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전하 통촉하시옵소서트랙백 요약 : 이명박대통령이 민심을 알아보러 야간잠행을 나서셨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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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든 하나의 사물을 볼 때는 그 나라 특유의 문화와 역사가 만들어진 시각을 통해 사물을 보기 마련이다.
가령 무술의 경우 일본은 전쟁에서 사용하기 위한 전투기술이자 정신과 마음을 다듬는(즉 전투에 걸맞는 정신을 만드는) 하나의 훈련체계이자 전사로써의 기본 소양 정도로 생각하는 반면, 한국에서 무술에 대한 인식은 도술에 가깝다. 구한말 이장군이라는 사람이 축지법을 사용해서 의주에서 부산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던가, 몇 생애를 걸쳐 윤회하며 무술을 수련한다던가, 산중도인에게서 무술을 전수받고 신장이 호위하는 등의 구라가 한국에서 수십년간 꾸준히 통해 왔던 건 말빨이 좋아서가 아니라 무술에 대한 인식과 시각이 기본적으로 그렇게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적인 시각이 중국 무협지의 유입으로 한차례 변화하고 UFC같은 이종격투기의 등장으로 많이 깨어졌지만 아직도 구석에서는 이런 레파토리로 사기 무술을 만드는 사람들이 건제하고 아직 이런 수수께끼같은 신화를 절대적으로 믿고 자신이 수십대 전설무술을 수련하고 있다는 허망한 자부심에 넘치는 사람도 있다.
수백년에 걸쳐 형성된 시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그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이상적인 위정자를 보는 시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이상적인 위정자는 싸움 잘하는 장군도 아니고 구석에서 나라를 끝내주게 돌리는 강력한 행정가도 아니다. 일지매, 임꺽정과 같은 동에번쩍 서에번쩍 나타나 일을 해결해주고 자기들과 기본적으로 같은 계급으로써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 아마 한국의 이상적인 위정자상일 거다.
하지만 시대가 복잡 다각화되면 더이상 나라를 잘 굴리는 위정자는 백두의 전법 신묘한 전법으로 축지법 써서 일선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행정적 문제와 정책구상을 잘 하고 여러 데이터를 조합하여 총체적인 지시를 잘 내리는 사람이 나라를 잘 굴리는 위정자가 된다.
보수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문제삼는 대통령의 모습 중 하나에는 반드시 이런 게 들어간다. <박정희대통령은 직접 논에 나와 수로공사도 같이 하고 새참도 같이 먹었는데 노무현이란 놈은 태풍이 났는데 오페라나 쳐본다> 세부 내용이야 달라지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일지매를 원하는 시각은 언제나 같다. 청와대에 틀어박혀 양복 입고 어려운 지시를 내리는 사람보다는 칠부바지에 삽들고 벽돌을 나르거나 부패 관리가 판치는 곳에 구름을 타고 나타나 부패 관리를 잘라버리고 어려운 사정을 들어주는 그런 대통령상을 원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한국 사회에 건재하다.
그렇기에 빨갱이국가임에도 오히려 한국에서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항상 감탄과 경이의 대상이 된다. 사실 전통적인 수령론에 의거한 페라치오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원자바오 총리가 재난이 벌어지자마자 곧바로 날아가서 구호 지휘를 직접 시작했다는 데에서 이미 한국 사람들의 경탄이 시작된다. 무너진 잔해 속으로 들어가 직접 부상자를 옮기는 모습에선 가슴이 떨린다. 우는 어린아이에게 정부가 생활도 보장하고 공부도 시켜주겠다며 달래는 모습에 이미 가슴이 북받치고 철수하겠다는 구조대의 보고에 구조를 강행하라며 수화기를 내던졌다는 보도를 듣는 시점에서는 부러움과 시샘이 섞인 경탄과 더불어 우리나라에는 왜 저런 지도자가 없느냐
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온다. 그야말로 한국의 이상에 딱딱 걸맞는 일지매총리가 아닌가.
그러나 결국 그런 종류의 현지지도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한다. 단지 뭘 한다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전부일 뿐 제대로 된 구조와 구호는 결국 그 나라가 만들어놓은 시스템과 효율성이 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자바오 총리가 나섰을 때는 떼로 몰려나왔던 지방 관리들이, 원자바오 총리가 떠나자마자 정오 안개 흩어지듯 사라져 코빼기도 안 비치는 모습에 분노하는 사천성 피해지역 시민들의 모습은 화려한 오색 구름을 타고 날아간 일지매의 광채 속에 숨겨진 현실을 보여주는 진실의 실체이다.
일지매는 한순간 쌀을 줄지는 몰라도 쌀을 안 빼앗기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지지도의 허망함의 예를 들자면 북한을 빼놓을 수가 없다. 김일성은 전설의 청산리(김좌진 청산리 아님) 협동농장을 방문에 농업전반의 정신과 기술에 대해 현지지도를 한 이후로 빼놓지 않고 현지지도를 나섰다. 특히 인의 장막에 갖히는 걸 더 두려워해서 자주 현지 지도를 나섰다. 이런 사례가 전해온다. 지역 당책임비서에게는 식량사정이 양호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김일성은 몇몇 경호원만을 대동하고 차를 타고 밤 마을로 들어갔다. 거기서 아무 집이나 골라잡아 주방으로 쑥 들어간 김일성은 풀죽을 쑤고 있는 아낙네를 보게 된다. 경애하는 수령이 이런 시골 마을에 나타나리라곤 꿈도 못꾸던 아낙네는 당책임비서정도로만 생각하고 신경쓰지 않았는데 김일성은 처음엔 여물 주는 줄 알았다가 보릿고개 때문에 먹으려고 쑨다는 소리를 듣고는 분노해서 당책임비서를 당장 해임하고 그 마을에 식량을 베풀어 배불리 먹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 아낙네는 결국 내년도 내후년도 보릿고개 때 풀죽으로 배를 채웠을 뿐이었다. 현지지도는 결국 임시방편이고 문제투성이 체제를 바꾸는 것은 못된다.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도 뻔질나게 현지지도를 다니지만 그때 뿐이다. 최고지도자의 현지지도가 남긴 것은 <수령님 현지지도 아파트>같은 팻말과 거기에 흘린 권위의 부스러기를 모아 큰소리를 치는 현지지도 지역의 주민들의 배짱 뿐이다. 김일성은 어쩌면 생각보다는 국민의 생활향상과 경제발전을 더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첫번째 원인이 공산주의 사상 자체의 모순이라면, 두번째는 아마 구름타고 나타나는 일지매의 위정자상에서 끝끝내 벗어나지 못한 것이 이유일 것이다.
이명박대통령이 국민의 압도적 지지(최소한 표 숫자상으로는)를 받으며 출범한 것이 이제 3달. 나의 눈으로는 뉴스를 보나 뭘로 보다 과거 한반도의 위정자들이 그랬던 현지 지도가 다시 부활한 느낌이다. 뉴스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치 땡전뉴스를 보는 것마냥 첫머리마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디를 다녀와서 민생위주의 지시를 내리셨다는 보고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뻔질나게 어디를 다니면서 현지 지도를 수행하신다. 어린이 성폭행미수사건때 경찰서로 검정 구름을 타고 나타나 일선 경찰을 질타하고 용의자에게 중벌을 내린 것은 그 큰 사례였다. 그 지도의 성과를 보면 현지지도를 꼭 나쁘다 할 순 없다. 그렇지만 이제 대통령으로써의 할 일은 시시콜콜한 톨게이트같은 거에 신경쓰며 현지 지도를 수행하는 게 아니라 현재 닥친 국제적 경제위기에 대한 총체적인 고민과 대책마련에 고심하는 것일 것이다.
행여나 혹자의 비난처럼 60~70년대 마인드로 움직인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명박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이상적인 대통령상으로써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일지매의 모습이 각인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일지매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고 김일성의 성실한 현지 지도는 낡은 팻말을 남겨 놓았을 뿐이었다. 부디 이러한 허망함을 깨닫고 자신이 조선 시대의 민중의 이상속 인물이 아닌 21세기 한국의 복잡다난한 문제를 처리할 중앙처리장치라는 입장을 자각하게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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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5월 18일날 쓴 글인데 왠지 지금도 유효한듯........