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사이프의 전투의 예술(Kunst des Fech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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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사태 체험기 2편 대치동 김씨 팬픽

좀비사태 체험기 1편 이상해진 세상

 척 보니 아디다스 쓰레빠에 옆에 줄들어간 츄리닝바지, 위도 츄리닝웃도리의 전형적인 휴일날의 동네오야지 삘이었지만 그 꼬락서니에 경악한건 손에 들고 있는 무기 때문이었다. 척 보아하니 길이는 3미터 전후쯤 되보이는데 칼날이 절반이요 손잡이가 절반에 한번 휘두르니 좀비 서넛은 복장이 갈라져 순대가 쏟아져나오는 꼴을 리얼타임으로 보는 판이다. 하는 짓은 중세 무사인데 꼴은 동네 오야지이니 이런 인지부조화가 세상에 또 있을까? 하기야 자동차가 굴러다니고 미니스커트가 난무하는 세상에 갬비슨을 쳐입고 방패는 등에 지고 옆에는 칼을 차고, 옷가방에 쌀푸대를 쑤셔 넣는 꼴도 결코 적절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서도, 그래도 난 그나마 옷이나마 중세삘이건만.


 하나같이 안 신기한 게 없었다. 머릿속의 데이터베이스를 뒤져보니 아마 나기나타인데, 남북조시대의 물건이 딱 저렇게 컸다는 거 같다. 한국에서 일본도는 많이 사도 창이나 나기나타 사는 놈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하물며 저런 빅사이즈의 물건이라니 한국에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인데 눈앞에서 난장판을 벌이고 있으니 콜렉터로써나 상황파악으로써나 눈이 안 갈수가 없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 쪽에는 좀비가 별로 없었다. 저 사람이 쌍욕을 내지르며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터라 자연히 좀비들이 그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쌀푸대는 잊어버리고 그 사람을 돕기 위해 나섰는데, 일단 같은 사람이라 반가웠고 도와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이런 좀비 세상이 얼마나 갈지, 혹은 영원히 계속될지도 모르는데, 저런 숨은 용사라면 일단 핸폰 전번이라도 저장해놔야 앞으로 살기가 편해지는 법이다. 

 나기나타, 정확히 따지자면 오오나기나타(대치도)를 휘두르던 사람도 좀비가 점점 달려들기 시작하자 힘에 부쳐 보였다. 다행히도 좀비들은 그 사람한테만 신경쓰느라 내 앞에서는 제대로 등을 보이고 있었고, 창술이고 뭐고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표적 사냥이나 다름없는 판이 펼쳐졌다. 

"오 예쓰!"
한놈 복장!

"마러 뻑커!!"
또 한놈 심장!

I'm on a Boat의 T-pain의 후렴구(마러 뻐커~ 마러뻐커~)를 되뇌일 때마다 좀비가 한 놈씩 쓰러졌다. 좀비라지만 사람이었던 거 죽이면서 재잘거리는게 괴이해 보일 수도 있지만 상대는 좀비고 물리면 나도 얄짤없다. 요컨데 존내 무섭기는 손에 뭐가 들려있던 매한가지라는 거다. 공포를 잊고 싸우자면 별별게 다 들어가는 법이다. 옛 군대가 소리 지르던 것도 기본적으로 그런 행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나도 먹고는 살아야지.

 좀비가 한 50명 정도는 되었는데 정신없는 난장판이 좀 정리가 되어갈 때쯤 되자 좀비는 죄다 쓰러지고 왠 여자랑 그 대치도 오야지랑 나만 남아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의외로 한산했다. 멀리 보면 좀비들 같은게 서성거리고 있었지만 당장 주변은 텅 비어 있었다. 집에 틀어박혀있으라는 정부의 지시를 왠일로 충실히 이행했나 싶었다. 평소대로라면 도로변에 나와 있었을 과일장사나 상추등을 파는 할머니들도 아예 판을 벌리지 않았고, 이제 보니 아파트 위에서 우리가 하는 꼴을 구경하던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이게 왠 동물원 원숭이 꼴이란 말인지.

 "우리 동네에 나같은 놈이 또 계셨네?"

 초장부터 반말이 심상찮은 그 사람을 자세히 보니 이건 뭐 이두박근 삼두박근이 보통이 아니다. 반팔 츄리닝 밑으로 슬쩍 문신 비스무리한 것도 보이는 게 술집에 나시입고 들어가면 사운드볼륨 팍팍 줄여줄 사람이다. 레포데랑 비교하면 딱 프랜시스의 동양인 버젼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아저씨 그거 쓰는거 창이에요? 근데 창날이 좀 싸구려 같은데?"

 오냐 그래 8만 5천원짜리 싸구려다. 하지만 뒤이어 이어진 대화는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알고보니 집안에 물건이 떨어져서 아내가 마트를 다녀오겠다고 했는데, 당연히 이 형씨는 가지 말라고 했지만, 설마 무슨 일 있겠냐며 그럼 당신이 지켜주면 된다길래, 이 양반이 집안에 놔두고 있던 대치도를 들고 나온 모양이었다. (물론 엘리베이터에 안 들어가서 계단을 타고 내려왔단다) 그런데 이 아내란 분이 서성거리던 사람(좀비)가 정말 이상한 사람인가 하고 말을 걸었다가 좀비가 덮치고, 눈치를 챈 두세놈이 뒤이어 달려드는 바람에 이 양반이 쌍욕을 하면서 대치도를 휘두르기 시작했고, 그걸 마침 내가 본 것이었다.

 근처에 좀비가 안 보였으니 창에 기대어 짝다리를 짚고 대화를 하는 판이었는데, 이 양반은 내 창에 나름 좋은 인상을 받은 모양이긴 했지만 말끝마다 가격대 성능비를 강조했다(요컨데 싸구려라도 좀비는 잘잡는다고 내 속을 긁었다) 물론 자신의 대치도를 보여주며 무칸샤에 커스텀오더넣은 일본 장인의 고급품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기야 이런 걸 국내 어디서 살 수 있겠는가. 

 호의적인 대화가 오간 것과는 별개로 이름이라도 알고 지내자 하니 알려주기를 거부했다. 내가 내 이름을 말하려 하니 손사레를 치며 말을 막는다. 이유인즉

"어차피 내가 보기에 이것들 영화처럼 그렇게 무서운 놈들도 아니고, 사회가 영화처럼 무너질 것 같지도 않아. 제정신가진 세상에선 우리가 싸이코에요. 우리가 이 짓거리 하고 다니는 거야, 지금 이 좀비 세상에서는 잘하는 짓일지도 모르지. 그치만 세상이 다시 돌아오면 이런 짓을 하고 다녔다는 것 자체가 우리 인생 앞길 막을 수도 있어. 그러니 서로에 대해서는 몰라도 될 건 모르도록 합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도 대치도고, 내 일하는 사무실도 서울 대치동에 있소. 내 성이 김가니까 그냥 대치동 김씨라고만 알고 계시고, 나도 아저씨 이름 굳이 필요 없으니 부를 호칭이나 좀 주쇼."

 결국 나는 대치동 김씨를 김형, 김씨는 나를 용팔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핸드폰 번호를 서로 저장하는데, 뭔가 아닌 거 같아서, 이름보다 핸드폰 번호가 더 문제있는거 아니냐고 물으니,

"이 바닥에서 일하면서 대포폰, 대포차, 대포통장은 필수 아니겠어? 허허허...."

 과연 납득이 간다. 이 인간 사기꾼 아니면 사채돌리는 인간이구만.

 헤어지고 길을 건너 쌀푸대를 마저 정리하는데 위를 보니 여전히 사람들이 떼로 베란다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원래는 약탈하려고 했는데, 괜히 쪽팔려서 아주 빅게스트하고 과장된 동작으로 지갑을 꺼내 사람들 다 보라고 돈을 꺼낸 다음 일부러 만원짜리를 팔락거리며 계산대에 놓는 모션을 취하고는 쌀푸대를 끌고 나왔다. 물론 돈은 놓고 나왔다. 만원짜리 한장 밑에 천원짜리 세장을 끼워넣어 4만원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페이크 모션이었지만서도.

 미안 아줌마, 나중에 돈 벌면 갚을게요.

 다음날, 좀비 사태 5일째. 아파트 아래를 내려다본 나는 기절 초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보다 좀비가 몇배는 늘어난 듯, 대충 보기만 해보 300명은 족히 될 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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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개판> 언젠가 씁니다.

덧글

  • 스타라쿠 2009/09/08 21:38 # 답글

    쓰레빠 신고도 중심이 잘 잡히나요?
  • Mr술탄-샤™ 2009/09/08 21:42 #

    일본애들은 게다짝 쓰레빠 신고도 싸웠습니다. 중심 잡는 건 몸의 중심을 낮춘다던가 보법의 문제이고, 제가 봐서 쓰레빠의 문제는 풋워크시 벗겨져 날아갈수도 있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 스타라쿠 2009/09/08 21:46 #

    그러고보니 일본애들은 게다짝 신고도 잘만했군요. 중심축 옮기고 뒷걸음 칠 때 벗겨지면 대낭패일 것 같은데...
  • GQman 2009/09/08 22:39 # 답글

    이번 팬픽에선

    ------------------
    지겨워서 그만둠.

    을 보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 Mr술탄-샤™ 2009/09/09 00:52 #

    노력하겠습니다^^;;
  • MessageOnly 2009/09/08 23:22 # 답글

    슬슬 국궁사수도 출연하나요? (..동네 좀비 원정대 캐릭 하나씩 추가;;)
  • Mr술탄-샤™ 2009/09/09 00:52 #

    당장은 아니고 좀 지나서 나옵니다^^
  • 네비아찌 2009/09/08 23:51 # 답글

    위아래 줄들어간 추리닝의 아저씨.....하니 "에너미 라인스"의 세르비아 저격수 아저씨 생각이.....
  • Merkyzedek 2009/09/09 00:00 # 답글

    판갤 좀비연작 보던 생각납니다. 한국이라는 느낌이 물씬 나는 좀비환타지!!!
  • 터미베어 2009/09/09 00:29 # 답글

    뭔가 매우 현실적..
  • Mr술탄-샤™ 2009/09/09 00:51 #

    기존 좀비물에서는 생각을 안했는지 의도적으로 안 다뤘는지 싶은 부분도 다루어질 예정입니다. 이 부분이 현실적으로 주인공들의 제일 큰 스트레스 요소가 되죠.
  • 황제 2009/09/09 00:37 # 답글

    화염방사기 같은 건 못쓰겠군요.
  • Mr술탄-샤™ 2009/09/09 00:51 #

    없으니 못쓴다능...
  • 朴下史湯 2009/09/09 01:19 # 삭제

    파이어뱃은 해병대 전우회 적절할지도?!?
  • MessageOnly 2009/09/09 09:14 #

    가스통은 특수임무수행자회지요...그리고 가스통의 화염분사력으론 좀비를 저지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가스통을 겁내는건 화염자체보다 폭발의 위험성 때문이죠..
    가스통보다는 화염병이 더 효과가 있을겁니다.
  • 덤직 2010/07/29 16:20 # 삭제 답글

    추천받아서 왔습니다. 300마리의 좀비라니 디스 이즈 스파르타를 외쳐야할지도(야임마)
  • Mr술탄-샤™ 2010/07/29 16:31 #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 김재석 2012/02/07 16:59 # 답글

    아흐마디네자드라고 소개하실줄 알았는데 의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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