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빨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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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계산기)

http://www.link.kr/cvs/unit_conv.htm
(단위환산기)



Ⅰ.이 글은 방명록을 겸합니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는 분께서는 이 글 밑에 공개(혹은 비공개) 글로 남겨주시면 됩니다.
Ⅱ.링크는 자유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Ⅲ.제 글은 자유로운 전제와 무제한 퍼가기가 가능합니다. 이곳에 올리는 모든 글은 올린 시점부터 카피레프트 입니다.
IIII. 도검류에 대한 기본적인 가이드인 Sword 가이드 를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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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술탄-샤™ | 2009/11/30 23:59 | 트랙백 | 덧글(216)

본격 대통령 미연시




<소꿉친구는 대통령>이라는 일본 에로게를 진짜 대통령으로 만들어버린 비전의 영상입니다.
진짜 일본에는 괴수들만 사는듯.

by Mr술탄-샤™ | 2009/11/21 12:40 | 가타부타 동영상집합소 | 트랙백 | 덧글(9)

참담한 이라크

짤은 현대 이라크군이 미군에게 지도받는 모습. 이 사진을 보니 왠지 서글퍼지는걸 금할 수가 없더라. 

 과거의 이라크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지금 이라크군은 이렇게 모든 것이 모자란 못난이 군대에 나라도 참담하기 그지 없지만 과거에는 아랍권에서 유일하게 서구 국가의 문턱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던 나라였다. 이라크 정부가 이라크 석유를 독점하던 IPC즉 이라크 석유회사를 국영화시키는데 성공하고 70년대 석유파동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그동안 이렇다 할 발전을 이루지 못했던 이라크는 넘치는 돈들을 근대화에 쏟아붇기 시작했다. 다른 아랍국가들이 석유 수익을 왕실의 것으로 독점하고 이란은 국민생활 향상에는 관심 없이 F-15를 살까 F-16을 살까 아님 둘다살까 하는 고민이나 하고 있을 때 이라크 행정부의 열정은 분명히 주목할 만한 것이었고 고속도로망의 확충과 대대적인 문맹퇴치 정책, 수천년간의 관개농업에 의해 소금기를 품어 사막화가 가속화되어가던 이라크 영토를 초고대의 비옥한 옥토로 되돌리고자 하던 대형 프로젝트, 여성의 사회 진출을 장려하고 대규모의 산업 플랜트를 세워 공업화를 추진하던 이라크의 모습은 아랍인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던 서구사회조차 한번 더 그들을 돌아보게 하는 모습이었다.

 그 중심에 사담 후세인이 있었다. 사담 후세인은 멋모르는 한국인들이 박정희와 비교하곤 하지만 박정희보다는 스탈린에 가까울 만큼 숙청과 권력 독점과 잔혹함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정보 기관의 수장으로써 한국의 대구경북은 상대도 되지 않는 <티그리트 정권>을 공고히 하여 족벌정치의 표본을 이룬 사람이었다. 그러나 79년 대통령 취임 이전까지의 그의 모습은 그의 두려운 모습을 가려버릴 만큼 긍정적이고 열심인 사람의 모습이었고 이라크는 거대한 오일 머니에 힘입어 그의 근대화 구상을 착착 실현해나갔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국민소득 차원에서 이라크보다도 못했던 가난하기 짝이 없는 나라였다.

 정치적인 공과를 넘어 지금 이라크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은 그저 참담하다. 빛나던 과거가 있기에 근대화의 문턱에 다다른 나라였기에 더욱 그런 거 같다. 79년 이후 사담 후세인이 바크르 대통령을 몰아낸 이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의 행보는 주화입마라는 단어가 이 이이상 어울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강력한 신격화와 효율적으로 움직이던 관료조직의 숙청, 그리고 이란 이라크전쟁의 발발과 그로 인해 한때 예비금 350억달러의 강력한 나라는 빚더미에 올라앉은 신세로 전락했고 급락한 국제유가는 이라크의 고통을 더욱 가중되어갔고 이라크는 결국 이란-이라크전 이후 비대화된 군대를 이용해 아랍의 지도국으로 행세하며 안보를 제공하는 댓가로 더많은 지원을 얻어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이라크가 중동 패권국의 자리에 있기를 싫어하는 나라는 다름이 아닌 미국과 영국이었으며 그들의 안전보장을 약속받은 쿠웨이트는 이라크와 협박과 부탁 그리고 아랍국가들의 요청과 질타에도 아랑곳 않고 석유생산량을 계속해서 상승시켜 국제유가를 더욱 추락시켰으며 이라크의 고통을 더더욱 가중시켰고 이에 더해 이스라엘과의 캠프데이비드 협정으로 인해 아랍국에서 따돌림을 당한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라크의 도움으로 아랍권에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야말로 아랍 지도국으로써 중요하다는 아집 때문에 이라크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걸프전은 이러한 참담하고 답이 없는 상황에 더해 사담 후세인의 지나친 자신감과 상황 오판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지만 과연 사담에게 있어 쿠웨이트 침공 이외에 쿠웨이트의 폭주를 저지할 수단이 있었을까 싶은 것도 사실이다. 이후 걸프전의 결과는 알려진 대로 이라크군의 참패로 끝났으며 국제연합군은 철수하는 이라크군의 대열 전후를 공격하여 정지시킨 다음 전 항공력을 동원하여 중간에 갖힌 이라크군을 완벽한 통구이로 만들었으며 이는 학살에 버금가는 행위로 비난받았지만 미영은 뒤이어 시아파와 쿠르드를 선동하여 일으킨 반란에서 또 이라크를 지원하여 시아파와 쿠르드의 봉기의 실패를 조장하였고 이라크는 미영의 경제 봉쇄를 당해 석유 수출의 길조차 막혀버렸으며 한때 한국을 우습게 여기던 경제력의 나라는 90년대부터 식량을 배급하는 나라로 전락했고 국민소득은 방글라데시 수준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사담 후세인을 뒤엎는다는게 불가능하다는걸 뻔히 알면서도 미영은 사담을 뒤엎으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공허한 요구만을 이라크 국민들에게 제시했고 결국 90년대 내내 이라크는 거지국가가 되어갔다. 사담 후세인이 처형되고 3년인 지금 이라크는 70년대의 빛나는 근대화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혼란스럽고 가난한 1950년의 이라크가 다시 펼쳐져 있을 뿐이다. 이제 앞으로 다시 국제유가가 급등할지도 의문이지만 이라크 석유 또한 마치 1950년대 서구 회사들이 출자한 IPC(이라크석유회사)가 그러했듯 이라크 정부의 손을 떠나 있으니 참으로 타임머신이 과거의 가난만 가져다 버려놓고 가버린 것임에 틀림없다. 한때 첨단 무기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줄 알았다던 이라크군이 미군으로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지도를 받고 있으니 지금 이라크를 보는 내 눈은 한때 노숙자에서 대기업 사장으로 자수성가했지만 지금 다시 서울역 구석에서 다 찢어지고 더러워진 양복을 걸치고 박스를 깔아 잠을 청하는 노숙자로 돌아온 자를 보는 느낌 바로 그것이다. 처음부터 누더기였으면 좋았을 것을 더러워진 양복이 지금의 신세와 대비되어 그를 더 참담하게 한다. 참담하다. 그저 참담하다는 이 말보다 지금의 이라크를 어떤 단어가 더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by Mr술탄-샤™ | 2009/11/20 23:17 | 아흐마디네자드 에세이 | 트랙백 | 덧글(30)

쿨라 지라흐(Khula Zirah)투구의 계속되는 발전

미스유르카 투구와 잡담 에서 선보인 투구는 나날이 발전하는데....

두건이 늘어나고, 앞섶은 눈만 가리는 것에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두건으로 교체. 두건은 1.5mm스텐레스 판을 접어버리는 파괴력의 창의 직격도 막아내는 전설의 머신웰디드 메일입니다. 원래는 겉에 달려고 했으나 추할 거 같아서 안쪽에 고정. 면상을 완전히 덮어버리는 체인메일이 많은 인도 투구의 특징을 잡아내었다고 할 수 있지요.

by Mr술탄-샤™ | 2009/11/18 02:20 | How to Make Armour | 트랙백 | 덧글(9)

미스유르카 투구와 잡담


올해 초쯤 미스유르카 투구를 만든답시고 해서 완성은 시켜놓은 전력이 있지만 아무래도 작은 철판들의 방어력이 영 시원찮았는데 유연성이 너무 좋아 충격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둘째치고 철판이라 딱딱해서 충격을 더욱 다이렉트로 전달하는 문제가 있었던지라 사실상 그냥 체인메일보다 못해서 방치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철판을 NCT로 딴 것이라 끝이 너무 날카로워서 못쓰겠다 싶은 점도 있어 다시 철판을 빼고 체인메일로 만들어놓은 것이 지금 이 모습입니다. 물론 이것도 완성된 것은 아니며 더 밑으로 늘어져야 하고 또 어떤 변덕에 의해 다시 해체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미스유르카는 러시아어입니다. 인도에서는 쿨라 지라흐 혹은 지르후 쿨라라고도 부르죠. 방어력을 중시하는 서유럽에서는 이렇게 체인메일 혹은 체인과 작은 철판을 결합한 형태의 투구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동유럽과 러시아, 아랍이나 페르시아, 인도 등지에서는 어렵잖게 볼 수 있고 특히 동유럽과 인도에서 아주 많이 쓰였습니다. 동유럽에서는 17세기까지 쓰였고 인도 등지에서는 19세기까지 쓰였는데 동유럽은 근대식 전술로 이행하면서 갑옷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면서 소멸했지만 19세기까지 구식 싸움법이 유지되었던 인도에서는 총기의 영향으로 무거운 투구와 갑옷의 가치가 추락하면서 그 대신 습하고 더운 인도의 기후에서도 쾌적하게 착용할 수 있는 투구로써 각광을 받았던 것 같으며 유물도 철판은 단지 머리 맨 위 가마 부분만 존재하고 나머지는 모두 체인메일인데 어깨와 가슴까지 다 덮는 거대한 두건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얼굴까지 완전히 가리고 눈 구멍도 없어 마치 베일을 뒤집어쓴 모양새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서유럽의 체인메일 두건인 코이프(Coif)가 그렇듯이 이러한 투구들은 백병전에서 큰 방어력을 발휘하기가 어렵습니다. 워햄머나 도끼, 메이스 같은 타격무기들의 충격을 감소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이고, 도검의 칼날은 무력화시킬수 있지만 그 충격은 무력화시키지 못합니다. 검도를 해보신 분들이라면 고작 500~700g정도인 죽도의 타격력도 만만찮다는 것을 잘 아실 것이며 하물며 1kg를 넘는 진검은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내부에 두터운 갬비슨을 착용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계는 명확하죠. 정수리에 들어오는 도검의 일격은 어찌어찌 버틴다 해도 자주 당하는 타격부위이자 균형감각에 큰 영향을 주는 양쪽 귀에 들어오는 칼의 충격은 얄짤없습니다. 도검전투에서 귀에 들어오는 타격 문제는 서유럽 베서닛투구 중에서도 커다란 원판의 이어 가드가 양쪽에 장착된 것을 봐도 알 수 있고 13~15세기까지의 이란 투구들에 둥근 원판 혹은 사각판을 2개씩 달아놓아 귀와 뺨을 보호하는 조처가 유행했던 것을 보아도 귀에 들어오는 타격 문제는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할 수 있지요. 그럼에도 쓰인 이유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는데 보통 동유럽 등지에서 이러한 투구의 주요 착용자들은 궁병이나 궁기병을 비롯한 투사무기 운용자 혹은 셰프니케, 판세르니 같은 중(中)기병들입니다. 이 투구들이 백병전에서 미흡한 점은 명백하지만 비교적 원거리에서 전투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먼 거리에서 운동에너지를 상당부분 손실하고 날아오는 투사무기는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특히 셰프니케=판세르니 같은 체인메일만 입은 중(中)기병들은 백병전시는 방패의 보조를 받으며 일상적으로는 활이나 총으로 원거리 교전을 주 임무로 하고 있으므로 무거운 투구가 상대적으로 불필요합니다. 

(판세르니(Pancerni)는 독일어 Panzer에 대응되는 단어이며 철갑을 의미합니다. 셰프니케는 쇠를 입은 자라는 의미로, 이 기병들을 호칭하는 이름입니다. 폴란드, 러시아 양측에 다 있었다고 하며 중산층이 이 갑옷과 장비를 갖추고 군역에 임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총알 막는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6m의 랜스를 드는 폴란드 후싸르는 귀족층에서 징집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인도 등지에서는 사정이 좀 달랐던 것 같은데 이쪽 계통 유물들 중에서 인도쪽 제품들이 압도적으로 골동품 시장에 많이 나오는 걸로 봐서 사용량은 많았던 것 같고 또 동유럽 계통 제품들이 투사무기 운용에 걸맞게 얼굴을 내놓는 것이 많은데 비해 인도쪽 제품들은 얼굴을 덮어버리는 것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백병전에서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평가됩니다만 이러한 투구의 한계가 있음에도 이러한 용도로의 사용을 수행한 것은 인도의 기후 문제와 총기류의 보급에 의한 중갑옷의 가치 하락이 함께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by Mr술탄-샤™ | 2009/11/17 00:23 | 철갑의 세계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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