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생긴 소소한 일들이란, 바로 고잔뻘 신시가지의 아파트에 사는 불법 점유자들을 추방하는 일이었다.
물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추방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나서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런 경우이다. 고잔뻘로 이주하는 동북 일본인들이나, 여원홍이 소개해서 데려오는 대만인, 홍콩인 같은 사람들이 있다. 또 구 소련 연방 공화국 출신의 친목단체인 가칭 CCCP그룹의 대부격인 빅토르 레즈노프와 물주 니꼴라이도 저리 장기할부나 단기 분할납부 상품을 통해 CCCP그룹 내에서 어느정도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집을 사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리를 중개해주고 있었다.
결국 투자집합체인 요시노부 코퍼레이션(가칭)을 통해서 하는 일이긴 했지만, 덕분에 고잔뻘은 유령 도시의 오명을 슬슬 벗어가는 와중이었다. 게다가 원래 경기도 수도권은 탁월한 고속도로망을 통해 연결된 곳, 직장이 어디에 있던 간에 차만 있으면 움직이는 게 어려울 것은 없었기 때문에 투기 자본이 부동산을 사재기한 탓에 값이 올라간 군포 안양 분당 일산 등에서 집을 사느니, 요시노부 코퍼레이션의 통제 하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분양되는 고잔뻘 아파트들을 얻는 게 낫다는 판단 아래 생각보다 많은 판매율을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그만큼 불법 점유자들과의 트러블도 발생했다. 비록 그곳은 불법 점유자를 견제하는 목적으로 가스와 전기가 끊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살 놈들은 살고 있었다. 개중에는 주변 전봇대에서 싸제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 불법으로 전기를 끌어오고, LPG가스통을 배달받아 그 가스로 취사를 하는 방식으로 사는 놈들이 제법 있었다.
이런 자들은 절대 불법 점유지에서 나가려고 하지를 않았기 때문에,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집을 구입한 입주자와 분쟁이 생겼다. 처음에는 다들 어느 정도 해결하긴 했지만, 점점 불법 점유자들의 행동도 과격해지고 심지어는 칼부림까지 생기고 있었다. 그래서 마침내 전문 솔루션을 가진 우리 전습대 시큐리티 서비스와 요시노부 코퍼레이션 사이에 관련 계약이 체결된 것이다.
그래서 전습대가 직접 나서니 이미 명성을 아는 놈들은 알아서 깨갱거리고 나가는 터라, 손쉽고 간편하게 수수료를 받아챙기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오늘 맡은 일은 이러했다. 신시가지의 고잔동에 보면 신시가지 형성 극초기에 대한주택공사가 지은 아파트가 있다. 이곳은 사람이 그럭저럭 살기는 했지만 그래도 입주율은 20%도 채 되지 않았다. 거의 유령 아파트의 마지노선을 살짝 넘나드는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었고, 이곳에도 당연히 불법 점유자들이 살고 있었다.
그중 요시노부 코퍼레이션을 통해 이곳 중 하나를 분양받은 동북 일본인 가족이 장군님(도쿠가와 요시노부)께 문제를 하소연했다. 703호에 불법 점유자들이 아무리 설득하고 소리쳐 봐도 오히려 칼을 들이대고 강짜를 부리는 통에 도저히 입주를 할 수가 없고, 분양을 받았는데도 추운 바깥에서 있기가 너무 괴로우니 장군님의 은총을 앙망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 전습대가 직접 나서게 되었다.
이곳은 언뜻 보면 페인트칠 해놓은 것도 그렇고, 녹지가 많은 것이나 콘크리트로 만든 인도가 녹지를 관통하는 구조도 그렇고 리즈시절의 소련식 아파트를 연상시켰다. 스타일도 요즘은 흔하지 않은 복도식 아파트이다. 공식적으로 입주자가 없는 이 세대에 도시가스가 공급될 리가 없었으므로 불법점유자가 사는 집은 복도에 십중팔구 LPG가스통이 놓여있기 마련인데, 이곳도 과연 LPG가스통이 복도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고무 배관은 가스통에서 복도를 향한 방 창문 한 구석의 구멍을 통해 집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쾅쾅쾅!!"
문을 크게 두드리자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중국어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났다. 물론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신경질을 바락바락 내는 아줌마 목소리인 걸로 보아 남편은 일하러 갔고 마누라만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미 이곳에 입주할 예정이었던 일본인 가족이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불법 점유한 이 중국인 가족들이 다짜고짜 소리부터 지르고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칼부터 들이대는 통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다. 보통 드센 자들이 아니다.
그래서 남편이 없는 낮 시간에도 가봤지만 몇번씩 소리만 지르면서 발광하다가 나중에는 식칼을 양손에 쥐고 나와서 꺼지라고 난동을 부렸다고 할 정도다. 그래서 결국 전전긍긍하다가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통해 전습대에 의뢰를 하게 된 것인데...
"덴슈타이다! 전습대다!!"
대원이 크게 소리를 지르니 갑자기 집 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지금까지 몇번씩 이 일을 했지만 전습대의 이름을 외치며 위세만 조금 보여주면 굳이 실력행사를 할 것까지도 없이 허리를 굽신거리고 알아서 다음날까지 집을 비워주어 왔다. 그동안 전습대가 싾아온 위명이 무정부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헌법 이상의 권위를 지닌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할 수 있으면 해봐 이 더러운 깡패 새끼들아! 우린 절대 못나가!"
안에서 앙칼진 북한 억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선족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좀 의외였다. 전습대의 위명을 듣고도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니.. 하지만 그래봐야 새로운 악명의 비참한 주인공이 될 뿐이다. 우리는 분명히 기회를 주었다.
"강제 퇴거다. 락픽 세트 있지?"
"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대원 중 한명이 해버쌕에서 락픽 세트를 꺼내더니 바닥에 놓고 펼치고는 권총 모양에 디바이스에 다양한 모양의 철제 팁을 끼우고는 문고리의 열쇠구멍으로 밀어넣었다. 몇번 딸깍거리더니 손쉽게 해제되었다. 뒤이어 보조키까지 끼우고 잠깐 작업하자 역시 쉽게 돌아갔다.
'쿵쿵쿵....'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자 안에서 다급해졌는지 문 쪽으로 달려오는 발소리가 울려왔다. 하지만 이미 한 발 늦었다. 문이 확 열리자 문 손잡이를 잡으려 했던 그 아줌마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내 눈은 모자 챙 아래로 반쯤 가려진 채로 허연 휜자위가 보일 만큼 부릅뜬 눈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줌마의 얼굴에 짙은 공포가 스쳐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쾅!"
아줌마가 금방 문을 잡고 닫아버렸으나 문은 완전히 잠기지 않았다. 대원 중 한명이 문이 닫히기 전에 빠루를 밀어넣은 것이다. 아줌마는 문고리를 붙잡고 늘어지고 있었지만 강철 빠루가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문을 열어젖히는 힘을 이길 방도가 있을 리가 있나. 아줌마는 버티지 못하고 문고리를 확 놓아버렸고 현관문을 확 열어젖히며 100% 군청색 울에 황동 단추를 달은 제복을 입은 전습대원들이 들어오자 얼굴이 새파래져서는 안방 쪽으로 도주했다. 그리고는 문을 닫고 잠궈 버렸다.
방문은 옛날에 만들어진 것이라 열쇠를 써야만 열 수 있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합판으로 만든 문이라 부수면 금방이었다. 물론 우리 총재인 요시노부의 중개로 얻은 집이므로 마음대로 부수면 역시 그 양반의 체면에 걸리는 문제다. 어차피 락픽으로 처리하면 별 문제가 안된다.
집을 둘러보니 좀비사태때 집주인이 가재도구를 챙기지 못하고 변을 당했는지 낡았지만 가구들은 다 쓸만했고, 책장에 있는 책들이나 TV등은 나름 괜찮은 물건들이었다. 물론 전기는 들어오지 않겠지만, 보니까 베란다 쪽으로 조잡한 전선이 하나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베란다 문을 열고 보니 역시 아니나 다를까, 창문 틈새로 들어온 굵은 선이 벽에 합판을 끼우고 만든 차단기를 통해 집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전봇대에서 전기를 훔쳐다 쓰는 기술을 제공하는 암흑 설비업자가 설치해준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탁자에 널부러진 리모콘은 먼지가 없는 걸로 보아 계속 쓰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TV에 대고 전원을 눌러 보니 TV의 LED가 몇번 깜빡이다가 부팅음과 함께 화면이 들어온다. 선명한 중국중앙방송의 뉴스 화면이었다.
결국 가스도 있겠다, 전기도 훔쳐쓰겠다. 가재도구는 원래 주인이 남긴 좋은 물건이겠다. 집안 인테리어도 나쁘지 않았다. 이러니 나가기 싫은 것도 당연하지 싶겠다만,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다 불법이라는 데에 있었다. 불법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철컥-"
안방 문이 열렸다. 안을 보니 9살 남짓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끌어안고 반항 가득한 눈매로 이쪽을 노려보는 아줌마가 있다. 그리고 그 발밑에는 사시미가 하나 놓여있었다. 우리를 보자 아이를 잡은 손을 놓고는 급하게 사시미를 집어들고는 이쪽을 겨누면서 씩씩거렸다.
"그딴거 들고 있어봐야 우리에겐 장난감 수준도 안 된다. 좋게 이야기할 때 그 칼 버리고 알아서 이 집에서 나가라."
"싫어! 싫어! 이제 농민공 생활은 지긋지긋해, 관리 안한 니들 책임이지 주인 없이 방치해놓는거에 좀 사는 우리가 무슨 그리 큰 죄를 졌어, 우리라고 평생 거지같이 살라는 법이 어딧어, 우리라고 평생 비참하게 살라는 법이 어딧어! 안돼.. 못가.. 이제 겨우 생활이 좀 피려고 하는데.. 못나가..."
"음... 가난하면 범죄를 저질러도 되나?"
아줌마의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나온 듯 했다.
"법이 전부야!? 그거면 다야? 사람.. 사람이 되어야 될 거 아냐! 법을 위해서 사람이 다 죽고 파산해야 된다는 거야? 너희들이 진시황이랑 다를 게 뭐야!! 더러운 놈들 같으니, 일본 쪽바리놈들 앞잡이야! 얼구이쯔, 얼구이쯔!"
아줌마는 분노 반 눈물 반으로 뒤범벅된 얼굴로 계속해서 외치고 있었다. 엄마의 모습도 심상치 않고 눈앞에는 커다란 제복의, 칼을 찬 남자들이 공포분위기를 조정하는 데에 결국 버티지 못하고 얼굴을 찡그리고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울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울기 시작하자 아줌마는 칼을 더 들이대려고 했지만 팔이 아팠는지 애들을 자기 뒤로 숨기고서는 양손으로 사시미를 잡고 더 길게 내밀었다.
언뜻 들으면 우리가 나쁜놈 같지만, 원래 감성팔이란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뒤바꾸는 마법인 법이다. 아줌마에게서 눈을 떼고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TV 스탠드에 놓여있는 북경동인당 한약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 바탕에 금색 글씨가 쓰여진 패키지가 참으로 고급스럽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를 자처하며 동정심으로 장사하는 놈들의 실체란... 거대 기득권의 더러운 면보다 10.44%정도 더 추잡하고 더럽다.
"음... 이게 뭐지?"
북경동인당의 비싼 한약 패키지 박스를 내밀자 그 아줌마의 얼굴이 점차 당황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비싸서 사먹을 엄두를 못 내는 동인당 한약을... 패키지로 사다 드신단 말인가?"
"니가 병신이라 못처먹는걸 누굴 탓해!! 우린 그전까진 가난해서 그런거 사먹을 돈도 없었어. 이제 조금 생활이 펴서 사먹는건데 우린 그런거 먹으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어?!!"
얼굴을 아수라도 한수 접고 들어갈 만큼 찡그리며 노발대발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나는 추잡한 실체를 드러낸 자의 마지막 발악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덤으로 말하자면 나는 기분이 너무나도 좋았다. 논리와 변명의 옷을 하나하나 벗겨 마침내 알몸으로 만들어 진실의 운동장 한가운데에 내팽개치고 무자비하게 겁박하는 것은 바로 이런 위선 종자들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얼굴에서 뿜어지는 해맑은 미소를 도저히 참지 못하는 채로, 나는 동인당 한약 패키지를 그 아줌마 발 밑에 던졌다.
"그 약은 가져가라. 우리는 사유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좋아하거든. 그러니... 나가."
양팔을 벌리며 미소를 띠고 재촉하는 나를 노려보면서도 사시미를 든 양팔은 점점 굽혀지고 있었다. 대치 상태가 30초 정도 지나자,
"조선말 못알아처먹어!! 나가라고!! 니 애새끼들 골통으로 취두부를 만들어서 니랑 니 남편놈에게 대접해줄까? 응 정말 그러기를 바라는거야?!!"
소리를 지르면서 삿대질을 애들을 향해 두어번 하다가 칼을 뽑으려다가 도로 쇳소리와 함께 팍 집어넣으며 압박을 가하자 그 아줌마의 눈에서 포기하는 심리가 보여졌다. 애들은 우는 것도 잊어버린 채로 꺽꺽거리며 경기가 들리려고 하고 있었고, 다시 조용하게 재촉했다.
"나가려면 지금 나가라. 방바닥에 피가 떨어지면 청소하기 귀찮기는 한데 어차피 그 쪽바리들이 할 일이지 우리가 청소할 건 아니야. 그러니 그냥 니들 죽여도 하자 하나 나올 것 없어. 그러니... 제발 나가."
아줌마는 사시미를 힘없이 떨어트리고 울먹거리면서 애들을 다독이면서 안방 문지방을 나섰다. 대원들이 그걸 보고 있었고, 곧 현관문으로 가는 통로를 막고 있던 대원들이 자리를 비켜주었는데, 갑자기 아줌마가 뛰더니 베란다 문을 열고는 베란다의 위태로운 난간을 등지고 섰다.
"우리 남편이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천웅방에 우리 남편 친구들 많어, 벌써 전화 다 했거든? 조금만 있으면 니들 다 죽여버릴거야. 어? 헤헤헤, 사람 잘못 건드렸지, 주제넘은 짓거리로 평생 후회할 원한을 만들지 말라는 거야!"
그러면서 베란다에 있던 각목 두꺼운 것을 베란다 문 사이에 끼워버렸다. 아무래도 시간을 벌 생각인 듯 한데, 정말 열받으면 유리창 쯤은 바로 깨버릴 수 있다는 걸 모르는가? 아무래도 이 집을 온전하게 넘겨줘야 한다는 우리의 입장을 알고는 제딴에는 약점을 잡았다는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사악하지만 무식한 사람은 세상에 얼마나 많단 말인가. 베란다 문의 잠금장치는 분명히 집안쪽, 우리 방향으로 있었다. 그래서 자기가 잠글 수 없으니 베란다 문을 안 열리게 하려고 각목을 문과 문틀 사이에 끼운 것 같은데, 반대쪽 문은 전혀 각목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니까 왼쪽 문은 각목에 걸려서 안 열리지만 오른쪽 문은 그냥 자유롭게 열린다는 말이다.
그리고 천웅방은.. 뭐 천웅방은 따지자면 2차대전 당시의 남경정부와 일본군의 관계처럼, 우리의 시다바리 같은 애들이다. 천웅방 수뇌부도 감히 덤빌 생각을 못하는데 조직원들이 독단적으로 전습대와 분쟁을 일으킨다라... 아마 지금쯤 그 남편이란 놈은 우정의 허망함을 깨닫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귀찮은 일은 빨리 끝내야겠기에, 베란다 문을 슥 열었다.
"장난은 그만하고, 나가라."
각목으로 막히지 않은 반대쪽 베란다 문을 쉽게 열면서 내가 각목을 발로 차고는 베란다로 들어오자 아줌마와 애들은 혼비백산하여 공포에 질렸다. 그러면서 애들은 엄마 뒤로 숨으려고 하고, 아줌마는 베란다 난간으로 물러나려고 하는데...
"텅!"
베란다 난간이 오래된 나머지 벽에 연결된 부분이 떨어져 나가면서 9살짜리 남자아이가 밑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의 다리를 붙잡은 나머지 여자아이도 함께 미끌리면서 떨어졌는데, 그 여자아이는 다시 아줌마의 다리를 붙잡았다.
덕분에 아줌마는 오른다리가 먼저 밖으로 끌려나가고, 몸이 기울어지면서 베란다 난간 끝의 떨어져나간 날카로운 부분에 얼굴이 긁히면서 피부가 찢어져나가면서 상체도 밖으로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왼발이 미끌려내려가면서 발꿈치가 콘크리트 턱에 걸렸다. 발꿈치만 놓고 보면 필사적으로 버티려고 한 모양이지만, 양말이 반쯤 벗겨지면서 발꿈치도 역시 밖으로 빠져나갔다.
다가가서 밑을 보니, 풀밭에 셋이 널부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베란다 난간 끝에 걸린 살점을 둘러본 것을 끝으로, 나는 베란다 문을 열면서 대원들에게 지시했다.
"본영에 연락해. 703호 퇴거 업무 다 끝났다고. 거 참... 별 이상한 것들이 속을 썩인다니까."
대원들이 대충 사시미 칼을 치우고 하면서 나갈 준비를 하는 도중 나는 밑으로 떨어진 세명의 용태가 궁금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 아파트 건물을 빙 돌아 베란다 앞으로 펼쳐진 풀밭으로 가보니, 위선의 댓가를 치룬 세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아줌마는 얼굴에 깊게 패인 상처를 가진 채로 무릎이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꺽여져 있었다. 남자아이는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폐를 뚫었는지 피거품을 쌕쌕거리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입으로 토해내다가 손쓸 새도 없이 움직임을 멈춰 버렸다. 여자아이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해둔다.
"아-시따오 노봇떼 소라오 미아게따라~"
안산 시내에서 이런 벨소리를 쓰는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지 싶다. 전화번호는 출장본영의 것이다. 받으니 김추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퇴거 끝냈다면서요? 근데 703호 맞아요?"
"맞아요. 아주 악질적인 놈들이 살고 있었던데, 해프닝은 좀 있었지만 뭐 잘 끝났죠."
"이상한데... 703호가 아니고 704호가 맞는데요?"
"뭐요? 아니 704호는 빈집이에요. 703호가 일본인들이 말해준 거기고, 불법 점거자들이 살고 있는 게 맞았는데?"
뭔가 안좋은 예감이 스쳤다. 그들은 왜 잘못 알고 있었으며, 왜 내가 본 서류에는 703호라고 쓰여 있었던 거지?
"어? 여기엔 703호로 되어 있네...?"
서류가 잘못 작성됐는데, 그걸 못보고 도장을 찍은 것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원래 부동산 계약서만큼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고 특히 우리는 요시노부 코퍼레이션(가칭)에서 부동산 중개업자도 전담으로 고용을 했기 때문에 그걸 틀릴 리가 없었다. 중간에 누가 서류를 바꿔치기라도 한건가, 아니면 뭐가 어찌 된건가? 아니 그걸 떠나서, 그럼 이 사람들은 죽을 이유도 없던 것 아니었나?
"뭔가 착오가 있었나본데, 좀 더 알아보고 전화 줘요."
전화를 끊고 나니 머릿속이 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703호가 맞기를 바라고 있었다.
"야아아아!!!"
뒤에서, 그것도 가까운 위치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뒤에서 누가 나를 기습한다! 본능적으로 판단한 나는 왼손으로 칼집 입구를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쯔바를 밀어서 칼을 뽑았다. 오른손으로 칼을 빼면서 왼발을 크게 오른쪽으로 내딛으며 칼을 머리 위로 올렸다. 곧 몸을 돌려 뒤로 돌면서 검을 한손으로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대각선으로 크게 후려쳤다. 일본육군 발도술 4본 후적(後敵)이다.
칼끝에 둔탁한 걸림이 느껴졌다. 칼을 흩뿌리고 상대를 보니 왠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마른 남자였다. 손에는 부엌칼이 들려 있었다. 뭔가 걸리는 듯한 느낌의 정체는 그의 얼굴을 보니 알 수 있었다. 대각선으로 쫘악 벌어진 시뻘건 속살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남자는 몇 걸음 걷는 듯 하더니 부엌칼을 떨어트리면서 아줌마의 시체 위로 엎어졌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불안감에 고개를 들자... 왠 놈이 스마트폰으로 여길 찍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토바이는 가와사키 닌자, 옷은 검회색의 양복 상하의, 와이셔츠는 검은색에 칼라는 바깥으로 뺐고, 손에는 가죽 장갑을 착용했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미역머리를 한 특유의 모습은... 흑호방 보스?
내가 자기를 봤다는 걸 알았는지 여유롭게 폰을 상의 담배포켓에 집어넣고는 오토바이의 굉음을 울리면서 빠르게 빠져나갔다. 권총이 있었더라면 쏴 보기라도 했겠지만 장검만 착용한 순찰무장이었으므로 뭘 할 수가 없었다.
뭔가 함정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에 불안할 즈음, 대원들이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대원들은 쓰러진 남자놈의 시신을 보고 상황을 이해한 듯 했지만, 내 복잡한 심경까지 헤아리지는 못한 듯 했다.
다음날 일본인들은 즐겁게 이사했다. 다만 위치는 역시 704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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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Dark Fantasy 신세기 괴신사집단 전습대 60화 재개발의 바벨탑
언젠가 씁니다.




덧글
사진을 찍은것은 언론이나 사람들에게 유포하여 전습대를 궁지에 몰려고 그러는 것인가..
역시 흑호방 보스 같은 놈들은 살려두면 후환이 되지요
그럴 경우 현재의 전습대는 분열될 가능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