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쯤 미스유르카 투구를 만든답시고 해서 완성은 시켜놓은 전력이 있지만 아무래도 작은 철판들의 방어력이 영 시원찮았는데 유연성이 너무 좋아 충격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둘째치고 철판이라 딱딱해서 충격을 더욱 다이렉트로 전달하는 문제가 있었던지라 사실상 그냥 체인메일보다 못해서 방치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철판을 NCT로 딴 것이라 끝이 너무 날카로워서 못쓰겠다 싶은 점도 있어 다시 철판을 빼고 체인메일로 만들어놓은 것이 지금 이 모습입니다. 물론 이것도 완성된 것은 아니며 더 밑으로 늘어져야 하고 또 어떤 변덕에 의해 다시 해체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미스유르카는 러시아어입니다. 인도에서는 쿨라 지라흐 혹은 지르후 쿨라라고도 부르죠. 방어력을 중시하는 서유럽에서는 이렇게 체인메일 혹은 체인과 작은 철판을 결합한 형태의 투구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동유럽과 러시아, 아랍이나 페르시아, 인도 등지에서는 어렵잖게 볼 수 있고 특히 동유럽과 인도에서 아주 많이 쓰였습니다. 동유럽에서는 17세기까지 쓰였고 인도 등지에서는 19세기까지 쓰였는데 동유럽은 근대식 전술로 이행하면서 갑옷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면서 소멸했지만 19세기까지 구식 싸움법이 유지되었던 인도에서는 총기의 영향으로 무거운 투구와 갑옷의 가치가 추락하면서 그 대신 습하고 더운 인도의 기후에서도 쾌적하게 착용할 수 있는 투구로써 각광을 받았던 것 같으며 유물도 철판은 단지 머리 맨 위 가마 부분만 존재하고 나머지는 모두 체인메일인데 어깨와 가슴까지 다 덮는 거대한 두건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얼굴까지 완전히 가리고 눈 구멍도 없어 마치 베일을 뒤집어쓴 모양새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서유럽의 체인메일 두건인 코이프(Coif)가 그렇듯이 이러한 투구들은 백병전에서 큰 방어력을 발휘하기가 어렵습니다. 워햄머나 도끼, 메이스 같은 타격무기들의 충격을 감소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이고, 도검의 칼날은 무력화시킬수 있지만 그 충격은 무력화시키지 못합니다. 검도를 해보신 분들이라면 고작 500~700g정도인 죽도의 타격력도 만만찮다는 것을 잘 아실 것이며 하물며 1kg를 넘는 진검은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내부에 두터운 갬비슨을 착용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계는 명확하죠. 정수리에 들어오는 도검의 일격은 어찌어찌 버틴다 해도 자주 당하는 타격부위이자 균형감각에 큰 영향을 주는 양쪽 귀에 들어오는 칼의 충격은 얄짤없습니다. 도검전투에서 귀에 들어오는 타격 문제는 서유럽 베서닛투구 중에서도 커다란 원판의 이어 가드가 양쪽에 장착된 것을 봐도 알 수 있고 13~15세기까지의 이란 투구들에 둥근 원판 혹은 사각판을 2개씩 달아놓아 귀와 뺨을 보호하는 조처가 유행했던 것을 보아도 귀에 들어오는 타격 문제는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할 수 있지요. 그럼에도 쓰인 이유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는데 보통 동유럽 등지에서 이러한 투구의 주요 착용자들은 궁병이나 궁기병을 비롯한 투사무기 운용자 혹은 셰프니케, 판세르니 같은 중(中)기병들입니다. 이 투구들이 백병전에서 미흡한 점은 명백하지만 비교적 원거리에서 전투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먼 거리에서 운동에너지를 상당부분 손실하고 날아오는 투사무기는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특히 셰프니케=판세르니 같은 체인메일만 입은 중(中)기병들은 백병전시는 방패의 보조를 받으며 일상적으로는 활이나 총으로 원거리 교전을 주 임무로 하고 있으므로 무거운 투구가 상대적으로 불필요합니다.
(판세르니(Pancerni)는 독일어 Panzer에 대응되는 단어이며 철갑을 의미합니다. 셰프니케는 쇠를 입은 자라는 의미로, 이 기병들을 호칭하는 이름입니다. 폴란드, 러시아 양측에 다 있었다고 하며 중산층이 이 갑옷과 장비를 갖추고 군역에 임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총알 막는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6m의 랜스를 드는 폴란드 후싸르는 귀족층에서 징집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인도 등지에서는 사정이 좀 달랐던 것 같은데 이쪽 계통 유물들 중에서 인도쪽 제품들이 압도적으로 골동품 시장에 많이 나오는 걸로 봐서 사용량은 많았던 것 같고 또 동유럽 계통 제품들이 투사무기 운용에 걸맞게 얼굴을 내놓는 것이 많은데 비해 인도쪽 제품들은 얼굴을 덮어버리는 것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백병전에서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평가됩니다만 이러한 투구의 한계가 있음에도 이러한 용도로의 사용을 수행한 것은 인도의 기후 문제와 총기류의 보급에 의한 중갑옷의 가치 하락이 함께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