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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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대 30화 전9일의 역 8일째 팬픽

대원들이 순찰 나가고 나서 밤 12시가 지났다. 따지자면 7일째에서 두시간 정도밖에 안지났지만 일단 밤 12시 지나면 다음날이라고 부르니까 8일째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와동 쪽에서도 교전이 발생했습니다. 이걸로 구시가지에 순찰나간 모든 대원이 교전중입니다."

여원홍의 보고를 듣지 않아도 스크린에 비추어지는 쿼드콥터 UAV영상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적외선 카메라나 열영상 장비는 구할 방도가 없었으므로 일반 카메라를 달고 있어 야간 촬영은 원칙적으론 불가능하다. 여기에 난리가 벌어진다는 소문 탓에 가게들은 일찍 문을 닫아버린 지라, 가게 조명의 보조는 받을 수 없었지만 다행히도 가로등의 힘으로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전습대원에게 1.8m짜리 봉을 가지고 나가게 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UAV가 송출하는 영상을 보자면, 항적방 조직원들이 때로는 단독으로 또는 짝을 지어서 전습대원을 기습하지만, 두께 32mm정도의 히코리 나무 봉의 질량 앞에 면상을 찔리고는 얼굴을 감싸며 주저앉는다던가, 봉을 쳐내보겠다고 몽둥이나 도끼로 휘둘러 보지만 봉을 슬쩍 아래로 내리는 것만으로도 허망하게 허공을 가르고는 뒤이어 날아온 봉에 얼굴을 맞더니 뭔가 동그란 게 덜렁거리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는 얼굴을 감싸쥐며 땅에서 뒹군다던가 하는 입장이다.

개중에는 용감하게 달려들어 봉을 잡고 늘어지는 동안 다른 패거리들이 전습대원을 쳐죽이려고 하였으나 다른 대원이 휘두른 봉에 얼굴을 맞고 정신 못차리고, 봉이 잡혀버린 대원이 봉을 홱 놓고는 한다치(半太刀)를 발도하여 휘둘러 손가락을 날려버리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등, 전체적으로 전습대원들이 우위에 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커다란 사시미나 일본도를 들고 달려드는 조직원들은 아주 교과서적으로 쳐맞고 있었다. 전습대원들은 따로 봉술을 교육받은 적은 없는데 그럼 왜 이리 잘 싸우느냐, 바로 근대 총검술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거의 교양 수업 수준 내지는 야성을 기르는 과목 정도로 퇴화된 21세기의 총검술과는 달리 근대시대에는 총검이 아주 중요한 무기였으며 무술적 시스템으로 통제되고 있었다. 자신의 상체를 상하좌우 4개의 공간으로 설정하고 이 곳으로 들어오는 총검을 적절한 쳐내기&누르기로 치워낸 다음 찌르기로 반격하는 기법은 고전 창술이나 봉술에서도 가장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원리이기 때문에 총검술을 잘하면 봉술이나 창술도 절반은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바로 그 장점이 오늘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보통 무술목봉이라고 팔리는 것이 가볍고 잘 부러지는 목봉으로 위력도 대단치 않다. 850g정도에 두께는 28mm정도이고 목재도 정체불명이지만 예로부터 서양에서는 그렇게 얇은 봉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었고 우리가 쓰는 것도 1.25인치(32mm)의 지름에 단단한 히코리 나무로 만든 물건이라 무게는 1.5kg좀 안될 정도로 배를 맞으면 숨을 쉴 수 없으며 갈비를 전력으로 타격하면 기본적으로 골절과 함께하는 정도의 사악한 물건이다.

여기에 왜 얼굴을 찔러야 하느냐면 얼굴로 날아오는 찌르기는 앞에서 봤을 때 찌르기 동작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눈치챘을 때에는 이미 다 날아온 시점인데다, 눈에 뭐가 날아들면 어지간한 사람은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그러면 대비도 못하고 얼굴에 육중한 봉으로 쳐 맞게 되는 것인데, 휘두르기도 아니고 체중을 실은 찌르기이기 때문에 위력은 보통이 아니다. 아마 아까 튀어나와 덜렁거리던 동그란 건 내 생각에는 아마 눈알이 아닌가 싶다. 눈 밑을 맞고는 골절되면서 튀어나왔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만...

단 모든 상황이 다 잘 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진짜로 무술을 제대로 배운 것 같은 사람이 있기는 했다. 특히 3m정도의 창을 든 놈이 초지동 빌라 밀집지역에서 잘 싸우고 있었는데 대원들이 기세에 눌려 감히 달려들 생각을 못하고 있다. 기세로 압도한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달려들면서 더욱 기세등등하게 창으로 찌르기를 해가며 압박하고 있었는데, 근처에서 항적방 조직원을 제압하고 케이블 타이로 손발을 묶어버린 대원들이 그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을 포착했으므로, 큰 걱정은 덜 만 했다. 창은 오직 전면에서만 유리하기 때문에 누가 측면이나 뒤에서 다구리를 치기 시작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간의 싸움박질을 떠나 과거 마케도니안 팔랑크스가 로마군에게 털린 사례로도 증명이 된다.

그러나 쿼드콥터 UAV가 정말 찾고자 하는 건 이런 싸움구경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항적방의 두목인 채욱이 전습대 출장본영으로 언제 어느 루트로 쳐들어오는가를 포착하는 것이 이 오밤중에 쿼드콥터 UAV를 날려대는 목적이다. 그걸 알아야만 미리 준비하고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나는 해군 타치는 고이 모셔두고 자랑의 롱소드인 알비온 얼(The Earl)을 허리에 차고 비상사태에 대기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짧은 카타나를 가지고 관장과 살떨리는 대결을 했던 실수를 두번 할 내가 아니지. 하지만 채욱을 맞이할 것은 이런 롱소드가 아니라 보다 전술적인 여러 병기들이었다.

"잠깐! 저 차좀 확대해 봐."

여원홍이 UAV조작원의 노트북 화면에 얼굴을 대고는 집중하고 있다. 아무래도 뭔가를 발견한 듯 했다.

"채욱이 나타난거요?"
"한번 보십시오."

스크린에 나타난 차량은 벌써 밤인데도 불구하고 헤드라이트는 커녕 차폭등도 켜지 않은 채 좁은 길만 골라서 이 원곡고 쪽으로 오고 있었다. 나름 등화관제를 하는 모양이지만 가로등이 이리 찬란해서야 소용이 있나. 오히려 대놓고 수상한 행동을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골목을 지나 UAV카메라에 대각선으로 잡히자 차종도 확실해졌다. 넓은 실내공간을 자랑하는 쌍용 이스타나다.

"조명이 한번 봐봐. 저게 채욱이 차인가?"

왕조명은 스크린을 가만히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원래 채욱은 포드 머스탱을 끌고 다니고 다른 차에 대해서는 자기가 아는 바 없다는 말이다. 이미 채욱을 유인하기 위해 원곡고 정문은 일부러 자물쇠를 빼놓았고 경비병력도 배치하지 않았다. 출장본영 사무실은 커텐을 쳐놓고 방에 불도 꺼버렸으며 스크린과 영사기만 빛을 내고 있었다. 항적방은 어차피 출장본영의 자세한 구조는 모를 테니 그들을 유인하기 위해 엉뚱한 교실에 불을 켜놓았다.

쌍용 이스타나는 이제 보니 한두대가 아니었다. 무려 4대의 이스타나가 사방에서 원곡고를 향해 오고 있었다. 이제 5분 정도면 원곡고에 도착하게 된다. 이제 작전을 실행할 때가 되었다. 내가 여원홍을 쳐다보자 여원홍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곧 도착한다. 완전 등화관제에 임하고 모든 불빛은 꺼라. 바로 지정된 위치로 간다. 빨리! 2분안에 처리한다!"

사무실이 분주해졌다. 다들 UAV통제를 위해 노트북을 빼내고 접어서 팔에 끼고 영사기의 전원을 내리자 조명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불빛 외에는 없게 되었다. 급히 사무실 인원들이 지정된 위치로 이동하느라 우르르 빠져나가는 사이에 김추자는 나를 보면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또 얼토당토않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저도 봉행씨 옆에서 구경하면 안될까요? 나도 칼 쓸줄 아는데.."
"농담할 때 아니니까 가서 써치라이트나 켜요."
"쳇.."

자꾸 무슨 쓸데없는 간을 저리 보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김추자도 빠르게 빠져나가고 사무실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여원홍은 옥상에서 작전을 통괄하기로 했고 급하게 빠져나와 운동장 구석의 화단에 몸을 숨겼다. 미리 갖다놓은 확성기와 함께다. 몸을 숨기고 난지 30초도 되지 않아 중고 이스타나의 썩어빠진 엔진음이 들려오더니 곧 조용해졌다. 슬라이드 문을 여는 소리가 나더니 사람들 발소리가 나고, 교문 정문과 후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불이 켜진 교실 밑으로 빠르게 움직인다.

"내 눈에 보이는 저게 지금 갑옷인가?"

분명히 움직이는 놈 중 하나는 화려한 중국 갑옷을 입고 있었다. 거기에 언월도 비슷한 무기의 칼날이 가로등의 불빛에 번쩍거리며 반사되는걸 보면... 항적방의 두목 채욱도 역시 다크 판타지의 소유자였단 말인가. 오늘 자존심을 건 한판에 저걸 꺼내입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덕택에 한가지는 편해졌다. 바로 저놈이 채욱이라는 것이다. 왕조명을 데리고 올 것도 없었지 싶다.

불이 켜진 교실 밑의 출입문으로 모여든 놈들을 보면 하나같이 체격이 건장하고 딱 봐도 운동한 티가 나는 사람들인걸로 보아 아마 항적방의 최정예가 아닌가 싶었다. 허리에는 죄다 정글도 같은 걸 찬 것 같은데, 저걸 잘 쓴다는 건지 아니면 나름 실내전을 대비했다는 건지 알 수는 없으나, 주먹구구 식으로 무장한 보통 조직원들에 비하면 무장도 통일된 걸로 보아 제대로 훈련을 받은 놈들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운동 제대로 한 놈들이 훈련도 제대로 받고 무장도 통일되게 갖추었다는 말이 된다. 거기에 한놈은 무려 갑옷에 언월도까지 들고 나타났고... 하지만 그들이 뭘 들고 오건 간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은 지금부터 증명될 것이다. 놈들이 문에 정신이 팔린 사이 운동장 한복판까지 당당하게 걸어 온 내가 어깨에 맨 확성기의 마이크를 입에 대고 소리쳤다.

"이보게 채욱이. 어디를 그리 급하게 가는가?"

확성기 소리와 함께 놈들이 일제히 이쪽을 보는 사이 옥상에서 서치라이트가 갑자기 켜지며 놈들을 비추었다. 다시 서치라이트를 보지만 눈이 부셔서 팔로 얼굴을 가리며 정신을 못차리는 사이 옥상에서 화염병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화염병의 목적은 놈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포위선을 만드는 것이다. 서치라이트가 비춰지는 원 둘레로 화염병들이 빠르게 떨어져 깨지면서 신너+가솔린+스티로폼의 황금비율로 배합된 끈적거리는 기름에 불이 붙자 빠른 속도로 화염의 벽이 형성되었다. 놈들은 서치라이트에 눈이 부셔서 위도 못보고 화염병이 계속해서 떨어져 깨지는 데에 패닉 상태에 빠져가지고는, 그렇지만 불벽 앞에 도망도 못가는 입장이 되어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판이다.

"엌! 끄아악!!"

뒤이어 비명 소리와 함께 팔로 머리를 감싸는 놈들의 모습이 보인다. 총을 못쓰면 슬링샷이라도 쓰지 않을 수가 없잖아? 슬링샷이란 새총의 강화 버젼이라고 보면 된다. 강력한 고무줄로 발사되는 볼베어링의 위력은 뼈는 못뚫더라도 살가죽을 팍팍 파고 들어가 박혀 피가 줄줄 새게 만드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BB탄 총이 위험하네 어쩌내 방송에서 노래를 부른다만 백만원 들여 개조한 극악파워 총의 위력이 십만원도 안되는 중국제 슬링샷만도 못하다는 것이 현실이다. 원래 뉴트리아 정도까지는 사냥할 수 있으라고 만든 물건이다.

주변에는 불, 위에서는 슬링샷이 소나기처럼 떨어지는 가운데 몇몇 놈들은 쓰러지다시피 했지만, 채욱은 피해가 없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옷을 입었으니까. 다들 정신 못차리고 있는 사이 갑자기 하얀 가루가 뿜어지기 시작하면서 불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이런..."

쌍용 이스타나에서 사람들이 전부 다 내린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예비조가 있었던 것 같다. 두어명이 급하게 소화기로 화염병 벽을 터내자 다들 그곳으로 급하게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이스타나에서 내린 예비조들이 우산 같은 걸로 조직원들 머리를 보호하자 슬링샷도 더이상 피해를 입히지 못하는 듯 했다.

내눈이 녹내장이 아니라면 저게 등패가 틀림없는데... 등패란 등나무 줄기를 엮어서 만든 가볍고 탄력있고 튼튼한 방패를 말한다. 칼에도 망가지지 않고 화살도 막아내며, 원거리라면 화승총도 막아내는 그 위력은 조선 중국뿐만 아니라 이슬람세계에서도 기존의 철방패를 밀어내고 대세의 자리를 차지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아니 저런 걸 실어오다니.. 항적방은 내 상상 이상의 집단이었단 말인가. 하기야 저런 걸 실어오려면 이스타나 정도는 동원해야 자리가 나온다.

화염병과 슬링샷의 세례를 피해 운동장으로 뛰어나온 채욱과 등패종자들이 슬링샷이 위협이 되지 않는 거리까지 나왔다는 걸 확인하더니 일제히 나를 돌아보았다. 어.. 그러니까 갑옷에 언월도에 정글도에 등패까지 갖춘 열몇명의 깡패들 앞에 무장이라고는 롱소드 달랑 한자루에 확성기를 옵션으로 갖춘 사람 딱 한명이 있다는 상황이란 말이지...

눈앞에서 놈들의 살기가 폭주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지금 이게 보통 상황이 아니다. 도망가면 죄다 쫓아올까봐 제자리에 서서 허세를 뿜으면서 핸드폰에 연결된 이어폰 마이크로 작전지도역을 호출했다.

"지금 상황 보고 있습니까? 뭔가 아주 곤란한 상황 같은데요...."
"가용 가능한 대원들은 원곡고로 급행하라고 해 놓았습니다. 단 도착하려면 가장 빠른 곳에 있는 대원도 10분은 걸릴 겁니다."
"내 목숨 끝나는 데는 1분도 길어요. 화염병은 몇개나 남았습니까?"
"스무개 정도 남았습니다만, 본영 요원들을 내려보내기엔 위험성이 너무 큽니다."
"압니다. 근데 그거 나에게 전달해 줄 방법은 있겠어요? 등패는 불에 약하니 화염병을 바닥에 깨기만 하면 어렵지는 않겠는데.."
"건물 옥상에서 150m떨어진 곳으로 전달할 방법은..."
"없는 줄 압니다. 으와왓!"

등패종자들이 달려오다가 멈추더니 일제히 뭔가를 날린다. 급하게 뒤로 도망치면서 땅에 뭔가 박히는 소리만 들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투창이다. 투창까지 갖다 쓴다고?! 순간 머릿속에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어 오히려 등패종자들에게 달려들면서 확성기를 바닥으로 내던지자, 확성기가 땅바닥을 구르다가 나에게 달려오던 등패종자 한명이 확성기에 발이 걸렸는지 넘어져 버렸고 방패를 겹치고 오던 터라 다른 등패종자들도 엉거주춤했다. 그 틈을 타해 나는 세 자루의 투창을 회수하고는 옆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근처까지 갈 테니 내 신호에 맞춰서 화염병 던져버려요. 알겠죠?"
"알겠습니다. 화염병 준비!"
"저 정글도종자들이 정신 못차리게 슬링샷은 계속 쏴버려요!"

곧 땅바닥에서 온몸에서 새어나오는 피에 정신 못차리며 앉아 있던 정예 정글도종자들에게 단속적인 슬링샷이 또 날아들기 시작했다. 아까처럼 집중적으로 쏘아지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명중하자 이제는 다들 이대로라면 볼베어링에 맞아 죽겠다고 생각했는지 하나 둘 일어서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무릎에 강하게 맞았는지 다리를 절면서 넘어졌다 섰다를 반복하며 겨우 도망가는 놈도 있었다. 도망가는 놈들이야 다행이지만, 몇놈은 완전히 실신을 했는지 전신이 피범벅이 되어서는 아예 일어서지조차 못하는 놈도 더러 있었다.

"니기미 조또...!"

그 상황과는 별개로 등패종자들은 대열이고 뭐고 이제는 나를 쫓아서 전력질주로 달려오고 있었다. 전투력을 온존한 것이나 다름없는 채욱도 마찬가지로 이놈은 갑옷까지 입고 있는데도 도무지 지칠 생각을 않는다. 이래서 스테로이드 종자는 마음에 안든다. 급하게 달려 계단을 올라 학교 건물 앞 화단까지 오자 놈들도 바로 뛰어올라 내 앞까지 달려들려 한다.

"지금!! 화염병!!"

다급하게 외침과 동시에 위에서 화염병이 날아들어 깨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십몇명에 달하는 등패종자들이 움찔하고 멈춰버렸다. 두놈인가는 기름을 잔뜩 먹인 등패에 불이 옯겨붙자, 처음엔 별로 안 번지는가 싶더니 곧 빠르게 불이 등패 전체로 번지는 바람에 급하게 빼려다 손에 걸렸는지 당황하다가 다른 놈이 도와주어 겨우 뺐으나, 그 도와준 놈도 등패에 불이 옯겨붙어 빼버릴 수밖에 없었다. 화염병 투척으로 세놈의 등패를 없애버릴 수 있었던 셈이다. 다른 등패종자들도 등패에 불이 붙을까봐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고 자연스레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슬링샷 쏠까요?"
"아니 쏘지말아요! 튕기면 내가 맞습니다."

옥상에서 등패종자들 머리 위를 맞출 수 있을 정도로 가깝지는 않았다. 쏘면 등패나 맞출 수 있겠지만 등패에 맞아봐야 피해를 주지도 못할 뿐더러 튕겨나오면 나만 크게 다칠 수도 있다. 구태여 위험 부담을 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만 끌면 대원들이 도착할테고, 그러면 내가 자연스레 무조건 이기게 된다.

"대원들이 원곡고 근처까지 왔습니다. 30초 안으로 진입할 겁니다."
"몇명이죠?"
"10명 정도입니다. 다른 대원들은 7분 정도는 더 있어야 할 겁니다."
"나를 구원할 필요 없으니 이스타나 습격해서 운전자 끌어내리라고 하세요. 예비조도 박살내고!"
"알겠습니다."

불이 점점 약해지고 있자 놈들의 기세가 다시 심상치 않았다. 화염병이 두어개 더 날아들어 깨지면서 한쪽은 보강되었지만, 다른 한쪽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

"뭐해요? 빨리 이쪽도 던져요!"
"다 떨어졌습니다. 화염병 없습니다."
"Damn!!

이어폰에 집중하고 있다가 고개를 들자 언월도가 하늘 높이 들어올려진 것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옆으로 도망치자 내가 있던 바로 그 자리의 나무가 언월도에 맞는 소리가 들렸는데, 다시 몸을 돌려 채욱이 있는 곳을 향하고는 눈동자를 굴려 그 나무를 보니 깔끔하게 잘라져 있었다. 비록 두꺼운 나무는 아니지만 저렇게 깔끔하게 잘리다니 과연 언월도의 위력을 실감할 만 하다.

뒤이어 다시 언월도를 들어 나를 내리치려고 자세를 잡으며 달려들자 내가 손에 쥐고 있던 투창 하나를 채욱의 얼굴을 향해 던지자 채욱이 언월도를 들어 자루로 쳐냈다. 공격이 끝난 줄 알았는지 언월도를 든 손을 잠깐 내린 찰나의 순간에 내가 또다시 얼굴을 향해 투창을 던지자 팔을 더 높이 들어올리면서 다시 쳐냈다. 문제는 같은 곳으로 두번 공격이 들어오니 거기에 더 신경쓰느라 턱이 훤히 드러났다는 것이다.

"큭...꾸뤠렉..."

채욱의 입에서 가래 끓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의 턱 밑에는 내가 찌른 투창이 꽃혀 있던 것이다. 창날이 턱 밑의 살가죽을 뚫고 혀까지 관통했으니 배어나오는 피와 침 탓에 신음소리도 제대로 나올 리가 없다. 채욱은 곧 언월도의 자루로 내가 쥐고 있는 투창을 쳐냈지만 나는 손을 놓아버렸고 이미 자기 턱 밑에 박혀버린 투창을 자기가 직접 쳐버렸으니 투창이 입 안을 마구 헤집어버리는 것을 자초한 거나 다름없다. 고통에 못이겨 언월도를 던져버리고는 투창을 뽑았으나 그게 더 실수였다.

"쿠우우웈... 쿠우웈웈..."

투창을 뽑았으니 구멍이 생겨버려 이제는 숨을 쉬려고 해도 공기가 입과 턱 밑 두개의 구멍으로 동시에 들어가 숨을 들이쉬면 피가 입 안으로 솟구쳐들어오고, 숨을 내쉬면 입과 턱 밑 구멍으로 뿜어지는 처참한 형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양 손으로 턱 밑 구멍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지만 그게 그걸로 되나.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숨을 내쉬자 턱 밑 구멍으로 피와 침이 섞인 액체가 뿜어져 목과 갑옷을 적셨고 자신만만에 분노를 더했던 채욱의 얼굴은 당황과 죽음의 공포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그 표정을 보자면 마치 "어떻게 하지? 어쩌면 좋지?"라고 얼굴로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면 딱 맞다고 할 수 있겠다.

그걸 보고 있는 등패종자들의 얼굴도 하얗게 질려있었다. 기괴한 소리와 본적도 없는 부상에 완전히 질려버린 것이다. 마침 그때 정문 밖 도로에서 대기하던 이스타나 한대가 갑자기 시동을 걸고 속도를 확 내더니 원곡고 정문을 들이받아 열고서는 채욱 앞에 멈춰 섰다. 급히 빵빵대자 등패종자들도 정신을 차리고는 등패를 버리고 급히 문을 열고 채욱의 갑옷을 하나 둘 벗기면서 채욱을 이스타나에 밀어넣듯이 태우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도 롱소드를 뽑았으나 이스타나가 급하게 후진하는 바람에 한명도 벨 수 없었다.

이스타나는 곧 화단 여기저기에 박으면서 차를 돌리더니 빠른 속도로 원곡고 정문을 빠져나갔다. 이윽고 과거 폭동에서 불타버렸던 원곡파출소 자리의 Y자 교차로까지 잘 가는 가 싶더니 끼이익 소리를 내며 야간 운행하던 트럭과 박아버리고는 두어 차례 굴러버렸다. 그곳과 원곡고는 별로 멀지도 않기 때문에 이스타나에서 채욱을 부축하며 내리고 질질 끌고가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작전지도역! 놈이 항적방 아지트라던 그 나이트클럽 겸 모텔 건물로 가는 것 같군요. 감시는 어떻습니까?"
"UAV가 추적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이동 동선은 그곳으로 가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다른 대원들은 도착했습니까?"
"30초 안으로 15명의 대원들이 교문으로 진입합니다."
"그럼 아까 이스타나를 처리한 10명의 대원들에게 즉시 이스타나를 타고 그 모텔로 가라고 하세요. 이스타나로 주차장을 봉쇄하고 출입구를 감시하도록 해야 합니다. 다른 대원들이 도착하는 대로 즉시 채욱 체포를 위한 진입작전을 실시할 겁니다."
"외곽에서 교전 발생!"

이건 또 무슨소리야?

"대원들에게 교내로 진입하라고 말해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슬링샷은 후문쪽으로 쏠수 있게 배치해서 근접 지원 가능하게 해 주세요. 내가 직접 현장으로 급행할 겁니다."

항적방의 별동대가 또 있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후문 쪽으로 달려가서 보니 교전중인 것은 먼저 도착해서 이스타나를 털어버린 10명의 대원들이고, 15명의 대원들은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츄리닝 바지에 패딩점퍼 패션에 반다나로 떼강도 패션을 선보이는 7명 정도 되보이는 일본도 든 놈들이 바로 대원들과 교전중인 놈들이었다. 항적방과는 전혀 다르다. 뭐지?

"탓!"

기합 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빠르게 달려드는 놈이 있어 나도 굴하지 않고 롱소드로 머리를 쪼개려 하니 중간에서 멈추는 바람에 칼이 땅을 찍어버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이 칼을 머리 위로 높이 들고 달려드려고 하나 도로 칼을 홱 들어올리면서 나도 머리 위로 칼을 들어올리자 놈이 멈추었다. 분명히 칼에 뭐가 닿는 느낌이 났는데, 보니 패딩점퍼의 허연 솜이 보이는 걸로 봐선 아마 손목부분 점퍼만 긋고 지나간 듯 싶었다.

"사기꾼?"

놈의 눈썹이 움찔하더니 눈에 깊은 빡침을 떠올리면서 중단 자세를 취하고 견제한다. 혼잣말로 뭔가 중얼중얼 대는데 들어보니 씨바 너무 늦었어 운운하는 것 같다.

"사기꾼 맞네. 아니 이번엔 어디서 또 단기 연수 받아서 남의 검술 훔쳐 왔능가?"
"시끄러워 이 친일파 쪽바리 놈! 네놈이 남경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타카야마류 도법을 배운 줄 내가 다 알고 있다!"

이건 또 뭔소리여? 일본해군 타카야마류 도법은 완전 마이너에 전인도 두세명 뿐이고 좀 찾다가 걍 말아버렸는디..

"오미 이 시벌놈 말하는것좀 보소? 내가 해군도 차고 다닌다고 타카야마류 쓴다고 지레짐작 해부렀능가!! 지금 니 눈에 이 칼이 일본칼로 보이냐?"

내 손에 들린 롱소드는 보이지도 않는건지, 지 혼자 넘겨짚는 것도 이놈 주특기인 모양이다. 그런 것 치고는 검술은 어디서 제대로 된 걸 배워왔는데...

"그분을 만난 이후로 내 인생이 변했다. 이제 난 진짜 검술을 배웠어, 네놈을 반드시 죽여버리고 모든 것을 다시 되찾을거다!"

"어디 일본 고류라도 줏어듣고 왔나보지?"

"닥쳐! 내가 너같은 쪽바리인줄 알아? 우리 조선 검술이다!"

호오... 용의선상의 유파가 점점 좁혀진다.

"양날 장검이 아닌 걸 보니 추풍검법은 아닌 거 같고..."

놈의 눈이 동요하는 듯 했다. 설마 그런 검술들의 이름을 내가 알고있으리라고는 생각도 안한 모양이다.

"강원도의 두람? 전라도의 매화문? 아니면...."

놈이 노발대발하며 달려든다. 즉시 롱소드를 길게 뻗어 놈의 얼굴을 향해 찔렀으나 놈이 칼로 올려쳐 빗겨내면서 다시 칼을 돌려 아래에서 위로 올려친다. 롱소드가 쳐내어져 튀어나갔지만 왼발을 뒤로 빼면서 오히려 그 반동을 이용해 칼끝을 땅으로 향하게 칼을 세우는 쉬랑훗, 즉 성벽의 자세로 전환하자 올려베기가 내 칼에 바인딩된다. 굴하지 않고 내 롱소드를 타고 올라와 노출된 내 손을 노렸으나 이미 나는 칼을 돌려 놈의 머리를 내려치려 하니 놈이 내 손을 노리던 것을 포기하고 자기 머리 왼쪽 위로 칼을 올려 롱소드의 베기를 막아냈다.

그놈은 날길이 69cm의 짧은 칼, 짧은 칼에 손잡이가 기니 레버리지가 커서 롱소드와의 힘싸움이나 근접 전투에서는 오히려 유리하다. 내 롱소드를 밀어내면서 칼을 떼더니 다시 수평베기를 시도하여 내 손가락을 노렸으나 롱소드의 크로스가드에 막혀버렸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내가 뒷다리를 굽히고 앞다리를 펴면서 몸통을 뒤로 빼면서 간격을 확보하여 놈을 찌르려고 하자 녀석이 급하게 후퇴했고, 한걸음 더 가면서 재차 찔렀으나 계속 빠져나가는 바람에 결국 못 찔렀다. 대체 무슨 인연으로 저놈이 저런 검술을 배웠지?

"관장님!! 놈들이 더 몰려옵니다!!"
"멍청아! 그렇게 부르면 어떠케!!"

아니 뭐 정체는 다 알고 있었는데.. 후문에서는 이미 상황이 거의 종료되어가고 있었다. 20여명의 대원들이 이미 진입한지 오래라 7명 정도에 불과한 관장 끄나풀들은 벌써 죄다 도망친 모양이다. 이 녀석만 그래도 관장 구한답시고 와서는 알려주는 건데, 그놈 뒤에서는 이미 35명의 전습대원들이 육척 장봉을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관장도 그걸 보더니 크게 당황하고는 담벼락 쪽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반드시 네놈을 죽일테다!"
"죽일려면 그냥 공개 현피를 떠라! 그래야 니놈이 명예가 살지!"

대꾸도 안하고 담을 넘어 도망가는 관장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니 곧 어디서 많이 들어본 오토바이 소리가 나면서 신시가지 쪽으로 사라져갔다.

"괜찮으십니까?"

달려온 대원들이 안부를 묻는 말에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들어보이고는 숨을 고르며 학교 쪽을 보니, 본영 요원들이 나와서 화염병 불길은 다 진압했고 슬링샷에 쓰러진 항적방 조직원들에게 응급 처치를 하고 있었다. 저사람들 도와주라고 말한 다음 대원들이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가자 가서 널부러진 확성기를 챙긴 다음 여원홍과 연결했다.

"채욱 그놈이 그 모텔 건물로 들어간 건 맞지요?"
"UAV가 포착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아직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 안에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좋아! 토벌이다! 가능한 한 대원들을 급행시켜서 현장을 봉쇄하도록 하세요.오늘 동이 트기 전에 놈을 체포할 겁니다."

8일째 새벽 4시. 사흘 전의 실패를 만회할 만큼의 대 성과였다.
넌 이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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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판타지 3부 신세기 괴신사집단 전습대 31화 전9일의 역 8일째 모텔과 쑥대밭
언젠가 씁니다.

극중에 등장한 전통검술에 관해

*추풍검술 - 고려시대부터 내려왔다고 알려진 검술. 130cm정도의 양날검을 사용하며 왜정시대 중국 만주에서 마적단과 싸워 이긴 일화를 가지고 있다. 전수자가 있었지만 2009년에 사망하여 사실상 단절됨. 형 위주의 수련보다는 나뭇잎 베기 또는 사방을 빠르게 베는 것 등 동체시력과 신체능력의 강화를 주로 하는 시스템이었다고 하며, 지금은 망한 조선무도구연구소 랑가라는 도검사를 차린 것이 그의 제자였다고 함.

*두람 - 원래는 이름이 없고 그냥 검술과 권법으로 이루어졌던 시스템. 현재 전수자를 가르친 스승에 대해서는 검술의 초당&권법의 도막지라는 말도 있고 초당은 호, 이름은 도막지라는 말도 있다. 전수자가 운동권에서 활약하여 놀라운 전투력 때문에 북한의 특수 간첩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하며, 전수자는 살아있음. 최근 한겨레TV와의 인터뷰도 진행함.

*매화문 - 이름만 들어봄. 자세한 내막은 모름.

그외에 기타등등 수많은 진짜 무술들이 알게 모르게 전수되고 있다고들 합니다.

덧글

  • 판테르 2013/12/28 20:54 # 삭제 답글

    전통 무술이.... 있긴 있었나 보네요;;;; 씨름 택견 궁술 외엔 거의다 지리멸렬한줄 알았는데
  • 판테르 2013/12/28 20:55 # 삭제 답글

    하여간 이번에도 흥미진진합니다.
  • ㅇ오ㅇ 2013/12/28 22:25 # 삭제 답글

    삼국시대 이래로 등갑은 통구이가 제맛이지라
  • γοργεους 2013/12/29 00:12 # 삭제 답글

    뭐야 채욱이 이렇게 골로감여?? 허무해;;;
  • 앤드류 체이스 커닝햄 2013/12/29 01:08 #

    인생은 한방입니다.
  • 2013/12/29 04: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Zimen 2013/12/29 11:43 # 삭제 답글

    꿀잼ㅋㅋㅋ 근데 슬링끈은 탄성이 없지않나여 ㅋ
  • 煙雨 2013/12/29 15:55 # 삭제

    슬링이라고 하면 보통 돌팔매를 가리키는 말이니 탄성이 있으면 안되는거고, 슬링샷은 돌팔매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보통은 고무줄 쓰는 새총을 가리킵니다.
  • Zimen 2013/12/29 19:00 # 삭제

    아하 역시 사람은 배워야..ㅋㅋㅋ
  • 까치대부 2013/12/29 12:57 # 답글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두람이라는게 전인분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사실불명의 내용이 있는데 전통무예는 아니더라도 현대창작으로 괜찮은 내용인가요?
  • 앤드류 체이스 커닝햄 2013/12/29 14:08 #

    그 인터뷰 내용이 말하자면 검술의 실기나 전술 부문이 아니라 멘탈 케어와 관련된 철학들이고 또 [건강과 삷]이라는 연재 주제에 맞추다 보니 아무래도 인터뷰 내용이 특정 방향으로 끌고간 감이 있죠. 내용 대부분은 그런 면에서 그냥 대충 귀로 흘리면 그만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사실 일본 같은 경우 계보추적이 가능할 정도로 잘 정리되어 있는데 일본은 검술 자체가 예능이고 자기 가문의 격과 전통을 내세워 취직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비단 무술뿐만 아니라 노나 가부키, 꽃꽃이 같은 모든 예능에서 그렇게 계보를 철저히 기록합니다. 그런데 한국 같은 경우는 별로 그런 거에 신경 안 쓰고 살았던 모양인지라 계보를 추적하려고 해도 전수자의 2~3대까지가 고작인 경우가 많죠. 거기에 체계화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없었던 모양인지 원래는 무술에 대한 명칭이 그냥 없고 그냥 검술 내지는 무술, 세법, 도법 등으로 보편적인 단어만 쓰다 보니 그냥 이게 뭔지 아예 추적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이 아무개 류 이런 식으로 자기 아이덴디티를 정립하기 위해 혈안이 된 것과는 정반대죠.

    게다가 듣기론 같은 무술을 배웠어도 정작 개념을 표현하는 단어라던가 비유가 싹다 틀리고 자기 개성대로 완전 다른 무술이 되어서 나타난 경우가 있어 난리가 벌어진 적도 있었다고 들었죠. 팔괘장이 비슷한 경우였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보니 그 내용이 계보추적이 되느냐, 검증이 되느냐는 최소한 한국에서는 답하기가 불가능한 문제인 경우가 많고 저같은 경우 그 시스템이 진짜로 싸움이 되는 시스템인가, 아니면 커리큘럼 문제로 싸움은 못한다 쳐도 그것이 과거 실전에서 나온 유물임이 확실한가만 봅니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그건 중요한 유물로써 가치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두람이라는 거에 대해서는 저도 영상 보고 뭐가 뭔지는 모릅니다. 몸은 잘 쓰는 것 같지만 저 행동이 무슨 의미인가에 대해서는 결국 하나하나 말을 들어봐야죠. 그냥 베기를 연결해서 볼타 스타빌레처럼 전후로 방향 바꿔가면서 하는 거일 수도 있고 중간중간 티프로그레션으로 자세를 넣어가면서 한 거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거야 제가 봐서는 모르는 거고 괜찮은지 아닌지도 알 도리가 없지요.
  • Arcadia 2013/12/29 20:01 # 삭제 답글

    추풍검술의 전인인 분은 2009년이 아닌 2008년 초에 암으로 인해 작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분의 무예에 누군가 추풍검이니 화류검이니 일심검이니 명칭을 부르던데 제가 알기론 무술 자체에 특정 고유 명칭은 없었던걸로 압니다 저도 그리 알고 찾아가서 물었을당시 그런 명칭같은건 없다고 하셨거든요

    단. 무예 수련방법과 권법 및 검술 기술과 호흡법 및 단련방식엔 따로 한자로 명칭이 있는걸로 압니다

    제자로는 몇명 있지만 모든걸 전수 받은 사람은 없다고 하며 가장 많이 배운분이 몇년간 동거한 조카분이라고 하셨었는데 그분조차 약 50%정도 익혔다고 하니 사실상 맥이 단절된거라고 봐도 무방하더군요 그 전인이 되시는 분의 스승님이 아직 생존해 계신다고 하나 고령인데다가 무예에 관해선 그만둔지 오래되었다고 하시니........

    그 검술은 딱히 130cm의 검이라고 제원이 정해진건 아닙니다 제가 봤을때 권법부터 단검및 소도나 1m에서 120cm의 길이의 검을 각각 제원에 맞게 잡는대로 편수 및 쌍수로 자유자재로 쓰는검술인걸로 봐서 특정제원의 검을 다루는 무술이라기 보단 몸을 이해하고 각 연장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걸 몸과 조화를 맞추는데 수련의 방식에 촛점을 두는게 아닌가 생각되더군요

    여담으로 조선무도구연구소 랑가의 그분은 원래 해동검도인이며 그분에게는 단 몇달만 배웠다고 합니다

    두람은 경기도 일대와 충청도 지역에 수련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충청도는 택견인들을 중심으로 경기도는 24반 무예인들을 중심으로 수련하신분들이 많더군요 저는 단체교습할시기때의 검술만 봤습니다만 일반 검술과는 다르게, 바로 봐선 무슨 의미의 동작인지 모르겠더군요 직심영류 검술을 처음 봤을때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 앤드류 체이스 커닝햄 2013/12/29 21:47 #

    감사합니다. 역시 이쪽 정보는 워낙 단편적이라 알기 힘든 부분이 많은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저런 무술들은 정말 보존하고 남겨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더군요. 일본의 영향 탓인지 계보요 고증이요를 운운하는 풍조가 커졌지만 그런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게 일본도 근대를 거치며 많은 부침이나 실전도 있었거니와 검증 들어가면 군기물의 주인공과 연결시키거나 하는 등 무리가 있는 부분이 많아서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더군요. 사상누각이라는 느낌이었죠.

    과거의 관점은 실용 기술로써의 그것이었는데 이전부터 전해진 실용 기법이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이제는요. 오히려 동남아 등지의 무술들을 보면 계보 같은 것은 없고 각 가문이나 부족, 동네에서 이름도 없이 그냥 싸움 기술이라고 전수되어 오던 것들이 수없이 많은데 현대의 무술 시장에 노출되면서 구분을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름을 설정해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가령 칼리라고 하는데 칼리라는 이름은 원래 있지도 않았고 수십년전에 불쑥 등장한 이름일 뿐이라고 하고, 실랏 같은 것도 마찬가지구요. 정작 그렇게 이름을 지어놓고 나니 근현대에 형성된 이름을 가지고 추적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으니 아이러니하죠 ㅎㅎ;;

    계보 추적이라는 것도 결국 일본의 영향이 큰데 서양 검술도 대부분 세상에 드러난 시기만 얼추 추정 가능할 뿐 알려진 마스터 이전으로는 계보 추적 자체가 불가능하죠. 근대든 중세든 다 그렇구요. 단 충분히 실용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중요한 부분인데 이래저래 일본은 우리에게 좋은 점에서든 나쁜 점에서든 굉장한 영향을 끼친 것 같긴 합니다.
  • 아키캐드 2013/12/29 20:15 # 삭제 답글

    좀비사태 때만 해도 시청도, 독서도 정도만 하던 주인공이 이젠 천하제일검 포스가 나네요. 감개가 무량합니다
  • 앤드류 체이스 커닝햄 2013/12/29 21:53 #

    좀비사태는 2009년이었는데 근대검술에 비로소 진지하게 임하기 시작한 게 2010년 중후반 부터였으니까요 ㅎㅎ;; 그전까지는 그냥 그림 몇개 보고 흉내만 삼사분 잠깐 내다가 1796세이버의 간지에 흡족해하며 구석에 치워놓고 까맣게 잊어버리던 정도였죠.

    생각해보면 쓸때는 그냥 생각없이 썼는데 써놓고 보니 채욱이 덩치크고 갑옷입은 게 무의식중에 과거의 제가 반영된 거 아닌가 싶네요. 장비 좋다고 설치다가 기예에 훅가는 것이 마치 지금의 자신이 과거의 저를 극복하는 것을 상징하는 씬처럼 느껴지는군요. 물론 꿈보다 해몽이라고 쓸때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썼습니다.
  • 판테르 2013/12/30 00:38 # 삭제 답글

    커닝행 : 난 갑옷 덕후임을 포기하겠다 술탄!

    이런 느낌입니까?
  • Zimen 2013/12/30 01:28 # 삭제

    ㅋㅋㅋㅋ왠지적절
  • 지나가던과객 2014/01/01 00:25 # 삭제 답글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이른 것이거늘!!

    사기꾼 관장이 무협소설에 너무 심취했나보군요.

    뭔가를 배웠으면 그걸 자기 몸에 제대로 흡수를 하고 복수를 하든 뭘 하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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