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작전지도역 겸 전습대참모역인 여원홍은 자기가 끌려온 신세라는 것도 잊어버린듯 놀랍게 일처리를 해내고 있었다. 그것은 불분명하던 전습대 간부들의 권한 설정부터 시작해서 작전구역의 설정과 할당, 7개의 시나리오로 규정된 소요사태와 그에 따른 작전계획 등등 체계가 잡혀있지 않던 전습대를 비로소 그럴듯하게 바꿔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나도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전습대를 3개 완편소대 체제에서 7개 혼성소대 체제로 전환시켰다. 기존의 완편소대를 1개 소대 40명에서 완편 32명으로 줄이고, 1~3소대를 주력 소대로 삼는다. 이 소대는 이전처럼 자율방범대 업무와 시큐리티 서비스를 맡고, 비상시 전습대의 최대 전력이 되는 중핵 소대로 중대편제를 도입하여 1중대로 편성했다.
나머지 4개 소대는 3개가 보충소대이고, 1개는 시민들의 무술지도를 책임지는 전습대 내무교도대이다. 원래는 기존 대원들 중 로테이션으로 돌려서 일을 맡기는 말뿐인 편제였지만 이번에 상설편제로 전환된 것이다. 어찌되었든 현실의 불안한 치안에 대비해 이름난 전습대의 병법 교육을 받고 싶다는 수요는 꾸준했기 때문에 땡전 한푼 안 나오는 무료봉사인 시민 병법교습은 유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것이 전습대의 모체이기도 했거니와 꾸준히 좋은 인재를 골라잡을 수 있는 인재 풀이기도 했으니, 무료 봉사라고 투덜거릴 것만은 아니다.
3개 보충소대는, 놀랍게도 원곡고 학생들을 예비역으로 삼는 시스템이다. 원곡고 학생들에게 병법을 교습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양반이 앞장서서 나도 생각안하던 학생 동원 시스템을 만들 줄이야... 기존 소대를 32명으로 줄이면서 생긴 8명씩에 신규로 전입된 4명씩을 더해 각 소대별로 기간병 12명에 나머지 20명은 비상시 학생을 소집하여 채우는 방식이다. 이 또한 중대편제를 도입하여 4,5,6소대를 제2중대로 편성했다.
이리하여 전습대의 군사 제도는 전직 중화민국군 대령인 여원홍의 주도아래 새롭게 개편되었다. 대략적인 서열은 다음과 같다.
전습대 총재 겸 장군 도쿠가와 요시노부
전습대 봉행 겸 보병지도역 에노모토 카마지로(나)
전습대 작전지도역 여원홍 <=전 중화민국군 대령. 천진기업 오너.
덴슈 이치부로 1소대장 김진철
덴슈 니부로 2소대장 김책 <=통칭 전습대 인텔리. 김책전파사 주인.
덴슈 사부로 3소대장 이상평 <=보병지도역상당에서 3소대장으로 보직변경.
덴슈 요부로 4소대장 김무정 <=중국 남권의 달인. 항일대도의 본좌.
덴슈 고부로 5소대장 오진우 <=유격 조교 출신.
덴슈 로쿠로 6소대장 김석원 <=전습대 최연장자. 63세. 자칭 음류도법 전인.
덴슈 나나부로 내무교도단장 존 테일러 <=라성양복점 주인.
경리 가네야마 아키코(통칭 김추자)
".....이 말도 안되는 일본어에 대해 해명해 보시죠?"
한참 문서를 들여다보던 김추자가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일본어에서 이런 경우는 이치로 내지는 타로, 다음엔 지로, 사부로, 시로, 고로, 로쿠로, 시치로 순으로 넘어가지 이치부로라는 용법은 천하에 듣도보도 못한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첫째 둘째 셋째를 갖다가 일째 이째 삼째 이런 식으로 부르는 것이니, 김추자가 어이털려하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럴 거라 생각했소. 허나 이 이름에는 역사와 전통이 있어요."
"말도 안되는 일본어에 무슨 역사와 전통이에요? 차라리 대농장 이름을 대고 아스케장의 아스케 시게노리를 자처하는 게 낫겠네요."
"때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때는 192X년, 남산 통감부 관저를 떠나 경복궁 자리에 세워졌던 조선물산공진회 자리를 철거하고 일본이 마침내 조선총독부 신청사를 건립하던 것도 막바지에 이르를 즈음, 일본이 특별히 신경을 썼던 총독부의 대리석 외장 공사를 위해 독일, 일본, 중국의 3국 돌쟁이들이 조선으로 건너왔다. 이때 일본인 팀에 속하여 기술을 배워 한국 돌쟁이의 시초가 된 7인이 있었으니 그들을 이른바 7인의 오야지라고 부른다.
이들은 각자 이치부로~나나부로까지 네임이 붙여졌는데 일본인 장인 밑에 입문한 순서대로이다. 이때만 해도 판재를 가지고 앵글과 에폭시, 핀으로 시공하거나 시멘트와 모래를 섞은 사모래를 이용하는 현대와는 달리, 진짜로 두꺼운 통돌을 사용했고 절단과 모양도 현장에서 직접 내어 인력으로 올리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한명의 오야지가 100여명의 일꾼들을 이끌고 다녔다. 현장에는 매일 저녁 공구를 재열처리하고 재정비하는 대장장이들이 상주할 정도였으며 한번 공사에 연단위가 걸리는 것은 일반적이었다.
일본인들의 장인사회가 으례 그렇듯 석공들도 가족 취급을 받으며 도제 형식으로 입문하였고, 3년을 졸업반으로 보았다. 1년째는 오야지에게 손해를 안겨주고, 2년째에는 자기 밥값을 하며, 3년째에는 비로소 오야지에게 돈을 벌어다준다고 하는데 그만큼 기술의 숙련도와 실력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 3년을 채우지 않고 중간에 도주한다면 즉시 전국에 퍼진 7인의 오야지 네트워크에 연락이 가서 절대 돌 계열에서는 일을 못하도록 철저하게 제외시켜버린다.
해방 이후 일본인이 사라진 한국에선 오직 7인의 오야지들만이 돌일의 중심이었고, 이들이 일본인에게 배운 전통적인 돌 공사 시스템은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건설 때까지 이어진다. 80년대 말에 들어 독일 신공법이 들어오고 전동공구들이 범람하면서 7인의 오야지들과 그 돌일 방식은 이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지만 아직도 돌 계열에서는 전설처럼 그들의 이름이 전해져 온다고 한다.
"........라는 거요. 기왕이면 우리만의 특색을 가진 전통의 이름이 나에겐 필요했던 거지요."
"...보고 웃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네요. 니부로가 대체 뭐야?"
"전화 왔는가 본데 저거나 좀 받아요."
김추자가 정체불명 일본어에 불만이 가득한 듯 일부러 슬슬 걸어가서 전화를 받고는 곧 내선 버튼을 누르며 수화기를 놓자 내 책상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보병지도역입니다."
"학생회장 진형명입니다. 작금 13시를 기하여 2학년 2반 출석번호 21번 김영철과 2학년 2번 출석번호 13번 장진혁 두 학생간 결투 허가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보병지도역의 입회를 요청합니다."
"승지(承知)했다. 곧 내려갈 테니 채비를 갖추라."
"감사합니다!"
대충 프록코트를 걸치고 나가니 여원홍이 쫓아온다.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학생들끼리 뭐 결투?"
여원홍은 원래 나한테는 반말을 했었지만 출근 당일부터 높임말을 썼다. 단, 둘만 있거나 사석일 때에는 예사높임인 하오체만 쓴다. 높임말을 쓰는 것은 역시 전습대의 규율을 갖추기 위해서는 나이보다는 직급이 우선이라는 것 때문이다. 집단이 크고 작고를 떠나 군이라면 상하관계가 명확해야 하며 이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 항명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경력자는 철저하다. 다만 둘이 있을 때 하오체로 한단계 낮추는 것은 그래도 나 너보다 나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가끔 반말도 섞는데, 이정도야 뭐 그러려니 한다.
여원홍은 계속해서 나를 쫓아왔는데, 결투가 있다는 것은 나에게 이미 말을 들었다. 일단 규칙상으로 원곡고에는 학생간 분쟁을 룰에 의거한 대결로 해결하는데, 링에서 글러브를 끼고 하는 복싱 대결이 있다. 이것은 학생회장 재량으로 수행하며 굳이 내가 참관하지는 않는다. 나중에 보고서를 제출받을 뿐이다. 나머지 하나는 학생들끼리 복싱 대결을 거부하고 더 강한 수단을 원할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진검 대결이다. 그렇다고 생사결을 겨루는 싸움은 아니고, 규칙에 의거하여 먼저 피가 나면 지는 멘수르(Mensur) 대결이다. 이 멘수르로 넘어갈 경우 반드시 나에게 보고를 하고 입회 하에 이루어져야 하며 이 규칙도 나에게 들었다. 요컨데 여원홍은 멘수를 실제로 본 적도 없고 해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기는 해야겠다는 것이다.
노는 교실을 개조해 만든 멘수르 결투장으로 들어서니 학생들이 일제히 목례를 한다. 이미 학생 둘은 멘수르 보호구를 입고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멘수르는 19세기 중부유럽의 대학에서 유행하던 결투법으로, 원래 스몰소드로 이루어지던 결투로 사망자가 속출하자 안전하게 결투를 하기 위해 나온 방식이다. 몸과 오른팔을 가리는 패딩 방어복을 입고, 목과 코, 눈을 보호하는 철제 안경과 목보호대를 착용한다. 커다란 바스켓가드로 오른손은 완벽하게 보호받는다. 결국 노출된 곳은 얼굴 뿐인데, 바로 이 얼굴에 피를 내면 이기는 방식이다. 당연히 찌르기는 금지다.
"디스탄스!"
내가 자리에 서자 학생회장이 디스탄스, 즉 거리를 잴 것을 명령한다. 이는 공정함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멘수르에 사용하는 세이버인 슐레거(Schlager)의 칼날 길이를 길게 하는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는지 서로의 칼을 대보아 칼날길이가 같은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확인이 끝나자 두 학생들이 자세를 취한다. 행잉가드와 거의 비슷한 이 가드는 서로 곧게 서고 오른팔을 쭉 펴서 올리고, 칼끝은 비스듬하게 옆으로 세우는 것이다. 왼쪽은 칼날이 커버하고 손은 바스켓가드가 보호하며, 오른팔은 패딩 암가드가 보호한다. 이것을 통해 그 어떤 베기에서도 얼굴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게 된다. 공격을 위해 이 가드가 해제된 순간 상대의 얼굴로 열린 오프닝을 번개같이 포착해서 친다. 이것이 바로 멘수르의 기법이다.
"시작!"
학생회장의 구령이 떨어지자 곧 감정이 잔뜩 실린 칼날이 미친 듯이 상대의 얼굴을 향해 휘둘러진다. 하지만 행잉가드만 취하면 완벽하게 방어되기 때문에 각 7합을 주고받았는데도 아직 아무도 상처를 입은 사람이 없다. 7합을 주고받자 양옆에 선 학생들이 급히 자신들의 슐레거를 결투 당사자들의 칼 사이로 끼워넣어 이 이상 칼을 휘두르지 못하게 막는다. 감정이 폭발하여 결투가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시작!"
다시 학생회장이 소리치자 다시 몇차례 칼질이 오고간다. 절대 발을 이용하거나 허리를 사용해 앞뒤로 움직여서는 안된다. 멘수르는 생사결이 아니며, 진검으로 이루어지는 결투에서도 결코 도망치지 않는다는 남자의 자존심을 어필하고 규칙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신사적 소양을 증명한다. 그 안에서 모욕을 절대 참지 않으며 그를 위해서 결투도 불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윽!"
한 학생의 턱에 마침내 칼자국이 생겼고 곧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동석한 양호선생이 곧 응급처치를 시작했으나 학생이 거부하고 다음 결투를 위해 행잉가드를 취했다. 여기에서는 2판 선승제다. 2판을 먼저 이기는 사람이 이기는 룰이다. 피를 보자 동석한 여학생들은 완전히 얼굴이 굳어졌고, 남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원래 멘수르 결투장에는 절대로 여자가 들어와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시대도 변했거니와 남자가 명예를 위해 어떻게까지 하는가를 여자도 평등하게 보고 알아야 한다는 판단 하에 나는 여자들도 멘수르를 참관하도록 시켰다.
뒤이어 몇합을 주고받다가 이번에는 다른 학생의 뺨에 칼자국이 생겼다. 당연하지만 약 1~2mm정도의 깊이이므로 생명의 지장은 없다. 원래 슐레거 자체가 칼날을 굉장히 가늘게 만드는데, 세게 후려쳐도 중상을 입지 않도록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다.
세번째 판에서 먼저 턱에 칼을 맞은 학생이 똑같이 턱에 칼을 맞고 결투는 종결되었다. 보아하니 이긴 학생의 요령이 대단했는데, 턱을 맞은 학생이 행잉가드를 풀고 칼을 들어 내려치려는 것에 대항해 그 짧은 틈새를 놓치지 않고 칼을 짧게 올려쳐서 더 빠르게 턱을 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올려치는 모션을 취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이 칼을 들어서 내려치는 것보다 빠르니, 턱을 맞은 학생의 이어지는 내려치기도 행잉가드로 안전하에 커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양호선생의 응급처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감정으로 시작된 결투 속에서도 신사적인 절제와 규칙을 지킨 학생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피자라도 시켜먹으며 회포를 풀도록 50만원이 든 현금 봉투를 학생회장에게 건네주었다. 원래 싸움 뒤에는 뒷풀이가 있어야 감정이 남지 않는 법이고, 19세기에도 멘수르가 끝나면 양측 전부 맥주집으로 몰려가 회포를 푸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관습이다.
결투장을 나오는데 여원홍은 계속 뒤를 보면서 참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날 쫓아오면서 의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니 저렇게 칼을 가지고 해야 하는 건가? 그냥 복싱만 하면 안되나?"
"그런데 보통 결투로는 사단이 납니다. 검술 대련이라는 건 자칫하면 큰 사고가 나죠. 감정으로 시작한 싸움을 맨주먹으로는 납득 못하겠고 기어이 진검으로 풀겠다고 하는 것인데, 보호구를 착용시키면 서로 두들겨패고 감정만 남습니다. 그렇다고 보호구를 벗기면 더 큰일나죠. 그렇게 대련하는 것은 맞으면 검리적으로 내가 당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분명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화가 잔뜩 난 그것도 혈기 넘치는 젋은이들이 그런 걸로 납득을 할 리가 없습니다. 서로 무자비하게 찔러대다가 큰일 나는 거죠. 그러니 서로 최선을 다하고, 진검을 쓰지만 크게 다치지 않고, 룰을 남자의 자존심을 덧씌워 어기는 것 자체를 치욕으로 만듬으로써 젋은 혈기를 비로소 납득시킬 수 있는 겁니다."
"그전에 진검으로 결투를 시킨다는 전제 자체가 문제일세. 차라리 그냥 애들끼리 싸움박질을 시켜!"
"그러면 학내에서 싸움을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 다시 일진 빵셔틀의 계급이 생깁니다. 그 어떤 사람도 룰에 의거해 평등하게 도전하고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유지해야 본질적으로 평등해지는 겁니다. 모든 분쟁도 우리가 통제해야 합니다. 그 어떤 종파적 행동도 제 세계에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난 아닌 것 같네."
"조금만 더 여기 계시다 보면 다 납득하게 되실 겁니다."
3시간 후, 집에 도착하니 김 아무개가 번개같이 튀어나왔다.
"아저씨야, 상담이 있어! 내 친구가..."
"돈 없어!"
"개돼지야 누가 돈 달래? 그런 일이 있다니까!"
여전히 한국말을 못하는 김추자는 상황파악이 안 되어 집에 오자마자 고성이 오가는 상황에 곤란한 표정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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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 괴신사집단 전습대 21화 기둥서방 잔혹동화
언젠가 씁니다.
*멘수르
당시 멘수르와 독일 대학가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단편 드라마.
특히 나도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전습대를 3개 완편소대 체제에서 7개 혼성소대 체제로 전환시켰다. 기존의 완편소대를 1개 소대 40명에서 완편 32명으로 줄이고, 1~3소대를 주력 소대로 삼는다. 이 소대는 이전처럼 자율방범대 업무와 시큐리티 서비스를 맡고, 비상시 전습대의 최대 전력이 되는 중핵 소대로 중대편제를 도입하여 1중대로 편성했다.
나머지 4개 소대는 3개가 보충소대이고, 1개는 시민들의 무술지도를 책임지는 전습대 내무교도대이다. 원래는 기존 대원들 중 로테이션으로 돌려서 일을 맡기는 말뿐인 편제였지만 이번에 상설편제로 전환된 것이다. 어찌되었든 현실의 불안한 치안에 대비해 이름난 전습대의 병법 교육을 받고 싶다는 수요는 꾸준했기 때문에 땡전 한푼 안 나오는 무료봉사인 시민 병법교습은 유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것이 전습대의 모체이기도 했거니와 꾸준히 좋은 인재를 골라잡을 수 있는 인재 풀이기도 했으니, 무료 봉사라고 투덜거릴 것만은 아니다.
3개 보충소대는, 놀랍게도 원곡고 학생들을 예비역으로 삼는 시스템이다. 원곡고 학생들에게 병법을 교습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양반이 앞장서서 나도 생각안하던 학생 동원 시스템을 만들 줄이야... 기존 소대를 32명으로 줄이면서 생긴 8명씩에 신규로 전입된 4명씩을 더해 각 소대별로 기간병 12명에 나머지 20명은 비상시 학생을 소집하여 채우는 방식이다. 이 또한 중대편제를 도입하여 4,5,6소대를 제2중대로 편성했다.
이리하여 전습대의 군사 제도는 전직 중화민국군 대령인 여원홍의 주도아래 새롭게 개편되었다. 대략적인 서열은 다음과 같다.
전습대 총재 겸 장군 도쿠가와 요시노부
전습대 봉행 겸 보병지도역 에노모토 카마지로(나)
전습대 작전지도역 여원홍 <=전 중화민국군 대령. 천진기업 오너.
덴슈 이치부로 1소대장 김진철
덴슈 니부로 2소대장 김책 <=통칭 전습대 인텔리. 김책전파사 주인.
덴슈 사부로 3소대장 이상평 <=보병지도역상당에서 3소대장으로 보직변경.
덴슈 요부로 4소대장 김무정 <=중국 남권의 달인. 항일대도의 본좌.
덴슈 고부로 5소대장 오진우 <=유격 조교 출신.
덴슈 로쿠로 6소대장 김석원 <=전습대 최연장자. 63세. 자칭 음류도법 전인.
덴슈 나나부로 내무교도단장 존 테일러 <=라성양복점 주인.
경리 가네야마 아키코(통칭 김추자)
".....이 말도 안되는 일본어에 대해 해명해 보시죠?"
한참 문서를 들여다보던 김추자가 드디어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일본어에서 이런 경우는 이치로 내지는 타로, 다음엔 지로, 사부로, 시로, 고로, 로쿠로, 시치로 순으로 넘어가지 이치부로라는 용법은 천하에 듣도보도 못한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첫째 둘째 셋째를 갖다가 일째 이째 삼째 이런 식으로 부르는 것이니, 김추자가 어이털려하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럴 거라 생각했소. 허나 이 이름에는 역사와 전통이 있어요."
"말도 안되는 일본어에 무슨 역사와 전통이에요? 차라리 대농장 이름을 대고 아스케장의 아스케 시게노리를 자처하는 게 낫겠네요."
"때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때는 192X년, 남산 통감부 관저를 떠나 경복궁 자리에 세워졌던 조선물산공진회 자리를 철거하고 일본이 마침내 조선총독부 신청사를 건립하던 것도 막바지에 이르를 즈음, 일본이 특별히 신경을 썼던 총독부의 대리석 외장 공사를 위해 독일, 일본, 중국의 3국 돌쟁이들이 조선으로 건너왔다. 이때 일본인 팀에 속하여 기술을 배워 한국 돌쟁이의 시초가 된 7인이 있었으니 그들을 이른바 7인의 오야지라고 부른다.
이들은 각자 이치부로~나나부로까지 네임이 붙여졌는데 일본인 장인 밑에 입문한 순서대로이다. 이때만 해도 판재를 가지고 앵글과 에폭시, 핀으로 시공하거나 시멘트와 모래를 섞은 사모래를 이용하는 현대와는 달리, 진짜로 두꺼운 통돌을 사용했고 절단과 모양도 현장에서 직접 내어 인력으로 올리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한명의 오야지가 100여명의 일꾼들을 이끌고 다녔다. 현장에는 매일 저녁 공구를 재열처리하고 재정비하는 대장장이들이 상주할 정도였으며 한번 공사에 연단위가 걸리는 것은 일반적이었다.
일본인들의 장인사회가 으례 그렇듯 석공들도 가족 취급을 받으며 도제 형식으로 입문하였고, 3년을 졸업반으로 보았다. 1년째는 오야지에게 손해를 안겨주고, 2년째에는 자기 밥값을 하며, 3년째에는 비로소 오야지에게 돈을 벌어다준다고 하는데 그만큼 기술의 숙련도와 실력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 3년을 채우지 않고 중간에 도주한다면 즉시 전국에 퍼진 7인의 오야지 네트워크에 연락이 가서 절대 돌 계열에서는 일을 못하도록 철저하게 제외시켜버린다.
해방 이후 일본인이 사라진 한국에선 오직 7인의 오야지들만이 돌일의 중심이었고, 이들이 일본인에게 배운 전통적인 돌 공사 시스템은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건설 때까지 이어진다. 80년대 말에 들어 독일 신공법이 들어오고 전동공구들이 범람하면서 7인의 오야지들과 그 돌일 방식은 이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지만 아직도 돌 계열에서는 전설처럼 그들의 이름이 전해져 온다고 한다.
"........라는 거요. 기왕이면 우리만의 특색을 가진 전통의 이름이 나에겐 필요했던 거지요."
"...보고 웃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네요. 니부로가 대체 뭐야?"
"전화 왔는가 본데 저거나 좀 받아요."
김추자가 정체불명 일본어에 불만이 가득한 듯 일부러 슬슬 걸어가서 전화를 받고는 곧 내선 버튼을 누르며 수화기를 놓자 내 책상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보병지도역입니다."
"학생회장 진형명입니다. 작금 13시를 기하여 2학년 2반 출석번호 21번 김영철과 2학년 2번 출석번호 13번 장진혁 두 학생간 결투 허가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보병지도역의 입회를 요청합니다."
"승지(承知)했다. 곧 내려갈 테니 채비를 갖추라."
"감사합니다!"
대충 프록코트를 걸치고 나가니 여원홍이 쫓아온다.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학생들끼리 뭐 결투?"
여원홍은 원래 나한테는 반말을 했었지만 출근 당일부터 높임말을 썼다. 단, 둘만 있거나 사석일 때에는 예사높임인 하오체만 쓴다. 높임말을 쓰는 것은 역시 전습대의 규율을 갖추기 위해서는 나이보다는 직급이 우선이라는 것 때문이다. 집단이 크고 작고를 떠나 군이라면 상하관계가 명확해야 하며 이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 항명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경력자는 철저하다. 다만 둘이 있을 때 하오체로 한단계 낮추는 것은 그래도 나 너보다 나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가끔 반말도 섞는데, 이정도야 뭐 그러려니 한다.
여원홍은 계속해서 나를 쫓아왔는데, 결투가 있다는 것은 나에게 이미 말을 들었다. 일단 규칙상으로 원곡고에는 학생간 분쟁을 룰에 의거한 대결로 해결하는데, 링에서 글러브를 끼고 하는 복싱 대결이 있다. 이것은 학생회장 재량으로 수행하며 굳이 내가 참관하지는 않는다. 나중에 보고서를 제출받을 뿐이다. 나머지 하나는 학생들끼리 복싱 대결을 거부하고 더 강한 수단을 원할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진검 대결이다. 그렇다고 생사결을 겨루는 싸움은 아니고, 규칙에 의거하여 먼저 피가 나면 지는 멘수르(Mensur) 대결이다. 이 멘수르로 넘어갈 경우 반드시 나에게 보고를 하고 입회 하에 이루어져야 하며 이 규칙도 나에게 들었다. 요컨데 여원홍은 멘수를 실제로 본 적도 없고 해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기는 해야겠다는 것이다.
노는 교실을 개조해 만든 멘수르 결투장으로 들어서니 학생들이 일제히 목례를 한다. 이미 학생 둘은 멘수르 보호구를 입고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멘수르는 19세기 중부유럽의 대학에서 유행하던 결투법으로, 원래 스몰소드로 이루어지던 결투로 사망자가 속출하자 안전하게 결투를 하기 위해 나온 방식이다. 몸과 오른팔을 가리는 패딩 방어복을 입고, 목과 코, 눈을 보호하는 철제 안경과 목보호대를 착용한다. 커다란 바스켓가드로 오른손은 완벽하게 보호받는다. 결국 노출된 곳은 얼굴 뿐인데, 바로 이 얼굴에 피를 내면 이기는 방식이다. 당연히 찌르기는 금지다.
"디스탄스!"
내가 자리에 서자 학생회장이 디스탄스, 즉 거리를 잴 것을 명령한다. 이는 공정함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멘수르에 사용하는 세이버인 슐레거(Schlager)의 칼날 길이를 길게 하는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는지 서로의 칼을 대보아 칼날길이가 같은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확인이 끝나자 두 학생들이 자세를 취한다. 행잉가드와 거의 비슷한 이 가드는 서로 곧게 서고 오른팔을 쭉 펴서 올리고, 칼끝은 비스듬하게 옆으로 세우는 것이다. 왼쪽은 칼날이 커버하고 손은 바스켓가드가 보호하며, 오른팔은 패딩 암가드가 보호한다. 이것을 통해 그 어떤 베기에서도 얼굴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게 된다. 공격을 위해 이 가드가 해제된 순간 상대의 얼굴로 열린 오프닝을 번개같이 포착해서 친다. 이것이 바로 멘수르의 기법이다.
"시작!"
학생회장의 구령이 떨어지자 곧 감정이 잔뜩 실린 칼날이 미친 듯이 상대의 얼굴을 향해 휘둘러진다. 하지만 행잉가드만 취하면 완벽하게 방어되기 때문에 각 7합을 주고받았는데도 아직 아무도 상처를 입은 사람이 없다. 7합을 주고받자 양옆에 선 학생들이 급히 자신들의 슐레거를 결투 당사자들의 칼 사이로 끼워넣어 이 이상 칼을 휘두르지 못하게 막는다. 감정이 폭발하여 결투가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시작!"
다시 학생회장이 소리치자 다시 몇차례 칼질이 오고간다. 절대 발을 이용하거나 허리를 사용해 앞뒤로 움직여서는 안된다. 멘수르는 생사결이 아니며, 진검으로 이루어지는 결투에서도 결코 도망치지 않는다는 남자의 자존심을 어필하고 규칙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신사적 소양을 증명한다. 그 안에서 모욕을 절대 참지 않으며 그를 위해서 결투도 불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윽!"
한 학생의 턱에 마침내 칼자국이 생겼고 곧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동석한 양호선생이 곧 응급처치를 시작했으나 학생이 거부하고 다음 결투를 위해 행잉가드를 취했다. 여기에서는 2판 선승제다. 2판을 먼저 이기는 사람이 이기는 룰이다. 피를 보자 동석한 여학생들은 완전히 얼굴이 굳어졌고, 남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원래 멘수르 결투장에는 절대로 여자가 들어와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시대도 변했거니와 남자가 명예를 위해 어떻게까지 하는가를 여자도 평등하게 보고 알아야 한다는 판단 하에 나는 여자들도 멘수르를 참관하도록 시켰다.
뒤이어 몇합을 주고받다가 이번에는 다른 학생의 뺨에 칼자국이 생겼다. 당연하지만 약 1~2mm정도의 깊이이므로 생명의 지장은 없다. 원래 슐레거 자체가 칼날을 굉장히 가늘게 만드는데, 세게 후려쳐도 중상을 입지 않도록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다.
세번째 판에서 먼저 턱에 칼을 맞은 학생이 똑같이 턱에 칼을 맞고 결투는 종결되었다. 보아하니 이긴 학생의 요령이 대단했는데, 턱을 맞은 학생이 행잉가드를 풀고 칼을 들어 내려치려는 것에 대항해 그 짧은 틈새를 놓치지 않고 칼을 짧게 올려쳐서 더 빠르게 턱을 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올려치는 모션을 취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이 칼을 들어서 내려치는 것보다 빠르니, 턱을 맞은 학생의 이어지는 내려치기도 행잉가드로 안전하에 커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양호선생의 응급처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감정으로 시작된 결투 속에서도 신사적인 절제와 규칙을 지킨 학생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피자라도 시켜먹으며 회포를 풀도록 50만원이 든 현금 봉투를 학생회장에게 건네주었다. 원래 싸움 뒤에는 뒷풀이가 있어야 감정이 남지 않는 법이고, 19세기에도 멘수르가 끝나면 양측 전부 맥주집으로 몰려가 회포를 푸는 것이 관습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관습이다.
결투장을 나오는데 여원홍은 계속 뒤를 보면서 참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날 쫓아오면서 의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니 저렇게 칼을 가지고 해야 하는 건가? 그냥 복싱만 하면 안되나?"
"그런데 보통 결투로는 사단이 납니다. 검술 대련이라는 건 자칫하면 큰 사고가 나죠. 감정으로 시작한 싸움을 맨주먹으로는 납득 못하겠고 기어이 진검으로 풀겠다고 하는 것인데, 보호구를 착용시키면 서로 두들겨패고 감정만 남습니다. 그렇다고 보호구를 벗기면 더 큰일나죠. 그렇게 대련하는 것은 맞으면 검리적으로 내가 당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분명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화가 잔뜩 난 그것도 혈기 넘치는 젋은이들이 그런 걸로 납득을 할 리가 없습니다. 서로 무자비하게 찔러대다가 큰일 나는 거죠. 그러니 서로 최선을 다하고, 진검을 쓰지만 크게 다치지 않고, 룰을 남자의 자존심을 덧씌워 어기는 것 자체를 치욕으로 만듬으로써 젋은 혈기를 비로소 납득시킬 수 있는 겁니다."
"그전에 진검으로 결투를 시킨다는 전제 자체가 문제일세. 차라리 그냥 애들끼리 싸움박질을 시켜!"
"그러면 학내에서 싸움을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 다시 일진 빵셔틀의 계급이 생깁니다. 그 어떤 사람도 룰에 의거해 평등하게 도전하고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유지해야 본질적으로 평등해지는 겁니다. 모든 분쟁도 우리가 통제해야 합니다. 그 어떤 종파적 행동도 제 세계에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난 아닌 것 같네."
"조금만 더 여기 계시다 보면 다 납득하게 되실 겁니다."
3시간 후, 집에 도착하니 김 아무개가 번개같이 튀어나왔다.
"아저씨야, 상담이 있어! 내 친구가..."
"돈 없어!"
"개돼지야 누가 돈 달래? 그런 일이 있다니까!"
여전히 한국말을 못하는 김추자는 상황파악이 안 되어 집에 오자마자 고성이 오가는 상황에 곤란한 표정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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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 괴신사집단 전습대 21화 기둥서방 잔혹동화
언젠가 씁니다.
*멘수르
당시 멘수르와 독일 대학가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단편 드라마.




덧글
얘기가 점점 사파 세력의 문파 키우기 느낌이 드는군요.
그러고보니 예전에 커닝햄님이 저렇게 멘수르하다 다친 유명인사가 "오토 스코르체니"라고 가르쳐주셨던 거 같은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