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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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35화 후3일의 역(2) 팬픽

"...좋아. 지장 찍으면 더 좋지."

군말없이 왕조명이 찍고 있는 문서는 다름이 아닌 전습대 시큐리티 서비스 가입 문건이다. 전습대는 일차적으로 구시가지의 치안을 위탁받은 입장이지만 해당 건물을 둘러싸고 벌어질 소요사태에 대해 제갈 진욱이 딴지를 걸 우려가 있었으므로, 아예 합법적으로 보안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 아예 이 나이트&모텔을 우리 전습대 시큐리티 서비스의 보호 대상으로 해놓는 것이 좋다. 이 문서는 바로 그 시큐리티 서비스에 가입하는 계약서다.

왕조명이 지장을 찍자 내가 피계약자가 보관할 서류를 추스려서 왕조명 쪽으로 내밀었다. 나와 왕조명이 동시에 서류를 책상에 탁탁 치면서 정리하고 파일에 집어넣고서는 책상에 툭 내려놓았는데, 왕조명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여전히 서류철을 손에 쥐고 책상에 세운 채였다.
"왜그래?"
"간석동 애들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한 육칠백 정도 동원할 정도의 세력이랍니다. 그리고 조직원들이 다 진검 한두자루는 가지고 있다던데요...."

왕조명이 말끝을 흐렸다. 여전히 천웅방의 조직원들은 태반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데다 무기도 변변찮은 입장이고, 전습대도 200명이 안되는 수준이다. 아무래도 왕조명은 아무리 전습대가 무술을 배웠다 한들 그 숫자를 이길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건 당연하다. 중세 후기 독일의 검술 마스터인 요하네스 리히테나워도 넷에서 여섯명의 적에게서 도망치는 것은 비겁한 것이 아니라는 언급을 했을 만큼 기예가 감당할 수 있는 수적 차이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렇지만 싸움이 벌어지면 우리는 좋든 싫든 무조건 이기게 된다.

"상관없어. 다 쏴버릴거니까."
"예? 쏜다구요?"
"걔네들 쓰러지면 진검 니들이 회수해서 하나씩 나눠가지면 될거야."
"총 못쏘는 거 아니었어요?"

제갈 진욱이 치안을 위협하는 세력은 그만한 정도로 진압해야 된다고 했다는 말을 들려주면서 아무리 제갈 진욱이라도 700명이 진검 들고 쳐들어오는데 총쐈다고 뭐라 하겠느냐고 하자 왕조명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납득은 못하는 눈치였다.

"그 서장이 뒤통수치는거 아니에요?"
"뒤통수 치고 싶기야 하겠지. 그런데 안산시경은 여전히 예산도 없고 인력도 없어. 배경도 없으면서 야망만 크다니까. 구시가지의 치안.. 원곡파출소 천만개를 개소해봐라. 전습대가 없으면 경찰 서넛도 배치못할 텐데 그러다 사시미가 될지 통구이가 될지..."

왕조명은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시선은 책상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양손을 맞잡고는 엄지손가락이 복잡하게 움직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뭔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양쪽으로 두어번 흔들더니 시선은 여전히 책상을 향했지만 허리는 조금 펴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꼭 쏴죽여야 됩니까? 그 여자도 그래도 여잔데... 이건 마치 장평에서 40만을 생매장한 거 생각나는데요.. 함정 파놓고 몰아서 죽인다는 건데.. 그래야 될 이유가 있긴 한건지.."
"아까 다 얘기해 줬잖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양손을 풀고 허리를 세웠지만 여전히 시선은 책상이다.

"아뇨.. 근데 그것도 따지자면 형이 이기고 오히려 골탕까지 먹여준 거 아닙니까. 250만원이나 손해를 안겨줬다매요. 그럼 그냥 그걸로 잊어버리면 안돼요?"
"그 년놈들이 손해를 봤든 안 봤든 난 눈치 존나 봐가며 인천지법까지 왔다갔다했는데, 그리고 내 동료 상사들이 모아서 내준 돈은 뭐 정당한 물건 대금인가? 손해를 떠나서 그것들 개념이 글러먹었잖아. 손해를 보면 젋은 놈 엿먹이고 고소 먼저하고는 합의 해주쇼 하고 질질 짜고 무릎꿇기만 기다리면서 선심 쓰듯이 뭐 이백 삼백 이하로는 안되 이따위 기대를 품어도 되나? 내가 그년 턱을 가루로 만들어버렸으면 씨발 천만원도 웃으면서 내드려. 손맛이 죽여주니까 근데 내가 쉐도복싱이라도 했냐 이거야."

화일을 손바닥으로 팍 치면서 책상 다리를 발로 차서 밀어버리자 왕조명은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무릎에 두고 있었다. 슬쩍 비쳐보이는 얼굴빛은 굉장히 어두웠다. 한 10초 정도 그대로 있다가 살짝 고개를 들면서 무겁게 입을 여는 왕조명의 언급에 내 분노는 혈관 파열하듯이 슬쩍 터져나왔다.

"그래도 형이 성격이 좋으시니까..."
"계약서 찢어버릴까?"
"......"

왕조명은 아예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안했다. 괜히 한소리 했다가 더 화를 내니까 얼어버린 듯 했다.

"응? 계약서 찢어버리고 아예 인천 새끼들 안산에서 장사 잘 하시라고 그냥 내비둘까? 너는 그냥 가만있으면 10억 빚도 갚고 인천에 다리도 하나 걸쳐놓을 수 있는데 니도 어깨들 데리고 기생질 하면서 뭔 선지자 코스프레야? 왜 갑자기 성현의 도를 말 못해서 안달났어?"

손으로 화일을 확 밀어쳐내자 화일에 끼워져 있던 계약서들이 쏟아져나와 방 안에서 어지럽게 휘날렸다. 왕조명이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 것을 10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면서 노려보다가 화가 좀 풀려서 책상에 둔 손을 치우고 의자에 등을 기댄 채로 다시 왕조명을 노려보다가 눈에 힘을 풀고는 의자 팔걸이에 팔을 대고 주먹을 쥐고 턱을 괴면서 흐트러진 계약서들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때 그 일은 그동안 잊어버리고 잘 살았지. 따지고 보면 이제와서 아무것도 아냐. 그런데 아직 그년 말 하나만큼은 아직이야."

흐트러진 계약서 종이들 하나하나로 시선을 옯겨가면서 말을 계속한다.

"날더러 힘 믿고 어른 패는 패륜아라면서 자식새끼 교육을 잘못받아서 그랬다더군. 그러면서 자기 아들놈은 효성이 지극하고 예의가 개쩔어준다는 거야. 공부도 잘하고 뭐 못하는게 없다지? 나같은 놈과는 완전 다르다던데, 뭐 어깨들 데리고 폭력단 장사하는 자식새끼가 얼마나 그러신지는 모르겠다만, 이번에 그 효성을 한번 실험해 봐야겠어."

왕조명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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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후.

새벽 2시에 전습대 사무실로 돌아가니 사무실에는 불이 켜진 채로 나를 본 간부들이 일제히 기립했다. 자리에 앉자 간부들도 자리에 앉았고, 여원홍이 다가와 섰다.

"아직까지 별일은 없죠?"
"있었으면 벌써 연락드렸을 겁니다. 계약도 체결하셨다면서요?"

계약서는 놓고 와버렸다며 현재 상황을 질문하니 간석동 간지대장파가 한참 차량과 조직원들을 모으는 중인데 아직 100여명이 좀 모였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출발하기에는 아직 2시간은 족히 걸릴 거라는 설명이 올라왔다. 그러고보니 우리의 쿼드콥터 UAV가 떴으면 스크린에 영상이 나오고 있을 텐데 그런 것도 전혀 없고 스크린도 말려올라간 상태 그대로이다. 거기에...

"우리 UAV는 아직 서창분기점 너머로 진출 못하는거 아니었나요?"
"정보는 기계뿐만 아니라 인재도 매우 중요합니다. 인천은 수십년 전부터 중국인들이 살고 있고... 지금은 더 많지요."

잠시 가만히 있다가 말을 잇는다.

"그리고 저는 중국인 사회에서 이름이 좀 있는 처지이고 말입니다."

과연 여원홍이다. 역시 발은 넓고 봐야 볼 일이다.

"그럼 시간 여유는 두시간 정도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1시간 반 정도 취침을 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좋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간부들 모두 기립했다. 간부들은 대기하고 병력들은 취침시키도록 전습대봉행 명령을 하달하고 간부들이 죄다 나간지 5분 정도 지나자 대원 숙소로 쓰이는 교실의 불이 일제히 꺼지는 것이 보였다. 한 2분 정도 있다가 간부들이 우르르 들어오고서는 다들 늘어지다시피 했다. 아무래도 갑작스레 와서는 생각도 못한 밤샘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책상들을 둘러보던 와중 경리 책상에서 갑자기 불룩 솟아오른 검은 건 김추자의 머리였다.

"집에 안 갔어요?"
"생각해보니까 택시가 더 위험하겠더라구요. 택시기사가 나처럼 <아름다운>여자를 보고 무슨 흑심을 품을지 어떻게 알아요?"

<키레이:예쁜>도 아닌 무려 <우츠크시이>이다. 이런 여자는 버르장 머리를 고쳐놔야지...

"잘 됐군요. 커피 좀 타 와요."
"에?!"
"간부 동지들! 김추자씨가 커피를 타 온답니다!"
"오오오!!"

사람들의 환호성에 당황을 금치 못하는 김추자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자기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나를 쏘아보는데 거기에는 짜증과 체념이 가득했다. 결국 일어서는 김추자 뒤로 캬라멜 마끼아또요 헤이즐넛이요 전습대 사무실에서는 절대로 만들 수 없는 비싼 커피의 이름이 날아들었으나, 응접실에서 돌아온 김추자의 커피는 일관되게 간부들의 선호도가 최악인 테이스터스 초이스 뿐이었다. 그리고 내 커피는 그냥 찬물에 커피믹스를 풀어버린 가루찬물 그 자체였으며, 종이컵 속의 악마적 비주얼을 보고 망연자실한 내 시선 너머의 김추자는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일괄적으로 참혹했던 후3일의 역 내내 유일하게 마음 풀 수 있는 순간이었다고 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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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3부 신세기 괴신사집단 전습대 36화 후3일의 역(3)
언젠가 씁니다.

덧글

  • 2014/01/10 01:4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동아 2014/01/10 01:47 # 답글

    뭔가 아줌마 사연에서 앤드류 경의 개인적 경험이 살짝 묻어나는 듯한 느낌은 착각이려나요??^^;;;
    저런 진상 아줌마에게 걸려서 고생한 적 없으신지요?
  • ㅇㅅㅇ 2014/01/10 03:38 # 삭제

    생각보다 저런 진상은 우리 곁에 많습니다.

    뺑소니 친 뒤에 5만원 쥐여주고 사라지길래
    경찰에 사고접수했더니 먼저 서에 접수해놓고
    자해공갈단으로 몬다거나

    그런 아줌마들 많아요.

    그건 그렇고 커피는 맥심 골드믹스가 짱인데
    전습대는 맥심 안묵나봐요
  • Zimen 2014/01/10 07:04 # 삭제 답글

    오옹 빠른업뎃 오오옹
    일렬횡대로 일제사격 가나여
  • ㄱㄱ 2014/01/10 08:27 # 삭제 답글

    크... 경찰이 어쩔지는 몰라도 뉴스는 조만간 공중파 레벨로 크게 탈 법 하군요.
  • 수련자 2014/01/10 12:09 # 답글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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