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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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지, 기효신서, 무예도보통지 무술적 복원의 한계 전술적 관점

여러차례 소개한 http://www.chineselongsword.com/도 그렇고 서양에서 유명한 양가태극권사 스캇 로델도 그렇고 은근히 명나라 시대에 편찬된 무술군사서적을 토대로 지금의 중국무술이 아닌, 진정한 군용무술을 복원해보고자 하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죠.

근본적 문제점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해당 서적들에 실린 내용 자체가 단편적인 기술이나 투로의 수록에 그칠 뿐,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주지 않으며, 싸움을 이루는 기본요소들에 대한 서술이나 설명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비슷하게 서적을 일차 소스로 삼아 복원되는 서양의 검술들이 있습니다만, 이 책들은 무비지나 무예도보통지 같은 서적들과는 접근법 자체에서 궤를 달리 합니다. 수많은 기술 예제가 실려 있는 것은 다를 바 없습니다만, 중요한 차이점은 우선 가장 먼저 싸움을 이루는 근본적인 개념을 서술하고, 그것이 적용되는 하나의 예를 들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기술 예제가 실려 있는 것이죠. 우선적으로 스텝, 기본적인 베기와 찌르기, 방어와 공격의 상관관계, 도검의 부위와 힘의 관계, 칼날이 접촉하는 것과 떼어지는 것, 느낌, 페인트, 바꿈, 선제권과 후속, 거리 등등 싸움을 이루는 근본원리를 먼저 설명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실전에서 적용되는가를 예제로 만들어 수록하는 식입니다. 아마 복싱이나 칼리 같은 무술을 하시는 분들은 어떤 구조인지 금방 이해하실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방식으로 끌어나가야 하며 이때 자잘한 수많은 요소들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알려줍니다. 가령 18th 스코틀랜드 올드 스타일 검리를 정리해서 예로 든다면

"상대가 베기를 할때 나도 같은 라인으로 베기를 해서 인게이징(접촉)상태를 만드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려고 하면, 상대가 페인트를 걸 때 엉뚱한 속임수에 걸려 오프닝을 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칼날끼리 붙게 되면, 상대의 압력을 느껴라. 힘이 약하면 상대 칼을 한번 더 때려서 그대로 베라, 아니면 접촉을 유지한 채로 글라이드를 하라. 힘이 강하면 반대쪽을 쳐라. 아니면 차단한 다음 칼을 떼어 다른 곳을 베라. 상대에게 또 차단당하면 굴하지 말고 다시 떼어 다른 오프닝을 쳐라. 플로우 드릴(Flow Drill)로 연습하라"

이런 식으로 싸움의 시작과 진행 그리고 이기는 길과 전술적 선택에 대한 조언이 있는 것이죠. 이 싸움의 조언 속에서는 인게이징, 디스인게이징, 프레스, 배터링, 글라이드, 체인지의 원리가 있음을 알 수 있죠.

이러한 요소들이 갖추어진다면 결코 많은 기술 예제가 필요없습니다. 원리에 입각하여 싸우면 기술은 자동으로 나오거든요. 복싱이나 MMA가 투로나 카타가 많아서 강하던가요? 원리를 몸으로 학습하니 싸움이 되는 겁니다. 설사 기술이 수천수만가지를 수록했다 한들 사람이 그걸 다 기억할 수도 없는 것이고 싸울 때 어떤 상황에 맞춘 기술이 생산라인 컴퓨터 돌아가듯이 딱딱 튀어나올 수도 없는 것이죠. 중세~근대를 막론하고 서양 검술이 "싸움"으로써 복원이 가능했던 데에는 이러한 서술경향이 가장 큰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중국이나 조선에서 원리를 해설하고 싸움을 알려주는 서적이 없으란 법은 없습니다만, 그러나 현존하는 사료들이 결국 단편적인 기술, 투로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이상 그 한계는 명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저도 한때 항일대도 도법을 찾겠다고 열정적으로 김은충 항일대도술을 번역하여 올려놓기도 했지만 결국 기술-투로형의 방법론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만 재확인하고 지금은 그냥 방치하고 있는 것이죠. 스캇 로델도 몇년전에 이미 그런 점 때문에 사료의 부족을 호소하고 지금은 시도를 중단했죠. 일본 고류에서 속속 카타와 수련법을 공개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자신이 있는 것은 근본원리를 유출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근본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카타 혹은 구미다치를 아무리 예술적으로 수행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죠. 현대에 살아있는 계승자들이 보여줘도 이러할진대 근본원리를 빼먹은 현대의 동북아 매뉴얼들이 줄 수 있는 것은 결국 형태의 재현 이상은 되지 못할 겁니다.

덧글

  • 檀下 2012/10/03 03:48 # 답글

    일단 현재 남아있는 민간 중국 권법(및 거기에서부터 파생된 무기술)에서는 명백하게 그러한 원칙들이 남아있죠. 그러나 그러한 원칙들을 쉬이 적용시킬 수 없는 것은 과연 그러한 원칙들이 당대의 군용검술과 어느정도의 호환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겠죠. 그런 것을 밝혀내려고 하면 무술서를 뒤져서 나오는게 아니죠.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무술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을 찾아서 무술을 필요로 했던 집단의 재구성, 무술집단의 계보에 대한 역추적이 들어가서 분화의 계통수를 그리고나서부터야 가능한 영역인데 이쪽 지역에선 그것부터가 안되어있죠. 사실 그것도 안되는 게 아니라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은 지금처럼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하는 것 정도가 한계일 것 같습니다.
  • Mr술탄-샤™ 2012/10/03 03:52 #

    만일 그런 방법론을 써먹고자 한다면 휴턴이 롱소드 검술이랍시고 시연하던 수준을 못 벗어날 거라 봅니다. 체계가 틀린데 가능하긴 어렵겠죠. 존의 에세이 첫번째가 세이버 검술은 롱소드 복원에 아무런 도움도 안된다는 것이기도 하고...
  • 천하귀남 2012/10/03 11:26 # 답글

    좀 다른 이야기 일지 모르지만 기효신서에 조총만드는 법과 그림이 있길래 봤더니 뭔가 이해가 잘 안가더군요. 헌데 일본의 현대 서적에 조총제법을 보다 알게된것이 조총을 만드는 공구와 사용법을 넣어놓으니 공정 전체가 이해되더군요.
    서양의 르네상스시기 기술이 널리 퍼지게된 이유중 하나가 인쇄기술의 등장으로 책을 출판해 팔아먹는 전문 저자와 출판사가 등장하면서 책만 사서 보고 따라할수 있도록 절차를 정리해 넣고 정밀한 도식을 넣는 방법이 확립되서라던데 그런면에서 동양권이 좀 미흡하긴 합니다.
  • 煙雨 2012/10/04 10:18 #

    이런 세상이 될 꺼라고 예상을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어느 업계(?)나 마찬가지로... 기술이 유출되면 자기집단이 경쟁력을 잃고 도태되기 쉬운데, 유출하려고 하지 않죠. 그러다가 그 기술 자체가 경쟁력을 잃는 순간, 집단이 아니라 해당업계가 망해버리는거죠. 그 시점이 되어서는 책으로 만들어 팔아먹으려 해도 살 사람도 없어지는거고...

    21세기 들어서 아미가의 그래픽툴 사용법을 책으로 만든다 해도 아무도 살 사람이 없는거랑 마찬가지 입니다.
    (다만 현재는 꼭 인쇄-유통-구매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보니 해당 기술 자체는 약간의 수고만 들이면 찾을 수 있죠. 기술하는 사람들도 시간외에는 특별한 비용이 들지 않다보니 전자문서 형태로 많이 남게 되구요. 이게 바로 공유정신이죠... 개봉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영화를 돌리는건 그냥 범죄구요.)
  • 2012/10/03 13:1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TOTILA 2012/10/04 15:42 # 삭제 답글

    술탄님이 서술하신 이유가, 국가에서 군대훈련을 위해 편찬한 서적들이어서 그런건가요?

    군대에서의 총검술 훈련이나 교본도 핵심개념이나 공방이치라고는 없이 그저 복창하며 반복해서 휘두르기만 했었죠 . (;ㅅ;)

    전장의 병사야 활,총,포 투사병기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소모품이니 민간무술문중처럼 이치를 전수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 Mr술탄-샤™ 2012/10/04 16:21 #

    그런 것도 있겠지만, 비밀주의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 마미갑 2012/10/07 12:31 # 삭제 답글

    조선은 기효신서를 받아들이긴 했으나 정작 삼수병체제 내에 살수는 기효신서에 나온 정식 무기를 갖추고 활동하지 않았다죠. 정식 기효신서 편제대로라면 낭선, 장창,, 당파, 등패 등 온갖 무기가 다 들어가야 하는데 조선의 살수대는 당파 또는 기창(기병용 창이 아니라, 짧은 창입니다), 그리고 환도를 들고 싸움에 임했다죠. 진형도 밀집대형을 취하지 않았고 교전시에는 개인의 무예에 크게 의존합니다. 애초에 기효신서식 무기를 다 갖추지 않다 보니까 기효신서의 원앙진을 제대로 구사하는 것도 불가능하고요.(사실 기효신서에 살수대의 대기병 운용전술 또한 거의 없다시피 하고..)그러다 보니 사르후 전투에서 우수수 쓸려나가죠.
    사실 그나마 기효신서를 따라하려고 노력이라도 한 군영은 어영군이나 훈련도감군 정도고 속오군의 살수는 그냥 창칼 들고 돌격하는 정도가 다라서(그래서 백정들 같은 천민들을 주로 살수로 뽑았다죠) 딱히 조선군이 교전시 어떤 무예를 활용했는지 알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게다가 어영군이나 훈련도감군 살수대는 교전 사례가 거의 없어서리....
    조선군을 보면 때로 답답할 때가 많은 게, 분명 화력투사식 병력운용은 시대를 앞서나간 개념인데도 불구하고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서 패전에 패전을 거듭하죠. 특히 사르후전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평지에서 조총병+일부 살수 조합은 절대로 대규모 기병 돌격을 감당해내지 못하는데도 비효율적인 살수대에 장창 하나 제대로 지급 안한 걸 보면....
    게다가 조선군의 가상적국인 청군 기병은 유목민족식 스웜전술보다는 일제히 활을 발사하며 창이나 칼을 꼬나들고 적군 전열에 그대로 치돌하는 운용을 사르후 전투와 같은 여러 교전사례에서 주로 보이더군요. 이러면 취약한 살수의 운용은 더욱 큰 단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죠.

    제 생각에 조선군이 그나마 청국이나 일본국에 비해 우월한 화기전력을 제대로 운용하려면 불량기 4,5호와 같은 경량포들을 제대로 야전포로 운용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하며, 장창밀집대를 운용하고 화력투사에 집중되는 네덜란드 마우리츠식 선형진과 같은 전술을 짜되 만주벌판과 같은 평야에서는 대기병용 장애물인 거마창(서양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청군 기병의 랜스 차지를 우선 막고 선형진의 약점인 측면 및 후면 방호 취약을 커버하기 위해 숲이나 강을 등지고 적을 맞되, 양측면에 숙련된 병사들을 배치하는 식으로 사르후 전투에서 청군과 맞서 싸워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르후 전투 내에서 조선군이 청군과 격돌한 부차 들판에서 청측 병력이 2~3만에 달했다고 하니(기병이요ㅡㅡ) 어쩌면 이렇게 해도 이기는 게 불가능한지도...

    술탄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 Mr술탄-샤™ 2012/10/07 21:15 #

    저도 그리 하는 것이 좋았다고 봅니다. 사실 기효신서의 내용도 왜구들의 산병전에 대응하는 용도이지 기병에 대한 것도 아닌 만큼, 기효신서 절강병법을 120% 구사했다 하더라도 만주족 기병대를 막긴 어려웠으리라 봅니다.
  • nsm9574 2012/10/19 23:16 # 삭제

    근데 제가 도서관에서 조선왕조실록(만화책)에 읽은 바로는 사르후전투의 경우에는 전투직전에 모래폭풍이 불어 닥쳐가지고 조총수들이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팔기군들과 근접전을 하게된걸로 알고있습니다, 물론 쌍령전투의 경우에도 (참)패인중에 병사들의 숙련도부족(덕분에 청나라기병들이 유효사거리에 들어가기전에 마구 발포해서 탄약을 낭비했다죠)와 중간의 화약폭발 사고(이게 젤 안습..-_-)도 있었지만 마미갑님의 말대로 결국엔 근접지원병과가 없는상태에서 백병전은 불가피하겠죠, 그러고보니 몇년전에 수원화성에서 기예18기 공연중에 장창,죽장창,낭선시연을 본게 떠오르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조상들이 너무 화력에만 치중해 다른걸 소홀히 여긴게 아쉽네요(산악지대라 해도 전국시대 일본처럼 잘만 쓸수있었을텐데 말이죠)
  • nsm9574 2012/10/19 23:27 # 삭제

    술탄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임진왜란전의 조선군의 주요 진법은 기병중심의 여진족(그러니까 청나라 조상)들을 상대하기위한 '오위진법,이었다가 임진왜란때 보병중심의 일본군과 싸우며 명나라에게 기효신서를 받아들인건데,... 만약에 조선이 명나라의 대보병 진법을 받아들이면서 기존의 대 기병 진법인 오위진법을 보존하고 실전에서 그걸 적절히 조화를 이뤄가며 활용했으면 그런 패배는 없었을텐데 말이에요
  • Mr술탄-샤™ 2012/10/19 23:39 #

    그렇더군요. 오위진법을 보면 서양의 개념으로 보기엔 동유럽의 전통적인 방진과 비슷하고 다만 치중차를 안 쓴다는 점만 좀 다르더군요. 보병이 벽을 치고 사방에 문으로 설정한 구역이 존재하며, 보병전력이 사방에서 기병을 막다가, 결정타를 날릴 때 기병이 내부에서 출격하여 추격섬멸한다는 개념이었죠. 다만 원앙진과는 개념이 너무 틀려서, 조화를 하더라도 어떻게 가능했을까는 개인적으로 좀 의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기효신서나 오위진법보다는 짧은 칼, 3m정도의 창을 가진 살수와, 화승총과 장검을 소지한 사수, 야전 포병을 조합해서 방진, 선형진, 산병전이 가능하도록 교육시키는게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dd 2018/09/13 01:38 # 삭제 답글

    무예24기처럼 무예도보통지 기반으로 복원하려는 단체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신가요?
  • abu Saif al-Assad 2018/09/13 02:05 #

    무예도보통지만으로는 결국 투로의 재현에서 더 나갈 수 있는 게 없고 본래 검리를 파려면 기효신서 계열, 무비지 계열 내용은 명대의 무술서를 전체적으로 참고해서 더 본질에 접근해야 하고, 왜검 계열은 당대 일본의 유파들의 카타와 검리를 보고 재현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본래의 형태나 기술을 추출하고 다시 여기서 검리나 기본기를 역산출 할 수는 있습니다. 조선세법 24세를 명대 무술서를 참고해서 복원한 영상입니다. http://youtu.be/DvosLNP5TGI

    그러나 기본기-기술-대련의 3단계 체계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없는 부분을 채워넣는 수밖에 없고 일부 체계는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사료를 벗어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이제 와서는 좀 보니 무예도보통지 편찬 당시에도 검술은 투로로 축약해서 그것만 가끔 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도 검술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그걸 토대로 100%재현해봐야 역시 제대로 하지 않는 검술만 남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사료가 전부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료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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