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관찰은 귀찮아서 안 쓰기로 했다. 여하튼 숨통이 날아갔다말았다하는 사태를 경험했고 일차 순찰에서 근방에 좀비가 없는 것을 확인한 지라 관리사무실에서 문잠가놓고 잘 잤다. 일어난 건 오전 11시 쯤이었는데, 모두들 피곤했는지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나 있었다.
혹시 모르니 등에는 방패를 지고 밑에는 실내니까 1917커틀러스와 킨잘을 차고 1층 편의점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고, 밖은 조용했다. 출근한 사람이 당연히 없으니 공장 내부도 문은 죄다 잠긴채 정적만 가득했다. 다만 빡돌게 하는 건 편의점 문이 잠겨있었다는 것인데, 유리문이니 그냥 깨트려버렸다. 물론 나는 성실한 사나이이기 때문에 유리조각을 일일이 치워서 갖다버리는 것은 당연하다.
냉장고에는 음료수가 가득하고 생수도 많았지만 일단 이런 것들은 아껴놔야 했다. 중요한 건 컵라면이나 라면종류. 삼각김밥이나 도시락 같은 건 유통기한이 며칠 지나있었지만 먹고 안죽는다. 일단 들고 올라와서 식사로 쓸 준비를 해놓았다. 조금 지나니 모두 일어나서 대충 해치우고 옥상으로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좀비사태는 얼어죽을. 병원이 여전히 난장판인거 빼면 그냥 일요일의 공단 풍경이었다.
어찌 되었건간에 우리가 마약먹고 환각본건 아니니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르는 이 좀비사태를 헤쳐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우선은 전투원 늘리기다. 그렇다고 해서 생존자 아무나 데려다 쓸 수도 없는 법이다. 우리가 다 아는 사이라고 해서 일단은 숨죽이고 있다가 나중에 사람이 늘어나면 그들을 가지고 파벌을 만들어서는 대들거나 심지어는 동족 상잔도 이루어질 수 있는 법이다. 사람의 본성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사회 체계가 사실상 붕괴한 지금 얼마든지 비열함과 피해의식이 커질 수 있었다. 이 점은 대치동 김형이 가장 절실하게 강조한 부분이었다.
"너는 이 바닥을 안 살아봤으니 모르겠지만, 사람이란게 추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추할 수 있는 거고, 넓게 사귀어서 나쁠 거 없지만 운명을 함께할 사람은 가능한 한 적을 수록 좋다. 괜히 조직이니 뭐니 해서 배타적으로 지들끼리 놀고 그러는게 아니야. 말 그대로 운명 공동체... 목숨을 함께할 사이가 되려고 한다면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건 물론 오랜 기간 동질감을 갖고 그게 마음 속에 뿌리박힐 수 있는 기간이 충분히 있어야 돼.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한 여러가지 의식 같은 것도 필요하지. 우선은 거리를 둬야 하는거야. 그리고 충분히 그 사람이 우리와 함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면 그제서야 격을 트고 말하고 하는 거다. 물론 우리라는 거에 대응되는 적들도 있어야지.
사람들이 흔히 만나고 얼마 안돼서 말 놓고 그러는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 같은데, 뭐 나쁘지는 않다. 근데 그래봐야 외형적으로 친해지는 것일 뿐이지 내적으로는 아직 서로간에 거리감이 있다고. 내적으로 아닌데 외적으로 그리 하다 보면 서로 격없이 이야기하려 들거나 하다 보니 서로간에 실수도 하고, 외적으론 넘어가지만 내적으론 싾이는 법이다. 또 서둘러 말 놓고 그러려거나 형이니 아우니 하자고 하면 속으론 어이없기도 하고 저놈이 짱먹으려 드나 싶어서 존내 아니꼽기도 하지. 뒷다마라는게 그런 식으로 생기는거고, 파벌이란게 그런 식으로도 생길 수 있는 법이야.
그런 게 싾이고 하다 보면 훨씬 치명적이다. 좇만할 때는 닥치고 가만히 있겠지. 근데 사람들이 늘어나서 자기가 좀 끗발이 서고 무기도 좀 쥔다? 그럼 그때부터 개기기 시작한다. 그런 거 미리미리 생각 안하고 그때가서 형이다 동생아 왜그러냐 그딴 소리 해봐야 소용 없다. 미리미리 잘해놔야지. 그러니 말인데 혹시나 쪽수 늘릴 생각 하고 있다면 관두는게 나을 거다. 일단 니 가족부터 훈련시켜놓고, 니 아는 사람이면 받아도 되겠지만, 니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은 절대로 용납하지 마라. 일면식도 없는 놈 들어와봐야 아무짝에도 쓸모 없을 뿐더러 나중에 우리 엿먹이게 될 테니까."
이런 이유다. 더불어 사람 중엔 별별 미친놈이 다 있기 때문에 그런 놈들을 골라내려면 특히나 배타적인게 중요하다고 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어쨌든 전투원을 늘려야 한다는 절대명제에는 모두들 동의했기 때문에, 일단은 관리소장 아저씨와 동생을 중점적으로, 어무이와 오야지는 2선급으로 분류해서 훈련시키기로 했다. 당연히 프로그램에도 차이가 있다.
특히 동생은 앞으로 일선 정찰을 함께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지고 다니던 방패와 커틀러스 그리고 창을 쓸 수 있도록 훈련해야 했다. 동생은 키가 작아서 165cm정도이기 때문에 얼마나 좋은 전력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되긴 했지만 나름 깡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 좀비가 떼로 둘러싸도 물어뜯을 곤조 정도는 있다. 중딩때 일진들과 맞서싸워 이겨낸 전적도 있으니만큼.
여기서 중간관찰을 해보자. 대치동 누님의 말마따나 김형은 무술을 배워본 적이 없고 나도 마찬가지다. 시청도(동영상 보고 따라하기)와 독서도(책보고 따라하기)도 무술로 친다면 모를까 둘다 이렇다 할 무술을 배워본 적이 없는데 대체 무슨수로 좀비들을 날려버릴 수 있었던 것일까?
말하자면 좀비에게는 무술이 필요없다. 검술이나 창술이라는 것은 상대도 나와 같은 혹은 다른 장비를 가지고 나의 공격을 방어하고 공격을 가해올 때의 대처법, 방어, 카운터기술과 페인트 등이 기본적인 사용법과 더불어 체계화된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상대가 아무런 무기도 없고 대응도 못한다면 그럼 굳이 견제하고 바인딩하고 하는 것이 필요없이 칼이라면 후려치면 그만이고 창이라면 찌르면 그만이다. 가령 19세기의 강선총 군대가 18세기의 수석식 활강총 군대랑 싸운다고 해보자. 18세기 군대의 총기 명중거리는 50미터 이내이지만 19세기의 강선총은 명중거리가 200미터 가까이 된다. 발사속도도 동일하니 그럼 일방적인 학살이 있을 뿐이다. 시대를 늘려서 18세기 군대 vs 20세기 기관총 소대가 싸운다고 해보자. 전술이 필요없이 그냥 학살만이 있을 뿐이다.
좀비와 우리의 관계도 이와 같다. 좀비는 몽둥이조차 쓰지 못하고 어떻게든 감염시키려는 의지만 가지고 달려드는게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는 창이나 대치도를 가지고 있으며, 이 점이 그동안의 일방적인 학살이라는 결과로 나온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유일 유리한게 있다면 숫자뿐이었다.
내가 철갑옷을 챙겨오긴 했지만 막상 나가서는 두꺼운 잠바만 입는 것도 똑같은 이유이다. 좀비의 이빨과 손은 두꺼운 잠바를 뚫지 못하며 내 살에 상처를 입히지도 못한다. 찢어지거나 하긴 하지만 내 몸은 멀쩡하니, 굳이 무거운 철갑옷을 입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론 같은 이유로 석기무기를 쓰던 아즈텍인들에 대해 스페인 정복자들이 철갑옷을 벗고 빳빳하게 만든 누비솜옷을 입고 싸운 경우도 있다. 갑옷은 어디까지나 무기 대 무기, 사람 대 사람을 전제로 등장한 것. 좀비들에게야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 백지상태도 되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무기를 사용하기 위한 기본적인 요령, 가령 스텝이나 중심이동, 찌르거나 베는 동작, 기본적인 공격 포인트의 지정, 직접 쥐고 통나무나 기타 그럴듯한 걸 치면서 숙달하는 정도는 절대로 없어서는 안된다. 기실 이것도 무술이라고 볼 수 있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5년 속성과정과 6주훈련의 차이 정도로 보면 되는 것이다. 나나 대치동 김형이나 정식으로 무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대충 시청도와 독서도 외 기타등등으로 베이스는 있었으니 좀비들을 상대로 유리하게 싸울 수 있었던 거다.
여하튼 개발한 훈련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일단 방패로 좀비의 돌진에 대응하며 옆구리나 기타 부위를 찌르고 베는 훈련. 내가 방패를 붙들고 발광하면 12cm정도의 나무토막을 들고 그걸로 옆구리나 가슴 등을 찌르는 거다. 왜 12cm짜리냐면 손잡이 길이가 그정도 되니까. 그게 내 몸에 갖다대면 칼날이 이미 몸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식이었다. 긴거 쓰면 좋겠지만 그럼 내가 아픈 것도 있지만 끝까지 찔러넣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작은 것이 필요하기도 했다. 걸레자루를 잘라만든 단봉으로는 무릎 뒤를 베거나 허벅지를 뒤에서 저미는 걸 연습하도록 했다.
물론 좀비를 상대하면서 자주 발생할 방패로 밀어붙이기에 대한 훈련도 필요했다. 이것을 위해 동생이 자세를 잡고 방패를 몸에 밀착시키면, 내가 전속력으로 달려 방패를 들이받는 것이다. 처음엔 벌러덩 넘어졌지만 여러차례 반복하니 점차 자세를 낮추고 보폭을 넗히는 것을 스스로 하게 됐고, 단지 들이받는걸 버티는 것뿐만이 아니라 들이받고 버티면서 칼로 찌르며 밀어붙이기, 혹은 들이받기 직전에 먼저 튀어나가 방패선빵 날려 넘어트리는 법도 배우게 됐다.
창은 배우기도 쉽고 가르치기 쉬운데다 군대를 다녀왔으니 금방 배웠다. 자세야 금방 배웠지만 좀비를 상정한 이런저런 임기웅변이나 노하우는 한 1~2주정도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가령 창은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면 금방 돌파당하는데 내가 달려들면서 나를 찌르면 곧바로 옆으로 이동해서 그 자리해서 다시 달려들고 하는 식의 훈련도 시켰다. 말하자면 좀비가 일렬로 주루룩 몰려오는데, 앞의 한놈 찌르면 옆의 또 한놈이 벌써 더 안쪽으로 달려들고 있고 하는 상황을 상정시켜서, 계속해서 뒤로 빠지며 좀비와 내 창 사이의 간격을 급박한 돌진상황에서도 항상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들고온 일본도 쓰는 법은 대치동 누님의 맨투맨 지도를 받도록 했다. 동생놈은 커틀러스보다는 일본도에 더 꽃힌 것 같았지만 어쨌든 좀비사태에서는 방패가 더 필요한게 현실. 어차피 커틀러스가 더 중요했다. 커틀러스를 동생 주고 나면 나는 부무장으로 1796경기병 세이버를 차고 다닐 요량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지금껏 좀비 상대로 쓰인 일은 없었지만, 휨이 큰 칼날과 7인치를 넘는 무게중심은 베기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 분명했다. 좀비들은 어차피 고통을 못 느끼기 때문에, 찌르기보다는 베기를 통해 큰 상처를 주어야 금방 쓰러지므로 항상 베기가 찌르기보다 우월했다.
그외 기타등등 훈련과 여러 잡지식을 주입... 하고자 했지만 동생이나 관리소장 아저씨나 죄다 뻗어버렸으므로 그 이상은 어려웠다. 뒤로 빠지다 굴르고 꼴이 말이 아니다. 어무이는 대치동 누님의 중점적인 맨투맨 지도를 받았는데 맨투맨 지도를 제대로 받기도 전에 뻗어버렸다. 어차피 쓸만해지는데 빨라도 2주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참인데다 첫날이니 당연한 결과다.
문제는 이틀째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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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사태 체험기 9편 이보시오 의사양반 언젠가 씁니다.
혹시 모르니 등에는 방패를 지고 밑에는 실내니까 1917커틀러스와 킨잘을 차고 1층 편의점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고, 밖은 조용했다. 출근한 사람이 당연히 없으니 공장 내부도 문은 죄다 잠긴채 정적만 가득했다. 다만 빡돌게 하는 건 편의점 문이 잠겨있었다는 것인데, 유리문이니 그냥 깨트려버렸다. 물론 나는 성실한 사나이이기 때문에 유리조각을 일일이 치워서 갖다버리는 것은 당연하다.
냉장고에는 음료수가 가득하고 생수도 많았지만 일단 이런 것들은 아껴놔야 했다. 중요한 건 컵라면이나 라면종류. 삼각김밥이나 도시락 같은 건 유통기한이 며칠 지나있었지만 먹고 안죽는다. 일단 들고 올라와서 식사로 쓸 준비를 해놓았다. 조금 지나니 모두 일어나서 대충 해치우고 옥상으로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좀비사태는 얼어죽을. 병원이 여전히 난장판인거 빼면 그냥 일요일의 공단 풍경이었다.
어찌 되었건간에 우리가 마약먹고 환각본건 아니니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르는 이 좀비사태를 헤쳐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우선은 전투원 늘리기다. 그렇다고 해서 생존자 아무나 데려다 쓸 수도 없는 법이다. 우리가 다 아는 사이라고 해서 일단은 숨죽이고 있다가 나중에 사람이 늘어나면 그들을 가지고 파벌을 만들어서는 대들거나 심지어는 동족 상잔도 이루어질 수 있는 법이다. 사람의 본성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사회 체계가 사실상 붕괴한 지금 얼마든지 비열함과 피해의식이 커질 수 있었다. 이 점은 대치동 김형이 가장 절실하게 강조한 부분이었다.
"너는 이 바닥을 안 살아봤으니 모르겠지만, 사람이란게 추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추할 수 있는 거고, 넓게 사귀어서 나쁠 거 없지만 운명을 함께할 사람은 가능한 한 적을 수록 좋다. 괜히 조직이니 뭐니 해서 배타적으로 지들끼리 놀고 그러는게 아니야. 말 그대로 운명 공동체... 목숨을 함께할 사이가 되려고 한다면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건 물론 오랜 기간 동질감을 갖고 그게 마음 속에 뿌리박힐 수 있는 기간이 충분히 있어야 돼.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한 여러가지 의식 같은 것도 필요하지. 우선은 거리를 둬야 하는거야. 그리고 충분히 그 사람이 우리와 함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면 그제서야 격을 트고 말하고 하는 거다. 물론 우리라는 거에 대응되는 적들도 있어야지.
사람들이 흔히 만나고 얼마 안돼서 말 놓고 그러는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 같은데, 뭐 나쁘지는 않다. 근데 그래봐야 외형적으로 친해지는 것일 뿐이지 내적으로는 아직 서로간에 거리감이 있다고. 내적으로 아닌데 외적으로 그리 하다 보면 서로 격없이 이야기하려 들거나 하다 보니 서로간에 실수도 하고, 외적으론 넘어가지만 내적으론 싾이는 법이다. 또 서둘러 말 놓고 그러려거나 형이니 아우니 하자고 하면 속으론 어이없기도 하고 저놈이 짱먹으려 드나 싶어서 존내 아니꼽기도 하지. 뒷다마라는게 그런 식으로 생기는거고, 파벌이란게 그런 식으로도 생길 수 있는 법이야.
그런 게 싾이고 하다 보면 훨씬 치명적이다. 좇만할 때는 닥치고 가만히 있겠지. 근데 사람들이 늘어나서 자기가 좀 끗발이 서고 무기도 좀 쥔다? 그럼 그때부터 개기기 시작한다. 그런 거 미리미리 생각 안하고 그때가서 형이다 동생아 왜그러냐 그딴 소리 해봐야 소용 없다. 미리미리 잘해놔야지. 그러니 말인데 혹시나 쪽수 늘릴 생각 하고 있다면 관두는게 나을 거다. 일단 니 가족부터 훈련시켜놓고, 니 아는 사람이면 받아도 되겠지만, 니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은 절대로 용납하지 마라. 일면식도 없는 놈 들어와봐야 아무짝에도 쓸모 없을 뿐더러 나중에 우리 엿먹이게 될 테니까."
이런 이유다. 더불어 사람 중엔 별별 미친놈이 다 있기 때문에 그런 놈들을 골라내려면 특히나 배타적인게 중요하다고 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어쨌든 전투원을 늘려야 한다는 절대명제에는 모두들 동의했기 때문에, 일단은 관리소장 아저씨와 동생을 중점적으로, 어무이와 오야지는 2선급으로 분류해서 훈련시키기로 했다. 당연히 프로그램에도 차이가 있다.
특히 동생은 앞으로 일선 정찰을 함께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지고 다니던 방패와 커틀러스 그리고 창을 쓸 수 있도록 훈련해야 했다. 동생은 키가 작아서 165cm정도이기 때문에 얼마나 좋은 전력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되긴 했지만 나름 깡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 좀비가 떼로 둘러싸도 물어뜯을 곤조 정도는 있다. 중딩때 일진들과 맞서싸워 이겨낸 전적도 있으니만큼.
여기서 중간관찰을 해보자. 대치동 누님의 말마따나 김형은 무술을 배워본 적이 없고 나도 마찬가지다. 시청도(동영상 보고 따라하기)와 독서도(책보고 따라하기)도 무술로 친다면 모를까 둘다 이렇다 할 무술을 배워본 적이 없는데 대체 무슨수로 좀비들을 날려버릴 수 있었던 것일까?
말하자면 좀비에게는 무술이 필요없다. 검술이나 창술이라는 것은 상대도 나와 같은 혹은 다른 장비를 가지고 나의 공격을 방어하고 공격을 가해올 때의 대처법, 방어, 카운터기술과 페인트 등이 기본적인 사용법과 더불어 체계화된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상대가 아무런 무기도 없고 대응도 못한다면 그럼 굳이 견제하고 바인딩하고 하는 것이 필요없이 칼이라면 후려치면 그만이고 창이라면 찌르면 그만이다. 가령 19세기의 강선총 군대가 18세기의 수석식 활강총 군대랑 싸운다고 해보자. 18세기 군대의 총기 명중거리는 50미터 이내이지만 19세기의 강선총은 명중거리가 200미터 가까이 된다. 발사속도도 동일하니 그럼 일방적인 학살이 있을 뿐이다. 시대를 늘려서 18세기 군대 vs 20세기 기관총 소대가 싸운다고 해보자. 전술이 필요없이 그냥 학살만이 있을 뿐이다.
좀비와 우리의 관계도 이와 같다. 좀비는 몽둥이조차 쓰지 못하고 어떻게든 감염시키려는 의지만 가지고 달려드는게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는 창이나 대치도를 가지고 있으며, 이 점이 그동안의 일방적인 학살이라는 결과로 나온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유일 유리한게 있다면 숫자뿐이었다.
내가 철갑옷을 챙겨오긴 했지만 막상 나가서는 두꺼운 잠바만 입는 것도 똑같은 이유이다. 좀비의 이빨과 손은 두꺼운 잠바를 뚫지 못하며 내 살에 상처를 입히지도 못한다. 찢어지거나 하긴 하지만 내 몸은 멀쩡하니, 굳이 무거운 철갑옷을 입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론 같은 이유로 석기무기를 쓰던 아즈텍인들에 대해 스페인 정복자들이 철갑옷을 벗고 빳빳하게 만든 누비솜옷을 입고 싸운 경우도 있다. 갑옷은 어디까지나 무기 대 무기, 사람 대 사람을 전제로 등장한 것. 좀비들에게야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 백지상태도 되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무기를 사용하기 위한 기본적인 요령, 가령 스텝이나 중심이동, 찌르거나 베는 동작, 기본적인 공격 포인트의 지정, 직접 쥐고 통나무나 기타 그럴듯한 걸 치면서 숙달하는 정도는 절대로 없어서는 안된다. 기실 이것도 무술이라고 볼 수 있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5년 속성과정과 6주훈련의 차이 정도로 보면 되는 것이다. 나나 대치동 김형이나 정식으로 무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대충 시청도와 독서도 외 기타등등으로 베이스는 있었으니 좀비들을 상대로 유리하게 싸울 수 있었던 거다.
여하튼 개발한 훈련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일단 방패로 좀비의 돌진에 대응하며 옆구리나 기타 부위를 찌르고 베는 훈련. 내가 방패를 붙들고 발광하면 12cm정도의 나무토막을 들고 그걸로 옆구리나 가슴 등을 찌르는 거다. 왜 12cm짜리냐면 손잡이 길이가 그정도 되니까. 그게 내 몸에 갖다대면 칼날이 이미 몸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식이었다. 긴거 쓰면 좋겠지만 그럼 내가 아픈 것도 있지만 끝까지 찔러넣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작은 것이 필요하기도 했다. 걸레자루를 잘라만든 단봉으로는 무릎 뒤를 베거나 허벅지를 뒤에서 저미는 걸 연습하도록 했다.
물론 좀비를 상대하면서 자주 발생할 방패로 밀어붙이기에 대한 훈련도 필요했다. 이것을 위해 동생이 자세를 잡고 방패를 몸에 밀착시키면, 내가 전속력으로 달려 방패를 들이받는 것이다. 처음엔 벌러덩 넘어졌지만 여러차례 반복하니 점차 자세를 낮추고 보폭을 넗히는 것을 스스로 하게 됐고, 단지 들이받는걸 버티는 것뿐만이 아니라 들이받고 버티면서 칼로 찌르며 밀어붙이기, 혹은 들이받기 직전에 먼저 튀어나가 방패선빵 날려 넘어트리는 법도 배우게 됐다.
창은 배우기도 쉽고 가르치기 쉬운데다 군대를 다녀왔으니 금방 배웠다. 자세야 금방 배웠지만 좀비를 상정한 이런저런 임기웅변이나 노하우는 한 1~2주정도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가령 창은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면 금방 돌파당하는데 내가 달려들면서 나를 찌르면 곧바로 옆으로 이동해서 그 자리해서 다시 달려들고 하는 식의 훈련도 시켰다. 말하자면 좀비가 일렬로 주루룩 몰려오는데, 앞의 한놈 찌르면 옆의 또 한놈이 벌써 더 안쪽으로 달려들고 있고 하는 상황을 상정시켜서, 계속해서 뒤로 빠지며 좀비와 내 창 사이의 간격을 급박한 돌진상황에서도 항상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들고온 일본도 쓰는 법은 대치동 누님의 맨투맨 지도를 받도록 했다. 동생놈은 커틀러스보다는 일본도에 더 꽃힌 것 같았지만 어쨌든 좀비사태에서는 방패가 더 필요한게 현실. 어차피 커틀러스가 더 중요했다. 커틀러스를 동생 주고 나면 나는 부무장으로 1796경기병 세이버를 차고 다닐 요량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지금껏 좀비 상대로 쓰인 일은 없었지만, 휨이 큰 칼날과 7인치를 넘는 무게중심은 베기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 분명했다. 좀비들은 어차피 고통을 못 느끼기 때문에, 찌르기보다는 베기를 통해 큰 상처를 주어야 금방 쓰러지므로 항상 베기가 찌르기보다 우월했다.
그외 기타등등 훈련과 여러 잡지식을 주입... 하고자 했지만 동생이나 관리소장 아저씨나 죄다 뻗어버렸으므로 그 이상은 어려웠다. 뒤로 빠지다 굴르고 꼴이 말이 아니다. 어무이는 대치동 누님의 중점적인 맨투맨 지도를 받았는데 맨투맨 지도를 제대로 받기도 전에 뻗어버렸다. 어차피 쓸만해지는데 빨라도 2주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참인데다 첫날이니 당연한 결과다.
문제는 이틀째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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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사태 체험기 9편 이보시오 의사양반 언젠가 씁니다.




덧글
확실히 사람이 많아지면 골치아픈 일도 자주 발생하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아예 서로 모르는척 하고 사는 것도 생존에는 별 도움이 안되겠으니 서로 연락할 수단을 갖추고 각자의 영역권 안에서 놀도록 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그 사람 문제로 다케다가 망한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겠지만 말입니다.
전략적인 부분에 대한것도 생각하신게 있으신듯 하네요. 인간관계에 대해서 이정도 쓰셨다면
음훗..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걸 보다보니 저도 원핸더 적당히 짧은거 하나 장만해야겠다 싶은게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