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전 세계는 한 싸가지없는 민폐녀에 열광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라는 애니메이션이 그것이다.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며 한중일 3국은 물론 미, 영, 독 등등 여러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레바논의 반미시위 피켓에까지 등장할 만큼 놀라운 파급효과를 낳았다. <세계대세>라는 말이 부족함이 없는 이 애니메이션 왜 성공했는가.
정리하자면 다음 3요소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획일화된 시장에 있어서 신선한 성적 자극
2.원작을 확실하게 이해한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노력
3.독특한 시점과 구성
1번에 대해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시장 및 대상의 협소화부터 파고 들어가야 한다. 80년대에 이르러 대중화에 성공한 일본 애니메이션은 그러나 사회 총체적으로 볼 때는 여전히 소수문화의 위치에서는 끝끝내 벗어나지 못했고 90년대에 이르러 매너리즘에 빠졌다. 이와 더불어 급격하게 성장한 80년대의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생긴 오타쿠라는 새로운 사회적 인종을 창조해냈고 이들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놀라운 열정과 더불어 탁월한 구매력, 수집욕으로 일반인들 입장이라면 코웃음을 칠 관련상품까지 사 모으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기본적으로 철저하게 상업원리에 충실한 일본은 더이상 70년대의 우주전함 야마토, 80년대의 기동전사 건담과 같은 사회전체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낼수 있는 작품의 창작을 해내지 못하고 다시금 소수문화로 회귀하는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90년대를 거치며 발생한 매너리즘은 대중적 의식과의 교감에 실패함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상업원리에 충실한 일본애니메이션은 자신들의 상품을 구매해줄수 있는 계층 즉 파워유저에서부터 매니아, 오타쿠에 이르는 부류의 취향에 맞춘 작품을 만들게 된다. 이러한 양상은 2000년대부터 애니메이션 장르의 획일화로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이른바 <미연시><갸루게>와 같은 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공략하는 형태의 게임 만화 혹은 그것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 다량으로 양산되게 된다.
이러한 것들은 비록 개별적인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유우부단하고 줏대없는 남자와 그 옆에 있는 친구 한놈 그리고 주인공을 따르는 대량의 여자들로 구성된다. 현실을 대리체험하려는게 아니라 자기 스트레스 풀려고 하는 것이므로 현실마냥 튕기거나 개기는 경우는 없다. 모두 쭉쭉빵빵의 정숙녀, 처녀라면서 테크닉은 프로급인 종류의 여성이 대량으로 양산되는 것이다. 비록 세부적인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양상은 변함이 없다.
문제는 아무리 좋은 노래도 자꾸 들으면 질리는 것처럼 이러한 정형적인 형태의 시츄에이션은 점점 지겨움의 원인이 된다. 스즈미야 하루히라는 캐릭터는 이 점에 있어서 완전한 반란을 시도한 종류이다. 원체 활달한 수준을 넘어 여자 노홍철의 돌아이성과 히틀러도 한수접는 고집불통과 독단성으로 여기저기에 민폐를 끼치고 돌아다닌다. 그 과정에서 남자 주인공인 <쿈>은 투덜만 드럽게 많은 종류로써 항상 스즈미야 하루히에게 끌려다니며, 때로는 머리끄덩이를 잡히거나 뒷덜미를 낚여채인 채로 질질 끌려다닌다.
여자에게 당하는 남자라는 시츄에이션은 미연시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요소이나 기본적으로 순종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요소를 전면으로 띄우는 경우는 없었다. 어쩌다 한번씩 나오는 정도? 그러나 스즈미야 하루히는 이러한 양상을 완전히 뒤집는다. 민폐녀, 싸가지없는 년이라는 평가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독단적이고 고집센 행동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써클 <SOS단>의 등장으로 귀결되고 이것은 기존에는 남성의 발 아래에 있었던 여성을 남자 위에 군림하는 페미니즘적인 이상적 여성의 탄생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완벽한 신선함이었으며 그전까지 없던 새로운 캐릭터 표준의 창조에 해당하는 존재였다.
이러한 총체적인 요소들은 대중에 자발적 복종의식을 이끌어냈다. 아돌프 히틀러는 대중은 지배받기를 원한다고 말한 바 있으며 역사적으로 전면에 나서 새로움과 더불어 자신을 어필하는 자기확신에 넘치는 독단적 인간상은 역사적으로 하나의 조류를 만들어내는 사건 창조적 인간이 되며 사람들은 사건 창조적 인간에 열광한다. 이들이 들고 나온 요소가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느냐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는데 이를테면 히틀러, 나세르, 호메이니 등의 대중을 기반으로 한 성공적인 혁명가들이 그러하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새로운 요소와 더불어 캐릭터의 독단성과 자기확신은 단순히 새로운 성적 캐릭터의 정립뿐만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를 일종의 구심점 비슷하게 인식하도록 하였으며 단순한 성적 신요소로는 이룰 수 없는 세계대세의 바람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도 기인하는 것이다. 내성적인 사람은 어떠한 요소를 가지고서도 대중의 지지를 얻기 어려우며 허리춤에 손을 올라고 배를 내밀며 자뻑의 극단을 보이는 사람이어야만 혁명적 대중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스즈미야 하루히는 캐릭터적으로 그러한 성향을 타고 났으며 신요소가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짐으로써 건방짐으로 받아들여질수 있을뻔했던 캐릭터 특성은 열광적 추종을 이끌어낼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우월주의-여성순종적 구도는 옅으나마 여전하다. 비록 남성들에 위에 서서 이끌어나가는 여성상으로써의 군림하는 싸이코 폭군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지만 그녀는 남자주인공인 <쿈>을 좋아한다. 평상시에는 대단히 자신감 넘치면서도 애정전선이 형성되면 결정적인 순간에 남성들이 규정한 <여성스러움>을 선보인다. 극중의 주인공들에게 보여주지 않고 시청자들에게만 알 수 있는, <쿈>과의 인연이 실패하면 짜증과 열불을 내는 모습 또한 스즈미야 하루히를 시청하는 남자들에게는 그녀는 결국 남자주인공을 좋아한다는 것을 보여주어 종국에는 결국 남자에게 종속된 모습을 보여준다. 극단의 여성우월과 독단성 그리고 돌아이스러움과 고집불통으로 남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날아갈 풍선같은 그녀를 붙들어드는 실과 같은 요소가 공존하는 것으로, 파격적인 캐릭터가 곧 거부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라면 탁월한 시점과 연출 그리고 그녀의 성격이 만들어낸 행동패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즈미야 하루히에 우울에 등장하는 캐릭터 모두 기본적인 과거의 미연시에서 벗어나지 않는 복장, 즉 현실에서는 최고급미녀 이외에는 용납되기 어려운 체형과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복장들은 과거에도 계속되어 왔던 것으로써 남성들의 성벽을 만족시키는 소품으로써 과거의 미연시류에서 발생하던 지겨움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정숙한 그녀들은 가만히 있어야 하기 때문에 캐릭터의 미니스커트나 체형은 단지 그대로 보여주는 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을 제작한 쿄토애니메이션은 이러한 점을 역으로 이용한 연출을 선보였다. 스즈미야 하루히라는 캐릭터는 독단적이고 고집불통인데다 여성적인 부끄러움이나 수치심과는 조금 거리가 먼 성격을 하고 있으며 작중의 행동도 미니스커트라 조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올려 남자를 엎어트린다던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등 과격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해댄다. 이러한 행동은 절묘한 구도와 수위를 넘지 않는 앵글로 탁월하게 조명된다. 오프닝에서 성큼성큼 걷는 행동으로 시작되는 성적 연출은 극중에서의 과격한 행동들과 더불어 전 세계를 열광시킨 엔딩의 댄스에서 절정을 이룬다. 놀랍고 경이로운 몸매의 소녀들이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탁월한 각선미를 뽐내며 짧은 치마에도 개의치 않고 활달하게 움직이며 춤을 추는 모습이 탁월한 작화와 연출과 결합되는 순간 세계는 열광했다. 라기보다 사내놈들이 열광했다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여하튼 그것은 기존의 미연시류에서는 넘지 못했던 벽을 넘은 것이었으며 숨어있던 성적 요소를 또 하나 드러내놓은 것이었고 신선한 자극이었으며 말하자면 하나의 혁신에 가까운 것이었다. 결국 사람은 이쁜거 좋아하기 마련이고 남자는 이쁜여자 좋아하기 마련이며 세계 어디든 남자는 다 같은 법이다.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도 성공의 비결로 꼽힌다. 애니메이션 시장이 오타쿠 계열로 협소화되면서 부각된 문제점 중의 하나는 만화든 소설이든 원작을 애니화했을 경우에 생기는 매체의 차이나 기타등등의 요소로 인한 원작과의 차이점이 곧 팬의 비난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사실 모든 엔터테인먼트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이기는 하나 애니메이션 시장의 협소화/매니아화로 인해 특별히 더 부각된 문제점이라 할 수 있으며, 강력한 구매력을 가진 매니아/오타쿠 계층이 곧 수익으로 연결되는 시점에서 이러한 문제는 곧 애니메이션에의 거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이 경우 투자한 만큼의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게 되며 오히려 원작의 서브상품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제작사측이 곧 오타쿠보다 더욱 오타쿠스러워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원작의 이해를 열성팬 이상으로 제대로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하청받아 만드는 제작사들에게 이것은 무리한 주문이다. 그러나 제작사인 교토애니메이션 측은 특별했다. 그들은 상업적인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제작사였으면서도 그들 스스로 열성팬이었다.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는 극중에서 실내화에 쓰여진 문자 하나에도 신경쓰도록 하였고 극중에서 올라가는 프로그래밍 함수조차 실제로 작동하는 종류를 엄선하여 묘사하였으며 소설에서의 묘사를 수많은 검토를 통해 가장 가까운 영상으로 만들어냈으면서도 차별화된 애니메이션만의 특징을 부가함으로써 원작의 서브상품이 아닌 오히려 애니의 히트로 원작의 매출이 올라간다는 정도까지 압도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존나게 까다로운 개색히들>의 시험을 통과할 뿐만 아니라 찬양까지 받을 수 있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특징이라면 역시 화자의 시점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인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제3자 즉 시청자들이 이야기를 지켜보는 구조로 되어 있는 데 반해 스즈미야 하루히는 남자주인공 <쿈>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모든 사건과 상황은 <쿈>에 의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떻게 인식되는지 그의 마음 속의 나불거림으로 나타나게 된다. 단순한 중얼거림이라기보다 그것은 오히려 만담에 가깝다. 보통 만담이 사람 두명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스즈미야 하루히에서는 남자주인공 <쿈>과 그를 둘러싼 세상의 상황들간의 만담이라고 볼 수 있다. 만담이 잡담과 다른 이유는 어떠한 주제를 재치있는 비유와 묘사를 가지고 재미있게 다루어나간다는 점이다. 단순히 무료한 상황도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생각을 통해 재미있어진다.
이러한 만담성 시점과 더불어 시나리오 구성도 탁월하다. 이 작품은 사실 원작의 순서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원작의 에피소드를 총 13화중 아무렇게나 던져놓는다. 7화분량을 2화에 넣는다던가 하는 식이다. 이러한 연출은 원작이 있는 작품이 그동안 보여준 문제점들에 대한 반란에 해당했다. 그동안 원작을 토대로 한 애니메이션의 문제점은 이미 스토리가 원작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진 시점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하더라도 결국 본거 또보는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애니메이션은 단지 원작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감상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경우는 늘 일어났던 현상이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시나리오 구성은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반란에 해당했다. 처음부터 1화는 원작 2권의 내용에 해당하는 학교축제 영화 만들기 내용으로 시작된다. 그 이후로도 걔속 뒷 이야기가 앞에 오고, 앞 이야기가 뒤로 가있는 등의 경우가 빈번했다. 이것은 무엇인가? 말하자면 이미 다 아는 이야기 처음부터 늘어놓지 않고 아무렇게나 던져놓을 테니 원작과 비교해 어떻게 변했는가를 구경 하시라는 감독의 전언이라고 할 수 있다. 숨기고 싶었던 문제점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런 것만을 노렸다면 망하기 좋았을 터, 에피소드를 뒤죽박죽으로 섞어놓고서도 전체적인 기승전결을 확실하게 해놓은 것이 바로 성공을 만든 이유 중 하나이자 탁월한 구성이었으며 애니를 원작과 가장 명확하게 차별시켜놓은 요인 중 하나였던 것이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성공은 바로 이런 요인에 해당한다. 스즈미야 하루히로 큰 성공을 거둔 교토애니메는 비슷한 방식으로 럭키☆스타라는 작품도 흥행에 성공시켰다. 스즈미야 하루히는 말하자면 구태의연한 것들에 대한 반발로써 성공한 종류로 이후 비슷한 신놉시스로 또다시 비슷한 성공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스즈미야 하루히는 성공한 애니메이션이고 그 요소는 위와 같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