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zairai.egloos.com

포토로그



전습대 56화 기획! 기획을 하자! 팬픽

방송국에서 방문한 작가진들과의 대화는 벌써 반나절을 막 지나고 있었다. 내가 제시한 <주먹이 운다> 프로그램의 검술 토너먼트 버젼 기획서는 긍정적으로 검토된 듯 했다. 덕분에 나는 내가 제안한 뼈대를 토대로 빠른 시간 안에 기획에 살이 붙고 곧 촬영에 들어가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건 그냥 내 망상에 불과했다.

긍정적으로 검토되었다는 건 말 그대로 <검토되었다> 는 정도에 불과했고, 아무튼 격투기와는 달리 생소한 검술이라는 분야에 있어서도 주먹이 운다처럼 기획을 해서 진행한다면 나름대로 좋은 성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일단 회의부터 해보자는 뜻에서 제작진 중 일부가 직접 전습대 출장본영을 방문한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건데, 구태여 전습대의 존재를 대외적으로 알리게 될 이 기획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는 했었다. 아무래도 주목을 받으면 받을수록 자경단이라는 존재는 공권력에 노출되고 언론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 주요 논점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사실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전습대이지만 그건 인천 주변지역 쯤에서나 좀 그렇지 아직 경기도에서도 전습대의 존재를 모르는 곳은 수두룩했고, 그런 점에서 아직 언론의 포화 같은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전습대의 존재를 대외적으로 홍보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거시기한 감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역시 더 나은 도약을 위해서는 이런 합법과 불법의 국경선에서 아슬아슬하게 노는 처지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완전히 까먹고 있던 부분이지만, 원래 전습대는 내가 배운 검술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면서 성장시켜 나갈, 무술 단체로써의 길을 걸을 예정이었던 곳이었다. 그게 그러다가 우리가 사이비 관장네를 퍼블릭 세션을 통해 완전히 개망신을 준 덕택에 자경단 역할을 하던 사이비 관장네 꼰대 집단들의 무능력이 폭로되면서 구시가지의 조직들이 안산 신시가지까지 넘볼 조짐이 생기니까,

안산시경이 책임을 지라면서 나에게 자경단 업무를 떠맡기고, 여기에 총기무장, 조직확대 등을 거쳐 대규모의 유혈사태를 거치며 결국 구시가지를 장악한 이른바 <안산시의 북양군벌>화 되어버린 게 지금의 전습대이다. 지금은 뭐 이란의 혁명수비대를 롤모델을 삼네 어쩌네 하고 있지만, 아직 인맥이라는 측면에서 너무나도 부족한 것이 많다. 시작은 인맥부터이다.

그런데 그 인맥을 만들어나가려면 어찌 해야 하나? 전습대와 연관을 시켜야 한다. 그런데 경기도는 좀비사태 이후로 쩌리가 되어버렸고 경기도에서는 사는 사람도 이제는 많지 않으며 사회 명사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우리 전습대가 검술판 주먹이 운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진짜 무술을 보유한 산실이라는 점을 홍보하면 사회적으로 불안불안한 이 한국에서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진짜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을 테고, 혹 누가 아나. 사회 명사들이야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겠지만 자기 아들들은 무술을 제대로 배우기를 바라긴 할 것이고, 그것을 통해 상류 사교계에 이름 하나 알릴 수 있는 것도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건 바라지도 않고, 사회적으로 거미줄같은 인적 네트워크의 작은 구심점이라도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전습대는 지금은 군벌화되었지만 원래 무술 교육 단체로써의 정체성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그 업무를 전담하는 것이 바로 전습대 내무교도단이라는 부서이고, 그 수장인 덴슈 나나부로 존 테일러가 안산 시민에 대한 무술 지도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비록 이 팬픽 상에서야 전혀 언급이 안되고 있기야 했지만..

그러니 일차적으로 홍보부터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내가 방송국에 주먹이 운다 검술버젼의 기획서를 보낸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에도 말했듯이, 제작진과의 대화는 거의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희가 조사해보니까요, 단체들마다 뭐 어디는 죽도를 쓰고.. 어디는 스펀지 칼을 쓰고 뭐 그러거든요. 펜싱은 펜싱검 쓰고, 아시다시피 격투기는 공통적인 그런 도구가 있잖아요. 글러브 같은.."

"강철 검을 쓰면 됩니다."

"예?"

작가진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인 인식으로야 철검으로 치고 받으면 다 뼈 부러져 죽을 텐데 철검을 쓴다?

"그건 좀... 저희가 방송이라서 너무 안좋은 방향으로 가는 건 재고해야 되거든요.."

"한번 보시죠."

내가 내민 핸드폰을 받아든 작가진은 영상을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내가 ARMA팀이나 전습대에서 스파링하는 광경이 찍혀있었다. 내용상으로 보면 전혀 크게 다치거나 하는 부분이 없었던지라 작가진은 보다가 납득했다는 듯이 핸드폰을 나에게 돌려주었지만, 역시 의구심 섞인 질문을 던져왔다.

"그런데 이건 같은 팀원분들이시고 그러신데, 아무래도 승부가 걸려있으면 좀 분위기가 과격해질 우려도 있고...."

"이미 그 점도 다 준비를 해 놨습니다."

뒤이어 작가진에게 보여준 강화 플라스틱판을 군데군데 설치한 스파링 방호복을 선보였다. 이것은 이전부터 내가 구상해 왔던 것으로, 겉보기에는 HEMA유저들이 사용하는 토너먼트용 방어복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단, 차이가 있다면 바로 저지력 문제를 판정하기 위해 만든 센서 송신장치였다. 김책 동지의 역작인 이 방호복의 강화 플라스틱판에는 충격 센서가 연결되어 있고 이것을 통해 일정 이상의 파워가 아니면 타격으로 판정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타격으로 판정될 경우 펜싱마스크 뒤에 장착된 송신기를 통해 서버로 전송되고 전광판에 불을 밝히게 되는 시스템이다.

뒤이어 방호복에 대한 설명과 함께 스틸 블런트로 타격해도 문제가 없음을 확인시키자 작가진의 표정이 그제서야 안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거는 맞아도 안아픈가요?"
"안아플 수는 없습니다. 철갑옷을 입어도 아픈 곳은 아픕니다. 다만 부상을 입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 부분을 봐야겠죠. 격투기만 하더라도 더 아프지만 그래도 방송에서 잘만 하지 않았습니까? 또 아무래도 이제 KO가 되어야 그림이 좀 나오지 않겠습니까."

판정, 방어구, 도구 문제는 그러려니 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제작진의 의구심은 끝이 없었다.

"그런데 단체마다 도구가 다 다른데 철검으로 한다는 것 때문에 참여율이 저조하고 그렇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저희도 방송 분량이라던가 이런 것도 생각을 해야 할 부분이라서요."

"어찌됐던 저희가 방송 분량 만들어드리면 되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방송이 다 연출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저희도 우리 대원들이나 아는 사람들 총동원하면 까짓거 출연자 모으는 거 일도 아닙니다. 일단은 제 제안대로 한번 해 보시고, 그래서 안된다 하면 저희가 군말없이 방송국 제안대로 따라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시도되는 기획인 만큼 합의하고 정해나가야 할 건은 상상을 초월했다. 참여자 토너먼트 방식으로 할건지, 지옥의 3분 방식으로 할건지, 전문가 멘토와 함께 육성 성장드라마 형식을 취할 건지도 그렇고 검술 스파링에 특화된 팀닥터가 존재하는가의 문제, 경기장의 규격은 어떻게 할 것인가, 법률적인 문제에 대한 자문, 지옥의 3분 형식을 취할 경우 절대고수는 어디서 어떤 기준으로 뽑을 것이며 멘토진들은 어떻게 어디서 공인된 권위를 가진 전문가들을 데려올 것인지, 사실상 방송국과 전습대의 기획이긴 하지만 멘토진들 중 타 단체에서 검술 고수로 알려진 명사들을 초빙하는 문제 등등등 정말 합의하고 구축해나가야 할 것이 상상을 초월했다.

덕분에 한나절 걸려서 토의를 했지만 대체적으로 서로의 입장과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에 대해서도 다 확인을 못하고 끝났을 뿐이었다. 일단 제작진 측도 기획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준비와 상부의 입장 및 허가 등등 문제가 산더미 같았던지라 다음 미팅을 일주일 후로 잡고서는 헤어지기로 했다. 물론 그대로 보낼 수 있을 리 만무했고 저녁은 당연히 내가 원곡동의 명물 인도 오천년의 식당에서 쐈다. 제작진들은 구시가지의 공포의 소문을 들었던지라 잔뜩 쫄은 모습이었지만 전습대원들이 치안유지 활동을 체계적으로 하는 걸 보고는 그제서야 우리의 위치와 위력을 실감한 듯 했다.

제작진을 배웅하고 출장본영 사무실로 돌아와 퇴근 준비를 하니 김 아무개가 쏜살같이 달려와서는 오늘 기획안에 대해 묻기를,

"어때, 되긴 될 거 같애?"

하면서 기대 만만한 얼굴이다.

"어리석은 우민들에게 백인의 의무를 다하기가 이렇게나 어렵다니..."

라는 한탄과 담배가 들려있지 않은 손을 튕기면서 존재하지 않는 연기를 내뿜는 시늉을 하는 나를 보는 김 아무개는 푹 썩은 미소를 짓는 듯 하더니 "아무튼 된다 이거지?" 라면서 자기 혼자 결론을 내리고는 고양이 마봉춘을 찾으러 사라졌다.

다음날 나는 출근한 간부들, 특히 그중에서도 총재 도쿠가와 요시노부, 덴슈 요부로 김무정, 덴슈 로쿠로 김석원의 다양한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이들도 역시 방송국의 검술판 주먹이 운다 기획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으며, 각자 자기의 무술로 모조리 때려잡을 생각에 벌써부터 만만인 듯 했다.

김 아무개나 간부, 심지어 총재까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전부 검술가라서 그렇다. 검술이란 이미 근대 이후에는 실전성을 잃었고 과거의 유산을 향유한다는 관점에서 배우고 유지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전부 실전의 유산이라는 고전검술들을 배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스포츠화된 검술 스포츠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무대란 건 존재할 수가 없었다. 이미 우주에서 떨어트리는 질량병기에 대한 논의가 오가는 이 시점에서 갑주에 장검으로 싸움이 있을 리도 없고, 좀비사태 이전까지 그들은 반쯤 거세된 상태로 살아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심각한 갈증 속에서 살아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 모두 좀비사태나 전습대 활동 이후로도 그것을 완전히 채우지는 못했다. 이유는 당연하다. 좀비는 그냥 움직이는 고기인형일 뿐이고 전습대 활동에서 만나는 적들이란 99%가 수준미달의, 비록 난폭하고 잔인하며 앞뒤 안가리긴 하지만, 어찌왰든 일반인일 뿐이라는 점이다. 수준미달의 사람들을 베어봐야 자신이 원하는 한계의 싸움을 과연 얼마나 해볼 수 있겠는가?

이들이 이 기획안에 무슨 애들처럼 버닝하는 것 또한 그런 갈증을 채워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비롯되는 것일 것이다. 그 결과가 어찌되었던 전국에서 내노라 하는 검객들이 모여든다면 그 중에서 자신이 배우고 단련한 한계까지 몰아붙여볼 수 있고 이기든 지든 후회없이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이 있기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이 바라는 것은, 뭐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그런 것일 것이다. 바로

하지만 그것도 이 기획이 살이 붙어 성공적으로 진행될 때의 문제이다. 여전히 기획은 어렵고 지난한 문제다. 촬영이 시작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산재할 것이며 그 촬영은 언제쯤에나 시작된단 말인가?

그것은 나로써도 알 수 없는 문제이다.

---------------------------
전습대 57화 언젠가 씁니다.

덧글

  • 암호 2014/03/07 00:29 # 답글

    아이스하키처럼 국내가 안 되면 여러 나라에 있는 단체가 모여 조성하는 것도 나오겠네요.
  • SvS 2014/03/07 05:20 # 삭제 답글

    메... 메타발언이..
  • 옆뱀 2014/03/07 12:17 # 답글

    언젠가 씁니다? 커헉!!
  • 煙雨 2014/03/07 12:49 # 답글

    재목은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로, 관장의 재등장을 예상 해 봅니다 ㅋㅋ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