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깝치다가 우리 애들한테 죽는 수가 있을텐데..."
왕조명의 말대로,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자력구제를 적극 권장하는 이 안산시, 아니 경기도 내에서 정상적인 사회에서나 통하던 알박기&배상금 패턴이 될 리가 없다. 까짓거 설치면 폭력 조직들 동원해서 기름 뿌리고 불질러서 농성자들을 약한 불에 자르르르 구워버리면 그만인 세상이 바로 이 세상이다. 그들도 이곳이 천웅방을 주축으로 한 재건축 사업장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무모한 행동을, 마치 약속된 대박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마냥 살곳이 멀쩡히 있는 사람도 들어온단 말인가?
"형, 근데 한국에 뭐 이런거 전문으로 하는 조직 같은게 있나요?"
"그건 또 뭔 소리여?"
"우리 애들이 말하길 외부에서 한국인들이 떼로 들어와서는 합류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건물도 세워놨구요."
순간 뭔가 짚히는 게 있었다.
"한국인들이 외부에서 합류해가지고서는 뭐, 건물을 세워놨다고?"
"저게 그거에요."
왕조명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올려다본 현장에는 과연 썩어문드러진 낡은 옥탑 같은 것이 서 있었다. 이곳을 몇번 지나다닌 적이야 있었지만 건물을 자세히 본 적도 없었고, 그 옥탑 같은 거야 아까도 봤지만 워낙 더럽고 낡아서 원래 건물이려니 하고 말았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자세히 보니 그건 그런 수준을 떠난, 새로 지은 가건물이었다.
철골과 H빔을 대충 볼트와 용접으로 만들어 올린 기둥들 위에는 어디 철거 폐기물 주워와 만든 듯한 추잡한 슬레이트를 연결해 만든 오두막 같은 것이 있었다. 휘날리는 현수막에는 <재개발 생존권 사수> <거대자본의 서민탄압 규탄한다!> 등등의 구호가 씌어져 있었다. 표현은 오두막이라고 하긴 했지만 크기는 생각보다 큰 편이었다.
곧 그 오두막의 작은 틈새에서 불이 붙은 맥주병이 하나 퐁 튀어나오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몽둥이를 들고 밑에서 얼쩡거리던 천웅방 조직원들은 그걸 보고는 화들짝 놀라면서 개미떼처럼 흩어졌다. 천웅방 조직원들이 있던 자리에는 불길이 확 번졌다. 내가 이런걸 어디서 많이 보긴 했지....
"으휴....."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쉬는 나를 본 왕조명이 어리둥절해한다.
"왜그래요? 저게 뭐 엄청난 거라도 되는 모양이죠?"
다시 건물 옥상을 올려다 보았다. <골리앗>한번 오질나게 높이도 싾아놨네...
"아무래도 아주 귀찮은 놈들이 나타난 모양이다. 아주 무서운 놈들이지...."
별로 눈에 안 띄는 작은 현수막 끝자락에는 <전국철거민연합>이라고 쓰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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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61화 손대면 역적 놔두면 파산
언젠가 씁니다.
지난번에 흑호방 미역머리 보스 녀석이 영 좋지 않은 해프닝을 핸드폰으로 찍어서는 도망치긴 했지만, 그때 이후로 2주일이 지나기까지 아무런 징후 같은 것도 없었다. 전습대 괴벨스를 자처한 허무도 이 친구는 자칭 선전의 달인답게 큰 우려를 표명하고, 앞으로 불법 점유자들에 대한 룸클리어링을 진행할 때에는 반드시 헬멧 캠을 사용하여 상황을 전부 촬영해 놓는 편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보여주는 것만 볼 수밖에 없으니, 우리가 정의롭고 상대가 악당이라는 틀을 씌우는 건 둘째치고라도 편집의 힘에 의해 우리가 악당 취급을 받는 것만큼은 막아야 하며, 선동이 시작되면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반박자료를 내서 진압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영상 증빙자료가 가장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때 이후로 반드시 대원들 두어명은 헬멧 캠을 활용하여 전 과정을 촬영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대측을 적절히 도발하여 욕과 반항을 유도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연출없는 방송이 어딨어?
오늘은 왕조명이 전습대 응접실로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왕조명은 이전부터 안산시에서 특정 지역을 지정하여 재개발을 시도할 생각을 피력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동북 일본인 이주가 순조롭고 이에 따른 산업 투자도 점차 늘어가는 탓에 안산시의 경기는 활성화되어가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는 생각보다 빨리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겠다던 것이었다.
나나 여원홍은 안산시가 멀쩡할 적에 세워진 빌딩들도 아직 제 역할을 100% 다 못하고 있는 마당에 재개발이란 시기상조일 거라면서 말리는 입장이었지만, 왕조명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의기 양양하게 투자자를 받겠다면서 인천 쪽의 중국인 조직들에게 투자설명회를 개최했던 모양이었는데, 뭔가 잘 되었는지 투자설명회 다음 날부터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난리를 피우며 당분간 전습대에 놀러오지도 않았었다.
그러던 와중 오늘 나타나서 하는 말이란...
"진짜 큰일난거죠. 투자는 받아놨는데 빨리 건물 철거부터 해놔야 되는데.. 이거 안되면 형 어떻게 될까요?"
"나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자금을 빼가야지."
"어어휴!!"
절망하며 무릎에 얼굴을 파묻는 왕조명의 고통이란 이런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재개발의 바퀴벌레 알.박.기. 바로 그것이 시작된 것이었다.
"아니 근데 아직 거지신세인 안산시에 뭔 놈의 알박기여? 거긴 화재로 건물도 끝장난 곳인데 주인도 세입자도 없지 않나?"
"근데 한다니깐요?"
"혹시 뭐 다른 조직이 겐세이 놓는거 아냐? 그런데 안산에 항적방은 망했고, 흑호방도 망했고, 따로 없을텐데..."
혹시 투자에 끼지 못한 조직이나 투기자본이 알바를 고용해서 알박기로 겐세이를 놓는 것은 아닌가. 이 점에 대해 물어보자 왕조명은 그것도 아니니까 더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다방면으로 알아봤는데 알박기 뛰는 애들 대부분이 안산 애들인거 같아요. 조직이나 자본세력이었으면 차라리 막후에서 협상이라도 하죠. 실체가 없으니까 뭐 협상도 못하겠고 진짜 답답해요. 원하는게 뭐냐고 물어봐도 앵무새마냥 생존권 확보라는 소리만 하고.."
"천웅방이 명색이 조직인데 안쓸어버리고 뭐했어?"
"그게 말이죠..."
왕조명의 말에 의하면 이미 1차 총공세를 진행했으나, 비오는 날 먼지날 만큼 두들겨맞고 끝났다고 한다. 건물 계단을 올라 내부 공간으로 진입하는 순간 매복한 쇠파이프에 신나게 두들겨 맞았고, 두명은 칼에 맞아서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 뒤에서는 올라가려고 하고 위에서는 내려오려고 하니 병목 현상이 발생하여 이도저도 못하는 동안 양쪽에서 습격한 철거민들에 의해 완전히 박살 나버렸고, 흩어져 도망치는 천웅방 조직원들의 머리 위로 벽돌들이 떨어지면서 참담한 패배로 끝났다는 것이다.
"그게 정말 알박기하는 철거민의 실력이야? 아무리 봐도 지휘를 받는 조직 수준인데?"
"아무튼 덕분에 지금 40여명이 병원 신세에요. 못살겠다구요."
"어찌되었던 이번 일은 너희가 해결하긴 해야 해. 너희도 명색이 무력으로 권위를 얻는 흑사회(黑社會:암흑가를 뜻함)의 일원인데 이번에야말로 뭔가 보여줘야지 않겠어?"
"그래서 말인데요. 형이 아무래도 그쪽은 빠삭하시니까, 지도 좀 해주세요. 군사 고문 좀 해주시라는 말이죠."
"일단은 가서 현장을 좀 보는 게 낫겠다. 한번 같이 가보고 생각해보자."
해군 타치를 짚고 일어나자 왕조명은 정색했다.
"분위기가 장난 아니에요. 전습대 복장은 빼는 편이 낫지 싶은디요.."
사실 나도 그런 험악한 현장에서 혼자 전습대 복장 입고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지 싶었기 때문에, 그 의견에는 찬동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락커룸에서 간단하게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복도에서 마주친 사람이 있었다. 전습대 경리 김추자이다.
"오늘은 어디 가는데요? 옷은 또 왜 그래요?"
김추자가 마치 너의 패션은 괴멸적이지 라고 말하는 듯한 말투를 쓰는 것은 내가 작업화에 작업복을 입어서 그런 것이라 본다.
"잠시 왕조명이랑 외근 나갔다 옵니다."
"이번에는 주소 틀리지 마세요~"
703호 704호 혼동 사건을 염두에 둔 듯한 말투다. 나는 그냥 무시하고 나갔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이미 상황은 상당한 수준으로 진전되어 있었다. 웃통을 벗고 문신을 과시하는 천웅방 조직원들이 30여명 정도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다들 칼을 차고는 몽둥이를 질질 끌면서 가오를 잡고 있었다. 시커멓게 변색된, 구멍뚫린 드럼통이 여러 군데 찌그러진 채로 있었다. 이것은 불을 피우기 위한 도구로, 천웅방 조직원들이 교대로 밤을 새서 감시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문제는 천웅방 조직원들의 숫자는 건물에 서성거리는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 되지도 않는다는 것. 옥상에서 난간 너머로 이쪽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은 공사장 플라스틱 헬멧에 보안경, 스카프를 둘러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 밑 건물 창문으로 가끔 얼굴을 내미는 사람들은 건들거리기는 했어도 얼굴을 가리거나 뭘 뒤집어쓰지는 않았다. 공사장 헬멧을 쓴 사람은 있었지만 하나같이 얼굴을 가린 사람은 없었다.
옛날부터 가끔씩 봤던 재개발 사업에서의 알박기의 모습 그대로였다. 단, 이들의 무장 수준은 좀비사태 이전의 철거민 분쟁보다는 54%정도 상승되어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과거에는 쇠파이프와 끝이 갈라진 죽봉, 진짜 막나가야 장대에 매단 낫이나 부엌칼 정도였다면 이것들은 멀리서 봐도 조잡한 도장구로 만들어진 중국제 일본도, 정글도, 가지치기용 조선낫 등을 장비하고 있더라는 말이다. 오파운드 곡괭이 자루는 기본 셋팅이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나도 이곳을 몇번 지나다녔지만, 그때마다 노숙자 하나 찾아보기 힘든 황량한 곳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틈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살고 심지어는 집단 항쟁까지 할 정도가 되었단 말이야?
"....!!"
그 답은 대충 알 법 했다. 방금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스윽 둘러보고 사라진 놈은 금발 염색한 검은머리가 그렇듯 위는 금발, 두피쪽은 흑발이었다. 그 패턴은 분명 내 기억에 있는 헤어 스타일이었는데, 전습대원들에 의해 쫓겨난 불법 점유자 중 한놈이었다. 그럼 그렇지 싶었지.. 이곳에 사람들이 몰린 건 지금까지 총 60여 세대에 걸친 우리의 룸클리어링에 쫓겨난 자들이 갈곳이 없다가 이곳으로 몰린 것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곳이 반쯤 폐허가 되었더라도 엄연히 자기들 건물도 아니고, 이런 데서 못나가겠다고 생떼를 써봐야 아무런 권리 보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부대끼면 서로 스트레스도 받고 싸움도 나기 마련이다. 오히려 살 곳을 찾는다면 이런 건물에 몰릴 이유가 없다. 당장 반월공단에 주인 잃은 폐공장도 수두룩하지 않던가? 아직 사람들이 입주하지 않은 주택도 찾아보면 많고 말이다.
"근데 니가 말한 것보다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건물 하나라더니 두개를 다 점거하고 있단 말이야?"
건물을 가리키면서 왕조명에게 묻자, 그가 말하기로는 원래 하나가 맞았는데, 금새 사람들이 몰려와서 들어찼다고 한다. 자기가 파악하기로는 엄연히 월세집에 사는 사람들까지 집을 놔두고 여기에 들어온 사례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도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설마 여기서 무슨 보상금이라도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깝치다가 우리 애들한테 죽는 수가 있을텐데..."
왕조명의 말대로,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자력구제를 적극 권장하는 이 안산시, 아니 경기도 내에서 정상적인 사회에서나 통하던 알박기&배상금 패턴이 될 리가 없다. 까짓거 설치면 폭력 조직들 동원해서 기름 뿌리고 불질러서 농성자들을 약한 불에 자르르르 구워버리면 그만인 세상이 바로 이 세상이다. 그들도 이곳이 천웅방을 주축으로 한 재건축 사업장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무모한 행동을, 마치 약속된 대박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마냥 살곳이 멀쩡히 있는 사람도 들어온단 말인가?
"형, 근데 한국에 뭐 이런거 전문으로 하는 조직 같은게 있나요?"
"그건 또 뭔 소리여?"
"우리 애들이 말하길 외부에서 한국인들이 떼로 들어와서는 합류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건물도 세워놨구요."
순간 뭔가 짚히는 게 있었다.
"한국인들이 외부에서 합류해가지고서는 뭐, 건물을 세워놨다고?"
"저게 그거에요."
왕조명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올려다본 현장에는 과연 썩어문드러진 낡은 옥탑 같은 것이 서 있었다. 이곳을 몇번 지나다닌 적이야 있었지만 건물을 자세히 본 적도 없었고, 그 옥탑 같은 거야 아까도 봤지만 워낙 더럽고 낡아서 원래 건물이려니 하고 말았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자세히 보니 그건 그런 수준을 떠난, 새로 지은 가건물이었다.
철골과 H빔을 대충 볼트와 용접으로 만들어 올린 기둥들 위에는 어디 철거 폐기물 주워와 만든 듯한 추잡한 슬레이트를 연결해 만든 오두막 같은 것이 있었다. 휘날리는 현수막에는 <재개발 생존권 사수> <거대자본의 서민탄압 규탄한다!> 등등의 구호가 씌어져 있었다. 표현은 오두막이라고 하긴 했지만 크기는 생각보다 큰 편이었다.
곧 그 오두막의 작은 틈새에서 불이 붙은 맥주병이 하나 퐁 튀어나오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몽둥이를 들고 밑에서 얼쩡거리던 천웅방 조직원들은 그걸 보고는 화들짝 놀라면서 개미떼처럼 흩어졌다. 천웅방 조직원들이 있던 자리에는 불길이 확 번졌다. 내가 이런걸 어디서 많이 보긴 했지....
"으휴....."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쉬는 나를 본 왕조명이 어리둥절해한다.
"왜그래요? 저게 뭐 엄청난 거라도 되는 모양이죠?"
다시 건물 옥상을 올려다 보았다. <골리앗>한번 오질나게 높이도 싾아놨네...
"아무래도 아주 귀찮은 놈들이 나타난 모양이다. 아주 무서운 놈들이지...."
별로 눈에 안 띄는 작은 현수막 끝자락에는 <전국철거민연합>이라고 쓰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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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61화 손대면 역적 놔두면 파산
언젠가 씁니다.




덧글
이거 정말 전습대가 맞부딪히기에는 크나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군요...
전철연이라니... 잘못 건드리면 큰일나겠습니다
인터넷에 전철연을 검색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